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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일 11시 09분 등록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2014.09.01 이동희

 

1. 지은이에 대하여 : 카를 구스타프 융 (1875 ~ 1961)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케스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젤 대학과 취리히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한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기초자인 카를 융(1875 ~ 1961)은 의학, 고고학,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창조적 사상가이다.

 

카를 융은 바젤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후 취리히대학교 부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수많은 환자의 심리분석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정신치료법을 확립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학계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연구를 이해하고 확증했으며, 정신 분열증 연구에 정신 분석의 방법을 최초로 적용한 융은 1906년에서 1913년까지 프로이트와 함께 연구 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가 유아 성욕론과 본능적 충동의 강조, 그리고 정신 내용을 개인적 경험에만 한정시킨 것 등에 반대하고 그와 결별하였다. 대신 융은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종족적인 경험도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며, 성적 욕구보다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생각 등을 기초로 분석 심리학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융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강렬한 꿈과 환상 등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하면서 신화와 역사, 연금술 등에 심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때 카를 융이 인간 정신의 연구에 그가 크게 기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의 영혼에는 이른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가설이었다.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이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생각과 관계가 있는 원시적 감정, 공포, 사고, 원시적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이 <집단 무의식>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그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신화, 전설, , 환상 등이 인간 정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부각되었다.

 

<집단 무의식> 개념은 원형이론과 결합되어 종교심리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융의 업적은 오늘날 심리학뿐 아니라 종교와 문학 등 인문 전 분야의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년에 융은 역사를 꿰뚫어보는 시사논평으로도 명성을 얻었으며, 1961 85세를 일기로 퀴스나흐트에서 죽었다.

 

대표적인 저작으로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황금꽃의 비밀>, <정신의 에너지에 대하여>, <심리학과 종교>, <심리학과 연금술>, <아이온>, <욥에의 회답>, <인간과 상징> 등이 있다.

 

2.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11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들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제대로 다루기는 너무나 일반적이다.

 

P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그것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거창한 현상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P24

어머니 친구는 보덴호숫가에 성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호숫가를 떠날 줄을 몰랐다. 햇빛은 수면에 반짝이고, 기선이 일으키는 파도가 호숫가로 밀려와 땅 위의 모래에 잔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호수는 끝도 없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 호수의 광활함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비길 데 없는 장관이었다.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물이 없이는 아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P26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감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나중에는 인생 초기의 이러한 인상들이 수정되었다. 나는 친구를 믿었다가 그들로 인해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P27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내 아니마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P28

어머니는 나에게 매일 저녁 올려야 할 기도문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을 때 그 기도문은 나에게 다소 안도감을 주었으므로 나는 즐겨 기도를 올렸다.

 

P34

‘주 예수’는 나에게 결코 온전한 실체가 될 수 없었으며,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전폭적으로 사랑할 만한 대상도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대역인 그 지하의 신이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P37

, 이들 점잖고 쓸모있는 건장한 사람들은 나에게 낙천적인 올챙이들처럼 여겨진다. 그 올챙이들은 아주 얕은 빗물웅덩이에 가득 모여들어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꼬리치고 있으나 바로 다음날에 웅덩이가 말라버릴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P39 나는 종종 그 어둡고 외진 방에 몰래 들어가 그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려고 몇 시간이나 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아름다움이었다.

 

p42

어머니가 '이교도들'이라는 말을 할 때 가벼운 경멸 투의 그 어조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의 '계시'를 듣는다면 깜짝 놀라며 거부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처를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P44

나는 교회에 가는 것을 아주 귀찮아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때만은 예외였다. 크리스마스는 내가 마음껏 축하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독교 축제였다. 다른 축일들은 거의 내 마음을 별로 끌지 못했다.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날은 섣달 그믐밤이었다. 강림절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밤과 폭우, 바람, 그리고 집안의 어둠과도 연관이 있었다. 뭔가 속삭이고 뭔가 왔다갔다 했다.

