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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3일 15시 03분 등록

스페인 세비야_구달칼럼#18

 

예술과 열정의 안달루시아의 수도 세비야

세비야가 스페인의 도시인지 모르는 사람도 <세빌야의 이발사>는 안다. 세빌야는 세비아의 이탈리아식 발음이다. <세빌야의 이발사>뿐만 아니라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돈 조반니>의 무대가 모두 세비야이다. 이쯤 되면 세비야의 문화적 비중을 짐작케 한다.

 

고대 로마인으로부터 서고트족, 아프리카 무인들이 정주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역사와 문화는 신비로움을 낳았다. 이래서 안달루시아는 곧 스페인 문화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예술의 진수가 흘러 넘치는 장소다. 이슬람 문화와 집시들이 만든 플라멩코, 이 지역의 전통으로 이어져온 투우 등이 특히 발달해 있으며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들이 산재해 있는 지역이다. 그 중에서도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수도이다.

 

스페인의 예술과 열정을 이해하는데 최상의 지역은 안달루시아가 아닐까 싶다. 흔히 스페인을 말할 때 이글거리는 태양, 지칠 줄 모르는 열정,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나라라고 하는데, 안달루시아가 바로 그런 장소이기 때문이다.

 

안달루시아의 여름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기운이 섭씨 30~40도에 이르러 무척 덥지만 저녁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건조하고 신선한 바람이 어디선가 솔솔 불어와 파김치 된 육신을 회복 시켜준다. 사막 기후 같이 밤낮 기온의 편차가 아주 심한 곳이다.

 

광장과 골목, 야외카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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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카페(사진: 희동이)

스페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화적 특징이라면 광장과 골목, 야외카페일 것이다. 도시 중앙에 성당이 있다면 그 앞에 커다란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길이 뻗어 나간다. 그 길을 따라 3~4층의 집들이 들어선다. 대도시의 차가 다니는 큰 도로들을 제외하고 오래된 작은 읍성들은 특히 이러한 도시구조로 인하여 골목들이 잘 발달하여 있다. 좁은 골목이지만 돌 바닥 길에 육중하고 거대한 오래된 건물들이 마치 성채처럼 즐비하게 늘어서서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들고 있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꽃을 피운 화분을 걸어 놓아 운치를 더한다. 비를 잊은 푸르디 푸른 창공과 황색이나 흰 색의 집 벽들 위에 점점이 걸린 붉은 꽃들의 배색은 자신도 모르게 사진기를 꺼내 들게끔 만든다.  이들 광장과 골목에는 구석구석 어김없이 야외카페가 들어서 있다. 파라솔을 펼치거나 그늘진 곳에 테이블을 놓고 썅그리아나 와인 등의 음료와 하몽 따위의 가벼운 먹거리로 길손들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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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골목길(사진: 피울)

스페인 여행 중, 성당과 성채 관람이 하도 많다 보니 누군가는 이제 성당 그만 보고 종일 골목길 산책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골목길들이 무척이나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니 볼거리가 많아 이것 저것 보며 걷다가 목이 마르면 야외카페에 앉아 와인 한 잔하며 쉬고 즐기는 식의 여행도 나름 참 좋겠다 싶었다.

 

세비야의 역사

코르도바에서 로마다리 밑을 흘러온 과달키비르강은 세비야를 거쳐 보난자란 항구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그라나다 점령 이듬해인 712년 무슬림 군대는 세비야를 점령해, 페니키아, 로마, 게르만, 서고트로 이어지던 긴 주인들의 명단에 새 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무어인들은 1248년 페르난도3세에게 밀려나 그라나다 인근으로 쫓겨갈 때까지 이 곳 세비야를 안달루시아 이슬람의 주요 거점으로 번영케 했다. 페르난도3세처럼, 오페라 작곡가들처럼 카톨릭 세력들은 세비야를 사랑했다.

