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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8일 22시 52분 등록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

누군가가 단식하고 있는 문재인님께 복효근 시인의 시집을 선물했다고 하기에 어디선가 본듯하여 뒤지니 이 시가 나오네. 지금의 상황에 매우 적합한 내용이다 여겨진다. 그 시집에도 용기에 용기 더하는 내용 가득하리라.

 

이른 봄, 한 뼘 됨직한 토마토, 고추 모종은 거세지 않은 비바람에도 잘 쓰러진다. 농부는 버팀목을 세워 고정시킨다. 버팀목에 비해어린 모종은 너무나 가냘퍼 안쓰러워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얼마 후면 모종은 허리 깨까지 무성하게 자라 그렇게 커 보이고 든든하던 버팀목은 작은 나무꼬챙이가 되어 있다. 꼬마농부는 초록가지 사이로 꼬챙이가 된 버팀목을 발견하고 놀란 목소리로 변한 모양을 생중계 한다. 물론 버팀목의 고마움을 찬양하기보다 잘 자란 모종을 기특해한다.  스스로 자란 듯 보이지만 한때 곁을 지켜 준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언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 내 초라한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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