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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9일 17시 33분 등록

9일째 마지막 날, 세고비아+아빌라+도하_구달칼럼#19

 

2014. 8. 16. 토요일, 여행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벌써 스페인 여행 마지막 날이다. 열흘 간의 강행군이 이제 마지막을 맞이하여 과제를 모두 마친 듯 시원한 면도 있었지만 벌써 스페인을 떠날 때가 되었나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드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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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일정을 바꾸어 아름다운 성채도시 세고비아(Segovia)를 먼저 들리기로 했다. 마드리드에서 약 한 시간 반 가까이 달려 도착한 해발 1,000m 고도의 소담한 도시이다. 도시의 고도 때문에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코 끝을 스친다.  고개를 들어 언덕을 바라는 순간 우린 탄성을 질렀다. 어디 엽서 같은 데서 많이 본 참으로 친숙한 동화 속 성채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투어 버스가 우리를 내려 놓은 곳은 ‘월트 디즈니’가 ‘백설 공주의 성’의 모태로 사용하기도 한 Alcazar(알카사르) 성곽이 올려다 보이는 푸른 잔디밭이었다.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비로운 동화 속 성채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다가 우리는 그룹별로 성채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점프샷을 찍기 시작했다. 그래, 최고의 풍광 앞에서 끊어 오르는 기쁨과 경탄을 표현하기에 점프샷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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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을 돌리고 옆을 보니 헬멧도 안 쓴 채 붉은 머리띠만 불끈 묶은 자전거 여행자가 자전거를 탄 채 잔디밭으로 들어오고 있다. 마치 말을 탄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다. 다른 도시에서 왔다면 해발 천 미터의 고도이니 그는 꽤나 긴 오르막을 달려왔을 터인데도 전혀 피로한 기색이 없다.  이 곳의 풍광이 하도 청명하여 그저 바람 속을 달리는 자체가 힐링이 되나 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버스 패키지 여행을 하고 있지만 나도 본래 자전거 라이더가 아닌가. 시간만 허락된다면 그에게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스페인 와서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달리고픈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차로 여행하는 것과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차를 타면 그 곳 풍토의 내음을 실어오는 바람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자전거는 온전히 그 바람 속을 유영하게 된다.

잔디밭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물길을 따라 숲 길의 트래킹 코스가 이어진다. 주어진 20여분의 시간이 참으로 감질난다. 이 물길의 시원을 찾아 상류 끝까지 숲 길을 걷고픈 마음을 애써 달래야만 했다. 이번 스페인 여행 중 최고의 풍광인 이 곳을 바람이 스치듯 둘러보고 떠나야 한다는 것에 못내 속이 쓰렸다.

 

고원에 올라 버스에서 내려 동화의 성 알카사르성까지 걸어서 들어가는 길이 또한 동화 속 길 같다.  도무지 구름이란 이름조차 잊을 정도로 종일 내내 푸른 하늘을 업고 대지에 펼쳐진 자연 속 마을의 모습이 씻은 듯 청량하다. 알카사르성은 황토 색의 외벽과 특색 있는 지붕 모양이 정말 아기자기한 동화 속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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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벨 여왕

이 성은 내부에 있는 스페인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 이사벨 여왕의 유품이 볼만했다. 아리따운 자태의 대형 초상화와 침대, 의자 등을 둘러 보면서 생각했다. 15세기 말 부렵 까스띠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은 보다 세력이 약한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2세와 결혼하여 확장된 전력으로 무슬림을 몰아내고 스페인을 통일했다. 하루에 네 번씩이나 목욕하던 깔끔한 성격의 이사벨이 무슬림을 몰아내기까지는 목욕도 삼가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녀의 야망과 성격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된다. 그런 그녀의 결혼 생활은 과연 어떠했을까? 남편인 페르난도2세 위에 군림하는 왕 위의 여왕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여왕이기 이전에 여자로서의 사랑이 권력욕을 잠 재웠을까? 스페인에도 우리의 이조실록 같은 것이 있다면 보고 싶었다.

