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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9일 11시 46분 등록

기억 꿈 사상

10기 김정은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 A. 아페 편집 / 조성기 옮김, 김영사

 

1. 저자에 대하여

 

묘하게 끌리는 사람,

 

융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융에게 묘하게 끌렸다. 생전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다고 하니, 그 여성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사람들이 융에게 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같다. 그는 죽음 앞에 처연해지는 한 명의 인간이면서도 또한 그에겐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그 만의 아우라가 있다. 융의 이야기를 내 스타일의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네 안에 우주 있다.”

 

융은 나에게, 내 안의 정신세계 속에 잠재해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신과 인간, 나와 우주 사이의 심원한 관계에 대해 알려 준다. 내 무의식이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일깨워 나와 함께 살아가라고 말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 (1875~1961)

의사, 심리학자

 

스위스의 케스빌에서 태어나 바젤 대학과 쮜리히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 의학, 고고학,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인간 정신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창조적 사상가이다. 융은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종족적인 경험에 의해서도 인격형성은 영향을 받으며,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이 결정된다는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또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잠재적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는 무의식의 영향을 밝혀내었다.

 

융은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이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생각과 관계가 있는 원시적 감정, 공포, 사고, 원시적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 즉 집단무의식을 밝혀내면서 그 이전까지 주목 받지 못했던 신화, 전설, , 환상 등은 어떤 기본적인 인간의 상황을 나타내는 원형이라는 개념을 밝혀내었다. 융의 이러한 생각은 심리학을 너머 예술과 과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수,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자기의 소리가자아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 등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어렵다. 내가 나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무의식 밑바닥 중심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인가?

 

10

나는 신을 압니다.

나는 신을 모릅니다. 하지만 신을 믿습니다.’ 융이 비판했던 융의 아버지를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신이라는 존재는 내가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수준이었다. 한 때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논리적으로 따져 보려고도 해봤지만 내 논리력의 한계인지 그것이 진리인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끝내 할 수 없었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기원전 인간의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얼마 전 열 살 딸과의 대화에서

- 피자는 2500년 전에도 있었대. 로마군인이 달구어진 방패에 밀가루반죽을 흘렸는데 거기다 대추야자 등을 올려 먹는 것이 너무 맛있어서 계속 해 먹다가 피자가 되었대.

- 그래?

- 엄마 2500년 전을 왜 기원전이라고 하는 거야? 기원이 뭐야?

- 기원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삼는 거야.

- 기원전이라면 예수님 탄생 전이라고? 예수님 탄생 전에 로마군인이 먼저 있었고, 피자도 만들어 먹었단 말이야?

 

12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인생이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13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내가 젊은 의대생이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이미 깊이 느꼈는데, 내가 그 시기 이전에 파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표현이 참 좋다. 융의 자서전인 기억 꿈 사상은 문체가 참 마음에 든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는 모두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데미안> 중에서)

 

14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사람들 역시 그 이름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운명의 두루마리에 기입되어 있는 경우에만 나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도록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그러한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동시에 일종의 기억 상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무의식과의 충돌, 그것이 기억으로 남은 것인가?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므로 외적인 사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동인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외부의 세계는 자극일 뿐, 나 자신이 될 수는 없다.

 

27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내 아니마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융이 만났던 이 소녀의 이름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내 생애 처음 만나는 칼. G. >을 통해 나는 그녀가 융의 사촌 여동생 헤리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헤리는 융의 사촌 여동생이자, 융의 어머니의 모습을 빼 닮은 소녀이다. 헤리는 결국 융을 사랑하게 되지만 융은 그녀의 격렬함을 하나의 화염으로 인식하여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여 결국은 피하고 만다. 융은 잔잔한 호수로 비유되는 평온한 여인 엠마를 선택하여 결혼하지만 평생에 걸쳐 헤리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

 

35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37

누가 나의 내부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의 정신이 이런 체험을 고안해냈을까? 얼마나 빼어난 통찰이 여기에 작용한 것일까?

