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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9일 10시 3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karl gʊstaf jʊŋ]

  1875 7 26, 카를 구스타프 융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과와 문과를 둘 다 매우 좋아하던 그는 커서 진로를 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몇 년 간 자연과학부를 전전하던 그는 바젤 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 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 자주 금기 시 되고는 하였다. 그는 특정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큰 줄기를 만들기도 했다. 프로이트의 수제자라 불릴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프로이트도 융을 한 때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암시를 자주 주었지만, 결국엔 이를 거절했다. 프로이트와는 도저히 합쳐질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리비도라는 정신적 에너지의 현현으로 인간이 다양한 욕구를 갖게 된다고 생각했던 융으로서는 성욕만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인간의 정신을 너무 기계적으로 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교리화 하겠다고 융에게 말하면서 둘의 관계는 사실상 틀어지고 말았다. 융으로서는 프로이트도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으나, 프로이트가 자신의 사적인 생활과 생각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해 둘의 관계는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융의 사상은 다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로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최초로 생각하였고, 이 무의식은 개인의 것뿐 아니라 최초의 인류로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다.

 

두 번째로 인간의 영혼(정신)이란 각각 대극, 대립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요소들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는 이야기이다. 건전한 정신이란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의 영혼이라는 말. 또한 집단무의식, 콤플렉스,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등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지금이야 심리학이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심리치료의 원천과 효용을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처음 심리학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제대로 된 바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융의 학문적 성과가 심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바탕이 없는 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된 인식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큰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악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신경증 환자가 그 나름의 법칙을 갖고 있다는 통찰을 입증하기 위해, 융 자신이 치료경험이나 당금의 심리학에서 관계없는 신화, 종교, 연금술, 신비주의 등 여러 분야를 끌고 와서 이론을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의 여지를 보인다는 주장이 있다. 사생활이 다소 문란하고, 약물에도 손을 댔던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해석하자면, 그는 자기 자신을 자기 이론의 최초의, 그리고 가장 오랜 피험자로 실험했으며, 자신의 꿈에 나타난 상징들을 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신비주의 이론들을 끌어들였다.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역사라면 무엇이든 재료로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융은 동양사상에 대응하는 서구사상의 원류로 연금술을 재발견하였다. 연금술을 물질의 변화가 아닌 영혼의 연성으로 해석하였으며, 상징들이 가진 의미를 추적하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상징들에 대한 해석은 꿈이나 환자에게서 채집할 수 있는 인간 무의식에서 나타는 상징들과 연결되어 사례 해석의 뒷받침이 되었다.

프로이트와의 관계는 (교류를 할 당시에 나이 차이가 꽤 났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친했었다. 같이 13시간이나 대화를 나누었고 편지도 자주 했다고 한다. 미국 여행도 같이 갔었다. 하지만 미국 여행 이후에 결국 견해 차이로 결별하게 되었다. 이후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부정한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이론을 자신의 학파의 핵심 이론으로 지켜야 한다 했으나, 융은 아니라고 보았고 결국 견해 차이로 결별. 융만이 아니라 프로이트 산하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많이 갈라섰다.

 

그의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은 현대 철학이나 (문화)인류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의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쓰인 것은 아니며, 같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신화, 설화, 상징 등의 내포된 의미를 분석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조지프 캠벨, 레비스트로스 등에 영향을 미쳤다.

 

중년 이후 자신을 위한 집을 스스로 짓기 시작했다. 조금씩 지어가며 마음 가는 대로 덧붙이고 하는 공사여서, 깔끔하지는 않으나 완결은 지은 듯 하다. 내부는 스스로 그린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다 하며,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말년에는 언동이 지리멸렬해진 탓에 정신분열증을 앓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이 있는데 검증된 바는 없기 때문에 그대로 믿을 만한 사항은 아니다. 83세 당시 특집으로 기획된 BBC 인터뷰에 정정한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있다. 인터뷰 내용은 결코 정신분열증인 사람이 말할 수 없는 통찰력 있는 내용이다.

 

한국 분석심리학의 선구자인 이부영 교수는 아쉽게도 근소한 차이로 융 본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당시 장학생 신분으로 유학 중이던 이부영 교수는 우연에 가까운 이유로 분석심리학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도착 당시 융 본인은 몇 개월 전에 사망. 따라서 지도교수는 마리아 폰 프란츠가 되었다.

 

 

 2. 가슴을 무질러 들어오는 이야기

9. 자기실현(Selfstverwirklichung)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 나에게 말하고 있는 그 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나는 까닭없이 불안해지기도 하고, 아무 이유없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나는 제대로 잘 살고 있는가

10. 카를 융은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 (신과 인간)이라고 규정했다. 섣불리 신에게 접근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 , 위대한 위험

인간, 위대한 위험. 이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 신에게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로서 인간 스스로가 위대한 위험임을 내제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소폭탄 같은 것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12.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나의옛이야기, ‘나의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 나의 진실인가. 나로서 진정을 담고 있는가? 나의 자서전은 많은 수정을 전제로 쓰여질 것 같다. 나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적절히 사실을 숨겨야 할 필요도 있을 터이다.

