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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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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일 11시 42분 등록

스페인여행의 첫째날....

깃발이 펄럭인다


빗속에 잠겨 있는 사람처럼 오래도록 내 몸은 비릿해졌다.

 떠나던 날에도 비는 내렸다. 떠나 있는 동안에도 내내 내렸다는 비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날에도 내리던 비였다. 떠나지 않았다면, 빗물에 푹 잠기어 삭았으리라. 헤엄치지 못해 허우적거렸으리라. 강렬한 태양 하나만을 원할 정도로 다른 기대와 설렘은 있지 않았다. 분명 바쁠 것 없는 삶이었음에도 정신없이 마주한 여행―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은 물기 없이 고스란히 뜨거운 땅이었다.

 현실의 삶과 평행선으로 달리다 보면 섬뜩하리만치 끌리는 단어들이 있다. 혁명이란 단어가 그러했고.. 스페인은 산티아고와 카탈로니아 찬가와 돈키호테란 단어의 삼중주였다. 스페인 내전과 거기서 파생된 개인, 시민들의 움직임은 유례없는 일이어서인지 오래도록 곱씹어 묻고 싶다. 프랑꼬 체제도 막을 내린지 40년쯤 되어간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그 기억들이 현재의 스페인에 어떻게 전해져 올까. 그들이 부르짖었던 자유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이국땅에서 가지는 관심치고는 지나치게 국내적이다. 나는 아직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머물고 있는가. 그저 대한민국의 신문기사를 보지 않는 열흘 남짓이 그저 꿈이었던 듯했다.

 어쨌든, 타국에서 한국인임을 자각하는 상황이 즐거움 속에 이뤄지지 않은 중에 가이드는 스페인과의 친근함을 강조하고픈 것인지 제일 먼저 인도한 곳이 황영조 기념 동상 앞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의 마라톤 코스, 몬주익(MontJuic) 언덕 올림픽 주경기장 앞에 마라톤 우승자 한국인 황영조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스페인에서 나서서 만들어 줬을 리는 없고 당연 한국이 나섰고 바르셀로나와 경기도는 협력 관계에 있다고도 한다.

 몬주익 언덕에서 기꺼이 ‘나 한국인이오’를 외치다 전망대에서 바르셀로나 전경을 바라본다. 시내와 지중해가 펼쳐져 보인다. 어느 높은 곳에 올라서서 시내를 내려다볼 때의 느낌은 이다지도 같을까 싶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 멀리서 바라볼 땐 늘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이제 곧 저곳 어딘가를 걸어다닐 것이다. 그때 들여다보면 정지된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생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그리하여 온갖 감정의 교차들이 전전하는 생의 모습들을 보게 되겠지만, 아주 멀리서 바라볼 때면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깨끗한 그림으로 바라보고 싶다.

 몬주익(MontJuic)은 까딸란어로 ‘유대인의 산’이다. 중세에 유대인이 많이 모여 살았고 이곳에서 로마 제국 이전부터 있던 유대인 공동묘지가 발견되어 유대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현재에도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공동묘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몬주익 언덕에서 유명한 것은 올림픽 경기장, 몬주익성, 미로 미술관, 카탈루냐 미술관 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건물들과 스페인광장을 지나쳐 시내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서 바르셀로나의 고집을 만난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자치지방 바르셀로나주의 주도(州都)다. ‘까딸란’이라 불리는 까딸루냐 사람들은 까딸란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그들 문화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들은 프랑꼬 사후 1977년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스페인 중앙 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의 꿈을 바라고 있다 한다.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까스띠야 지역과 적대관계였기도 했고 스페인적인 것보다 유럽적인 것을 더 선호하는 까닭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라고 한다. 까딸란 사람들은 과묵하고 행동을 먼저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질이 단단한 결속력으로 뭉쳐 매번 그들의 독립을 주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의 중심이었던 곳, 여전히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곳, 바르셀로나. 그 옛날 아나키즘의 향수를 이곳 바르셀로나의 펄럭이는 깃발과 택시와 표지판에서, 신호등에서 마주친다.

