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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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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3일 09시 53분 등록

9월 네 번째 오프 후기 _ 나의 하루 창조

2014. 9. 23

장소: 합정역 인근 허그인 외 몇 곳

일정: 2014. 9. 18(공식), 2014. 9. 18~19(비공식, 무박이일)

목적: 데카상스 오프모임 제4차.

주제: 하루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이 하루는 어떤 의미인가?


#1 현역이 좋아요.


끊임 없이 ‘익숙한 것들과 결별’ 하며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 내라고 몰아쳤다. 그런데 어쩌나? 그 사이 연구원 과정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 ‘슬럼프’라고도 하는데 ‘게으름’이 더 직접적인 표현이겠다. 그렇다 보니 여기 ‘익숙’이라는 단어에는 퀄리티가 빠져 있다. 한 학기 동안 자신에 대한 탐구에 집중 했었다면 스페인 여행을 전후해서 장력이 늘어져 흐물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재경 선배도 미스테리 선배도 말해주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또 언제 가져보겠어요?” “지나고 보면 현역 때 만큼 좋은 적이 없어요.” “이때 실 컷 즐기세요.”


나는 누구보다도 연구원 과정을 집중하며 즐기고 있다.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열어가고 있으니 이 또한 멋진 일이다. 해야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것이니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딱’ 좋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절부절 조바심을 내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 관성이 작동하는 탓일 것이다. 정체도 실체도 없는 두려움은 조바심을 부채질 한다. 연구원 과정이 또 다른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놓았으니 다시 틀어 쥐어야 한다. 이때 방심하면 끝없이 늘어지게 마련이다.



#2 그리움


지난 한달 여 그대들이 이토록 그리운 적이 없었다. 문득 문득 이렇게까지 마음이 쏠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오히려 염려스러웠다. 이런 나는 나조차 낮설다. 기차표를 예매하면서 돌아오는 표를 열어 놓았다. 막차시간에 쫓겨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기를 쓰고 막차로 내려가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될대로 될 것이다.


‘왜 서울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한 쪽을 비워두는 것이 에티켓이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합정역에 닿았다.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린다. 전철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또 다른 일단의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두 칸씩 건너 딛고 오른다. ‘운동인가?’ 사람들 표정 살피는 재미가 서울 사람들에게선 반감된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늘 서늘한 이 도시에 오면 외소증과 약간의 공황장애를 앓는다. 그래서 더 천천히 걷고 더 두리번 거리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말았다. 조바심 내고 바둥바둥 하는 이들의 모습은 투사 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몇 걸음 더 걸었더니 나름 포근한 그림이 펼쳐진다. 제법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좀 이른 시간인 모양이다. 한적한 골목을 접어들어 마당이 있는 오래된 집에 닿았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났다. 뭔가? 이 안도감은...



#3 조르바와 함께


동기들도 선배들도 모두 밝다. 두 달여 만에 만나는 미스테리 선배와 찰라횽아는 그 사이 반쪽이 되어있고, 콩두선배는 조금 피곤해 보였으나 맑았다. 스페인을 다녀온 여러분들은 산고를 겪었거나 큰 몸살을 겪어 낸 사람들 처럼 ‘나 살아있어’ ‘그래서 다들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들이다. 만남만으로 이렇게 고마운가!  


수업의 질과 관계없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로운 시간이 고요하게 흘렀다. 여전히 떠들고 웃고 왁자지껄 했지만 나는 그 광경들이 봄날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의 나른함 같다고 생각했다. 소음들은 차단되었고, 그들의 말과 움직임들이 나른한 춤과 노래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2배속으로 돌아가는데 이곳만 슬로비디오가 돌아가는 듯, 락을 듣고 있는데 클래식을 듣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어는 사유를 가두는 감옥임에 틀림없다.


선배들의 꾸지람이 늘어진 테입에서 나오는 노래처럼 편안했으니...


밤이 깊어가면서 아쉬운 걸음은 각자 갈 곳으로 돌아가고, 남을 사람들은 또 남았다. 자리를 옮길수록 무리는 줄었지만 뜨거움은 커졌으리라. 달자형, 앨리스, 에움, 양파...이들이 그들의 조르바를 만나고 있을 때 내 조르바는 아직 죽어 있었다. 밧데리 방전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신나게 새벽을 맞으리라던 다짐은 고갈난 에너지로 흐느적 거렸으나, 그 밤 창고에서의 일탈은 평생토록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축제의 밤이 지나고 새날이 시작되려 할 때 나는 그들을 담고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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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3 11:24:57 *.70.58.64
좋네요 편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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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3 13:55:54 *.50.21.20

늘어진 테이프는 다시 감아야져! 언제쯤 같이 한 곡 땡겨주시려나 피울의 조르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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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3 22:45:24 *.124.78.132

글이 왠지 점점 더 따땃하고 포근해진 느낌이예요 ^^*

키울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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