 

어린아이에게 익숙한 천진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모든 멍텅구리는 뭔가 아주 거북스러운 것을 빨리 없애버리려 한다.

 

42

어머니가 나의 계시를 듣는다면 깜짝 놀라며 거부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처를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45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46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라고 말하며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47

내가 심취했던 유년시절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계속 굴러가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장소에서 억지로 몸을 돌려야만 했다.

 

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 바로 나! 행동하며 숙고하고, 숙고하며 행동하는 행동과 숙고가 동시에 될 수는 없을까?

 

53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요즘의 나, 외향적이고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 관계 속에서 내 삶의 자양분을 얻곤 했다. 하지만 요즈음, 점점 내향적으로 가고 있다. 혼자 있고 싶은 열망이 생기고 있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황홀감이다. 요즘 난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59

내가 쓸쓸할 때도 나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비밀, 즉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인형과 돌을 간직하고 있는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65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ENTJ 계획형 인간인 나는 무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의 삶 속의 여러 가지 변수들로 계획이 무의미하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이 찾아왔었다. 계획과 실행의 반복적인 무산. 내 기질에 반하는 이러한 상황들이 나를 힘들게 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계획하지 않을 것을 계획해 보았다. 그저 빈둥거리기, 방랑하기, 방황하기, 순간에 도취하기 등은 내가 요즘 즐기는 것들이다.

오히려 빈둥거리며 깨닫게 되는 것이 훨씬 많음을 느낀다. 어린 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저 빈둥거리기만 할 것이다.

 

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67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68

지금은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지금의 나! 옆으로 밀려나 있던 나를 나의 중심에 세워 두었다.

 

73

이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77

아담과 이브를 말로 꾀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이 그들보다 먼저 뱀을 창조했다.

사위일체론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혹시 뱀??

 

78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79

하느님의 의지란 무엇이며 하느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전에는 복종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야말로 이런 절망적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날 이렇게 만든 것도 당신이잖소!

 

80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루어 낼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순간마다, 내 귀에 들리는 듯한 목소리! 내 목소리인가. 당신의 목소리인가.

 

80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내가 인간으로 느끼기에 가장 두려운 순간, 나는 반대로 엄청난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내 노력에 상관없이 그 두려운 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두려운 순간이 지나고 안도감과 해방감이 찾아온 순간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81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 듯한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하느님은 종교적 전통으로는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도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은총을 가져다 준 것은 복종이었다.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겨주는 셈이 된다.

 

84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87

내 아래에서 나를 시샘하면서 따라잡으려고 기회를 노리는 학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누가 놀이까지도 경쟁적으로 하게 되면 나는 그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 후 나는 학급에서 2등에 머물렀는데 그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나도 경쟁이 싫다. 그래서 경쟁을 부추기는 등수가 싫다.

 

90

인간들은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걸치고 비열함과 어리석음, 허영심, 위선과 혐오스러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91

종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내적 인격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종교가 나의 제 2의 인격의 주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제 2의 인격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내 제 2의 인격도 외부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겠다.

 

92

하느님은 인간들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그렇게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말도록 금하고, 심지어 지옥불길의 영원한 저주로 벌을 주기까지 한다.

 

93

하느님은 자신의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의지를 무력한 인간들에게서 철저히 실현되도록 할 수 있는 존재다.

 

96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가?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 때 답을 준 자는 이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 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논쟁이 더 좋다. 공감하는 수준을 넘어선 격렬한 수준의 논쟁을 좋아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내 생각은 왜 다른지 밑바닥까지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대화의 취향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혼난 기억이 많다.

 

97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생각들에 빠졌다. 그러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았다.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 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116

하느님이 지선이라면 그가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이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왜 그런가?

