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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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마음편지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몹시 바쁜 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쓰는 편지를 거른지도 두 달. 그렇다고 그동안 글이 사라진 일상을 살았던 거냐구요? 대답은 단호한 ‘아니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그리 안간힘을 다했으나 여전히 찌질하기는 마찬가지인 저를 들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뭔가 좀 더 드라마틱한 before&after를 보여줘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 때문이었겠지요? 저도 모르게 자꾸만 글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글쓰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슬프게도 그 피로감은 빠른 속도로 일상을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결국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 거구나.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거기서도. 여기서도. 나는 감추고 숨겨야 할 부끄러운 존재인 거구나.
모든 일을 척척 잘해내고 싶고, 누구나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고, 어떤 상황에도 여유있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고, 모든 협상에서 늘 이기고 싶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저는. 조금만 일거리가 쏟아져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허둥거리다 보면 하루 종일 그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가 없고, 어느 날 문득 의지할 곳 하나없이 혼자 섬이 되어버린 것 같은 불안감에 괜시리 뾰족하게 굴면서 엇박자를 내고, 뭘 선택해도 손해 본 것 같고,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더 마음이 상하고, 잠자리에 들 즈음이면 몸도 마음도 그야말로 만신창이. 떠나오기 전과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지난 4년간 힘들게 찾은 길을 다시 잃어버리는 데 4개월이 채 걸리지 않다니. 아무래도 저는 너무 빨리 하산을 한 모양입니다.
금요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연락을 받는 그 순간 알아차렸더라면 저는 감히 그 제안을 받아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5년전 딱 지금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이 홈페이지를 드나들던 시절, 금요일의 마음 한자락에게서 받았던 위로와 격려를 잊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일이 이리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너무나 평범한 나이기에 오히려 가능한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오늘부터 앞으로 1년간 금요일마다 여러분께 편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제 마음의 가장 진하고 뜨거운 그곳을 푹 떠서 보내볼 생각입니다. 가끔은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1년 내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겁내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알았거든요.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믿으니까요.
자기 혁명은 사랑입니다. 자신을 데리고 저승 끝까지 가보는 사랑이지요. 어두운 지하세계를 거쳐 껑충 빛의 세계로 뛰어 오르는 것입니다.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성공과 실패의 차원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것은 안타깝고 이름다운 당신의 삶 자체니까요.
구본형의 마음편지 <당신의 지금 사랑, 그 사랑을 죽도록 사랑하세요>(2009.10.2)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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