 

P45

그 유년시절에 나는 시골학교 학우들과 사귀는 동안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집에 있을 때와는 달라졌다. 나는 그들과 장난도 치고 집에서는 결코 생각도 못했던 그런 일을 스스로 꾸미기도 했다. 물론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온갖 것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잘 d라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나의 변화가 학우들의 영향 탓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P45

나는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는 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츰 인식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차 있는,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했다.

 

P45

나의 밤기도는 낮을 잘 마감해주고 편안히 밤과 잠으로 인도해주는 종교의식적인 피난처인 셈이었다.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적 안정이 위협을 받았다.

 

P46

그 담 앞쪽에는 비탈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 약간 솟은 돌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 돌은 나의 돌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돌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P48

아무도 나의 비밀을 발견하여 망가뜨릴 수 없었다. 나는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한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다.

 

P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50

의식의 차원에서 나는 기독교적 의미로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면서 늘 깎아내리거나 땅 밑에 있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질문이 항상 따라 붙었다. 종교적인 가르침이 나에게 주입되면서 이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라는 말들을 듣게 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신비로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야.’

 

P52

하지만 이런 연관성은 훨씬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P59

사태가 아주 나빠질 때는 다락방에 있는 나의 은밀한 보물을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를테면 내가 쓸쓸할 때도 나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비밀, 즉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인형과 돌을 간직하고 있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P59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P60

나는 아직 수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수는 꽃이나 동물, 화석도 아니었다. 수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헤아림을 통해 생겨나는 수량에 불과했다. 혼란스럽게도 이 수량은 이제 소리를 의미하는 문자로 대체되어, 말하자면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이상하게도 급우들은 이 수들을 다룰 줄 알았으며, 자명한 것으로 여겼다. 아무도 나에게 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했고, 나는 그러한 의문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나의 어려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P64 그 후 나는 학교로 다시 가야 할 때가 되면, 그 즉시 기절하기 일쑤였다. 부모가 숙제를 마무리하라고 재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반년 이상이나 학교를 쉬었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몫이었다.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몇 시간이고 공상에 잠길 수도 있었으며, 어디든 물가와 숲 속에서 가만히 있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나는 사나운 전투장면이나 공격을 받아 불타는 옛성곽을 그리기도 하고 전체 지면을 만화로 채우기도 했다.

 

P64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는 나무들, , , ,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그 세계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어렴풋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P65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P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P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 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P73

그 무렵 내가 괴테와 친척간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낯선 사람들에게서 먼저 들었기 때문에, 그 무렵 내가 거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조부가 괴테의 서자였다는 불쾌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P74

나는 마비되는 듯한 느낌 속에서 단지 다음과 같은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말자. 무언가 무서운 일, 생각하고 싶지 않을 일, 결코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왜 안 되는가? 왜냐하면 너는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인가? 살인, 아니다. 그것일 수 없다. 가장 무서운 죄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이며 그것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이 죄를 짓는 자는 저주를 받아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P78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P78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P78

하느님의 의지란 무엇이며 하느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전에는 복종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야말로 이런 절망적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P80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금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P80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P85

그런 때는 저 돌 위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복된 평온함이 찾아왔다. 돌이 온갖 의혹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자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을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P89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더 나은 표현을 쓰면,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89

자연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의 자기표현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하지 않은 것처럼 하느님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하느님의 형상이 단지 인간하고만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높은 산, , 호수, 아름다운 나무, , 그리고 동물 들이 인간들보다도 하느님의 속성을 훨씬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인간들은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걸치고 비열함과 어리석음, 허영심, 위선과 혐오스러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P92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런 종잡을 수 없는 말과 그 말이 풍기는 짙은 모호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들은 별생각 없이 온갖 모순, 예를 들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여 당연히 인간의 역사를 미리 내다본다는 식의 모순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느님은 인간들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그렇게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말도록 금하고, 심지어 지옥불길의 영원한 저주로 벌을 주기까지 한다.