나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한 번 읽어야 한다.”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나도 사춘기로 넘어서는 시점에서 파우스트를 처음 읽었다. 성당에 꼬박꼬박 나가던 어린 시절을 지나며, 성당 안과 성당 밖의 세상이 너무나 다른 것이 혼란스러움으로 다가오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세상은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그 무렵 나는 성당에 봉헌할 봉헌금을 성당 앞에서 구걸하는 노숙자에게 대신 바쳤다.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영혼을 도박에 거는 파우스트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른 면에서 파우스트에게 무지하게 끌렸다. 외부의 세계와 내 내부의 세계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 동안 선만 보고자 했던 내 시선은 선과 악을 동시에 보려는 쪽으로 기우는 최초의 시도를 열어준 책이 <파우스트>였다.

 

120

숲 속을 벌거벗고 방랑하던 원시인들까지도 그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신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기 위해틀어박혀 앉아 있는철학자들이 아니었다.

 

130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 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 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언어, 예리한 의식, 과학 들을 제외한 존재의 온갖 본질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나는 그 제외된 요소들을 인습대로 경탄해 마지않았지만, 인간들을 신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벗어나게 하여 동물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타락으로 이끌 가능성이 그 요소들에 있음을 발견했다. 동물들은 사랑스럽고 충직하며 변덕스럽지 않고 믿을 만하였으나, 인간들은 나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페인 사그라다 빠밀리아 성당을 보고 느낀 느낌

 

132

나는 철학사에 관한 작은 입문서를 읽었고, 그로 인해 이미 사색되었던 모든 사상에 대한 일종의 개관을 얻게 되었다. 만족스럽게도 나는 나의 많은 영감이 그 사상들과 역사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34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136

나는 확실히 붙임성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나도 가난했던 것이 내 삶에 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40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143

그러면 제 1의 인격과 직업선택에 대한 걱정들은 1890년대의 작은 삽화 정도로 여겨지면서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면 나는 일종의 환락 뒤의 뉘우침 같은 것을 느꼈다. , 즉 제1의 인격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며, 조만간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가져야만 했다.

 

144

나 자신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

 

166

나는 학우들이나 교사와 같은 유력한 윗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그들이 나에 대해 의심과 비난에 찬 의견을 내 놓을 것이기 때문에, 나의 꿈을 지원해줄 후원자를 찾을 가망도 없을 것이었다.

나도 유력한 윗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은 아니다. 유력한 이들은 나에 대해 의심과 비난에 찬 의견을 내 놓곤 한다. 내 꿈을 후원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요즘 생각은 꼭 그 꿈을 꾸어야 하나 쪽으로 기울고 있다.

 

167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 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기질, 모호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등) 이었다.

 

172

나는 나 자신이 점점 더 제1의 인격과 동일화되는 것을 느꼈으며, 이러한 상황은 훨씬 더 포괄적인 제2의 인격의 단순한 일부임이 판명되었다.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 내가 제 1인격이라면, 나의 제 2 인격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이고 선을 지향하는 인격이 될 수 있겠다. 나도 제 1인격이 나 자신과 동일하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으며, 2인격에 의해 구속 받는 제 1인격을 해방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174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 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 불확실감이 생겨난다.

 

175

내 어린 시절의 발달이 미래의 사건들을 얼마나 미리 잘 말해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한 계시는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미 그 그림자를 던져온 것이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을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내가 아이들을 기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은 무에서 유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이미 수세기를 포함하는 존재이다. 두 아이가 비슷한 연령 대에 쓴 시이다.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자연의 원리를 깨닫는 아이들이 경이롭다,

 

아빠, 몰랐어?

꽃은 원래 별이었어.

 

아빠, 몰랐어?

별은 원래 꽃이었어.

 

꽃은 별이 떨어져서 된 거야.

 

- <별과 꽃> 유수민(46개월) -

 

나무랑 꽃이

목마르면

비가 오지요.

 

- <> 유수린(48개월) -

 

176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179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매일 밤 꿈을 꾸었던 것도 계시였을까.

