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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5일 09시 45분 등록

백범일지

김구 저, 도진순 주해, 돌베개

2014. 9. 14


1. 저자에 대하여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 7. 11(음)~1949. 6. 26)


>> 1876년 황해도 해주 텃골에서 가난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지 현풍 곽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남.

>> 어머니의 목숨을 가져갈 뻔한 난산으로 태어나 개구장이 어린 시절을 보냄. 자기를 이유 없이 매질한 이웃 친구들에게 복수할 요량으로 칼을 들고 들어가기도 하고, 엿이 먹고 싶어 멀쩡한 아버지의 숟가락을 부러트려 엿 바꿔 먹을 만큼 승부욕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 집안 어른들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

>> 자존감이 큰 아이. 진사가 되기 위해 인근 고을의 이생원을 선생 삼아 글공부를 시작하다.

>> 17세에 과거에 나섰으나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였다. 실망하여 돌아와 부친께 말하기를, 

     : 제가 어떻게든 공부로 입신양명하여 강가, 이가에게 당한 압제를 면할까 하였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라는 과거장의 폐해가 이와 같은 즉, 제 비록 큰 선비가 되어 학력으로 강, 이씨를 압도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엽전의 마력이 있는데 어찌하오리까. 또한 큰 선비가 되도록 공부를 하려면 다소의 금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집안이 이같이 가난하니 앞으로 서당 공부를 그만 두겠습니다.

>> 이후 일 년간 풍수, 관상, 병법 서적을 탐독하며 친척 아이들을 모아 훈장질을 하였다.

>> 18세에 동학에 입교하여 정진. 팔봉접주가 되어 동학으로 궐기하였다.

>> 20세에 안태훈(안중근의 아버지)에게 의지하여 피신하였다. 안태훈은 극진히 백범을 보호하고 보살폈다.

>> 안태훈의 집에서 만난 재야학자 고능선을 선생으로 모시고 한학을 수학하였다. 선생은 그에게 앞날의 길을 열어 훈도해 주었다.

>> 21세(1896) 치하포에서 일본인 쓰치다를 죽이고 투옥됨. 고종의 판결 보류로 미결수 신분으로 수감생활. 지사들이 방면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무산 됨(김주경은 가산까지 탕진하면서 노력)

>> 23세에 탈옥하여 마곡사에서 중이 됨.

>> 25세에 김두래로 변명하고 강화 김주경을 찾았다가 그의 동생 진경의 집에서 머뭄.

>> 27세 여옥과 약혼, 28세 여옥 병사. 다시 안신호와 약혼하였으나 파혼. 29세 최준례와 결혼.

>> 30세 ~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사업에 전념.

>> 36세 투옥, 40세 가출옥

>> 44세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됨.

>> 47세 임시정부 내무총장이 됨.

>> 49세 아내 최준례 병사

>> 50세(1925년) 나석주 의사가 옷을 저당 잡혀 생일상을 차려주어 가장 영광된 생일을 보냄.

>> 51세 국무령에 선출 됨.

>> 57세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

>> 59세 가흥의 여사공 주애보를 남경으로 데려와 회청교 부근에서 동거.(62세 헤어짐)

>> 69세(1944년) 주석으로 재선.

>> 70세 개인 자격으로 귀국.

>> 73세 유엔으로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보냄. 이 편지에서 소련과 미국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철수하여 동족간에 내전으로 발전하여 서로 큰 피를 보게 된다면 그 책임은 오직 소련과 미국이 져야 할 것이라 역설하였으나 결국 선생이 예견한 상산의 처참한 사변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 74세(1949년) 6월 26일 낮 12시 36분 안두희의 총에 맞아 운명. 이후 안두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적과 호의호식 가운데 살다가 세상이 변하여 은거 생활을 하던 중 1996년 10월 23일 의인 박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의해 참살되었다.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4p. 오늘날 우리의 현상을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막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예전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31p. ... 표면적인 이유는 그 선생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지만...


32p. 돈이 없어 훌륭한 의사를 모셔오지 못하자 부모님은 무전여행으로 문전걸식하면서 고명한 의원을 찾아 치료받기로 결정하셨다. 부모님은 집과 밥솥까지 다 팔아버리고 나를 큰어머니 댁에 떼어둔 채 떠나셨다.


책은 빌려 읽었으나 먹과 붓이 나올 곳이 없었다. 어머님이 품 팔아 김 매고 길쌈 하여 먹과 붓을 사 주시면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39p.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 이글을 보고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 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하니, 백범은 다혈질의 결정이 빠르고 뜻이 서면 바로 실행하는 사내 기질이 있는 성품이었던 모양이다.


