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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4일 21시 11분 등록


Book Review 4: 빵의 역사


2012. 7.9


 


  1. 저자 만나기 


하인리히 에두아르드 야콥은 홀로코스트를 살아남은 유대인이자 저널리스트이고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극작가이자 비평가이며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글로 엮어낸, 뛰어난 저술가다. 부유한 지식인 계층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문학, 철학, 역사, 음악을 공부하고 기자로 일했다. 그리고 활발하게 소설과 희곡,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다가 나치 치하에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빵의 역사는 그가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갇혀있을 동안 원고를 숨겨준 아내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대표적인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그의 방대한 지식과 탁월한 글 솜씨 때문에 이 책은 빵과 역사라는 얼핏 보기에 생소한 조합을 놀라운 통찰력으로 빚어낸 예술작품이자 치밀한 역사서, 무엇보다 끝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워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칫하게 할 만큼 재미있는 책으로 완성됐다. 나는 서문에서 그가 빵의 역사를 집필하기로 결심한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한 그 지점에서 이미 이 책에 매료되었다.


그는 마치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위대한 학자의 말투가 노회한 퇴역 정치인의 말투로 변했다. “자네가 해보면 어떻겠나? 할 일이라야 화학, 농업, 종교, 경제, 정치, 법에 대한 인간의 역사만 조사하면 될 테니 말이야. 20년 자료를 모으면 집필을 시작할 수 있을거야!”


그의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따뜻하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웃음이었다. “그 무거운 짐을 왜 내가 떠맡아야 하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토록 엄청난 자료를 다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나는 결국 그 짐을 맡기로 했다. 자료수집을 시작했는데 그 일은 끝이 없었다.


아직도 자료를 수집 중이지만,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 참이다.(p33)   


호기심에 찬 유년시절과 야심 많은 청년기를 지나 홀로코스트라는 재앙을 살아남은 장년의 그가 완성한 대작 빵의 역사 2012년을 사는 부산의 평범한 여성이 20세기 초반의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자 유대인을 만나 생각의 꽃을 피우게 해주었다. 구수하고 착한 빵 내음처럼 다시 한번 일어나고 싶다는, 그리고 쓰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했다. 빵 만큼이나 고마운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에 나는 감사해야겠다.


 


  1. 내 마음에 들어온 글


세월이 흐른 1920년 어느 날, 나는 유명한 식물학자 게오르크 슈바인푸르트에게 이 일화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살짝 웃었다.


어린 조카가 삼촌보다 더 현명했네 그래.” 하더니, “조목조목 따져보면 그렇다는 말일세.”라고 덧붙였다.


리빙스턴과 동시대인으로, 아흔이 다 된 그 노학자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검은 대륙을 두루 탐험하고 계몽하는 데 청장년 시절을 바쳤다. 또한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흥미진진한 피그미족의 말과 오래도록 찾아 헤멨던 식물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분이기도 하다. 머리는 백발인데도 몸은 정정했다.


곡식 줄기를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 역사는 모를 지라도 말이야. 옛날 사람들은 곡식이야말로 깃털 장식을 꽂은 영웅으로 단단한 규산으로 만든 돌갑옷을 입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었거든. 줄기 사이로 바람이 불 때 곡식이 우수수 우수수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말이야. 미개한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은 로마 제국을 침략했을 때 그 소리를 처음으로 듣고는 벌벌 떨었으니까.”


정말 놀랍군요!” 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노학자는 그건 별 것도 아닐세.”하는 몸짓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어린 자네가 그 곡식과 빵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보기에도 영 딴판이니까. 인간이 구워먹거나 죽으로 끓여 먹던 곡식으로 빵을 만들기 까지는 장장 1만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거든.”


빵은 처음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야 모르지. 허나 분명한 것은 농부의 인내심과 화학자의 호기심을 겸비한 유일한 나라 사람들이 만들었겠지. 이집트인이 분명해.”


 


그럼 이집트인들이 처음 만든 때부터 빵은 계속 우리 식탁에 오른 겁니까?”


왠걸, 어쩌다 가끔씩 올랐겠지.” 잠시 묵묵히 있던 노학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농부들은 농기구를 빼앗기거나 곡식을 심기가 힘들었지. 안타까운 일이야. 그러나 빵에 얽힌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네. 내가 아는 가장 놀라운 것은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제빵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식물학자, 농부, 제분업자, 제빵사가 지금도 꾸준히 실험을 하고 있어. 빵의 역사는 사회, 기술, 종교, 정치, 과학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네.”


종교까지도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었다.