나는 미국에서 밤마다 내가 살던 한국의 작은 자취방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거나 아니면 내가 평온하고 고요한 호수에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182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194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미국에서 혼자 지냈던 시절, 나는 매일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을 꾸지 않는 밤이면 오히려 무섭기까지 했다. 혼자 있는 방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란 느낌은 공포스러웠다. 유령이 나와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기도 했다. 허기가 지거나 피로에 지친 날은 가끔 가위에 눌리기도 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하느님을 찾았다. 아예 십자가를 머리맡에 두고 자거나, 묵주를 쥐고 자거나, 성경을 배고 자기도 했다. 융의 자서전을 읽은 후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당시 유령들과 친하게 지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195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은 이러한 나의 열의에 전적으로 동조했으나, 그 외 주변 사람들은 나를 낙심하게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전통적 견해의 바위에 부딪쳤다면, 이제는 비인습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과 선입견이라고 하는 강철 벽에 부딪힌 셈이었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서 그런 벽을 느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에 대한 나의 관심이 내가 신학에 빠지는 것보다 더 수상쩍게 보였다! 나는 세계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느낌이었다. 나에게 불같이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질없는 것이며, 심지어 불안을 자아내는 원인이 되기까지 했다.

나의 길을 간다는 것은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197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떠오른다.

 

198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2의 인격은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좋지 않은 때에 반복해서 나타나 나 자신을 돌이켜보도록 밀어붙였다.

나는 이것이 <열정과 기질>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가 말하는 자아 성찰 지능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자아 성찰 지능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다. 나를 잠시라도 가만두지 않고 나타나 나를 돌이켜 보는 내 안에 있는 그 존재 덕분에 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으로, 혹은 내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들로 인해, 나를 들들 볶아대는 통에 상당히 피곤할 때가 많다.

 

202

나는 어디선가 다이아몬드계곡을 지나온 것도 같은데, 내가 가지고 온 광석표본이 자갈 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가 없었다. 그것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 자신까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211

정신병을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0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217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226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241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리 나라 사람의 편견 중 하나는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굉장히 터부시 한다는 것이다. 마음도 몸처럼 잘 돌봐야 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프면 장신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 하나의 인격으로, 하나의 인생사를, 하나의 희망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여야 한다. 마음을 돌보지 않아 마음의 병이 생겨도 그대로 방치하는 것, 그것이 문제다.

요즘에 젊은 부모들은 마음의 병은 일찍 발견하여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가까운 일산의 소아정신과는 진료예약이 밀려 상담을 받으려면 한참을 대기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아이의 마음의 병을 우려하여 소아정신과를 찾았으나, 아이보다 부모가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246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근친상간으로 인한 상처가 신화로 치유된 경우인가.

 

251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경험은 중요하다. 경험해보지 않고 공감한다는 것은 허풍이다!

 

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가정폭력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가정폭력 전문 상담사로 활동하며 내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한 자신의 상처도 치유 받는다. 하지만 상처 입은 자라도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의 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본능의 충족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발달 여부가 문제이다. 본능의 불충족으로 인한 문제는 본능을 충족시킨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인격의 발달이 문제의 열쇠이다.

 

267

내적 체험의 모험, 즉 영적인 모험은 많은 사람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정신적인 실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파문에 해당한다.

 

272

단지 어떤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류와 실패로부터 배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278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연구를 제한하고 진리를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경력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279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287

마음의 진동 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마음의 진동 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도!

 

300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303

나는 여전히 프로이트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이런 분열된 태도는 내가 아직도 그 사태를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성찰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모든 투사의 특징이다.

 

308

분석이 그들에게 뭔가 보다 나은 다른 것을 깨우쳐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론 그 자체로 그들을 묶어놓고 단지 합리적이거나이성적인 결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며 유치한 것들을 버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정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의지하여 설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릴 수 없다.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는 불가능하다.

 

309

프로이트가 이론과 방법을 동일시하고 그것들을 교리화하려는 의도를 밝혔을 때 나는 더 이상 그와 협력할 수 없었다.

 

310

나는 고독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희생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말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집필하려는 저자가 멋지다.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개별적인 환자의 심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하자면 환자의 눈으로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에 대하여 그때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개인으로 들어가는 것!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교사, 상인 들 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직업에서 중요한 작업이 된다.

 

312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 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315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 “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의미가 중요하다.

