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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3일 08시 51분 등록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_구달리뷰#22

구본형

휴머니스트

 

1. 저자에 대하여

 

저자는 1998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필두로 15 여 년 간, 20 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때부터 저자는 작가로서 외길 인생을 걸어갔다.

 

2004년에 처음 쓴 40대 10년 간의 자서전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2007년에 다시 개정판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저자가 회사를 나와 1인기업가로 살아가는 전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담았다. 그래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독자층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말한대로 평범한 사람의 자서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이제 평범치 않은 사람의 비범한 자서전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직장인 대상로로 경영과 자기계발 관련 책을 내던 저자는 2011년 발간한 <깊은 인생>을 기하여 인반인을 대상으로 독자층을 넓혀갔다. 저자의 필생의 과업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비범한 사람의 그것으로 도약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그 도약의 순간과 과정을 그려나갔다. 이 시점이 그가 말한 대로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도약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변화경영의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종국에는 시인으로 별이 된 저자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살았고, 그 결과 그에 상응하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겼다.

 

‘왜 평범한 직장인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기세계 하나 구축할 수 없을까?’ 이 화두를 붙잡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저자는 책 쓰기에서 자신의 희망을 보았다. ‘책을 쓰자’는 결심 하나로 일생을 하루 같이 쉬지 않은 수련으로 일관된 삶을 보여 주었다. 저자는 오늘도 우리에게 정문일침을 가하고 있다.

 

“과거의 유산을 상속 받아라. 부끄럼 없이 모방하고 반복하여 먼저 과거의 정점에 서도록 해라. 미래의 풍경은 그 산 너머에 있다. 그러니 매일 걸어라. 매일의 힘만이 꿈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믿음직한 주술이다.”

저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실천적 몽상가’라고 하겠다. 하루하루 꿈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 여기에 저자의 위대성이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자서전의 큰 틀을 이렇게 잡았다. 지난10년/ 마흔 살/ 직장생활/ 얼굴-페르소나/ 가족/ 자연/ 건강/ 길에서/ 집, 공간/ 학습/ 일/ 등 11장의 구성이다. 왜 이런 틀을 생각했을까?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그렇게 했어.” 이런 저자의 답이 예상된다. 느낌에 따라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는 방식이다. 자서전을 쓰는 기본 취지를 알면 알맞은 구성이 도출될 것이다.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얻었다는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다. 마흔 살 10년을 쓰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자서전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자서전을 써 보면 분명 자신에 대하여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자기가 어떤 인간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보다 명확해 질 것은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서전을 쓰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다.

 

개인적으로 ‘학습’ 장이 특히 저자의 통찰이 넘치며 감동적인 명문이 많았다. 자기 삶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키워드로 추출하여 일 년간 두고두고 가지고 놀면서 책을 써내려간 저자의 책 쓰기 방식이 특히 흥미로웠다. 나도 자서전을 쓴다면 이런 방식을 원용하면 좋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삶이다. 좋은 자서전 또한 좋은 삶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루를 더욱 잘 살아야 한다.

 

감동적 장절

 

4.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이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115.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나는 양복 호주머니에 내 용돈이 7백 원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다. 그러나 3백 원밖에 없을 때는 불안해지고 2백 원 이하로 내려갈 때는 우울해진다.’<피천득 수필>

 

147.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자신이짊어져야할짐의무게가있고나눌수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57.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을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264.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302.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책을 볼 때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한다.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거나 역사서를 보거나 전문 서적을 읽을 때 내 주제는 늘 ‘변화’의 주의를 떠나지 않는다.

 

317.내 글은 강렬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49. 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꿈. 나는 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3.내마음을무찔러드는글귀

 

개정판 서문

 

이것은 마흔 살의 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벤처 산업인 셈이다. 만일 이 과정을 멈추면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나는 죽은 것이다.

 

2.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얻었다는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다. 마흔 살 10년을 쓰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냈다.

 

3.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관성, 과거의 습관, 과거의 자취와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나는 아름다운 미래를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회고’, 이것이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온 생각이다. 나는 10년 앞을 달려나가, 그곳에서 거꾸로 10년 동안 펼쳐지게 될 내 인생 최고의 장면들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적 도치가 주는 장점은 ‘계획을 이미 발생한 실천 결과’로 치환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잘 살게 ‘되었’다. 과거의 기록이 건강한 미래를 계획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책을 펴내며

 

4.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이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5.‘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실험보고서이다.

