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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9일 09시 29분 등록

<두번읽기>

기억 꿈 사상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옮김,| 김영사, 2007.


1. 저자에 대하여


■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출생/사

1875.7.26. 스위스 투르가우 주 로만스호른 근교 보덴 호숫가의 캐스빌 / 1961. 퀴스나흐트 자택에서 사망

활동분야

스위스 정신의학자, 분석심리학 창시자, 대학교수

 

• 발 자 취 •  

• 저 서 •

1886. 바젤 김나지움 입학

1887. 신경증 발작 일으킴

1895 바젤 대학에서 자연과학과 의학 공부. 1900년 4월 국가고시로 학업 마침

1896. 부친 사망

1903. 엠마 라우셴바흐와 결혼. 이후 다섯 자녀를 둠. 

     오이겐 블로일러 교수가 이끄는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 보조의사가 됨

1905. 1913년까지 취리히 대학 의과대 강사

1906.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서신교환 시작

1909. 병원 그만두고 퀴스나흐트의 새 집에서 개인병원 개업.

     9월 프로이트와 미국 클라크 대에서 강연. 명예박사학위 받음

1910. 국제정신분석협회 회장 취임

1912. 「리비도의 변용과 상징」에서 프로이트와 상이한 견해를 분명히 밝힘

1914. 동료들과 국제정신분석협회 탈퇴

1916~18. 베트란트 주 샤토-되에서 영국 국제포로수용소 위생장교로 근무

1920. 북아프리카 여행

1923. 모친 사망. 볼링엔 탑 건축 시작

1924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거주지 여행

1925. 아프리카 여행. 동아프리카 엘곤 산 밑 엘곤 사람들을 찾은 후 수단 경유 이집트로 감

1928.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연금술 연구 시작

1930. 에른스트 크레치머가 회장으로 있는 심리치료사협회 부회장이 됨

1932. 취리히 시가 주는 문학상 수상

1933. 크레치머 사임 후 회장. 취리히 연방공업대학에서 강의. 아스코나에서 에라노스 학회 출범

1934. 국제심리치료의사협회 창설

1935. 취리히 연방공업대학 명예교수 임명.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1937. 예일대에서 “심리학과 종교”에 대해 테리 강연.

     인도 영국령 인도 정부 초청으로 캘커타, 바리나시 알라하바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1942. 취리히 연방공업대학 교수 사임

1943. 바젤 대학 심리학과 정교수로 임명

1944. 심근경색으로 교수직 사임

1945. 제네바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1948. 취리히에 카를 구스타프 융 연구소 설립

1955. 취리히 연방공업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엠마 융 2월 27일 사망

1959. BBC 방송과의 인터뷰 “나는 신을 압니다”

1960. 85세 생일을 계기로 퀴스나흐트 명예시민이 됨

1902. 소위 신비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취리히 대학 박사학위논문)

1934. 심리학과 종교

1942. 파라겔수스

1944. 심리학과 연금술

1946. 심리학과 교육, 전이의 심리학

1948. 정신의 상징

1850. 무의식의 형성

1951. 아이온상징 역사의 연구

1952. 변용의 상징, 욥에 대한 답변

1953. 뉴욕에서 융 전집 출간 시작

1954. 의식의 뿌리

1955~56. 결합의 신비 1.2권

1957. 기억, 꿈, 사상 집필 시작

1958. 현대의 신화부터 전집 출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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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에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

……


최초의 인간은 땅에서 유래하지만, 두 번째 인간인 내적 인간은 ‘하늘에서’,

즉 현실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유래한다.”

- 융의 묘비에 씌어진 글-


■ 기억할 수 있는 것


 심리학책뿐만 아니라 여타의 책에 부지기수로 등장하던 프로이트를 난 좋아하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그의 이론부터 시작되던 심리학의 많은 부분을 참아내야 했지만, 프로이트의 핵심적인 이론에 회의를 느꼈고 그의 이론과 더불어 사람 자체에 대해서 흥미가 당기지 않았다. 프로이트의 정신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의 이론도 ‘이상’하다, 집착적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융님이 나 홀로 탐탁치않게 여기던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고정화시켜 줘서 기쁘다(?).

 집단무의식과 원형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융을, 융의 입으로 만나면서 프로이트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융에게 더 이끌렸다. 그의 세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부러웠던 것 중에 그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그가 그 집을 가지게 된 것도 결국 그의 세계 속의 움직임이니 결국 마찬가지다. 그는 호숫가 옆에 탑을 짓고, 또 짓고, 또 짓는다. 그의 복잡한 심정은 계속 확장된 집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는 미로같고 문명의 기구들을 들이지 않은 그 탑에서 미로같고 문명이 들어차지 않는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간다.


1) 공간


 융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친구가 보덴호숫가에 성을 가지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호숫가에서 놀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 호소의 광활함을 즐거움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고 했다. 그 어린 날의 기억이, 그를 호숫가로 이끈 것일까.

 호숫가에 지은 그의 탑은 단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머리속에서 구상하고 그의 몸으로 만들어낸 이 탑은 그가 처음 탑을 짓고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완된다. 이 공간에서 그는 어떤 문명의 기구도 외면한 채 원시적 삶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그의 내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장소가 주는 신성함, 장소가 주는 안정감, 장소가 주는 창조성.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 간 융의 볼링앤 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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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볼리엔 탑 / 85세 생일에 모인 융의 가족들>




2) 시간, 기억


  무수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융이 놀랍고 부럽다. 과거의 사건들은 핵심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내면의 생각들은 언제고 잊혀지게 마련이다. 관심두지 않는다면 존재했는지도 까마득하다. 그 모든 것들을 융은 살려내었다.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그의 기억을 통해.

 그는 자신의 생애를 가리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무의식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용이었던 것이다. 융은 죽기 전 인터뷰에서 기자의 신을 믿느냐고 물음에 "나는 신을 압니다."라고 답했다. 무의식을 통해 그 자신도 충분히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융은 스위스 주간지 「벨트보헤」와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과 자신의 활동을 다음처럼 평가했다.

 “나는 인간 및 시대의 질병을 다루고, 고통의 현실에 맞는 치료수단을 생각하는 의사입니다. 정신병리학적인 연구를 하며 나는 역사적인 상징과 형상들을 무덤의 먼지 속에 깨워 일으켰지요. 나는 환자들의 증상을 치료를 통해서 없애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이라기보다 약간의 현명함과 자기관찰과 무의식적 경험에 대한 신중한 종교적 고찰입니다.”



3) 그림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는가. 이렇게 조각품을 잘 만드는 사람이었는가. 그는 매우 손재주가 있다.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 그는 이것들을 모두 단순하게 작업했고 무의식의 일련에서 행한 것이라 하지만 보고 있는 나에게는 경탄까지 일으키게 했다. 그가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예술가 쪽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그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가 의사였다는 점이 그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으니 분명 집안에 화가가 있었다면, 예술가가 있었다면 달랐을 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기질이 예술가적 기질보다는 학자풍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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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이 그린 그림, 1917년  좌, 필레몬을 비롯한 여러 인물과 지구 /우,  칼을 든 기사>



융의 다양한 연구 속에 동양철학과 종교에 대한 관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만다라를 그리기도 하고 만다라가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아갔다. 만다라는 그에게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융은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더욱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융은 만다라를 그리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실제 그는 만다라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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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렸다는 융이 그린 최초의 만다라>

 


4) 관계


 융의 아버지는 개신교 개혁파 목사이며 박사학위를 가진 문헌학자이며 신학자였다. 어머니는 바젤의 유명한 목사 가문 프라이스베르크 출신이었고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는 바젤 대학 교수이자 의사였다. 할아버지는 대학교수와 의사로서 많은 존경을 받았고 외할아버지 프라이스베르크 역시 그러하였다고 한다. 그가 말하듯 그의 뿌리는 그러했다

.

 “영혼은 오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의 나이는 수백만 년을 헤아린다. 개인의 의식은 땅 속에 있는 다년생 뿌리로부터 자라나 계절에 따라 개화하고 결실을 맺는 꽃과 열매에 불과하다. 뿌리의 존재를 함께 고려하는 사람은 진리와 보다 더 일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뿌리는 모든 것의 모체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1902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서 취리히 대학 교수였던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프로이트와 교류하였고 국제정신분석학회 회장까지 역임한다.

 하지만 무의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활동영역을 구축해갔다. 특히 그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을 중점으로 연구하였고 문화사 및 종교사적 비교 작업을 함께 했다.

 그의 생애동안 융은 다양한 철학자들에게 매료되기도 했고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독서의 세계에 있기도 했다. 그가 의학을 선택한 것은 그의 조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 에빙의 정신의학교과서를 처음 보고, 심리학 및 정신의학 분야가 자신의 적성에 가장 맞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을 마친 후 보조의사로서 부르크휠츨리 병원에서 일하면서 이 병원의 엄격한 규칙을 묵묵히 따라고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융의 노력은 병원장의 신임을 얻게 되고 파리 유학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에 융은 1905년 취리히 대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부르크휠츨리 병원의 수석의사가 되었다. 의사로 일하면서 1913년까지 취리히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처럼 공부만 하고, 책만 읽고, 비사교적이고 엄숙하였을 것만 같은 융은 대학시절 사교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학생단체 “초핑기아(Zofingia)"의 회원으로서 열정적인 춤꾼이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상황이 그의 기질을 온전히 드러내기를 어렵게 한 듯하다. 그는 학비를 모으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내가 된 엠마에게도 의사 자격을 얻은 후에야 청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엠마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융은 취리히 대학 강사를 하던 무렵 자신의 이후 생애와 창작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두 만남을 갖게 되는데 샤프하우젠 출신의 젊은 스위스 여성 엠마 라우셴바흐와 ‘스승’이자 한때 친구로 지내게 되는 비엔나의 지크문트 프로이트이다. 융은 아내 엠마와의 만남을 이렇게 전한다. 융은 대학에 다닐 때 14세의 엠마를 그녀의 집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엠마를 보자마자 “깊은 충격을 받았고”, 곧 그녀가 미래의 아내라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1903년 결혼한 부부의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곧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엠마의 인간적인 성숙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고 게다가 엠마는 점차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노련한 심리치료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융은 자신의 아내 엠마가 죽은 뒤 너무나 큰 고통과 충격에 힘들다고 말하는데, 애정 깊고 사려 깊은 엠마라는 반려자가 없었더라면, 카를 구스타프 융의 삶과 작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의 대결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융에 대한 책을 쓴 게른하르타 베어는 적고 있다.

