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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5일 05시 23분 등록

<장자>

2014.08.25 이동희

 

1. 저자에 대하여 :  장자 (BC369~BC286)

 

장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 전한 시대의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에 275자로 기록한 간략한 이야기다. 그 기록을 보면 장자는 몽()이라는 곳의 사람으로, 이름이 장주이다. 몽은 현재 하남성 상구현 동북 어디쯤일 것이라 하는데, 장자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송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 속하였다. 젊어서 칠원이라는 옻나무 밭에서 일했다는데, 그 일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장자는 양의 혜왕이나 제의 선왕과 같은 때의 사람이라고 하므로, 서력 기원전 390년에서 359년 사이에 나서 300년에서 270년 사이에 죽었을 것이라 추측하는데 학자들은 보통 그 생존 연대를 대략 기원전 369 ~ 286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맹자 (371 ~ 289)와 거의 같은 때 사람인 셈이다. 그러나 맹자의 책에 장자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장자의 책에도 맹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둘은 서로 알지 못한 것 같다.

아무튼 그 때는 전국시대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극히 어지럽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사상가가 나와 자기들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소위 '제자백가'의 시대였다. 장자도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 사상가 중의 하나이다.

장자의 도가 사상이 중국 철학사에서 문학,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당대에 와서 그것은 선 불교를 꽃피우는 직접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선승들, 특히 9세기 임제야말로 장자의 진정한 계승자라 여겨질 정도이다.

<장자, 오강남 참조>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편 자유롭게 노닐다

 

P26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하늘 못'이라 하였습니다.

 

P27

여기서 붕새는 이런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한 사람을, 그리고 그 거침없는 비상은 이런 '변화' '변혁'을 이룬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을 상징한다. <장자> 첫머리는 이처럼 인간이 생래적으로 지닌 실존적 한계를 초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P27

첫째, 이런 엄청난 변화가 자연과 동떨어진 어떤 초자연적 힘이나 장기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거나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타고날듯이 모두 자연 안에서, 그것에 순응하고 힘입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초자연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래적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발현해서 생긴 일임을 말한 셈이다.

 

P27

둘째, 여기 나오는 알, 물고기, 붕새가 겉으로 엄청나게 달라 보이는 것들이지만 본질을 보면 따로 독립한 사물이 아니라 모두 동일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물고기나 붕새도 본래는 알이었다. 그렇게 큰 것들도 조그만 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씨알을 품고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이런 무한한 가능성을 자각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P30

장자가 '바람'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또 종교사에서 거의 모든 종교는 우주의 바람, 이 바람이 사람에게 작용해서, 그것이 사람을 신바람이 넘치는 사람, 생기에 찬 사람, 진정으로 살아 잇는 자유인이 되게 한다는 기본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우리에게 외친다.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아라!"이것이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의 현존을 뛰어넘는 진정한 초월이라는 것이다.

 

P34

극도로 '엄청난 진리'는 본래 '역설적'이어서 형식 논리에 사로잡혀 명석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마침내 우리도 붕새처럼 변해 자유를 누려야 하겠지만, 당장은 매미나 새끼 비둘기처럼 어리석은 짓이나 말아야겠다. 그러고 나서 차분하게 이런 편견과 선입견을 나날이 없애 가는 도의 길을 걸으며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금의 부자유한 삶의 모습을 직시하고, 붕새처럼 이를 초월해서 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이 참으로 신나는 삶이 된다는 것을 꿰뚫어 봐야 하겠다.

 

P39

이들은 이렇게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일을 모르고 인간의 한계 밖을 넘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므로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메추라기처럼 시야가 좁기 때문에 자기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들과 실현한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도대체 어디로 저렇게 날아간단 말인가하고.

 

P40

사람이 열자처럼 살기도 어렵지만 『장자』의 궁극적 이상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돼 무한한 경지에 노니는절대 자유의 단계이다. 아무것에도기대지 않는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구가하는 무애의 삶이다.

 

P43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서 무슨 소원이든 말하라고 했을 때 지금 자기에게 비치는 햇빛을 가리지 말 것밖에는 달리 부탁할 것이 없다고 한 고대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이다.

 

P46

신인은 그의 덕으로 온갖 것과 어울려 하나가 된 것이오. 세상이 모두 평화를 바라는데, 무엇 때문에 구태여 노심초사하며 애쓸 필요가 있겠소?

 

P48

여기서 신인이 세상사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기적으로 몸을 도사리는 것이 아니다. 신은은 '온갖 것과 하나가 된' 상태로 만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물처럼 흐르듯 살기 때문이다. 구태여 나서서 뭘 한다고 설칠 필요가 없다. 완전한 무위의 상태에서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 도덕경의 말처럼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한다. 이런 사람이 한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이 그 행동을 알지 못한다. "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사람,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되면 ...... 이 모두가 저절로 된 것이라"고 할 뿐이다.

 

P50

아무튼 요 임금이 신인들을 만나고 나서 자기 나라를 잊어버리는 변화와 추월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결국 요 임금이 이런 경지에 이른 것은 이 신인들의함이 없는 함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 신인들이야말로쓸모 없음의 더욱 큰 쓸모라는 진리를 실증해 준다.

 

P52

손 트는 것을 막는 약은 한 가지인데, 한 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고, 다른 쪽은 무명 빠는 일 밖에 못했으니, 똑 같은 것을 가지고 쓰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게 아닌가? 자네는 어찌하여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즐길 생각을 못 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만 걱정했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려.

 

P55

아무튼 혜자의 본질론적 견해에 입각한 유용성 시비에 대해 장자는 유용성을 여러 가지 시각과 차원에서 봐야지 어느 한 쪽의 어느 한 차원에서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물은 쓰기에 따라 쓸모 있기도 하고 쓸모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장자의 이런 생각을비본질론적 견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57.