 

316

너는 이제 신화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그러자 갑자기 내가 무엇을 이뤄왔는지 의문이 생겼다.

 

나는 과거 민족들의 신화를 설명해왔다. 영웅에 관한 책을 쓰고 사람들이 옛날부터 그 속에서 살아온 신화에 관한 책도 썼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어떤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기독교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너 자신은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 아니오! 나는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있지 않소.” “그럼 우리는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그렇소.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오.”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여기에 이르자 내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중단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고 만 것이었다.

나는 어떤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317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 속에 살고 있는가?

 

320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요즘 내 생활의 모토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321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성인에게 놀이치료가 필요한 이유! 마흔에 놀아야 하는 이유!

 

322

나는 내 놀이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자문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너는 종교의식을 치르듯이 작은 마을을 세워 완성해나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 신화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건축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그런 일은 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과 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융과 백범의 공통점. 자신의 신화에 이르는 길에 가기 위해 일상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

 

324

8 1일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제 나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 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만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했다. 그 시작은 집짓기 놀이에서 생겨난 환상들을 그려내는 일이었다. 이제 이 작업이 우선시되었다.

 

325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요가는 내가 안정되어 무의식과 더불어 다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때까지만 했다.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326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미술심리치료??

 

328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332

그러나 이런 영웅적 이상과의 동일시는 끝나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순종해야 할 대상, 자신의 의지보다 높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338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나를 위로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코 인간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

 

341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기록의 중요성

 

341

매일 저녁 나는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적어놓은 것은 아니마가 왜곡할 수 없을 것이고, 그걸 가지고 책략을 쓰지도 못할 것이었다.

아니마의 예 à 희동이님 내면의 동순이

 

342

아니마의 말은 대개 유혹하는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343

10년 동안 나는 기분이 언짢고 안정을 잃었다고 느끼면 늘 아니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 무의식에 무언가 배열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아니마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또 무엇을 하려는 거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소? 나는 그것을 알았으면 하오!” 조금 저항을 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본 이미지를 항상 도출해냈다. 그 이미지가 나타나면 불안이나 우울은 사라졌다. 내 감정의 에너지 전체는 그 이미지 내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면 나는 그 이미지들에 관해 아니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꿈을 이해하듯 그 이미지를 가능한 한 잘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다가 우리의 웨버 희동이님이 떠오른다.

 

344

많은 환상이 든든한 토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내가 우선 인간적인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현실이란 과학적인 이해를 의미했다. 무의식이 내게 가져다 준 통찰을 통해 나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과제의 요점이 되었다.

 

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책보다 인간! 글보다 삶!

 

345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것이다.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의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나는 괴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한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파우스트> 2부는 문학적 시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철학의 연금술과 그노시스파 사상에서 시작하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게 이어지는 황금사슬의 한 고리다. 또한 세계의 다른 극점을 향한 탐험여행으로, 대부분 인기가 없고 모호하며 위험하기도 하다.

그 황금사슬의 한 고리, 세계의 다른 극점, 모호하면서 위험하기도 한 그 탐험여행에 동차하고 싶어진다.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나는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347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 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토록 방황하고 침체되어 있던 때이긴 했지만,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었다.

내면 사상 세계를 소유하면서 비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

 

349

적합하면 그것은 나타난다!” 지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거기에 대해 자연과학적 인식을 장황하게 떠벌릴 것이고, 심지어 그 모든 체험을 변칙적인 것이라 하여 지워버릴 것이다. 변칙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암울한 것인가!

 

350

이로써 내가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원초적인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351

나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아주 귀중한 보배였다. 내가 그 영혼의 말을 받아 쓴 것은 내 존재가 비교적 전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351

인생 후반기에 내가 이루어 놓은 것도 모두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있었지만 말이다.

내 인생 후반기에 이루게 될 갓들도 모두 내 어릴 적 체험 속에 이미 녹아있는 것들일 것이라 짐작한다. 변경연에서 자신의 내면 공부를 하면서 내가 스스로 깨닫는 것은 점점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다.