 

6.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을 한 개인의 역사라고 인식했으면 한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이다.

 

14.규칙이 생기면 즐거움은 줄어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멋대로 하는 재미와 기쁨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새처럼 가볍게 변덕을 부리며 쓰는 것 자체를 즐겼다. 불필요한 규제가 없어야 사업하기 쉽듯이, 형식이 가벼워야 글쓰기도 즐겁다. ‘규칙과 표준이 창의성과 예술성을 말살’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끄는 정신적 물결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잃으면 배를 띄울 수도, 춤을 출 수도 없다.

 

프롤로그

 

15.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니체>

 

1장 지난 10년

 

23. 묵직한 몸과 휑한 머리로 자신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대해진 육체와 달리 정신은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다. 내게 마흔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25. 어쨌거나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또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괜찮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가볍게 생각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무겁고 진지한 사고가 나쁠 거야 없지만, 경쾌하고 가벼운 사고 역시 나쁠 것이 없다. 때로는 바다 속으로 깊게 가라앉고 때로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보는 것 모두 나쁠 게 없다.

 

27.50대가 되기 전에, 노인의 모든 특성이 나타나는 그 끔찍한 나이가 오기 전에, 아직 젊음이 늦여름처럼 무더운 이 40대에 마지막 폭염 같은 사랑으로 성년의 절정을 매듭짓고 싶어 한다.

 

31. 현실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 그들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 역시 한 때의 꿈보다 더 영속적이지 못하다.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얻기 위해 모든 시간을 그 욕망에 다 쓰고 말았을까?.... 왜 그를 추월해 승진하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졌을까? 그를 동정하면서 비웃었던 우월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비천함이었던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제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떠하랴.

 

33.그리고 어떤늙은이가내속으로들어오는것을목격한다. 동작이 굼뜨고 코까지 내려온 안경을 통해 신문을 보는 늙은 자신과 만나게 되면 얼른 외면한다. 우울한 시간이 흘러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진다. 다행스럽게. 일상은 늘 다행스러운 일로 가득하다는 점이 여간 안심되는 것이 아니다.

 

37.물론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안고 살면 되는 거지.

 

37.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왕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남아 있어도 그들은 이미 사라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마흔은 앞으로 길게 남은 인생을 책임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38.나는 이미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고, 직장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에 편입되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나의과거는거대한사회적방망이에의해가슴을강타당했다. 배반 같기도 하고, 비애 같기도 하며, 무력감 같기도 하고, 허무 같기도 한 통증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2장 마흔 살

 

43.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니체>

 

44.일밖에 없는 일꾼은 성공한 실패자가 되고, 부유한 노예가 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가장이 되고, 늘 바쁜 아비가 되어 무자비한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47.마흔이되었을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중년이 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활력이 넘쳤지만, 인생 깊숙이 자리 잡은 피로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57.유머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너무 가깝게 있으면 유머를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을 약간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 있으면 안 된다. 무관심은 유머를 만들어낼 수 없다. 유머는 중년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엔돌핀이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비극을 완화시켜준다.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58.개혁은 마음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61.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61]

 

62.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63.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짜리 인생이었다.

 

3장 직장생활

 

70.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77.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진지하고 소극적이며 전통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한 직장에서 옛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지내고 싶어 했다. 그들은 회사를 사랑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실하고 책임감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회사의 부담이 되고 있었다. 회사는 이들보다 더 빨리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80.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85.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의 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88.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89.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91.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1978년 4월 어느 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 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스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도 없다.’,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4장 얼굴 - 페르소나

 

100. 생각은 머리를 통해 눈에 나타난다.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눈에 표현되게 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113.나도 날 무서워했고, 밀실에서도 내 의식은 갇혀 있었다.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115.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늘 쩨쩨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나는 이것을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은 각자 그 안에 자신의 역사를 안고 산다. 부끄러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있고 당당하고 장엄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저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16.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이다. 신은 복잡한 곳에 있지 않다. 바다 위에 머무는 햇빛,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 미풍 속의 나뭇잎, 그리고 그 바람, 시냇물이 흰 바위를 스치며 내는 소리, 계류가 흐르다 모여 이룬 소(沼) 속의 가을 물빛, 나뭇잎 하나와 거미줄 한 가닥에 매달린 작은 거미, 비 온 뒤 흙길 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지렁이 한 마리는 신이 가장 머물기 좋아하는 장소들이다. 아니면 고추 몇 개가 곁들여진 싱싱한 상추 한 접시와 된장이 놓인 소박한 여름 점심상에도 신은 머문다.

