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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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_ 고능선이 김창수(백범)에게 준 말”
두 사내
2014. 9. 14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경 한 사내가 한 사내를 때려 죽였다. 그가 사용한 몽둥이에는 매직으로 비뚤비뚤 쓰여진 글자가 보인다. ‘정의봉正義棒’ 이라는 글자가 또렷하다. ‘살인자’는 당시 버스기사였던 박기서(당시 46세)였다. “국부를 시해한 죄인이 죄값을 치르지도 않고 천수를 다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는 것이 그가 말한 살해 동기였다. 그는 이 일로 3년 형을 선고 받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가 1998년 삼일절 특사로 풀려났으며, 같은 해 3월 8일 대통령 김대중에 의해 특별사면 되었다. 그는 범부였다. 패거리를 지어 사상 따위에 물들었던 사람이 아니다. 백범이 그랬던 것 처럼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서당에 나가 한문을 배웠다. 부족한 공부를 보강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책을 읽었는데 그때 느낀 생각 중 하나는 많이 배운 사람들이 학식에 걸맞은 바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안두희를 살해하고 15년이 흐른 후 기자가 감회를 물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가 다시 없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때 다행히도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자에게는 인간적으로는 미안하고 또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저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1949년 6월 26일 정오경 경교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거인의 삶이 꺼졌다. 총을 쏜 사내는 당시 육군 장교 안두희였다. 암살직후 연행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석 달 뒤 15년으로 감형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잔여형에 대한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포병장교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1953년 2월 15일 복권되었다. 안두희의 전역기록은 의문투성이다. 어떤 기록에는 1949년 대위로 예편했다고 적혀있는가 하면 또 다른 기록에는 1952년 3월 대위로 예편했다고 적혀있다. 어떤 증언은 ‘한국전쟁 동안 안두희가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대령으로 예편했다.’ 고도 한다. 미국정부(308 방첩대)의 공식 문서에 따르면 안두희는 ‘이승만에게 가장 충성을 바치는 지지자’ 로, 공식적으로 예편한 것으로 되어 있는 1952년에 중령으로 군에 몸 담고 있었으며, 청부폭력단을 조직해 이승만의 반대 세력을 탄압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군에서 나온 후 군납업자로 변신한 그는 한 때 강원도에서 납세 순위 두번 째에 이를 만큼 승승장구 하였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정부의 비호를 받지 못하던 안두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다가 1996년 의인 박기서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그가 저지른 만행의 배후와 동기 그리고 그의 삶은 여전히 미궁이다.
1992년 그가 언론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정당한 일이고,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나 자신이 분석해도 악의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내 행동, 나중에 가서는 정당한 결말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 백 번, 천 번, 잊지 않고서 모든 사물을 대했던 것입니다. 근래에 한, 칠 팔년 전부터 내 운이 아주 쇠잔해 버렸고, 많은 테러리스트 한테 테러를 당하면서 소위 이 악한 시대에 한국역사를 바로잡는데 일조만 되도 그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으로서 ...”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지만 말이 아니다.
두 살인자의 ‘행위’와 ‘말’을 두고 생각이 깊어지는 새벽에 ‘愼其獨(신기독·홀로 있을 때도 삼간다) 思無邪(사무사·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 의 정신을 더듬어 본다. 열어놓은 창으로 밀려 드는 바람이 제법 맑고 시원하다. 탁한 것들이 밀려나는 새벽이어서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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