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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5일 01시 16분 등록

 

Book Review 미식견문록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2014. 8.25



 

1.     저자 만나기 

-       1950년 일본 도쿄 출생. 러시아어 동시통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       1960~64년에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

-       도쿄외국어대학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러시아어·러시아문학 석사과정 수료

-       1980년에 설립된 러시아통역협회에서 초대사무국장을 맡았고, 95~97년 회장 역임.

-       1992 <일본여성방송인간담회SJ상> 수상

-       1995년 『헤픈 미녀냐, 정숙한 추녀냐』로 제46 <요미우리 문학상>

-       1997년 『마녀의 한 다스』로 제13 <고단샤 에세이상>

-       2002년 『프라하의 소녀시대』로 제33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       2003년 『올리가 몰리소브나의 반어법』으로 제13 <분카무라 두마고상>을 수상.

-       2006 5 25일 향년 56세에 난소암으로 별세.

 

『프라하의 소녀시대』, 『마녀의 한 다스』, 『대단한 책』, 『미녀냐 추녀냐』, 『올가의 반어법』,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미식견문록』, 『문화편력기』, 『발명 마니아』, 『팬티 인문학』, 『교양노트』 등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요미우리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에세이스트, 러시아 주요인사의 방일 때마다 수행 통역한 일류 동시통역사, 하루에 7권씩 읽어치운 책들을 기록한 서평집 <대단한 책>의 저자,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올가의 반어법>을 쓴 소설가.

이 책은 음식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지닌 저자가, 음식에 대한 유쾌한 수다를 넘어 동유럽권 문화에 대한 깊은 학문적 이해와 실생활의 경험을 녹여낸 에세이다. 그런데 에세이라고만 말하기도 그렇다. 본인의 경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감자의 전래나 보드카의 유래, 터키식 사탕(혹은 과자?) 할바 등을 설명할 때 그녀가 보여주는 집요한 고증과 분석은 이 책을 문화인류학과 역사서와 에세이와 이국문화 체험기를 아우르는 독특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책을 읽으며 남은 페이지가 얼마 안 됨을 깨닫고 아쉬워지는 그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이 책을 덮고 난 후 한 생각이었다.  

 

2.     내 마음에 찾아온 글

 

러시아에서는 그 어떤 자리에서든 보드카 한 병만 내오면 분위기가 확 바뀌며 별천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는 술병에서 요상한 후광이 뻗친다. 이 후광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러시아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 <러시아는 오늘도 먹구름?> 해설 중에서, 하카마다 시게키 (p44)

그래, 이 정도 너스레는 떨어줘야지흠흠.

 

<빵과 소금> – 러시아 식생활의 사회경제사, R.E.F. smith, D. Christian(p44)

 

현재 제일 신빙성 있는 것은 스페인 신부이자 식물학자인 제로님 코르당이 가지고 왔다는 설이다. 코르당은감자는 트뤼프의 일종으로, 밤보다 맛이 좋다. 이는 모든 인간의 간절한 바람에 현명한 자연이 베픈 훌륭한 음식이다라며 예찬했다고 전해진다. 어느 쪽이라 해도 스페인항에 감자 종자가 도착한 것이 1580년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한 모양이다. 이설도 언제 바뀔 지 모르지만.(p67)

 

가지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불확실해도 감자에 대해 처음 기록한 유럽인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사람 페드로 시에자 데 레온이다. 그는 자신이 머물던 페루에 대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세밀하게 연구하여 <페루연대기>라는 저서를 지었다.(p68)

  

<세계 음식 대백과>, <신 라루스 요리대사전>, <쓰지 시즈오 저작집> - 감자 보급을 위한 오귀스트 파르만티에의 기발한 계몽활동과 캠페인이 나와있다(p69)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위대한 문화, 웅대한 국민, 명예로운 역사. 그러나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닿아 있다. 아니, ()에 닿아 있다. 이렇게 되면 끈이 아니라 밧줄이요, 억센 동아줄이다. – <망명 러시아 요리>, 표트르 바일, 알렉산드르 게니스 (p111)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문제가 되어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동화 중에 <꼬마깜둥이 삼보>가 있다. 나와 같은 새대라면 다들 한 번쯤은 읽었을 인기 있던 동화다. 정글에 사는 흑인 소년이 사나온 호랑이에게 입고 있던 옷가지를 하나둘씩 빼앗기다가, 호랑이들끼리 싸우는 바람에 결국 모두 되찾아 온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가장 볼만한 장면은 나무 위로 도망간 삼보를 쫓아 호랑이들이 야자수 아랴에서 돌다가, 서로 꼬리를 물고 원이 되어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바람에 녹아서 버터가 되는 장면이 아닐까. 이런 황당무계함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삼보네 엄마는 호랑이들이 녹아서 만들어진 버터를 듬뿍 넣어 핫케이크를 구워준다. (p137)

 

놀랍게도 무는 인류가 먹어온 농작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류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예들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또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폴론 신전에 제물을 올릴 때 사탕무는 은쟁반에, 무는 구리쟁반에 올렸다고 한다.

