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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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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9일 11시 43분 등록

하루 8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사실 학교 다니는 것은 직장 다닐 때 만큼의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1초라도 빨리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화장실 갈 여유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수업을 듣고 가끔 적극적으로 나의 의견을 이야기 하면 된다. 그럼에도 매일 수업이 끝나면 지독한 허기가 몰려오면서 집에 뛰어 가버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 된다. 특히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을 많이 배운 날은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5일째  '이러면 안돼' 라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억지로 도서관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1-1 학기 시험 기간 내내 울고 불고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첫 학기를 보내면서 나는 새삼스레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성실함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30여년을 벼락치기로 일관하던 인생을 살아오던 나는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벼락치기로는 임시방편격인 결과물만 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 버릇을 쉬이 고치지 못했다. 결국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마감이 임박해서야 모든 것을 시작했었다. 쟁쟁한 사람들 곁에서 기가 죽어버린 나는 마음의 평온함이 중요하다며 집에 가서 공부를 해야지...라며 집에 일찍 달려오곤 했다. 그러나 집에 오면 나도 모르게 소파에 눕게 되고 인터넷 서핑을 하게 되었다. 한참을 웃고 즐기다 문득 시계를 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 되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다급하게 과제를, 퀴즈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예상과는 달리 늘 시간이 지체되고, 늦은 밤까지 붙잡고 있다 보면 피곤함이 느껴졌다. 마침내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나,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가' 라는 생각에 괴로운 날들이 반복되었다.


반면 나의 동기들은 새벽 일찍 학교로 향했고, 또 저녁 늦게까지 도서관을 지켰다. 그들은 그 날 배운 것들을 복습하고 또 다음 날 배울 것들을 예습한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따로 동영상 강의를 찾아, 혹은 관련 교과서를 찾아 읽기도 했다. 실제 도서관에 가서 본 학업의 열기는 소위 장난이 아니었다. 이해가 안가는 것들에 대해서 서로가 토론을 하고 또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책을 찬찬히 다 읽어보는 등 열정들이 대단해 보였다. 곁에서 지켜보니 항상 도서관을 지키던 사람들이 결국은 좋은 결과를 얻는 것 같았다.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하지 않는가. 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그동안 노력한 것 대비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이루며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에 내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내 자신이 사상누각임을 알고 있기에 그 동안 그렇게 불안했나 싶기도 하다.


 결국 첫 학기를 마치며 결과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성적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도서관을 지키는 동기들 처럼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열심히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의 힘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진 것이다. 컴컴한 밤,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걸어 내려오면서 느끼는 그 시원한 바람과 가벼운 마음도 매일 느껴보고 싶었다. 사실 예습 복습을 해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그것을 실천한 사람만이 달콤한 결과를 얻는 것이다. 그 사소한 진리를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 다시금 되새김질 하게 되었다. 연구원 과정을 하며 느꼈던 엉덩이의 힘, 그것이 바로 진리였던 것이다.


난중일기를 다시 읽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매일을 기록하는 성실함을 보였던 이순신 장군을 온전히 본받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의 일기는 단순히 사실과 짧은 감상이 대부분을 이루는 소박하고 담백한 구성이다. 안네의 일기처럼 나를 웃고 울리지도 않는다.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새서 읽고 싶은 형태도 아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 감동이 묻어난다. 그가 보낸 하루의 충실함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일기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그가 살아냈던 하루라는 시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또한 나 처럼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내가 백수됨 또한 그에게 큰 위기감과 부담으로 다가왔을 터였다. 나는 그에게 짐을 지워준 것이 미안하면서도, 그저 내가 느끼는 바를 이야기했다. 지금 나의 불안감이 많이 줄어든 이유는 아마 내가 할까 말까 하며 생각만 하던 일들을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생각만 하면 더욱 불안함이 증폭되는 것 같다고. 그냥 작은 일이라도 우선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그리고 나는 우선 도서관에 남아 몇 시간이라도 버텨보기로 했다고 말이다.  결국 우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같이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단지 씨리얼 한 그릇이라도 좋으니 대화를 하고 신문을 보며 여유로운 아침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매일 새벽부터 출근해있는 상사들을 보며 자신이 상대적으로 늦음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남편이기에 내일부터는 조금 더 신명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충실한 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작은 실천을 꾸준히 늘려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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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9 19:16:58 *.104.9.216
아침형인간은 내 숙원 사업이라오.
글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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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07:12:19 *.223.15.13
저지르기가 매력포인트인 녕이의 일상이 잘 녹아있어 좋아요^^
우린 어차피 마음에 품은 생각대로 살게 되어 있는데 우유부단은 불안의 씨앗이죠. 녕이의 결단과 실행력에 박수를!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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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00:27:58 *.222.10.47

난 녕이에게 제안할 것이 있어요. 이제 바보 멍청이 찌질이 코스프레는 하지 마세요. 그대는 정말 대단해요. 남들은 도서관에서 예습 복습 해가며 따낸 학점을 집에서 쇼파에 누워서 인터넷 서핑하며 따내잖아요. 그러니 더이상 그런 근면 코스프레는 하지 마세요. 대신 그런 대단한 자신을 즐기길 바래요. 혹사시키지 말고 그 시간을 더 즐기세요. 재료가 너무 익어도 음식이 식감도 좋지 않고 맛이 없잖아요. 생기 발랄한 녕이의 대단한 모습이 더 아름답고 멋져요. 하루 하루 즐기는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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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09:37:26 *.223.20.243
희동의 말에 대단히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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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09:38:52 *.223.20.243
녕이도 벼럭치기 선수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군....나이 드니 이제 그것도 안되더만.
주변을 보며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을듯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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