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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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스케치.
메스키타에서 돈키호테까지_7일차
2014. 08.31
2014년 8월 14일(목), 스페인 여행 7일차, 여전히 마빡이 익을 만큼 햇볕은 쨍쨍, 나는 녹초.
오늘 예정된 일정은 서구의 콘스탄티노플 이라 불리는 꼬르도바에서 메스키다 사원과 유대인 지구를 둘러보고 꼰수에그라로 이동하여 돈키호테께서 거인으로 착각하고 한판 하신 풍차마을을 들렀다가 마드리도로 입성하는 스케줄이다.
스페인의 도시들은 대부분 매우 깨끗했다. 이 동네 사람들, 역시나 막돼 먹은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다. 가정집들도 수백년씩 된 집들이 수두룩하다는데 이 처럼 윤이 나는 것을 보니 쓸고 닦고 가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전 일정이 관광객 모드였으므로 그들의 속살을 알 리 없다. 다만, 가이드의 감시망을 피해 잠시 살짝 뒷골목을 기웃 거리면서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신뢰도 있는 겐또라 생각하기로 한다. 아울러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 표정에서 호의와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상점에서도 식당에서도 호텔에서도 시장에서도 만들어진 상냥함은 아니었지만 친절하고 부드러웠으며 여유로웠다. 익숙하던 매뉴얼식 인스턴트 친절과 비교 되었다. 삭막한 웃음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들의 무뚜툭한 미소는 살갑고 반가울 따름이다. 우리도 이런 때가 있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있을것 같지 않다.
이곳 꼬르도바 역시 호의적인 도시라고 생각했다. 지난 밤 우리는 잘 생긴 아저씨네 길 카페에서 새벽토록 사랑을 피웠다. 바람은 맥주만큼이나 시원하다. 한 낮의 뜨거움이 숙져 내려앉은 거리는 포근하고 평화로웠다. 겨드랑이로 지나는 바람이 상쾌하다. 함께 걷는 이들과 밤새도록 걷다가 마시다가 이야기 하다가 쓰러져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아침에 부시시 깨어 느긋한 아점을 먹고 다시 늘어지는 저녁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일곱시면 찾아온다. 따르릉~~~
몸을 일으켜 기다시피 물을 좀 찍어 바르고 텁텁한 혓바닥을 칫솔로 긁었다. 거울을 보니 팅팅 불어터질것만 같다. 새벽에 들어와서 새벽까지 또 떠들었다. 잠을 잔 것인지 눈을 감았다 뜬 것인지 구별되지 않지만 뭐 또 아침이니까 ... 마른 빵쪼가리를 우겨 넣고 발통 달린 가방을 끌어다 버스에 우겨 넣었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므로 이제 제법 익숙해 졌다. 여러분들을 살펴 보니 비교적 생생해 보인다. 나만 녹초인 것 처럼 보일 수 없으니 짐짓 멀쩡한 척 인사를 나눈다. “잘 주무셨어요?”
우리의 밤은 언제나 낮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꼬르도바의 이 밤은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이드 아저씨는 참 자극적이다.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정도로 딸딸 외웠다. 그 양이 사방팔방 방대해서 혀를 누를 지경이다. 영혼이 깃든 멘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많은 말들을 외워서 하려면 장난아니올시다. 감탄이 뭔지 모르는 나 조차 감탄할 정도면 일단 니가 왕이세요. “안녕히 주무셨세요? 자~~안녕히 주무셨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할 이곳, 꼬르도바입니다. 코르도바 아닙니다. 꼬르도바! 악센트 중요합니다. 꼬르도바 맞습니다. 꼬르도바, 꼬르도바, 꼬르도바...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사람들 못 알아 듣습니다. 자 같이 해 봅니다. 꼬르도바.” 이렇게 저렇게 떠들다 보면 어느새 “자~도착했습니다. 소매치기 조심하십니다. 누가 툭 친다. 소매치깁니다. 예쁜 여자가 와서 말을 건다. 소매치깁니다. 조심하시면서 함께 구시가지를 조금 걸어 메스키타를 가셨다가 다시 이곳으로 옵니다. 이곳은 로마교라고 하는데 블라 블라~~~”
로마 개선문처럼 생긴 지은지 삼년 된 문으로 로마교 맞은편에 있다.
이문을 통하여 아름다운 거리를 지나 메스키타에 닿는다.
<로마교>
아랍의 한 지리학자에 의하면 코르도바의 로마교는 아름다움과 견고함에 있어서 다른 다리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했다. 현재 이것은 로마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 수세기동안 이루어진 여러번의 재건축으로 더 이상 로마의 기원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다리 중앙의 돌에는 St Raphael의 이미지가 조각되어 있고, 그 아래는 많은 기원을 담고 있는 초들이 있다. 대부분의 코르도바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행동한다.
