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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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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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다. 산송장처럼 지냈던 기억들이 어디에 있다가 이리 나오는 건지. 해가 떠도 슬프고 해가 져도 슬프고 파란하늘도 아프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끊고를 되풀이하던...
하얀 치자꽃 송이를 본적이 있다면 이 시가 더욱 울컥하게 다가 올것이다. 치자꽃은 마치 눈물젖은 하얀 손수건을 얹어 놓은 것 같다. 필경 가슴 뜯으며 치자꽃 아래 앉아있던 여자의 눈물일게다.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는 거라고 했던가. 그럴지라도 세상에서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 참 오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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