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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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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8일 00시 55분 등록

충무공 가묘유허에서_고금도

201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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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때 강진만은 나직하게 앉아있다. 바람에 묻어오는 바다냄새가 살지다.]




고금면사무소 마당으로 급하게 차를 밀어 넣었다. 차는 파발을 달고 몇 백리를 달려온 파발마 마냥 더운 열기를 뿜으며 따개비 터지는 소리를 낸다. 이미 섬 이곳 저곳을 후비고 다녔지만 섬은 조용하게 늘어졌다. 민원실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섰다. 제법 많은 눈이 한꺼번에 몰렸다. 몇몇은 책상에 걸터앉아 양치중이다. 헐렁한 사무실 분위기 때문인지 들어설 때 보다는 사뭇 숙진 말이 나왔다. 

“섬 안내 지도 한장 얻읍시다.”

별일 아닌 인사인 것을 파악한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일에 집중했다. 이빨 문지르던 놈은 다시 문지르고, 오줌싸러 가던 놈은 쓰레빠 소리 길게 빼면서 제 갈 길로 부지런히 가고, 인터넷 질 하던 여인네는 다시 모니터에 얼굴을 묻었다. 그 가운데 겨우 한 놈이 일어서서 비실비실 나오더니 여기저기 뒤적이다 말고, 

“선생님! 다 떨어 졌는갑소.”

“섬을 다 뒤졌는데 어째 안내지도 한장이 없능교?”

“아따~~~사람들이 하도 가져가싸서...”

지도 한장 얻으려고 이미 여러곳을 지나왔다. 

분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눌러내렸다. 이들은 이들의 속도와 방법으로 해내는 일이 있을 것이었다. 헐거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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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충무사는 적막하다. 정기휴일과 자물쇠는 이곳이 내게서 박리되어 있는 곳이라 말하는 듯 했다.]



막걸리 한통 들고 충무사에 닿았다. 영정에 참배라도 할 수 있으려니 했건만 ‘정기휴일’이라는 팻말에 자물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리저리 물어 볼 사람을 찾아보지만 짠 습기를 무겁게 머금은 바람만 마당을 채웠다. 옷과 살이 땀과 뒤엉켜 끈적거린다. 들고 있던 막걸리병으로 땀을 닦았다. 충무사 마당 귀퉁이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려 보지만 인기척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동사무소에 전화를 하려다가 조금전 기억이 떠올라 그만 두었다.


터덜터덜 걸어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대접을 뒤집어 놓은 듯 나즈막한 동산이 바다를 향해 드러누웠다. 소나무 몇 그루가 성기게 늘어 섰는데 바람이 제법 지나는 듯 보였다. 한걸음에 올라보니 제법 너른 공터를 방부목 울타리가 지키고 섰다. 관음포 앞바다에 목숨을 버린 충무공의 자유로운 육신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있었다. 


고금도는 조선수군의 마지막 본영이 있던 곳이다. 공은 정유년 늦은 가을 명량에서 적을 깨고, 목포 앞 고하도로 진영을 옮겨 겨울을 나며 조선수군을 재건했다. 이듬해(무술년) 2월 철수하려는 적의 숨통을 걷어 낼 요량으로 고금도로 본영을 옮겼다. 7월에는 명나라 제독 진린이 오백여 척의 배를 데려와 고금도로 들었다. 그해 11월 19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조명연합군은 철수하는 적을 노량 앞바다에서 맞았다. 충무공은 이날 전장에서 목숨을 버렸다. 전쟁은 공의 목숨을 가져가며 끝났다.


솔잎이 제법 쌓인 울타리 둘레를 몇 번이나 돌았다. 돌면서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다가 발끝을 보다가 울꺽 일렁이면 하늘을 보다가 했다. 공에게 막걸리 한 잔 올리고서는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다가 가뭇 잠이 들기도 했다. 하늘이 저절로 빙글빙글 돌았다. 해가 기울도록 늘어져 있었다.


‘여기 있는 나무들 중에 아주 오래된 놈들은 충무공이 아침에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충무공의 시신이 배에 실려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_떠남과 만남 107p’ 이 자리에서 구본형이 느끼고 보았던 것을 더듬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유허에는 400살쯤 먹어 보이는 솔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그 때의 이야기를 이 솔들에게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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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묘유허엔 성긴 소나무 몇 그루가 시립해 있다. 무거운 바람이 낮게 불었다.]


나는 공의 삶에서 살뜰한 생활인을 만난다. 공은 삶의 모순과 고통앞에서 언제나 외롭고 두려웠다. 참혹하고 가혹한 운명앞에서 절망하고 울부짖었다.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것’ 이라는 공의 외침은 장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했을 것이었다. 악몽의 밤을 견뎌야 했고, 불면의 밤을 밝혀야 했다. 밤마다 신음하며 이불을 적셨다.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강막지의 집에 들어 울었다. 배뜸에서 웅크리고 해를 받던 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에게 전쟁은 철저하게 절망이었다. 등뒤에서는 조정의 칼이 앞에서는 적의 칼이 공의 숨통을 끊으려고 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 앞에서 단 한발짝도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더불어 섬뜩하리 만큼 자신에게 삼엄하였다. 나는 그의 화려한 전사에서 그의 위대함을 찾지 않았다. 매일의 절망 가운데서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성숙함과 삼엄한 자기성찰 말고는 그에게서 위대함을 말할 수 없다.


나는 늘 광화문에 계신 공을 보면서 많이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난 공은 잔뜩 어깨에 힘이나 주고 계실 분이 아니다. 더구나 이젠 그 짐을 놓아도 좋을 것이다. 밤낮없이 비바람 모진 풍상에 새똥까지 겪어야 하는 팔자를 공은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우람하고 거대한 위용과 힘이 공의 모습은 아닐 것인데 부릅뜨고 계신 눈을 잠시 감고 쉬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쩌면 공은 추앙보다는 위로가 필요할 것이다.


유허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찌질하고 비겁한 인생이 버겁고 눈물난다. 고통과 공포와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독한 절망의 절망 속에서 그것을 긍정하는 삼엄한 내면을 소유한 사내를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당신처럼 중언부언하지 않기를... .


덧: 

공이 적을 묻은 그 바다에서 오늘 우리는 우리를 묻었다. 

궁을 버리고 내뺀 찌질한 임금이나 임금을 호송한다며 가솔들을 데리고 그 임금을 따라나선 용렬한 꼰대들이 오늘 복제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의 후손이지 않은가!

절망에서 절망을 건져 올린 공의 후손이지 않은가!

아이들을 다 건져올리는 날.

당신을 다시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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