12. 삶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 플롯의 기본처럼 기승전결이 딱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쾌하지 않다. 그러나 살아나가는 당사자로서는 그런 자신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체험해나가는 수밖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14. 내적 사건들

>> 외적 사건보다도 내적 사건. , 자신의 내면에 어떤 돌을 던졌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이라고 자각한 의식이 무의식과의 충돌로 어떻게 변화해갔는지가 중요하다. 심적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제멋대로인 통에 휩쓸리기도 한다.

>> 심적 과정 = 내적 사건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50. “이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게 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곤했다. ‘그렇긴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신비로운 다른 무언가가 있을거야.’

>> 나는 이런 내적 목소리를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나는 흔히 알려진 것의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찾는데 오랜 시간 골몰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51.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고대 제의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는 것에서 융은 최초의 착상을 해냈다. 아주 깊은, 나만의 비밀. 그러나 이것으로는 오랫동안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 몸이 자라면 더 큰옷을 입어야 하듯이 생각이 자라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키던 비밀이 신비로움을 잃어버리면 그것으로는 자신을 붙들어놓을 수 없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이불킥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숙고라고 생각된다. 한참 지나서야 억울했던 지난 사건에 적절한 대처 말이 생각나는 것은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게다가 내가 말하고 말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사건은 내 안에서 정리가 된 것이다.

58. 손은 잘 씼었니? 운운하는 말들을 길거리 사람들이 듣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굴욕으로 느껴졌다. 자애심과 허영심에서 될 수 있는 한 흠잡을 데 없어 보이기 위해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나의 자만심을 뒤이은 열등감이 세상사람들 앞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부당한 일로 여겨졌다.

>> 나를 지적하면 울컥하는 감정이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비웃음 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

 

59. 사태가 아주 나빠질 때는 다락방에 있는 나의 은밀한 보물을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되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를테면 내가 쓸쓸할 때도 나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비밀, 즉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인형과 돌을 간직하고 있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나와 가까운 사람 앞에서 그 비밀이 드러나고 내 삶이 이전과 같아지지 않는 상상을 나는 자주 하곤 했다. 우연한 커밍아웃으로 나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나는 이상하지만 짜릿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상상속에서의 나는 늘 홀연하게 내가 있던 곳을 등지고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갔다. 그러나 이것이 늘 단지 상상에 그치고 말았던 것은 현실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나의 근원을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65.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동시에 다니지 않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묘사를 찾아냈다. 보기 좋게 정돈된 것들을 편리하게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나를 서서히 질식사시켜버릴 것이 분명하다.

67.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 사실 정말 다른 사람의 평가 같은 것은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다. 정말 쿨하게. 그런데 가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취미에 유혹을 받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이 때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 이 현장 자체가 보존될거고, 그럼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활을 하고 살았는지 낱낱이 알려지게 될텐데. 그랬을 때의 불명예를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사실 나 자신 조차도 내가 이런 행위를 하는 것에 엄청나게 쿨하지는 못한거 아닌가?

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 최근에 한 아이를 두고, 누군가가 청소년 우울증이라고 진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를 들었을 때, 나는 꽤 오래 전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때는 누구도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떻게 하면 사라지는지 알고 있다. 내가 나를 실망시키고 있다는 자각.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나를 겨누고 있는 최대의 적이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상대편에게 고삐를 쥐어주면 안된다. 나는 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아이를 상당히 주눅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70. 그러나 동시에 이런 뚱뚱하고 무식한 멍청이가 감히 를 모욕했다는 사실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혔다. 이 나는 단지 성장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며, 권위자요, 직위와 위엄을 갖춘 사람이며, 나이든 남자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71. 그 마차는 마치 내가 직접 타고 다녔던 것과 똑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내가 그 것을 다시 알아보는 것 같았다!

72. 나는 두 시대에 살고 있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 이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기묘한 동질감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를 융과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단지 스스로에 대해 과장해서 생각한다는 느낌이었으나, 융은 그것을 내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냈다. 자신의 기본축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마음 속에 나 이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은 접근인 것 같다.

75. 내가 알지 못하는 금지된 생각이 자꾸만 밀려들어오려고 해서,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다.

>> 이유를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의에 의해 종교를 가졌던 사람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흔히 일어나는 내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을 숙명이었다면? 신이 그것을 숨기고 있었고 종국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선악과를 아담에게 건넨 하와도 그다지 미안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저 그녀는 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대리자였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타락한 것이 우리를 결국 구원하게 된다는 것도 말이 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벼랑에 몰려있는 사람만이 자기라는 지하실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헝클어져있는 온갖 해묵은 것들을 죄다 끄집어내서 다시 치유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78.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 였다.

