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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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늘 만나면 서로가 저지른 사건 사고들을 나열하기에 바쁜 친구들의 무리가 있었다. 나 또한 허당답게 친구들과 나눌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했고, 그래서 우리는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엉뚱한 무용담을 자랑하느라 바빴고 때로는 배꼽 잡도록 함께 웃고 때로는 서로를 깊이 위로하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몇 번의 공모전 도전도 같이 하며 함께 밤을 지새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우리의 우정은 깊어져 같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우리는 본격적으로 모임의 이름을 정하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마치 도원결의를 하는 것 마냥 평생 함께 하기를 맹세했었다. 우리가 왜 거기까지 갔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얼마 전의 실연으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으로 괴로워하던 나는 왠지 그 날 도로 한 복판에서 늠름하게 우뚝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들이 쌩쌩한,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삭막한 도시 위에서, 그는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지켜줄테니 힘을 내라고 말이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그 때의 생각이 많이 났다. 왠지 용기가 나는 듯 했고, 기운이 났다. 이순신 장군은 어렸을 적 위인전을 읽으며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 보다 더욱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뛰어난 계책과 용맹함으로 왜군이 그 이름을 듣고 벌벌 떨 지경이었고 일부는 이순신을 숭배할 정도였다. 늘 전장의 앞 단에 서서 진두지휘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장이었으며, 때로는 군졸들을 엄히 다스릴 줄도 아는 단호한 지휘관 이었다. 그러나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적었던 그의 기록들을 보면 그는 때로 눈물을 짓고, 잠을 설치며, 가슴을 치며 통탄해 한다. 또 점을 치면서 긍정적인 상황을 예상해보기도 한다.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 하기도 하며, 피곤한 날은 다음에 그 일을 쓰겠노라 미루기도 한다. 사실 그의 인생 자체도 순탄치가 않다.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 하였으나, 백의종군을 당하기도 하고, 중상 모략을 당하기 일 쑤며, 결국 성치 않은 몸으로 많은 지원을 받지도 못한 채 죽음을 각오하고 수 많은 해전들을 진두 지휘하게 된다. 알고 보면 약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기에, 그는 고뇌를 잠재우고자 오랜 기간 일기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기는 전장 중의 위태한 그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가장 좋은 친구였을 것이다. 안네의 일기가 그러했듯 말이다.
다시금 학생으로서 일상을 시작하며, 나는 내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알아나가는 것에, 내가 만들 수 있을 새로운 미래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러나 더 힘든 상황에서 투쟁해야 함을 알게 되었고, 기대 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점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다시 나를 남들과 비교했고 자꾸 초라해져만 갔으며 내가 왜 여기있을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들 속에 갇혀 버렸다. 그래서 나는 더 난중일기에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 번 광화문의 시원한 바람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용기를 내라고 외치는 이순신 장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달 전 구매했던 새 일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빠르게 지나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 또 예전의 추억들이 제대로 생각 나지 않는 걸 보며,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또 쓰다 보면 나의 침잠하는 감정을 조금은 끌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큰 기대와 포부를 안고 삼십 분여를
서성이며 성심껏 골랐던 일기장이지만, 들쳐보니 거의 일기를 쓰지 못했다. 펜을들고 써내려 가는 느낌이 낯설다는 핑계로 책장에 쳐 박아 둔 탓이리라. 어느덧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서 그런가
하고 가끔은 블로그에 끄적
거려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 한 일들을 쓰다가 갑자기 앞으로
해야할 일을 나열하며 고민하기에 바빴고, 과감 없이 나와의 대화를 하기 보다는 마치
파워 블로그가 되는 냥 누구에게 보여주기라도 할 듯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더 그래서 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이순신 장군처럼 한 줄이라도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꼭 써야 할 목적이랄 것도 없이, 꼭 따라야 하는 형식도 없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름의 전쟁을 겪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만의 난중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우선 9월
7일, 오늘의 날씨, 마치 여름이 다시 온 듯
후끈 하다. 로 첫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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