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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일 13시 36분 등록

콩깍지가 벗겨질 때 신화(神話)의 처방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진짜로 사랑을 해 본 남녀는 물론 책으로 연애를 배운 갑남을녀들도 다 안다. 사랑은 일종의 호르몬 과잉 분출 상태다. 뇌는 살짝 정상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볼 수 없다. ‘콩깍지에 씌었다는 표현은 사랑의 인지왜곡을 거두절미 단도직입한다. ‘사랑에 빠졌다(falling in love)’는 말을 한국어와 영어 모두에서 쓰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이나 서양이나 사랑의 맨홀 또는 복권스러움을 대놓고 인정한다. 뽕 맞은 약효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2년에서 3년이라는 게 상식이다. 왜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정도일까? 인류의 종족보존을 위한 매커니즘일까? 그 성관계를 통해 태어날 지도 모르는 자녀를 안전하게 양육하기 위한 자연의 치밀한 설계 말이다. 어느 날 아침 홀연히 멀쩡해졌을 때 어떻게 할까? 대안이나 처방이 있나? 어떤 이들은 상대를 바꿈으로써 사랑의 경험을 계속 경험하려고 한다. 이혼하거나 혼외 관계를 병행한다. 사랑의 경험은 살아있음의 황홀과 통한다. 엘리자베쓰 퀴블러로스씨는 오직 사랑만이 죽음의 순간까지 빛난다고 말했다.

 

사랑에 대해, 특히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에 대해 신화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신화가 오랜 세월 집단지성의 조탁을 거쳐, 인류 공통의 무의식에 기반한 지혜를 전수하는 것이라면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언급을 안 할 리가 없다. 왜 여기에 관심을 갖냐고? 내가 딱 그 시기 문지방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만난 지 2년 반 되었다. 1년 만에 결혼을 했고 1년 반 같이 살았다. 슬슬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얼굴이 검은 게 보인다. 엄마에게 저 남자를 처음 데려갔을 때 얼굴이 검다고 난리가 났었다. 광산촌에서 간경화로 죽은 이들을 많이 본 엄마는 그 검은 얼굴을 술독에 쩔어서라고 단정했고 건강진단서를 보기 전에는 딸을 줄 수 없다고 반대했다. 뭐가 검냐는 나에게 엄마는 저것이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고 했었다. 근데 요즘 정말로 얼굴이 검다. 결혼 사진에는 더 검었다. 왜 몰랐을까? 내게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 기르느라 바빠서 이런 생각은 해 보지 못했을까? 그건 아니다. 생존의 문제가 있더라도 변한 사랑은 체감 온도처럼 민감했으리라.

 

