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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1일 00시 13분 등록
MeStory(14) : 내 안에 어두운 놈

밤에 잠이 안오는 게 싫다. 내게 자꾸 말을 거는 놈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놈을 피해 보려고 그림을 그린다. 가볍게 그리는 만다라. 
물감으로 색을 칠해도 번지지 않는 볼펜을 집어서 밑그림을 그린다.
첫번째는 태양. 
그 다음에는 태양 옆에 달 이미지를 따서 그린 만다라를 따라서 두번째는 달을 그린다. 
그 다음에는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은 눈동자.그리고 그 눈이 무서워서 감은 눈도 그려 넣는다. 세번째는 눈의 만나라.
무서운 것들을 피해 달아난 네번째에는 물고기를 가득 그릴 궁리는 한다. 작고 귀엽게. 첫번째 물고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두번째 물고기를, 좀더 통통한 세번째 물고기를, 그리고 격하게 꼬리를 흔들어 줄 것 같은 네번째 물고기를 그려 넣는다. 
그 다음엔 눈에 띄는 글자를 넣어 그냥 비워둔다. 무엇을 채워야할지 모르는 다섯번째.

볼펜으로 그린 만다라에 색을 칠한다. 
첫번재 만다라. 태양. 차분하게 칠하다가 그 차분이 나와 맞지 않을 인식하고는 차분을 강요하지 않는다. 거친 선이 매력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거칠게 칠해본다.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들어가야 빛답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에너지다워 보인다.
왜 딸이 아버지를 걱정하냐는 말이 떠올라 선이 거칠어졌다가 다시 제 속도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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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좀더 거칠게.  
짜증이 났었다. 내게 깊은 어두움이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사람과 그 사람의 밝음에 짜증이 났다. 그건 그냥 객관적인 말이었으나, 내가 어떻게 해야만 하는, 아니 잘 감춰둬야만 할 것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어두움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데 어떻게 하라는 것인양 느껴쪄서 짜증을 냈었다. 나는 내 속의 부끄러운 것을 들켜버린 사람마냥, 그말을 한 이가 한번도 어두움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인양 그를 속으로 욕을 했다. 그리고 그말은 오래도록 걸렸다.

왜 앞선 사람은 보름달 만다라가 아니라, 그믐달 만다라를 그려냈을까? 만다라가 빛이라면, 그건 어둠속에서 피어나는 것일까?
세번째로 그린 그믐달 만다라가 내 안에 있는 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그놈이 밖으로 나왔다.
만나고 싶지 않아서 그림으로 피해왔는데, 놈은 그림 속에서 얼굴을 드밀었다.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들킨 것도 그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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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두운 놈하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한밤중에 산책을 나갔다.
천변 사람들이 운동하는 곳으로 향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동네 골목을 돌아다녀보자고. 한번도 들어선 적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성당 뒤편, 언덕이 있고, 무너진 건물이 있는 곳.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인지, 아니면 짓다가 공사를 중지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오래전부터 빈터였으니 부도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왜 꼭 깡패는 부두나 페허가 된 공사장에서 싸우냐라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너무 어두워서 명탐정 코난에서처럼 누구 하나 묻겠다고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사람이 언뜻보인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밖에 있는 어두움이 보이니 안에 있는 놈이 말을 걸 틈이 없다. 
공사장 주변으로 둘러처진 천에 파이프에 매달아둔 글씨가 어두운 중에도 눈에 들어온다. '범죄 취약지역 신고전화 112' '범죄 취약지역'. 가로등도 제대로 안 달린 길로 들어와 버렸구나. 누군가 무서운 놈을 만난다면 물어뜯을 생각을 한다. 이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힘을 따라 안에 있는 놈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누군가를 물어 뜯을 수 있는 놈. 나는 그런 놈인가 보다. 

책에서 본 깊은 어두움은, 우물이 하나 있어 그 깊이를 알고 싶어 돌을 하나 던졌는데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본 깊은 어두움은 빠져나갈 수 없는 다른 세계였다. 그 속에 빠진 에드는 우연히 같이 그 속에 글어온 엔비(질투)란 놈에게 그것이 이계(異界)라는 말을 들었다. '넌 이곳이 어딘지 알거야. 예전에 한번 빠져봤으니.' 에드는 뭔가가 흐물흐물한 것이 잡아당기는 그 느낌을 기억해내어 그곳이 이계임을 눈치했다. 
에드가 빼진 이계는 먹어도 먹어도 차지 않는 글러트니(폭식)의 뱃속에 만들어진 구멍과 같은 것이었다. 

내 안에 어두운 놈도 무엇을 얼마나 삼켜댈지 난 모르겠다. 
아니, 난 진짜 모르는 게 아니다. 그걸 마주대하기 싫어서 모르겠다는 말로 피해왔다. 그렇지만 피하지 않고 그녀석과 말을 섞는다 해도 얼마나 집어 삼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인 것 같다. 그놈이 무엇을 얼마나 잡아 먹을지 모르니까, 그놈을 다룰 줄 모르니까, 그놈이 말을 거는 것을 피해왔다.

그러나 이놈이 여러차례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을 알고 있다. 그때는 뭔지 눈치 못챘을 때 이놈이 날 덮쳐와서 내가 이놈에게 먹혀버렸다는 것을. 그것조차 나는 부인해 왔었지만.

내 안에 들어 있는 깊은 어두움이란 놈은 왼편 어깨 한발짝 뒤에 따라 붙어 있는 죽음이란 놈하고는 다른 놈인 듯 하다. 이 놈은 가끔그림 속으로 뛰쳐나오고, 고함 속에 섞여 나오고, 거친 손에 슬며시 풀어져 나온다. 어두운 골목에서, 불을 끄고 누운 방안에서 가만히 말을 걸어온다. 배가 고파도 먹고 싶은 않은 날, 배가 고파 음식을 입에 물고도 씹지 않은 채 물고만 있을 때, 이놈이 말을 건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 듣겠다. 배고픈 나와, 배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어떤 놈인가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못알 듣는다.

이제는 이 놈을 만날 때인가 보다. 이놈이 그림 속으로 뛰어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아야겠다. 숨겨두어야할 이유가 없다. 이 놈은 내속에 있는 놈이고, 깜깜하여 형체가 없기도 하고, 눈이 여러 개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놈은 내 뱃속에, 글러트니의 뱃속에 들어있는 어두움처럼 내 안에 있어 나와 함께 사는 놈이다. 

어두움 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아니 이제는 속에서 얌전히 나오는 법을 알만한 때다. 


놈의 눈 속에 여러가지 모습의 내가 있다. 눈,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자, 어둠을 감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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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이 말을 거는 것을 외면하지 않겠다하니 놈은 순순히 나를 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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