 여기서 결혼하고 곧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다는 것이 바로 샤비나 슈필라인과의 관계가 아닌가 한다. 놀랍게도 그토록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 청혼한 아내와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융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바로 자신의 환자 샤비나 슈필라인이다. 샤비나는 융의 정신과 환자로 융은 그녀에게 Talking cure(대화치료)를 적용하는데 이 치료 방법의 위험성이 환자가 의사에게 가지게 되는 애착 혹은 의사가 환자에게 가지는 애착이라 한다. 어쨌든 샤비나는 단순한 정신과 환자가 아니었고 후에 자신의 이론을 구축한 심리학자가 된다. 이들의 관게에 프로이트가 가세하면서 당시에는 삼각 스캔들로싸지 퍼졌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엠마 덕분이 모양이다. 엠마의 생애도 더불어 궁금해진다.


  그리고 융에게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는 융보다 19세 연상이다. 프로이트 이론에 매료된 융은 당시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에도 프로이트에 대한 옹호와 지지를 표명했고 이것은 프로이트와의 서신교환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고 융 역시 프로이트를 따랐다. 그러나 곧 그들은 견해 차이를 보였고 융은 프로이트의 한쪽 면에만 치우친, 그리고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우는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시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편지를 통해 결별했다. 정신분석학회에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프로이트와의 결별은 그동안의 친구와 친지들을 떠나가게 했고 사람들은 융의 책을 쓰레기라고 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는 학회도 탈퇴하며 그의 길을 가기로 했다.

 


참고자료


위키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카를 융, 생애와 학문, 다이드리 베어, 열린책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p9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p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Selfstverwirklichung)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들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p9 이 책은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神)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p10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p10 “나는 신을 압니다.”

⇒ 융이 죽기 2년 전 BBC 방송과의 인터뷰 중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다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나의 생애는 나는 이와 같은 형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들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다루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다.

⇒ 융과 나의 차이. 내 생애가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자 무의식이 사건이라 말하면 수긍하지 않는다는 점.

 

p12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p12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p13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p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해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無常)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뿐이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활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나는 외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는 공허하거나 실제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 또한 나의 생애도. 나 역시 나 자신을 융이 쓰고 있는 것처럼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p23~24 아마도 내 생애에서 최초라고 할 만한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기억은 자못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다. 나는 나무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날, 하늘은 푸르다.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다. 유모차 덮개는 젖혀 있다. 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막 눈을 뜨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와 꽃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온통 경이롭고, 다채롭고, 그리고 찬란하다.

⇒ 아주 어린 날의 기억. 두 살, 세 살의 기억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아이가 느낌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또한, 이 정경은 또한 어린 그가 느낀 그대로 평온하다.

.

p26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나중에는 인생 초기의 이러한 인상들이 수정되었다. 나는 친구를 믿었다가 그들로 인해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 당시 습진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부모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어두운 전조가 둘러싸고 있었다. 1878년의 이 병은 부모의 일시적 별거 때문이었을 것인데 그 무렵 어머니가 여러 달 동안 바젤 병원에서 지냈고 그것은 결혼생활의 실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친척아주머니가 돌봐주고 있을 때인데 어머니의 오랜 부재가 융을 힘들게 했다고.


p27 마치 그녀가 우리 가족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만 속해 있는 듯싶었다. 또한 그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신비한 것들과 내게는 알려지지 낳은 방법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Anima)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 당시 하녀 또한 융을 돌봐주었는데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의 행동을 기억하며.


p30 이러한 불길한 유추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주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크고 다정하고 자비로운 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검은 프록코트와 높은 모자에 광택나는 검정구두를 신고 검은 상자를 나르는 음울한 사람들과 연관되었다.

⇒ 주예수가 죽은 사람들을 자기 곁으로 데려갔다는 말에 대한 자기식의 이해가 이러한 두려움을 만들었다.

 

p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 그가 꾼 꿈은 이러하다. 그는 목사관 농가 뒤쪽의 넓은 초원에서 직사각형 구멍을 발견한다. 그는 그곳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본다.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의, 직경 50~60센티미터, 높이 4~5미터쯤 되는 거대한 형상. 피부와 살아 있는 살로 만들어진, 꼭대기에는 얼굴도 머리칼도 없는 둥근 공 모양의 머리가 붙은, 정ㅅ리에 눈이 하나 있는 그 형상에 두려움을 느끼는 찰나, 어머니의 목소리 “자, 그를 좀 보라구,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야!”.

    이런 꿈에서 깨고 난 후 오랜 후 그 기이한 형상이 일종의 남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남근상이라는 것을 알기 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고. 남근상의 추상적 의미는 그것이 스스로 남근이 발기되듯 수직으로 보좌에 서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초원의 구멍은 아마도 무덤을 의미할 것이고 무덤 자체는 일종의 지하사원이고, 그곳의 녹색 커튼은 초원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커튼은 녹색식물로 뒤덮인 지구의 신비를, 양탄자는 붉은 피.


p34~35 아무튼 그 꿈속의 남근상은 보통은 언급되지 않는 지하의 신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나의 젊은 시절 내내 그런 의미로 남아 있었는데, 누가 ‘주 예수’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서 말할 때마다 다시 생각나곤 했다. ‘주 예수’는 나에게 결코 온전한 실체가 될 수 없었으며,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전폭적으로 사랑할 만한 대상도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대역인 그 지하의 신이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p35 나에게 ‘주 예수’는 어쩐지 일종의 죽음의 신처럼 여겨졌는데, 예수가 밤의 유령을 물리쳐주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었으나, 그 자신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투성이 시체가 되었기 때문에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늘 찬양을 받는 그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나는 남몰래 의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례식을 항상 연상케 하는 검은 프록코트와 광택나는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주로 ‘사랑하는 주 예수’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p37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 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p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 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누이동생은 나와 아홉 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 이런 그가 학교를 좋아했다. 오랫동안 얻지 못했던 놀이친구를 거기서 찾았기에.


p46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돌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아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 이런 생각, 재밌지 않아?


p47 30년이 지난 후에 나는 다시 그 비탈에 올라서보았다. 나는 이미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과 집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었다. 머릿속에는 착상과 계획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순간, 나는 비밀스러운 의미로 충만한 불을 붙이고, 돌이 나인지 돌 위에 앉은 것이 나인지 알지 못한 채 돌 위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문득 취리히에서의 내 생활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다른 세계와 다른 시간으로부터 온 기별처럼 낯설게 여겨졌다. 그것은 유혹적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이었다. 내가 심취했던 유년시절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계속 굴러가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나의래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장소에서 억지로 몸을 돌려야 했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 그는 어린 시절 불안을 느낄 때마다 인형이 들어 있는 필통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감추고 인형에게 편지들을 보냈다.


p49 이러한 행위의 의미 또는 그와 같은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51 이러한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 그의 어린 시절의 남자 인형은 외투를 입은 고대의 작은 신, 아스클레피오스 옆에 서서 그에게 두루마리 하나를 읽어주고 있는 텔레스포로스였다고..


p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p56 나는 나의 부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걱정과 염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로 연민이 생기지 않았다. 나로서는 어머니가 좀더 강해 보였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변덕스럽고 과민한 성질을 부릴 때면 나는 어머니 편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나의 성격 형성에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되었다. 이러한 갈등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나는 좋든 싫든 부모님을 판정해야 하는 상위의 중재재판관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자만심을 야기했다. 그 자만심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자존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동시에 약화시키기도 했다.


p59 ‘주 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 때부터 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p62 나의 지적 도덕성은 내가 수학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런 장난같은 모순들과 싸웠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 친구에게 맞고 기절한 후로 기절을 반복하며 학교를 가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즐기다 아버지의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열심히 공부를~하겠다 결심하고 학교로 되돌아간다.


p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p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너는 누구냐?


p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 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 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나의 내부에 '권위자'가 자리잡았다.


p74 생각에 구멍이 뚫리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말자. 무언가 무서운 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결코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왜 안 되는가? 왜냐하면 너는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가장 무서운 죄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이며 그것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

⇒ 앗. 이 생각은 나랑 똑같아. 마지막 구절은 말고. 나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을 가장 무서운 죄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p77~78 아담과 이브는 최초의 인간들로서 부모가 없었다. 하느님에 의해 직접 그의 의도대로, 그들이 그러했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하느님이 창조한 대로 존재해야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다르게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완전한 피조물이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완전한 것만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함으로써 최초의 죄를 범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느님이 그들 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은 뱀이라는 존재로 인해 분명해졌다. 아담과 이브를 말로 꾀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이 그들보다 먼저 뱀을 창조했다. 전지한 하느님은 인류 최초의 부모가 죄를 범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 난 늘 생각했다. 그 자유의지라는 거 논리대로 하면 그것두 하느님이 만든 것이라고. 저 구절은 내가 성경에 대해서 선악과와 하느님, 아담과 하와에 대해 생각해온 것과 일치한다.

    이와 같은 생각이 융을 지독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하느님 자신이 그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p78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p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의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낀 것이 그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며 하느님이 저 위 세상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돌을 모조리 부수고 있는 모습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것을 은총이라 생각한다. 계시를 체험했다고 생각한다.


p84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p85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자연과 사원


p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알아야 한다.'


p89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더 나은 표현을 쓰면,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를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 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이였다.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었다.


p90 그 무렵에는 물론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예감과 강렬한 느낌은 받았다. 내가 혼자 있는 순간이면 곧바로 이러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참다운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두 인격의 어머니


p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p96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을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겨졌다.

