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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3일 12시 33분 등록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로버트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에코의 서재, 143

 

1.   저자에 대하여

 

로버트 A. 존슨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융 연구소에서 수학한 미국의 정신분석가. 국제적으로 저명한 강연자이자 저자.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심리학적 견해, WE> 가 국내에 번역되었고 <내면작업 inner work>, <충만함 contentment>, <엑스터시 Ecstacy> <변형 transformation> 등의 저서가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책은 손 안에 들어가는 크기이고 143, 얇다. 3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그림자에 대한 설명이다. 페르소나, 자아처럼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고, 의식화된 부분이다. 그림자는 우리의 일부이지만 자신이 잘 모르고 억압해온 부분이다. 그림자 안에는 어두움과 함께 황금이 들어있다. 시소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그림자를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2장은 낭만적 사랑을 자기 안의 신성을 투사하는 것으로 보고 서술한다. 저자의 다른 책 <WE>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3장은 만돌라에 대한 이야기다. 만돌라는 두 원이 합쳐지는 부분, 그러니까 교집합 부분만 잘라낸 아몬드 모양의 문양이다. 두 가지 대극의 창조적인 지대 같은 개념이다. 그는 만돌라를 대립하는 양극의 모순을 감싸안는 절묘한 상태로 본다. 1장과 3장은 이해가 되는데 굳이 2장에서 남녀의 사랑을 그림자 투사의 관점에서 보았어야 하는 지 의구심이 든다. 2장은 빼고, 1장과 3장을 더 다루어 보면 어떨까? 그리고 빛을 밝히는 만큼 그림자가 진해지고, 시소처럼 의식화된 부분과 무의식 속에 억압된 부분이 정확히 균형을 이룬다면, 그리고 그 그림자를 창조적인 의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쪽에 대한 서술이 더 많으면 유용하겠다.  

 

이 책은 두 가지 이미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시소와 만돌라. 시소는 흔한 이미지. 존슨의 시소의 양쪽에 자아와 그림자가 위치한다.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자아 쪽을 늘이면 그만큼의 그림자를 다루어야 한다. 시소에 비해 만돌라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생경하다.

 

1.     그림자

 

그림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빛과 그림자의 균형잡기

상징적 행위로 삶의 균형 이루기

그림자 투사하기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부활

그림자 안에 숨겨놓은 황금

그림자 속에서 찾는 중년의 에너지

의례로 그림자 표현하기

 

2.     낭만적 사랑과 그림자

 

사랑에 빠진다는 심리적 의미

강렬한 로맨티시즘의 체험

모순을 초월한 역설의 위대함

사랑과 힘의 딜레마

그림자 감싸 안기

 

3.     만돌라

 

분열된 세계를 치유하는 힘

만돌라, 치유의 예술

창조의 싹을 틔우는 신의 그릇

 

2)   장점 및 보완점 평설

 

융이 말하는 그림자에 대한 가장 간략하면서도 심오한 개념서가 아닐까? 그림자와 자아에 대한 존슨의 시소개념 때문이다.

 

 

3)   감동적인 장절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 칼 구스타프 융

 

10 칼 융은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융이 말하는 전일적이란 표현은 빛과 어두움을 다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빛으로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

 

이 두려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끝없이 타인이나 다른 그룹에 투사하게 된다. 인류역사의 비극적인 장은 모두 투사의 전시장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백인은 흑인에게, 그리스도교도는 무슬림에게, 나치는 유대인에게 투사를 해 왔고 그 결과는 끔찍한 파괴로 나타났다.

12 어둠 속에 쌓인 그림자에 의식의 빛을 투과한다면 이 비극적 역사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껴안는 작업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과제이다. 

두 문장은 개인의 그림자 탐색과 관련된 내면작업을 인류사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조명한다.

 

19 페르소나는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심리적인 옷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대변하듯

페르소나는 진짜 자신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아는 진짜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이자

자기가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데 실패한 부분이다.

페르소나=자아?

20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만 스스로 거부하거나 억압해온 내면이다.

 

24 우리 내면의 금은 숭고한 소명과 관련되어 있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시기에는 자신의 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면의 금을 무시하는 것은 내면의 어두움을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25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을 먼저 치유하고 그 경험을 통해 금을 발견하는, 상처받은 치유자의 원형이 살아 있다.

 

27 시소를 연상하면 심리의 기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신에게서 부여 받은 개별적인 특징 중 사회가 수용하는 면은 시소의 오른편에, 그렇지 않은 면은 시소의 왼편에 올려놓는다. 이 시소게임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신이 부여한 온전한 특질은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시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만 가능하다.

시소 이미지는 그림자와 자아의 균형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제공한다.

 

32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소유한다는 말은 자기 안에 아주 다양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위에 자란 만큼 땅 속에 뿌리가 있다.