50p. 나는 매우 기뻐하며 다섯 방책을 모두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곧바로 전군으로 소집하여 정씨를 모주, 우씨를 종사라 선언하고 구 분에게 최고의 예를 표시하게 했다. 

>> 18세에 동학의 접주가 되어 궐기 하였는데, 유세를 위해 찾아 온 이들의 권유가 합당하다고 생각되자 곧바로 결정하고 이들을 요직의 인사로 채용하는 추진력을 보여준다. 타고난 리더십 소유자였다.


63p. 자네가 그같이 결심하였으면, 내 눈빛이 미치는데까지, 자네 역량이 있는데까지 내 모든 역량을 다할 터이니 젊은 사람이 너무 상심 말고 매일 나와 같이 노세.

>> 스승은 어린 제자에게 정진을 독려하면서 그것을 ‘노는 것’으로 말했다. 자신을 닦고 정진하여 자신을 알아가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하였다.

>> 그가 만난 인연이 인생의 향배를 결정하였다. 안태훈과의 인연, 그리고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고능선 선생과의 인연은 백범의 삶에 있어서 크나 큰 변곡점이 아닐 수 없다.


69p. 나는 집에서 부리던 말 한 필을 내다 팔아서 200냥의 여비를 준비하여 김형진과 함께 청나라로 출발하였다. ~

>> 20세 나던 해 5월에 청으로 떠나 11월에 돌아오는 여정. 읽으면서 여행 같은 여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유람이나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여 생각하길 좋아한다. 도가 넘는 또는 치우친 ...편벽한 분별일 수 있으나 여행의 값어치를 낮출 수는 없다.


94p.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자문자답 끝에 비로소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치하포 사건은 시트콤을 보는 듯 자연스럽지 못하다. 갑자기 죽은 왜인, 왜인이라고 죽인 백범, 일거에 좌중을 장악하는 모습들 모두 조악하다. 

>> 그의 행동은 치밀함이 없고 충동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해 할 만한 보통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를 특별함으로 이해해야 할지 치기로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105p. 압뢰가 밥을 받아 넣어주면서, “네 모친도 의지할 곳이 생겼고, 네 밥도 매일 세 끼를 들여 줄터이니 안심하라.” 고하였다. 함께 갇힌 죄수들도 그것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 옥바라지를 가족들이 감당해야 했던 모양이다.


110p. 아까 네가 신문을 받고 나온 뒤에 경무관이 돈 150냥을 보내고 네 보약을 먹이라고 하더라.

>> 심문이 있은 후 일개 살인범에서 정치범으로 신분이 격상(?) 되었다. 백범의 향후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판단된다. 일종의 무대체질이셨던 것 같기도 하다. 의협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22p. 대군주의 친칙으로 김창수의 사형이 정지되었다는 소문이 전파되니, 전날 나를 만나러 와서 영력을 고하던 사람들로부터 치하 면회하러 오는 사람이 옥문에 줄을 이었다. 나는 아예 옥문 안에 자릴르 하고 앉아서 며칠 동안 손님응접을 하였다. 


152p.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혼탁한 세계에서 청량한 세계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세간에서 걸음을 옮겨 출세간의 길을 간다.


196p. 그때 모였던 동지들이 사방으로 헤어져서 애국 사상을 고취하고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하여,나도  다시 황해도로 돌아와 교육에 종사하였다.


204p.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라고 절규하였다.


220p. 나는 깊이 생각했다. 이와 같은 위난한 때를 당하여 응당 지켜갈 신조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다. “드센 바람에 억센 풀을 알고 국가가 혼란할 때 진실한 신하를 안다.”

>> 방향을 정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향이 정해지면 묵묵히 굳건히 그 길을 간다. 불도저 같은 힘이 느껴진다. 


221p. 나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게 구원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되씹는 저 왜구와 같이 밤을 새워 일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225p. 그러고 보니 국가는 망하였으나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나는 평소 우리 한인의 정탐을 몹시 미워해서 여지없이 공격하곤 했는데, 나에게 공격을 받은 정탐배까지도 자기가 잘 아는 그 사실만은 왜놈에게 밀고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준 것이 아닌가.


237p. 7년 이상은 옥중귀신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육체로는 복역을 하나 정신으로는 왜놈을 짐승처럼 여기고, 괘활한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낙천생활을 하기로 했다.


244p. 그처럼 서릿발 같은 절의를 듣고 생각해 보니 부끄럽기 끝이 없었다. 정신은 정신대로 잘 보존하지만, 왜놈에게 소 말이나 야만인 대우를 받는 나로서 당시 의병들의 자격을 평론할 용기가 있을까? 지금 내가 의병 죄수를 무시하지만, 그 영수인 허선생, 이선생의 혼령이 나의 눈앞에 출현하여 엄중한 질책을 하는 듯 싶다.