삼선슬리퍼, 반바지 차림으로 편의점에 생필품을 사러 나가는 동네 주민의 모습으로 두 개의 신화를 들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이키와 에로스> 신화다. 트리스탄은 현대가 시작되었다는 12세기에 만들어진 거고, 사이키는 그리스로마신화다. 로버트 A. 존슨의 책 두 권 <WE,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심리학적 이해> <SHE, 신화로 읽는 여성성>을 통해서다. 트리스탄신화로 낭만적 사랑을, 싸이키 신화로 여성성을 탐색한다. 일년의 절반은 태어난 서구에서, 절반은 인도 등 동양에서 보내는 존슨의 책은 시집처럼 얇고, 깊다. 신화 1개를 가지고 저런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썰을 푼다. 신화를 코미디프로처럼 즐겁게 읽고 있는 양반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트리스탄의 어머니는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던 날 아들을 낳고서 죽었다. 트리스탄은 여차저차 해서 마크왕의 기사가 된다. 마크왕은 트리스탄의 어머니인 블랑쉬플레르의 오빠다. 트리스탄은 마크왕의 아내를 구하러 가는 사절단으로 자청한다. ‘아름다운 이졸데는 아일랜드 왕국의 공주였다. 역시나 이러저러해서 트리스탄은 자신이 아니라 마크왕의 아내로서 아름다운 이졸데를 데려오게 된다. 아름다운 이졸데의 어머니 마법사는 이졸데와 마크왕의 첫날밤을 위해 특제 와인을 조제한다. 마시면 3년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랑의 묘약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배 안에서 이 묘약을 실수 또는 운명에 의해 같이 마셔버린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왕국에 도착해서 이졸데는 마크왕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미 사랑에 빠진 연인은 밀회를 계속한다. 결국 발각이 난다. 격노한 마크왕은 이졸데는 떠도는 문둥이에게 주어버리고 트리스탄에게는 사형시키라 명령한다. 둘은 탈출한다. 함께 모로이스 숲으로 간다. 그 숲에서 3년간 헐벗은 채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둘은 행복했다. 모로이스 숲에서 4년째 되는 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왕국으로 돌아온다. 마크왕이 둘을 용서한다. 둘은 여전히 밀회를 계속한다. 트리스탄이 결국 다른 나라로 떠나고서야 밀회는 중단된다. 그곳에서 트리스탄은 용맹한 기사가 되고, 그 나라 왕의 딸과 혼인한다. 그녀는 흰 손의 이졸데라고 불린다. 혼인한 뒤에도 트리스탄은 이졸데에 대한 신의 때문에 신부와 육체관계 갖기를 거부한다. 결국 트리스탄은 죽는다. 이졸데여왕이 트리스탄의 소식을 듣고 와서 옆에서 같이 죽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커플은 한 눈에 반해 불꽃같이 사랑했으되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연인들 계보의 첫번째 조상일거다. 죽음으로 마무리한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의 원형이다. 안타까움이 한숨처럼 퍼진다. 트리스탄과 아름다운 이졸데의 사랑 뒤에 트리스탄과 흰손의 이졸데, 이졸데 여왕과 마크왕의 사랑, 또는 결혼이 가려져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신의를 다하자면 다른 두 명을 불행하게 해야 한다. ‘신화계의 슈퍼스타 조셉 캠벨은 트리스탄이 고통을 당하더라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을 현대의 출발로 본다. 개인이란 것이 중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로이스 숲에서의 3년 동안 그들은 헐벗고 못 먹었지만 행복했다. 콩깍지가 씌인 상태의 비유다. 3년간 효과가 지속되는 마법의 묘약을 마시는 때가 바로 사랑, 또는 콩깍지가 눈에 덮어씌워지는 순간이 아닌가? 3년을 보낸 후 왕궁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을 통해 이 신화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랑에는 끝이 있다, 콩깍지는 3년이면 벗겨진다. 이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럼 콩깍지가 벗겨져 변해버린 사랑을 다루는 과제에 대해서도 이 신화는 처방을 내리고 있을까?결론부터 말하면 신화는 답을 찾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났다. 트리스탄의 과제는 융심리학자 존슨과 함께 현대인에게 그대로 부과된다. 다른 대안을 탐색해 본다면 답은 YES.

 

로버트 존슨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여왕의 사랑과 트리스탄과 현실적인 여인인 흰 손의 이졸데의 사랑을 구분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사랑은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본다. 대놓고 두 가지 사랑에 모두 성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내(남편)와 애인을 모두 가지라고? 그건 아니다. 융심리학자인 존슨은 이졸데여왕은 내면의 아니마로 본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개념은 융심리학의 것이다. 남성 안에는 여성(아니마), 여성 안에는 남성(아니무스)이 있다. 나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고르게 계발되고 서로 소통하도록 하는 게 트리스탄과 아름다운 이졸데여왕의 사랑의 상징이다. 그 기반 위에서 현실 속의 배우자, 연인과는 현실적인 사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이 트리스탄과 흰 손의 이졸데의 결혼이다. 왜 남녀간의 사랑에 이 모든 것이 부과되었을까? 암흑시대라는 중세를 종결하고 현대로 오면서 분리수거 없이 무더기로 폐기했던 것 중에 이전에는 종교생활의 영역으로 간주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던 것도 휩쓸려 나갔다는 거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로운 소통과 발달 문제를 모두 개인의 영역으로, 특히 낭만적 사랑에게 짐지우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남성이 성공적인 사랑, 또는 결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의 내면의 여성 아니마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안착시키는 걸 우선해야 한다. 이걸 현실적인 인간적인 사랑과 헤깔려서는 안된다. 아니마는 남성의 영혼이다. 관계와 정서에 관련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 영역을 남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런 영역에 대해 의식적으로 다루는 게 필요하다.