 

36 예술품을 창작하거나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타인을 도와주거나 집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가족을 보호하는 모든 행위는 시소 반대쪽에 동등한 무게를 요구하므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창의력을 거부하거나 일상에서의 선행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이 동력을 깨달아 이런 작은 선행을 보상할 수 있는 의식적인 몸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무척 중요하다. 나는 특히 창조물을 내는 것, 그리고 소진되지 않으면서 내 직업에서 지내는것에 관심 있다. 이 사례를 찾아보자. --à 생활 속에서 관찰, 실천해보고 칼럼으로 쓰기

 

39 우리는 의례나 의식을 통해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삼류소설 한 편을 쓰거나 명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폭력 난무 소설은 이해 되는데 명상은 이해 안됨.

 

44 파열된 우리 세계를 치유하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일 용기와 통찰을 지닌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45 현대 심리의 가장 위험한 면은 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우리가 아닌 그들즉 이웃이나 다른 민족 혹은 다른 문화에 속하는 사람에게서 발견하려는 것이다.

 

54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전가하는 그림자 투사를 내가 거부할 수 있을까? -à할 수 있다. 

내 그림자가 점화를 기다리는 석유통 같을 때 내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이 등장하면 한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해오면 먼저 싸움에 대응하지 말고, 싸움꾼이 그냥 지나치도록 내버려두라.

 

61 우리가 영웅을 숭배하는 것은 순전히 그림자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가 지닌 최고의 특질을 자기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그것을 보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들이 지닌 숭고한 특질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이것을 가진 다른 대리인이나 대용품을 찾는다.

 

65 융은 분석을 할 때 이렇게 경고했다. “환자의 벽장 속에서 해골을 끄집어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그림자로부터 황금을 끄집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면 못지않게 자신의 고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68 성인기의 초반부는 거의 전적으로 극기와 훈련에 헌신하는 시기다. 전문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사회생활을 익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가고 수입을 늘인다. 이 모든 활동은 변함없이 커다란 그림자를 만든다. 문화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덮어두었거나 선택에서 제외했던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중년에 이르면 문화화 과정은 거의 완결된다.

시소 이론에 의하면 문명화, 자아의 분량을 양껏 늘였다.

 

68 중년에 이르면 그림자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이때가 되면 우리가 그토록 애써 이룩한 것들을 한꺼번에 전복시킬 만한 폭발력이 생긴다.

 

72 의례를 치를 때는 자신의 심리에서 왼편에 놓이는 특질 하나를 찾아내어 이 특질에 걸맞는 표현을 해줘야 한다. 왼편에 있는 특질을 표현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건, 단편소설을 쓰거나 춤을 추거나,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어버릴 수 있다. 이 때 꼭 명심할 것은 물리적으로 표현은 하되 오른쪽에 있는 부분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83 대부분의 결혼은 투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반드시 이 환상이 깨지는 시기를 겪는다. 다행히 눈꺼풀에 씌인 것이 벗겨지면 우리는 훨씬 인간적으로 변한다. 인간적으로 변한다는 말은 결혼생활이 훨씬 견고한 실체를 기반으로 지속된다는 뜻이다. 이럴 때 배우자는 맨 처음 투사단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상태는 신에 가까워지는 체험인 반면, 견고한 실체를 바탕으로 지속되는 사랑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높이 끌어올린다.

 

85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면인 두려움이나 근심거리를 투사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108 역설이 삶에 가져다 주는 기적

우리는 역설을 통해서 대극적인 두 요소의 싸움이나 타협을 넘어선 단일한 눈을 발견할 수 있다.

109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만일 다른 두 가지 본능이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충분히 오래 견딜 수 있다면 두 갈등이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어서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통찰이 떠오를 것이다.

 

인도와 티벳에서 사용하는 산스크리트 용어 만다라는 전일성을 표현하는 신성한 원, 혹은 테두리가 있는 장소다.

티베트에서는 종종 스승이 제자를 위해 만다라를 그려주는데, 스승이 다음 단계의 가르침을 주기 전 까지는 제자는 여러 해 동안 이 상징을 보며 명상에 잠긴다.

고딕건물의 장미창에도 만다라를 볼 수 있고,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도 치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꿈에도 만다라가 나타나는데, 특히 심리적 분리가 일어나 평온을 가져다 줄 상징이 필요한 사람이 그 꿈을 꾸게 된다.

살아가면서 과중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에 융은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마다 만다라를 그렸다.

 

만돌라 역시 치유효과가 있지만 모양에 있어서 만다라와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만돌라는 아몬드 모양인데 동그라미 두 개가 부분적으로 겹쳐질 때 형성되는 모양이다. 이 상징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고 있는 두 대극의 중첩 그 이상을 뜻한다.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 칼 구스타프 융

 

들어가는 말

 