    나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었던 어떤 내적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 증명되었다. 나는 확신을 붙든 적이 없었으나 확신이 나를 붙들어주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신념에 종종 대항하게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결정적인 일에서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때 답을 준 자는 이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그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 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p97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 융이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가는 것을 즐겼기에 혼자 있는 것이 더욱 선호했으리라.


p97 그녀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 역시 두 개의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는 악의없고 인간적이었으며, 거기에 반해 또 하나는 으스스했다.


p100 어머니의 두 인격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어머니에 대해 불안한 꿈들을 꾸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했다. 그 시간 어머니는 이상한 동물이기도 한 예언자처럼, 곰의 동굴에 사는 여사제처럼 보였다. 고태적이고 잔인했다. 진리와 자연과도 같이 잔인했다.


p101 나 또한 내 안에서 이러한 고태적인 성질의 어떤 요소를 인식한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항상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닌 재능을 부여한다. 내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나 스스로를 속이고보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으나, 그 목소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것 같았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했다.


p104 그때 삼위일체에 관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나의 관심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 문제였는데, 그 모순이 내 마음을 끌었다.


p107~108 나는 ‘교제’라든가 연합이니 합일이니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구와 일체를 이룬단 말인가? 예수와? 그러나 그는 1860년 전에 죽은 한 남자였다. 왜 인간은 그와 일체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하느님의 아들’로 불렸으니, 그는 그리스의 영웅들처럼 반신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와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기독교’라고 불렀으나, 내가 하느님을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 모든 것은 하느님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p109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맡겨두면서 한 번도 강압하지 않았던 나의 사랑하는 관대한 아버지를,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데 필요한 저 회의와 신성모독에 빠지도록 할 수는 없었다. 하느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지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인간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인간적이 아니다. 그는 인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존재다. 하느님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라는 한쪽 면에만 매달려 유혹자와 파괴자의 손아귀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p109 종교를 전체와의 유일하고 의미있는 관계로 여겼던 나의 종교관은 붕괴되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일반적인 신앙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 즉 누구하고도 나누어가질 수 없는 ‘나의 비밀’과 관련을 맺을 뿐이었다. 그것은 역겹기도 하고, 아주 나쁘게 말하면 천박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악마적인 웃음거리였다.


p110 성찬식의 실패? 그것은 나의 실패였을까? 나는 매우 진지하게 성찬식을 준비하고 은총과 계시를 체험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원, 세상에! 나는 교회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 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악의 기원


p111 나는 그로부터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견해가 나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종교란 하느님이 나와 함께 이루는 그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것은 하느님 편에서의 행위로 나는 다만 거기에 맡겨져 있을 뿐이었다. 하느님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 1869년에 간행된 비더만(Biedermann)의 <기독교 교리>, 비더만의 <하느님의 본질>이라는 장에서, 하느님은 ‘인간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될 수 있는 인격’으로서, 그리고 또한 ‘세계를 포괄하면서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하는 고유의 자아’로서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3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든 저런 형태든 자아는 뭔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자아는 또한 온갖 자기기만과 오해, 기분, 감정, 열정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자아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훨씬 많이 겪었다. 자아는 유치하고 허영심이 강하며,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며, 애정결핍이며, 탐욕스럽고 공정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하며 그 외 나쁜 것들 투성이였다.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름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본질을 이런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p114~115 우선 나는 ‘만족’이라는 낯선 단어를 숙고했다.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만족한다는 것인가? 아마도 세상에 대해 만족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하루 일을 보고 좋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확실히 세상은 측량할 수 없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시에 섬뜩하기도 하다. 인구가 적고 사건도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노쇠, 질병, 죽음’을 다른 지역보다 더 강렬하게, 더 세세하게, 더 생생하게 체험한다. 내 나이가 아직 열여섯 살이 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인간과 짐승의 삶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보았으며, 교회와 수업에서도 세상의 고통과 타락에 관한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었다.

    하느님은 기껏해야 낙원에 대해 ‘만족’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자신이 해로운 독사, 즉 악마를 들여다 놓음으로써 낙원의 영광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스스로 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하느님이 만족을 느꼈을까?


p117 나는 파우스트의 행동방식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나로서는 파우스트가 그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좀더 현명하고 또한 더욱 도덕적이어야만 했다. 자신의 영혼을 그토록 경박하게 도박에 거는 것이 나로서는 유치하게 보였다. 파우스트는 분명히 허풍쟁이였다!


p118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어자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가 메피스토텔레스를 단순한 놀이나 요술로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지나치게 신학적이요, 너무 경박하고 무책임한 일로 보였다. 괴테도 악을 해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간교한 주장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p119 신은 ‘이론의 여지없이’ '선하다(gut)'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지존자나 완성자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으며 신이라는 관념의 선재(先在)성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후자는 행위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잠재적으로는 인간 안에 본래부터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의 “정신적 능력은 그토록 숭고한 관념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어느 일정한 수준까지는 이미 발달되어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 1832년 간행된 크루그의 <철학사전> 제2판.


p119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으며 신이라는 관념의 선재성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잠재적으로는 인간 안에 본래부터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의 “정신적 능력은 그토록 숭고한 관념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어느 일정한 수준까지는 이미 발달되어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p121 나는 철학자들에게 틀림없이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이 어떤 의미에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가설이라는 기묘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하느님의 어두운 행위에 관한 어떤 의견이나 설명을 발견하지 못해 무척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하느님의 어두운 행위는 특별히 철학적 관심을 기울이고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그것이 사실은 신학자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 틀림없는 문제들을 제기할 것이었다. 철학자들이 이러한 것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더욱더 실망스러웠다.


p122 악마가 본래부터 악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명백한 모순, 즉 이원론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마도 원래는 선한 것으로 창조되었으나 그의 오만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다고 가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은 그것이 설명하려고 하는 악이 이미 자만심이라는 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 지적을 읽고 대단히 흡족했다. 그밖에 악의 기원은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그도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숙고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 악마가 본래부터 악했다는 것이 어떤 모순과 이원론을 가져오는가.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p127~128 나의 비탄과 분노는 위협적으로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때 내가 이미 이전에 나 자신 안에서 여러 번 관찰했던 어떤 일이 일어났다. 마치 시끄러운 공간에서 방음문을 닫아버린 것과도 같이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그것은 냉정한 호기심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너는 흥분하고 있구나. 물론 그 선생은 너의 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다. 다시 말해 너와 똑같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도 너와 마찬가지로 의심 많은 사람인 것이다. 너는 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며 소박하고 한눈에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p129 내 마음 깊은 곳을 암시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책을 읽고 도시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내가 지금 현실로 인식해가고 있는 것들은 시골에서 나와 더불어 성장해온 세계상과는 다른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는 인상이 더욱 강해졌다. 그 세계상은 작은 마을의 강과 숲, 동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 마을은 햇빛이 비치고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찬 밤의 어둠에 감싸이기도 했다. 그곳은 단순히 지도 위의 장소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의미들로 채워진 지정된 신의 세계였다.


p130 곤충들은 ‘정상적인’ 동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변온척추동물은 곤충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하찮은 중간단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생물들은 관찰과 수집의 대상이요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낯설고 비인간적이며 비인격적인 존재의 발현으로 인간보다는 오히려 식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p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p132~133 기독교적 스콜라철학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성 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주지주의는 나에게 사막보다 더 생명력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생각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않은 것을 논리의 곡예로써 억지로 꾸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제 그들은 논리적인 근거에서 그와 같은 동물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 모양대로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논증으로써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p133~134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이것들을 다른 모든 사람은 거의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항상 조화와 이해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어쩐지 가장 좋은 것만을 기초로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나왔다. 그는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의 섭리나 피조물의 조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류역사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자연의 잔인성에는 일종의 결함, 즉 세계창조의지의 맹목성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 연구원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들. 니체, 쇼펜하우어, 괴테..


p134 나는 쇼펜하우어의 음울한 세계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그의 문제해결 방법까지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의지’라는 말이 사실은 신과 창조주를 뜻한다는 것과, 그가 이를 ‘맹목적’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에 대해 거리낌을 갖지 않았다. 나는 그 견해가 사실에 의해 증명된 판단이라고 여겼다.


p135 쇼펜하우어의 사상체계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발견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순수한 본체, 즉 ‘사물 그 자체’를 인격화하고 그 성질을 규정하여 형이상학적인 진술을 하는 심각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칸트의 인식론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그 인식론은 어쩌면 쇼펜하우어의 ‘염세적’인 세계상보다 더욱 큰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

⇒ 이러한 철학 공부와 발전은 일곱 살부터 의학 공부를 할 때까지 이어져 세계와 인생에 대한 융의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엔 수줍고 소심하고 의심많고 창백하고 마르고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고, 융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p136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의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p142 하느님 자신이 어떻게 한 인간을 영적인 세계질서로부터 떼어내 신성모독을 하도록 저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p142 나 자신이 성실치 못해 버림을 받은 듯이 여겨졌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속이는 자다. 너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너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어.… 또한 하느님 자신이 어떻게 한 인간을 영적인 세계질서로부터 떼어내 신성모독을 하도록 저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를 받아들이고 그 것을 참아내는 법을 배워야만 해.”


p143 혼자 집에 있거나 자연 속에 있을 때는 그 즉시 쇼펜하우어와 칸트가 강력하게 되살아나고, 그들과 함께 위대한 ‘신의 세계’도 되살아났다. 나의 자연과학적 지식도 그 속에 포함되어 그 위대한 그림을 색채와 형상으로 채웠다. 그러면 제1의 인격과 직업선택에 대한 걱정들은 1890년대의 작은 삽화 정도로 여겨지면서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p148 그 곳에는 더 이상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나와 타인,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땅과 하늘, 세계와 그 안에서 ‘기고 날고’, 돌고, 올라가고, 떨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p152 말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운명적인' 이상한 감정에 싸이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내 앞에 나타났는데도 마치 우리가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걷고 있구나.'

