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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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월 당진 채운리>
퇴근 후 서둘러 사진기를 챙겨 달려갔지만 해는 거의 진 상태였다.
그래도 적당한 위치를 잡고 시야가 가리지 않는 순간을 기다렸다.
제주에서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를 지키는 할망을 만난 후 였을까.
큰 아버님 내외분이 창고 한 귀퉁이에 차리신 구멍가게를 지키시는 모습을 보고나서 였을까.
구멍가게들이 각종 프렌차이즈 편의점들로 변해가는 현실이 아쉬워서,
언젠가 사라질 구멍가게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생겼나보다.
애틋함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구멍가게들을 찾아가 보니 대부분의 이름이 '슈퍼'였다.
사전적 정의대로 "대량, 염가, 현금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큰 소매점" 이 아니라
소량, 정가 판매를 원칙으로 담배와 각종 잡화를 모아놓고 가까운이들의 급한 필요를 챙겨준다.
직접 바느질한 수공예품을 팔기도 하고 시장에서 싸게 사온 과일과 채소도 판다.
아이들에게 군것짓거리를 팔아 칭얼거림을 달래주고,
어른들에게는 캔맥주와 막걸리를 팔며 고단함을 위로한다.
나무에 직접 페인트칠을 한 채운슈퍼 간판은 낡아서 더 위엄있어 보인다.
안쪽으로는 살림방이 있고,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계신다.
좋아하는 사진가 중에 '김지연' 작가가 있다.
이름은 흔하지만 작업은 흔하지 않은 분이다.
전북 진안에서 사진 작업을 하며 급속하게 변해가는 농촌 풍경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발소', '이장', '근대화상회', '정미소'가 작업의 소재다.
작가는 산간 농촌마을에 있는 계남정미소에 공동체 박물관을 세웠다. 그곳에서 주변 주민들의 기억들을 모아 전시를 연다.
박물관은 문화시설이라고는 경로당밖에 없는 곳에서 생활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책으로도 나온 <근대화상회>는 전북 진안주변의 구멍가게를 기록한 것이다.
사진의 1차적 의미가 기록이라면, 같은 소재라도 누구나 자신의 주변을 기록한 사진은 의미가 있다.
진안의 구멍가게와 당진의 슈퍼는 다르기 때문이다. 기록하는 사람의 느낌도 다를 것이고.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는 것은 누가 대신할 수 없다.
100인100색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진지하게 임한다면 충분히 결과물로 묶어낼 수 있다.
기록하자. 기록은 사랑이니까.
*(계남정미소는 현재 경영상의 문제로 휴관중) http://www.jungmis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