6 심리학자 칼 융이 제일 좋아했다고 알려진 이야기다. 지구상 어디엔가 장인의 샘이 있고 그 곳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난다. 물길을 내기 위해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물은 어딘가로 흐른다. 순수하고 청정한 이 물은 마신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북돋아주어서 힘을 얻게 해 준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듯이 사람들은 이런 낙원 같은 상태를 있는 그대로 놔두지 못한다. 곧 샘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입장료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샘 근방의 땅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특정 사람만 샘물을 마실 수 있도록 법을 만든다. 울타리를 치고 문에는 빗장을 채운다. 모두에게 주어진 샘이 힘 있는 엘리트들만의 사유재산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던 생명의 물은 기분이 언짢아지고 화가 나서 흐르기를 멈춰버린다. 그러고는 다른 자리를 찾아내 그 곳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샘 근처에 재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샘을 둘러싼 힘의 역할관계에만 몰두한 나머지, 샘물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계속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샘물을 돈을 받고 판다. 생명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중 극소수는 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태에 불만을 품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장인의 샘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새로 찾은 샘도 머지않아 땅 주인들이 통제를 하게 되고 결국 같은 일이 똑같이 반복된다. 물은 또 새로운 자리를 찾아 샘솟는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의 비유일까? ?

 

7 물은 영적 자양분의 심오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8 이 책에서 나는 이 시대에 생명의 물이 흐르는 낯선 자리를 탐구할 것이다. 

 

8 이 물은 나사렛같이 가장 주목받지 못한 땅에서 솟는다.

예수님이 태어난 나사렛, 성배신화의 트리치팔이 태어난 곳, 트리스탄의 고향 모두 오지.

 

9 인간의 영혼에서 기대치 않았던 원천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림자다. 당혹스럽겠지만 그림자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수용하는 일은 심오한 단계의 영적 수행이다. 이 수행은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성스럽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이라 말할 수 있다.

 

옮긴이의 말

 

10 칼 융은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흔히 우리는 고 바르다는 (good)과 온전한 혹은 전일적(whole)이라는 말을 혼동한다.

 

10 융이 말하는 전일적이란 표현은 빛과 어두움을 다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빛으로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

 

11 술에 취하거나, 실연을 당했거나, 콤플렉스에 강하게 지배받을 때 그림자가 행동으로 옮겨진다.

술과 사랑은 디오니수스의 영역. 디오니수스의 측면은 문명, 개인 정체성에서 그림자에 속할지도

 

11 메두사 등 뒤에 거울이 있으면 싸우던 사람이 미쳐버린다. 메두사보다 오히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훨씬 끔찍하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짐으로써 이후 싸움에서 이긴다. 페르세우스의 영웅적 과제는 그림자와의 전투였나?

 

이 두려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끝없이 타인이나 다른 그룹에 투사하게 된다. 인류역사의 비극적인 장은 모두 투사의 전시장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백인은 흑인에게, 그리스도교도는 무슬림에게, 나치는 유대인에게 투사를 해 왔고 그 결과는 끔찍한 파괴로 나타났다.

12 어둠 속에 쌓인 그림자에 의식의 빛을 투과한다면 이 비극적 역사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껴안는 작업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과제이다. 

두 문장은 개인의 그림자 탐색과 관련된 내면작업을 인류사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조명한다.

 

12 이 책에서는 그림자가 생성되는 기전을 시소라는 모델을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현재 우리는 그림자와 자아라는 두 대극적인 축으로 양분되어 그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 둘 사이의 모순으로 인한 갈등과 회의로 자신을 고갈시키지 말고 창조적인 통합의 장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역설은 의식의 진화에 있어 가장 커다란 도약의 순간이다. 그러면서 역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하지만 심오한 이미지를 제공하는데 그것이 만돌라이다.

신화학 박사이자 번역자의, 한 문단짜리 이 책의 내용 요약

 

13 심리학과 영성의 경계가 어디인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이 둘이 함께 펼치는 춤사위의 어울림을 맛보게 될 것이다. 심리학의 최대의 과제 중 하나인 그림자를 다루지만 영적 지침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책이다. 분석 심리학자 존슨이 오랜 명상을 생활화한 결실이다.

고혜경선생님이 번역한 존슨의 책 4권을 다 읽었다. 고헤경 선생님의 저서를 읽자. 그 다음에는 그녀가 번역한 제레미 테일러의 책을 읽는다. 다음에 제레미 테일러의 다른 책을 읽는다.

 

1.     그림자

 

19 페르소나는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심리적인 옷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대변하듯

페르소나는 진짜 자신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아는 진짜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이자

자기가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데 실패한 부분이다.

페르소나=자아?

 

20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만 스스로 거부하거나 억압해온 내면이다. 그것이 자아보다 더 큰 에너지를 집적할 경우 분노로 폭발하거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21 인류는 천재적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특질은 조화롭게 발휘되지만 위협적으로 비치는 특질은 걸러진다.

 

22 나는 이 분리 작업이 어린아이들에겐 너무 빨리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이런 분리가 일어나면 어린 시절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문명화 과정을 견딜 만큼 강해질 때까지 에덴동산에 머물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느 시점에 길러지는가? 이에 대해서는 개별차를 인정해야 한다.

실제 부모의 상실이든 부모는 있되 부모 역할의 상실이든 조실부모한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일이 너무 빨리 들어온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부모 그늘 아래에서 아무 생각없이 커야 건강하다.

