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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8일 21시 53분 등록

‘나는 신을 압니다. _ 카를 융’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2014. 9. 28


1. 저자에 대하여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 스위스의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남. 

    그러나 무턱대고 믿으라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맹목적인 종교적인 접근 방법이나 교육에 의문을 가짐. 이런 성향은 이 후 융이 정신의학자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됨.

>> 세살 때 평생에 영향을 미친 ‘남근상’에 관한 꿈을 꾸었다.

>>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랐던 사람. 그러나 ‘학문을 한다는 것’ 만큼은 선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사람.

>> 니체앓이를 했던 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시간들이라고 했던 대학시절 니체를 탐독 했다.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고 할 만큼.

>> 프로이트의 후계자가 될 뻔 했던 사람. 

    서른 네살에 프로이트를 처음 만남. 그와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탁월한 권위를 가지는 사람과 의견을 달리 한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 꿈으로 살았던 사람. 

     그는 세 살 때 꾼 꿈부터 평생토록 꾼 모든 꿈을 기억하는 것 처럼 느꼈다. 그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항상 꿈을 꾼다. 마치 예지몽 같다고 생각했다. 좀 황당하기는 한데...

>> 외적경험과 사건들 보다 내적경험과 통찰을 중요시 했던 사람.

>> 체험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

     본인 스스로 체험(내면의 경험)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의심 했으며, 우연을 믿지 않았다. 내면의 통찰은 환자와의 실험으로 실증 하였다. 

>> 미신과 과학의 경계를 살았던 사람. 

     과학으로는 접근이 안되고 미신으로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하였다.

>> 신을 과학으로 설명하려 했던 사람.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하였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또는 미신)의 경계에서 그만의 독특한 영역을 만들었다.ㄱ

>> 여복을 타고난 사람. 

     차분하고 현명하며 부유한 집안의 여인이었던 아내 엠마. 치명적인 사랑과 학문적 영감을 선물한 슈필라인, 평생을 함께한 또 한명의 조력자 정부 토니까지 그의 탁월한 삶을 그의 삶을 지배한 탁월한 여성들 덕분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슈필라인과 토니는 융의 환자였던 공통점이 있으며 슈필라인은 탁월한 아동심리학자로 토니는 융을 도와 심리 치료사로 활동하게 된다.


>> 융, 프로이트, 슈필라인과 관련하여 추천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A Dangerous Method, 2011)

     의사와 환자로 만난 융과 슈필라인, 처름으로 대화치료법을 시도한다. 이 치료법은 전이현상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치료과정에서 환자가 의사에게로 감정으로 전이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의사가 환자에게로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국 융과 슈필라인은 격정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과연 어떤 운명과 마주치게 될까!

->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058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0p. 카를 융은 죽기 2년 전 B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p.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은 형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옛이야기, 나의 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 사실은 진실보다 무겁다.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알아 보려고 이렇게 이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이나...

>> 소크라테스도 노자도 장자도 석가도 모두 모른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다 알지 못한다고 한다. 기껏 깨달은 것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해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 뿐이다. 그러므로 내적 체험들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의 꿈과 환상 들이 포함된다. ... 다른 기억들, 즉 여행과 사람들 그리고 주변 상황에 관한 기억들은 내적 사건들 앞에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 나는 기억을 잘 하지 못해 주변에서 특히 아내에게서 핀잔을 자주 듣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미지의 덩어리거나 상상의 덩어리여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 말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생일이나 여행의 추억이나 만남의 기억들을 소중히 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융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23p.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 나의 기억은 다섯 살 적부터 시작된다. 더 어릴 적 기억도 조금은 있다.


26p.~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대 나는 서너 살이었다.

>> 남근상 꿈, 원초적 계시



52p.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_ 학창시절


63p. 물론 나는 그 재능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기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상만을 그릴 수 있었다.

>> 해야 되는 일은 하지 못하고, 하고 싶어야 잘 할 수 있는 나는 이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 융이 12살에 느낀 것을 나는 불혹에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빈둥거릴 구실을 찾느라 허우적인다.