쓰임이 있지만 더욱 값진 쓸모가 있는데도 값싸게 쓰이는 것이 딱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생명을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써버리고 말 것이냐 더 원대한 일을 이루는 데 사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암시했다고 볼 수 없을까?

 

 

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P59

이 편의 주제는 우리가 우리의 실존적 한계성을 궁극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립의 세계에서 대립을 초월한하나의 세계, 실재의 세계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방법은? 사물의 한쪽만 보는 우리의 상식적, 분석적,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사물의 진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예지와 직관과 통찰을 체득해야 한다.

 

P60

제목을 어떻게 풀든 논의의 초점은에 있다. ‘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로 한다는 것이다. 하나로 한다고 하여 각각 다른 사물을 일률적으로 획일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때의하나는 다양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조화와 일치를 의미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한쪽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양쪽을 모두 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P61

여기 이오상아는 『장자』의 핵심 개념에 속한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 내가 진정한 내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어떤, ‘는 어떤인지에 대해 글자의 어원을 다지는 등, 주석가들 사이에 설이 분분하지만, 쉽게 말하면, 우리의 비본래적인 자아, 작은 자아에서 풀려난 본래의 자아, 큰 자아가 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P63

옛 자아가 죽고 진정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옛 나를 장사 지내고 새로운 내가 무덤에서 나오는, 깊은 의미의죽음과 부활이다. 불란서 철학자 데카르트가 라틴말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다지만, 여기서는나는 잊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일상의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버릴 때 진정한 나, 온전하게 된 내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P64

아무튼 자기를 잃어버리고 비운 상태, 이른바 상아, 무아, 망아, 망기라는 자기 초월의 경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특수 인식 능력의 활성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물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곧 일체의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차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을 얻는 것이다.

 

P65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하지. 그것이 불지 않으면 별일 없이 고요하지만, 한번 불면 수많은 구멍에서 온갖 소리가 나지. 너도 그 윙윙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산의 숲이 심하게 움직이면, 큰 아름드리 나무의 구멍들, 더러는 코처럼, 더러는 입처럼, 더러는 귀처럼, 더러는 목이 긴 병처럼, 더러는 술잔처럼, 더러는 절구처럼, 더러는 깊은 웅덩이처럼, 더러는 좁은 웅덩이처럼 제각기 생긴 대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 화살이 씽씽 나는 소리, 나직이 꾸짖는 소리, 숨을 가늘게 들이키는 소리, 크게 부르짖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깊은 데서 나오는 듯한 소리,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내지. 앞에서 가볍게 우우 - 하는 소리를 내면, 뒤따라서 무겁게 우우 - 하는 소리를 내고.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하지. 그러다가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은 다시 고요해진다. 너도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구부러지거나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하는 것을 보았겠지."

 

P67

이처럼 우주의 온갖 사물은 각각의 모양과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P67

인간은 이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내보내느냐에 따라 나름대로 다양한 소리, 생각, 의견, 심리 작용, 감정, 정서 상태와 다양한 정도의 생동성과 생명력 등을 얻는다.

 

P68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은 다시 조용해진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온 우주에 편만한 소리는 모두 제각각의 소리이면서 그 바탕인 하늘의 소리, 도의 소리라는 뜻을 품고 있다.

 

P68

우리는 이런 사람의 소리와 땅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는 우리 몸의 귀로 들을 수 없다. 그것은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새롭게 열리는 영적인 귀로만 들을 수 있으므로 하늘의 퉁소소리를 들어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우리 자신을 잃어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P70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여러가지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기에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것. 이런 것들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이런 것들이 나타날 턱이 없지. 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운 것이나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구나.

 

P72

장자는 이런 일상적인 마음, 우리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주관한다고 착각하고 그 이상의 존재를 모르는 마음이 바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고, 이런 마음의 불완전하므로 깨달아 이를 잃고 초극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P74

일단 온전한 몸은 받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일부러 망치지 말고, 저절로 쇠잔해질 때가지 기다린다. 사물을 대하여 서로 깎고 가는 동안에 우리의 삶은 달리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지나가고 마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니냐? 죽을 때까지 일하고 수고해도 아무것도 잘된 것 보지 못하고, 그저 일에 쫓기고 지쳐 돌아가 쉴 데도 없으니, 이 어찌 애처롭지 않느냐? 그래도 죽지 않았다고 자위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살아 있다는 것] 뭐 그리 대수냐? 어차피 몸도 쉬하고 마음도 그렇게 되고 마니 정말 애처롭기 그지없는 일 아니겠느냐?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본래 이처럼 엉망진창인 것인가? 오직 나만 이런 것인가? 사람들 중에 이렇게 엉망진창이 아닌 이들도 있다는 것일까?

 

P77

시비를 따지는 것은 이렇게 틀에 박혀 유연성이 없이 분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굳은 마음'이 생기기도 전에 시비를 따진다는 것은 오늘 떠나서 어제 도착했다는 말처럼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런 분별심, 성심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비를 따지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정신적 병폐 때문에 나의참주인’, 나의참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P78

유가와 묵가가 그르다 하는 것을 옳다 하고, 이들이 옳다 하는 것을 그르다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들의 옳고 그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밝음이 있어야 한다.

 

P83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이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밝음이다. 중세 철학가 쿠자누스가 말한 coincidentia oppositorum (반대의 일치, 양극의 조화) 이다.

 

P85

길은 다녀서 생기고 사물도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된다. 어찌해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찌해서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물에는 본래 그럴 까닭이 있고, 그럴 가능성이 있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럴 수 없는 것도 하나도 없다.