그렇다마다. 빵은 종교를 존속시키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해왔다네. 위대한 문화의 신앙은 대부분 빵의 종교로 남아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한번 써보시지 그래요. 나는 소리쳤다. “1만년의 빵의 역사에 대해서요.”


그는 마치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위대한 학자의 말투가 노회한 퇴역 정치인의 말투로 변했다. “자네가 해보면 어떻겠나? 할 일이라야 화학, 농업, 종교, 경제, 정치, 법에 대한 인간의 역사만 조사하면 될 테니 말이야. 20년 자료를 모으면 집필을 시작할 수 있을거야!”


그의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따뜻하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웃음이었다. “그 무거운 짐을 왜 내가 떠맡아야 하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토록 엄청난 자료를 다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나는 결국 그 짐을 맡기로 했다. 자료수집을 시작했는데 그 일은 끝이 없었다.


아직도 자료를 수집 중이지만,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 참이다. (p31-p33)


모든 의미 있는 일의 시작은 개인적이다. 야콥이 빵의 역사를 집필하게 된 계기를 보여주는 이 개인적인 일화는, 그가 앞으로 완성하게 될 역사적인 작품이 사소하고 우연한 개인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궁극에는 종교와 사회와 농업, 과학, 경제와 정치를 넘나드는 인류의 발전사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얼마나 온전히 사적인 시작인가. 그리고 얼마나 위대한 성취인가. 시작할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이 창대한 결말이 잉태된 순간을 목도하며, 나는 설렜다.       


역사는 우리가 죽음을 맞는 전쟁터는 기념하면서, 본영의 터전인 논밭은 비웃는다. 역사는 왕의 서자 이름은 줄줄이 꿰고 있지만 밀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이다.” – 앙리 파브르


사소한 것의 역사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밀과 쌀과 기장과 보리, 옥수수, 감자까지 인류의 주식이 되어준, 열량의 보고 탄수화물의 공급원이 되어준 곡물들의 역사와 의미가 어찌 사소할까. 내가 먹는 것이 나를 살게 하고 나의 몸을 이루며, 먹고 먹이기 위해 나는 일한다. 그러므로 나는 곧 내가 먹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빵과 쌀이 나를 움직이고 이룰진대.


빵은 곧 정치다. (p146)


몰랐다. 빵이 정치이고 종교라는 사실을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준 책은 없을 터. 생각지 못했던 큰 진리를 알고 넓어지는 생각의 지평.


십자가에 못박힌 이후 예수가 세계의 정복자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교리의 투명성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하다. 그에게 세상을 얻게 해 준 것은 오히려 신비한 교리, 불가해성, 비밀의 힘이었다. 예수가 지상을 정복한 것은 이해하기 쉬운 비유가 아니라 그의 존재에 대한 불가해한 과장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중세에 존재하지만, 그의 가르침에는 고대 오리엔트와 선사시대의 모호한 개념들이 흡수된 듯하다. 예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대 사람들이 믿은 모든 것들을 자신의 가르침 속에 통합했다. 바빌로니아인에게는 점성술의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존재를 우주라 했다. 이집트인에게는 살해당하고, 갈가리 찢기고, 다시 샘물처럼 세상에 솟구쳐 오르는 오시리스가 된다. 유대인에게는 유월절에 제물로 바치는 희생양이요 예언자들이 약속한 메시아이다. 그는 모든 씨앗의 지배자요, 죽은 자의 구원자이며 현세와 내세의 빵이다. 그는 포도나무요, 숲에 갇혀서 압착기로 고문당해 죽었다가 페르시아와 인도로 향하는 영광의 순례자가 마신 포도주에서 부활한 바쿠스이기도 하다. 또한 멧돼지에게 받쳐 장미꽃밭에서 피흘리며 죽었고, 그리하여 시칠리아의 여인들이 애도했던 미소년 아도니스의 재림이다. 그는 어머니 이슈타르가 애타게 찾아 다녔던 수메르 샘물의 신 탐무즈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아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여신은 눈물범벅이 되어 찾아다니나,


주저앉아 가슴에 손을 얹고, 목놓아 운다.


슬픔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이슈타르가 탐무즈를 목놓아 부르고, 데메테르가 애통해하며 페르세포네를 찾아 다니듯, 비탄에 잠긴 성모도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알았다. 그가 부활했음을! 오시리스, 바쿠스, 탐무즈의 부활을 기뻐했던 모든 오리엔트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의 부활을 보며 마리아와 함께 환희를 느꼈다.


