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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4일 23시 38분 등록

자동차 vs 자전거 여행_구달칼럼#21

 

작년 이 맘 때였나 보다.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헤치며 서울-부산간 자전거 국토종주에 나선 것이. 그 때는 홀로 외로운 늑대가 되어 엿새간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렸지. 비와 바람 햇빛을 친구 삼아 그렇게 나 홀로 자유로웠는데

 

지금 부산을 향해 달리는 이 길은 완전히 다른 길이다. 가족을 승용차에 싣고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추석 나들이 길이다. 차들이 밀려들어 길이 막히면 쉬엄쉬엄 구경도 하고 여행가는 기분으로 가는 길이다. 이름하여 자동차 가족 귀성 여행인 셈이다. 이번엔 추석 연휴가 무려 5일이나 되어 어차피 가야 할 부산행 길을 가족여행 삼아 가자고 했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그냥 부산 할머니 집에만 다녀오는 명절 나들이를 싫어했다. 가고 오는 길이 너무 멀고 길이 막히는 데다 가서도 별 재미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직장인의 삶 속에서 언뜻 주어지는 여행의 기회가 이렇듯 주말이나 명절 연휴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리는 때 뿐인 것이 한스럽다. 들뜬 마음에 길을 나서면서도 혹 길이 막힐세라 새벽같이 길을 떠나서 돌아 올 때도 교통체증을 걱정하여 충분히 여유 있게 놀지도 못하고 일찍 귀가를 서둘곤 했다. 이렇게 휴가를 보내면 놀아도 논 것 같지 않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간혹 좀 푸근히 지내고 늦은 시간에 출발하면 저녁 늦게까지 교통체증에 시달려 다음 날 출근에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니 이번 긴 추석 연휴는 잘만 활용한다면 간만에 멋있는 여행을 가족들에게 선사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추석 귀성 여행은 아예 처음부터 마치 물이 흐르듯 막히면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다그러기에 금요일 밤 잠을 푹 자고 가장 막힐 것으로 우려되는 연휴 첫 날인 토요일 새벽 6시에 출발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길은 술술 잘 뚫려있었다. 이런 길이라면 대여섯 시간이면 너끈히 부산에 도착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오산쯤인가부터 줄줄이 앞차들의 후미등이 붉은 줄을 긋기 시작했다. 입이 방정이다. 안성JC로 빠지니 동서방향의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이어진다. 대소JC에서 중부선을 타고 남이분기점에서 다시 경부선을 타니 마의 대전 부근, 회덕, 비룡을 지나면서 고무줄 같은 다소의 서행은 있었지만 정체는 없었다. 늘 그렇듯이 일단 대전만 지나면 그 다음 부산까진 뻥 뚫리곤 했다. 낙동강 하구 김해삼각주, 공항 근처에 있는 처가의 장모님을 뵙기로 했지만 바로 들어 가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어 어디 들렸다 갈까 했더니, 아내가 명호동 최남단 땅끝에서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 곳에는 마침 명지시장이 있으니 요즘 전어 철이기도 하니 회를 떠서 처가에 들리면 겸사겸사 좋을 것 같았다.

 

낙동강 하구는 나의 외가가 있던 곳이어서 어린 시절 방학이면 어김없이 이 곳에서 보내곤 했다. 그 때는 낙동강 둑 위로 자갈 깐 비포장도로가 진해까지 이어져 있어 만원버스를 타고 여기 내리면 안내양의 오라이 소리와 함께 뿌연 먼지를 남기며 아스라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던 버스길이 공항이 생기면서 이젠 4차선 아스팔트 대로로 확 뚫렸다. 명호동은 명지 끝의 갈대 우거진 개펄을 매립하여 만든 아파트 촌, 신도시였다. 바로 앞의 대마등, 장자도, 신자도 등의 강 하구 모래섬들이 겹겹이 둘러치고 있어 명호동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호수 같았다. 강을 가로질러 왼쪽 땅 끝으로는 다대포 몰운대의 하얀 등대가 아스라이 눈에 잡힌다. 방파제 길을 걸으며 앞바다에 마치 잔디를 깐 것 같이 푸른 머리를 내미는 수초의 군락을 발견했다막 피어 오르는 갈대잎 같기도 한 이름 모를 수초들이 바다 위에 푸른 잔디밭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이 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라 수초로 물고기를 불러 모아서 철새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듯싶다. 불현듯 여기 살면서 쪽배를 지어 가까운 섬에 나들이 하며 물고기와 새들과 더불어 살았으면 했는데 여기는 습지보호구역으로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우리가 자연을 너무 훼손하여 이제는 이렇게 눈으로만 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곳이 고향인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을숙도 하구언이 없던 옛날에는 낙동강에 나가면 마치 자갈밭처럼 발바닥이 아프도록 재첩이 지천으로 깔려있어 두어 시간 잡아도 고봉을 이룬 얼개미를 이고 오지를 못해 반은 버리고 오곤 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인지 외가에 이르는 고샅길이 온통 재첩껍질로 이루어져 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건 추억 속의 옛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이제 재첩을 잡으려면 명지에서 배를 타고 좀 깊은 바다로 나가 씨알 굵은 재첩을 조개잡듯이 잡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의 서정적인 강변 풍경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고향 잃은 나그네가 된 느낌이다.