247p. 나는 실로 말 한마디를 못하였다. 그러다 면회구가 닫히고, 어머님께서 머리를 돌리시는 것만 보고, 나도 끌려 감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이 나를 대하여서는 태연하셨으나, 돌아서 나가실 때는 반드시 눈물에 발부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이 면회 오실 때 아내와는 물론 많은 상의가 있었을 것이요. 내 친구들도 주의를 해드렸을 듯하지만, 일단 만나면 울음을 참기가 지극히 어려울 것인데, 어머님은 참 놀라운 어른이다.


249p. 통틀어 말하자면 우리 동지들은 인격과 재능에서 뛰어나고 50~60명이 정신적으로 단결되어 누구도 멸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건이라도 똑똑한 분자는 모두 우리와 정의를 통하고 지내는 터였으니, 엄연히 수인의 영도적 기관이 되어 갔다. 수인의 표면 감독은 왜놈이 하고, 정신상 지도는 우리 동지들이 하게 되었다.


267p.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 달라.

>> 책을 읽는 동안 이 말이 선생의 깊은 진심임을 알겠다.


275p. 가만 경험하여 보면 고부간에 귓속말이 있는 후에는 반드시 내게 불리한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한 번도 내 마음대로 집안일을 처리한 적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호랑이 같은 선생도 어머니와 아내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276p. 울적한 나머지 이리저리 다니며 바람이나 쐴 마음도 있었으나, 소위 가출옥 기간이 7, 8개월이나 남았으니, 무슨 볼일이 있어 어디를 가려면 반드시 사유를 헌병대에 부탁하여 허가를 얻은 후 나갈 수 있었다. 부탁하는 것이 싫어 나는 이웃 군 출입도 하지 않았다.


289p. 국가가 독립을 하면 삼천리 강산이 다 내 것이 될는지 모르겠으나, 천하의 넓고 큰 지구면에 한 치의 땅, 반 칸의 집도 내 소유가 없다. 과거에는 영욕의 심리를 가지고 궁을 면하려고 버둥거려 보기도 하고, 독장수셈도 많이 하여 보았다.

>> 백범도 가장이고 생활인으로서의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다는 것은 남자에게 가장에게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290p. 오늘이 선생님 생신이 아닙니까? 돈은 없고 해서, 의복을 전당하여 고기근이나 좀 사 가지고 밥해 먹으러 왔습니다.


295p. 그 동기로 말하면, 젊은 나이에 글공부를 걷어 치우고 예순이 되도록 큰 뜻을 품은 채, 나의 보잘것 없는 역량과 고루한 재주를 돌아보지 않고 성패와 영욕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30여 년 분투하였으나, 하나도 이룩한 것이 없었다.


기미년 이후 독립운동이 점점 퇴조하여 정부라는 명칭마저 간수하기 어려웠다. ...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침체된 국면을 타개할 목적으로 ... 철혈남아들을 물색하여 테러운동을 계획 ...


298p. 세상은 고해라더니 살기도 어렵거니와 죽기도 또한 어렵다. ...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307p. 나의 신조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로 인하여 종종 해를 당하면서도 천성이라 평생 고치지 못하였다.


309p. 그 대강을 거론하면 국무총리 이동휘는 공산혁명을 부르짖고, 대통령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주창하였다.


316p. 그러니 쾌히 응낙하여 의정원에 수속을 밟고 조각하여, 임시정부가 무정부상태를 면하게 해주오.

>> 정부가 있으나 형태도 갖추지 못하였고, 따르는 사람도 없다. 이들의 심사가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려우나 고난과 시련의 끝이 보이지 않았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317p. 그림자나 짝하며 홀로 외롭게 살면서, 잠은 정청에서 자고 밥은 직업 있는 동포들 집에서 얻어먹으며 지내니, 나는 거지 중의 상거지였다.

>> 일국의 수반이 거지 중의 상거지로 살았다고 한다. 


323p.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 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 이봉창이 백범을 만나 한 말.


328p. 한인 이봉창이 일본 천황을 저격하였으나 불행히도 명중하지 않았다.

>> 이봉창의 의거 후 각 신문에서 이렇게 썼다.


밤중에는 동지들의 집이나 창기의 집에서 잤다.


동경의 이봉창 의거가 세계에 전파되자 ... 나를 애호, 신임하는 서신이 태평양을 건너서 눈송이 같이 날아들었다. 


336p. 윤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 내 시계와 교환하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356p. 특무공작으로 천황을 죽이면 천황이 또 있고, 대장을 죽이면 대장이 또 있지 않소? 장래 독립하려면 군인을 양성해야 하지 않겠소?”