 

24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추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림자의 고상한 면을 발견했을 때 이에 저항하느라 더 큰 에너지를 쏟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림자 안에 어두움과 금이 동시에 있다는 말이로군

 

24 우리 내면의 금은 숭고한 소명과 관련되어 있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시기에는 자신의 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면의 금을 무시하는 것은 내면의 어두움을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25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을 먼저 치유하고 그 경험을 통해 금을 발견하는, 상처받은 치유자의 원형이 살아 있다.

 

25 종교생활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다시 전일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종교란 단어는 다시 연결하고, 원천과 하나되는 상태로 돌아가며, 분리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동물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고양시키는 문명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분열되고 소외된 세계를 다시 하나로 연결하는 영적인 과제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명이 존재할 수 없다. 문명을 이룩한 다음에는 문화가 표방하는 이상과 덕목 때문에 상실하게 된 전일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분리된 상태로 살아가게 되며, 진화가 거듭될수록 분리로 인한 고통은 커질 것이다.

이 문단이 퍽 중요하게 느껴진다. 참구할 필요가 있다.

 

26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문화적인 과정을 익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 삶의 후반부에는 전일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

중년인 나로서는 전일성 부분에 방점

 

27 빛을 밝히는 것은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바른 쪽에 치우친 행위를 했다면 그 반대편 행위로 시소의 균형을 맞춰져야 한다.

 

27 시소를 연상하면 심리의 기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신에게서 부여 받은 개별적인 특징 중 사회가 수용하는 면은 시소의 오른편에, 그렇지 않은 면은 시소의 왼편에 올려놓는다. 이 시소게임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신이 부여한 온전한 특질은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시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만 가능하다.

시소 이미지는 그림자와 자아의 균형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제공한다.

 

28 사람이 평상심을 유지하려면 시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바른쪽에 드러나는 특질을 선호한다면 그 반대쪽에도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뭔가로 균형을 맞춰져야 한다.

 

28 시소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 놓아서 지렛대가 부러질 수 있다. 이 상태를 정신이상이나 신경쇠약이라 부를 수 있다. 무너져 내린다는 표현이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해 준다.

 

31 지렛대나 시소의 중앙은 온전하고 신성한 지점이다.

 

31 우리는 모두 외부세계와 관계할 때 잘 훈련된 선한 면을 드러내야 하는데 이는 좌우측의 균형이 잘 유지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31 자신한테 자기의 어두운 면을 숨기려 들어서는 절대 안된다. 진정 성인의 자질을 갖추려면 시소의 중앙에서 한쪽의 무게와 비슷한 무게를 반대쪽에도 쌓아야 한다.

 

31 같은 정도의 어두움 없이는 빛을 밝힐 수 없다. 인도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파괴의 신 시바 사이에 비슈누를 앉혀 대극이 균형을 이루어 공존할 수 있도록 한다.

 

32 심리의 구조를 이야기할 때도 기본적으로 같은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독일어의 도플갱어란 단어는 자신의 거울 이미지, 혹은 자신의 반대라는 뜻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렇게 선명하게 체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심리적 쌍둥이인 그림자는 거울 이미지처럼 우리 곁을 항상 따라다닌다.

 

32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소유한다는 말은 자기 안에 아주 다양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위에 자란 만큼 땅 속에 뿌리가 있다.

 

33 이것이 바로 융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통찰 중 하나이다. 자아와 그림자는 같은 원천에서 만들어지고 서로 정확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빛을 밝히는 것은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 없이 서로 존재하지 못한다.

 

33 인도에서는 성인의 특질을 규정하는 단어가 셋 있다. 사트 sat, 치트 chit, 아난다 ananda 가 그것인데 사트는 삶의 존재론적 측면을 의미한다. 대개 시소에서 좌측에 위치하는 부분이다. 치트는 이상적인 부분으로 대개 오른편에 위치한다. 아난다는 지복, 기쁨, 깨달음의 황홀경을 뜻하는데 바로 이것이 시소의 중심축이다. 사트와 치트가 서로 짝을 이루고 이것을 충분히 의식할 때 아난다라는 삶의 기쁨 또는 법열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소유함으로써만 얻게 된다.

시소의 균형은 융, 존슨의 것만이 아니라 인도 철학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로구나

 

36 예술품을 창작하거나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타인을 도와주거나 집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가족을 보호하는 모든 행위는 시소 반대쪽에 동등한 무게를 요구하므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창의력을 거부하거나 일상에서의 선행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이 동력을 깨달아 이런 작은 선행을 보상할 수 있는 의식적인 몸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무척 중요하다. 나는 특히 창조물을 내는 것, 그리고 소진되지 않으면서 내 직업에서 지내는것에 관심 있다. 이 사례를 찾아보자. --à 생활 속에서 관찰, 실천해보고 칼럼으로 쓰기

 

다음은 책에 나온 사례

 