 

P88

장자는 철두철미 '비본질론적' 견해를 내세웠다. 만물에는 고정한 실체나 본질이라는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각각의 사물은 독립한 개체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89

보편적인 것이란 쓸모 있음을 말한다. 쓸모 있음이란 통함이고 통함이란 즐김이다. 즐김은 도에 가까움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도라 한다.

 

P92

이렇게 한쪽만을 절대시하는 독선에 빠지지 않고 양쪽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을 여기서는 '하늘의 고름'에 머무는 것, '두 길을 걸음'이라고 한다. 하늘의 고름은 의인의 밭에도 악인의 밭에도 고르게 비를 내리는 하늘의 공정함이고, 두 길을 걸음이란 시비등 이분의 세계에서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는 경지이다.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P96

'옛사람'들은 그런 경지에 살았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 범속한 인간들은 앞에 말한 원숭이들처럼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아집에 사로 잡혀, 밤낮 옳고 그름만 따져 도가 허물어지고 애착이 생겨나 아옹다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보고 그 근원적인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 진정으로 자유스럽고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P97

성인은가르지 않는다고 하고, 멈출 줄 안다고도 하였다. 멈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분을 넘어선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희고 검음’, ‘영광과 오욕등 일견 대립하는 것들을 함께 껴안을 때갓난아기의 상태, ‘무극의 상태, ‘통나무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P98

'시작'이 있으면 아직 '시작하기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아직 시작하기 이전의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있음'이 있으면 '없음'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 내가 뭔가 말했지만 이렇게 말한 것이 정말로 뭔가 말한 것인지 말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P101

그러니 부산하게 좇아 다니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러하다고 받아들이자.

 

P104

이렇게 본래 하나이던 세계가 우리들의 의식 작용으로 분화해 무수한 분화, 분별, 다양의 세계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하고 따지고 변론하고 시비를 가리면서부산하게 좇아다니지 말고”, ‘순수이성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는 직관으로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라 타이른다.

 

P105

왜 그럴까? 성인들은 도를 마음속에 간직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서로 보이려고 변론을 한다. 그러므로 변론은 도를 보지 못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P107

『도덕경』 제1장 첫 줄에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것, 말이 없어져 버린 상태이다. 전통적인 용어를 쓰면 언어도단이요 언설을 떠난 상태인 것이다.

 

P108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변론" "도를 보지 못해 생겨나는 것"이다. 도를 말하려면 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도에 대해서 뭔가 말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자체가 도를 전혀 모른다는 증거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도덕경』은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P108

알지 못함을 알고 멈출 줄 아는 사람, ‘말로 하지 않는 변론도라고 할 수 없는 도를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은근한 빛을 감추고 있는 하늘의 보고이다.

 

P120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은 성인이란 언뜻 보기에 대립이나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들의 '그러한 그대로'의 실상을 꿰뚫어 보고 모두 하나로 포용한다는 것이다.

 

P122

장자는 삶과 죽음은 사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변화 과정일 뿐이므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슬퍼할 것이 없듯이 ''에서 '죽음'으로 변화하는 것에 야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P123

사실 우리에게 더욱 의미있게 들리는 것은 이 이야기가 옛날의 ''에게 새로운 '', 변화되지 않은 ''에서 변화된 ''로 넘어가는 정신적 변화를 이야기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P125

예전의 자기가 죽고 새로운 자기로 되살아나는 '영적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가 감행할 정신적 모험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준다. 여희나 프시케처럼 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에 안주하지 말고,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로 탈바꿈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P127

장자는 삶이 꿈이지만 그 속에 그 나름의 실재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P127

문제는 우리가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범속한 인간들에게는 이런 큰 깨어남, 큰 깨달음, 큰 깨침이 없기 때문에 이 인생의 꿈속에서 그것이 꿈인 줄도 모르고 서로 아웅다옹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P131

모든 의견은 결국 각자의 견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른바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러 번 지적한 대로시각주의입장 없는 입장을 말한다.

 

P133.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망량은 자신이 본 그림자에 완전히 의존하면서도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본 그림자만 가지고 독립성이 없다느니 지조가 없다느니 나무랐다는 점이다. 인간은 너나할것없이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딴 사물에 의존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망량처럼 그 사실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영처럼 그것을 안다.

 

P134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사물의 변화라 한다

 

P136

그런 의미에서 이 종이에는 이런 것들, 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셈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종이는 종이 아닌 요소만으로 된 셈이다. 그러니까종이는 종이다.”하는 대신에종이는 구름이다”, “종이는 나무다”, “종이는 다이아몬드다”, “종이는 종이 아닌 것이다.”하는 편이 더 적절한 말이다. 종이와 구름 구름과 종이, 장자와 나비, 나비와 장자, 서로 넘나들어, 그야말로 자유자재이다. 이것이 이른바 물화이다. 이런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일은 반드시 꿈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된다. 사물을 깊이 통찰하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사물을 고정한 무엇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서로 어울려서 함께함을 볼 수 있다. 꿈은 우리에게 이런 세계가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상징적으로 암시해 주는 매체 노릇을 해준 셈이다.

 

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

 

P143

도와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편견이나 단견 같은 이분법적이고 일방적인 의식으로 얻은 지식을 하나하나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런 것을 더 얻지 못해 안달하며 쏘다니면 이야말로 위험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렇게앎을 버림’, 혹은배운 것을 버림에 이를 때, 비로소하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여기서도 결국 지식이 아닌 직관으로 실재의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음을 말한 셈이다.