>> 필연적으로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78. 전통적인 도덕에 의하면 죄는 피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엇다. … 이제는 그런 식으로 계속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죄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책임감이 들고, 전통적인 입장만 고수하는 종교에서는 아무런 위안을 받지 못한 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종교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이 없다는 것. 직선적인 일신론의 맨 마지막 벼랑 끝에서 갈 곳이 없다는 것에서 절망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모처럼 나선 모험의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든지, 아예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80.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 그는 전통적인 교회에 작별을 고했다.

81.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 그는 벼랑에서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죄를 짓지 않는 영역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기 위한 안간힘이 결국 그안의 인간적인 힘을 못쓰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82. 그 타락한 자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소 만족감을 느꼈다.

82. 내가 착한 아이라고?

>> 타락한 정신만이 우리를 구해준다. 적극적으로 죄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신이 받은 것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예민한 반성이 결국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82. 그 타락한 자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소 만족감을 느꼈다.

82. 내가 착한 아이라고?

>> 타락한 정신만이 우리를 구해준다. 적극적으로 죄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자신이 받은 것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예민한 반성이 결국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83. 나는 파문되었거나 선택되었다는 느낌, 저주받았거나 축복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신이라는 대상을 좀더 세계의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존재로 이해하게 되어서야 그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83.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외로움에 대하여. 말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비밀이라는 것이다. 비밀을 가진 상태는 위태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풀 길이 없다.

85. 돌이 온갖 의혹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돌에게 불확실한 것은 없다.
자기를 알려고 하는 욕구가 없다.
돌은 영원해서 수천 년을 산다.
나는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이며,
급히 타올랐다 꺼지는 불꽃 같은 감정에 불과하다.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다.

>> 불확실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알려고 하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해서 수천 년을 산다. 알지 못해도 영원할 것이다. 알고 모름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영원하지 않다. 돌에 비하면 지나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수십 년만 지나면 돌 위에 앉아있던 나는 사라진다. 그래서 초조하다.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한다는 이 불편한 감각을 가지고 끝난다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난 알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그러나 늘 불확실하다. 이것인가 싶다가도 곧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하고 만다. 돌 위에 앉아 돌의 영원함에 대해 생각한다. 영원한 존재와 함께 시간을 보내보면 불꽃 같은 초조함이 잦아든다. 영원함이 흐르는 시간에 젖어 든다.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하면 닿을 수 없고, 흐름에 맡기면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다. 내 안의 다른 존재에도 영원한 것이 있다.  

>> 내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자각.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내 것인가? 나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나와는 별개의 것인가? 무의식도 결국 나라고 생각해왔는데, 융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의 무의식과 다른 사람의 무의식 중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 일부가 그 공통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지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모든 인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공통적인 것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혹시 그(혹은 그녀)가 나를 만든 걸까?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씨앗은 무의식에 심어져 있어 내가 자라면서 겪는 경험을 통해 서서히 자란다고 알고 있는데, 그 시작점이 되는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든 존재였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또 궁금한 게 생긴다. 우리는 자기가 한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무의식이 내가 아니고, 내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그 존재가 내 몸을 가지고 벌인 일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87.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 적절한 체험. 내가 쓰이기로 예정되어 있던 올바른 체험만이 나를 제대로 움직이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게 어느 구석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찾을 때까지 계속 방황해야 하는 모양이다.

88. 사실상 나는 언제나 양심의 가책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적인 잘못과 잠재적인 잘못 그 둘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비난들에 대해 특별히 예민했다. 그 비난들이 모두 어느 정도는 급소를 찔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 아까 생긴 두 번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융이 스스로 내리고 있었다. 전혀 다른 존재가 내 안에 들어있다고 해서, 그게 뭐 막 갑자기 충동적으로 살인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무의식은 어쨌든 나라고 하는 자각, 즉 의식에 비해 핸디캡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가 동기가 되어 움직일 수는 없다. 그저 암시만 내리고 의식을 교묘하게 바꿔놓아 버리는 것일 뿐이다.

>> 융이 말하는 잠재적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나의 행동을 통해 나타난 것은 그 동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가리지 않고 나의 것이라는 태도를 수반한다.

 

90. 여기에 그다른 인물이 살고 있었는데

91. 내적 인간. 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 그것이 나이면서도 나와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또한 나와 다르면서도 결국 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91. 나는 체험을 통해, 은총은 오직 하느님의 의지를 철저히 실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신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생기와 체험에 관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머리 이외의 감각을 사용해 받아들여보아야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 감각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체험이 발생한다. 결국 현실이라는 곳에서부터 모든 형이상학적인 것이 생기를 얻는다.

95. 이런 생각들과 이미지들을 고안해내는 주체가 나 자신의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최악의 것들은 나의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의 에너지가 물리적 공격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침략의 구체적인 양상을 꿈을 통해서 그려볼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귀신이라든지, 악의를 가진 영적 에너지라든지 하는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96.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

>> 이 감각이 바로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으로써만 믿을만해지는 것이 신앙이다.