35 수많은 예술가들이 왜 사생활에서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최종 산물인 자신의 창작품에 어두움을 포함시켜서 그림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광의의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36 분석 심리학자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박사와 바버라 한나는 스위스 쿠스나흐트에서 한 집에 살았는데, 둘 중 한 사람에게 행운이 생기면 그 사람이 한 주일 동안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맡았다. 이는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행위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긍정적인 일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이 일에 수반하는 그림자적인 측면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융은 종종 친구들에게 최근에 끔찍한 성공을 거둔 적이 있어?” 라고 묻곤 했는데, 이는 빛과 그림자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손님이 우리집에 머물렀는데 이 손님은 초대했던 기간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 나는 이 기간 내내 불편한 상황을 참아내야만 했다. 그러자니 헤라클레스 같은 인내력이 필요했고, 심지어 내 예의의 한계를 시험받고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손님이 떠난 후 나는 꽃가게 점원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언쟁했다. 내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애꿎은 낯선 점원에게 내 그림자를 내려놓은 탓이다. 어쨎든 시소의 균형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방법이 서툴고 어리석었다.

 

37 창조적인 남성들의 그림자에 대한 대가는 그 곁에 머무르는 여성들이 치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 창조적인 여성의 어두운 면, 곧 창조의 부산물 때문에 에너지가 고갈되는 남성들도 많이 있다.

 

37 최악의 경우는 창의적인 부모의 그림자가 자녀들에게 전가되는 경우다. 성직자가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나, 부유한 부모를 둔 자녀들이 오히려 의미있는 삶을 살기 힘들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40 나의 경우 내 전문분야에서 그림자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는 때가 있다. 나는 강의를 잘 하려고 애쓰고, 좋은 책을 쓰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노력은 즉시 내 안에 있는 최악의 것들을 응집시켜 그림자를 활성화한다. 

 

38 오늘날 평범한 가족이 기계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일은 과거의 하인 28명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39 우리는 의례나 의식을 통해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삼류소설 한 편을 쓰거나 명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폭력 난무 소설은 이해 되는데 명상은 이해 안됨.

 

41 그렇다면 우리가 창의적인 만큼 파괴적이어야 하고 밝은 만큼 어두워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이 어두움에 대한 값을 지불할 것인가는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다. 창조적인 일을 한 다음에 곧바로 의례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의례는 혼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무사히 마친 후에 나는 변기를 닦는다. 쓰레기를 버린다. 집을 한 번 쓴다. 지렁이 상자를 열어볼 수 있는 유일한 때도 이 때다.

기도까지 잘 마치면 물걸레로 바닥을 꿇어앉아 닦고 걸레를 손으로 빤다. 이런 것?

 

41 유혈이 낭자하고 폭력적인 삼류소설 한 편을 쓰거나(자신의 시소 반대편이 벌써 행동으로 돌진할 태세이므로, 등장인물의 특질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적극적인 명상도 도움이 된다. 이런 행위들이 바로 어두운 측면을 존중하는 것이고, 이런 상징적인 행위들을 통해 살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교의례들은 시소 왼편과 균형을 이루도록 고안되어 있다.

 

42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두 축이 중앙에서 교차하는 이중의 시소다. 십자가는 위와 아래, 그리고 좌와 우의 균형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네 축의 만다라. 네 가지 삶의 영역

 

43 어떻게 서방교회에서 이런 십자가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있다. 그리스도교는 현재보다 훨씬 대지적이고 여성적인 면의 비중이 크던 시기에 형성되었다.

 

44 좋든 싫든 우리는 온전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위엄을 가지고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통합할 것인가 아니면 신경증적 행동으로 표출할 것이냐 이다. 영국의 작가 겸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는 고문에 대한 유일은 대안은 예술이라 말했다. 이것은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세계에서 우리의 창의력을 꽃피워나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인 인간의 잔혹함을 현실에서 대면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된다.

 

44 파열된 우리 세계를 치유하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일 용기와 통찰을 지닌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45 현대 심리의 가장 위험한 면은 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우리가 아닌 그들즉 이웃이나 다른 민족 혹은 다른 문화에 속하는 사람에게서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 두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해서 현대세계가 이룩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다.

 

45 누구나 개인적으로는 전쟁을 비난하지만 집단이 되면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 찬성한다. 이런 파괴와 혼란을 초래하는 주체는 집단의 그림자였고, 우리 모두 예외없이 그림자 형성에 기여했다.

 

50 오늘날 온갖 업계에서 우리 대신 그림자를 떠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림자를 전가하기 위해 제공되는 것이 영화, 패션 디자인, 소설 등이다. 언론에서는 매일 그림자적인 특질을 외부에서 충족하도록 재앙이나 범죄, 공포의 뉴스를 다룬다. 이는 원래 각자의 내면에서 의식의 일부로 통합되어야 할 그림자 특질들이다.

섹스, 폭력, 공포 영화, 실행되지는 않지만 영화 속에서 펼쳐짐으로써 인류에 봉사함.