그는 곡물의 주님이며, 동시에 희생당한 씨앗이다. 먼 나라 페르시아와 인도에서도 이 개념을 수용했다. 페르시아의 호마, 인도의 소마는 담쟁이넝쿨과 비슷한 덩이 식물이다. “호마는 아후라마즈다가 생명의 샘에 심어준 세 가지 식물 중 첫 번째 식물이다, 호마의 즙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호마는 건강과 생식능력을 주며, 생명과 소생의 은총을 베푼다.” 처음에는 음료수에 지나지 않았던 소마가 나중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채워주는 신이 된다. 베다의 인도인들이 소마로 교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빵과 포도주로 교감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개념이 예수가 실제로 살았던 세계의 변경 지대에서 중세로 전해졌으며, 북쪽에서 내려와 승리한 야만족에게 전해졌다. 심지어 최후의 적이자 어쩌면 더 막강한 적인 페르시아 전사의 신 미트라조차 정복했다. 태양신 미트라는 다른 모든 신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미트라는 다른 모든 식물과 동물을 잠재울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황소도 쓰러뜨렸다. 전사들은 미트라를 인간과 영원의 중재자로 여기며, 여자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서 기도했다. 사도 바울처럼 이들은 여자는 신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미트라는 결국 무엇이 되었는가? 중세 초기가 되자 아무도 미트라와 그의 전지전능함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예수의 망토의 주름에 불과했다.


중세 사람들에게 예수는 모든 신의 신이요 모든 왕의 왕이었다. 예수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예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수의 칼을 뽑았다. 830년 게르만족은 독일어로 된 고대 자센의 복음서(구세주)가 낭송되는 것을 들었다. 그때 그들은 베드로가 칼을 들고 덤벼들어 제사장 부하의 귀를 잘랐다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귀는 피범벅이 되고


귀가 떨어진 자리에서는 피가 철철 넘쳐 흘렀나니,


예수의 종인 그들은 예수를 구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그렇다. 그들의 정체는 예수의 종이었다. 로마제국의 특징인 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예수가 직접 권고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로마황제의 것은 로마황제에게 돌려주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세에는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다. 예수 그 자신이 세계의 지배자였다. 로마를 지배하는 교황, 독일의 황제들은 잘해야 예수의 오른팔 혹은 왼팔이었으며, 중세 사람들은 예수 발 밑에 놓인 디딤돌에 지나지 않았다. (p.194-196)


이 긴 문단을 옮겨 적고, 적은 것을 다시 읽는다. 한참을 지난 후에 다시 음미해도 참으로 쉽고 부드럽게 읽히는, 경탄에 차 읽게 되는 표현력이다. 소설이나 시도 아니고, 논픽션의 역사서에서 이런 글을 만나리란 생각은 못 해봤다. 불가해한 예수의 신비성, 그 신비성이 확대한 신의 영역과 천 년을 넘어 지속된 영향력에 대해, 이토록 편안하고 우아하게 묘사한 그의 솜씨에 감복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그의 온전한 상상력과 미사여구에 기댄 허구가 아닌, 수많은 연구에 의해 뒷받침된 진실이라는 것에 또한.


빵에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밀턴


빵보다 적극적인 것은 없다. – 도스토예프스키(p197)


빵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로마의 투쟁은 빵의 나라에 자유를 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p199)


당시의 황제 호노리우스는 브리튼족에게 이런 답변을 보냈다. “스스로 해결하라. 나는 더 이상 그대를 도울 수 없다.” 끝내 세계의 로마제국은 무너졌다. (p200)


무려 천년 동안 게르만족, 켈트족, 슬라브족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에 거세게 반발했다. 영원한 유랑, 광활한 들판에서의 수면, 인고(忍苦)에 대한 자긍심, 이런 방식이 그들에게는 잃어버린 낙원의 삶처럼 여겨졌다. 게르만족의 왕 아르오비스투스는 언젠가 카이사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1400년 동안 지붕 아래서 잔 적이 없는 전사들이 무엇을 이룩하는 지 보게 될 것이오.” 이 말은 전사의 본능과 농부의 본능 간의, 유목민과 도시 정착민 간의 끝없는 갈등을 내포하는 중세와 근대의 역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p201)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앵글로색슨 말로는 라포드(hlaford), 즉 빵을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이 말은 로드(lord)로 축약되었다. 그의 아내는 래프디지(hlaefdigge), 즉 반죽하는 사람으로, 이 말 역시 나중에 레이디(lady)로 변했다.(p203)


중세의 영주와 그 부인이 빵을 반죽하고 나눠주는 사람으로 불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어원이 이렇게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문득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문화는 전통이고, 관습의 기억이다. 고대의 관습은 기록되지 않은 채 지극히 일부만이 전해온다. 그런데 이렇게 전적으로 기억에만 의존하는 관습은 큰 의미가 없다. 지식의 증발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p213)


지식의 증발 속도. 문화가 전통과 관습의 기억이라는 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들.