 

117.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남의 얼굴들을 그리워하다 여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가고 규범을 배우고 문화 속에 던져지면서 의도적 왜곡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되어갔다. 내가 마흔이 되어 한 일은 그런 나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5장 가족

 

125.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128.생활 속에서 우리는 매일 한두 시간은 함께 있고 함께 이야기한다. 모두 바쁘고 서로의 세계 속에 빠져 있지만, 공유할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이어주고 서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133.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고 나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먼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멀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137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자신과 한 약속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1인 기업을 만들 때의 기본적인 구상이었다.

 

138.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선택했다.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마치 모두가 버린 시간의 밭을 일궈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잠 속에 묻혀버릴 뻔한 보물 같은 땅이었다. 하루 시간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 있다.

 

140.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차는 달빛을 타고 떠올라 전혀 다른 차원의 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아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144.우리는 특별한 공간 이동을 즐긴다. 비행기는 구름 위의 카페다. 열차는 잊어버린 낭만이다. 빌린 차는 -우리는 가능하면 여러 종류의 차를 타본다.- 늘 새로운 차를 탄 듯한 약간의 호기심을 채워준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이다. 아름다운 곳들과 묘한 풍광을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147.나이가 들어 돈벌이를 하게 되면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동안 나는 뭘 했나.’ 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6장 자연

 

154.회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0년 3월 중순부터 4월말까지 남도를 한 달 반 정도 줄곧 걸은 적이 있다. 봄은 햇빛과 바람이다. 그것처럼 언 땅을 녹이는 데 효과적인 것은 없다. 땅은 빨래와 같다. 언 것을 해동하여 물리 질펀해지면 바람으로 날려버려야 한다. 그러면 따뜻하고 약간 촉촉하거나 고슬고슬한 봄 땅이 만들어진다. 걸으면 발바닥에 봄 땅의 부드러운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이내 물이 오르고 대지는 온몸을 열어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오게 해준다. 싹은 그때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157.홀로 산에 있으면 아름다움에 취하게 마련이다. 홀로 있음에 취하고, 바로 그 때문에 고독 너머에 있는 연결 끈을 더듬더듬 찾아내게 된다. 언어의 표현 방식을 넘어 교류되는 정신적 교감은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을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거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58.눈을 감고 누워 상상한다. 햇빛의 작은 입자들이 내 몸에 내려와 앉는다. 닿는 순간 밝은 파동으로 변하고 이내 혈관 속에 녹아들어 세포 하나하나에 골고루 태양의 힘을 전해준다. 우주의 에너지는 이렇게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힘을 얻는다. 나는 새로워진다. 충전되고 성장하며 상쾌해진다.

 

160.얼마 전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161.부모와 자식은 틀림없이 전생에 빚쟁이였거나 원수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 자랑이었다가 금세 속 터지는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위안이었다가 불행으로 변하고, 커다란 웃음이었다가 하염없는 눈물이 되고 만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다 아는 부모의 애환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야 변하겠는가? 사랑 자체가 온갖 변화를 다 껴안고 있는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63.곽박(郭璞)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外師造化 中得心源).” 는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둘 충고이다.

 

164.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167.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언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170.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내 일 년도 떨어진다. 그리고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책 한 권이 쓰여지면 내 일 년도 지난다. 나무가 다음 해에도 똑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 혹독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거친 나무는 이미 전 해의 그 나무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죽는 것이다. 살아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173.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 개씩, 수백만 개씩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174.“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내라.”<마음속에 써둔 전략>

 

7장 건강

 

180.의학기술이란 자연이 질병을 치료해주는 동안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볼테르>

 

181.간혹 마흔이 저물 때쯤이면 사람들은 ‘우리의 시대’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이 커지고, 우리는 작아진다.