 

50 남자가 여자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가톨릭이 개신교에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게, 무슬림이 힌두에게, 이웃간에 일어난다. 한 가족을 희생양으로 택하여 마을 전체의 그림자를 가 가족에게 짊어지게 한다. 대부분의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구성원 중 한 사람을 왕따로 만들어 그로 하여금 공동체의 어두움을 혼자 감내하게 만든다. 이것은 문화 태동기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52 그림자를 전가하는 최악의 상태는 부모의 그림자를 자녀들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녀들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짊어지는 그림자보다 훨씬 더 큰 그림자를 성장기에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결혼을 하면 다시 자녀들에게 그림자를 전가하려 든다. 인간의 죄가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 즉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다면 자녀들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덜어주라. 심리학적으로 말해 자녀에게 깨끗한 유산을 넘겨주는 것이 가장 위대한 상속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본인의 심리구조 안으로 되가져옴으로써 자신의 의식도 진일보하게 된다. 자기 내면의 심리구조 안에서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그림자는 전일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54 우리의 책임을 자녀들에게 전가하지만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은총이다.

부모 되려는 이들에게 그림자를 통합하는 일은 중요하다.

 

54 모든 책임은 나로서 끝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표어)

 

54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전가하는 그림자 투사를 내가 거부할 수 있을까? -à할 수 있다. 

내 그림자가 점화를 기다리는 석유통 같을 때 내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이 등장하면 한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해오면 먼저 싸움에 대응하지 말고, 싸움꾼이 그냥 지나치도록 내버려두라.

 

57 파우스트는 자아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림자도 동시에 부활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림자든 자아든 서로를 돌보지 않고서는 변형을 이룰 수 없다.

 

61 우리가 영웅에게 빠져드는 것은 내 안에서 숭고한 특질을 발견하는 것보다 멀리서 남을 추앙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61 우리가 영웅을 숭배하는 것은 순전히 그림자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가 지닌 최고의 특질을 자기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그것을 보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들이 지닌 숭고한 특질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이것을 가진 다른 대리인이나 대용품을 찾는다.

 

62 내가 분석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나의 영웅이었던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를 먹어치우는 놀라운 꿈을 꾸었다….이것은 내 안의 슈바이처 같은 특질을 외부의 영웅에게 투사하는 걸 멈추고 자신의 특질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내가 앨버트 슈바이처가 되었다고 말해준다.

 

65 융은 분석을 할 때 이렇게 경고했다. “환자의 벽장 속에서 해골을 끄집어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그림자로부터 황금을 끄집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면 못지않게 자신의 고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66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면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될 수 있다. 첫째, 자기의 어두움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안의 밝은 면을 전가해서 자기 대신 상대방이 영웅이 되어주기를 원한다. 이 경우도 상대에게 대단히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된다. 둘째 자기 그림자를 내던져 버림으로써 스스로 황폐해진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성장과 변화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며, 황홀경을 경험할 지렛대의 중심을 놓치게 된다.

 

68 성인기의 초반부는 거의 전적으로 극기와 훈련에 헌신하는 시기다. 전문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사회생활을 익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가고 수입을 늘인다. 이 모든 활동은 변함없이 커다란 그림자를 만든다. 문화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덮어두었거나 선택에서 제외했던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중년에 이르면 문화화 과정은 거의 완결된다.

시소 이론에 의하면 문명화, 자아의 분량을 양껏 늘였다.

 

68 중년에 이르면 그림자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이때가 되면 우리가 그토록 애써 이룩한 것들을 한꺼번에 전복시킬 만한 폭발력이 생긴다.

 

70 나는 그가 전문 분야의 삶에서는 완전히 지쳐 있으니 새로운 생명력을 찾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내지 못한 그림자와 접촉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 사람은 아주 바른생활인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림자 부분과 접촉하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다.

 

71 심리학 잡지인 사이콜로지 투데이의 초기판에 아주 좋은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나이가 쉰이 되면 직업을 바꾸라는 충고다. 한두 해 일을 그만 두고 완전히 새로운 직업을 위한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동유럽에는 성인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제도가 있다. 새 언어를 배울 때 생겨나는 좋은 에너지를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나도 쉰에 직업을 바꾼다면 뭘로? 외국어 하나 유창하게 하고 싶다. 나는 영어.  

 

72 의례로 그림자 표현하기

마리 앙투아테트는 화려한 궁정의 삶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외양간에서 소젖을 짜는 비천한 일을 시도했다.

 

72 의례를 통하여 그림자에 접근하여 창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72 중세의 영웅들은 용을 죽여야 했다. 그러나 현대의 영웅들은 용을 집으로 데려와 자신의 의식 속에 통합시켜야 한다.

=그림자?

 

72 의례를 치를 때는 자신의 심리에서 왼편에 놓이는 특질 하나를 찾아내어 이 특질에 걸맞는 표현을 해줘야 한다. 왼편에 있는 특질을 표현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건, 단편소설을 쓰거나 춤을 추거나,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어버릴 수 있다. 이 때 꼭 명심할 것은 물리적으로 표현은 하되 오른쪽에 있는 부분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73 미사 전후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의례를 따로 진행한다.

 

74 파괴적인 요소를 편입하지 않고는 문화를 활성화시킬 방법이 없다.