 

P145

우리의 잔꾀에서 나오는 고의나 계략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행동, 우리 깊은 속에서 솟아나는 어떤 활기나 기백에 따라 올바르게 나타나는 행동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잇지 않을까? 한마디로,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거기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149

포정이 소 각뜨는 솜씨가 얼마나 능수능란한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절묘했다는 것이다. 소위 명인의 경지이다. , 어깨, , 무릎 등 몸 전체가 조화롭게, 자연의 리듬과 율동에 맞추어 한바탕 춤추듯이 움직이면 어느새 소의 각을 완전히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리조리 재고 셈하고 꾀한 인위적 기교나 행동이 전혀 아니다. 자연의 리듬과 율동에 맞춰 물처럼 흐르는 행동.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움직임. 그래서 칼로 베지만 칼로 베는 것 같지 않게 베는, 말하자면 '벰이 없는 벰'이라는 이야기이다.

 

P158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

 

P159.

문제는 비록 연못가에서 열 걸음 걷다가 모이 하나 주워 먹고, 백 걸음 걷다가 물 한 모금 얻어먹을 정도로 힘들고, 또 주위에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마음대로 유유자적하는 것이, 새장 속에서 잘 얻어먹고 사는 것보다 더나는 삶이라는 것, 이런 삶을 즐길 줄 아는 것이 양생의 필수 요건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P160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어쩌다가 세상을 떠난 것도 순리이기 때문일세.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를 따른다면,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이 끼여들 틈이 없지. 옛날 사람들은 이를 일러하늘님의 매닮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했네.”

 

P164

장자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육체나 영혼을 보전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삶에서 우리의 내적 생명력이 활성화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이 그 본연의 풍성함을 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사후 문제에 신경 쓰는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 '양생'의 중요한 길임을 시사하고 있다.

 

P165

이렇게 상식 세계를 벗어나 사물을 한 차원 높은 데서 전체적으로 보라고 강조한 점에서 제2편 「제물론」의 주제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 요즘 많이 논의하는해체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이데거가 『장자』를 좋아한 것도 이런 뜻에서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일체의 고정 관념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라는 것…. 사실 누구인들 좋아하지 않으랴.

 

4편 사람 사는 세상

 

P179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재'니라."

 

P181.

심재의 번역으로는미음을 굶긴다고 하는 것이 원의에 더 가깝고 더 실감나는 말이다. 영어로는 ‘the fasting of the mind’이다. ‘마음의 굶음’, ‘마음이 가난함이다. 여기 나온 '심재'는 제2편에 나온 '나를 잃어버림' 그리고 제 6편에 나오는 '앉아서 잊어버림'과 함께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어구는 다르지만 다 같이 우리의 욕심, 분별심, 이분법적 의식, 일상적 의식, 자기 중심 의식인 보통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이를 초월하는 초이분법적 의식, 빈 마음, 새로운 마음을 갖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P181

기는 텅 비어 모든 것을 수용하니 이렇게 텅 빈 기로 사물을 대하면 그 빈 곳에 도가 들어온다. 이렇게 도가 들어오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이 마음을 굶기는 것, ‘심재라는 것이다.

 

P188

이런 전통들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붙들고 있는 우리의 자의식을 말끔히 비우고 진정으로 '남을 위한 존재'로 탈바꿈할 때 우리의 사회 참여가 이웃과 사회와 세계를 위해 진정으로 향내나는 산 제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P192 

"자기 마음을 섬길 때 슬픔과 기쁨이 눈앞에 엇갈리어 나타나게 하지 말고, 불가능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운명으로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덕의 극치입니다."

 

P194

너무 지나치게 다그치면, 상대방은 반드시 좋지 못한 마음으로 이에 반응하게 됩니다.

 

P195 .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P196

안명론은 니체가 말한운명을 살아함과 비슷하다고 할까. “바꿀 수 있는 것에는 바꿀 능력을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예지를 주시옵소서.” 라고 한 어느 성자의 기도가 생각난다.

 

P200

우선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 곧 중심을 지키라는 것이다.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신의 기본적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P200

물은 동그란 그릇에 들어가면 동그랗게 되고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지고, 뜨거우면 김이 되어 날아가고, 차가워지면 얼음으로 굳고. 이렇게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물이물임물됨을 잃는 일이 없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적응하는 것 그 자체가 물의 정체성이다.

 

P204

모든 일에 적기가 있음을 알고 잘 맞추라는 것이다. 영어로는 타이밍, 희랍어로 카이로스, '때를 따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P208

마르틴 부버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물을나와 너로 보는 것도 시원치 않은데, 당신은 사물을나와 그것;으로 보고 그것을 당신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본단 말인가 하는 식이다. 더구나 장석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본다면 장석이야말로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쓸모 없는 인간이 아닌가. 그러니 사물을 대할 때 함부로 쓸데 있다 없다를 속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P209

장석이 사당 나무를 대변한다. ‘쓸모 없음자체가 궁극 목표가 아니라 일단 쓸모 없음으로 자기를 보전하여 더 큰 쓸모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무를 보고 왜 사당 나무가 되었느냐고 비난하거나 또 그것이 사당 나무라고 떠받드는 것은 사당 나무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인간의 평가 기준으로만 따지는 빗나간 판단이라는 것이다.  사당 나무의 더욱 큰 쓸모란 무엇일까?

 

P216 

세상 사람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합니다.

바다처럼 잠잠하고, 쉬지 않는 바람 같습니다.”

 

P220

장자든 누구든 정신적인 영웅은 조셉 캠벨의 말처럼 일단 '인습'을 등진 사람이다. 인습대로 사는 사람에게 정신적 영웅은 어쩔 수 없이 바보처럼, 미친 사람처럼, 우스운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P221

장자에서 말하는 쓸모 없음의 쓸모란 이런 의미에서 유용성의 극대화를 말한 셈이다. 궁극적으로 지인의 경지에 이르기 이전의 모든 유용성은 진정한 유용성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크게 유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으로 내면적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 떠받드는 자질구레한 유용성이나 실용성에 정신을 팔지 말고 무엇보다도 먼저마음을 굶기는심재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

 

P227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흐르는 물에 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서만 비춰 볼 수 있다. 고요함만이 고요함을 찾는 뭇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

 

P229

남의 눈치나 칭찬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오로지자기 실현만을 위해’, 차분하고 조용히 정진했을 분인데도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이런 거울같이 맑은 마음에 자기들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P233 

내가 선생님을 19년 동안이나 따르며 배웠지만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내가 '외발'임을

아신다고 내비치신 적이 없으시다네.