67p.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85p.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111p.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38p.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 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 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것만은 아니었다.


153p. 이 만남은 외견상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이 만남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길가의 기념비처럼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 무렵 아직 내 인생은 서로 연관되지 않는 개별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지는 그런 천진한 상태에 있었다. 

>> 외견상 무의미한 인사 따위를 건내는 것이었지만 내적으로는 큰 울림이었다. 이성에 대한 감정이란 것이 이런 것이다.


158p. 나는 실제 사물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것에 관해 숙고할 만한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여겼다. 누구나 공상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 쓰여지지 않는 지식은 그것이 쓰여진 종이보다도 값어치가 없다. 체험과 체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게으르고 겁쟁이다. 칠부나 팔부능선 아니면 구부능선쯤일지도 모른다. 내가 늘 멈추는 그 곳이...그래서 딱 그만큼이다.


아름다운 시간들_대학시절


167p.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제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앟는 보통 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기질, 모호한 태도 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깊은 내적인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제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 내 속에 들어와 이야기 하는 듯 하다.


170p.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는 자문해 보았다. “어디서 이런 꿈이 오는 것인가?” ... 그러므로 어떤 것이 배후에서 비밀리에 작용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 다시 말해, 내가 내적 영역을 상기시키는 어떤 것을 넌지시 암시할 적마다 사람들 위에 드리워지던 그 의아함과 서먹함의 차가운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76p.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184p. 그 여름 저녁,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는 술자리에서 한 연설은 그가 존재했었고 무언가 되어야 했던 시절에 대한 마지막 생생한 추억을 되살린 것이었다. 

>> 누구에게나 세상은 공평하게 열려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기죽어 있었고 우둔하였으며 쓰라린 상태에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었나?


186p.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어가고 있다. 나는 왕자가 된 듯한 기분 이었다.


194p.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때까지는 내가 전통적 견해의 바위에 부딪혔다면, 이제는 비인습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과 선입견이라고 하는 강철벽에 부딪힌 셈이다.

>> 미신과 과학의 경계에서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확신은 이런 위험을 모두 걷어내게 했다.


도시의 세계는 학문적인 지식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한정되어 있ㄷ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11p.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소외자가 되는 느낌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 정신의학을 선택하고 나서 느낀 기분.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223p. 사랑하는 남자를 잊지 못해 우울증을 앓는 부인의 이야기. ... 방치로 딸을 잃었다. ... 그녀는 퇴근하면서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났다.

>> 자신의 미필적 고의로 딸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견뎌낸 것이다. 이제 그녀는 평생 죄값을 치르며 살 것이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조직의 병의 예방하고 치료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필요한 자질이며 태도이다.


233p. 두 가지 사례


236p.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 조직의 진단과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와 의미있는 관련성을 찾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아야 한다.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246p.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과 관계.


248p.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 물론 의사는 소위 ‘방법’에 관하여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규격화된 일정한 방식에 매이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론적인 존재는 다만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9p.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60p. 원형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264p.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 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71p. 그는 원형을 과대평가하기도하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지적인 개념만을 가지고 있을 뿐 경험적인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각한 탈선이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 탈선이 지적인 정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 그 세계는 삶의 진실을 소위 명료한 개념들로 은폐하려고 한다.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 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바라는 안락함이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말만 그럴듯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과정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287p.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 작은 진리는 큰 진리를 만나 단지 사실이 되기도 한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345p.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합리적인 우리시대에 사라져버린 신화를 형성하는 환상의 모태이기도 하다.

>> 무의식(환상)의 탐구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었다.


351p.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미지와 그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353p.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소년시절에 나는 성질이 급했다. 그러나 감정이 극에 달하게 되면 언제나 감정이 바뀌어 우주적인 고요가 뒤따랐다. 