 

P93

하느님은 자신의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의지를 무력한 인간들에게서 철저히 실현되도록 할 수 있는 존재다. 하느님의 의지를 아는 체하는 자들 중에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켰는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P95

나는 자문해보았다. "도대체 누가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인가? 누가 남근상을 성소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전시할 정도로 무례한 짓을 한단 말인가? 하느님이 이토록 추악하게 자신의 교회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나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한 자는 누구인가?" 나는 그와 같이 말하고 그렇게 행동한 존재는 하느님 아니면 악마일 거라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들과 이미지들을 고안해내는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95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가?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을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겼다.

 

P96

나는 모든 결정적인 일에서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게 되었다. 내가 더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때 답을 준 자는 이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P101

나 또한 내 안에서 이러한 고태적인 성질의 어떤 요소를 인식한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항상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닌 재능을 부여한다. 내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나 스스로를 속이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16

하느님이 지선이라면 그가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이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P120

숲 속을 벌거벗고 방랑하던 원시인들까지도 그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신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기 위해틀어박혀 앉아 있는철학자들이 아니었다.

 

P130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 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 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P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P132

나는 철학사에 관한 작은 입문서를 읽었고, 그로 인해 이미 사색되었던 모든 사상에 대한 일종의 개관을 얻게 되었다. 만족스럽게도 나는 나의 많은 영감이 그 사상들과 역사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P134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P136

나는 확실히 붙임성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P140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P143

그러면 제 1의 인격과 직업선택에 대한 걱정들은 1890년대의 작은 삽화 정도로 여겨지면서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면 나는 일종의 환락 뒤의 뉘우침 같은 것을 느꼈다. , 즉 제1의 인격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며, 조만간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가져야만 했다.

 

P144

나 자신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P166

나는 학우들이나 교사와 같은 유력한 윗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그들이 나에 대해 의심과 비난에 찬 의견을 내 놓을 것이기 때문에, 나의 꿈을 지원해줄 후원자를 찾을 가망도 없을 것이었다.

 

P167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 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기질, 모호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등 이었다.

 

P172

나는 나 자신이 점점 더 제1의 인격과 동일화되는 것을 느꼈으며, 이러한 상황은 훨씬 더 포괄적인 제2의 인격의 단순한 일부임이 판명되었다.

 

P174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 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 불확실감이 생겨난다.

 

P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을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P176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P179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P182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P194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P197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P198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발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2의 인격은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좋지 않은 때에 반복해서 나타나 나 자신을 돌이켜보도록 밀어붙였다.

 

P202

나는 어디선가 다이아몬드계곡을 지나온 것도 같은데, 내가 가지고 온 광석표본이 자갈 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가 없었다. 그것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 자신까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P210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P211

정신병을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P217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P226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성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P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 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 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P243

겉으로 보게 되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P246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P251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P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니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P260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의 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P267

내적 체험의 모험, 즉 영적인 모험은 많은 사람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정신적인 실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파문에 해당한다.

 

P272

단지 어떤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류와 실패로부터 배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P278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연구를 제한하고 진리를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경력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P278

하지만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신경증이 성적 억압이나 성적 외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떤 사례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맞았으나 다른 사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P279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P287

마음의 진동 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P287

왜냐하면 신성한 힘이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한 힘의 체험은 사람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추락시키기도 한다.

 

P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P300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P303

나는 여전히 프로이트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이런 분열된 태도는 내가 아직도 그 사태를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성찰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모든 투사의 특징이다.

 

P308

분석이 그들에게 뭔가 보다 나은 다른 것을 깨우쳐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론 그 자체로 그들을 묶어놓고 단지 합리적이거나이성적인 결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며 유치한 것들을 버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정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의지하여 설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릴 수 없다.

 

P309

프로이트가 이론과 방법을 동일시하고 그것들을 교리화하려는 의도를 밝혔을 때 나는 더 이상 그와 협력할 수 없었다.

 

P310

나는 고독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희생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말이다.

 

P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개별적인 환자의 심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하자면 환자의 눈으로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에 대하여 그때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P312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 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P315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P316

너는 이제 신화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그러자 갑자기 내가 무엇을 이뤄왔는지 의문이 생겼다.

 

P317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 속에 살고 있는가?