 

P240

왕필은공자는 무()와 하나가 되었기에 그것이 가르침이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 어쩔 수 없이 유()만을 말했지만, 노자와 장자는 유의경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에게 모자라는 바를 계속 이야기 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P244

한마디로화이불창이다. 이것은라는 자의식에서 완전히 풀려난 상태를 의미한다. 물 같은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글어지고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지고, 추우면 얼고, 더우면 증발하고 이것은 완전히빈 배가 된 상태 ,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가는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P244

도의 사람은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어려워하고, 녹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계곡처럼 트이고, 흙탕물처럼 탁합니다." 했다. 대를 쪼개듯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저돌적이고, 공격적이고, 무슨 일에나 능수 능란하고, 확신에 찬 것처럼 행동하고, 매끈하게 다듬어 닳아빠진 행동거지를 보이고, 틀에 박힌 듯 빈틈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도의 사람은 사실 요즘 많이 논의하는 '퍼지 이론'에서 처럼, 아무것이나 함부로 분명하게 맺고 끊는 일이 없는 사람, 그러기에 정말로 여유 있고 융통성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P247

"죽음과 삶, 생존과 파멸, 성공과 실패, 가난과 부유함, 현명함과 어리석음, 비방과 칭찬,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이것이 모두 사물의 변화요 명의 운행으로서 우리 앞에 밤낮으로 나타나지만, 우리의 앎으로는 그 시원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P248

그러면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평평한 것은 물이 완전히 고요해진 상태입니다. 이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은 안에 고요를 간직하고 밖으로는 출렁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덕을 이룬 사람은 조화를 이룬 사람으로,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지 못합니다.”

 

P254

외모에 마음 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외모 때문에 성형외과의 문전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마음을 쓰고, 신경을 써야 할 내면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이니 어찌 된 일이냐느 것이다. 이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한심한진짜 잊어버림이라는 이야기 이다.

 

P255

성인은 자신을 하늘에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 하늘이 알아서 먹여주고 길러 주는데, 일부러 설치면서 허우적거릴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수는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면서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다.

 

P256

성인은 사람의 모양을 지녔지만 사람의 정이 없습니다. "내가 정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속상하는 일이 없다는 것. 언제나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삶에다 억지로 군더더기를 덧붙이려 하지 않는 것을 이름일세."

 

P259.

외부 상황에 속을 태우지 않고 언제나 차분한 마음으로 정신적인 자유를 구가하는 상태이다. 어느 선사가 노래한 것처럼, 호수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가 제 그림자를 호수 위에 드리우되 일부러 하지 않고, 호수도 기러기의 그림자를 비추되 일부러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둘 다무심히드리우고 무심히 비출 뿐이다.

 

P259

이런 경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일상적인 분별심,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의식'에 매달려 안달복달, 시비곡직, 좋고나쁨을 캐고 앉아 있으면 결국 혜자처럼 나무에 기대어 신음하고 책상에 엎드려 졸기나 하는 창백한 지성, 활기 잃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6편 큰 스승

 

P267

참된 자기를 잃고 참됨이 없는 사람은 딴 사람을 부리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고불해, 무광, 백이, 숙제, 기자, 서여, 기타, 신도적처럼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을 뿐, 스스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P269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 우뚝하나 무너지는 일이 없고, 뭔가 모자라는 듯하나 받는 일이 없고, 한가로이 홀로 서 있으나 고집스럽지 않고, 넓게 비어 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P271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라는 것은 자연과 인위를 대치시켜서 자연만 다르고 인위를 배격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마저도 승화한 경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서로 감싸안은 절대적 초분별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런 '양극의 조화'를 터득한 경지가 진인이 다다른 경지임을 말한 셈이다.

 

P274

샘이 말라 물고기가 모두 땅 위에 드러났습니다. 서로 물기를 뿜어 주고, 서로 거품을 내어 적셔 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요 임금을 칭송하고 걸 왕을 비난하지만, 둘을 다 잊고 도에서 변화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P277.

도와 하나 되면 살아도 거기, 죽어도 거기. 밤중에 죽음이 찾아와 우리의 생명을 도둑질해 간다 해도 결국 숨을 데가 없으니 거기가 거기. 죽음이니 삶이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도 없고, 잃으니 찾느니 하는 대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하게 된다.

 

P280

도란?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는 없습니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가 없습니다.

 

P289

모두 자의식으로 가득한 현재의 ''가 죽어 없어질 때 '우주적 의식'을 지닌 진정한 '', '우주적 나'가 새로 탄생한다는 '죽음과 부활'의 종교적 진리를 말하는 것.

 

P290

글을 읽되 거기에 매이지 말고 읽어라. 그것을 오래오래 구송하고,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핀 다음, 그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감격을 노래하라. 그리하면 그윽한 경지, 조용하고 텅 빈 경지를 체험한 다음 시원의 도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리라는 기막힌 이야기이다. ‘도가구계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P293.

각자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사귀는 벗이 훌륭한 벗이요, 그 중에서도필요할 때 도와 주는 벗이 참된 벗이어서 영어 속담에도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P294

내 왼팔이 점점 변하여 닭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새벽을 깨우겠네. 내 오른팔이 차츰 변해 활이 되면, 나는 그것으로 새를 잡아 구워 먹겠네. 이렇게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오램을 이기지 못하는 법. 내 어찌 이를 싫어하겠는가?