 

국토회복이 완료된 후 신대륙 정복기에 세비야는 과달키비르강을 이용한 무역기지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수많은 성당과 대학들이 설립되었고, 콜럼부스의 신대륙 탐험을 위한 출항을 이 곳 세비야에서 했으며, 마젤란이 이 곳에서 세계일주의 닻을 올리기도 하였다. 18세기 들어 대형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다스Cadiz에 밀려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까지 세비야는 이른바 신대륙 중흥기를 누렸다. 1992년의 엑스포는 1600만 방문객을 맞아들이며 새로운 세비야 관광시대를 열었지만, 그 또한 부분적 성공에 그쳐 아직도 엑스포 부지는 미분양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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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중심부 지도

세비야의 건축물

 

Golden Tower

 

우리의 한강처럼 세비아의 중심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과달키비르강(Rio Guadalquivir) 강변에 있는 황금탑(Golden Tower)이 야자수에 둘러싸여 있다. 강을 끼고 쭉 뻗은 자전거길도 잘 구비되어 있어 반가웠다. 황금탑 주변의 강가에는 서너 척의 유람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과달키비르강과 Golden Tower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의 규모는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광장 가운데 분수를 중심으로 수백미터에 달하는 반원형의 고색창연한 건물이 광장을 감싸 안은 형태인데 건물의 하단 부분에는 스페인의 역대 왕국의 특기할만한 역사적 사건들을 타일 벽화로 그려 두었다. 광장은 인공 수로와 아치형 다리를 조성하여 운치를 더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넓은 광장을 안마당처럼 활보하고 악사들은 구슬픈 음률의 파이프 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이 넓은 광장에 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역시 광장의 나라 스페인다운 풍모를 자랑한다.

에스파냐 광장의 악사들

 

세비야는 이슬람과 카톨릭의 혼성양식의 전시장과도 같다. 12세기 이슬람 건축인 히랄다 탑 아래에는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고딕식 세비야 대성당이 들어서 있다.

세비야 대성당

116미터에 길이 76미터로 세계에서 3번째 규모다. 이 성당을 지은 후 사람들은 미친 자들의 작품이라 했는데,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대역사를 빗대어 한 말이다. 세비아 성당의 내부에 있는 콜럼부스의 관이 이색적이다. 4명의 사람들이 콜럼부스의 관을 떠받들고 있는 조각상인데 세비야에서 출항하여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가 스페인에 무슨 원한이 있었던지 스페인 땅에는 결코 자기 시신을 묻지 말아 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이렇게 그의 관을 공중에 띄워 놓은 것이다. 절로 웃음이 배어 나오는 장면이다.

 

대성당의 종루 히랄다 탑에 올랐다. 정사각형의 탑의 내부는 계단이 아닌 경사진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는 왕이 말을 타고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한다. 탑 정상에는 청동 여신상이 있는데 바람에 따라 빙빙 돈다. 이 조각상이 풍향을 가리키는 닭이란 뜻으로 히랄다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종탑까지 37층이라고 하지마는 층이 낮아 우리나라 층의 절반 정도 높이쯤 되는 것 같았다. 빙글빙글 돌아 걸어서 올라가면서 중간 중간 조망대를 설치하여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이 곳 지형의 특색은 산이 없어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평평한 대지가 인상적이었다.

 

알카자궁(Alcazar)의 내부

그 맞은편의 알카자르궁은 그 아름다움이 그라나다의 알람브라에 비견되고, 500년이 넘는 장구한 건축과정은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떠올리게 한다. 이슬람 양식의 정수를 모아 세워진 원래 궁궐을 탈환 후 그라나다, 톨레도에서 데려온 무슬림 장인들이 무데하르 양식으로 완성시켰다. 하지만 12세기에 시작되어 17세기에 마무리되는 동안 르네상스 양식도 가미되었으며, 후원인 알카자르 정원에서도 이슬람, 안달루시아, 카톨릭 등의 다양한 전통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시, 당신은 누구신가요?
집시들은 예전부터 의무와 소유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 대신 이들은 사랑과 자유만큼은 풍족했다. 그래서 의식주에 무관심한 이들은 춤추고 노래하다 한곳에 머무는 법 없이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집시의 기원은 인도 북부 펀자브Punjab 지방에서 쫓겨난 민족이라고 한다. 이들 일부는 이집트를 거쳐 스페인으로 흘러 들었다. 또 일부는 발칸반도를 거쳐 헝가리 체코 등으로 갔다. 이들 중 일부가 지금은 독일 프랑스 등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집시라는 말은 영국인들이 집시를 이집트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온 이집트인(Egyptian에서 E손실)으로 잘못 알고 부른 데서 연유한다.

