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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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이틀 서울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두 곳 모두 숲과 관련이 있는 NGO. 한 곳은 최근 부상하며 각광받고 있는 유아 숲교육 전문가를 배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아침부터 종일 7시간 가까운 강의를 했습니다. 수강생들은 일주일에 두 번 반 년 가까이 이렇게 집중 교육을 받고 유아교육 기관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는 전문가로 배출됩니다. 다른 한 곳은 환경, 특히 숲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켜내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기관으로 대상은 그 기관의 회원들이었습니다.
나는 강의의 처음을 내가 짓고 사는 여우숲 속의 오두막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눈이 가득 내리는 그 광경 속의 오두막을 보여주며 나는 나를 소개합니다. 대략 이때 판가름이 납니다. 오늘 강의가 깊게 소통하는 강의가 될지, 힘들게 소통의 문을 열어야 할지. 기준은 하나입니다. 그 광경에 ‘와~! 하는 탄성과 감탄이 제대로 터지느냐 그렇지 않느냐 입니다. 연 이틀 강의에서 만난 청중들은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숲을 소재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해보겠다는 그분들의 감탄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나는 호통으로 시작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한 사람을 찾아 그 앞에 섰습니다. “왜 감탄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저 풍경은 감탄할 만한 장면이 아닙니까? 감탄할 만한데 감탄을 유보하고 있는 것입니까? 감탄을 유보하며 살면 감탄은 언제 할 것입니까? 살다가 이 세상 떠날 때,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더 자주 더 많은 것들에 감탄하지 못하고 살다 떠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쉬운 인생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삶을 살아보려는 사람이 감탄의 눈을 잃고 있으면 당신이 만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숲에 사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동물의 이름 하나를 더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과 내가 연결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슴으로 알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다시 한 번 감탄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페이지를 앞으로 옮겼다가 다시 그 장면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청중들을 만나 내 강의의 아이스 브레이크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서 아이스 브레이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집단이 종종 있습니다. 남성보다는 여성들만 있는 집단, 머리보다는 몸을 써서 사는 분들, 공산품보다는 고객 하나하나를 직접 몸으로 대면하고 설득하여 판매하는 분들, 지식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리거나 청춘을 상대하는 사람들, 특히 유치원의 원장님이나 교사들은 어떤 부연 없이도 이구동성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들일수록, 살아있는 것을 대하기보다 생명력이 없는 것을 대하는 사람들일수록, 생계에 감각을 덜 사용하는 사람들일수록 감탄에 인색하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경험해오고 있습니다.
요즘 나는 그러한 현상의 원인을 놀이의 부재와 연결해 보고 있습니다. 놀이의 부재 속에서 지내는 성장의 일상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건조하게 만드는지 다음 주에 이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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