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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5일 10시 34분 등록

8/8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Barcelona)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약 1,600만 명이며, 도시의 명칭은 고대 페니키아어인 '바르케노(Barkeno)'에서 유래하였다. 1992년 하계 올림픽이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이번 여정 또한 아름다운 건축물과 미술품의 향기를 따라가본다.

 

1. 몬주익 공원, Jardins del Mirador

바르셀로나 남서쪽에 위치한 몬주익 언덕은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원래 유대인들이 살던 마을과 묘지가 있었고, 몬주익 언덕 남동쪽에 도시를 감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몬주익 성(Castell de Montjuic)이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는 전망대 정원(Jardins del Mirador)쪽으로 빠져서 바르셀로나 해변 경치를 감상하고, 스페인 아이들이 뛰놀던 커다란 분수에 발을 담갔다. 커다란 나무와 이국적인 꽃들이 잘 가꾸어진 길을 따라 큰길로 나오면 카탈루냐 전통춤 사르다나를 추고 있는 동상이 나온다. 이곳에서 동상들에 섞여 같이 춤을 춰보자.

 

2.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외관 관람

정식 명칭은 에스타디 올림픽 루이스 콤파니스(Estadi Olímpic Lluís Companys). 옛 이름인 몬주익 올림픽 스타디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경기장은 1927년에 1929년 엑스포를 대비하여 최초로 만들어졌고, 1936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대비하여 보수되었다. 그리고 1992년 하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989년에 재보수 되었다.

 

이 경기장의 이름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시절의 1940년에 몬주익 성을 건설한 카탈루냐의 정치가인 Lluís Companys i Jover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경기장 수용규모는 6만 명이다.

올림픽 경기장 바로 옆에 황영조 기념 동상이 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에서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3. 활기가 넘치는 바르셀로나의 심장 람브라스 거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거리인 람블라스 거리(Ramblas Street)는 북쪽 카탈루냐 광장에서부터 지중해 바로 앞 콜럼버스 기념탑까지 1.3km에 이르는 산책로다. ‘하천이 흐른다’‘냇물이라는 뜻을 가진 라 람블라(La Rambla) 19세기경 지금 같은 산책로가 있는 대로로 바뀌었다. 스페인의 시인인 로르카가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길이라고 표현하며 좋아했다고도 알려진 거리다. 주변엔 꽃집과 액세서리 가게, 엽서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 빠에야와 커다란 맥주를 파는 카페들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광장은 남동쪽으로 람블라스 거리와 이어져 항구까지 연결되며, 남서쪽으로는 몬주익 언덕이, 북쪽은 가우디의 건축물인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 있다.

미로가 디자인한 원 모양 모자이크를 밟고 조금만 더 걸으면 지구상의 모든 식재료가 모여 있다고 할 정도로 큰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la Boqueria)을 만난다. 산호세(St. Josep)시장이라고도 부르는 보케리아 시장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으로, 시장의 기원은 8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세기 성직자들의 거처로 사용되다 1840년 시장으로 탈바꿈한 이곳에는 육류와 해산물, 견과류부터 간식거리인 젤리와 초콜릿까지 정말이지 없는 것이 없다. 1.5유로면 다채로운 과일 주스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이제 유쾌하고 흥미진진하며 즐거움이 가득한 이 거리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스페인 제2 항구도시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끝, 지중해와 접한 이곳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아름다운 항구포트벨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엔 60m 높이의 콜럼버스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그 위에서 마드리드 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콜럼버스. 500여 년 전 이곳을 출발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그를 바르셀로나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8/9 바르셀로나2

 

1.   올림픽 항구

아름다운 해변과 요트 정박소가 있는 올림픽 항구는 그 부드러운 기후에 힘입어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커다란 철판에 담겨 나오는 빠에야도 수준이 훌륭하며, 해산물이 싱싱해 껍질까지 야들야들할 정도. 커다란 유선형으로 생긴 독특한 건물이 해변 어디서든 보이는데, 카지노 건물이라고 한다.

 

2.   피카소 미술관 내부 관람

1963년에 개관하여 이 곳은 정말 유명한 그림들은 없지만, 피카소가 그런 그림들을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9~22살 사이의 어릴 때 그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미술교사여서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말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먼저 가르쳤다고 한다.

 

피카소도 태어날 때부터 큐비즘이니 해체주의니 하는 난해한 그림들을 그렸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조금 안도할 수 있다. 세례를 받는 누이 그림 등이 그 증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연구해 관찰자의 시선을 따라오는 것 같은 다중소실점기법을 그림에 처음 적용했던 과학과 자비라는 그림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커다란 감흥을 받았던 피카소는 아예 이 작품에 대한 오마쥬로 여러 편의 연작을 그렸다. 이외에도 중간 중간 걸려있는 그림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중세시대부터 유난히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거리에 어느 귀족의 사택을 개조하여 피카소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가보면 화랑 복도나 대기하는 응접실, 바닥 장식 등이 매우 아름답고 품위 있다. 건물의 숨은 구석구석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중 하나.