세고비아 도시가 하늘에서 보면 배 모양이라고 하는데, 그 뱃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알카사르성이 들어서고 그 중에서도 끝 고물에 뾰족 탑이 있다. 결혼 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신혼임을 과시하는 데카상스 커플이 거기에 서서 두 팔을 벌린 채 타이타닉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알카사르 성채를 관람하고 나니 출출했다. 다음 코스는 유명한 Cochinillo(꼬치니요) 요리 시식이다. 마침 이 요리 전문인 백 년도 더 된 전통 있는 레스토랑이 수도교 바로 옆에 있었다. 우리는 세고비아 시내 유서 깊은 골목길을 걸어서 로마가 세운 물길인 장엄한 수도교를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꼬치니요를 즐길 수 있었다.

꼬치니요는 어린 돼지구이 요리이다. 우리가 애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못 먹는 아랍인들을 세고비아에서 쫓아내기 위해 식당들에서 오직 돼지고기만 구워서 판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흙으로 빛은 질그릇에 넣고 화덕에서 구워낸 아기 돼지를 노장 요리사가 칼 대신 접시로 썰어 개인 접시에 담아 주고는 그 접시를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 접시 깨어지는 소리에 영문을 모르고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며 식사하던 우리는 화들짝 놀랐다. 아마도 무슨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인가 싶다. 겉껍질은 얇고 바삭하며, 속살은 족발처럼 부드럽고 쫀쫀하여 입에 녹아들 지경이지만 너무 느끼한 게 흠이었다. 포도주가 없으면 몇 점 넘기지도 못할 뻔 했다. 우리네 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레스토랑 창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위용의 수도교는 보는 그 자제로 탄성을 연발케 한다. 수도교는 무려 2000년 전, 기원전 1세기 후반부터 2세기경에 로마가 물을 공급하기 세웠다는데 전장 728m이며 119개의 아치로 되어 있다. 이 수도교는 건축물이 도시 한복판에 잘 보존되어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화강암을 벽돌 모양으로 쌓았는데 돌과 돌 사이 다른 어떤 접착제도 쓰지 않고 아치형으로 수십미터 높이로 쌓아올린 기술이 기적처럼 보인다. 로마인의 돌 다루는 기술은 가히 신공에 가까운 경지에 오른 듯싶었다. 위대한 로마의 일면을 수도교를 통해 보게 된다.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들린 곳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성채도시 아빌라(Avila) 였다. 아빌라는 마드리드 북서쪽 87km 지점, 해발 1,130m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이 곳 또한 여름임에도 선선한 초가을의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이슬람의 점령에서 스페인의 국토회복전쟁까지 두 세력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아빌라의 스페인 사람들은 이슬람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1090년부터 9년에 걸쳐 2,000명을 투입하여 둘레 약 2.6km(2,572m), 높이 12m, 두께 3m에 달하고 9개의 문과 88개의 타원형 탑으로 이루어진 성벽을 쌓았다.

성벽 위로 길이 2.5km의 성벽 길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도시를 바라보는 전경은 마치 우리나라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의 성벽 위의 성곽길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특히 아빌라 성은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니 밤에 방문하여 이 길을 걸으며 야경을 감상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두둥실 떠오른 달에 비친 마을과 성채를 바라보며 성곽길을 걷고는 이곳 특산의 맥주와 와인을 즐기며 여기서 하루쯤 푸근히 묵어 간다면 여행의 진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행은 다음에 아내와 함께 와서 하기로 하고 우리는 아름다운 아빌라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뷰포인트로 성벽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Los Cuatro Postes (네 개의 기둥)으로 직행했다. 이곳은 무슨 그리이스 신전을 연상케 하듯 네 개의 돌기둥과 돌십자가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정말 아빌라성이 한눈에 잡힌다. 몇 분간의 소나기 같은 사진 찰영 시간이 지나자 이 곳은 신나는 기타연주의 무대로 돌변했다. 우리 팀의 기타리스트 정우와 종원이의 멋진 기타연주는 아빌라의 추억으로 모두의 가슴에 새겨졌다.