⇒ 이 만남은 외견상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중요한 일이어서 융의 마음을 며칠 동안 사로잡았고 기억하게 된다. 그 무렵 융의 인생은 서로 연관되지 않는 개별적인 경험들로 이루어지는 천진한 상태에 있었는데 성 클라우스로부터 소녀에게 이어지는 운명의 실을 발견~아마도 그의 아내와의 만남인 듯.


p156 '정신'이란 물론 내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희석된 공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p158 나는 실제 사물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것에 관해 숙고할 만한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여겼다. 누구나 공상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p158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생물학자들이 식물에 대해 말하는 것은 흥미있기는 했으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분명히 설명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시간들...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p167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제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기질, 모호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깊은 내적인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p168 제2의 인격은 파우스트 속에 인격화된 바와 같이 중세의 은밀한 일체감을 느꼈고, 아마도 괴테의 심금을 깊이 울렸을 흘러간 시대의 유산과도 그러한 일체감을 느꼈다. 그러므로 괴테에게도 제2의 인격은 하나의 실재였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p170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이 꿈은 나에게 심오한 계시와도 같았다. 그때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과제는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p170~171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은 시간이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면서도 동시에 쉼없이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것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탐욕스럽게 끌어들인다. 우리는 단지 앞으로 돌진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잠깐 동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버린다.


p172 이제 나는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내가 내적 영역을 상기시키는 어떤 것을 넌지시 암시할 적마다 사람들 위에 드리워지던 그 의아함과 서먹함의 차가운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제2의 인격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내 앞에서 제2의 인격을 부정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를 불구로 만드는 것이며, 더 나아가 꿈의 출처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제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제2의 인격으로서 그 필수적인 보다 높은 지능을 신뢰하는 일이 쉬울 것이었다.


p173 나와 제2의 인격 사이에는 분열이 생겼으며, 그 결과 나는 제1의 인격 쪽으로 기울었고, 그만큼 제2의 인격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제2의 인격은 적어도 어느 정도 자율적인 인격임을 암시하게 되었다.


p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p180 신학은 아버지와 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숙명적인 패배로 여겼지만 그러하고 물론 고독감에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로웠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구원의 말을 해줄 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고 화까지 치밀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교회와 그 신학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아버지가 하느님에게 직접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막아버리고는 의리없이 아버지를 버리고 말았다.


p185 한번은 어머니가 나를 향해서인지 주변 공기를 향해서인지 ‘제2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돌아가셨구나.”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에게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낡은 시대의 한 조각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을 느꼈다. 다른 한편, 그 무렵 남자다움과 해방감이 조금씩 내 안에서 싹텄다.

⇒ 두 인격을 가졌다고 융이 생각하는 어머니.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말’로써 상처를 많이 주는 듯하다. 의도하든, 하지 않든.


p187 회고하건대 대학시절은 나에게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정신적으로 활기를 띠었고 또한 우정을 나누는 시기였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p192 나는 그리스도를 전면에 내세워 그를 하느님과 인간의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유일한 인물로 만드는 견해에 대해 동조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견해는 그리스도가 죽은 후에는 그를 낳았던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대신할 것이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견해와도 전적으로 모순되었다.


p195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은 이러한 나의 열의에 전적으로 동조했으나, 그 외 주변 사람들은 나를 낙심하게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전통적 견해의 바위에 부딪혔다면, 이제는 비인습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과 선입견이라고 하는 강철벽에 부딪힌 셈이었다.


p197 그 무렵 니체는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대개 ‘전문적인’ 철학도들이 가장 격렬하게 니체를 배척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나는 보다 높은 영역권에서 니체에 대한 반감이 퍼져 있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그 최고권위자는 물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였다.


p200 말로 전할 수 없는 신비에 빠진 상태에서 니체가 온갖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우둔한 대중에게 그 신비를 선전하고자 했을 때는 그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니체는 과장된 문제, 도가 지나친 은유, 환희의 송가를 떠벌리게 된 것이었다. 이런 것들은 연관성없는 배울 만한 지식들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알아듣게 하려는 시도이긴 했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그는 줄타기 광대로서 자기 자신의 한도를 넘어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알지 못했고, 신들린 사람으로 주변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p201 파우스트가 나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p202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 온갖 것들을 들쑤셔놓고..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p207 이 실험을 2년쯤 하고 나자 일종의 피곤이 찾아왔다. 나는 영매가 실험을 하면서 속임수로 심령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포착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실험을 중단하도록 했는데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영매의 사례에서 나는 제2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어린아이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며, 어떻게 자기 안에서 그것을 마침내 통합하는지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 영매와의 경험에서 박사논문. 그 소녀는 '조기 완성된 자'였다. 그녀가 죽어가는 최후 몇 달 동안 그녀의 성격들이 하나하나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결국은 두 살짜리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서 마지막에 잠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로 하여금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인간의 영혼에 관해 어떤 객관적인 것을 경험했다.


p210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몇 줄 더 나가자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크라프트 에빙의 정신의학 교과서. 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린 것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망상관념이나 환각이 정신병의 특이한 증상일 뿐 아니라 일종의 인간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p216 반년 동안 나는 정신병원 생활과 그 정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수도원 벽 안에 가두고는, 정신의학적인 사고방식을 익히려고 <정신의학 잡지> 50권을 처음부터 통독했다. 나는 인간의 정신이 스스로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정신의학은 정신병이 생겼을 때 이른바 건전한 정신을 엄습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조리 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p217 나는 나의 숙명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이 셈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p224~225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적인 요소를 고려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어떤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환자가 곤경에 처하면 나 역시 그렇게 되고 말 것이었다!


p225~226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p230 우리는 개선이나 치료가 어느 정도 오래 지속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나는 그와 같이 불확실한 가운데 일하는 것에 대해 늘 저항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내가 결정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환자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가는지 환자 자신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p235 누가 도덕적 지각없이 몰래 죄를 짓고 발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벌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239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환자 바베트의 사연. 책으로 발표하기도 했고 1908년 취리히 공회당에서 강연도 하고.


p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 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꿈의 분석


p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p249 나의 분석에서는 이론적 전제들은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p250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 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p251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재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p253 꿈은 의식적인 태도에 대한 보상 바로 그것이다.


p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p254 그것은 당신이 우선 당신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 자신이 치료의 도구입니다. 당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환자가 올바르게 되겠습니까? 당신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환자를 확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이 진정한 재료가 되어야만 합니다.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p259 환자 편에서 전이가 일어난다든지 의사와 환자 간에 다소 무의식적인 동일시가 일어날 때에는 때때로 심령심리학적 성질을 지닌 현상이 야기될 수도 있다.


p261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이 사례에서는 죽음이라는 상황이지만)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미 그날 저녁 내내 보통 때의 기분하고는 유난히 달리, 이상하게도 마음이 어수선하고 신경이 예민했던 것이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p270 오늘날 소위 신경증 환자들 가운데는 이전 시대라면 신경증, 즉 자기 자신과의 분열을 겪지 않았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화에 의해 조상들의 세계와 여전히 관련을 맺고 있고, 그리하여 단지 바깥에서 보는 자연이 아닌 실제로 체험하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면했을 것이다.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p270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이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분열을 자신에게서 깊이 느끼고 있는 의사는 무의식의 심정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심리학자가 빠지기 쉬운 자아팽창의 전형적인 위급상황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71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일종의 구획심리학을 계발한다.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경증을 앓고 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p276 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p278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신경증이 성적 억압이나 성적 외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떤 사례에서는 이론이 맞았으나 다른 사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 뮌헨 학술대회에서 강박신경증에 관해 발표, 논문 기고 후 프로이트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에 대한 경고를 받았지만 그는 프로이트를 계속 지지하고 있었다.


p279~280 나로서는 그러한 성에 대한 단호한 평가가 그의 주관적 전제와 어느 정도로 연관되어 있는지, 그이 성이론이 입증 가능한 경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되어 있는지 분명치 않았다.

    무엇보다 영혼에 관한 프로이트의 태도는 나에게 몹시 수상쩍게 여겨졌다. 어떤 인물이나 어떤 예술작품에서 영성의 표현이 나타나는 경우에, 그는 언제나 의심하는 태도로 그것이 ‘억압된 성욕’임을 넌지시 시사하곤 했다. 성욕이라고 단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정신적 성욕’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의 가설을 끝까지 논리적으로 밀고나간다면 문화에 대한 파괴적인 판단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화라는 것이 억압된 성욕의 병적인 결과로서 단지 소극(笑劇)으로 여겨질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가 이상할 정도로 성이론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성이론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어조는 급해지고 거의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평상시의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이상하게 동요하는 기색이 비쳤는데, 나로서는 그 원인을 잘 알 수 없었다. 성욕이 그에게는 일종의 누미노숨(신성한 힘)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p281~282 왜냐하면 교리, 즉 논의할 필요도 없는 신앙고백은 오직 의심을 단번에 눌러버리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판단과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개인적인 권력충동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프로이트는 ‘신비학’이라는 말을, 그 무렵에 유행하기 시작한 심령술을 비롯하여 철학과 종교가 영혼에 관해 설명해놓은 모든 것으로 대략 이해하는 듯했다. 나에게는 성이론이 그야말로 ‘신비적’이었다. 다시 말해, 다른 많은 사변적인 견해와 마찬가지로 단지 가능성만을 지닌, 증명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과학적 진리를 얼마 동안만 만족스러운 가설이지 모든 시대에 걸친 교리는 아니었다.

⇒ 프로이트에게 성욕은 일종의 ‘종교적으로 관찰된 것’이었다. 융이 성욕을 잃을지도 모를까봐 성실을 다해 지켜야 할 만큼 불안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프로이트에게는 많은 것을 의미하는 듯.


p284 성욕은 역시 프로이트에게 신성한 힘이었으나 그의 용어와 이론에서는 성욕을 예외없이 생물학적 기능으로 표현해놓았다. 그가 성욕에 관하여 말할 때의 떨리는 어조만이 그의 내부에서 깊은 울림이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결국 그는 성욕 역시 내면에서 보면 영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구상적인 용어들은 그의 생각을 표현해내기에는 너무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실제로는 자신의 목적과 자기 자신에 역행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자기가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되어 있는 경우, 그 사람의 신랄함보다 더 지독한 신랄함은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검은 진흙탕 홍수’로 위협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프로이트 자신이 검은 심연을 퍼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p284~285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미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그는 무의식 내용들의 역설과 모호성을 보지 못했으며,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은 위와 아래가 있고 안과 밖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밖에 관하여 말할 때,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전체의 반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무의식에서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이다.