 

그러나 집시들은 자신들을 롬Rom라고 한다 이 말은 평원의 방랑자Ruma Calk에서 온 것으로 평원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로마니Romany 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집시에 관한 기록이 유럽에 등장한 것은 15세기였으나 아무도 이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이들 또한 말이 있었지만 기록된 역사가 없었다.

 

바람의 아들이오 딸인 이들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우연이었다. 1763 년 헝가리 출신슈테판 발리가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 유학할 때 힌두교도인 인도 친구 셋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어린 시절 들었던 집시 친구들의 말과 비슷했다. 그래서 인도 친구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낱말의 발음을 받아써서 고향에 돌아와 집시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 뜻을 대부분 이해하더라는 것이다. 슈테판은 이런 경험을 <비너 안차이겐> 신문에 기고했다 이 기사를 본 독일의 언어 학자 그렐만은 두 언어의 유사성을 조사해 로마니어(집시어)가 인도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 되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때부터 집시는 인도 북부에서 이동한 사람들로 알려진 것이다.

 

집시는 낭만과 신비감에 싸여 있었다. 비록 쫓기고 차별 받으며 어두운 한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예술 속의 그려진 모습은 낭만과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집시를 주인공으로 한 예술로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집시여인>, 집시의 아이콘이 된 비제의 <카르멘>,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너무나 많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낭만과 성적매력이 충만한 자유인 그 자체다. 그런데 현실 속의 집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집시들은 부도덕하고 무능한 부랑자로 여겨졌으니까. 오르지 예술가들이 눈에만 자유와 낭만을 추구하는 영혼이었을까? 그들의 영혼을 담아낸 플라멩코가 그 대답을 해줄 것 같았다.

 

만일 집시의 삶을 좀더 알고자 한다면 예전 유고슬라비아의에밀 쿠스트리차감독이 제작한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권한다. 영화는 힘든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집시의 모습과 여전히 현대사회와는 동떨어진 삶을 영위해 나가면서도 전통을 잃지 않으려는 집시의 애환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지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춤, 플라멩코
플라멩코란 말은 불꽃 또는 열정을 뜻하는 플라마flama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집시들의 언어가 불투명하듯이 이 또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춤추는 모습이 플라밍고 새와 비슷해서 거기서 유래되었다는 설. 아랍어 농부와 피난민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다양하다 어쨌거나 플라멩코가 스페인의 태양만큼이나 정열적인 춤인 것만은 분명하다.

 

플라멩코 공연장은 타블라오Tablao(극장식 레스토랑 겸 바)라 한다. 세비야에 있는 El Palacio Andaluz” 라는 단체 관광객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타블라오가 있다.

 

실내에 들어서 자리를 잡자 무조건 사진을 찍어주고 테이블 앞에 전시를 한다. 사진 값이 12유로쯤 하는데 안 사도 그만이다. 다음으로 술과 음료를 주문 받아 간다, 이 건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 좌석 뒤편으로는 테이블이 놓여있어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면 공연에 집중도 못할 뿐 더러 식사도 제대로 못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뭘 먹으려 하면 딱따락딱딱딱딱딱... 하면서 플라멩코 특유의 강렬한 박자로 인하여 넘어가던 음식이 멈추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대 바로 코 앞의 좌석에 자리를 잡아보니 플라멩코 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구두를 신은 춤꾼들이 내는 발소리가 탭댄서들의 소리는 상대가 안 된다. 거기다가 양 손가락에 낀 캐스트네츠의 소리까지 합세하여 아주 다양한 타악의 합주를 구사한다.