꼬르도바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융성하던 도시였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답게 로마 시대 당시의 다리가 (그대로는 아니고)남아있다. 도시 곳곳에 오래된 유적이 산재하고 있으며 구도심에는 수백년된 역사가 즐비하게 건축물로 남아 있다. 특히 8세기 이슬람 세력에 정복 된 후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로 크게 번성하였다. 찬란하던 그때의 흔적이 메스키타로 남아있다. 유유히 돌아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들어 앉아 수천년을 견뎌온 도시 꼬르도바.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간다.
로마교 언저리에서 버스를 내려 고대 로마의 개선문(같이 생긴 만든지 삼년밖에 안된)을 지나 구도심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마빡을 녹일 것 같은 태양은 병든 닭 마냥 비실비실 해 보아도 사정을 두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트 광장에 닿았다. 지나온 도시들의 구시가지 골목길들이 그랬듯이 이곳의 거리와 골목과 담들 역시 아름답고 포근하다. 하얗고 노란 벽에 파란 테를 두른 예쁜 창들마다 빼곡하게 화분이 놓여있고 거리는 돌 따위로 가지런하다. 오밀조밀한 골목 귀퉁이마다 행객을 기다리는 예쁘장한 카페가 빠짐없이 숨어있고 조금 너른 골목엔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몇 개 들어서 있으나 우리네 처럼 부산스럽지 않다. 큰 도시나 작은 도시나 할 것 없이 시간을 거슬러 간 듯 하다. 노천 카페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 사람이나 때때로 지나는 사람들은 일상처럼 객들에게 별다른 시선을 주지 않는다. 편안하고 헐렁해서 좋다.
<포트르 광장(Plaza del Potro)>
옛 정취가 남아 있는 포트르광장(Plaza del Potro) 1577년, 광장에 있는 분수 꼭대기에 서있는 어린 망아지(포트르)-<코드도바 시의 문장이라고 함>에서 유래되어 이름 지어졌다. 소설가 세르반테스도 머물렀으며 그의 소설 '돈키호테'에도 등장하는 여관 표토르(Posada del Potro)도 이곳에 위치하여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조금 더 흘러 메스키타에 닿았다. 회교사원이었으나 카톨릭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이 곳 메스키타. 역사의 주인은 흘러간다지만 이곳 만큼은 용케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인간의 옹졸함을 조용히 증거하고 있었다. 한 신을 받들지만 한 하늘을 지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역사가 오늘 이 순간에도 처절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메스키타는 아랑 곳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조용히 품고 있었다. 삶이 역설이고 세상이 모순이라지만 정원의 작은 분수는 찬란하기만한데 태초에 사원을 닦은 자들은 그들의 정성이 영원할 것을 염원하며 그들의 신을 이곳에 모셨을 것이다. 후대에 이곳을 수복한 자들은 정복자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웠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이곳에 이르러 차마 허물지 못하고 이 곳만은 보존하라 일렀으리라. 메스키타를 처음 세운 자들이나 나중에 주인이 된 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그들은 서로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후손들은 이 곳을 수복의 터로 생각 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메스키타 회교사원(Mezquita)>
영국 작가 제럴드 브레넌은 메스키다 사원을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평했다.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사원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회교사원이며 로마, 고딕, 비잔틴, 시리아, 페르시아 요소들이 혼합된 칼리프 스타일로 모든 아라비안-라틴 아메리카 건축물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8세기경 당시 메스키타 회교사원은 스페인 이슬람교의 중심지였다. 785년과 787년 사이에 건축된 건축물로 점차적으로 개축되어 여러가지의 다른 건축양식이 혼합되었고 16세기에 카톨릭 성당이 메스키타의 중심지에 지어져 카톨릭과 이슬람교의 두 가지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사원 안에는 화강암, 벽옥, 대리석으로 된 850개 이상의 원주가 천정을 받치고 있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지금은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까를로스 국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것을 파괴하여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며 탄식했다고 하나 아직도 본래 모습을 잃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건물만큼이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이슬람 사원에 계신 예수님. 어쩐일인지 온전한 제자리에 계신 듯 하다.
각기 높이와 소재가 다른 기둥과 아치형의 적백의 조화가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힘으로 빚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손을 빌렸을 뿐.
<유대인 거리(La juderia)>
메스키타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치 미로처럼 길이 얽혀 있는 지역이다. 일찍이 코르도바 칼리프 제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존재로 여겨져 역대 칼리프에게 후하게 대접받던 유대인은 레콩키스타 종료 후 1492년 포고된 유대인의 추방령에 따라 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서쪽의 성벽 근처에는 옛 유대 교회인 시나고가(Sinagoga)가 있다. 14세기에 지은 건물로, 석고 세공이 볼만하다. 북쪽으로 인접해 있는 카사 안달루시(Casa Andalusi)는 12세기의 저택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로마교 위에서 바라본 과달키비르강과 꼬르도바
로마교에서 사랑을 속삭이면 로마교만큼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
꼬르도바 투어버스인 모양인데 버스색만큼 차장언니도 예쁘더라.