 

P320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P321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P322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그런 일은 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과 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P325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요가는 내가 안정되어 무의식과 더불어 다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때까지만 했다.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P326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P328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P332

그러나 이런 영웅적 이상과의 동일시는 끝나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순종해야 할 대상, 자신의 의지보다 높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P338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나를 위로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코 인간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

 

P341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P341

매일 저녁 나는 글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적어놓은 것은 아니마가 왜곡할 수 없을 것이고, 그걸 가지고 책략을 쓰지도 못할 것이었다.

 

P342

아니마의 말은 대개 유혹하는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P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P343

10년 동안 나는 기분이 언짢고 안정을 잃었다고 느끼면 늘 아니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 무의식에 무언가 배열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아니마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또 무엇을 하려는 거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소? 나는 그것을 알았으면 하오!” 조금 저항을 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본 이미지를 항상 도출해냈다. 그 이미지가 나타나면 불안이나 우울은 사라졌다. 내 감정의 에너지 전체는 그 이미지 내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면 나는 그 이미지들에 관해 아니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꿈을 이해하듯 그 이미지를 가능한 한 잘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P344

많은 환상이 든든한 토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내가 우선 인간적인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현실이란 과학적인 이해를 의미했다. 무의식이 내게 가져다 준 통찰을 통해 나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과제의 요점이 되었다.

 

P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P345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것이다.

 

P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나는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P347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P349

적합하면 그것은 나타난다!” 지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거기에 대해 자연과학적 인식을 장황하게 떠벌릴 것이고, 심지어 그 모든 체험을 변칙적인 것이라 하여 지워버릴 것이다. 변칙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암울한 것인가!

 

P350

이로써 내가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원초적인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P351

나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아주 귀중한 보배였다. 내가 그 영혼의 말을 받아 쓴 것은 내 존재가 비교적 전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P351

인생 후반기에 내가 이루어 놓은 것도 모두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있었지만 말이다.

 

P351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미지와 그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대개 소훌히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미지들이 그대로 떠오르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 않는다.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구나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결국 무의식의 부정적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P353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이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P354

내가 심적 체험의 내용이진실이며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체험으로서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제시해줄 수만 있다면, 바깥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일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노력을 요할 것이었다.

 

P357

그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P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었다..자기의 표현인 만다라로 인하여 나로서는 궁극적인 것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P359

내 동반자들은 지독한 날씨를 탓하기만 했지 그 나무는 아마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꽃이 핀 나무와 햇빛에 빛나는 섬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그가 왜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알겠다.’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P360

나는 그 꿈속에 삶의 목표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중앙이 그 목표다. 누구도 중앙을 넘어서 갈 수 없다. 그 꿈에서 나는자기가 방향성과 의미의 원리이며 그것들의 원형임을 이해했다. 그 안에 치유의 기능이 들어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는 내 신화에 대한 예감을 처음으로 가졌다.

 

P365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P365

분석심리학은 본질적으로 자연과학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다른 학문보다도 훨씬 더 관찰자의 개인적인 가설에 영향을 받기 쉽다. 그러므로 적어도 심각한 판단착오만이라도 범하지 않으려면, 심리학자는 역사나 문헌에서 찾은 유래에 많이 힘입어야 한다.

 

P374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P374

나는 그 모든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고 거기에 관해 사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였다. 거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P377

내가 심리학을 위해 이루려고 한 것은 자연과학영역의 일반적인 에너지론과 같은 그러한 통일성이었다. 나의 저서 <정신의 에너지에 대하여(1928)>에서 내가 목표로 삼고 추구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P382

목수의 아들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우연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인간 예수 이외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메시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P387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되고 예고된 고통을 죽을 때까지 문자 그대로 체험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결과라고는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했다.

 

P398

오늘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직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P403

사색하고 환상에 몰두하는 은신처였는데, 대개 환상은 매우 불쾌한 것들이었고 사색은 고통스러웠다. 그곳은 영적 집중의 장소였다.