 

플라멩코 추는 무희

 

현란한 의상을 갖춘 바일레Vaile(무용수), 기타라Guitara(악사), 칸테Cante(가수)가 한 팀으로 플라멩코 공연을 한다. 춤이 시작되자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지만 분위기는 한껏 비장했다. 가수의 노래는 얼핏 우리의 창을 닮은 듯 했다. 한을 토하듯 한 절규가 노련한 칸테로부터 나와 끝없이 이어진다. 하늘을 향해 뒤틀린 무용수의 손 끝은 흘러간 자신들의 허망한 세월을 잡으려는 듯 간절했다. 깊이 주름진 미간, 처절한 눈빛의 무용수의 표정에는 파란 많은 인생의 비애를 한껏 토로하듯 비장함이 가득했다. 기타라의 연주는 가히 달인의 경지에서 자유자재로 춤과 노래와 어울렸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춤사위 이면에 숨어있는 삶의 비애를 표현한 비장미가 플라멩코의 매력이었다.

 

세비아 사람들의 기질

스페인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안달루시아인이다. 성격이 급하고 사교적이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배 고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아이와 같다. 숨기는 것도 없고 시끄럽고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넓은 벌판과 바다가 대조를 이루는 지형, 작열하는 태양과 건조한 기후로 인한 낮과 밤의 심한 일교차, 중부와 달리 건조하지만 비옥한 땅이 이들의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듯하다.

 

혹자는 이곳 사람들을 폴로라이드 카메라에 비유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감명을 받아 열광하다가도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기질을 빗댄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냄비근성과도 닮은 데가 있다.

 

이곳 사람들의 기질이 이렇게 형성된 것은 콜럼버스(1451-1506)가 신대륙에서 이 곳으로 가져온 막대한 재물과도 연관이 있다. 세비야에 유입된 막대한 자본은 풍요를 가져왔지만 생산력과 노동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가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은 많은 물자를 해외에서 수입했고, 그 대가로 인플레이션을 낳았고, 스페인 몰락의 중요 원인이 되었다.

 

돈은 있으나 그것을 활용할 곳이 없었고, 시간은 남아도니 다른 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 곳에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플라멩코 등의 예술을 싹 틔우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열정적이고 낙천적인 안달루시아 사람들의 기질과 콜럼버스가 가져온 풍요가 황금세기 예술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

콜럼버스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탐험에 나섰을까? 1492 8 3일 새벽, 과달키비르 강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콜럼버스 함대는 신세계를 향한 대탐험의 돛을 여기 세비야의 팔로스 항구에서 올렸다. 100여명의 선원 중 30명은 배를 타는 조건으로 사면 받은 죄수들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가난을 피해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쾌속 범선 핀타호와 니냐호, 그리고 장엄하게 치장한 산타마리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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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 동상

콜럼버스는 7년간에 걸쳐 수 차례 포르투갈과 스페인 및 프랑스 국왕에게 탐험에 필요한 경비와 지원을 얻고자 했다. 그러던 차 1492년 초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를 함락시킴으로써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비로소 국토회복을 완수했다. 여왕은 그 여세를 몰아 해외로 눈길을 돌리려 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청을 들어 주기로 했다. 이 때 여왕과 콜럼버스는 산타페 협정을 체결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영토를 여왕에게 바치는 대신에 다음 세 가지를 허락 받았다.

1. 자신과 후손들에게 귀족 신분을 보장 할 것,

2. 자신을 식민지의 총독으로 임명해 줄 것,

3. 식민지 수입의 10분의 1과 모든 무역 거래의 8분의 1을 콜럼버스의 몫으로 인정해 줄 것.

