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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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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5일 11시 55분 등록

칼럼15

그것이 뭐시라고 하기까지는


촌스런 하늘색 종이를 꾸깃꾸깃, 슛~

 휴지통에 정확히 골인하지 못했다. 내 손이 떨리고 있던 것일까. 천부적인 운동부족이 낳은 당연한 귀결이었을까.

 하늘색 종이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고 그곳을 나오면서 나의 화는 엉뚱한 곳에서 발산하고 있었다.‘그래서, 소정의 교통비를 지급한다며, 왜 생까는 건데?’내가 뒤돌아서서 째려보았음을 알리 없는, 경장인지 경사인지 기억도 안 나는 경찰의 뒤통수에 대고 혼자서 중얼중얼한 말이다. 그렇게 일찌감치 이 나라의 공권력이 허황된 말만을 일삼으며 최선을 다하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그 어떤 말도 무색케 하는 삶 앞에 감탄사도 아닌 비명만이 터져 나올 뿐이다. 그리고 흑백의 사진으로 기억되는 암울한 그 시대를 더듬다 나를 그 시대에다 들이밀었다. 생각건대 정부의 발표마다 분노를 표출하는 절대로 절대로 ‘뚜렷한’ 정치성향을 가지지 않았다 말하는, 그러나 남들에 의해 ‘뚜렷한 정치색’이 있다고 규정받는 내가 그 시대에 들어가 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되어 나타날까.

 온갖 상황의 가정을 더하며 행동을 그려보는 것은 이미 흔들림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가정이 필요없이 굳건함과 당연함을 내세운 반응이 있어야 하는가. 잠자리를 뒤척뒤척거리며 쓸데없는 고통 속에서 번민한다. 내가 설정한 이 번민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도 고스란히 대입될 물음이려니.

 흔히 말하듯 청춘의 열정과 기개를 잃어버린 지 오래, 그 시절을 보내고 중년의 삶을 향하여 가는 내게 있어 이제는 그 어떤 물음에도 당연함의 범위와 깊이가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당연함을 명확한 당연함으로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질문과 회의가 떠나질 않는다. 언제였는지 모르던 어느 시절까지 나는 강한 억압과 통제와 비상식이 난무하는 상황이 당연한 행동력과 굳은 신념을 강고히 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강한 억압에 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느냐를 자꾸 묻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김구의 삶이 될 것인지 안준생의 삶이 될 것인지를 바람과 감정만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정직함이라 스스로 위안하고 있을 뿐이다. 의지로 따질 일이 아니다 하면서도 의지가 삶을 이끌어 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자꾸 흔들리며 휘청하는 나의 뿌리는, 정말로 견고하긴 한 걸까. 결국은 뿌리가 뻗은 그 자리로 되돌아 올 흔들림이 될 것인가. 그러고, 그 뿌리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에서 뻗어 내려 흔들림을 고정시켜 줄 것인가는 외면할 수는 없는 물음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우선 생각을 정리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외면한 안준생이, 외면할 수밖에 없는 안준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아들 안준생으로 생각이 전개가 된다 한들 어떻게 더 말할 수 있으랴. 내가 그가 되어 보지 못한 채 함부로 누군가에게 이상적이고 보편타당한 행동을 하기를 강요하며 비난할 수 없음을. 김구 또한 매일 인천항 축항 공사를 하는 감옥생활 도중에는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했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점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김구의 일본군에게 조서받고, 고문받고, 재판하는 과정, 그리고 감옥생활을 읽으면서 내가 어렴풋이 기억한 것이 하늘색 종이에 대한 기억이다. 그것을 받아들고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진실로 거짓없이 답했건만 그저 어이없어 하던 경찰의 얼굴이 기억나긴 한다.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건 그때 처음 접하는 일에 어리둥절하지 않고 대충대충 할 수 있었던 건 동생의 반응 덕분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종이를 받았을 때 동생은 누나에게 전달하지 않고 냅뒀다. 그리고 두 번째 종이를 발견하며 부모님이 볼세라 당황한 내게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교통비를 준다며? 그럼 별거 아니잖아???”

 내가 경찰서에서 쫄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것들에 쫄지 않는 내가 될 수 있는 생각들을 만나고, 그리고 뿌리를 뻗어내릴 곳을 찾아 엉금거리며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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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8:53:57 *.50.21.20

그렇다 언니! 쫄지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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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9 12:31:41 *.94.41.89

좋은 생각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훌륭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길 바랍니다. 늘 곁에 있는 데카상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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