>> 장개석이 백범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지원해 주었다.


360p. 나는 부득이 가흥의 여자 뱃사공 주애보를 매월 15원씩 본가에 주고 데려와 회청교에 방을 얻어 동거하였다. ... 남경에서 출발할 때 주애보는 본향인 가흥으로 돌려보냈다. 그후 종종 후회되는 것은, 소열할 때 여비 100원밖에 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근 5년 동안 한갓 광동인으로만 알고 나를 위하였고, 모르는 사이 우리는 부부같이 되었다. 나에 대한 공로가 없지 않은데, 내가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줄 알고 돈도 넉넉히 돕지 못한 것이 유감천만이다.

>> 장진구(백범)와 주애보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하다.


363p. 아무리 생각해도 상해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어머님께서는 네 살이 채 안된 신이를 데리고 귀국의 길을 떠나셨고, ... 어머님께서 담아주신 우거지 김치를 오래 두고 먹었다.


400p. 입국하려 할 때에 미국 측은 미국 군정부가 서울에 있으니 임정은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라고 통보하였다. 그리하여 입국 문제로 의논이 분분하였으나, 결국은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기로 결정되었다.

>> 광복이 되었으나 더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 광복군이 국내 진군을 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광복전에 광복군이 국내에 진입하여 있었더라면 이들의 지위가 이렇듯 굴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나라 내 땅에 들어오면서 서약서를 써야 입국을 할 수 있었다. 


409p. 착륙 즉시 눈앞에 보이는 구 가지 감격이 있으니, 기쁨이 그 하나요. 슬픔도 그 하나이다.



나의 소원


423p.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 있을 때 소중함을 모르는 것은 상실의 고통을 크게 하기 위함인가.


424p.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425p.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것. 둘째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 


내가 원하는 우리 만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넘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 꿈과 포부와 소망이 소박하지 않으신 분이다.

>> 30년이면 괄목상대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427p.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428p.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429p. 나는 노자의 무위를 그대로 믿는 자는 아니어니와, 정치에 있어서 너무 인공을 가하는 것을 옳지 않게 생각하는 자이다.

>> 민족주의, 민주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 ... 이상주의 그러면서 철저한 현실주의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저를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 변화와 혁신의 중심 철학으로 삼는 내가 믿는 것 중에 하나다.


430p.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과 철학으로 결정된다. 


나는 어떠한 의미로든지 독재정치를 배격한다.

>> 그래서 백범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 부터 오랜 동안 우리는 혹독한 독재에 시달려야 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 아직 이 나라에 문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 먹고 사는 것은 갈수록 팍팍하다. 백범의 꿈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3. 내가 저자라면


[책의 구성]


이 책의 상편은 백범이 당시 본국에 들어와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당신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하는 동기에서 유서 대신으로 기록한 것이다.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글을 쓸 마음을 내었다고 한다. 주로 백범 개인의 성장과 신변 활동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책의 하편은 윤봉길 의사 서거 이후 중일전쟁의 결과로 독립운동의 기지와 기회를 잃어, 다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미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라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으므로 주로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를 염두에 두고 독립운동에 대한 백범의 경험과 소감을 알리려고 썼다. 따라서 백범 개인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와 주변인물들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었다. 이 또한 유서에 다름 아니다.


<나의 소원> 백범이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것이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39p.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 이글을 보고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 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하니, 백범은 다혈질의 결정이 빠르고 뜻이 서면 바로 실행하는 사내 기질이 있는 성품이었던 모양이다.


63p. 자네가 그같이 결심하였으면, 내 눈빛이 미치는데까지, 자네 역량이 있는데까지 내 모든 역량을 다할 터이니 젊은 사람이 너무 상심 말고 매일 나와 같이 노세.

>> 스승은 어린 제자에게 정진을 독려하면서 그것을 ‘노는 것’으로 말했다. 자신을 닦고 정진하여 자신을 알아가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하였다.

>> 그가 만난 인연이 인생의 향배를 결정하였다. 안태훈과의 인연, 그리고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고능선 선생과의 인연은 백범의 삶에 있어서 크나 큰 변곡점이 아닐 수 없다.


431p.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 아직 이 나라에 문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 먹고 사는 것은 갈수록 팍팍하다. 백범의 꿈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보완점 그 외]


왜곡되고 조탁된 근현대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삶을 통해서였다. 개인의 역사가 독립운동사인 한 사람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조국을 만나고 민족을 만나고 거인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통일된 조국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그럴수록 당신의 뜻은 더욱 또렷하다. 통일된 조국에서 문지기라도 하고 싶다던 당신은 무력으로 강성한 조국보다는 문화적으로 강성한 조국을 바랐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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