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정수일
  • 조회 수 203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9월 1일 00시 12분 등록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2014. 9. 1


1. 저자에 대하여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 스위스의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남. 

    그러나 무턱대고 믿으라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맹목적인 종교적인 접근 방법이나 교육에 의문을 가짐. 이런 성향은 이 후 융이 정신의학자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됨.

>> 세살 때 평생에 영향을 미친 ‘남근상’에 관한 꿈을 꾸었다.

>>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랐던 사람. 그러나 ‘학문을 한다는 것’ 만큼은 선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사람.

>> 니체앓이를 했던 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시간들이라고 했던 대학시절 니체를 탐독 했다.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고 할 만큼.

>> 프로이트의 후계자가 될 뻔 했던 사람. 

    서른 네살에 프로이트를 처음 만남. 그와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탁월한 권위를 가지는 사람과 의견을 달리 한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 꿈으로 살았던 사람. 

     그는 세 살 때 꾼 꿈부터 평생토록 꾼 모든 꿈을 기억하는 것 처럼 느꼈다. 그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항상 꿈을 꾼다. 마치 예지몽 같다고 생각했다. 좀 황당하기는 한데...

>> 외적경험과 사건들 보다 내적경험과 통찰을 중요시 했던 사람.

>> 체험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

     본인 스스로 체험(내면의 경험)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의심 했으며, 우연을 믿지 않았다. 내면의 통찰은 환자와의 실험으로 실증 하였다. 

>> 미신과 과학의 경계를 살았던 사람. 

     과학으로는 접근이 안되고 미신으로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하였다.

>> 여복을 타고난 사람. 

     차분하고 현명하며 부유한 집안의 여인이었던 아내 엠마. 치명적인 사랑과 학문적 영감을 선물한 슈필라인, 평생을 함께한 또 한명의 조력자 정부 토니까지 그의 탁월한 삶을 그의 삶을 지배한 탁월한 여성들 덕분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슈필라인과 토니는 융의 환자였던 공통점이 있으며 슈필라인은 탁월한 아동심리학자로 토니는 융을 도와 심리 치료사로 활동하게 된다.


>> 융, 프로이트, 슈필라인과 관련하여 추천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A Dangerous Method, 2011)

     의사와 환자로 만난 융과 슈필라인, 처름으로 대화치료법을 시도한다. 이 치료법은 전이현상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치료과정에서 환자가 의사에게로 감정으로 전이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의사가 환자에게로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국 융과 슈필라인은 격정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과연 어떤 운명과 마주치게 될까!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0p. 카를 융은 죽기 2년 전 B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p.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은 형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옛이야기, 나의 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 사실은 진실보다 무겁다.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알아 보려고 이렇게 이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이나...

>> 소크라테스도 노자도 장자도 석가도 모두 모른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다 알지 못한다고 한다. 기껏 깨달은 것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해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 뿐이다. 그러므로 내적 체험들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의 꿈과 환상 들이 포함된다. ... 다른 기억들, 즉 여행과 사람들 그리고 주변 상황에 관한 기억들은 내적 사건들 앞에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 나는 기억을 잘 하지 못해 주변에서 특히 아내에게서 핀잔을 자주 듣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미지의 덩어리거나 상상의 덩어리여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 말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생일이나 여행의 추억이나 만남의 기억들을 소중히 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융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23p.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 나의 기억은 다섯 살 적부터 시작된다. 더 어릴 적 기억도 조금은 있다.


26p.~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대 나는 서너 살이었다.

>> 남근상 꿈, 원초적 계시



52p.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_ 학창시절


63p. 물론 나는 그 재능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기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상만을 그릴 수 있었다.

>> 해야 되는 일은 하지 못하고, 하고 싶어야 잘 할 수 있는 나는 이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 융이 12살에 느낀 것을 나는 불혹에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빈둥거릴 구실을 찾느라 허우적인다.


67p.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85p.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111p.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38p.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 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 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것만은 아니었다.


153p. 이 만남은 외견상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이 만남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길가의 기념비처럼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 무렵 아직 내 인생은 서로 연관되지 않는 개별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지는 그런 천진한 상태에 있었다. 

>> 외견상 무의미한 인사 따위를 건내는 것이었지만 내적으로는 큰 울림이었다. 이성에 대한 감정이란 것이 이런 것이다.


158p. 나는 실제 사물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것에 관해 숙고할 만한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여겼다. 누구나 공상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 쓰여지지 않는 지식은 그것이 쓰여진 종이보다도 값어치가 없다. 체험과 체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게으르고 겁쟁이다. 칠부나 팔부능선 아니면 구부능선쯤일지도 모른다. 내가 늘 멈추는 그 곳이...그래서 딱 그만큼이다.


아름다운 시간들_대학시절


167p.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제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앟는 보통 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기질, 모호한 태도 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깊은 내적인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제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 내 속에 들어와 이야기 하는 듯 하다.


170p.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는 자문해 보았다. “어디서 이런 꿈이 오는 것인가?” ... 그러므로 어떤 것이 배후에서 비밀리에 작용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 다시 말해, 내가 내적 영역을 상기시키는 어떤 것을 넌지시 암시할 적마다 사람들 위에 드리워지던 그 의아함과 서먹함의 차가운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76p.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184p. 그 여름 저녁,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는 술자리에서 한 연설은 그가 존재했었고 무언가 되어야 했던 시절에 대한 마지막 생생한 추억을 되살린 것이었다. 

>> 누구에게나 세상은 공평하게 열려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기죽어 있었고 우둔하였으며 쓰라린 상태에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었나?


186p.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어가고 있다. 나는 왕자가 된 듯한 기분 이었다.


194p.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때까지는 내가 전통적 견해의 바위에 부딪혔다면, 이제는 비인습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과 선입견이라고 하는 강철벽에 부딪힌 셈이다.

