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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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많은 기업이 ‘차별화(differentiation)’를 외치고 있다. 이제 비즈니스는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비슷하면 지는’ 세계이다. 많은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다보면 자연스레 차별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경쟁을 통한 차별화(competitive differentiation)’다. 그런데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문영미 교수는 실제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쟁할수록 제품들이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당신은 비누를 구입하려고 대형 마트에 갔다. 비누 코너를 찾으니 수십 가지 제품이 진열돼 있다. 이 제품들 간에 차이점을 찾아보자. 회사명과 포장같은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점은 대부분 사소하다. 고객은 이런 제품들을 차별화된 제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업 역시 이런 정도를 가지고 ‘우리 제품은 차별적이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문영미 교수가 쓴 <디퍼런트>에 의하면 실제 기업들의 생각은 다르다.
“오늘날 기업들은 점점 ‘차별화의 대가’가 아니라 ‘모방의 대가’가 되어가고 있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자신들이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미묘한 차이들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나머지, 끊임없이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은 차별화를 추구하면서 차별화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가 보여주는 차별화의 역설이다. 성숙한 카테고리일수록 차별화된 제품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카테고리가 성숙해 나감에 따라 제품들은 이종(heterogeneity)의 단계에서 동종(homogeneity)의 단계로 진화해 나간다. 극단적인 성숙의 단계에 이른 카테고리 내에서는 동일화가 차별화를 압도한다”고 설명한다.
유사한 제품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차이의 경계가 희미하거나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뭔가 새로운 요소로 내게 기쁨을 준 제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본질적인 차별화를 통해 기쁨을 주는 기업은 소수다. 그렇다면 차별화란 무엇일까? 문영미 교수는 차별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차별화는 새로운 사고의 틀이다. 그리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차별화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통찰력이다.”
이런 정의가 소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퍼런트>를 읽어보면 이 정의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잘 읽히고 재미있다. 메시지는 명료하고 사례는 풍부하다. 저자의 통찰력이 반짝이고 일상적인 문체로 풀어가는 글솜씨도 일품이다. ‘차별화’를 다룬 이 책 자체가 차별화의 모범이다.
홍승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이름으로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9월 18일자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아래 링크 참고하시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556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