 

P295

무릇 우리가 삶을 얻은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우리가 삶을 잃는 것도 순리일세.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르면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이 끼여들 틈이 없지. 이것이 옛날부터 말하는매달림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하는 말 걸세. 그런데도 이렇게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오램을 이기지 못하는 법. 내 어찌 이를 싫어하겠는가?”

 

P297

이제 하늘과 땅이 큰 용광로이고 조화가 큰 대장장이라면, 무엇이 되든 좋은 것 아니겠는가? 조용히 잠들었다가 홀연히 깨어나는 것."

 

P299.

장자에서는 인간이 행한 행위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인과응보라든가 업보를 같은 사상이 없다. 모두 자연이 그 순리에 따라 적절한 길로 만물을 변화시킬 따름이라는 것이다.

 

P300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사물을 이런 전체의 맥락 속에서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일 하나하나로 그때그때마다 희희낙락하거나 전전긍긍하거나 애절복통한다.

 

300. 우리가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에 안달하지 않으려면, 여기에 나오는 도나조물자’, 혹은조화자가 결국은 만사를 선한 길로 이끌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적믿음이 있을 때 삶이 그만큼 듬직해지지 않을까?

 

 

P305 

"이상스러운 사람이란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이상할 뿐, 하늘과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소인이 사람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가 하늘에는 소인이라' 한 것이다."

 

P308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낫고, 웃음을 즐기는 것보다는 사물과 어울리는 것이 더 나으니, 사물과 편안히 어울려 변화를 잊은 채 텅빈 하늘로 들어가도록 하라."

 

P310

눈먼 자는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수놓은 옷의 색깔과 상관이 없다. "스승은 만물을 이루어 놓지만 스스로 의롭다 하지 않고, 만세에 혜택을 베풀지만 특별히 편애하는 일이 없고, 옛날보다 오래되었으나 늙지 않고, 하늘을 덮고 땅을 받들고, 여러 가지 모양을 깎아 내지만 재주를 부리지 않네. 여기가 바로 자네가 노닐어야 할 곳일세."

 

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

 

P322

참된 지도자는 그런 인위를 넘어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얻은 그 감화력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알듯 모를 듯 이끌어 가는, 노자식 무위의 정치, 가만 놓아둠의 정치, 무심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 최소한으로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다스림이라는 원칙에서 궁극적으로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사람이다.

 

P325

두 쪽을 다 같이 볼 수 있는 사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제왕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P326

성인이 다스리는 것이 어디 밖을 다스리는 일인가?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나서 행동하고 일이 제대로 되는가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P327

지도자는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그 감화 아래서 모두가 저절로 되어 가도록 하고, 그렇게 잘 도어 가는 것만 확인하는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에서 말하는무위의 정치’, ‘놓아둠의 다스림이다.

 

P327

새도 화살을 피하려 하늘 높이 날 줄 알고, 들쥐도 잡힐까봐 사당 밑에다 살자리를 마련하는데, 사람들도 도의다, 법령이다, 규정이다 하고 못살게 굴면 어디로 피하게 마련이니 제발 사람을 그런 식으로 다스릴 생각은 아예 말라는 것이다.

 

P328.

지도자가 될 요건으로 1) 마음을 담담하게 하라, 2) 기를 막막하게 하라, 3) 일을 자연스럽게 하라, 4) ‘를 버리라 했다. 결국 자기처럼무명’, ‘무기’, ‘무공의 경지에 이르게 하라는 것이다. 

 

P331

참된 지도자는 이슬처럼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백성들 뒤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다스린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이름을 들먹이지 않고’, 만사 이렇게 잘 되는 것이 마치 자기들 스스로 잘해서 그런 줄 알고 기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P344

이름에 매이지 말고  꾀의 창고 되지 말고,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 앎의 주인 되지 마십시오.

 

P344

지인의 마음씀은 거울과 같아 일부러 보내지도 않고 일부러 맞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대로 응할 뿐 갈무리해 두려 하지도 않습니다.

 

P345

이름에 매이지 말라… ‘무위의 위를 염두에 두라… ‘앎의 주인이 되지 말라. 잔꾀나 지모의 주인이 돼야 일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부정적인 방법을 버리고 무궁한 도, 사물이 근본을 체득하고, 없음의 경지, 비움의 경지에서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행동을 하라. 이것이 바로 마음을 거울처럼 한다는 뜻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거울은 앞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로 비출 뿐, 밉다고 쫓아 보내고 예쁘다고 받아들이는 짓을 하지 않는다. 앞에 나타나 것이 슬프다고 함께 슬퍼하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을 비췄다고 제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출렁거리는 것을 보여 준다고 같이 출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잔잔히 떠오르는 대로 비추는 거울, 이것이 자유인의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P348

이 미분화의 세계가 분화하여 된 것, ‘이발의 세계가 우리가 일상적 경험하는 현존 세계이다. 『도덕경』28장에서는 이를 두고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됩니다.

 

P349

옛날의는 진정한로 다시 태어나는변혁의 긴 여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부록 : 외편, 잡편에서 중요한 구절들

 

P360

"그 개구리가 동해에서 온 자라에게 말했네. '나는 여기가 좋으이. 밖으로 나가면 난간 위에서 뛰놀고, 안으로 들어오면 벽돌 빠져나간 구멍 끝에서 쉬네. 물에 들어가면 겨드랑이까지 차게 하고, 턱을 받치지. 진흙을 찰 때는 발등까지 흙에 묻히고, 장구벌레, , 올챙이 모두 나만 못하이. 이 웅덩이 물을 독차지해서 마음대로 노는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네. 자네도 가끔 들어와 보면 어떻겠나?"