 

352

나 자신의 지적 상황이 의혹 덩어리 그 자체인 상태에서 젊은 학생들을 계속 가르친다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앞에 펼쳐진 학문적인 출세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나의 내적 인격 즉 보다 높은 이성의 길을 좇아 무의식과 직면하는 실험, 그 흥미있는 나의 과제를 서서히 밀고 나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알았다.

과연 나는 후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

 

353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이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사기극>의 저자 이원석 작가가 얘기한 작가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내가 대학교수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354

내가 심적 체험의 내용이진실이며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체험으로서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제시해줄 수만 있다면, 바깥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일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노력을 요할 것이었다.

 

357

그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었다..자기의 표현인 만다라로 인하여 나로서는 궁극적인 것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대략 1918~1920년에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남편이 떠오른다. 남편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으로 궁극의 자기에 이른다는 주제를 공부하고 싶어했다.

 

360

나는 그 꿈속에 삶의 목표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중앙이 그 목표다. 누구도 중앙을 넘어서 갈 수 없다. 그 꿈에서 나는자기가 방향성과 의미의 원리이며 그것들의 원형임을 이해했다. 그 안에 치유의 기능이 들어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는 내 신화에 대한 예감을 처음으로 가졌다.

 

365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우주적인 차원에서 한 인간도 순환하는 존재라면 나와 같은 인간이 역사 속에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374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374

나는 그 모든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고 거기에 관해 사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였다. 거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375

연금술에 대한 나의 작업에서 나는 괴테와의 내적인 관계를 보게 된다. 괴테의 비밀은 그가 수세기 동안 지속된 원형적 변환과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파우스트>를 필생의 역작 또는 신성한 작품이라고 여겼다. 그는 <파우스트>를 자신의 주요과업이라 불렀으며, 그의 생애는 이 드라마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생동하는 실체로서 초개인적인 과정이며 원형세계의 위대한 꿈이라는 것을 인상 깊게 지각하게 된다.

내 인생의 주요과업은 무엇일까.

 

382

목수의 아들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우연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인간 예수 이외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메시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목수인 묵자, 예수와 묵자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387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되고 예고된 고통을 죽을 때까지 문자 그대로 체험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결과라고는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했다.

 

403

사색하고 환상에 몰두하는 은신처였는데, 대개 환상은 매우 불쾌한 것들이었고 사색은 고통스러웠다. 그곳은 영적 집중의 장소였다.

 

406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현자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

 

420

둘로 나뉘어 있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가 합해져 나 자신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파우스트>를 읽던 시절에 나는, 내 내부에 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도 공존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 안에 악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421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좋은 것들은 나쁜 것들의 대가! 의미심장하다.

 

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짐을 가볍게 하고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점점 더 속력을 올리며 여행을 재촉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떠오른다.

 

434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437

발전에 대한 맹신은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멀리 떼어놓을수록 더욱더 유치한 미래의 꿈에 매달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439

우리는 그것을 의식 속에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충분한 이유 없이 다시 그러한 발언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440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확인으로 그쳐야 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443

나는 그에게 왜 백인이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451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452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491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대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496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자기의 구현자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500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하고, 의식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고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축소시켜버린 그 거대한 모습들을 시인이 다시금 일깨우고 선견지명으로 살려낸다.

 

511

환상들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존재에 재한 무조건적인 긍정 à 내가 쓴 칼럼 존재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516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살되고 빼앗기거나 약탈당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기도 했으나, 한 순간 그런 느낌도 스러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지나간 듯이 여겨졌다. 하나의 기정사실만 남았다. 이전의 일들과 다시 어떤 연관도 맺지 않고 말이다. 어떤 것이 떨어져나갔다거나 빼앗겼다는 아쉬움은 이제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나라고 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것만을 가지고 있었다.

 

517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인생은 긴 사슬에서 가위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고, 많은 물음은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았다. 무슨 이유로 그와 같이 진행되었을까? 왜 나는 그런 가설들을 가지고 왔는가?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

 

521

나는 우주공간을 떠다니며 우주의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허공이지만 가능한 모든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이었다 .