풍차가 그리스도 문화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고대 갈리아족이나 게르만족이 감히 주신인 바람을 풍차를 돌리는 일꾼으로 부리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리스도교도 중에서도 풍차는 물레방아 못지않게 초자연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풍차 안에 사탄이 살고 있다고 믿은 것은 단지 돈키호테만의 망상이 아니었다. (p.222-223)


불행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것은 이제 자질이 의심스러운 교육자만이 주장하는 이론일 뿐이다. 문명은 오직 풍요로움 속에서만 발달할 수 있다. 항구적인 결핍은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다. 페르시우스의 풍자시에 나오는 저 유명한 위장은 예술의 스승이요, 독창성의 제공자이다.”라는 구절을 허기진 배가 예술과 독창성을 이끌어낸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p251)


물질적인 빈곤함과 정신적인 집단 강박증(결핍? 피폐함? 일방성?이라 해야 할라나…)에 기인한 중세의 처참함에 대해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그냥 기사와 마녀와 공주가 등장하는 조금 으스스한 영웅담과 로맨스의 시대 정도로 생각해왔던 나로서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라틴어 글레바(gleba)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언어 가운데 하나이다. 이 단어는 원래 촉감을 나타내는 말로, 흙의 감촉을 뜻한다. 경작지의 촉촉하고 기름진 흙이 자음의 조합인 glb로 묘사된다. 글레바는 globe라는 단어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모든 구체(球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지의 흙덩이만을 의미했다.(p265)


오호


아담이 땅을 일구고 이브가 길쌈을 할 때 왕후장상이 따로 있었더냐? – 존 볼(14세기 영국의 농민반란을 이끈 성직자) (p293)


슈트트가르트 저잣거리에서 사형 집행관의 칼날 앞에 선 젊은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 “통탄스럽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하는데, 내 평생 배불리 빵을 먹은 것이 두 번도 안되다니!” (p301)


인간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견해이다. – 에픽테토스(p305)


현대에 이르러 하르나크는 성찬 논쟁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종교 역사상 성찬식 만큼 성스러운 하나의 의식이 과장되고, 왜곡되고, 협소해지고, 난폭해진 전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p318)


시대를 초월하여 우주가 성찬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신비로운 사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현대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교회의 종복들과 속세의 지도자들은 서로의 가슴에 짓이기기 위해 신앙이라는 숫돌에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야만 했을까? 우리는 그 시대에 실재한 구체적인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16세기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과 실재할 가능성이 너무 희박한 문제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풍비박살낼 수 있었을까? 농지는 모두 황무지로 내버려두었으니, 곡물이 갈수록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쟁기는 헛간에서 녹슬었고, 물레방아의 바퀴는 냇물에 처박혀 썩어갔다. 빵에 예수의 몸이 실재하건, 은유적으로 존재하건,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는 서로 저주하기 전에 먼저 빵을 마련해야 하지 않았을까? (p319)


종교가 현실에, 믿음이 생존에 앞서는 이 놀라운 시대. 경악과 경이가 공존하는 시대다. 지금 그러라 해도 그러지 못하겠다 싶지만, 탈레반과 오움 진리교와 명예살인이 실존하는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금 한 덩어리를 땅에 묻는다 해도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있을테니, 그 땅은 죽은 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축복받은 금싸라기 같은 옥수수를 땅에 심어보라! 참으로 신비롭구나. 며칠만 지나면 그 씨앗이 부드러워지고, 부풀어 오르고, 위로 솟구치니,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본래 노랗지만, 세상을 엿보는 에머랄드빛의 섬세하고 뾰족한 잎을 틔운다. 튼튼한 줄기를 밀어 올려, 바람과 햇살을 만끽한다. 푸른 수염을 휘날리며 솔로몬보다 더 영광스런 자태를 뽐내다가, 거름으로 사기를 충전한 뒤 마침내 두세 개의 근사한 옥수수가 여물면, 저마다 황금 같은 알갱이가 빽빽하게 박혀 있다. 알갱이마다 저를 낳아준 부모와 놀랄 만큼 똑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p343)


실제로 페루인들은 인간의 머리와 감자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는 두개골 수술에 관한 탁월한 지식이 있었다. 이것은 곤봉이나 기타 타격용 무기를 사용하던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지식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자주 당하는 부상은 뇌진탕이나 두개골이 깨지는 것이었다.(p347)