97.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생각들에 빠졌다. 그러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았다.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 잘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이러고 사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뭐 대단한걸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때 가지고 있던 상상친구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르테미스 여신, 혹은 아테나 여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얀 머리카락과 날개로 장식된 투구와 은색으로 빛나는 갑옷, 여신과 같은 길고 하얀 천. 그녀는 어쨌든 어린아이의 친구였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갑옷은 벗어놓긴 했지만, 나타날 때는 늘 정식으로 복장을 갖춰입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아파트 옆동네 잔디가 깔린 낮은 언덕에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어떤 존재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좀더 나와 닮은 친구를 생각해낼수도 있었을텐데그러지 않았던게 신기하다.

101. 나 또한 내 안에서 이러한 고태적인 성질의 어떤 요소를 인식한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항상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닌 재능을 부여한다. …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 직관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것은 처음 본다. 직관을 잘 믿지 않는 것이 직관을 약하게 하는 유일한 약점이라, 그것을 그다지 발달시키지는 못했다.

102. 그가 내면의 눈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 102. 2012 6 19일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신청했는데, 정해진 날 다른 일정이 있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의견을 번복하고 참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아빠 노트)

104. 사람들은 삼위일체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 말할 수 없다. 말해줘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09.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 내 안에 들어있는 또다른 인격, 또다른 존재. 세계 전체에 좀 더 가까운, 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존재가 들어있다. 모든 인간이라면 그가 깃들어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위대한 위험이다.

111. 바쁘다로는 불충분하다. 개미와 벌도 바쁘다. 무엇 때문에 바쁜지가 중요하다. (D. 소로우)

111. 처음에는 전통적인 견해만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찾고 있는 것, 다시 말해 독자적으로 깊이 생각하여 쓴 저자는 보이지 않았다.

114. 그와 같이 행동하는 인간적인 인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 비전 = 북극성 = 내면의 나침반 = 가치관 (지도가 없는 미래의 독법)

118.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파우스트)

>> 악의 손아귀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방아쇠와 같다.

121. 대성당과 관련된 저 경악스러운 일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그것은 나에게 밀려온 것이었고, 그것을 생각하도록 나는 아주 잔혹하게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런 후에 형언할 수 없는 은총을 받았다.

126. 너는 이런 작문을 지금까지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 잘 하고 싶은 것을 잘 하게 만드는 것도, 잘 못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에는 내 안의 제 2으 인격이 협조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간 개인으로서는 융이 제 2의 인격이라고 부른 것을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그저 주어졌을 때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잘 쓰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는 수밖에 없다. 가끔 영감이 오기도 하고 하니까. 그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어야 하니까. 함께 일할 확률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128. 나 자신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의미심장한 느낌이 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닿는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 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융의 고백으로 보아, 그도 제 1의 인격과 제 2의 인격을 분리하게 된 것은 상당히 나중의 일인 것 같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돌이켜보니, 전혀 나와 공통점이 없는 어떤 신성한 힘이 가까운 곳에서 내가 알아채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기꺼이 힘을 빌려 주려고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들지 않았다. 모든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신의 세계에 속했다. 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 어떤 것이든 한 면만 봐서는 진짜 의미를 알 수 없다. 신에 대해서 좀더 넓은 범위의 것으로 생각해야지, 생각 속에 갇힌 신은 옭아맬 뿐이다.

151. (성자)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장면 또한 그렇다. 그 사람의 멋있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약 그런 모습만 발견했다면 오히려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남편이나 아버지로 여기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 틈으로부터 시작된다.

151.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에는 외로움 속에 머물러야 한다. 누구에게 물어본들 답을 구할 수 없고, 도리어 사이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물리적 은둔뿐 아니라 시간적 은둔을 통해 자신을 도모할 수도 있다.

155. 나는 어른이 되어 내 인생을 스스로 꾸려가게 될 것이다.

>>얼마나 멋지고 든든한 일이냐!

171. 우리는 단지 앞으로 돌진함으로써 그것(과거)으로부터 잠깐 동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 빠르게 과거로 흘러가버리는 현실들을 붙잡기 위한 유일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173.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 한 개인이나 가족 보다는 좀 더 큰 물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175.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2의 인격 = 내적인간 = No. 2

180. 지극히 이성적인 논의가 어떻게 그와 같은 정서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족 간의 Discussion은 항상 감정이 앞서게 된다. 도무지 종잡을 수도 없이 감정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버린다. 어지간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피하는 거이 나을 정도다.

185. 이렇게도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버리다니.

>> 좋았던 순간들만 빨리간다고 생각했다. 곧 모든 것들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나만 뒤쳐진다.

195. 나는 세계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느낌이었다. 나에게 불같이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질없는 것이며, 심지어 불안을 자아내는 원인이 되기까지 했다.

>> 내가 원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일일 때 나는 그것을 계속해야 할까, 그만두어야 할까?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면 당분간 해보는데 만족해선 안 된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고는, 온마음으로 운명에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중대한 일을 준비도 없이 갑자기 시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조금씩 시작해서 점점 넓혀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현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적대적인 땅에서는 꿈이 뿌리내리기 어렵다. 꿈의 시작은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이상과 현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있길 바란다.

