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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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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8일 03시 22분 등록

20대 중반쯤, 감기인줄만 알고 약국을 전전하며 약을 조제하여 먹은 적이 있었다. 설계사무실에 입사하여 처음으로 맡아본 큰 프로젝트의 마감시한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촌음을 아껴가며 일에 매진하던 시절이었다. 거의 철야를 밥 먹듯이 하던 어느 날, 도저히 낫지 않는 감기 증세가 수상하여 병원을 찾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웬만한 일로는 병원을 찾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듯이, 나 또한 웬만하지 않고서는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철야를 하지 않던 어느 날, 집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녘에 숨이 막혀 눈을 떴을 때, ‘! 병원에 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본능처럼 일어났다.

사무실 근처의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하였다. 이에 집근처의 종합병원으로 갔더랬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본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 정도면 그 동안 꽤 아팠을 텐데왜 이제야 오셨어요?” 라며 나무랐다. 그 후 결핵성 늑막염이라는 병명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나의 첫 프로젝트를 일주일 남겨두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면 누구나 꾸던 꿈! 드디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마치 순정 만화의 주인공처럼 얼굴이 핼쓱해지고 하얗게 되어 더 갸날프고 예뻐보일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얼굴은 핏기 없이 누렇게 뜨고, 약 냄새가 진동을 하는 병원에서 24시간 다른 환자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는 현실이 가련한 만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때의 남친과 후배들이 매일매일 병원을 찾아와 주었지만, 이 또한 생각만큼 반갑고 로맨틱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래도 입원은 비교적 짧은 시간 끝이 났지만, 문제는 그 후 1년 동안 꾸준히 먹어야 하는 약과후유증이었다. 워낙 독했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약을 넘기지 못해 몇 번이고 다시 먹어야 했으며, 면역력이 약해질때로 약해져 다른 합병증과 싸워야 했다. 온 몸의 관절에 퍼진 염증들이 약이 없이는 걷는 것 조차 힘들었었고, 조금만 햇볕을 보아도 피부염이라는 것이 생겨 살들이 아파왔다. 4개월이라는 시간을 휴직계를 내고 집에서 요양을 했는데, 그때 나의 기도문은 다시 일상적인 삶을 살게만 해주시면 열심히 부지런히 살겠습니다였다.

그 후 몸이 좋아진 듯 하여 일상으로 돌아갔으나, 여러 가지 생활 질환들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나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끝에 지인의 소개로 한의사선생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과 근본을 치료하고 싶어하는 그 분의 고지식함이 맘에 들었기 때문에 나는 말 잘 듣는 착한 환자가 되었다. 사실은 나의 진맥을 보시고 한 첫마디 모든 일이 작심 3일이지요? 마음만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점쟁이 보다 용하게 나의 삶을 꿰뚫어 보는 그 분의 한 마디가 더 강력했는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믿고 따르던 어느 날, “의사로서는 더 이상 해 줄 치료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환자 본인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동안 믿고 잘 따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께서 내게 내리신 주문은 매일 운동하기, 음식 가려먹기, 걱정 많이 하지 않기였다. 사실, 매우 일상적이고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이 항목을 시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도 건강에 관한 것이라면 물불을 마다하지 않고 하던 시절이었고 간절함이 있었기에 이 또한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했다. 그 뒤 7년 동안 새벽 운동을 했고, 내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은 조심했으며, 한 가지 잘못을 하면 3일 밤낮을 후회하는 성격을 인지하고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살면서 가장 건강한 시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일을 한만큼 수입이 뒤따랐고, 여행을 하면서 밤을 낮삼아 지내도 피곤한지 몰랐으며, 세상이 다시 태어난 듯이 즐거웠던 시절의 근간이 건강한 체력 때문이었으리라. 항상 누구보다 건강 염려증이 있어 몸에 좋다는 것은 맛을 가리지 않고 먹어대었으나, 순간의 안위가 영원하리라는 생각에 나의 긴장을 풀어 주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의 실천은 걱정으로 대체되었으며 몸을 관리하기를 게을리 하게 되었다.

내가 저질 체력임을 다시 일깨워 준 것이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였다. 물론 그 전에도 증상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항상 큰 일이 닥쳐야 바빠지는 안정 불감증의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 동안의 신호를 무시하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를 멀고 먼 이국에서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 미소가 없어지고, 입에는 항상 투덜거림이 존재하고, 마음은 점점 예민해지고 변덕스러워 지는 것이 걷잡을 수 없었고, 그전처럼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전에 없던 기복이 날 갖고 놀기 시작했다.

우리 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눈 앞에 아무리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져 있어도 배고 고프고 육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하필이면 고대하던 여행지에서 만날게 뭐람!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내가 태어나 가본 나라 중에 가장 여유롭고 평화로운 나라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었으되 그곳을 느끼지 못하고 왔으며, 지금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통 사람의 체력까지 밖에는 갈 수 없는 체질입니다. 죽을 때까지 조절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긴 시간 잠잠하다가 요즘 와서 다시 귓가를 울린다. 그 동안 너무 방심하고 게으르게 살았구나!

기대하던 노자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칼 융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리고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그분들의 삶과 말씀을 진정으로 만나는 게 힘이 들었고,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큰 손실은 나의 건강을 잃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빠삐용은 시간을 낭비한 죄로 수감생활을 했지만, 지금 나의 상황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을 함부로 한 죄때문에 즐거움을 빼앗기고 투덜거림의 나라에서 지내고 있으니 여기가 감옥이 아니면 어디일까? 감옥에서는 산해진미가 그림에 떡이듯이, 모든 것들이 버거움으로 다가오기에 덜컥 또 겁이 난다.

예전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또 다시 탈출을 시도할 때이다. 다시는 이 감옥으로 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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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2 09:11:48 *.254.19.183

저런!  여행 다녀 오자 마자 명절 치르느라 많이 힘들었겠어요.


모든 일이 작심 3일이라는 진단은 어떤 근거로 나오는 것일지 궁금하네요.^^

나야말로 글쓰기를 빼고는 아예 작심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

체중이 한계에 도달했거든요. ㅋㅋ


나는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못 느끼는 사람이라 이제껏 다이어트를 해 본 적도 없는데요,

여행을 다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최적의 컨디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냥 있는 야채로 해독주스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답니다.


옛말에 '골골80'이라는 말처럼, 타고난 체질이 약하면 오히려 거기에 상응하는 조심과 노력을 하게 되겠지요.


다시는 이 감옥으로 오지 않으리라.


나도 이 구절을 입에 올리며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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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5 21:32:39 *.218.174.163

우와! 선생님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이리 댓글을 달아주시니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난 기분이네요.

선생님도 건강에 유의하시고 다음에 뵐때는 지금보다 더 싱싱한 얼굴로....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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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4 17:39:30 *.113.77.122

건강을 신경 쓸 나이가 되긴 했지만, 이 증상은 40대 넘어가서 해외여행가면 오래가면 많이 들 힘들어하는 현상이라 한면으로는 인정해주는것도 필요해 보임 ^^  어찌됐건 간에 건강은 제일 중요한 요소이니 힘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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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5 21:35:09 *.218.174.163

그래서 오늘 저녁 먹고 후딱 1시간 걷고 왔지요.

건강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겨우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항상 밀도 있는 노력을 해야할것 같아요.

언니 앞에서 주름을 잡았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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