 

74 진정한 창조행위는 온전한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2. 낭만적 사랑과 그림자

 

81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자기 안의 가장 고상하고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를 다른 누군가에게 투사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일 또는 사물이 될 수도 있다. 누구는 치유작업과 누구는 피카소의 작품과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진다는 의미는 대부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할 때의 체험을 말한다.

우리가 상대에게서 보게 되는 신성은 상대방의 내면에 실재로 존재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 자신이 투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상대방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을 볼 권리가 없다.

낭만적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느낌과는 다른 의미다.

사랑한다는 것은 훨씬 고요하고 인간적인 경험인데 반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질풍노도와 같다. 낭만적 사랑에는 우리존재보다 더 큰 무엇이 존재한다.

 

83 대부분의 결혼은 투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반드시 이 환상이 깨지는 시기를 겪는다. 다행히 눈꺼풀에 씌인 것이 벗겨지면 우리는 훨씬 인간적으로 변한다. 인간적으로 변한다는 말은 결혼생활이 훨씬 견고한 실체를 기반으로 지속된다는 뜻이다. 이럴 때 배우자는 맨 처음 투사단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상태는 신에 가까워지는 체험인 반면, 견고한 실체를 바탕으로 지속되는 사랑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높이 끌어올린다.

 

85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면인 두려움이나 근심거리를 투사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내 창의력의 유일한 샘이 되고 나에게 신의 영감을 부여해 주기를 원해. 부디 내 삶을 바꿔줘.” 과거에는 영적인 가르침으로 대하던 내용을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해주길 기대한다.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죄를 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배우자가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86 현대인은 12세기에 등장한 두 신화의 계승자들이다. 이 둘은 성배신화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다. 성배신화는 개성화와 영성의 문제를 다루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낭만적 사랑의 힘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두 신화 모두 인간이 직접 체험한 신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88 이 두 신화가 탄생하기 전, 서구인들은 늘 집단이라는 틀 안에서 신의 위대함을 경배했다. 신은 교회의 예배당 안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삶과 직접 접촉하여 하지 않았다.

 

88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우리들에게 낭만적 사랑의 귀착지 중의 한 곳을 보여준다. 또한 신성을 다른 인간에게 투사할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89 110볼트짜리 사랑은 1만 볼트 밝기의 조명탄보다 훨씬 가치 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 인간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랑은 하늘에 가닿는 로맨스의 경험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91 사랑에 빠진 모든 커플들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겪었던 고통을 답습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계의 기술을 발전시켜 우리의 딜레마를 극복하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식의 진화를 이룰 수 있다.

 

94 아틀란타는 야망이 있고, 성취욕이 강했으며 남자들의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아틀란타는 여러모로 현대의 여성 영웅들과 닮았다. 문제는 인간관계의 기술에 대해서 전혀 배운 바가 없다는 데 있었다.

 

108 역설이 삶에 가져다 주는 기적

우리는 역설을 통해서 대극적인 두 요소의 싸움이나 타협을 넘어선 단일한 눈을 발견할 수 있다.

 

109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만일 다른 두 가지 본능이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충분히 오래 견딜 수 있다면 두 갈등이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어서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전혀 새로운 통찰이 떠오를 것이다.

 

110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쓴 덴마크의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세 가지라고 했다. 첫번재는 에너지가 넘치는 때이고 두 번째는 고통이 중단될 때면, 세번째는 자신이 신의 의지를 따른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때이다. 첫번째는 청년기에 해당되며, 두번째 것은 아주 단기간만 지속된다. 세번째는 내면작업이라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생긴다.

 

113 사랑과 힘의 딜레마

하나를 포기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해답을 찾을 가능성을 앗아가 버린다.

 

113 사랑없는 힘은 잔인함을 드러낸다. 힘없는 사랑은 취약하고 무미건조하다.

 

114 광신주의는 항상 두 대극적인 상황에서 한쪽을 희생시키고 다른 한쪽만을 수용한다. 광신주의에서 표출되는 엄청난 에너지는 반쪽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다른 반쪽의 진실로 모든 것을 통제해 보려는 광적인 노력의 결실이다.

근본주의자의 위험.

 

115 그림자 감싸안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다음 단계의 성장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

 

117 융은 상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그의 다음 성장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117 우리 시대에 걸맞게 영웅주의를 재정의하자면, 영웅이란 역설을 감당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119 아니마를 영혼의 안내자로 생각할 때 우리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낙원으로 안내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점은 단테가 지옥을 거친 다음에야 낙원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으로 아니마가 남자의 손을 맞잡고 바로 낙원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아니마는 먼저 남자를 뜨거운 냄비 속에 집어놓고는 한동안 두어 적당히 익도록 내버려둔다. – 폰 프란츠

 

119 역설에 동의한다는 것은 곧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3 만돌라

 

인도와 티벳에서 사용하는 산스크리트 용어 만다라는 전일성을 표현하는 신성한 원, 혹은 테두리가 있는 장소다.

티베트에서는 종종 스승이 제자를 위해 만다라를 그려주는데, 스승이 다음 단계의 가르침을 주기 전 까지는 제자는 여러 해 동안 이 상징을 보며 명상에 잠긴다.