 

182.거울을 보면 어느새 중년 남자가 들어 있다. 앞니가 빠진 작은 아이, 개구쟁이 소년, 세상의 모든 일을 가능한 상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던 청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거울 속에서 나이 든 남자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젊었을 때의 상상의 대부분은 흔적없이 날아가고 겨우 몇 개만 우연한 현실이 되어 있다.

 

183.아리스토텔레스는 젊었을 때 “늙은이는 두려워하고 망설인다. 고약하고 이기적이며 겁 많고 차갑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늘 거만하고 제멋대로였다. 스승인 플라톤과 결별하고, 제자인 알렉산드로스에게도 배척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플리니우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감각은 무뎌지고 사지는 뻣뻣해지고 시각, 청각, 치아, 그리고 소화기관까지 우리보다 더 빨리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184.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것 없이는 변하는 것도 없고, 어둠 없이는 밝음도 없는 것과 같다. 어둠은 늘 생명이 자신을 준비하는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니며 썩는 것들만이 자신을 땅에 버릴 수 있다. 땅에 버려져야 ‘무엇’이 될 수 있다.

 

189.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렇듯이 개인의 역사도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동물로 태어나 사회 속으로 던져진다. 그리고 자연과 문명 사이의 갈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갈등은 인간의 숙명이다. ‘멋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인간의 재갈, 즉 문명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있다. 부모는 최초로 만나는 문명이다. 거역하면 패륜이 된다. 학교와 종교는 그 다음에 만나는 문명이다.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여론, 그리고 법은 문명이 정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제약하는 통제선이다. 이 선은 대체로 굵고 선명하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모호한 구멍이 뚫려 있기도 하고 간혹 희미한 곳도 있다. 인생은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역사가 인류의 시간적 기록이듯이 개인의 역사 역시 그 삶의 시간적 기록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개인적 역사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은 다양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늘 자연과 문명의 갈등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때때로 한쪽에 치우치고 반전하고 이윽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적절한 융합과 균형을 잡아가기도 한다. 문명은 욕망이 과도한 탐욕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복제를 시도할 때 제동을 걸어준다. 부모의 이름으로, 학교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법과 여론의 이름으로 말이다.

 

191.우리는 결국 노령 때문에 죽는다. 우리의 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마모되고, 결국은 함몰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가 마모되어 궤멸되든, 세포 속의 생체시계가 마지막 초침을 멈추기 때문이든, 결국 시작한 생명은 그 시작부터 끝을 포함하고 있다. 죽음은 모든 생명이 시작과 더불어 반드시 치러야 할 빚이다. 이것은 어떠한 예외도 없었다.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01.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 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8장 길에서

 

206.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 진 것들이다. 마흔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207.열심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성공학자들의 말을 나는 조롱한다. 그들은 대부분 신통치 않은 예언가들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 뿌리를 알 수 없는 낙관, 유치한 전개, 더덕더덕 기운 미덕과 잠언의 누더기로 치유가 아닌 잠시의 진통 효과를 과장하는 시시한 돌팔이들의 이야기를 싫어한다.

 

209.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것이 꿈으로 판명되는 마지막 날에 느끼는 그 아득한 자유를 지금부터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는 이유도 과거에 갇혀 있는 나를 미래의 빛을 따라 아름답고 화려하며 자유로운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고 싶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꿈꾸지 못한 것들만이 내 인생이 아니다. 꿈꾸지 못한 것 가운데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210.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한다. 담배를 끊고 일찍 자고 먹는 양을 줄이고 더 많은 운동을 하라고 내게 명령하기도 한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자신에게 시간을 쏟고 더 고독해지라고 말한다. 더 많이 아이들과 생활을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즐기고 일 때문에 바쁜 척하지 말라고 말한다.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또는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211.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을 버리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욕망을 버리는 것’ 역시 욕망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욕망의 특별한 모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를 하며 산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매일 조금씩 책을 쓰는 것은 나의 일상이며 현실이다. 책을 쓰며 상상하는 모든 것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화되었든, 아직 생각으로 남아 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5.그러나 나는 그곳(계획한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217.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나의 하루들은 책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218.먹고 나면 다 똥이 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식탁을 치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손님이 돌아간 만찬처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늘 마음을 설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쁨은 그 잔치의 기름 냄새와 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과 웃음과 섞인 식기 부딪치는 소음들 사이에 있었다.