200. 우스운 비극처럼 니체 자신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 과장된 문체. 도가 지나친 우위. 환희의 송가.

 

204. 그런데 여름방학 동안 나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나는 내 공부방에 앉아 교과서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옆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그 방에서 어머니가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 방은 호두나무로 만든 둥근 식탁이 놓인 우리집 식당이었다. 그 식탁은 친할머니가 혼수로 가져온 것인데 그 당시 이미 70년이나 되어 낡아 있었다. 어머니는 식탁에서 1미터가량 떨어진 창가에 앉아 있었다. 누이동생은 학교에 갔고 가정부는 부엌에 있었다.

그때 갑자기 권총이 발사된 듯 폭음이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폭음이 들려온 옆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머니는 뜨개질감을 떨어뜨린 채 넋을 잃고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 무슨 일이야? 바로 내 옆에서 소리가 났는데.” 어머니가 말을 더듬으며 식탁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식탁판이 한가운데를 지나서까지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데는 접합한 부분도 아니고 완전 통나무판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 왜 이렇게 된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현실에 침범한 꿈이 되다.

210. “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몇 줄 더 나가자 저자는 정신병을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꼭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을 발견한 순간. 인격의 병이라는 표현을 한참을 생각해보니, 융의 역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11.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 본인에게만 맞는 곳이 있을 것이다. 예민한 감각으로 자신을 따라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약한 솜씨로 들이대보아야 다시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11. 통합된 이중성

217.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 전반적인 것에 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나고나서야 그 사람은 어떠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61.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 6 18일 강신부님은 내가 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걱정말라 했다. 잘 될것될 것 했다. 느닷없음에 놀랐지만 위로가 되었다.

264.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상징의 삶과 체험으로만 풀려날 수 있다.

266. 치유에 효과적인 것은 독일수도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잘 생각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난 잘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270. 실제로 체험하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면했을 것이다.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 결국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그 불만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체험. 여행다운 여행, 만남다운 만남, 사랑다운 사랑, 삶다운 삶. 그런 두근거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지금의 내 삶은 전보다는 많이 가장자리에 서있지만, 과연 전존재를 걸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존재를 걸었나? 전부를 건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전존재를 걸었다는 문장을 쓸 때 어딘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것이 전부를 거는 것인가?

271.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 체험은 그릇에 담긴 스프 한 사발이다. 개념은 그 그릇에스프라는 이름을 쓴 종이 하나를 집어 넣은 것이다. 스프라는 이름이 곧 입속으로 들어가는 스프는 아니다.

272.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 본성에 대한 통찰

*프로이트와의 만남 - 나의 전존재는 진부한 생활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도 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전존재를 건다. 이것이 바로 모험이 아니면 무엇이랴?

>> 회사를 걸어야 하나? 내 책을 걸어야 하나? 가족을? 중학교 한문 시험 공부를 하면서 교실에난입한 한 무리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상상한 적이 있었다. ‘두보의 시를 한 수 제대로 칠판에 쓰지 못하면 이 교실의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그들은 말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그리고 나는 젖먹던 힘을 다해서 그 7언절구시를 써내려 갔다. 그런식으로 시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이게 전존재를 거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 것? 아직 내가 가진 것을 전부 걸만한 대상을 만나지 못했고, 걸만한 변변찮은 가진 것도 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 무엇을 하든 이것 하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면 어떨까? 나의 시간과 생각을 모두 이것 하나로 채우는 것이다. 더 알려고 노력하고 그 대상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276. 억압기제 - 환자는 어떤 자극어에 대해서는 연상어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거나 반응시간이 무척 길어지곤 했다.

278.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진실을 굳이 외면해버릴 필요는 없다. 개인적 양심에게 물어보라. 그래도 괜찮다고 말할만큼 무른 양심은 없다. 그저 그렇게 해버리고 싶은 자신의 욕망만 있을 뿐이다.

281. 교리 - 의심을 단번에 눌러버리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판단과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개인적인 권력충동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281. 과학적 진리는 얼마 동안만 만족스러운 가설이지 모든 시대에 걸친 교리는 아니었다.

>> 프로이트를 이야기한 여러가지 글들을 통해 그가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좀 섬뜩하다. 한 학문의 창시자도 결국에는 완벽할 수 없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단지, 뛰어난 사람들의 좋은 점만을 차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의 아우라에 휩쓸려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자주 범하는 오류이기에 나중에라도 이걸 보고 마음을 가라앉히길 바란다.

287.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감정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87. 신성한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287. 동양에서는니르드반드바(Nirdvandva: 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 현실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다. 돌아올 곳이 없는 정신은 방랑할 수밖에 없다.