로마인이 무를 품종개량 하는 데 성공하여 그 뒤 유럽 각국 사람들의 상비 식품이 되었다. 중세기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농민들은 수확한 무의 10분의 1을 교회 세금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p151)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그 사람을 고국과 이어주는 기본적인 음식이 있다. 그것은 신앙심이나 애국심의 향방을 좌우할 막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일본인의 경우는 밥이 아닐까.

그렇다. 히노마루(일장기)보다 히노마루 벤또(일장기 모양의 도시락. 밥 한 가운데 빨간 우메보시가 박혀 있는 데서 유래했다)라는 말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가 사라질 듯한 요즘이지만, 자신을 조국에 묶어두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은 어려서부터 즐겨먹는 음식임이 틀림없다. (p217)

 

바나나 값은 한 나라 경제가 글로벌 경제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지 같은 것이다. (p241)

완전 agree! 바나나 한번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 적어도 내가 중딩이었을 무렵까지는 계속 되었던 듯.       

 

3.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역시 책 리뷰는 처음 읽고 난 뒤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써야 한다. 처음 그 좋았던 느낌이 한참 지난 후에 리뷰를 써야겠다는 의무감에서 두 번째 읽고 다시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맘에 들어오는 글이 너무 없어서였다. 책에 유통기간이 있는 것도 아닐진 저, 그간 여름땡볕에 고등어 맛 가듯 확 상해버린 것도 아닐 텐데 이건 맛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실수다! 또 하나, 그렇게 좋았던 요네하라 마리의 글이 얄팍한 글재주에서 온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를 엮는 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집요한 연구로 끌어온 고증들이 글을 워낙 탄탄히 받치고 있어서, 그토록 재미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후일 인용을 위해, 혹은 연습을 위해 발췌하게 되는 멋진 글귀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줄 친 문장들은 감자의 역사, 무의 기원 같은 소소한 fact에 대한 것들이다.

 

목차

 

서곡(Overture)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1악장(Russian Rhapsody)

여행자의 아침식사

보드카소송

, 캐비어!

미각에 대한 편견

감자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진짜 할바를 찾아서

하루에 여섯 끼

 

휴식(Intermission)

베어먹기 시리즈이해하기

 

2악장(Andante Mangiabile)

드라큐라의 식생활

하이디와 염소젖

예수의 피

금단의 사과

인도 핫케이크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

동그란 빵의 모험

커다란 순무

빵을 밟은 소녀

양배추밭에서 태어난 아기

모모타로의 기장경단

너구리죽

주먹밥 타령

 

간주곡(Interlude)

고베 식도락 여행

 

3악장(Largo)

어떤 이분법

미지의 음식과 성향

시베리아 초밥

구로카와 도시락

냉동생선의 대팻밥

부엌의 법칙

맛없는 음식을 인내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고국 음식의 위력

먹보 댄서

며느릿감의 식성

태생이냐 환경이냐

먹성도 한 재주

씹는 것은 껌뿐

삼촌의 유언

 

에필로그먹는 이야기를 묶어내면서

해설뜻밖의 음식사

옮긴 이의 말

찾아보기

 

아마도 내가 쓰려는 책과 목차의 구성이 가장 비슷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살펴 보았는데, 일단은 연대기적인 순서를 따른 구성으로 보인다. 굳이 구분하자면 가장 어린 시절에서 러시아 학교를 다니던 시기, 러시아에 대한 에피소드를 주로 채운 1악장, 굳이 연대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 민담 등에서 끌어온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채운 2악장, 성인 되어 동시통역사 시절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쓴 3악장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에세이 형식이니만큼 자로 맞춘 듯 체계적인 구성을 시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유용한 정보가 들어 있다 한들, 실용서와 같이 목적이 분명한 글이 아니니 에세이야말로 이야기의 힘, 구라의 힘 그 자체로 끌어나가는 책이 아닐까.  

 

첫 이야기의 중요성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책은 사진을 쓰지 않았고 연필로 그린 듯한 일러스트레이션도 전 책에 걸쳐 나오는 분량이 5페이지가 안 되는 것 같다. , 뭐 그런데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그림이 없는 것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을 맘대로 할 수 있어 더 좋은 듯. 글이 형편없다면 이럴 수 없겠지? 아이고, 추억과 역사와 문화적인 식견과 전문적인 지식이 다 어우러지는 글. 이런 글만 눈에 들어오는데 어쩌라고. '눈은 높은 대 손은 무딘 자의 슬픔이여…' 김탁환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번 통감한다. 에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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