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90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동백꽃을 줍다
이원규
이미 져버린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닌 줄 알았다
새야,
시든 꽃잎을 물고 우는 동박새야
네게도 몸서리쳐지는 추억이 있으냐
보길도 부용마을에 와서
한겨울에 지는 동백꽃을 줍다가
나를 버린 얼굴
내가 버린 얼굴들을 보았다
숙아 철아 자야 국아 희야
철 지난 노래를 부르다 보면
하나 둘
꽃 속에 호얏불이 켜지는데
대체 누가 울어
꽃은 지고 또 지는 것이냐
이 세상의 누군가를 만날 때
꽃은 피어 새들을 부르고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잊혀질 때
낙화의 겨울밤은 길고도 추웠다
잠시 지리산을 버리고
보길도의 동백꽃을 주우며,
예송리 바닷가의 젖은 갯돌로 구르며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것을
경아 혁아 화야 산아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 줄 알았다
-----
돌담길에 빨갛게 떨어진 동백꽃을 본적이 있다. 어찌나 한 가득 붉게 떨어졌는지 물위에 꽃잎을 뿌려놓은 듯하여 그 속으로 풍덩 빠져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다. 아, 예쁘다 하고 내뱉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도 따라 드는 발끝에 흐드러진 동백꽃. 가까이 다가가 동백꽃 송이를 줍지 않을 수 없다. 보길도 동백꽃을 줍는 시인도 그러했으리라. 보길도든 어디든 동백꽃 가득 필 때, 아니 가득 떨어질 때 그곳에 가고 싶다. 그럼 나도 이런 시를 쓸 수 있으려나.
동백꽃 아름답다고 가까이 가면 호되게 앓으리라. 동백나무에는 동백잎을 먹고 사는 동백충이 살고 있어 털이나 배설물만 닿아도 독이 옮는다. 동백충 옮으면 온 몸이 동백꽃 같이 빨갛게 일어나며 가렵고 물집이 생겨 크게 고생한다. 동백나무 보기 귀하기에 올레의 동백잎 만질라치면 시어머니는 근처도 못 가게 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꽃들조차도 이토록 도도하단 말인가? 어쨌든 동백충은 동백꽃의 든든한 보디가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099 | 문화생활의 기본. [1] | 빈잔 | 2024.06.14 | 11 |
4098 | 가장 자유로운 시간. | 빈잔 | 2023.03.30 | 627 |
4097 | 내 삶을 지키기 위한 배움. | 빈잔 | 2022.12.27 | 651 |
4096 | 신(新) 노년과 구(舊) 노년의 다름. | 빈잔 | 2023.03.30 | 671 |
4095 | 나이는 잘못이 없다. | 빈잔 | 2023.01.08 | 692 |
4094 | 원하는 것(Wants) 과 필요한 것(Needs) | 빈잔 | 2023.04.19 | 695 |
4093 | 편안함의 유혹은 게으름. | 빈잔 | 2023.04.28 | 699 |
4092 | 원하는 것(Wants) 과 필요한 것(Needs) | 빈잔 | 2023.05.30 | 730 |
4091 | 정서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 빈잔 | 2023.03.08 | 734 |
4090 | 변화는 불편하다. | 빈잔 | 2022.10.30 | 737 |
4089 | 아름다운 인격은 행복이다. [2] | 빈잔 | 2023.01.17 | 789 |
4088 | 파스칼의 내기 게임. | 빈잔 | 2022.11.16 | 840 |
4087 | 노력하는 자체가 성공이다. | 빈잔 | 2023.05.05 | 867 |
4086 | 풋풋한 커플과 아이스티 한 잔. [2] | 그의미소 | 2023.01.06 | 870 |
4085 |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 | 빈잔 | 2022.07.07 | 956 |
4084 | 노인과 어른 [1] | 빈잔 | 2022.04.16 | 1026 |
4083 | 강자와 약자. | 빈잔 | 2022.01.01 | 1382 |
4082 | 진실한 꿈 | 김성렬 | 2006.11.13 | 1408 |
4081 | 내가 창조하고 싶은 첫 번째 책 [4] | 꿈꾸는간디 | 2006.04.24 | 1410 |
4080 | 연구원 수료시 [4] | 이종승 | 2006.04.23 | 1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