295. 그러면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 좁은 사람 곁에는 머물기가 너무 힘들다. 자신에 대한 성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295. 그 꿈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어느 낯선 2층집에 있었다. 그것은 나의 집이었다. 나는 2층에 있었는데 그곳은 로코코양식의 훌륭한 고가구들이 갖추어진 일종의 거실이었다. 벽에는 값진 옛그림이 많이 걸려 있었다. 나는 이 집이 정말 내 집일까 의아해하면서도나쁘지는 않군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아래층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층계를 거쳐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더 오래된 온갖 가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이 집의 1층 이 부분은 15~16세기의 물건들로 꾸며져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가구들은 중세풍이었고 마룻바닥에는 빨간 벽돌이 깔려 있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편이었다.

나는이제부터 정말 집 전체를 둘러보아야겠군하며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다녀모았다. 그러다가 육중한 문과 마주쳐 그 문을 열었다. 그 뒤에서 지하실로 통하는 돌계단을 발견했다. 그 방은 아주 고풍스러워 보였다. 나는 벽을 조사하다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석재 사이에서 벽돌층을 발견했다. 그 벽돌들은 모르타르에 묻혀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자마자 벽이 로마시대 것임을 알았다.

이쯤 되자 나의 흥미는 더해갔다. 나는 마룻바닥을 더욱 면밀히 조사했다. 마룻바닥은 석판으로 되어 있었다. 그중 한 개의 석판에 고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 고리를 잡아당기자 석판이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 밑으로도 아래쪽으로 향하는 좁은 돌계단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또 그 돌계단을 내려가 바위를 뚫어 만든 나지막한 동굴로 들어섰다. 바닥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 먼지더미 속에 원시문화의 유물들처럼 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고 깨진 도자기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매우 오래된 것이 분명한, 반쯤 삭아버린 두개골 두 개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멋진 꿈이다. 신화와 집단무의식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좋다.

>>인간의 심층에 공통적인 유물이 남아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무척 놀랐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윗층의 내부는 융과 다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조선시대나 신라시대의 실내 풍경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299. 인간의 원시적인 마음은 동물의 혼의 활동과 가까이 접하고 있다.

300. 그 꿈은 개인정신의 밑바닥에 있는 선험적이고 집단적인 것에 대한 최초의 암시였다.

>> 위의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 마찬가지다.

302. 고대 신화학과 원시인의 심리학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

>> 전혀 별개의 장소, 별개의 개인, 별개의 문화인데도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랍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과도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사실은 모두 같은 정신적 유산의 자손들일 뿐이라니.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도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이 놀랍다. 노력해서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306. 나의 전존재는 진부한 생활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도 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마음을 탐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외에 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 적절한 시기에 내 안에서 보물 같은 것을 찾아내길 바랐는데,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매일매일 나에게 조금씩 실망하고 있음을 느낀다. 뭔가 더 열심히 읽어야 하나? 뭔가 더 열심히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나는 사회 집단적 segment를 따져보았을 때, 이제 막 사회에 적응해낸 3년차 여사원일 뿐이다. 이것만으로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그냥 그런 현실에 놓여있는 사람이 정말 많을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따로 공부한 것을 가지고 뭔가 색다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것인가? 혹은 내가 공부한 것들이 어떤 한가지를 향해 있는가? 다른 일반적인 내 또래 아이들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급작스럽게 융에 꽂혀서 나는 틈틈이 계속해서 융을 보완하고 있다. 밤을 새서 읽으면서 어떤 묘한 예감 같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혹은, 그가 마치 정신분석학을 발견해낸 것처럼 나도 무언가 찾아내는 순간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나라고 의식하고 있는 제1의 인격(융에 따르면) 내에서는 더 이상 찾아낼 만한 게 없다. 더 이상 내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도 없고. 표면적으로 관련 있어 보이는 것보다 뭔가 더 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필요하다.

308.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릴 수 없다.

>> 일단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바뀌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스타일이란 외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309. 대개 근친상간은 고도의 종교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것은 거의 모든 창조신화와 그외 수많은 신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326. 하지만 그랬다면 어쩔 수 없이 신경증에 걸렸을 것이고, 결국 무의식의 내용이 나를 파괴했을 것이다.

>> 신경증과 무의식의 관계를 단순하게 보기는 했지만, 크게 보았을 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 또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도 마음 속에 있다.

335.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자신의 삶에 대한 고유한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삶.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고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선동질 당해 부풀려진 희망과는 다르다. 다만 묵묵히 제 몫의 인생을 살다가 습관으로 배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찾는 것은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나에게 속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섬세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금방 찾아지지 않더라도 이것은 놓쳐서는 안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다.

 

335.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환상 속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내가 의식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들을 말했다.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라는 것을 정확히 지각했다.

336. 내가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것은 심지어 나에게 적대적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338. 그는 주장했다. “나는 신들이 황금과 보석 속에 숨겨놓은 바로 그것이다.”

>> 우리는 근거를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고 있다. 따라가다 만나는 것은 모든 외부에서부터 내면으로 들어오게 된다.