감자의 대량 재배로 증가한 영국의 행복’ – 1664년 존 포스터


이들 아일랜드인들은 조국의 땅만이 아니라, 땅이란 땅은 믿지 않았다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도시인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농기구를 마련할 돈도 없었을 뿐더러, 기다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들은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그 결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1850년 무렵 미국 거주자 2500만명 중에서 4백만명이 아일랜드인 후손이었다. 몹시 아끼던 식물에게 배신당하고 기근과 절망에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이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의 불행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뭉쳤다. 아일랜드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면 모두 정치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주류업자가 되었으며, 살롱을 운영하는 대부분이 이들 아일랜드인들이었다. 살롱은 정치활동의 중심지였다. 예컨대 세계 최대의 이민도시인 뉴욕의 경우, 1934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라구르디아가 아일랜드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태머니홀의 영향력을 차단할 때까지 30년 동안 대부분의 시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렇듯 먼 나라에서 일어난 감자기근은 수많은 미국도시들의 인구수와 정치적 면모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현대 미국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역사는 크게 농업의 역사이며, 사람은 진정 식량의 영역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360)


국가의 역사는 농업의 역사이며 지리적 환경과 기후는 지역 역사와 문화의 화덕이다. 이래 저래 재미있는 발견과 깨달음이 많다. 재미있는 시기다.   


독실하고 순진무구한 이들이 북아메리카에 상륙한 때는 한겨울이었다. 맨 처음 그들은 사냥과 어로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막상 육지에 오른 그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도 물고기나 야생 동물 한 마리 잡아본 적이 없었다그들은 찾아간 곳의 환경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없었다. 오직 훌륭한 헌법, 서로에 대한 충성심, 사리, 인내, 절제, 숭고한 종교적 이상에 대한 헌신만 갖추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오직 도덕적 가치관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 (p363)


현대인과 근대인, 중세인의 차이를 이토록 극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주는 묘사도 드물 것이다. 미대륙에 상륙한 청교도인들은 이 완벽하게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한 채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광활한 대륙을 정복하여 자신들의 공화국을 건설했다. 아무런 현실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이상에 의지해 집단 이주를 감행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미친 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사이비교도들의 집단자살에 맞먹는 광신의 행위에 비유할까.


오베드 허시의 죽음은 한층 암울했다. 매코믹의 적수였던 그는 오래 전에 모든 특허를 팔아버리고 수확기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컵을 가져다 놓으려고 나가다가 그는 균형을 잃고 넘어져 출발하는 기차 바퀴에 치이고 말았다. 기계시대의 건설에 한 몫을 담당했던 그는 기계 시대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죽음은 시인 베르하렌과 끔찍할 정도로 닮아있다. 베르하렌 역시 기차역 플랫폼에서 죽었다. 종종 그가 시의 영감을 얻던 기계에 의해 오르페우스처럼 조각조각 찢겨 죽음을 맞았다. (p448)


신화는 무의미한 말장난이 아니다. 신화는 과거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p452)


유럽은 그와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 1830년대 매코믹이 수확기를 만들 무렵, 유럽에서 농업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사람은 리비히였다. 리비히는 사람들의 관심을 토양의 표면 아래로 유도했다. 그는 씨앗이 자라는 토양의 조건을 조사했다. 미국이 기계로 들판을 정복할 때 유럽에서는 화학과 토양학으로 토지를 달랬다. 유럽인들은 헤파이스토스 대신 약초와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p453)


신화의 상징과 비유들이 서구 문학과 모든 종류의 저술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관찰하다 보면 그렇다면 우리는? 이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의 정신적 뿌리, 문학이든 아니든 모든 글에서 알게 모르게 표현되는 정신적인 원류는 뭐더라? 안 떠오르는 게 맞는 건가. 아님 내가 무지한 건가단군신화는 아닌 듯 거고. 마당, 부엌, 나무, 바위에 계신 온갖 구신들? 천지신명? 백석의 토속적인 시들에 공감하는 것은 그래서인가? , 어디를 들여다보면 좋을까?


이것은 순전히 유럽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들은 땅이 아이를 출산하는 여인과 같다고 생각했다. 6천년 동안 계속되어온 수확이 가장 비옥하던 땅마저도 점점 야위고 쇠약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실로 비극이었다. 이제 의사가 찾아와 진찰하고 처방전을 써주었다. 의사는 곡물의 줄기를 태워서 재를 검사한 뒤 곡물들이 어떤 종류의 화학물질들을 토지로부터 앗아갔는지를 말해주었다. 검사결과는 대부분의 물질들이 모두 결핍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저스투스 폰 리비히의 발견은 그 간결성만큼이나 위대한 것이었다. 리비히 덕분에 토양이 빼앗긴 물질들을 그 종류와 양에 맞게 다시 공급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인 농업혁명이었다. 이제 종잡을 수 없는 토지의 기분에 농사의 운명을 맡겨놓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우리는 데메테르의 변덕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457)


모든 진보는 한쪽으로 치우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진보의 법칙이다.  6천년 간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영역을 순식간에 정복한 리비히의 민첩함이 한편으로 오류가 되었던 것이다. (p460)


모든 진보는 한 쪽으로 치우친다격하게 공감한다. 누가 한 말인지?     