357p.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362p.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371p. 그러나 그것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문헌을 철저하게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 물론 그 문헌은 여전히 명백한 헛소리로 여겨졌으나, 여기저기에 의미있는 듯이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때로는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느끼는 문장도 몇 군데 발견하였다. 드디어 나는 그 문헌들이 상징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연금술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373p.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397p.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 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외톨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내적 충동을 이길 수 없었던 융이 부럽다. 그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썼다. 책이란 이렇게 태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모든 책이 이렇게 태어날 수도, 태어날 필요도 없지만 이렇게 책을 낳을 수 있는 저자는 행복할 것이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405p. 나는 전기를 쓰지 않고 벽난로와 화덕에 손수 불을 지핀다. 저녁에는 옛날 등잔에 불을 붙인다. 수도도 없어 나는 펌프로 직접 물을 긷는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요리한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406p. 볼링겐의 돌탑에 새긴 말들.

여기 돌이 있네, 보잘 것 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시간은 어린이다. 어린이처럼 놀며 장기를 둔다. 어린이의 왕국. 이것은 우주의 캄캄한 곳을 두루 다니며 별처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텔레스포로스다. 그는 태양의 문에 이르는 길, 꿈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419p. 파우스트는 나의 심금을 울렸고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움직인 것은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대극문제였다. 

... 둘로 나뉘어 있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가 합해져 나 자신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420p.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 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옛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문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 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행.


434p. 나는 늘 두개의 영역에서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443p.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509p.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인 사건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도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나 자신을 나타내게 된다. ... 생기기 쉬운 인상과 견해의 불일치를 제거할 수 있는 법정은 우리가 아는 한 그 어디에도 없다.


... 하지만 사람들이 가는 데마다 그곳을 지배했던 정신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서 충격을 받을 때, 그리고 거기 있는 성벽 잔해와 둥근 기둥 하나가 내 눈에 이제 막 새롭게 인식될 때 문제는 달라지는 법이다.


환상들


516p.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말이다. 나는 이를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 내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은 더이상 없었다.


527p.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발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 없다.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숙명의 의도를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을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532p. 나는 그 생각(사후 세계)들이 옳은지 그른지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런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어떤 선입견으로 억누르지 않는다면 그 생각들은 진술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 신화가 사라진 것 처럼 사후에 관한 관념들도 없어져 버렸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 인간은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를 통용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 말로 쓸모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 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535p.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539p. 아무튼 나는 무의식의 암시를 기초로 얻을 수 있었던 견해가 나에게 빛을 밝혀주고 예감의 영역을 내다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을 경험했다.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542p. 어쨌든 부인하는 자는 ‘무’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두 사람 다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런데 전자는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있고, 후자는 본능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현저한 차이이며 후자에게 이로운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543p. 무의식의 형상들도 ‘정보를 잘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식과의 접촉이나 인간을 필요로 한다.


551p.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552p. 꿈의 진술과 관련하여 교조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해석의 획일화’가 눈에 띄는 즉시 우리는 그 해석이 교조적이며 따라서 비생산적임을 알게 된다.


562p. 나의 존재 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572p.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때는 개인적인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위들 때문에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고집할 것이다. 아마도 ‘나의’재능이나 ‘나의’미모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만년의 사상


581p. 선악의 대극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결국 노자사상과 닿는 부분이 많은 듯 하다.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582p. 스스로 그것을 결코 실현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다만 직책상 그런 것들을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582p. 이러한 자기인식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바탕에서 우리가 본능과 마주치게 되는 기층 또는 인간존재의 핵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613p. 정신을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양극성이 진술의 상대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618p.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의 모순들은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낼 용기가 내게는 없다.


619p. 여기서 문제는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 가장 먼 것과 가장 가까운 것, 가장 높은 것과 가장 깊은 것인데,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결코 언급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언어도 이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전체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부분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것은 항상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하다. 왜냐하면 오진 전체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620p. 그것은 자신의 열등감,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회고


623p.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햊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 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순간이다.


다이모니온이 작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너무 가깝고 너무 멀다. 다이모니온이 잠잠해진 곳에서만 사람들과 중간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628p. 데몬과 창조적인 것이 무조건 가차없이 나를 마구 휘둘렀다. 내가 계획한 일상적인 일들은 대개 손해를 보았다. ... 나는 내 조부의 담배상자에서 담배를 꺼내 파이프에 담고, 알프스영양 뿔로 꼭대기를 씌운 그의 등산용 지팡이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다.