 

340. 내 안에 있는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인, 또는 원형적인 형상

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 칼럼이 잘 써지는 날이 있다. 의식이 고양되고, 나의 일부를 글 속에 녹여넣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럴 때 내 원형은 나를 두둔한다. 그럴 때 그는 조금 부풀어져있다. “잘했어! 혹시 넌 천재인지도 몰라. 정말 위대한 거장으로 클지도 몰라!” 반대로 아무리 쥐어짜도 글이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원형은 그 때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그는 절망한다. “그럼 그렇지. 이건 쓰레기야.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네가 써내는 것은 결국 어떤 것도 바꾸지 못 할거야. 심지어 너 조차도 네 글을 믿을 수가 없게 될거야.” 이럴 때면 정말 미칠 것 같다. 그런데 이 친구를 떼어낼수는 없다고 한다. 마음의 소리는 결국 자기의 생각을 계속 이야기할 거다. 다만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는 이제 알겠다. Keep going. 이것도 결국 지나가리라.

343.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345.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 형이상학적 존재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감각이다. 영혼과 육체 사이에는 어떤 계급도 없다. 그것은 평등하며, 그것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영혼은 육체로 만난 경험을 통해서만 고양될 수 있으며, 그렇게 형성된 영혼을 토대로 해야 건강한 삶이 탄생한다. 이것은 합이 잘 맞는 연인과 같다.

345. 그것은 정신병 환자를 치명적인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식 이미지의 세계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합리적인 우리 시대에 사라져버린 신화를 형성하는 환상의 모태이기도 하다. 신화적 환상은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금지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서 할수록 신화의 방대한 세상에 놀라게 된다. 과거의 어떤 사건, 어떤 관계, 어떤 마음 등을 명확하게 알게 해주는 작은 조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명은 놀랄만큼 발전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내면의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신화란 인류의 삶의 양식이다. 생명체의 삶은 여러가지 방식을 띄지만, 인류의 방식이 담겨있는 것이 바로 신화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이 원형으로부터 시작해 개별적인 삶 속을 걷고 있다.

 

345.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으로

>> 돌아올 곳이 있어준 덕분에 여행은 다소 낭만적이다. 떠날 곳이 있어준 덕분에 집은 푸근하고 따뜻하다. 대극은 서로의 빈 구멍을 메워줄 수 있다. 그것은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346.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 니체의 과잉생기에 정신을 빼앗기면, 그 찬란함의 바로 다음 순간에 힘 빠진 현실이 빛바랜다. 그러나 니체의 핵심이 체험사소한 것의 위대함을 본 가치 전도라고 생각해본다면, 그의 많은 부분의 묘기 뒤에 있는 니체의 스타일이 매우 현실 밀착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47.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350. 그 환상의 이미지 속에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과도 관계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내가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 나는 나에게 속할 뿐 아니라 보편적 인류에 속한다. 그러므로 공헌하라.

 

350.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체험은 생명력 없는 주관적 가설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352. 자신의 인식을 윤리적 의미로 바라보지 않는 자는 권력원리에 빠지게 된다.

353. 그러나 감정이 극에 달하게 되면 언제나 감정이 바뀌어 우주적인 고요가 뒤따랐다. 그 순간에는 온갖 것으로부터 내가 멀리 떠나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나를 흥분시킨 것은 이미 아득한 과거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 루쉰 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하듯이.”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걸음으로. , 유머를 잊지 말 것.

354. 나는 뼈저린 외로움을 느꼈다나는 단지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보았을 뿐이었다.

355. 어쨌든 현대예술은 무의식으로부터 예술을 창조해내려고 모색하고 있다.

>> 개성. 기타 어떤 것과도 차별화된 독자성의 발원지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어떻게 다를 것인가.의 핵심은 자신에 대한 깊은 침잠에 있다. 나의 문제의식, 나의 발견으로부터 나의 확장을 향해 가는 것의 정점에 있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367. 인류에게 크라터(Kratēr: 섞는 그릇), 즉 정신적 변환의 용기를 부여한 것은 바로 그 보다 높은 신이었다. …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368.)내가 잘 모르는 그 부속건물은 내 인격의 일부, 즉 나 자신의 한 측면이었다. 그것은 내게 속해 있으나 내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 의식 속의 자기라고 인식하는 실체가 흔들리는 경험은 내가 라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자각하게 해준다. 그것은 누구도 답해줄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알아낼 수 있지만 쉽게 잡을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나를 잃어버린다. 알고 있던 바닥의 근거가 사라져버리면 더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 아래의 시간을 견디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해야 우리는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

373. 그것들의 전형적인 성격에 대해 신화연구를 하면서 이미 이해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러한 이해가 이제 더욱 심화되었다.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용기를 가져라.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376. 나는 리비도를 물리적 에너지의 정신적인 유사물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적 에너지)

>> 정신이 에너지의 형태를 가진 것은 흥미로운 발상이다. 이것이 인간의 삶의 방식이라고까지 확장 가능하다. 인간의 한계는 육체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영혼을 무한히 확장하도록 상상해보아도 결국 육체, 현실에서 벗어나서는 지속하기 어렵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이야기되는 모든 철학은 허망한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신의 선물이다. 육체로서 우리의 정신은 윤기를 얻는다. 둘 사이에 위계질서는 없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할 뿐이다.  