 ⇒ 아들러의 권력가설을 이해하고 난 후, 융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니체의 권력원리의 우상화를 보상하는 정신사의 교묘한 책략이라 깨달음


p287 신성한 힘이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한 힘의 체험은 사람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추락시키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 좀 더 고려했다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감정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p295 나의 말에 프로이트는 기묘한 시선, 의심이 가득 담긴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말 속에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이 예시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 이전에 융과 프로이트와 대화 중 프로이트가 실신한 적이 있다. 처음엔 이탄 늪지대의 시체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두 번째는 아메노피스 4세(이그나톤)가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졌다, 부성콤플렉스가 있다는 이야기에 융은 반발한다. 융은 아메노피스는 창조적이며 깊은 종교성을 지닌 사람으로 그의 행동들이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 반항으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논의하던 때였다. 이 실신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공통점은 부친 살해에 대한 환상.


p300~301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겼다.

⇒ 융의 생애를 돌아보면 모든 것은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꿈에 대해 강한 메지시를 부여받고, 부여함으로써 사건이 전개된다는 생각도 들고. 이 사람이 우리나라에 태어났으면 심리학자, 의사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무당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황당한 생각도. 그가 자신의 꿈이야기를 한다든지 꿈을 통해 어떠한 이미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대개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신내림, 무당?


p303 그 무렵(1911) 프로이트는 나에게 권위가 상실된 존재이긴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우월한 인격을 의미했으며 나는 그에게 부성을 투사했다. 그 꿈을 꾸었을 즈음에는 아직도 그러한 투사를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투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객관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 판단을 고집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의존적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을 느끼게 된다. 그 꿈을 꾸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프로이트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이런 분열된 태도는 내가 아직도 그 사태를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성찰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것은 모든 투사의 특징이다. 그 꿈이 나로 하여금 이러한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p307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그들도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계몽이 신경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조로운 일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때에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부터 억압해오던 것에 머물기를 너무 좋아하기만 한다.


p309 나로서는 근친상간이 개인적인 착종(錯綜)을 의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개 근친상간은 고도의 종교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것은 거의 모든 창조신화와 그 외 수많은 신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문자주의 해석에 집착하여 상징으로서의 근친상간의 영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프로이트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310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후 나의 모든 친구나 친지들은 나를 떠나갔다. 사람들은 나의 책을 쓰레기라고 내놓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로 간주되었고, 이것으로 사태는 끝장을 보게 되었다. 오직 리클린과 메더 둘만이 내 곁에 머물렀다.

    돌이켜보면 프로이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두 가지 문제를 논리적으로 추구해 들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두 가지 문제는 ‘고태적 잔재’와 ‘성’이었다. 내가 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일반에 널리 잘못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그와 반대로 성은 내 심리학에서 정신 전체의 본질적인(유일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표현으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주요한 관심은 성의 개인적인 의미와 생물학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그것의 정신적 측면과 신성체험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설명하는 데 있었다.

⇒ 이에 관한 설명은 <전이의 심리학>, <융합의 신비> 속에.


p311 성은 지하세계의 영의 표현으로서 아주 중요하다. 그 영은 ‘신의 또 다른 얼굴’, 즉 신의 이미지의 어두운 면이다. 지하세계의 영의 문제는 연금술의 사고세계를 탐구한 이후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p311~312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p316 그 무렵 나는 이상하게도 명료한 정신상태 속에서 내가 걸어온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너는 이제 신화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그러자 갑자기 내가 무엇을 이뤄왔는지 의문이 생겼다.  “너 자신은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p318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환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p320~321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 번 더 살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놀이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놀이를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크나큰 체념과 굴욕감의 고통이 따랐다.

⇒ 융이 한 놀이는 돌들을 찾아 모으고 집과 성과 마을을 짓는 것.


p324 8월 1일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제 나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 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만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했다. 그 시작은 집짓기 놀이에서 생겨난 환상들을 그려내는 일이었다.

⇒ 역시 융은 꿈을 꾼다.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전세계적인 암울한 느낌의 꿈을. 그리고 전쟁이 발잘했기에 그는 또 이 꿈에 집중한다.


p326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 무의식의 내용을 막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어쩔 수 없이 신경증에 걸렸을 것이고, 결국 무의식의 내용이 나를 파괴했을 것이다.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p327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신과 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필레몬과의 대화


p332 살해행위 뒤에 나는 마치 나 자신이 총에 맞은 것처럼 깊은 연민을 느꼈다. 거기에는 영웅과의 은밀한 동일시,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이상과 의식의 관점을 희생하도록 강요당할 때 겪는 고통과의 동일시가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영웅적 이상과의 동일시는 끝나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순종해야 할 대상, 자신의 의지보다 높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p334 살로메는 하나의 아니마 형상이다. 그녀는 사물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님이다. 엘리야는 지혜로운 노인 예언자의 모습으로 인식의 요소를 나타내지만, 살로메는 애욕의 요소를 나타내고 있다. 두 형상은 로고스와 에로스의 화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너무 지적이다. 그 형상은 원래 나에게 보인 그대로, 다시 말해 무의식의 배후에서 전개된 과정으로 놔두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이다.


p335~336 필레몬과 또 다른 환상의 형상들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환상 속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내가 의식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들을 말했다.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라는 것을 정확히 지각했다.

    그는 내게 설명하기를,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의 견해로는 그 생각들이 숲속의 짐승이나 방 안에 있는 사람, 공중의 새처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당신이 방 안에서 사람들을 본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그 사람들을 만들었다거나 당신이 그 사람들에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차츰 나에게 정신적인 객관성, ‘마음의 진실’을 깨우쳐 주었다.

⇒ 이 대화를 통해 융은 자신과 자신의 사고의 객체 사이에 있는 차이가 분명해졌다. 객관적인 태도로 자신을 대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들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적대적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p338 필레몬은 불구의 발을 가졌지만 날개 달린 혼이고, 반면에 카는 일종의 흙이나 금속에 깃든 혼을 나타낸다. 필레몬은 정신적 측면, 즉 ‘이해력’이지만 카는 이와 반대로 연금술의 안트로파리온(꼬마 난쟁이 요술사) 같은 자연혼이다.


p340 나중에 나는 내 안에 있는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인 또는 원형적인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아니마’라고 불렀다.


p341 매일 저녁 나는 글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적어 놓은 것은 아니마가 왜곡할 수 없을 것이고, 그걸 가지고 책략을 쓰지도 못할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보면,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p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p343 오늘날 나는 아니마와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오늘날 내게는 그 관념들이 직접 의식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무의식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내면의 이미지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나의 꿈을 통해 직접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중개자가 필요하지 않다.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p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p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나는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 그런가? 그게 현실적임을 증명하는 요인이라면 나도 지극히 평범한 인간임을.


p346~347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이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토록 방황하고 침체되어 있던 때이긴 하지만,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항상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그러므로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었다.


p349 영혼, 즉 아니마는 무의식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사자(死者)집단과의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무의식은 신화적인 ‘죽음의 나라’, 즉 조상의 나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상 속에서 영혼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영혼이 무의식 또는 죽음의 나라로 되돌아간 셈이 된다. 이것은 원시종족에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소위 ‘영혼의 분실’ 현상과 일치한다.


p354 내가 심적 체험의 내용이 ‘진실’이며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체험으로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제시해줄 수만 있다면, 바깥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이일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노력을 요할 것이었다.


p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 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만다라 이미지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중요한 표시로 여겨졌고, 나는 그것을 값비싼 진주 다루 듯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자기는 나 자신인 동시에 나의 세계인 단자와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만다라는 이 단자를 표시하며 정신의 소우주적 성질에 해당했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p365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런 증거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 생각을 증명할 수가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연금술과의 만남은 나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p366 연금술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통해 비로소 그노시스주의와 역사적인 연결이 이루어짐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로써 과거와 현재 사이에 연속성이 생기게 된 셈이었다. 연금술은 하나의 중세 자연철학으로서 한편으로는 과거 즉 그노시스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즉 현대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p367 그노시스의 전통에 의하면 인류에게 크라터(섞는 그릇), 즉 정신적 변환의 용기(容器)를 부여한 것은 바로 그보다 높은 신이었다. 크라터는 여성원리로서 프로이트의 가부장적 세계에서는 자리잡을 데가 없었다. 물론 프로이트 혼자만이 그런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톨릭 사상의 영역에서 신의 어머니와 그리스도의 신부가 성스러운 신방으로 받아들여져 적어도 그 일부가 수용된 것은 수세기의 주저함 끝에 최근에야 비로소 이루어진 일이다. 개신교나 유대교의 영역에서는 아버지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연금술철학에서는 여성원리가 두드러져 남성의 그것과 동등한 역할을 했다.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p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대응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이제 나의 심리학은 역사적 토대를 얻게 되었다. 연금술과의 비교는 그노시스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신적 연속성과 함께 나의 심리학에 실체성을 부여해주었다.


p373~374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 “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였다. 거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p377~378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에서는 단지 나 자신이 어떻게 무의식과 관련을 맺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밝혔을 뿐 무의식 그 자체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환상탐구에 몰두하면서 나는 무의식이 변환하기도 하고 변환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 개인의 경우 그 과정을 꿈이나 환상에서 읽어낼 수 있다. 집단적인 세계에서는 그것이 반영된 표현이 특히 다양한 종교상징의 변환에서 발견된다.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변환과정에 대한 연구와 연금술의 상징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는 '개성화의 과정'이라는 내 심리학의 중심개념에 이르게 되었다.


p382 목수의아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 ‘우연’ 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인간 예수 이외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메시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p388 상처 입은 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듯이 치료자는 자신을 치유한다. 특기할 일은 꿈에서 결정적인 활동이 죽은 자에 의해 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즉, 의식 너머의 세계, 무의식에서 그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p395 오늘날 인간은 지상에 있는 온갖 고등생물을 방사능으로 없애버릴 수 있다. 세계 소멸의 관념은 이미 부처에 의해 그 단초를 갖게 되었다. 피할 도리가 없이 노쇠, 질병,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사슬은 큰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존재의 환영은 소멸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은 이미 심상치 않게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문제를 예언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 꿈은 인간세계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생각과 징후, 즉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를 근소하지만 결정적으로 능가한다는 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p397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p404 처음부터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탑은 내가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미리 예감했던 것의 실험, 즉 개성화의 표현으로 이어졌다. 청동보다도 오래갈 기억의 징표였다. 그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져 나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 건축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편적으로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좇아서 일을 했다. 그래서 내적인 연관성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꿈속에서 탑을 지은 셈이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형태, 즉 정신적 전체성의 상징을 이루게 된 것을 알았다. 마치 오래전에 뿌린 씨가 싹이 트는 것처럼 그 일이 전개되었다.