스페인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마드리드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귀로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를 갈아타는 카타르 DOHA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시내 관광을 했다. 4시간 정도의 주어진 시간 중에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밖으로 나오는 데만 2시간여 절반의 시간을 써 버렸다.  도하는 술을 금지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구입한 포도주 등 주류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항 내 세관에 들러 서류를 작성하고 술을 맡기고 하는 등 난리를 치르는 통에 시간이 더 지체된 것이다.

 

대기한 버스를 타기 위하여 공항 밖으로 나갔는데 얼굴에 훅 와 닿는 열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사우나의 열기를 방불케 했다. 섭씨 40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온도보다도 습도가 높아 불쾌감은 더욱 심했다. 스페인의 쾌적한 환경에 적응한 몸이 불과 열 시간도 안되어 열사의 사막기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버스는 해안 길을 달려 어딘가 아랍 장터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명색이 관광이니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식사 전에 어디 이곳 땅이라도 밟아봐야지 하는 심사로 장터로 들어 섰지만 사우나실 같은 이곳 기후를 견디며 돌아 다니기가 정말 괴로웠다.

마침 그림 파는 가게가 있어 시원한 가게 내에서 그림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운 좋게 가이드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다. 가이드는 묘령의 아리따운 여인으로 남편과 함께 카타르에 온지 9년 째란다. 카타르항공의 스튜워디스로 시작하여 지금은 카타르 공항의 매니져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전문 가이드가 일이 생겨 대신 나왔다고 했다. 카타르가 보수적인 아랍국가로 여성에 대한 제재가 많아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이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살만하다고 했다. 카타르 입국할 때 하얀 아랍 전통 복장을 한 출입국 관리 직원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말없이 턱짓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을 대하더라고 했더니, 그들이 거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크기가 경기도만한 카타르는 전체 인구의 20%가 아랍계 현지인이고 나머지는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이민 온 국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출입국 관리 직원 같은 공무원은 20%에 해당하는 아랍 자국민이 석권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교육, 의료, 주거비까지 국가에서 부담하고도 월급을 이천만 원이나 준다니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국가가 돈이 많아 주체할 수가 없어 국민들에게 그처럼 과도하게 베푸니 그들의 코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간다는 것이다. 참으로 요지경 같은 나라다.

 

찻집에서 차를 주문했는데 늦게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하여 후다닥 나오느라 카메라를 잊고 나왔다. 가이드는 돌아가면 그대로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과연 그랬다. 신기하여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이 곳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엄격한 회교율법의 나라인지라 도둑이 없다고 했다.

 

이곳이 아무리 도둑이 없고, 휘발유 값이 중형 승용차를 가득 채워도 만 오천 원 밖에 안하고, 돈이 넘쳐나는 나라라 할지라도 나는 이곳에서는 못살 것 같다. 아니, 살기 싫다. 찜통 같은 이곳 기후도 문제지만 꽉 막힌 이슬람 율법 사회 분위기가 숨이 막혀서 못 살 것 같다. 이제 막 도착하여 카타르에 대해 무얼 알겠냐 마는 이건 순전히 나의 첫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내된 아랍 식 정통 식당의 아랍 요리는 기대 이상이었다. 따끈한 밀전병 같은 것을 찢어서 여러 가지 소스를 넣어 쌈을 싸먹는 것도 좋았고, 뒤이어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바비큐가 나왔는데 이 건 최고였다. 어떻게 구웠는지 고기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특히 양고기 맛이 좋아 다른 고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순 아랍 식 전통요리는 처음 경험하는 것인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가이드는 11월에서 2월 사이가 이 곳 기후가 우리의 가을 날씨처럼 된다고 하면서 그때 와서 사막투어를 하라고 했다. 사막에 와서는 사막을 보아야 하는데……

훗날을 기약하며 한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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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6 16:12:27 *.175.14.49

라이더에겐  라이더가  보이는군요^^ 음식얘기가  생생해서 직접  한 입  먹어본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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