 

527

병을 앓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숙명의 의도를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을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533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우리는 타고난 구조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와 사고로써 이 세계와 관련을 맺는다. 신화적인 인간은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신화화야 말로 쓸모 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신화적인 인간이 되자.

 

535

우리는 대부분 무의식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한 해답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536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541

죽은 자들은 모두 죽음 직후에 그들 인생의 종합적인 경험을 보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543

무의식의 형상들도정보를 잘 받지 못한다’. 그래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식과의 접촉이나 인간을 필요로 한다.

 

547

많은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미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 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생전에 습득하지 못한 의식적 부분을 죽음에서 얻으려고 요구하게 된다

 

552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인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 앞에서 수를 예로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이러한 과정은 성공적인 꿈 분석이 이루어질 적마다 확실한 방법으로 항상 반복된다. 그러므로 꿈의 진술과 관련하여 교조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해석의 획일화가 눈에 띄는 즉시 우리는 그 해석이 교조적이며 따라서 비생산적임을 알게 된다.

 

561

부처는 제자들이 니다나(인연사슬을 명상하는 것, 다시 말해 출생, , 늙음과 죽음,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원인과 작용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유익하리라고 여겼다.

 

562

내가 <파우스트>의 결말에 아무런 해결책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일까? 또는 니체가 풀려다가 수포로 돌아간 문제, 즉 기독교적 인간에서 사라지고 만 디오니소스적 체험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일까?

 

565

노년에 인간은 그의 내면의 눈으로 추억들을 펼쳐보며 과거의 내적외적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저승 전 단계거나 거기서 존재하기 위한 준비와도 같으며,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철학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도 같다.

 

566

창조의 근본에 불완전함이나 근원적 결함이 없다면 어찌하여 창조충동, 완성에 대한 갈망이 생기겠는가?

 

567

카르마가 남아 있어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 혼령은 다시 돌아오고 싶은 욕구에 따지고 도로 삶을 취하게 된다. 심지어 무엇인가 더 완성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570

,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571

다른 쪽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것이며 우리의 의식세계는 일종의 환각이거나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하나의 가상적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다.

 

578

어둠에서 해방된 자의 눈으로 볼 때, 창조주는 그의 어두운 특성을 벗어버리고 최고의 선이 되었다.

 

579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인 그림자가 따른다.

 

583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도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未知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623

어느 랍비에 관한 오래된 훌륭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제자가 와서 이렇게 물었다. “옛날에는 하느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왜 그렇지 못합니까?” 랍비가 대답했다. “오늘날에는 그럴 정도로 허리를 깊이 굽힐 줄 아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624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625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629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책의 핵심을 몇 줄로 요약할 것.

(책의 핵심 메시지와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명확하게 소개한다는 기분으로 쓸 것)


무의식이 의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탐구한 한 사람의 이야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은 자서전의 형식을 빌어 융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낱낱이 파악한 이야기다. 자신의 내면 세계에 기꺼이 파고 들어 심적 체험의 내용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평생에 걸쳐 노력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들여다 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했다.


나의 인생은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9)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은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한 인간의 인생 여정을 통하여 보여주는 책이다.


- 이 책의 특징을 몇 가지로 도출해볼 것.

(이 책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이 책이 다른 책과 뭐가 다른가?)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은 자서전이다. 자서전이라 해서, 외적인 사건에 의해 변화된 위인의 일생을 위인 본인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책에는 외적인 사건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융은 결혼해서 아이도 다섯이나 두었으며, 여성들과의 염문도 잦았다고 해서 나는 내심 기대가 많았다. 그의 결혼 생활과 연애담 등을 기대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기대한다면 일본 작가 사카모토 미메이의 <내 생애 처음 만나는 칼. G. >을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의 차별점을 자서전이지만 융의 내적인 체험에 오롯이 초점을 맞춘 내적 사건의 자서전이라는 점이다. 카를 융 최후의 자서전이라고 책 표지 큰 제목 아래 조그맣게 표기되어 있다. 융은 이 책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에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 특히 감동적인 장절과 해석, 그 구절에 꽂힌 이유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을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나는 가끔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내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학습하지 않았는데 알고 있는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내 개인적인 삶 안에 수세기에 걸쳤다고 까진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한 세기 정도의 집단 정신은 갖고 있는 것 같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 내 양육이나 교육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분명, 경험이나 학습에 의해 습득된 것은 아니다. 어리고 작은 이 아이들 내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융에 의하면, 그것은 무의식이 될 수도, 집단 정신이 될 수도, 원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87