3.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 카사 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사실 바르셀로나의 매력중 가장 큰 부분은 가우디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우선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건축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i, 1852-1926)

가우디가 살아있을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을 맞이했다. 산업기계의 출현은 인간의 생활을 좀더 편하고 빠르게 변화시켰고, 정신적인 자각은 이 시기를 도전과 투쟁의 시대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예술과 건축을 요구했다.

 

같은 시기 스페인도 개혁의 의지로 들끓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페인은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문화적인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 혼란은 스페인 지역 간의 정치 문화적인 마찰로서, 지역발전의 자극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독특한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특히 1909년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비극의 주사건은 수많은 수도원, 성당 등 스페인의 문화적 산물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1852 6 25일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는 프란시스코 가우디와 안토니아 벨트란 사이에서 다섯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이미 두 아이를 잃은 가우디 부부에게 안토니는 매우 소중한 아이였다. 어린시절 가우디는 류머티즘, 관절염 등의 질병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없었다. 병치레가 잦았던 그는 또래에 비해 늙어 보였으며, 사물과 현상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학생이었다.

 

가우디가 태어난 곳은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시골마을인 타라고나 주의 레우스(Reus)로서, 이곳은 언제나 지중해빛 태양아래 풍요로운 자연을 지닌 곳이다. 납작하게 엎드린 평야지대엔 농가와 농장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중세에 건설된 성당의 뾰족탑들은 단조로운 풍경에 활기를 주고 있다. 고향의 자연이 가우디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했다면,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건축 유적들은 사물을 꿰뚫어보는 힘을 주었다.

 

가우디의 가문은 대대로 구리 세공업을 해왔다. 어머니 또한 장인 집안의 딸이었으므로 가우디는 부모 모두에게서 장인의 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솥 대장간의 음악소리라는 이름을 가진 작업실에서 매일 같이 그릇을 만들었다. 가우디는 아버지로부터 불을 다루는 방법, 구리를 제련하는 방법, 무쇠를 녹이는 방법 등을 배웠다. 이는 가우디가 어떠한 재료도 겁을 먹지 않고 사용할 줄 아는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그렇기에 가우디에게는 무엇이든지 예술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순수한 재료로 보였다. 가우디는 이후 깨진 타일조각, 질그릇 조각, 거북이 등딱지, 윤나는 금 조작, 쓰다 버린 기계 조각 등 재료를 가지리 않고 사용하는 창조적인 건축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후 카톨릭계 고등학교에 입학한 가우디는 기하학과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나머지 과목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1869년 가우디는 부모의 곁을 떠나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로 향하게 된다. 카탈루냐 제일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중세의 흔적이 많은 보수주의적 문화를 간직한 동시에 일찍이 산업혁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의 설계작업은 대지를 방문하여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가우디의 작업은 항상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늘 쫓기듯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 장인들의 작업장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번 가우디는 하루가 47시간이라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대충이란 단어는 용납되지 않았다.

 

가우디는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는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에게 빌렸다. 책을 보기 시작하면 거기 빨려 들어가 메모를 하고 밑줄을 쳐댔으며 필요한 부분은 찢어서 틈틈이 읽고 다녔다. 특히 가우디는 이슬람 건축의 기국적 장식의 아름다움에 크게 매료되었다. 모로코 멜리야에 건축된 요새에서 보이는 달걀 모양의 길쭉한 아치는 분명 훗날 가우디의 독특한 기하포물선에 양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진으로 만난 가우디는 젊고 침착하고 총명해 보인다. 가우디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평생 독신이었으며,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심지어 사순절 단식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독해질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고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성당으로 걸어가던 가우디는 전차에 치이고 만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검소한 차림의 그를 부랑자로 여겼던 것이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진 가우디는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카사 밀라

[가우디]고색창연한 돌은 담쟁이 덩굴, 발코니의 꽃들과 어우러져 풍부한 느낌을 전해주고, 이 저택에 끊임업이 다양한 색조를 준다.

 

거친 돌로 마감되어 있는 카사 밀라의 정면은 발코니 난간을 장식하고 있는 갓 뜯어온 듯한 해초 덩어리로 인해 더욱 더 자연과 가깝게 느껴진다.

 

카사 밀라의 외관은 멈추지 않는 선으로 묘사될 정도로 물결치는 듯한 리듬을 건물 전체로 표현하고있다. 커다란 비누방울 속에 작은 비누방울들이 모여 각 방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카사밀라는 거대한 유기체 같다. 카사 밀라의 기괴한 외관은 옥상을 지키고 있는 여러 수호신들로 인해 더욱더 신비로워 보인다. 지붕 위에 솟아오른 굴뚝도, 환기탑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그것들은 하나같이 카사 밀라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우리를 초현실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1882년부터 짓기 시작했다던 성당의 완공은 100년이 걸릴지 2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2010년 후반부터 성당 내부가 공개되더니 같은 해 11 7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당을 방문해 축복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날의 축복세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성당 중 최고 자리인 대성당(Basilica)에 오르게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생각보다 일찍 공개된 건 최신 공법으로 건축기간을 앞당겼기 때문이란다.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성당을 100% 헌금으로 짓는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세 면에 커다란 문이 있다. 가우디 생전에 지은 탄생의 문, 사후 완공된 수난의 문, 그리고 정중앙에 있는 영광의 문이 그것이다. 2014년 현재 입구는 동쪽에 있는 탄생의 문이고, 나가는 문은 서쪽에 있는 탄생의 문이다. 성당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광의 문으로 주 현관이 되는 문이지만 현재 건축 중이라 볼 수가 없다.