메스키타를 나와 오밀조밀 아름다운 유대인 거리를 따라 걸어 다시 로마교로 돌아왔다.
이젠 돈키호테를 만나러 간다.
잠시 들러간 휴게소. 작은 능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올리브가 지천이었다가 해바라기가 지천이었다가 ... 너른 땅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비몽사몽간에 내리고 보니 시골의 조그만 마을이다. 이곳이 꼰수에그라?
자극적인 가이드 선생께서 일정에 없던 곳을 살짝 들렀나 보다. 이곳은 돈키오테가 모험을 떠나기 전 잠시 묵었던 작은 마을 푸에르토 라피세(Puetro Lapice). 돈키호테가 주인으로부터 기사 서훈을 받기도 하고 실랑이를 벌였던 여관 ‘벤타 델 키호테’라는 작고 아담한 여관이 있는 곳이다. 여관은 이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돈키호테의 작은 기념관으로 꾸며졌다. 간단한 식사와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간단하게 와인 한잔 하기에 좋은 곳이다. 한 나절 멍때리다 갔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면 또 집합 종이 울린다.
며칠을 멍때려도 좋겠다 싶은 곳이었다.
푸에르토 라피세에서 20여분 달려 언덕 위 하얀 풍차마을에 닿았다. 이곳이 꼰수에그라. 올해까지만 차가 이곳까지 공짜로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는 가이드 선생 목소리가 어쩐일인지 애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풍차가 11개인 줄 알지만 올라가서 보면 하나 더 있어 12개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이다지도 찰지게 읊어 재끼는 그의 전문가리즘이 내게로 투사되어 달콤 쌉싸름하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라 만차 지역의 평원과 다소곳이 들어앉은 작은 마을 꼰수에그라를 조망하는 즐거움이 괜찮았던 곳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돈키호테나 한번쯤 읽어보고 올 껄. 싶었다.
꼰수에그라에서 바라 본 마을과 라 만차 평원.
에움은 이때 무슨 꿈을 꾸었을까?
아직 한번도 뵙지 못한 좌선배님! 선배님 덕분에 같은 차가 옆에 있어도 멀리 있어도 단박에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품과 운치를 더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백컨데 아직까지 뜨거운 태양, 하늘에 닿을 듯 우람한 성당들, 가우디, 피카소가 내게 의미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슴 가운데 터지지 못한 어떤 것이 꼬물거리는 것이 있는지라 그대로 삭아 버릴 것 같지는 않건만 아직 수액이 돌아 흐르지 않는다. 여행 가운데 몬세랏의 성당에서 메스키타에서 시체스의 골목에서 때때로 가슴이 살짝 일렁이기도 했지만 한껏 공명하거나 실컷 울게 버려둘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기 위해 여행을 하기도 한다. 단지 생소한 곳에 나를 놓아 두는 것이다. 후줄근한 카페나 조용한 공원 벤치에 앉아 종일토록 사람들을 살피거나 사진을 찍거나 먹거나 멍때리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 느림을 영접 하길 기대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우리를 즐기던 시체스의 예쁜 처녀도 말라가의 뜨거운 태양도 부럽긴 매 한 가지였다. 바쁜 것은 파도와 우리 뿐 세상은 그곳에서 멈춘 듯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고단한 여행객 코스프레를 하지 못한 것이나 나른한 해변에서 달력을 세워두고 한 잠 늘어지게 때리는 사치는 완벽이어야 가능한 것이었을까!
나는 융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내적 동기에 의해 작동되는 인간이란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외적 사건들이 동인이 되어 내 안으로 타고 들어와 내 안의 나를 움직이게 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더구나 예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누군가는 그러더군. 연비가 최악이라서 그렇다나!
스페인에서 돌아오던 날.
자정 무렵 돌아와서 이튿날 네 시에 아내와 함께 더덕주를 먹었다. 꼬박 새고 다음 날 저녁을 맞았다. 낮에 잠시 눈을 붙였을 것이다.
다음 날 새벽 두 시에 가지 전을 부쳐 놓고 아내는 와인, 나는 또 더덕주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낮에 학교에 다녀와야 했고, 밀린 일들과 밀린 전화질로 부산하게 보냈다.
...
낮밤이 바뀐채 일주일이 흘렀다.
여전히 멍~하다.
여행 후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찼으나 단 한줄도 써내지 못하고 있었다. 융 할아버지를 만나야 하지만 표지만 만지작 거리다가 또 금요일이 되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체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머지 않아 바쁘게 움직인 열흘이 알알이 살아나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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