630p.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 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 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 나도 늙어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을 무렵 삶을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길 바란다. 삶이 의미였건 그렇지 않건 중요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삶은 삶이다. 그것이 의미의 유무로 재단 할 수 있는 것도 재단 할 필요도 없다. 삶은 의미의 유무를 초월하는 것이다. 의미 따위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내가 저자라면


[키워드]


무의식, 의식의 흐름, 꿈, 이성 너머의 세계, 자아실현, 자서전


[이 책의 특징과 차별점]


여느 자서전과 대별하여 가지는 차별성은 단연코 책의 전개방식이다. 자서전이라고는 하나 이 책은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저자의 일신상에 일어나 외적변화와 성취에 관한 나열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삶에 있어 의미에 관계되는 것들을 전개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들이 저자의 의식흐름에 따른 기술이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다.’ 가 아니라 ‘그때 이래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고, 무의식은 이런 저런 신호를 보내 왔다.’식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저자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을 둘러싼 외적사건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잊어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만,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 만이 자신의 생애에서 중요하며 이 이야기들만이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융이 돌아간 이듬해(1962년) 출간되었다. 융이 자신과 자신의 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매우 꺼려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그가 선뜻 자서전 출판에 동의(조건부 동의이긴 하지만)해 준 것은 그 역시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에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자서전 출판에 동의하고 나서는 편집자(야페)와 매주 하루, 오후시간을 공동작업에 할애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의 제자이자 비서였던 편집자는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하였고 그 기록들을 묶어 자서전이 되었다. 그러나 융이 꼼꼼하게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으므로 융 자신의 집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집자의 말을 빌려볼 때 융의 평생을 이끌어던 꿈에 관한 유년시절의 기억과 그것에 담겨 있는 의미들이 자서전 집필 과정에서 뚜렷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융 자신도 모호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 유년시절에 관해서는 스스로 집필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다시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마치 ‘사명’과 같았던 모양이다. 이후 그는 ‘만년의 사상’ 이라는 장과 아프리카 여행의 기억들, 프로이트와의 이야기들을 보완해 나갔다.


이 책은 그가 처음 이야기한 바와 같이 외적사건에 대해서는 내적체험과 관련있는 내용에 국한되어 있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고백한 것처럼 외적사건은 그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편집자도 외적사건에 대해 때때로 물어보았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력서를 꾸릴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목차가 그의 연대기를 따라가고는 있으나 여느 연대기들과 비교할만 하지는 않다. 제목처럼 그의 기억과 꿈과 사상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의 기억에는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애써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인 듯 ... 그의 깐깐한 요청대로 이 책은 그의 전집에서도 빠져있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420p.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 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옛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문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 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572p.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때는 개인적인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위들 때문에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고집할 것이다. 아마도 ‘나의’재능이나 ‘나의’미모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요약]


우선 이 책은 어려운 책이다. 두번을 읽어도 그게 그 말 같고, 의사가 할 소린가 싶기도 한 말들이 꽤 있다. 이성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려 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과학과 종교(또는 미신)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했던 융은 아마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종교의 세계로도 과학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는 대극의 한쪽으로 지우치면 편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소리에 적극 부응하여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갈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닥친 알수 없는 끌림의 힘이 부러웠다. 스스로도 왜 그러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할 수 밖에 없다면서, 현재의 인식체계로서는 증명할 수는 없고 다만 설명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런 것인데 그런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데이터로 설명하려 노력했다. 미신으로의 유혹도 과학의 한계에도 갇히지 않았다. 무의식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인식의 세계로 데려오려 평생을 바쳤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고 말했다. 여든이 넘어선 노학자 조차도 생을 마감하는 즈음에 이르러 아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라고 선명하게 규정하였다.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시도했던 융의 ‘끌림’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융의 기질적 특성은 내게 닮은 구석이 제법 있는 것 같다. 단, 그의 천재성 만큼은 털끝 만큼도 닮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쭈쭈먹을때쯤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그를 평생토록 이끌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여러 책들과 마찬가지로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넣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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