 

처가와 친가를 돌아보면서 송정해수욕장에서 해수욕도 하고 광안리 해변에서 광안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며 밤 나들이도 했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이전 귀성길에서는 종일 어른들끼리 술마시며 화투치면 아이들은 TV나 보면서 소일하기 일쑤였는데 귀성을 여행하듯 하니 명절이 의무 아닌 도락으로 바뀐 듯하다. 일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부산에서부터 길이 막히어 점심 먹고 출발했는데 경주쯤 오니 해가 질려고 한다. 어차피 여행이니 경주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보문호에서 호반길 따라 걷는 달빛 밟기를 마치고 스마트폰 맛집 검색으로 찾아낸 세한도란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유명한 안압지 야경을 보고 세한도 주인이 추천해 준 칠불암한옥펜션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오전에 남산 칠불암 등정까지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이러한 일정을 가족 개개인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여 행하다 보니 이번 귀성여행은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이 되었다.

 

가족 여행은 자동차 여행이 현실적인 것 같다. 빠른 이동과 편리성으로 인해 가족의 기호에 맞는 여행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맛 볼 수 있다. 그래서 단체여행은 버스 패키지 여행이 대세인가보다자동차 여행이 목적지에 빨리 닿아 그 곳을 즐기려는 것인데 비해 자전거 여행은 순전히 자신의 에너지를 태워 자전거라는 탈 것을 조종하여 달리는 과정이 여행의 핵심이다. 자동차가 목적지향이라면 자전거는 과정지향이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은 자신을 연료로 태우는 고통과 불편한 과정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들만이 하는 여행 방식이다특히 몸으로 지도를 그리고 글을 쓰며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자전거 여행 만한 것이 없다. 물론 시간과 체력의 확보가 관건이긴 하지만.

 

작년 이맘때의 나 홀로 자전거 여행은 그것대로 고독하지만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이 땅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릴 수 있어 좋았다면, 이번 자동차 가족 귀성여행은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을 듬뿍 선사해 가족의 유대를 돈독히 한만큼 그것대로 의미 있었다. 결국 여행이란 무엇을 타고 하느냐 보다는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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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5 21:29:34 *.218.174.163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이 자전거의 매력이었군요.

그럼 저와도 잘 어울릴것 같긴 한데....전 일단 걷는 것 부터 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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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1:10:39 *.113.77.122

자전거 여행은 자신을 연료로 태우는 고통과 불편한 과정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들만이 하는 여행 방식이다.  특히 몸으로 지도를 그리고 글을 쓰며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자전거 여행 만한 것이 없다


구달님의 멋진 글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몸에서 체득되어 나오는 글임을 글을 볼때마다 느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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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15:45:29 *.252.144.63

가족들을 이끌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던 우리 구달님이 달라졌어요. ㅎㅎ

가족과는 자동차 여행이 더 적합하다 하시네요.

무엇이 구달님을 바꾸었을까요.

궁금하네요.

 

* 구달님, 이 글씨가 잘 눈에 안 들어와요. 다음부터는 평범한 글씨체로 부탁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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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18:35:49 *.94.41.89

고등학교 때 주말에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았었죠.

집이 산 밑에 있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오르막이었죠.

그즈음이면 해가 집니다. 배도 고프고 힘도 없고 결국 저녁 노을 속으로 걸어갔었습니다.

저도 곧 자전거를 살 예정입니다. 아내는 로드사이클을 하고 딸도 자전거가 있는데 저만 없죠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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