마음의 진동 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바른 것과 그른 것은 동서고금 그 시대적인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진동이라고 하는 것은 원시시대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원칙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할 것이다.

 

321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가장 절정의 시기에 번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인간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그 순간은 운명의 전환점이 된다.

  

345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것이다.

 

융은 무의식의 전제가 주는 비현실성을 가장 혐오했다. 그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융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융이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족과 직업 때문이었다. 가족은 늘 현실감을 잊지 않게 해준다. 그러므로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돕는다.

어떤 면에서 나는 내 가족과 내 직업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융의 이러한 견해로 나는 가족 덕분에 내가 현실성을 획득했다고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354

내가 심적 체험의 내용이 ‘진실’이며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체험으로서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제시해줄 수만 있다면, 바깥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일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노력을 요할 것이었다.

 

융은 과학과 철학의 융합, 신학과 의학의 융합을 이루어낸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이런 융합은 비과학적이라는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계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융의 노력은 더욱 철저해진다. 멋지다.

 

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었다. 자기의 표현인 만다라로 인하여 나로서는 궁극적인 것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나는 정신적 목표가 자기임을 이제 알 것 같다. 그것이 순환적일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만다라가 왜 자기의 표현이며, 왜 궁극적인가? 그건 도무지 모르겠다. 자기는 만다라, 즉 자기는 우주의 진리라는 말인가?

 

만다라의 정의

신성한 단(:성역)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으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원래는 ‘본질(ma만다라 본문 이미지 1a)을 소유(la)한 것’이라는 의미였으나,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것을 일컬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다라

 

451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491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대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527

병을 앓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숙명의 의도를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을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자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

 

533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우리는 타고난 구조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와 사고로써 이 세계와 관련을 맺는다.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 말로 쓸모 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로이스 로이의 <기억전달자>가 연상되는 구절이다.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한다면 그렇게 해봐야 한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쓸모 없는 위험한 모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는 인간존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인생일대의 과업이다.

 

 

-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논할 것.

(탄탄한가? 일관성이 있는가? 신선한가?)

 

융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오로지 그가 겪은 내적 사건에 의한 연대기적 구성을 이룬다. 외적 사건에 의한 흐름에 익숙한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융이 꿈을 묘사하는 장면인지 그의 정신을 묘사하는 장면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가 꿈 꾸는 장면에서는 나도 곧 잠들어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두 번 읽을 때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어린 시절과 반항의 시기를 거쳐,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인생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낸다. 정신과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치유하면서 꿈의 의미와 집단무의식과 원형의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프로이트를 만나게 되면서 융은 자신의 이론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된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유럽과는 몇 세기씩 차이 나는 원시의 순수함을 보존하는 곳들을 여행하면서 동서양과 고금을 아우르는 우주가 정신 세계에 있음을 밝히고자 노력했다. 그의 만년은 융합의 신비와 대극의 통합을 위한 시기였다고 말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내적 체험을 좇아가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시대와 세계를 융합하고 통합하는 경지를 보여준 셈이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책의 구성은 한 인간의 일생을 그가 겪은 내적인 체험에 의한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며 또한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세계로, 인류로, 우주로 확장하고 있다.

 

- 내 책을 쓸 때의 참고사항을 기술할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할 것.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읽으며, 꿈 일기를 한번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꿈 좀 꾸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깊게 파 볼 수 있음이 신선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믿는 내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충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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