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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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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6일 10시 17분 등록

계속해서 배가 고프고, 그래서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라면 한 봉지를 뚝딱한다. 그래도 부족해서 바게트 빵에 땅콩버터 잼을 마치 미국사람들 마냥 두껍게 발라서 한 입 가득 채우고 우걱우걱 씹는다. 초코렛 한 두덩이도 집어 먹는다. 배는 부르지만 자꾸 입이 심심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장면이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던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차 싶어진다. 무엇이 나를 자꾸 허기지게 하는 것일까? 나는 어디서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분명 쉬고 싶어서 선택했던 길이었는데, 나는 또 다시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꾸만 학비와 기회 비용이 떠오르면서, 더욱 많은 것을 얻어가야 하고 또 더 나은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마음이 용솟음쳤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날까 싶었는데, 예전과 매한가지로 나는 나를 더 바쁘게! 더 열심히! 더 잘! 살아보라고 닦달하고 있었다. 평일 낮에 이렇게 길거리를 지나다니다니..라고 행복해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버스 안에서는 교재를 한 자라도 더 보기 위해서 눈을 부릅떴고, 옆 사람이 전화통화라도 하며 시끄럽게 굴라치면 흘겨보기 일 수였다. 연휴 기간에도 하루 이틀 정도는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푹 쉬거나, 혹은 간만에 밖으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괜스레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며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거리다가 오히려 급체하여 몸져눕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진정으로 내가 상상하고 꿈꾸던 학생으로서의 나의 생활과는 차이가 있는 광경이다.


사실 마음 가득히 나는 그냥 무작정 쉬고 싶었다. 하루 종일 딴 생각을 하고 싶기도 했고, 그냥 정처 없이 떠나고도 싶었다. 자유 시간이 잔뜩 주어진 사람 마냥 도서관에 앉아 관심이 가는 책들을 뒤적거리고도 싶었고 한동안 꽤 거리를 멀리 했었던 소설책을 탐독하고 싶기도했다.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낮술을 하며 낭만을 논하고, 관심 있는 모임이나 강연들을 찾아 시간이 되는대로 참석해보고도 싶었다. 요즘 유행이라는 플라잉 요가도 배워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또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대한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또 나에게 열심히 채찍질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버킷 리스트에 써 놓았던 일은 하나도 못한 채 숙제와 시험 준비에 급급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조금 지쳐보였다. 힘들내어 조금 더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은, 내게 허기를 불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식을 먹으며 야근을 이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충실하게 과제를 해나가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눈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나는 성실함을 체득해나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기분이 드는 것도, 왜 이렇게 진작 살지 못했나 라는 생각도 들어 좋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알아 나가는 기쁨도 있었고 늦은 밤 홀로 버스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뿌듯함도 무시못할 즐거움 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 마음 한 편으로는 '좀 더 쉬고 싶다'라는 생각 또한 가득했던 것 같다. 


애써 억누르려고 했던 '놀고 싶다'는 마음을 나는 오늘 좀 풀어주기로 했다. 모두가 시험 공부에 여념없는 와중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관심가는 책들을 빌려 쌓아놓았고, 또 친구들과 저녁 시간 내내 힘껏 수다를 떨며 놀러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결국은 마음 맞는 친구 몇 명과 '일반인편 무한도전'을 찍어보기로 하고 말았다. 우리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그저 조금씩 매일 실천하고 그것을 기록에 남길 것이다. 그 결과가 성공으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그저 해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한 작은 기록들이 쌓여 우리에게 의미있는 추억이 될 것만 같았다. 일찍 일어나기, 철인 3종경기, 폴댄스, 드럼치기, 바둑두기, 다이어트, 책쓰기 등등 우리는 그동안 막연히 꿈꾸던 계획들을 나누는 시간들은 왠지 가슴이 다시 뛰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덕분에 공부해야 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나는 초조해하며 스트레스 받기 보다 왠지 담대해져서는 내일 아침 버스 안에서 공부하면 되지!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제 2달여가 지나가는 학교 생활, 나는 여전히 적응 중에 있다. 하루하루 이런 마음이었다가 또 저런 마음이었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혹은 조울증 환자처럼 나의 기분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변하는 듯 하다. 즐거웠다가 금새 울적해지기도 하고, 열정적이었다가 또 만사가 다 귀찮기도 하다. 그러나 중간지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과정임을 알기에 나는 이런 나를 너무 많이 걱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중간지대가 오래 걸려, 학생으로 어느 정도 전환을 이룬 후 바로 직장인으로의 삶으로 회귀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의 모습은 이전의 직장인 녕이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전환이 아닐 지라도, 작은 전환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된 나의 모습이 왠지 상상되기도 한다.


연구원 과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중간지대에 있는 것 같다. 어떤 책을 써야할지 아직도 모호하고내가 감히 쓸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시간이 갈 수록 더해진다. 가끔은 물 흐르듯 글이 써내려가지만 많은 경우 어찌 써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더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쓰다가 길을 잃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결국은 중간지대를 건너 제대로된 전환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그저 이 중간지대의 시간을 즐겨보려고 한다.

어떤 모습의 중간 지대가 내일 또 내 앞에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그저 과정임을 알기에, 여정의 한 부분임을 알기에 더욱 즐겁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IP *.124.78.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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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14:30:22 *.196.54.42

"연휴 기간에도 하루 이틀 정도는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푹 쉬거나혹은 간만에 밖으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괜스레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며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거리다가 오히려 급체하여 몸져눕기도 했다." - 참, 쉬는 것도 어렵죠? 녕이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내가 발을 동동거립니다^^ㅎㅎ


마음다스리기가 이생의 미션이 될만큼 중요한 것이죠. 천천히 천천히 한번에 하나씩....레몬처럼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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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20:38:33 *.113.77.122

돌이킬 수 없다면 그리고 이왕 선택한 길이니만큼 배움의 즐거움에 한번 풍덩 빠져보는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인생에서 언제 이렇게 다시 열심히 공부해보겠어, 녕이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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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10:22:42 *.50.21.20

리스트를 지워나가는게 계속해서 즐거우려면, 일과 삶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겠구나. 

잘 배워가 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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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10:35:04 *.7.48.97
'나에게 충실하기 미션'은 바쁜 일상도 있겠지만 재충전을 하는 시간도 포함이 된다우! 이왕 선택했으니 열심히 달리고 담엔 마음 가는대로 추천! 근데 가만히 있는게 더 어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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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22:41:14 *.222.10.47

하나 있는 딸아이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것이 있어요.

"몸에 좋은 음식과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단다."

"몸에 좋은 음식은 먹으면 배가 부르단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단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배로 먹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먹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늘 배부른지 살펴보고 먹기를 바란다."

녕이 어때! 지금 배부르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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