어떤 면에서 리비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비슷하다. 그들이 발견한 과학은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리비히는 의사로서 흙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그칠 새 없는 출산의 고통으로 토지가 병들었음을 인식한 그는 대지의 여신을 의사의 진료실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p463)


, 이거 참, 생각하기 힘든 적절하고 예술적인 비유.


리비히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국가의 재앙은 순전히 농업과 결부되어있다. 토지의 생명력을 빼앗고 생산성을 수탈한 것이 위대한 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주원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수탈적 경작은 언제나 같은 절차를 밟는다. 이것은 역사의 법칙이다. 맨 처음 농부는 처녀지에 똑같은 작물을 해를 거듭해서 경작한다. 언젠가는 수확량이 줄어들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제 2기이다. 그러면 농부들은 새로운 경작지로 이동한다. …. 5, 심토층이 모두 고갈되고 밭에서는 더 이상 채소를 기를 수 없게 된다…. 6, 모든 종류의 경작이 완전히 끝난다. 더 이상 인간을 먹여 살릴 수 없는 땅이 된다.“


그렇다면 제 7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살인이다. 토지의 살해 다음에는 인간의 살해가 시작된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지구상의 인구를 감소시켜 균형을 이루어내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도둑 또는 살인자가 되거나, 무리를 지어 이주하거나, 아니면 정복자가 된다. 이 세가지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사람들이 토지를 계속해서 생산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없다면 결국 그 토지를 피로 적시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법칙이다.”라고 리비히는 말했다. 리비히는 농부들이 군대에 나가지 않거나 농지에서 떠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평화가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없듯이, 전쟁도 온 국민을 다 죽일 수는 없다. 평화와 전쟁은 모두 일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어느 시대든, 인간사회의 분열과 화합은 토지를 비옥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p465)


토지의 살해 다음에 오는 것은 인간의 살해살벌한 진리! 평화도 전쟁도 모두 일시적이라니. 궁극의 목적은 삶을 지속하기 위한 땅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후와 토양이 사람을 만든다. 사람의 외양, 관습, 생각, 그리고 도덕과 같은 형이상학 측면까지도. 인간존재를 나무에 비유할 때, 미각은 가장 외적인 꽃에 해당되는 요소일 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 (p490)


며칠 전에 들은 학부모들을 위한 숲체험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자연은 역사의 어머니라는 강의를 듣고 강사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언젠가 지인들과 이 분을 다시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하는 생각에 연락처까지 적어왔건만. 이런 저런 시청각 자료를 동원하여 그가 3시간 동안 풀어놓은 이야기가 위의 한 문단에 압축되어 있다.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이 궁금해진다. 


농업은 모든 것에 앞서는 첫번째 기술이다. 농업이 없이는 상업도, 시도, 철학도 존재할 수 없다. – 프리드리히 2


아니다. 인간은 기후를 바꿀 수 없다. 기후는 운명이다. 당신은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에서 태어났는가? 적도 근처에서 태어났는가? 아니면 북극권 내에서? 지구에는 다섯 가지의 주요 기후가 존재하며 당신이 태어난 곳의 기후가 당신의 생각, 행동, 식습관, 관습, 국가의 인구 분포, 정치, 경제, 수도의 위치를 결정한다. 모든 것은 기후의 영향 하에 있다. 당신 국가의 수도가 기후 측면에서 최적성에 어긋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면, 너무 남쪽이나 너무 북쪽에 치우쳐 있다면, 그 도시를 수도의 위치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마드리드는 일하기 좋은 기후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래 전에 바르셀로나에 통치권을 이양했으며, 밀라노는 로마보다 더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실제로 모든 것을 정복하는 것은 바로 기후이다. 기후의 결정사항에는 간청이나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p523)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소수 농민에 대한 다수 도시인의 너그러운 태도는 실로 놀라운 것이며 그것은 지극히 미국적이라는 점이다….


