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 조회 수 1874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배반 같기도 하고, 비애 같기도 하며, 무력감 같기도 하고, 허무 같기도 한 통증으로 숨조차 쉴 수도 없었다.” 정말 그랬다. 실제로 나의 하루를 흔들어 놓는 심한 통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이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고통이 벌써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또한 미리 예측한 일이고 그래서 나름 준비도 해 왔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해고란 게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고 올 것이 온 것뿐인데. 오히려 기뻐해야 할 순간 아닌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의 순간이 온 것인데. 언젠가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해고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당신 손으로 그만 두지는 말라고. 그래서 난 내심 잘라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쓰고 싶은데 직장이 족쇄가 되어 있었다. 세월은 가고 세월 따라 다리의 힘도 사라질 텐데. 언제까지 여기서 뭉그적거리고 있어야 하나. 한시라도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천복이라 여기는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제 그 날이 왔다. 그러면 당연히 대한독립만세! 삼창이라도 해야 할 텐데 내가 왜 이럴까?
분명 내가 바라던 일이었는데 내 속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 상상 외로 컸던 것 같다. 30년간 나는 철저하게 직장인으로 살아왔고 한 번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우리 속의 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울타리가 무너지고 먹이가 사라지니 이미 야성을 잃어버린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한 것이다. 불안이란 삶의 본질이 아니던가? 생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삶일진대 어찌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삶이 불안하지 않겠는가? 인생이 어차피 불안한 것이라면 불확실한 삶의 사건들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위기란 뒤집으면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해 느끼는 불안은 새로운 기회의 모색으로 치환 될 수 있을 것이다.
20년, 긴 세월이었다. 이 직장에서 밥이 나오고, 아이들 공납금이 나오고, 아파트와 자동차가 나왔다. 대신 30대의 팔팔한 젊은이는 이제 늙수그레한 중년이 되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만이 현실이란 장대 끝을 맴도는 잠자리 같이 부유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서 직장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꿈이 없고, 꽃다웠던 아내는 병을 앓고 난 후로 기운이 달리는지 자리에 눕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간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아직 돈 들어 갈 곳이 많다. 아들은 아직 고1에 타고난 지병으로 몸도 성치 않다. 거기에 여든 넘은 양가 모친들을 부양해야 하지. 한 1년 만이라도 일을 더 하게 해준다면...
아아,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월급이 마약이다. 그간 때가 되면 꼬박꼬박 들어오던 봉급이 당연한 듯 이리저리 쪼개 마른 논에 물 대듯이 쏟아 부었지. 그리곤 한동안 해갈 된 무논을 바라보는 농부처럼 흐뭇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그 물길이 반으로 줄게 된다. 이 금단현상을 어찌 견딜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내 통증의 원인이었나 보다. 무슨 일이든 내게 직접 닥치지 않으면 그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더니. 하긴 내 일이라고 실감하더라도 별 통수는 없었을 게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 달 월급명세서를 받았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서랍 속에 던져 넣었는데 오늘은 애틋하게 보여 자세히 본다. 이제 이것도 받을 날이 세 번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외로워졌다. 누구든 불러내어 한 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친구 소선생을 불러내려니 얼마 전까지 사업이 망한 4인방 친구 치다꺼리 하느라고 고생한 친구에게 나까지 넋두리를 늘어 놓을 수가 없었다. KSU는 이미 퇴근해서 어머니 뵈러 간다고 했다. 망연자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아내를 불러냈다. 역전 불닭집에서 호프 1000CC를 들이붓자 오장육부가 확 뚫리는 듯하다. 넋두리하기에 아내가 좋은 상대가 아니지만 이미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아내는 담담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평소에도 듣기 좋은 소리는 잘 하지 못하는 아내는 사장도 나도 서로 안 맞는 사람들이 20년을 한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모두 고생했으며 가상하다고 말했다. 사장도 나 때문에 그간 마음고생 많이 했을 테니 사정을 봐주자는 논리다. 나도 오륙도를 넘겼으니 잘리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 그간 오래 근무하게 해줘서 감사하게 여기자고도 했다. 아니, 이 여자 언제부터 마음이 이렇게 태평양이 되었나? 역시 아내는 넋두리할 상대가 아니었다.
