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정야
  • 조회 수 239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9월 2일 23시 59분 등록


치자꽃 설화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

가슴이 먹먹하다. 산송장처럼 지냈던 기억들이 어디에 있다가 이리 나오는 건지. 해가 떠도 슬프고 해가 져도 슬프고 파란하늘도 아프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끊고를 되풀이하던...

얀 치자꽃 송이를 본적이 있다면 이 시가 더욱 울컥하게 다가 올것이다. 치자꽃은 마치 눈물젖은 하얀 손수건을 얹어 놓은 것 같다. 필경 가슴 뜯으며 치자꽃 아래 앉아있던 여자의 눈물일게다.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는 거라고 했던가. 그럴지라도 세상에서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 참 오묘한 것 



IP *.232.42.10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69 [버스안 시 한편] 희망은 한 마리 새 정야 2014.09.20 2459
3868 [버스안 시 한편]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정야 2014.09.19 3801
3867 [버스안 시 한편] 문득 [1] 정야 2014.09.18 3068
3866 [버스안 시 한편] 살다가 보면 정야 2014.09.18 3483
3865 이풍진세상에서 이수 2014.09.17 2156
3864 [버스안 시 한편] 늙어 가는 아내에게 [1] 정야 2014.09.16 3156
3863 [버스안 시 한편] 한마음 정야 2014.09.15 2471
3862 [버스안 시 한편]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정야 2014.09.13 4923
3861 [버스안 시 한편]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정야 2014.09.13 4092
3860 [버스안 시 한편] 보름달 정야 2014.09.11 2465
3859 [버스안 시 한편] 아버지의 그늘 [2] 정야 2014.09.03 2544
» [버스안 시 한편] 치자꽃 설화 정야 2014.09.02 2393
3857 [버스안 시 한편] 우화의 강1 정야 2014.09.01 2460
3856 [버스안 시 한편] 스미다 정야 2014.08.30 2507
3855 [버스안 시 한편] 상처가 나를 가둔다 정야 2014.08.29 2314
3854 [버스안 시 한편] 버팀목에 대하여 정야 2014.08.28 3968
3853 [버스안 시 한편] 흰 바람벽이 있어 정야 2014.08.27 2490
3852 [버스안 시 한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야 2014.08.26 2553
3851 기계를 좋아해~ file 타오 한정화 2014.08.26 2359
3850 [버스안 시 한편] 바람의 말 정야 2014.08.25 2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