⇒ 융은 가장 깊은 생각과 자신의 인식들을 이를테면 돌에 표현하거나 돌로써 고백해야 했다. 그가 손수 볼링겐에 지은 탑이 그 일의 시작이라고. 융이 이 탑에서 느낀 휴식과 재상의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력했고 모성적인 장소같은 의미가 있었다. 그래도 말해야 하는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탑을 계속 지어갔다.


p405 나는 전기를 쓰지 않고 벽난로와 화덕에 손수 불을 지핀다. 저녁에는 옛날 등잔에 불을 붙인다. 수도도 없어 나는 펌프로 직접 물을 긷는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요리한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볼링겐에서는 고요함이 나를 에워싸고 사람은 ‘겸허하기 그지없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산다.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들, 그에 따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p406 여기 돌이 있네. 보잘것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연금술사 아르날두스 드 빌라노바, (1313년 죽음) 의 라틴어 시구절-

⇒ 이것은 융이 돌에 새겨넣은 최초의 글이다. 이 글은 무지한 자들로부터 경멸당하고 배척되는 연금술사의 돌을 묘사하고 있다.


p410 불협화음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연은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무섭도록 모순되고 혼돈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p411~412 물론 나는 꿈이 그와 같이 실제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깨어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 자문해보았다. 보통은 그런 것을 유령 출몰에서만 경험한다. 깬다는 것은 현실을 자각한다는 뜻이다. 그 꿈은 현실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여 일종의 깨어있는 상태를 만들어놓는다. 이런 종류의 꿈은 일반적인 꿈에 반해서 반복에 의해 강조된 뚜렷한 현실감각을 꿈꾸는 자에게 전하려는 무의식의 경향을 드러낸다. 그런 현실성의 원인은 한편으로는 원형적 이미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자신의 체험을 융은 이렇게 설명한다. 반복적인 수백 명의 음악소리, 축제적인 그 꿈은 고독현상으로, 외적인 공허와 정적을 사람들 무리의 이미지로 보상하려는 것이라고 . 그것은 똑같이 보상적인 현상인 은자의 환각에 해당할 것이다. 그가 외로움으로 너무 예민해져서 그곳을 지나가는 ‘젤릭 뤼트(축복받은 죽은 자들)’의 행렬을 감지했을 것이라고.


카르마


p417 내가 석판에 족보를 새길 때 조상과 이어져 있는 숙명적인 연대성이 뚜렷이 인식되었다. 나는 부모나 조부모, 그리고 더 먼 조상들이 완성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놓은 일들과 문제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아주 강하게 느낀다.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넘겨진 비개인적인 카르마가 가족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넘겨진 비개인적인 카르마가 가족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조상들에게 숙명적으로 던져졌으나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하며, 지나 간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것을 내가 완성하거나 계승해야만 할 것같이 늘 여겨진다.


p420 무엇보다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움직인 것은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대극문제였다.


p421~422 옛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결코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문화 속이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니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고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다 큰 자유에 대한 희망은 국가에 대한 예속의 증대로 사그라들고 만다. 가장 눈부신 과학의 발견이 우리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그러면 각 개인은 집단의 한부분으로 단지 ‘중력의 혼(니체가 말한 집단정신)’을 따라 가게 된다.

    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그에 반해 역행을 통한 개혁은 일반적으로 비용이 덜 들고 더 오래가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 개혁은 보다 단순하고 확실한 과거의 길로 돌아가며 신문, 라이오, 텔레비전, 그 외 겉으로 보기에 시간을 아낄 만한 온갖 신기술을 최대한 적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p429~430 내가 끝없는 시간의 연속과 그 가운데서도 거의 변함이 없는 존재의 모습들로 말미암아 깊은 감명에 여전히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내 회중시계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럽인의 가속화된 시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는 이 사람들 머리 위에 위협적으로 드리운 불안하고 어두운 구름이었다. 나는 문득 이 사람들이 사냥꾼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사냥꾼 냄새를 맡고 있는 사냥감 짐승들처럼 여겨졌다. 그 사냥꾼은 다시 말해 시간의 신으로서 아직 영원을 연상케 하는 이들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날과 시, 분과 초로 조각조각 잘게 쪼개게 될 것이었다.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p431) 이런 것들은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 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p433).


p433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공간에서의 방향설정과 외부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에서의 방향설정과 외부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인 충동과 격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성찰을 하지 않고 자아는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 유럽인들도 아주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약간 더 복잡한 셈이다. 아무튼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의지와 숙고된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강렬함이다.


p434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p437 어린아이답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훨씬 완벽한 '자기'의 이미지, 즉 꾸밈없는 개성을 갖춘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말미암은 갈망이 일어난다. 이것은 적응상태, 즉 페르소나를 위하여 인간의 전체상에서 떨어져나간 인격부분에 해당한다.


p439 어린 시절의 어떤 추억이 갑자기 그토록 생동하는 열정으로 의식을 사로잡아, 사람들로 하여금 그야말로 다시 원초저인 상황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하듯이, 외견상 전혀 다르고 낯선 아랍의 환경이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너무나 익숙한 선사시대에 대한 원초적인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무성한 문명으로 덮여 있긴 하지만 아직도 현존하는 생의 가능성에 대한 추억이다. 우리가 그것을 순진하게 다시 체험해보려고 한다면 야만으로 전락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잊는 방향으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갈등의 형태로 다시금 우리와 마주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의식 속에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충분한 이유 없이 다시 그러한 발언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p439~440 살아 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 확인으로 그쳐야 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p441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 관점은 특히 그 성격상 어떤 다른 학문분야보다도 훨씬 주관적인 경향을 가진 심리학적 사항들에 아주 유용하다. 예컨대 우리나라를 밖에서 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나라의 특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밖에서 본다는 것은 다른 국가의 관점에서 본다는 말이다


p443 나는 그에게 왜 백인이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p450~451 그 순간 나는 인디언 남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젓한 자기 확신감과 ‘위엄’이 어디서 나오는지 뚜렷이 알게 되었다. 그는 태양의 아들로 그의 생명은 우주론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그는 모든 생명의 아버지요 보존자인 태양이 날마다 떠오르고 지도록 돕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순전히 질투심으로 인디언의 순진함을 슬쩍 비웃고 우리가 그들보다 영리하다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빈약하며 쇠락한 가운데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한다.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우리가 온갖 유럽의 합리주의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우리 자신을, 한쪽은 넓은 대륙의 초원으로 다른 한쪽은 잔잔한 바다로 기울어지는 저 고적한 고원의 맑은 공기 속으로 옮겨놓을 때,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세계의식성을 버리고 그 대신 그 너머에 놓여 있는 세계 무의식성과 더불어 끝이 없는 듯이 보이는 지평을 확보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견해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p452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p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이난인 내가 보이지 않게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그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로 완성되도록 해주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왔다.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p470 현대사회에서 동성애가 맡은 역할은 대단하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모성콤플렉스의 결과이며 일부는 자연의 합목적적 현상(번식의 저지!)이다.


p476 일몰 후부터는 다른 세계, 즉 어둠의 세계, 아이크의 세계가 지배한다. 그것은 악이요 위험이며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다. 낙관적인 철학은 중지되고, 유령에 대한 공포의 철학과 재앙을 막으려는 마술적 풍습의 철학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일출과 함께 아무런 내적 모순 없이 낙관주의가 다시 돌아온다.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p489 내가 인도에서 주로 몰두한 것은 악의 심리학적 성질에 관한 물음이었다. 이 문제가 어떻게 인도의 정신생활에 의해 통합되는가 하는 것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 동양인에게는 도덕적인 문제가 자신들의 경우처럼 우선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고 생각. 동양인들에게 선과 악은 의미상으로 본성에 포함되어 있어 사실은 유사한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p490 기독교인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에 빠진다. 이에 반하여 인도인은 선과 악의 바깥에서 자신을 느끼거나, 명상이나 요가로써 이러한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

    여기서 나의 이의가 제기된다. 그런 입장에서는 선도 악도 본래의 윤곽을 지닐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은 일종의 정지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악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면 선 역시 진정으로 믿지 않는 것이다. 기껏해야 그것은 ‘나의’ 선이 무엇이냐, 혹은 ‘나의’ 악이 무엇이냐, 즉 무엇이 내게 선으로 보이느냐 아니면 악으로 보이느냐를 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역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의 정신성에는 악도 선도 아주 결여되어 있거나, 그들이 선악의 대랍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어 니르드반드바, 즉 선악의 대립과 만 가지 일로부터 해방을 필요로 한다고 말이다.


p490~491 인도인의 목적은 도덕적인 완전성이 아니라 니르드반드바 상태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며 거기에 걸맞게 또한 명상을 통해서 형상이 없는 공의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 이에 반해 나는 자연과 정신의 이미지에 대한 생생한 관찰을 고수하고 싶다.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지도 않으며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그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이기 때문이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피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에게 존재의 최고 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그것이 원래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하는 데 있지 않다.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 니르드반드바, 열반.