오늘날은 누구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종교적, 경제적 계몽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위대한 힘은 바로 문학이었다. 오늘날 문학의 힘은 예전에 종교가 행사했던 권력에 비교될 수 있다. 예전에 종교가 그랬듯 오늘날 문학은 정신세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동안 문학은 정치나 경제의 속박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문학은 곧 자신이 본질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을 자각하고 지배적인 경제체제에 일격을 가했다. 문학은 이상주의자와 속물, 감상주의자들과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문악은 많은 국민들을 그들과는 관계없는 연극 및 소설들을 소비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근본적인 사회적 토대에 의문을 제기한다. (p545)


그래서 매혹적인 것이지.  근본적으로 자유롭다는 것 때문에, 한 톨 씨앗에서 거대한 신세계를 창조할 무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매독스 포드의 미학은 이것을 이런 명제로 압축했다. 소설가의 목적은 독자들이 책을 읽고 있지만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p547)


박수 박수!!!!


그가 현실을 그대로 묘사했든 아니든, 그의 작품 속에는 문제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정신적인 진실이 들어있다. (p547)  


그러나 리비히가 말한 대로 전쟁은 부수적인 사건일 뿐이다. 진보는 전쟁을 지나치거나 돌아서 간다. (p564)


기계시대는 인간의 경제 및 사회, 역사의 한 단계이다. 그러나 이 단계가 이전 단계를 소멸시켜버린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문명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동시에 여러 시대를 살고 있으며, 문명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동시에 여러 시대를 살고 있으며, 모든 시대의 경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p572)


 


나는 그림자와 같이 사람들 사이를 파고든다


내 양 옆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나의 존재를 알아챌 뿐이다.


 


나의 침묵은 조수의 침묵처럼


아이들이 뛰놀던 곳을 소리 없이 묻어 버린다.


 


밤중에 서서히 쌓여 가는 서리는


아침에 발견된 죽은 새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질 뿐.


 


군대는 하늘과 땅에서 포효하는 총으로


짓밟고, 침략하고, 파괴하지만


 


나는 군대보다 더 강력하고


대포보다 더 무섭다.


 


왕과 수상은 쉼 없이 명령을 내리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왕보다, 열정적 웅변가의 말보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맹세를 부수어 버리고 위업을 무()로 돌려 버린다.


오직 벌거벗은 것들만 나를 알아챌 수 있다.


 


나는 살아 있는 생명이 최초에 최후에 느끼는 것.


바로 배고픔이다.


 


  • 로렌스 비니언, 런던의 내이션 1918 12월호에서 발췌 (p594)


 


배고픔은 광기를 불러 일으킨다. 유명한 러시아계 미국인 사회학자 소르킨은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재앙이 닥치면 개인이나 사회는 계승된 윤리의식의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버린다.”고 적고 있다.(p602)


세계의 평화는 빵의 평화다.”라고 후버는 1943년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전쟁에서 처음 한 마디는 총성이었지만 마지막 한 마디는 빵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또다시 세계를 먹여 살려야 할 것이다.” (p606)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직접 그것을 겪어왔기 때문에. 부켄발트의 강제수용소에서 우리는 진짜 빵을 맛볼 수 없었다. 빵이라고 불리는 물건은 감자가루, , 톱밥의 혼합물이었다. 속은 납빛이었고 껍질은 쇳빛이었다. 맛도 쇠 같은 맛이 났다. 이 물건은 마치 고문당하는 사람의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듯 표면에 물기가 배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전에 먹었던 진짜 빵을 추억하며 그것을 빵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 빵이나마 사랑했고 그것이 배급되기를 노심초사 기다리곤 했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진짜 빵을 맛볼 기회가 없이 죽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내가 다시 진짜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놀라움 따름이다. 빵은 성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빵은 한편 세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빵을 먹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 사람과 빵은 나란히 6천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신의 두 피조물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불렀다.”고 성경은 말했다. 이보다 간결하게 행복과 만족과 감사를 표현한 말은 없었을 것이다. (p607)         


역사와 문화, 경제, 과학과 자연사를 꿰뚫는 이 놀라운 통찰력의 기록을 마음을 움직이는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 마지막 부분이다. 이 의지의 저술가가 빚어낸 역작,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놓지 않았던 의지와 끈기의 산물이 한 인간의 진심 어린 깨달음으로 와 닿게 해주는, 마지막 고백.