 

사랑에 빠지는 건 상대를 사랑하는 상태가 아니라 내 안의 남성성(여성성)을 상대에게 투사한 상태라는 거다. 그 투사가 거둬지는 때가 바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때라는 거다. 어찌 보면 진짜 상대에 대한 진짜 사랑이 그때 시작된다고 보았다.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서 사랑 안에 머무는 단계로 전환하라고 한 말씀 하신다.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두 번째 신화를 살펴보자. 싸이키와 에로스 신화는 트리스탄보다 나이가 많은 신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남성 관점의 신화라면 이건 여성 관점의 신화다. 딸의 미모를 자랑하던 어머니가 아프로디테여신의 노여움을 산다. 신탁에 의해서 가장 고운 막내딸 싸이키는 산정에서 죽음과 혼인하게 된다. 정작 싸이키를 데려간 건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였다. 에로스는 궁전을 주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밤에만 와서 싸이키 옆에서 자고 나갔다. 싸이키는 남편이 누구인지 모른 채 한동안 지낸다. 나름 행복했다. 싸이키의 언니와 엄마가 초대되었다. 남편에 대해 묻는 친정붙이에게 어떤 날은 중년의 남자라고 하고 어떤 날은 20대의 잘 생긴 청년이라고 막내 여동생은 대답한다. 그녀가 한 번도 남편을 본 적이 없으니 할 수 없다. 언니들은 그가 자고 있을 때 등불을 밝혀보라고 조언한다. 구렁이면 찔러버리라며 칼도 한 자루 챙겨준다. 싸이키는 언니들이 주고 간 등불을 들고 잠든 남편을 본다. 그는 아름다운 신이었다. 그런데 촛농이 떨어져 에로스는 어머니의 집으로 날아가 버린다. 금기는 깨어지고 일은 꼬인다. 그녀는 남편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프로디테가 준 네 가지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뒤섞여져 있는 곡식을 분류하는 과제다. 개미들이 나와서 도와주었다. ‘분류는 이성적 작업이다. 두번째는 황금양털을 가진 양의 털을 얻어오는 거다. 싸이키는 황금양털을 얻기 위해 원정대를 꾸려서 떠났던 남성적인 방식이 아니라, 가시덤불에 등을 긁는 양들을 관찰해서 털을 모아서 해결했다. 이건 갈대가 알려주었다. 힘을 획득하되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 가지라는 의미다. 세번째는 세상 끝에서 끝으로 흐르는 폭포의 물을 받아오는 거였다. 이건 독수리가 도와주었다. 폭포나 독수리는 거시적인 시야를 말한다. 네번째는 지옥에 가서 페르세포네의 화장수를 얻어오는 거다. 이 과제를 특히 어렵게 만들었는데 싸이키는 지옥에 다녀올 동안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모두 거절해야만 했다. 이건 탑이 도와주었다. 존슨은 탑을 기존의 신념체계로 보았다. 전통적으로 남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목표를 등한시했던 여성들에게 거절은 연민보다 더 어려운 과제였다. 네 가지 과제를 완수한 후 싸이키는 에로스와 재회한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존슨은 네 가지 과제를 완수하면서 싸이키 안의 남성성이 계발된다고 보았다.

 

나는 싸이키가 언니들이 주고간 등불을 켜드는 순간에 주목한다. 이 순간이 바로 콩깍지가 벗어지는 순간,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인지가 작동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등불은 빛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의 싸이키는 행복했지만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정체를 전혀 모른다. 그건 어쩌면 에로스 및 남자들이 바라는 바일지도 모른다. 이 때 언니들은 금기를 깨는 방해꾼일까? 한 사람의 의식이 깨어나는데 필요했던 수순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쫒겨나는 데 역할을 한 뱀과 같은 존재다. 존슨은 이 순간의 여성들에게 등불은 사용하되 칼은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싸이키가 등불을 켜서 남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녀의 여정의 출발이다.

 

싸이키의 모험은 콩깍지가 벗겨질 때 사랑을 유지 또는 탈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얄 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그녀가 과제를 통해서 자신의 남성성을 먼저 계발했을 때 남편, 또는 연인과의 재회가 가능했다.

 

두 가지 신화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현실의 사랑 전에 그의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와 먼저 성공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신화가 속삭인다. 3년이 다 되어 가. 3년 즈음에 호르몬, 콩깍지는 사라질거야. 걱정마. 지금이 진짜 사랑을 시작되는 시점이야. 네 옆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사랑에 머무는 상태로 진화할 때지. 무척 멋진 과제야. 행운을 빌어.  

IP *.175.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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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8 01:48:58 *.182.55.106

선배님의 신화해석은 참 신납니다.

그리고 재미있습니다.

깊은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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