 

P407

시간은 어린이다. 어린이처럼 놀며 장기를 둔다. 어린이의 왕국. 이것은 우주의 캄캄한 곳을 두루 다니며 별처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텔레스포로스다. 그는 태양의 문에 이르는 길, 꿈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P421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 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P429

내가 끝없는 시간의 연속과 그 가운데서도 거의 변함이 없는 존재의 모습들로 말미암아 깊은 감명에 여전히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내 회중시계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럽인의 가속화된 시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는 이 사람들 머리 위에 위협적으로 드리운 불안하고 어두운 구름이었다. 나는 문득 이 사람들이 사냥꾼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사냥꾼냄새를 맡고 있는 사냥감 짐승들처럼 여겨졌다. 그 사냥꾼은 다시 말해 시간의 신으로서 아직 영원을 연상케 하는 이들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날과 시, 분과 초로 조각조각 잘게 쪼개게 될 것이었다.

 

P439

우리는 그것을 의식 속에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충분한 이유 없이 다시 그러한 발언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P439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확인으로 그쳐야 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P451

우리는 순전히 질투심으로 인디언의 순진함을 슬쩍 비웃고 우리가 그들보다 영리하다고 여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빈약하며 쇠락한 가운데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한다.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P452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P457

여기서 의식의 우주적 의미가 더한층 분명해졌다.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인간인 내가 보이지 않게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그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로 완성되도록 해주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왔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인생과 존재를 정확하게 계산된 기계, 즉 인간정신과 함께 예지되고 예정된 법칙에 따라 무의미하게 계속 가동되는 기계라고 여기고 있음을 생각지 못한다. 그와 같이 암담한 태엽장치식 환상에는 인간과 세계와 신의 드라마가 없다. 거기에는 '새로운 해안'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날'이 없다. 단지 계산된 황량한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P463

나의 흑인들은 대부분 뛰어난 성격감정가임이 증명되었다. 그들의 직관적인 인식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기가 막히게 흉내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의 특성을 꿰뚫고 있는 데 놀랐다. 나는 거리낌없이 그들과 오랫동안 환담을 나누었는데 그들은 그런 대화를 매우 좋아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P467

그것이 여자에게 품위와 자기확신감을 주었다. 여자는 강력한 동업자인 셈이었다. '여성의 평등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동반관계가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원시사회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여자가 바라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충분히 잘 조절되고 있다.

 

P490

인도의 정신성이 선과 악을 똑같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기독교인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에 빠진다. 이에 반하여 인도인은 선과 악의 바깥에서 자신을 느끼거나, 명상이나 요가로써 이러한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

 

P491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대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P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P496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자기의 구현자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P500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하고, 의식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고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축소시켜버린 그 거대한 모습들을 시인이 다시금 일깨우고 선견지명으로 살려낸다.

 

P516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살되고 빼앗기거나 약탈당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기도 했으나, 한 순간 그런 느낌도 스러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지나간 듯이 여겨졌다. 하나의 기정사실만 남았다. 이전의 일들과 다시 어떤 연관도 맺지 않고 말이다. 어떤 것이 떨어져나갔다거나 빼앗겼다는 아쉬움은 이제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나라고 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것만을 가지고 있었다.

 

P521

나는 우주공간을 떠다니며 우주의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허공이지만 가능한 모든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이었다 .

 

P533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우리는 타고난 구조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와 사고로써 이 세계와 관련을 맺는다. 신화적인 인간은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신화화야 말로 쓸모 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P535

우리는 대부분 무의식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한 해답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P547

많은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미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 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생전에 습득하지 못한 의식적 부분을 죽음에서 얻으려고 요구하게 된다

 

P552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인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 앞에서 수를 예로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이러한 과정은 성공적인 꿈 분석이 이루어질 적마다 확실한 방법으로 항상 반복된다. 그러므로 꿈의 진술과 관련하여 교조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해석의 획일화가 눈에 띄는 즉시 우리는 그 해석이 교조적이며 따라서 비생산적임을 알게 된다.

 

P561

부처는 제자들이 니다나(인연)사슬을 명상하는 것, 다시 말해 출생, , 늙음과 죽음,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원인과 작용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유익하리라고 여겼다.