    

p491 자신의 열정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p495 나는 부처의 삶을 개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주장한 ‘자기’의 실현으로 이해했다. 부처에게 ‘자기’는 모든 신을 넘어서, 특히 인간실존과 세계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 자체의 측면뿐 아니라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인식도 함께 포괄하고 있다.


p497 그러나, 역사적 발전은 ‘그리스도 모방’으로 이어져, 개인이 전체성에 이르기 위해 자기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간 길을 본받아 따라가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부처를 신앙적으로 모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부처는 모방의 대상인 모범상이 되었고, 그럼으로써 부처 자신의 이념은 약화되었다. ‘그리스도 모방’이 기독교 이념의 발전을 치명적으로 가로막은 것처럼 말이다. 부처가 바로 그 통찰로 인해 브라마의 신들을 능가하듯이, 그리스도도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은 신들이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소위 ‘기독교적’ 서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대신 세계파괴의 가능성으로 내닫고 있다.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p507 남자의 아니마는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 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이 그의 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 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남성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이미 있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아니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자신이 원래 어떤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야만인처럼 여겨진다. 마치 이전도 이후도 없이 그야말로 무(無)에서 생겨난 자같이 생각된다.


p508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도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나 자신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 역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기기 쉬운 인상과 견해의 불일치를 제거할 수 있는 법정은 우리가 아는 한 그 어디에도 없다.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p515~516 내가 암석의 입구로 통하는 계단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에게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나에게서 벗겨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마음먹고 바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 세속적 생활의 모든 환각이 나로부터 떨어져나가거나 제거되었다. 그것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런 주에도 뭔가 남은 것이 있었다. 내가 일찍이 살면서 경험하고 행한 것, 내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지금도 나에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말이다. '나'는 이를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즉,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p517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른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인생은 긴 사슬에서 가위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고, 많은 물음은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았다. 무슨 이유로 그와 같이 진행되었을까? 왜 나는 그런 가설들을 가지고 왔는가?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


융합의 신비


p524 나에게는 신성한 존재의 출현이 매혹적인 분위기로 여겨졌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점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변명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왜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는 신성한 영의 ‘향기’에 관해 말하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말할 수 없이 신성한 영이 그 방에 있었다. 그 현상을 설명한 것이 <융합의 신비>였다.


p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 이상 시간으로 쪼개질 수도 없고 시간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었다. 그 체험은 우선 하나의 상태, 즉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감정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제와 동시에 오늘과 내일 존재한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다른 것은 너무도 분명한 현재이며,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그래도 하나였다. 감정이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작하는 일에 대한 기대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지나간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한 만족이나 실망이 모두 포함된 하나의 총체, 다채로운 전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빠져들어 있으면서도 완전한 객관성을 가지고 지각하게 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였다.


p526 감정적인 관계는 강요와 예속으로 부담을 주는 열망의 관계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그로 말미암아 상대방과 우리 자신이 부자유하게 된다. 객관적인 인식은 감정적인 연관성 너머에 있다. 이 사실이 중요한 비밀로 여겨진다. 객관적 인식을 통해서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하다.


p527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p528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옳으냐 그르냐 하는 범주는 항시 존재하지만 그것은 구속력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p532 요즈음의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오늘날 인간이 대부분 오로지 그들의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지식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p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이성적으로 잘 살며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사람은 수백 년을,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이 헛되이 분주하기만 하는가?


p536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 들을 생각해보라.


p542 회피할 수 없는 질문자가 그에게 다가오고 그는 이에 답해야 한다. 그가 죽음에 관한 신화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은 그가 들어갈 어두운 구덩이 외에는 아무것도 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화는 그의 눈앞에 다른 이미지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것은 유익을 주며 정신을 풍성하게 하는 사후세계 삶의 이미지들이다. 그가 이 이미지들을 믿거나 약간만 선회하더라도 그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다. 어쨌든 부인하는 자는 ‘무(無)’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두 사람 다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런데 전자는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있고, 후자는 본능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현저한 차이이며 후자에게 이로운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p546 죽은 자의 혼령들도 그들이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알고 있던 것만 ‘알고’ 그 외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앎에 참여하기 위해 인생 속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애쓴다.


p551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p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단일성과 무한성


p560 서양인으로서는 정적이기만한 세계의 무의미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세계의 의미를 전제해야 한다. 동양인은 이런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이 그 전제를 구현 한다. 서양인이 세계의 의미를 완성하고자 하는 반면, 동양인은 인간 속에서 의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으로부터 세계나 존재를 벗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부처다.


p561 내가 살아가면서 감당하고 있는 카르마가 내 전생의 결과인지, 혹은 내 속에 유산을 모아 남겨준 조상의 소산인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나도 답을 잘 모르겠다.


p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그것이 내가 오로지 고심 끝에 인식하게 된 초개인적인 인생과제다.


p569~570 자기(Selbst)와 자아(Ich)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관하여 나는 이전에 이미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꿈에서 나는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어떤 작은 거리에서 언덕진 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햇빛이 비치고 사방으로 넓은 시야가 펼쳐졌다. 길가 어느 작은 예배당에 이르렀는데 문이 반쯤 열려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제단 위에는 성모상도 십자가상도 없고 다만 화려한 꽃들이 예쁜 정돈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요기(요가수행자) 한 사람이 제단 앞 바닥에 연꽃자세(가부좌)로 나를 향해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좀더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가 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깊은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그가 깨어난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p572 인간의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질투와 시기를 낳는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한한 것이 그 관계 속에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p573 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은 "나는 다만 그것에 불과하다!"는 체험 가운데 나타난다. 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아주 좁게 제약되어 있다는 의식만이 무의식의 무한성에 접속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성에서 나는 나를 유한하면서도 영원하며 이것이면서도 저것으로 경험한다. 내가 나를 개인적인 결합 속에서 궁극적으로 제약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알게 되면서 또한 무한한 것을 의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닌다. 오직 그러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p573 우리 시대는 모든 강조점을 이생의 인간에 두어왔다. 이로써 인간과 그의 세계의 신들림이 초래되었다. 독재자들이 출현하고 그들이 온갖 재앙을 가져오게 된 원인은, 영리하기 그지없는 지성인들의 근시안으로 인해 인간에게서 내세적인 것이 박탈된 데 있다. 그런 사람들처럼 인간은 무의식성의 제물이 되어버린다.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p579~580 아무튼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방향설정, 즉 일종의 메타노이아(회개)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악과 접하게 되면 거기에 빠져들 긴박한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악에 더 이상 ‘빠져들어서는’ 안 되며 선에도 빠져들면 안 된다. 이른바 사람들이 빠져버린 선은 도덕적인 성질을 잃게 된다. 그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빠져버렸으므로 그것이 나쁜 결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중독 대상이 알콜이든 아편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모두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 이상 이끌려서는 안 된다.


p580 선과 악(또는 불완전함)이 상대적이라고 해서 선악이라는 범주가 가치가 없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며 특유한 심리적결과가 뒤따른다. 다른 데서 내가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행해지거나 의도되거나 생각되는 온갖 잘못은 세계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마음을 응징할 것이다.


p581 윤리적 결단이 요구한다면, 버릇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도덕적인 선이라고 알려진 것을 경우에 따라 피하고 악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선악의 대극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방성에 대하여 우리는 도덕적 형태를 갖춘 인도철학의 ‘네티 네티(neti-neti : '아니다 아니다’라는 뜻으로 부정의 부정, 즉 부정을 통한 긍정을 시사하는 말이다. 우파니샤드철학 이래 ‘절대’는 ‘네티 네티’에 의해서만 인식된다고 한다-옮긴이)’의 모본을 가지고 있다. 이로써 윤리규범은 경우에 따라 불가피하게 지양(止揚)되고, 윤리적 결단은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다. 이런 생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심리학 이전 시대에도 이미 ‘의무의 충돌’이라는 말로 늘 제기되었던 내용이다.


p588~589 만다라는 원형상이며 그 존재는 수천 년에 걸쳐 확인되었다. 그것은 '자기의 통합성'을 나타내거나 심적 토대의 통합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신화적으로 표현하면 인간 안에 육화된 신성의 출현이다. 뵈메의 만다라와 대비하여 현대인의 만다라는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분열에 대한 보상이나 선취된 분열극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집단 무의식에서 일어나므로 그것은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기질의 징후다.


p594 창조신의 표상에 내포된 필연적인 내적 대극은 '자기'의 통일성과 전체성 속에서 연금술의 대극융합이나 신비적 합일로서 화해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체험하는 가운데, 이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신과 인간'의 대극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표상에 내포되어 있는 대극이 극복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에 대한 예배', 즉 인간이 신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예배의 의미다.


p596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색은 의미가 없다. 사색은 예컨대 물병자리 시대의 경우처럼 객관적 자료가 있는 곳에서만 의미가 있다.


p596~597 우리가 우주에서의 인간실존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하나의 관념을 가진다면, 다시 말해 마음의 통합성, 즉 의식과 무의식의 협력이 이루어지게 하는 근원인 그러한 관념을 가진다면, 신화적 진술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는 셈이다. 무의미는 생의 충만을 방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뜻한다. 의미는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해준다.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p601~602 그럴듯한 비밀의 필요성은 원시단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사회적인 단계에서 비밀은 개별 인격들의 결속 부족을 효과적으로 보상하는 데 의미가 있다. 개별 인격은 타인과의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동일성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감으로써 반복해서 분열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개성을 의식하는 개체가 되려는 목표에 이른다는 것은 거의 가망이 없는 오랜 수련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통과의례를 거친 우수한 개체들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공동체 역시 사회적으로 분화된 정체성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무의식적인 정체성에 의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p602 비밀결사는 개성화의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다. 사람들은 자신을 분화시키는 일을 아직은 집단적인 조직에 맡기고 있다. 즉,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604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한 ‘야곱’은 천사가 더 강한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천사가 야곱과 싸운 후에 다리를 절었을 거라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이다.


p612 마음의 역동성 밑바닥에 양극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넒은 의미의 대극문제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을 모두 포괄하는 심리학적인 토론에서 다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들은 당연히 전문분야의 독자적인 특징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심리적인 문제제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여기서는 더 이상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진리의 관점에서 고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학적 근거와 의미에서 고찰되는 것이다.