>> 미신과 과학의 경계에서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확신은 이런 위험을 모두 걷어내게 했다.


도시의 세계는 학문적인 지식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한정되어 있ㄷ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11p.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소외자가 되는 느낌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 정신의학을 선택하고 나서 느낀 기분.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223p. 사랑하는 남자를 잊지 못해 우울증을 앓는 부인의 이야기. ... 방치로 딸을 잃었다. ... 그녀는 퇴근하면서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났다.

>> 자신의 미필적 고의로 딸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견뎌낸 것이다. 이제 그녀는 평생 죄값을 치르며 살 것이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조직의 병의 예방하고 치료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필요한 자질이며 태도이다.


233p. 두 가지 사례


236p.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 조직의 진단과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와 의미있는 관련성을 찾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아야 한다.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246p.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과 관계.


248p.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 물론 의사는 소위 ‘방법’에 관하여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규격화된 일정한 방식에 매이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론적인 존재는 다만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9p.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60p. 원형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264p.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 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71p. 그는 원형을 과대평가하기도하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지적인 개념만을 가지고 있을 뿐 경험적인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각한 탈선이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 탈선이 지적인 정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 그 세계는 삶의 진실을 소위 명료한 개념들로 은폐하려고 한다.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 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바라는 안락함이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말만 그럴듯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과정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287p.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 작은 진리는 큰 진리를 만나 단지 사실이 되기도 한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345p.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합리적인 우리시대에 사라져버린 신화를 형성하는 환상의 모태이기도 하다.

>> 무의식(환상)의 탐구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었다.


351p.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미지와 그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353p.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소년시절에 나는 성질이 급했다. 그러나 감정이 극에 달하게 되면 언제나 감정이 바뀌어 우주적인 고요가 뒤따랐다. 


357p.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362p.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여행.


환상들


사후의 삶에 관하여


만년의 사상



회고


623p.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햊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 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순간이다.


다이모니온이 작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너무 가깝고 너무 멀다. 다이모니온이 잠잠해진 곳에서만 사람들과 중간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628p. 데몬과 창조적인 것이 무조건 가차없이 나를 마구 휘둘렀다. 내가 계획한 일상적인 일들은 대개 손해를 보았다. ... 나는 내 조부의 담배상자에서 담배를 꺼내 파이프에 담고, 알프스영양 뿔로 꼭대기를 씌운 그의 등산용 지팡이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다.


630p.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 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 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 나도 늙어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을 무렵 삶을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길 바란다. 삶이 의미였건 그렇지 않건 중요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삶은 삶이다. 그것이 의미의 유무로 재단 할 수 있는 것도 재단 할 필요도 없다. 삶은 의미의 유무를 초월하는 것이다. 의미 따위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책의 구성]


이 책은 융이 돌아간 이듬해(1962년) 출간되었다. 융이 자신과 자신의 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매우 꺼려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그가 선뜻 자서전 출판에 동의(조건부 동의이긴 하지만)해 준 것은 그 역시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에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자서전 출판에 동의하고 나서는 편집자(야페)와 매주 하루, 오후시간을 공동작업에 할애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의 제자이자 비서였던 편집자는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하였고 그 기록들을 묶어 자서전이 되었다. 그러나 융이 꼼꼼하게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으므로 융 자신의 집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집자의 말을 빌려볼 때 융의 평생을 이끌어던 꿈에 관한 유년시절의 기억과 그것에 담겨 있는 의미들이 자서전 집필 과정에서 뚜렷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융 자신도 모호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 유년시절에 관해서는 스스로 집필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다시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마치 ‘사명’과 같았던 모양이다. 이후 그는 ‘만년의 사상’ 이라는 장과 아프리카 여행의 기억들, 프로이트와의 이야기들을 보완해 나갔다.


이 책은 그가 처음 이야기한 바와 같이 외적사건에 대해서는 내적체험과 관련있는 내용에 국한되어 있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고백한 것처럼 외적사건은 그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편집자도 외적사건에 대해 때때로 물어보았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력서를 꾸릴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목차가 그의 연대기를 따라가고는 있으나 여느 연대기들과 비교할만 하지는 않다. 제목처럼 그의 기억과 꿈과 사상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의 기억에는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애써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인 듯 ... 그의 깐깐한 요청대로 이 책은 그의 전집에서도 빠져있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652p. 자기실현의 과정

페르소나(집단정신)에서 자아를 분리하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다음 무의식의 의식화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림자(그늘)를 인식하고, 아니마/아니무스를 의식화하며 자기의 메시지를 렐리기오의 태도를 통해 듣고 자기 전체로서의 삶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 이러할 때 진정한 개성화가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은 깨어짐과 아픔이 따른다.


렐리기오(Religio) : 다시 결합한다. 다시 생각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상징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에 자아가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다. 삶에 에너지를 주는 원천, 즉 삶의 기반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마나고자 하는 태도다.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렐리기오의 상태를 견지해야한다.


[보완점 그 외]


이 책은 어려웠다.

융의 기질적 특성은 내게 닮은 구석이 제법 있어 보인다. 단, 그의 천재성 만큼은 털끝 만큼도 닮은 구석이 없음이 확실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쭈쭈먹을때쯤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그를 평생토록 이끌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여러 책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읽기 목록에 넣는다.



덧:

책을 완독하지 못하고 리뷰를 남깁니다. 게으름 탓이라고 하려니 조금 억울하고 빠져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려니 살짝 면구합니다. 다시읽기 주간에 융 할아버지를 좀 더 깊이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내가 할아버지 칭호를 드리는 것은 존경의 의미다. ‘선생’이란 호칭을 드리는 것 보다 한 끗 정도 더 높다.)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IP *.104.9.16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