 

362 이렇게 자기 것만을 유일한 무엇이라 믿는 것까지는 자유이지만, 그런 잘못된 확신 때문에 드넓은 바다처럼 훌륭하고 신나는 세계에 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구나 자기의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딴 사람들을 보고 자꾸 들어와 보라고 강요하는열성은 딴 사람들을 더 없이 성가시게 한다.

 

P364

원컨대 나랏일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듣자 하니 초나라에는 죽은 지 삼천 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가 있는데, 왕께서 그것을 비단으로 싸서 상자에 넣고 사당 위에 잘 모셔 두었다 하더군요. 이 거북이 죽어서 뼈를 남겨 귀히 여겨지기를 바랐을까요, 살아서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었을까요?

 

P367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사에서도 상대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쓸데없이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자기를 해치거나 불리하게 하는 행동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속에 잠재한 열등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수가 많다.

 

P368

",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는 나더러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냐고 했지. 이 말은 자네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물은 것이

. 나는 호숫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네."

 

P370.

진리의 본질은 자유이다. 자유는 존재들이 스스로그러하게 놓아둠’..우리가 우리의 현존이 되게 그냥 그대로 놓아둔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P375 

"대개 술취한 사람은 빨리 달리는 수레에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술에서 온전함을 얻어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하늘에서 온전함을 받을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P376.

19달생’(통달한 삶)이란 이처럼 주객으로 나뉜 일상적 의식이 외부적인 조건을 잊어버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이분법을 초극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생기는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힘있는 삶을 의미한다.

 

P379 

싸움닭 이야기 - 1) 아직 안되었다. 지금은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는다. 2) 다른 닭의 소리나 모습만 보아도 덤벼든다. 3) 아직도 상대를 노랴보고 혈기 왕성하다. 이제 되었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깍아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 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상대하지 못하도 돌아서 달아나 버립니다.

 

P380

덕이 온전한 상태, 완전한 허심, 무심에서 생기는 내면의 힘이 겉으로 허세를 부리는 공격 자세를 압도한다는 얘기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원리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나무를 깍아 만든 닭을 정신 수양을 위한 좌우명처럼 몸 가까이 지니면서 내면적인 힘을 배양하는데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문단은 하이데거도 인용함.

 

P382

신기가 나오는 것은 일체의 외부적인 일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완전히 한 점에 집중한 상태에서 '초의식적'이고 자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하늘과 하늘이 합한다고 한 것은 내 밖에 있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하늘이 합한다는 것이고 주객이 합일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립한 개체인 내가 없어지고 하늘과 도와 하나가 되어 만들기 때문에그가 만든 것들이실은 그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귀신 같은 솜씨라고 찬탄 하는 것이다.

 

P383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입니다.

 

P384

인간의 사랑이란 이렇게 본래 붙었다가 잘려 나간 다른 쪽에 대한 동경이라고 한다. 아무튼 떨어져 나간 제 짝을 찾아 찰칵하고 들어맞으면천생연분이라 삐걱거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의식한다는 것은 삐걱거린다는 것인가? 물론 상대방을 잊을 정도로 서로 완전히 편하게 지내는 것과 등한히 여기거나 업신여기면서 잊어버리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크게 다를 것이다.

 

P387

궁극적으로는 쓸모가 있거나 없거나 어느 한쪽에도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쓸모 있고 없고를 떠나 허심, 무심의 경지, 집착이 없이 자유로운 경지, 자유자재한 경지가 궁극의 자리라는 것이다.

 

P391

아무튼 실컷 잘해 주고 욕먹는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서 거들먹거리며 허세를 부리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남을 생각하는 마음, 겸허한 태도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결국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훌륭하면서 그리고 훌륭한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요, 이렇게 훌륭할 때 어디 가서라도 환영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P393

예술이란 물리적 사실보다 내면적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림은 붓을 자연스럽고 순간적으로 움직여 그려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 이야기라고 했다. 참된 예술가는 내면적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이기에 궁극적으로 인습이나 통상적 형식에 전혀 구애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P394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뿐입니다. 얻고 잃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 그러기에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P395

집착을 버리는 일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 네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를 요즘 말로 하면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법구경』에는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움직이듯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P395

장자는 아무데도 얽매이지 않는 허허로운 마음을 중요하게 본 데 반해, 공자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심을 핵심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P396 

너는 네 모습을 바르게 하고, 눈길을 하나로 모으라. 하늘의 화기가

이를 것이다. 네 앎을 없애고 네 의식을 하나로 모으라. 신이 찾아와 머물게 되고,

덕이 너를 아름답게 하고, 도가 네 안에 살리라. 너는 새로 난 송아지처럼 사물을 보고

그 이유를 묻지 않게 될 것이다.

 

P399

도는 초월과 동시에 내재, 내재와 동시에 초월이라는 생각

 

P400

도를 하나의 실체로 생각한 나머지 세계나 자연이나 인간과 떨어져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무엇으로 보면 안된다는 말이다.

 

P408

체념이란 본래 '' 곧 진리를 깨달아서 생기는 안달하지 않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을 뜻한다.

 

P410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서울 것 없다고 했지만, 도와 달라고 할 때 나중에 보자는 사람, 정말 믿을 것 없다.

 

P411 

혜자 "자네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 "쓸모 없음을 알아야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지. 땅은 한없이 넓지만 사람에게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만큼뿐일세.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 놓고 그 둘레를 모두 황천에 이르기까지 다 파 없애면 그 쓸모 있다는 땅이 그래도 정말 쓸모 있는 것일 수 있겠는가?"

 

P415

장자의 죽음 - “ 땅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거늘 어찌 한 쪽 것을 빼앗아 딴 쪽에다 주어 한쪽 편만 들려 하는가?