 

 세 개의 문은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을 의미한다. 각 문 위에는 4개의 종탑이 있어 총 12개의 종탑이 있는데, 이는 예수의 열 두 제자를 의미한다. 여기에 예수, 성모 마리아, 네 사람의 복음서 저자(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을 상징하는 6개의 탑이 더해져 성당에는 18개의 탑이 완성될 예정이다. 열 두 제자 종탑은 112m로 꼭대기에 가우디만의 독특한 모자이크 타일 장식이 올려져 25m가 더 높아졌다. 예수탑은 170m, 성모 마리아와 네 복음서 저자의 탑은 120m가 될 예정이란다.

 

탄생의 문

동쪽에 해가 뜨면 이곳에 가장 먼저 햇살이 비춘다. 곧 탄생의 의미와 닿아있다. 돌이 아니라 나무를 깎아 만든 것 같다. 여기에는 예수 탄생에서 청년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파사드의 중앙은 사랑, 오른쪽은 믿음, 왼쪽은 소망의 문으로 나뉜다. 중앙 문에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가 조각돼 있다. 아기 예수가 담긴 바구니를 성모마리아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데 그 뒤에서 요셉이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유향, 물약, 황금 선물을 들고 찾아온 세 동방박사가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 둘레에는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로 가득하다.

 왼쪽 소망의 문에는 마리아와 요셉의 약혼식과 유년기 예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믿음의 문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에 바친 비둘기 두 마리와 아기 예수를 안은 시몬이 보인다.

 

성당내부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은 모두 숲에 들어온 기분이 들 것이다. ㅡ 가우디

내부를 기둥의 숲이라고 부른다. 제대 앞에 앉아 있으면, 고요한 신앙의 숲에 들어온 듯 차분해진다. 여러 개의 기둥은 나무를 형상화 했는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한 나뭇결이 느껴지고 위쪽으로는 마치 갈라져 나온 나뭇가지를 보는 것 같다.

 

수난의 문

가우디의 설계 아래 요셉 마리아 스비라치가 조각을 맡고, 호안 빌라 그라우가 스테인드글라스를 맡았다. 종탑이 있는 위쪽 가운데에 황금색 예수가 양손을 아래로 내밀고 서 있다. 그 양쪽에 두 개의 탑이 서로 대칭으로 세워져 있는데, 탑에는 붉은 색과 노란색으로 빛나는 Sanctus라는 글자가 여럿 새겨져 있다. ‘거룩하시도다라는 뜻으로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말이다. 그 밑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야고보, 바르톨로멩, 토마스, 필립보의 이름이 있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마방진이 한 개 있는데, 어떻게 더해도 33이 나온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한 나이 서른 세살을 상징한다.

 

 

 

구엘 공원

구엘공원이 들어선 뺄라다 산은 해발 120-150m에 달하는 험악한 지형으로, 도무지 공원이 들어설 자리로는 적합하지 않다. 가우디는 부지가 가진 풍부한 자연미를 보존하기 위해 초목을 잘라내지 않은 채 산을 오를 수 있도록 구불거리는 길을 내리라 마음 먹었다.

 

구엘공원에 들어서면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을 받는다. 직선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구불거리는데다가 동화책에서나 나옴직한 형상들이 특이한 껍질로 싸여 있기 때문이다. 기본 장식에 덧붙은 카탈루냐 전통의 트렌카디스 장식은 물고기 비늘 같은 타일 장식으로, 가우디의 건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우디는 인부들에게 출근하는 길에 깨진 타일 조각이 있으면 주워오라고 지시하거나, 아주 조심스럽게 배달된베네치아 타일을 받자마자 산산조각을 내버려 운송업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양한 색의 깨진 타일들은 온통 구엘 공원을 덮고 있다.

 

일단 모자이크를 구성할 디자인이 결정되면 가우디는 표면 작업을 미장공에게 지시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우디는 인부들 곁에 앉아 붙을 자리를 일일이 지시했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까지 붙였던 모든 타일들을 떼어내어 처음부터 다시 하도록 했다.

 

[가우디] 장식에는 색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중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식물이나 지형이나 지세나 동물의 세계에도 항상 색감의 대비가 있다.

 

가우디는 색이란 형태를 분명하게 하고 생기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 여겼다.

 

대 계단에 있는 3개의 분수는 구엘 공원을 더욱더 활기 차게 만들고 있다. 지상에 떨어진 빗물이 모이면 세라믹 재질로 된 용의 입으로 토하듯이 나오게 되는데, 이 역시 아폴로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해 매장된 용이 땅속에서 물을 지키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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