 

나는 정확한 성격이 아니다. 이야기를 시간별로 차곡차곡 정리하고 쌓아두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산만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모호한 은유 속에 나와 인생을 놓아두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좀더 분명하고 정확하기를 바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수십 년을 다시 길들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주어진 나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19.인생에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깨달음의 내용은 없고 그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정도가 50년을 산 나의 깨달음이다.

 

220.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한 헬렌 켈러가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라고 말할 때, 모든 것이 멀쩡한 우리는 돈을 벌지 못해서 불행하고, 약간의 손해를 보아 불행하고,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행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 불행하고,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1.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222.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223.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9장 집, 공간

 

246.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249.우리는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일을 하면 한 티가 나야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정원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지금 막 시작했지만 아주 훌륭한 취미가 될 것도 같다.

 

10장 학습

 

260.책을 읽다가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씨팔.’ 어쩌면 말을 이렇게 잘한단 말인가? 욕! 그거 참 좋은 것이다. 속에 콱 막혀 있다가 가래처럼 올라오는데 뱉고 나면 후련하다.

 

261.엄청나게 많은 말들을 구겨넣어 아주 작게 응축해놓으면 가래 같은 한마디의 욕으로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씨팔’과 ‘퍼크 유’는 설명이 필요없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투명하기 그지없는 통렬한 동물적 으르렁거림이다. 하고 나면 어쨌든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는가!

 

263.성공은 채찍이다. 쉬지 못하게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어 찢어놓은 주마가편의 바로 그 채찍이다.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264.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265.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주었고, 달리 해석하게 해주었으며, 속세에 물들지 않게 해주었고, 다시 속세를 그리워하게 해주었고, 사람을 찾아나서게 해주기도 했으며,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해주기도 했다.... 문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268.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책을 구성하는 지도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쓰다 보면 묘한 곳에 이르게 된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으로, 예기치 않았던 모습으로 다가든다. 그러면 신이 난다. 글은 글에 연하여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언어로 파고든다. 나는 이 방법을 즐긴다. 다소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정, 가다가 언제고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여행..... 난 이런 여행이 좋다. 여행은 곧 자유인데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에서조차 얽매이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270.아침에 일어나 책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겠지만, 이 방법이 내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의 지식은 나라는 특별한 여과기를 거쳐 새로운 표현법을 얻게 된다. 그대로 인용될 때도 있지만, 글의 흐름을 얻기 위해 따옴표로 들어올려지기도 한다. 어떤 것들은 그들이 표현하기 이전에 이미 나의 표현이기 때문에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은 독립적 사유가 되어 내 책 속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이 읽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271.학습을 통해 우리는 늘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돌연 자신이 속했던 사유의 세계를 떠나 전혀 이질적인 사유의 쾌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 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73.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277.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허물을 벗을 줄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었다.

 

전기작가로 유명한 스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리면 니체는 ‘불꽃처럼 게걸스럽게 스스로를 불사르고 스러지고’ 싶어 했다. 불꽃이야말로 바로 그였다. 그의 본질은 넘실대는 불꽃 같은 변화였다. 그에게 있어 완성에 이르는 길은 살인적인 자기파괴와 가지고 있던 믿음의 상실, 자기해체로부터 생겨났다. ‘자기처형’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280.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니체로 남은 적이 없다. 처음에는 헤겔과 닮았다. 그러다가 ‘현존에 지독한 부정을 가했던’ 쇼펜하우어가 되었고, 바그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떠났다. 이윽고 자기의 개념을 창조해낸 바로 그 니체가 되었지만, 그는 다시 남들이 알고 있는 ‘니체 씨’를 떠나갔다.

그는 ‘다이너마이트’였으며, ‘광대’였으며, ‘모든 금지된 것을 찾아나서는’ 유목민이었으며, 외부인이었고, 방랑자였다. 늘 ‘떠나는 사람이었으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281.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282.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283.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한 곳에 짐을 풀고 편히 쉬더라도 그것은 길 위에서의 숙박이다.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284.나는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에 쓴다. 두 시간쯤 쓰면 지친다. 이 피곤이 나를 살게 해준다.