 

P565

노년에 인간은 그의 내면의 눈으로 추억들을 펼쳐보며 과거의 내적외적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저승 전 단계거나 거기서 존재하기 위한 준비와도 같으며,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철학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도 같다.

 

P566

창조의 근본에 불완전함이나 근원적 결함이 없다면 어찌하여 창조충동, 완성에 대한 갈망이 생기겠는가?

 

P567

카르마가 남아 있어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 혼령은 다시 돌아오고 싶은 욕구에 빠지고 도로 삶을 취하게 된다. 심지어 무엇인가 더 완성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P570

,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P571

다른 쪽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것이며 우리의 의식세계는 일종의 환각이거나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하나의 가상적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다.

 

P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서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때는 개인적인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위들 때문에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고집할 것이다. 아마도 나의재능이나 나의미모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P572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질투와 시기를 낳는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한한 것이 그 관계 속에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P573

내가 극단적으로 제약을 당할 때 비로소 무한한 것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은 나는 다만 그것에 불과하다!”는 체험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아주 좁게 제약되어 있다는 의식만이 무의식의 무한성에 접속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성에서 나는 나를 유한하면서도 영원하며 이것이면서도 저것으로서 경험한다. 내가 나를 개인적인 결합 속에서 궁극적으로 제약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알게 되면서 또한 무한한 것을 의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닌다. 오직 그러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P583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P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도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未知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P623

사람들이 나를 현명하다거나 지자(知者)’라고 한다면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P623

어느 랍비에 관한 오래된 훌륭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제자가 와서 이렇게 물었다. “옛날에는 하느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왜 그렇지 못합니까?” 랍비가 대답했다. 오늘날에는 그럴 정도로 허리를 깊이 굽힐 줄 아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P624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P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P625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P629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 대해 실망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나는 인간에게서 경이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스스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다.

 

P630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자는 빼어난 통찰을 지닌 사람의 모범이다. 그는 가치와 무가치를 보았고 경험했으며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할 수 없는 영원한 의미로 돌아가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노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지능의 어떤 단계에서도 이 유형이 등장하며, 그것이 늙은 농부든 노자와 같은 위대한 현인이든 동일한 유형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저자의 삶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융의 저서들은 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난 뒤에 느낀 점은 그 또한 치열하게 산 한 사람이지만 목표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떠올려지는 영감과 무언가 계속 들려오는 부름에 응답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 것이다.

 

하루를 무의식과 신화 속에서 살더라도 삶이라는 자신의 현실을 잘 절제하며 살아갔기 대문에 한 평생을 온전히 자신이 사명이라고 여기는 이 일에 몰두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지금 무의식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의 마음 혹은 모르는 무의식 저편에서 나에게 손짓하고 오라고 하는 그 곳은 어디일까? 그 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금 귀 기울여 보게 된다.

 

저자의 자서전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사례로 그의 분석 심리학의 역사와 발전 과정 그리고 그 사이 사이의 고민들을 털어 놓은 연구 노트와 같다. 그래서인지 자서전으로서 한 사람의 고뇌를 읽는다기 보다 한 학문의 설립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는지를 보는 듯하다. 이 말은 분석 심리학과 융이 따로 떨어져서 이야기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철저히 이 분야에 매진하였고 결과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단순히 성공 목적 달성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삶으로서 승화시킨 긴 여정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서전을 읽게 되면 성공이나 실패 혹은 역사적 사실의 이면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한 사람의 내면과 그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양한 인간 관계와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고 사실이므로 공감이 가게 되며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 자서전의 저자는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는가? 그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은 어떠했나를 알게 되면 그 인생에 대한 공감은 실로 클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은 이런 삶의 여정과 학문의 발전을 자신의 깨달음과 연구 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 학문의 입문서로서도 한 사람의 전기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나는 고독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희생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말이다.

 

이만한 깨달음과 실천을 하려면 어떠한 각성이 있어야 할까? 과연 난 지금 고독한가?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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