  1.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비판이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이 압도적인 책을 만나 또, 행복했다. 며칠 간 나를 찬란한 고대 이집트, 그리스의 문명과 비참한 중세 독일의 물질적, 정신적인 기아와 혁명기 프랑스의 참상과 이제 막 탄생한 신흥국가 미국의 발전상, 2차 세계대전의 광기와 넘나들며 그 시대인들의 생활과 사고 속에서 놀게 해주었던 이 놀라운 기록. 그는 6천년 간 인간의 옆을 지킨 빵의 역사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지만, 그의 문장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과 문학적인 성취에 또한 감탄했다. 이런 종류의 책이 이토록 마음을 울릴 수 있구나. 아직 어렸던 저자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보여준 서문에서는 내가 함께 그와 모험을 떠나는 듯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고,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뼈아픈 경험을 고백하며 빵과 인간의 역사를 나지막히 구술해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에잇, 어쩌라구 이렇게 멋진 책을 썼단 말이냐!


Six Thousand Years of Bread. 나는 이 책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저널리즘과 역사서와  문학이 함께 만난 가장 이상적인 성취가 아닐까. 그의 책 어디에도 픽션적인 요소는 없지만, 신화와 종교에서 차용해온 수많은 상징들로 그는 자신의 역사서를 채워 더 없이 아름다운 논픽션의 문학으로 완성했다. 인용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글귀들이 너무 많았다. 그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멋들어진 표현력과 수천 권의 자료와 2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길을 잃지 않고 벼려낸 찬란한 통찰력에 나는 그저 경탄할 뿐이다. 더불어 그가 기자 출신이라는 것에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꼈다. 한 시간만 지나도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산하는 저널리즘에 비난과 회의가 큰 요즘, 이 멋진 책이 단단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질을 바탕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목차


추천사


서문


1장 선사시대의 빵


최초의 농부, 개미


쟁기의 발명


풀들의 경쟁


 


2장 고대의 빵


제빵의 발견 이집트


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이스라엘


씨알의 수난 그리스


엘레시우스의 빵 신전 그리스


빵은 곧 정치다 로마


빵의 신, 예수 그리스도 로마


 


3장 중세의 빵


옛 땅, 새로운 사람들


수도사, 수호신, 그리고 농민


방앗간 주인은 모두 도둑이다


제빵사가 우리를 굶주리게 한다


기아의 세기


괭이를 든 사람들


피 흘리는 빵


부풀어오르는 빵


최후의 만찬에 대한 논쟁


 


4장 초기 아메리카의 빵


위대한 방랑자 옥수수


감자의 시대


스퀀토와 올리버 에반스


 


5 19세기의 빵


과학은 혁명을 막을 수 있는가


프랑스 혁명의 주역,


빵에게 패배한 나폴레옹


빵은 면화보다 강하다 링컨


토지를 정복한 기계 매코믹


대지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리비히


맬서스의 도전


밀의 제국, 미국


 


6장 우리 시대의 빵


세계1차대전과 승리의 여신,


러시아의 빵


세계 지도를 바꾼 식물학자들


농민을 구제하라


데메테르, 다시 경고하다


, 건강, 사업 그리고 인간의 영혼


히틀러의 기근 협정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목차의 구성은, 역사서에 맞게 연대순으로 충실하게 짜여있다. 선사시대, 고대, 20세기까지 순차적으로 나열된 각 장안의 소제목들은 또한 얼마나 흥미롭게 배열되어 있는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충분히 호기심을 유발할 만큼  함축적이다. 문명의 시작이 된 빵, 곡물의 생산, 즉 농업의 시작이 정치와 종교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시장 경제의 기반이 되었다가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 과학의 중심에 서고 다시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가 평화의 전령이 되는 놀라운 구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인의 고백으로 인간에게 있어 빵의 의미를 마무리하는 담담한 에필로그.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기술한, 20페이지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참고문헌.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원고뭉치를 숨겨두었다는 아내에게 감사를 전하는 후기에서 이 책이 하인리히 야곱이라는 인물에게 또한 어떤 의미였을 지, 그의 필생의 노력이 가져온 이 역저가 얼마나 가치 있는 지다시금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소제목을 서술형으로 teaser형식으로, 동시에 본문을 해설하는 한 문장으로 가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것 같다. 내 글에 차용해야겠다.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그의 글을 신화와 종교, 방대한 지식에 기반한 비유가 많은데, 그 비유가 다 참으로 적절하고 아름답다. 어디에서 어떻게 그런 상징들을 찾아내고 떠올릴까? 그리스 신화는 그에게 당연한 선택인데, 내가 쓴다면 그것은 적절할까? 평균적인 한국인 독자를 생각할 때 친숙하면서도 참신한 상징들은 어디에 존재할까? 역사에? 설화에? 민담에? 불교에? 성경에? 민담을 좀 파봐야 하려나. 설화와 민담은 다른 건가? 공부할 것이 많다


 


이제 슬슬 배가 고프다. 오늘 점심은, 빵이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배불렀다던 성경의 행복처럼, 밀이 주는 안식과 평안을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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