 이들이 독립을 원하는 기저를 어렴풋이 알겠지만 그만큼 모르기도 하다. 곳곳에 펄럭이는 중앙정부와 대립된 까딸란의 표지들이 안쓰럽기도 유치해보이기도 하다.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껏 책으로 접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다른 지역의 경계의 대상이라 정권을 잡기에도 어렵다는 이들의 외침이 그들의 관계가 아련하게 여겨질 뿐이다. 어쨌든 바르셀로나는 상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지역으로서 풍부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 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도 하는데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그들의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다. 스페인적 기질이라면 열정의 플라멩고를 떠올리며 시에스타 속에 한잠을 즐기고 춤추고 노래하는 여유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런 기질이 강한 곳이 세비야다. 그래서 세비야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인생을 즐기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일하면서 이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들이 있다 한다. 그냥 짠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곳으로 람블라스(Ramblas Street)거리를 말한다. 북쪽 까딸루냐 광장에서부터 남쪽 지중해 앞 포르탈 데 라 파우 광장까지의 1.3km 정도의 거리이다. 서머셋 몸이 ‘세계에서 가장 매력 있는 거리’라고 했다는 피카소, 달리, 미로가 자주 거닐던 곳을 나도 걸어 본다. 사람들로 꽉 찬 거리는 발디딜틈이 없다. 그들이 거닐던 그 시절에도 지금과 같았을까. 이 거리는 전통시장 보케리아가 있고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 꽃집과 기념품 가게, 음식점들이 가득한 이곳이 예전에도 이 모습이었을까. 당연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도 여럿 만나게 된다. 양쪽으로 높이 솟은 플라타너스가 매력적인 이 곳, 지금 걷고 있는 사람을 절반쯤 덜어내고 플라타너스 아래 까페에 앉아 이 거리를 바라본다면 나도 서머셋 몸이 느꼈던 감흥을 느끼게 될런지, 사람 붐비는 곳을 꺼리는 내겐 이 람블라스 거리의 생동감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갓 상경한 시골 아이처럼 두리번거린 채 이제 알기 시작한 스페인을 찾기 위해 둘러본 플라타너스 사이의 하늘과 아파트의 경치가 남아 있다. 그 언젠가 울렸을 거리의 생동감보다 고즈넉한 산책로의 길, 그냥 생활의 무대면 좋으련만. 하긴 그들에겐 생활무대일 터 쓸데없이 관광객으로서 관광풍의 거리가 아니길 바라는 이 마음은 뭔가.

 이 거리를 내려다보는 아파트 거주민들은 어떤 느낌일까를 쓸데없이 생각하며 거리의 끝에 이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항구 ‘포트벨’이 나타난다. 그리고 60m 높이의 콜럼버스 기념탑을 만나게 된다.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때 세워진 이 기념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는데 보다 가까이서 볼 생각은 못하고 멀리 마드리드를 가리키는 콜럼버스를 나 또한 눈으로만 바라봤다. 저기 우뚝 솟은 콜럼버스가 빠알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작년, 콜럼버스는 위엄있는 모습에서 벗어나 나이키가 디자인한 축구팀 유니폼을 입었었다. 매우 펄럭이는 옷자락을 포대기처럼 둘러쓴 콜럼버스의 모습. 높이 올라가 유니폼을 입힌 것은, 재정적자다. 바르셀로나시는 이렇게 나이키 유니폼을 콜럼버스에게 입히고 11만4000유로(약 1억7000만원)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어쨌든 시는 신대륙 문물을 찾아 떠나셨던 모험가에게 최신 옷을 입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재정적 이익도 짭짤하게 얻었으니 시민들을 닦달치 않고 재정위기를 극복하려는 이 몸부림, 그냥 웃어줄만하지 않은가.

 여행의 첫날이었다. 어두운 새벽 기내에서 확 끼치던 죽은 육류의 냄새, 그것을 맡고 구토를 느꼈지만 오히려 꾸역꾸역 먹고서는 가시지 않은 체증을 들고 바르셀로나를 걸었다. 내 위장의 체증은 어느덧 머리로 기어올라 나를 완전한 체증으로 몰아세웠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질문도 당연 흥분도 없었다. 나만 이럴 소냐, 다행히 여행에 대한 기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은 알랭 드 보통의 말들로 위안 삼으며 강박증적으로 무엇을 느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날렸다.

 이 현재의 터전에서 과거를 불러일으키려던 생각도, 미래에 대한 물음도 모두 던져버렸다. 이제 시작인걸, 아무런 생각이 없다 해도 시종일관 쓸데없는 생각이 용솟음쳐도 굳건하게. 볼 것이고 걸을 것이고 들을 것이다. 첫음절에 포인트를 둔 스페인 억양을 따라하며~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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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6 15:26:21 *.175.14.49

스페인  억양이  경상도랑  비슷한가  했네요.

피카소와  달리를 좋아하는 이들은  좋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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