고딕건물의 장미창에도 만다라를 볼 수 있고,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도 치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꿈에도 만다라가 나타나는데, 특히 심리적 분리가 일어나 평온을 가져다 줄 상징이 필요한 사람이 그 꿈을 꾸게 된다.

살아가면서 과중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에 융은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마다 만다라를 그렸다.

 

만돌라 역시 치유효과가 있지만 모양에 있어서 만다라와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만돌라는 아몬드 모양인데 동그라미 두 개가 부분적으로 겹쳐질 때 형성되는 모양이다. 이 상징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고 있는 두 대극의 중첩 그 이상을 뜻한다.

 

124 위대한 시는 도약을 통해 존재의 아름다움과 공포를 통합한다. 정반대라 생각했던 것 사이에 연결점이 있음을 깨닫는 것은 놀라움이자 충격이다.

 

128 만돌라 치유의 예술

심오한 진리는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돌라는 두 대극을 화합하는 전형이며 갈등과 이중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리의 안내자다.

 

129 잘 다듬어진 문장을 사용하는 것은 곧 이원성에서 벗어나 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이는 엄청난 치유와 회복력을 지니고 있는데, 바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모두 다 치유자이며 시인이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마다 만돌라를 만들게 된다.

 

131 좋은 이야기들은 모두 만돌라다. 점차 이야기의 기적적인 힘으로 두 대극이 서로 겹쳐지고 마침내 똑같아진다.

 

132 모세가 불타는 숲에서 계시를 받은 것을 아는가? 삶에서 두 대극이 충돌하여 하나가 다른 하나에 양도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신의 현존을 확신할 수 있다. 숲은 타지 않을 것이며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134 나는 음악적 자질이 발달된 편이기 때문에 다른 형태보다 음악 만돌라를 잘 느낀다. 바흐 마태수난곡 3/4 지점 바흐는 가장 잔잔한 것과 가장 귀에 거슬리는(바순) 두 요소를 조화시켜 만돌라를 창조했다. …대작을 만들기 위해 양극이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듯이 우리 삶도 가장 거슬리는 해체된 요소들과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35 특별히 강렬한 만돌라의 형태는 남미의 쿠란데로스 문화에서 볼 수 있다. 쿠란데로스는 원시 샤먼과 가톨릭 사제가 합쳐진 형태다.

 

136 만돌라는 춤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136 만돌라는 사적인 체험일 뿐 실질적인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역의 61괘는 만일 현자가 방안에 머무른다면 그의 생각이 천 마일 이상 들리게 된다고 말한다. 만일 누군가 내면의 삶에서 만돌라를 개인적으로 만든다면 그 영향이 천 마일 너머까지 전달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특별히 평화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치유의 에너지를 지닌 사람을 만난다면, 아마 이들은 이미 만돌라 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런 에너지를 지닐 수 있었으리라. 꼭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저 어떤 존재인 것으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은 융에게 자주 질문을 했다. “인류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의 대변혁과 관련된 이러한 질문에 융의 답은 한결같았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 작업을 한다면요.” 자기 영혼을 위한 내면 작업은 우리를 이런 위기상황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돌라는 평화를 만드는 작업이다.

 

137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힘입어 대다수 서양인들은 만돌라를 연구하는데 써야 할 에너지를 쓸모 없는 죄책감을 다루는 데 소비한다. 죄책감은 시간가 에너지의 낭비다.

 

138 의식적인 작업을 통해서만 만돌라가 만들어지고 치유가 일어난다. 만돌라에는 자책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 의식적인 작업을 요구한다. 죄책감은 역설의 값싼 대용품이다. 우리는 죄책감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우리 안에서 충돌하고 있는 서로 다른 진실을 들여다보는 용기 있는 행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 낫다. 죄책감은 교만에서 온다.

 

140 남녀의 만남도 모두 만돌라인데 두 대극인 남성성과 여성성이 만나는 장이고, 또 서로를 존중하는 장이다.

 

140 예전에 나의 스승이자 융 분서가 중 하나인 토니 수스먼은 꿈에서 항상 창조적인 유일한 상징이 섹스라고 말한 바 있다. 꿈 속의 섹스가 폭력적인 형태를 띨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여전히 화해와 창조다. 상징세계에서의 섹스는 강력한 일치의 장이다.

 

142 고대 연금술사들은 이 과정을 이해했다. 연금술에는 4단계의 발전을 거쳐가야 한다. 먼저 니그레도 nigredo 의 단계 사랑, 공격성 등이 외부로 투사되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삶의 어두움과 우울을 경험한다. 알베도 albedo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고, 루베도 rubedo 단계에서 열정을 발견한다. 마침내 도달한 시트론 citrono 은 삶의 황금을 감사하는 곳이다. 결국 다채로운 만돌라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파바니스 pavanis인데 이는 앞에 등장한 모든 색채를 포함하는 공작의 꼬리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색채의 향연인 파바니스에 도달할 때까지 이 여정을 멈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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