 

전부터 이런 요구에 대해 여왕의 남편인 아라곤 국왕 페르난도를 비롯해 궁중과 교단에서는 콜럼버스를 사기꾼으로 취급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네 번에 걸친 항해에서 신대륙 원주민을 자신의 이익을 채워줄 노예로 대했다. 자신을 멸시한 여인의 혀를 자르고 발가벗긴 채 당나귀에 태워 거리로 끌고 다니게 한 것 등을 증언한 문서도 최근에 나왔다. 아메리카 대륙 수탈의 잔혹사가 콜럼버스로부터 말미암았다고 할 수 있다.

 

여하간에 콜럼버스 항해의 장소를 제공한 세비야는 16~17 세기에 걸쳐 무역을 통해 경제 중심지로 부상한 항구도시였다. 식민지에서 가져온 금은보화로 세비야의 경제는 풍요가 넘치는 황금의 도시가 되었다.

 

세비야의 축제

스페인 속담에 세비아를 보지 않고서는 세계의 경이로움을 보았다고 하지말라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은 연중 200종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놀고 먹는 데 세계에서 일등인 것 같다. 그들에겐 휴일조차도 빈둥거리는 날이 아니라 축제를 준비하고 즐기기 위한 날이다. “비비르 라 피에스타(축제 속에 산다)”라는 말 그대로 그들은 축제를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로 발전시켰고 이제는 세계인들을 위한 관광 아이콘이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식사습관과 신들을 위한 음식 타파스와 셰리

스페인 사람들은 미식가로 하루에 식사 또는 간식을 다섯 번쯤 즐긴다. 이 곳 여성들의 날씬한 몸매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정말 의문이었다.

 

이들은 아침8시쯤에 빵과 커피나 우유로 가벼운 식사를 한다. 그리고 11시쯤에 바에서 커피 등을 마시며 가벼운 간식을 하고, 2시쯤에 본격적인 점심을 먹는다. 이 점심은 에피타이저에서 메인, 디저트에 이르는 정식 코스로 2~3시간에 걸쳐 진행되는데, 가장 거한 식사다. 뒤이어 시에스타가 있어 점심 후 2~3시간 낮잠을 잔다. 오후 6시쯤 잠시 간식을 가진 다음 다시 일을 하고, 퇴근해 9시 넘어 간단한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의 식사를 마감한다.

 

식사 횟수와 시간만 봐서는 대단히 많이 먹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점심을 빼 놓고는 타파스 수준의 간식이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체중 조절이 가능한 것 같다. 이런 식사 습관 때문에 길거리에는 타파스 집이 넘쳐난다. 스페인 사람들은 타파스를 신들을 위한 음식이라고 한다. 서두르지 않고 맛있게 먹으며 피로를 풀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타파스는 원래 안달루시아 지역의 여관 주인들이 손님들에게 셰리와 함께 공짜로 제공하는 간단한 스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식처럼 널리 사랑 받고 있다. 타파스는 맛에 있어서도 현지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입맛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얇게 썬 가지와 호박에 밀가루를 입혀 튀긴 채소튀김, 오징어 링 튀김, 정어리구이와 멜론에 얹힌 하몽 등, 온갖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 바에서 술을 시키면 안줏거리로 따라 나온다. 알달루시아에서 타파스와 가장 어울리는 와인은 당연히 이곳 특산물인 셰리일 것이다. 이 와인은 세비아에서 남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가 원산지다. 세비아에서 카디스 쪽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다.

 

셰리Sherry는 헤레스를 아랍어 발음 Sherish와 섞어 잘못 발음한 데서 생겼다. 이 와인은 식전에 마시는 술로, 포도즙에 약간의 알코올을 섞어 오크 통에서 숙성시킨다. 셰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헤레스에 있는 크고 작은 보데기(셰리 양조장)를 방문할 것을 권한다. 가이드의 안내로 제조과정을 구경하고 시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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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1 00:38:16 *.104.212.197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은 저와 종종의 베스트 무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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