382. 자주적인 삶의 방식과 정신적인 독립성을 빼앗긴 세계

>>대중화 = 자주적 삶의 방식과 정신적 독립성의 상실

402. 그 탑에서 내가 누린 휴식과 재생의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력했다. 그곳은 나에게 모성적인 장소 같은 의미가 있었다.

403. 사색하고 환상에 몰두하는 은신처

404. 처음부터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탑은 내가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405. 또 살아갈 제2의 인격이었다.

405. 모성적 무의식의 아들이다.

405. ‘태고는 필레몬의 형상을 취했고, 볼링겐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406. 여기 돌이 있네. 보잘것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409.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과 함께하는 삶이 전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무의식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다.

413. 나의 체험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그것은 고독현상으로, 외적인 공허와 정적을 사람들 무리의 이미지로 보상하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413. 우리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한다.

433.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교훈이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공간에서의 방향설정과 외부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인 충동과 격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성찰을 하지 않고 자아는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성찰을 하지 않고 자아는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 유럽인도 그들과 아주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약간 더 복잡한 셈이다. 아무튼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의지와 숙고된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강렬함이다.


434.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436. 격정적이고 기분대로 살아가며 생 그 자체에 한층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찰을 모르는 이러한 인간존재가 우리 안에 있는 저 역사적 충에 강력한 암시효과를 주었다.

437. 어린이답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훨씬 완벽한자기의 이미지. 즉 꾸밈없는 개성을 갖춘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437.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서 그 인격부분을 발견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438.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유럽인에게 인간적인 것은 무척 낯설다. 유럽인은 합리적인 특성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 인격 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 죽음이 축제일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가능했다. 실제로 장례식에서는 그런 인식을 세우기가 매우 고통스럽고 아프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슬퍼할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그것이 축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562.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 남이 주는 대답이 위험한 것은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과 그 대답으로는 영 시원찮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인가 싶다가도 저것인가 싶다. 그래, 난 누구인가? 그것은 한 번에 대답할 수 있는가

 

 

3. 내가 저자라면

제목이 절묘하다. 빠트린 것이 없으면서 간결하다. 과거로부터 흘러 들어와 쌓인 기억에서부터 출발해 꿈속에서 무의식과 만나게 되고, 그것을 거센 물줄기와 같은 사상으로 키워낸 융의 생애를 세 단어로 나타낸다.

죽기 몇 년 전에 전부 작성했다고 하기에는 시기별의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력이 놀랍다. 지난 일이란 아름답게 채색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서문에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굉장히 예리하고 섬세하게 모든 것을 배열했다. 파우스트에 관한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하고 해석해내는 것에서 저자의 내적 변화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한 명의 온전한 인간이 써내려 간 것이다. 의식 속에 있는 나와, 무의식에 있는 또 다른 내가 같이 써내려 갔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 담겨있다. 나는 그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지표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의 삶은 비록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그는 불안했을지라도-하나의 선을 그리며 굴러갔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전공을 선택해야 했던 순간도, 정신과를 선택한 순간도, 무의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해보겠다고 결정했던 순간도 모두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선택이었다. 그는 인간에게 자기만을 위한 컴컴한 숲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무도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211) 나는 이 담담함과 운명적인 힘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사랑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걷고 있는 길에는 아직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다.

독자를 움직이는 힘은 그의 체험에 대한 강조에서 온다.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꿈은 누구나 꾼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학문 체계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무언가의 방법을 통해서만 붙잡을 수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을 가지고 실험했다. 의식의 저변에 잠겨있는 무의식을 찾기 위해 그는 자칫 자신을 완전히 삼켜버릴 수도 있는 무의식을 알아채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온갖 환상과 미신을 다루는 유치한 쓰레기더미에서 가치 있는 것을 찾아냈다. 무용한 것들이 핵심적인 열쇠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 환상적인 변화는 독자를 감화시키고, 꿈을 기록하는 융만의 행위는 전염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 책이 읽을만한 가치를 얻게 된다.

신화가 사라진 현대에서 무의식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 한 인지될 수 없는 세계로 물러나 버렸다. 신화와 종교가 사라져 독자적인 삶의 방식과 독립적인 정신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인간은 본래적 위기에 처했다. 이 현대인의 무수한 정신적 위기를 재고해보건데, 무의식과의 화해와 무의식의 협력을 얻어내는 일은 결국 모든 인간이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일이다. 더욱이 스스로를 온전한 인간으로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다.

이 책은 기계적 독서로는 그 핵심을 잡을 수 없다. 무의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연구대상과 삶의 완전한 일치는 그 몰입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현실에 기반을 두어 건강함을 잃지 않으려 경계했다. 무의식을 자유롭게 풀어주면서 자신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무의식이 의식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둘 사이에 놓인 깊은 심연에 건실한 다리를 놓았다는 점에서 이 삶은 의미가 있다. 이 거리감을 독자의 삶에 가지고 들어오며 체험으로 일관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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