 

P417

지금껏장자의 맛을 조금은 본 셈입니다. 엄격히 따지면 언젠가는장자도 모두 잊어야 합니다. 물고기 잡는 틀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 물고기를 잡았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 토끼를 잡았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뜻을 전하기 위한 것. 뜻을 전했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나도 자기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外物 26:13). 417

 

 

3. 내가 저자라면

 

장자 책을 참고하면 장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갖고 있다.

 

장자는 장자라는 사상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책을 의미 하기도 한다. 장자가 죽은지 200년 뒤에 사마천이 쓴 사기를 보면, 그 당시 10여 만 자로 된 장자라는 책임 있었다고 하고, 천한 말 유향의 기록을 인용한 한서예문지에는 모두 52편으로 구성한 장자라는 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원후 4세기 노장 사상이 전성기를 맞은 당시 북송의 곽상이라는 사람이 그 때까지 돌아다니던 여러 가지 사본들을 정리하여 65,00여 자, 33편으로 줄여서 편집하고, 거기에다 자기 나름으로 주를 달았다. 이렇게 곽상이 편집한 장자가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장자라는 책이다.

곽상은 장자를 33편으로 하고 이를 내편 7, 외편 15, 잡편 11편으로 나누었다. 왜 이렇게 나누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중 내편 7편은 과상이 편집하기 전부터 묶여 있었는데, 그것은 이 내편 7편을 대체적으로 장자 자신의 저술로 여겼기 대문이었을 것이라는 데 학자가 동의한다.

물론 냉철하게 관찰하면, 내편 7편도 모두 장자 자신의 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일관된 내용이나 심오한 사상, 정연한 문장을 고려하여, 적어도 내편 7편의 기본적인 것은 장자 자신의 생각으로 보는 데 별 무리가 없다. 내편 각 편의 제목들은 모두 소요유처럼 세 글자로 된 것이 특색이다. 내편에 비해, 외편, 잡편은 거의 모두 장자의 후학들이나 그 사상에 공명한 사람들이 자기들 나름으로 계속 글을 지어서 일종의 장자 시리즈가 되어 나온 것이라 보는 것이 보통이다.

 

장자를 읽고 있으면 세상사 시름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이 부분에서 모두 부질 없다거나 애쓸 것이 없다고 생각이 그쳤던 것 같다. 힘드니까? 그랬을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더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머리로 하던 것을 가슴으로 하고 가슴으로 하던 것을 가슴을 떠나서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면 대통의 깨달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없다고 본다. 도라는 것이 생긴 대로 사는 것에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나의 생김이 곧 결이고 결이 곧 도이니 내의 생김을 잘 살필 것이다. 본 문에서 가장 감명깊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보편적인 것이란 쓸모 있음을 말한다. 쓸모 있음이란 통함이고 통함이란 즐김이다. 즐김은 도에 가까움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도라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즐김이란 것에 사실 문외한 이란 것을 `14년 변경연 하계 연수 때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즐기고 사나?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나? 그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무엇을 하나? 혹은 그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 이 모든 질문에 하나도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몇 가지 답하려 우물쭈물 한 것도 모두 아닌 것 같았다. 위의 말에서 보듯이 즐기려면 통해야 한다. 통하려면 쓸모가 있어야 하고 쓸모가 있으려면 보편적이어야 하고 보편적이라면 쉬이 알아 차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김을 늘 가까이 하는 것은 내 삶의 결에 가까이 다가가 나를 결대로 즐기며 사는 것일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결을 알아가야 하는 것 내가 즐거워 하는 것 그것을 발견하고 곤고히 해야 할 것이다. 이 즐거움도 결이 변함에 따라 변할 것이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혼자 즐길 수도 있지만 사람과 같이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내의 결과 상대의 결이 통해야 할 것이다. 알아봐주고 그 알아봐준 것이 통할 때 서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즐길 수 있다면 서로를 즐기는 것이므로 서로의 도를 알게 되는 것이고 합일의 도를 알게 되지 않을까?

 

장자를 읽고 많은 생각이 일어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결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나 아닌 것의 결을 보고 즐길 방법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언젠가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모두가 하나라고 했으니 결이 묻히고 결국 큰 결만 남는 다면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되지 않을까? 그러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지?

 

진리의 본질은 자유이다. 자유는 존재들이 스스로그러하게 놓아둠’..우리가 우리의 현존이 되게 그냥 그대로 놓아둔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예술이란 물리적 사실보다 내면적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림은 붓을 자연스럽고 순간적으로 움직여 그려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 이야기라고 했다. 참된 예술가는 내면적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이기에 궁극적으로 인습이나 통상적 형식에 전혀 구애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본디 만물은 자유를 안고 태어났다. 인간도 그와 같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구속하고 지배하고 살아왔다. 두려움을 알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그 두려움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다시 태어났다. 인류는 이렇듯 새로 태어난 새로운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죽음과 자유에 대한 희망적 행동이다. 나 또한 이에 대해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하게 나를 놓아 두고 그러하게 나를 사랑하고 그러하게 나를 즐겁게 하여 그러하게 나도 그러한 한 인간으로 그러하길 바란다.

 

예술은 이 진리인 자유에 대한 표현이다. 모든 인습은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켜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예술은 그 두려움을 드러내고 부수고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류는 예술을 통해 두려움을 한 차원 한 차원 극복해 나갔다. 구체화 하고 형상화 하면서 직시하고 이겨 나갔다.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인간의 내면에 있고 삶에 산재하여 있다. 아직 예술이 끝나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다른 차원의 두려움 그리고 자유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궁극의 자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예술이 답해야 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은 예술적일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간 것이 없다. 만들어진 길을 걷기도 바쁜 삶이다. 왜 이렇게 길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 여지를 줄여 놓았을까? 두려움이란 이 끝없는 길에 있지 않을까? 가지 않는다면 길은 멈출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걷고 있다. 다른 발자국은 언제쯤 저 길 밖에 찍히고 나의 삶은 자유로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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