“당신 말 다 맞아. 하지만 난 지금 위로가 필요해. 이럴 때 사장 욕도 좀 해 줄 수 없어.”
“아, 미안! 당신은 이미 위로 따위는 이미 초극한 줄 알았지.”
“나 그렇게 강한 사람 아냐.”
“알았어요. 이제부터 나 당신 위로해 줄게. 토닥토닥~~”
아내가 나보다 강해서 다행이다. 평소 앞서 걱정을 하는 스타일인데 그녀답지 않다. 위기에 강한 자, 그의 이름은 아내였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스피노자
그랬다. 글쓰기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고통이 차츰 해소되어갔다. 그 간의 삶이 무풍지대에서 너무 편안하게만 산 것 같다. 가슴 뛰는 풍랑의 경험도, 부서지며 포말지는 물결의 환희도 맛보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흘러온 세월이 안타까웠다. 이제 지금 이 고통을 뛰어넘지 못하면 나는 날 수가 없다. 언제까지 땅바닥에 붙어 기기만 하는 개미로 살아갈 것인가. 솔개의 비상을 꿈꾸며 나를 곧추세우는 행동이 필요했다. 새벽4시 기상을 목숨처럼 지키며 러닝머신을 자전거 타기로 대체했다. 고통은 몸으로 직면하여 땀을 흘림으로써 이겨낼 수 있음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고통의주간_구달칼럼#23 [10] | 구름에달가듯이 | 2014.09.28 | 1874 |
4291 | #23 지난 밤_정수일 [3] | 정수일 | 2014.09.28 | 1940 |
4290 | 엄마의 나들이, 명동 칼국수 [8] | 종종 | 2014.09.28 | 2727 |
4289 |
3-21. 10기 9월 수업 잠망기(潛望記) ![]() | 콩두 | 2014.09.23 | 3038 |
4288 | 문제는 손가락이야 [5] | 에움길~ | 2014.09.23 | 2051 |
4287 | 연구원 응급실 [6] | 어니언 | 2014.09.23 | 2043 |
4286 | #22 9월네번째오프후기_정수일 [3] | 정수일 | 2014.09.23 | 1987 |
4285 | ‘나의 하루 창조’ 9월 오프라인 수업 후기_찰나칼럼#22 [5] | 찰나 | 2014.09.23 | 1874 |
4284 | 9월 오프수업 후기 [3] | 희동이 | 2014.09.23 | 2070 |
4283 | 9월 오프수업 후기-작가관의 정립?! [4] | 앨리스 | 2014.09.23 | 1938 |
4282 | 9월 오프수업 후기 [2] | 녕이~ | 2014.09.23 | 2015 |
4281 | 9월 오프수업 후기 [6] | 왕참치 | 2014.09.23 | 1994 |
4280 | 9월오프수업_구달칼럼#22 [3] | 구름에달가듯이 | 2014.09.22 | 1900 |
4279 | 낯설고 원초적인 생명의 맛, 모리국수 [11] | 종종 | 2014.09.21 | 2288 |
4278 | 3-20. 3차 이식날 새벽 편지 [3] | 콩두 | 2014.09.16 | 2508 |
4277 | 그것이 뭐시라고 하기까지는 [2] | 에움길~ | 2014.09.15 | 1883 |
4276 | 김구표 후시딘 [5] | 어니언 | 2014.09.15 | 1952 |
4275 | 나의 하루는...? [5] | 왕참치 | 2014.09.15 | 1826 |
4274 | 김구에게 이순신은_찰나칼럼#21 [5] | 찰나 | 2014.09.15 | 2042 |
4273 | #21 두 사내_정수일 [5] | 정수일 | 2014.09.15 | 1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