 

286.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이 표현을 학교 다닐 때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288.‘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 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나는 이 테마 속에 조직의 진단부터 조직의 변화 모델로 이어지는 기술을 담으려고 한다. 변화의 철학과 기술, 이 두 개의 축을 나에게 적용해봄으로써 변화경영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보려 한다. 아마 내 50대는 변화경영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이 될 것 같다.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11장 일

 

294.어느 날 악마가 속삭였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일이 다시금 되풀이될 것이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되돌아온다. 너는 다시 한 번, 수없이 계속 이 삶이 반복되기를 원하느냐? <니체, (즐거운 지식)>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을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깨워 스스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자아경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년마다 기록되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나의 개인적 역사이며, 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며, 나에 대한 여구 보고서이다.

하루는 내 연구의 기본 단위다. 나는 날마다 무수한 반복보다 무수한 변화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일은 반복을 거부하는 것이다.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나는 물결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다. 물결은 무수한 반복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이다.

 

296.“안 판다니요? 당신은 양파를 팔기 위해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붉은 서라피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이게 바로 내 삶입니다.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버리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297.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 요건이다.

 

298.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것.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품질 기준이다. 지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

 

299.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299]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300.모방할 때의 요령이 두 가지라는 점에서도 사업과 글쓰기는 일치한다.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방의 또 하나의 요령은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라는 노회한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사업이든 글쓰기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모방만 가지고는 좋은 글쓰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해야 한다.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죽어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지금 돈을 벌었다고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다 훌륭한 작가는 아니다. 이것 역시 돈과 관련하여 사업과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인간이 하는 일들은 바로 그 인간이라는 주체 때문에 종류에 관계없이 서로 닮았다.

 

302.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책을 볼 때 ‘변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집중한다.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거나 역사서를 보거나 전문 서적을 읽을 때 내 주제는 늘 ‘변화’의 주의를 떠나지 않는다.

 

303.나의 전문 분야는 변화경영이다. 경영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변화라는 주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그리고 기업체에서 전문성을 쌓거나 경영 컨설턴트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 가운데 글로 자신을 표현할 만한 사람은 더욱 드물다.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이 즐겨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된장 풀고 고추장 넣어 먹을 만하게 끓여준다는 생각은 시도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304.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의 배합을 가지고 있듯이 기질 역시 다르다. 이것도 타고 난다. 나는 매우 내향적이며 직관적 기질에 가깝다.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느끼는 것이 우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판단보다는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술가, 대학교수, 예술인, 카운슬링 또는 컨설팅 등이다.

 

306.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We are helping people be a better person than ever before).'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정의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약점이나 장애라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든지 강점처럼 활용될 수 있다. 남과 다르다는 차이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어낸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빛이다. 반딧불이든 커다란 등불이든, 그들은 우리에게 늘 빛을 던져준다.

 

311.어디에도 마술 같이, 노력 없이, 눈 깜빡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310]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었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며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했다.

 

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 그리고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내 언어로 고쳐 쓴 쪽지에는 성공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었다.

 

312.“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유일함을 수련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

 

313.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5.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대신 책으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구했다. 책은 훌륭한 스승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가르쳐주었다. 심한 말을 하지도 않았고, 무의식적인 실수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않았다. 시험을 보자고 달려들지도 않았고, 게으름을 탓하지도 않았다. 나는 말보다 문자가 지니는 조용한 설득력을 더 좋아했다. 그들이 남겨놓은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를 즐기곤 했다. 나는 그들을 읽는다기보다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유를 기초로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좋았다. 나는 옷을 사서 치장하는 대신 조금 묵직한 정신적 허영을 즐겼다.