p613 정신을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양극성이 진술의 상대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p616 원형은 단순히 비활동적인 형태가 아니라 특수한 에너지를 갖추고 있으므로 그와 같은 진술의 동인으로 간주될 수 있고 그 진술의 주체로도 이해될 수 있다. 개인적인 인간이 그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이 그 개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p617 원형적 진술들은 본능의 전제조건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 진술들은 이성적으로 논증된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반론으로 제거될 수도 없다. 그것들은 예전부터 세계상의 일부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세계상이란 레비 부륄이 절절하게 명명한 대로 ‘집단표상’인 것이다. 확실히 자아와 그의 의지가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아가 하고자 하는 것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방식으로, 원형적 과정을 실제적으로 고려하면 종교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 종교가 심리학적인 관찰방식을 감당하는 한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p620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주 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제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따옴표 속에 넣은 것은 그 말이 단지 열망, 선호, 총애, 소원 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고 개체보다 우월한 전체, 하나인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는 전체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는 찬성하거나 분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는 그 속에 갇혀 있고 에워싸여 있다. 언제나 그는 거기에 좌우되며 그것에 기인하고 있다.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p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p626 창피스럽게도 / 어떤 힘이 우리 심장을 앗아간다. / 천상에 있는 모든 것은 제물을 요구하므로. /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 좋은 일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 - 횔덜린


p627 정말이지 나는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창피스럽게도 어떤 힘이 우리 심장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순간이다. 나 자신이 희생 제물이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데몬이 사람이 빠져나가도록 해주면서 그와 함께 복된 모순을 가져다준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불성실’과는 아주 명백하게 대극을 이루는, 예기치 못할 정도의 성실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p629~630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운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만약 무의미성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면, 더 높은 정신발달 과정에서는 인생의 의미충족성이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쪽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p630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편집자의 말


p633 나에 관한 책은 항상 일종의 숙명적인 사건이었다. 거기에는 무언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나 자신으로 하여금 미리 어떻게 쓰도록 한다든지 미리 계획을 세우도록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자서전도 지금 벌써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하나의 필수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을 하루라도 중단하면 그와 동시에 불쾌한 신체적 증상이 따라온다. 그러나 내가 그 작업을 하면 금방 그 증상은 사라지고 머리가 아주 맑아진다.


p635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수(精髓)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636 항상 그랬듯이 내 인생에서 모든 외적인 것은 우연한 것이고, 오직 내적인 것만이 실체성이 있으며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숙명적이네. 그 결과 외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들은 모두 희미해졌네. 아마도 ‘외적인’ 경험들은 한 번도 실재가 된 적이 없거나, 아니면 단지 나의 내적 발달단계와 일치할 때만 실제가 되었을 것일세. 내 존재의 이러한 ‘외적인’ 발현들 중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나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네. 그것은 내가 모든 정력을 기울여 그러한 일들에 참여했기 때문인 듯이 여겨지기도 하네.


p643 ‘자서전’은 내가 연구하고 노력하여 얻은 빛에 비추어 살펴본 나의 생애입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상을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나의 생애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글로 써온 내용의 정수이며 그 반대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아이(i)의 윗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후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 ‘기억, 꿈, 사상’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옮긴이 서문-자서전 문학의 백미

 

일생을 사로잡은 꿈-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너는 누구냐?

자연과 사원

두 인격의 어머니

악의 기원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아름다운 시간들-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꿈의 분석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필레몬과의 대화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카르마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융합의 신비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단일성과 무한성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편집자의 말-A. 야페

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 개념 및 용어

 

 

이 책은 자서전이기에 융의 생애가 담겨 있다. 융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대기적 순서로 나열하여 그의 생애와 순간들을 담고 있다. 다만 그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이자 비서에 의해 집필되고 정리된 것이다.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기 때문에 융 자신의 집필로 이루어진 저서라고 강조하고 있다.

 책은 융의 유년기부터 말년까지를 회고하는, 연대기적 흐름으로 서술되고 있다. 다만 그 개별적인 내용들은 시간적인 흐름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떤 특정한 일련의 사건이나 체험에 대한 융의 내적 체험들을 중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내적체험을 중심으로 서술하다 보니 이것은 그것을 겪었던 당시의 느낌과 생각에서 변화된 생각,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이후의 일들이 얽혀서 기술되는 형태이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대체로 비슷한 형태로 글이 전개가 되고 있다. 그가 어렸을 적 혹은 당 시기에 맞닥뜨렸던 내적체험에 대한 기억과 분석. 어릴 적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그 장면에 대한 끊임없는 해석을 시도하는 그의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무엇에나 의미를 붙이고 설명하려는 것은 역시 그의 표현대로 자기실현의 과정이었을 터, 그 무수한 자기실현의 과정들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사건과 마찬가지로 그의 꿈이나 맞닥뜨린 체험의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그에 대한 해석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도 그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 보완점


1) 객관적 ‘사건’이 아닌 내적 체험의 구현


 이 책은 융의 제자이자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이 82세가 된 1975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를 엮은 것이다. 이른바 자서전이다. 특히,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기 때문에 융 자신의 집필로 이루어진 저서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서전이기에 융의 생애가 담겨 있다. 융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대기적 순서로 나열하여 그의 생애와 순간들을 담고 있다. 처음에 융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출간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은 후 출간 조건으로 동의했다 한다. 이미 자신의 할 이야기들은 충분히 다양한 논문과 저서를 통해서 했고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꺼려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그의 이전의 무의식의 이야기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을까. 외적 사건들보다는 내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 것은 그래도 ‘외적 사건’들을 말하지 않기 위함이었을까. 야페의 입으로 전한 융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융은 스스로도 객관적인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객관적 형태의 자서전 출간은 거부했던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만의 특성을 살린 자서전을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 '기억, 꿈, 사상'처럼 기억과 꿈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단지 관찰 대상이 융 자신의 내밀한 것이었다는 특징만 있을 뿐 우리가 자서전이라는 데서 기대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기대하지 못한다. 어쨌든, 자서전이라는 것이 생의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은 그의 저서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의 생각과 경험과 그것에 심층으로 들어간 이야기들은 이미, 보아 왔는데, 알고 있는데란 생각을 하는 것은 왜인지. 좀더 가십적인 이야기거리를 찾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무의식에 대한 해석도 해석이지만 그냥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찾아낸 것은 왜 슈필라인의 이야기는 없는가였다. 한 개인의 자서전이라기보다 분석심리에 관한 또 하나의 사례가 들어간 논문이라고 해야 할까.

 융 자신 외적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없고 경험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그러한 별로 없는 외적 사건을 겪을 때의 내적인 체험과 의식이 궁금하게 와 닿는다.


2) 기억을 아우르는 힘


 아리송. 내가 남의 꿈 이야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듣고 있어야 하는가. 그의 생은 온통 꿈의 역사다. 인생의 결정도 꿈과 함께 하고 인생의 고난도 꿈과 함께 한다. 아주 어린 시절의 꿈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살아있는 나날 동안 반복적으로 꿈을 의식하고 분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꿈에 대한 오랜 시간이 지나서의 해석은 객관성을 상실한다. 하지만 사실, 객관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자신이 꾼 꿈에 대하여 느낀 감정을 ‘객관적’이지 않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융 자신이 자신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의 꿈 이야기는 그런 꿈을 꾼 것이 사실인지 조차도 의심스럽게 만들 요지가 다분하지만, 융에게 거짓말쟁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융이라는 ‘객관적인 존재’의 힘으로 이루어진 성과다. 즉 기억과 꿈을 이야기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융이라는 프로필이 그의 거짓말같은 꿈 이야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학술적인 느낌을 갖고 또한 상당부분 학술적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일 것이라 본다. 결국 융은 ‘객관적 일 수 없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학문적인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결국 나름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융은 끝까지 자신의 꿈 이야기를 주관적 형태로 남기지 않고 ‘객관화’ 하도록 이끌었다.


3)  융이 작성하지 않은 소제목


 각 장의 제목 이외 소제목은 원서에는 없다 한다.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임의로 구분한 것이라 한다. 없어도 무방했단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제목 구분을 저자가 한 것인 줄 알고 더 의미있게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뭔가 주제어를 잘못 뽑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융의 강조점이 이것이었나, 생각하며 보게 되었다. 제목은 각 단락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간과한 것이  제목을 융이 달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비로서 두번읽기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고 첫번째에서 맘에 들지 않았던 소제목의 의문이 풀렸다. 번역작에서는 흔히 가독성을 위해 이러한 장의 구분과 제목입히기를 시도한다. 나는, 이러한 방법에 대해 부정적이다. 번역하여, 번역자가 따로 주석을 붙이고 해석하는 책이 아니라면 나는 '원문'에 충실한 책을 원한다. 바란다.

 섵부른 구분이 지나치게 친절한(?), 단순한 번역자와 출판사의 의도가 책을 통해 저자가 이끌어온 흐름을 방해한다. 내면체험과 의식의 흐름으로 일관하는 융의 책에 구분을 통해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 책을 읽는데 편했을까? 나는 중간중간 들어찬 제목으로 인해 흐름이 방해받았다. 제목에 깔린 의도를 생각하느라 그랬다. 사실 제목이란 글의 의미를 함축하고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아닌가. 적절하지 않는 제목을 통해 저자의 의도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면 이것은 지양해야 할 점이다.

 더불어 생각한 것이 글을 단락으로 끊어서 작성하기와 길게 나열하기에 대한 생각이다. 융처럼 큰 장만을 구분하고 그 장의 내용은 구분없이 작성하는 방법, 역자가 행한 것처럼 가독성을 위해 소제목을 통애 내용을 끊어가는 글쓰기의 방식은 어떠한 주제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서 쓰는 소위 교재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체계적으로 흐른다. 늘 1장, 1. 1) ....이런 형태로 도식화환다. 이것은 논문 형식으로부터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논문이나 보고서는 도식화된 형태를 요구하고 그것이 일견 명확성을 보여준다.보기에 편하다. 그러나 딱딱하다. 나 교재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개념의 명확성을 익혔다는 생각, 무언가에 대한 짜깁기와 요약이란 생각만이 강하다.

 반면 서양의 교재들은 다르다. 도식화보다는 소제목을 어느 정도 단 전개로 흐른다. 수렴이 아니라 확장이다. 생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본 교재들은 그랬다. 목적에 따라 글쓰기의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을 구현해내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글의 맛이, 책의 맛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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