 

317.“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이다. 그것은 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켠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이며 함성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인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야 한다. 자신을 반죽하고 주무르며 떼어내고 빚어낸 후 색칠하여 다시 세상에 내놓게 도와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내 글은 강렬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19.강연은 쏟아내는 작업이다.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320.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할 수 없다면 강연자는 스스로를 교살하는 셈이다. 자신의 목에 감긴 밧줄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행위가 바로 쏟아냄이 들어옴을 초과하는 지식 유출을 방관하는 행위다. 일 년이 되지 못해 그의 지식은 낡은 것이 된다. 그리고 충전이 불가능한 배터리처럼 폐기된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321.이것이 좋은 말의 한계였다. ‘좋은 말’은 강연장이라는 무균실에서만 살아 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에 불과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부서지며 다시 어제의 관성으로 합류되는 사람들을 보며 자괴감이 많았다.

 

322.강연은 하나의 지적 퍼포먼스이다. 내가 먼저 그 내용에 만족해야 하고, 청중의 개인적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관심을 갖는 주제 속에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사례들을 잘 포진시키는 것이 흡착력 있는 내용을 이루는 기본적 구성이다.... 예술가가 자신을 표현할 때의 자세와 유사한 몰입이 있어야 한다. 강연자가 몰입하지 못하는 강연은 좋은 강연이 아니다....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강연은 죽은 것이다.

 

324.개중에는 아주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다. 두 시간 정도의 상대로 최고인 빳빳한 대상이다. 나는 빳빳한 게 좋다. 이들이 내 타깃이다. 나는 이들을 ‘놀이집단’이라 부른다. 그들이 내 편으로 돌아서면 강연은 일단 성공한 것이다.

 

325.그러나 이 속에는 늘 불안이 있다. 인기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며 언젠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에 의지한 자는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늘 변하고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기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인기를 추구하는 자는 인기를 잃음으로 결국 불행해지거나 스스로의 왜곡에 빠지기 쉽다. 지지자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모든 화려한 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327.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 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웃고 말았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탐이 나더라도 마음을 접는 것이 좋다. 나는 쇼 비즈니스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그 대신 나에게 적합한 강연 스타일을 만들어야 했다.

 

331.“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으로 관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허영 없이는 무엇으로 움직이겠어요?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끝이에요. 부인할 수 없어요. 관객의 갈채를 받지 못하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요.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항상 젊어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신선해야 해요. 시들지 않는 에버그린 같은 것이지요. 관객과의 데이트 말이에요. 거기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다 보여요. 넥타이 색깔까지 다 보여요. 누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싫어요. 귀뿐만 아니라 눈까지 나를 응시해주기를 바라요. 무대에서만 나는 살아 있어요. 무대에서 나는 가장 아름답고 당당해요. 나는 노래를 위해 태어났고 노래로만 나를 증명할 수 있어요.”<조수미>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적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33.그 순간 내 일이 매우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덮고 있는 행복의 껍질을 뜯어내는 것이 매우 적대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행복이라는 초콜릿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그들은 그 초콜릿 덮개가 벗겨지는 것에 분개한다. 그리고 적대적이 된다. 솔직한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334.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337.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세 개의 에필로그

 

348.그날 잠에서 깨어나자 아름다운 충동이 거부할 수 없이 나를 덮쳤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이 물결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창조는 바로 그 물결처럼 내 발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349.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꿈..... 나는 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351.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바람이 불면 ‘솨아’ 소리를 내며 온 잎들을 있는 대로 바람에 실어 날리는 나무이다. 봄이 되면 꽃을 주렁주렁 피우는 나무이다. 여름 소나기 끝에 햇빛이 다시 쨍해질 때 초록색 물방울을 달고 서 있는 싱싱한 이파리로 뒤덮인 나무이다. 때가 되면 꽃보다 더 진한 단풍으로 깊어지는 나무이다. 아, 그리고 그 나무, 겨울 그 강풍에 아무 소리 않고 죽은 듯 서 있는 그 나목.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온몸 안을 꽃으로 가득 채운 채 꽃 터지는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352.변화는 마흔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영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355.나는 정신적 여행자이다. 타임머신 없이 과거로 가고,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짐도 싸지 않은 채 르네상스의 피렌체로 가고, 고대 중국의 한 왕국의 밀실에 숨어들기도 한다.... 나는 정신적 방랑자이고 내 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뜨겁다.

나는 이 여행을 늘 글로 옮겨 적는다. 그것이 바로 일 년에 한 권 정도 출간되는 내 책들이다.

 

356.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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