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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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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6일 10시 47분 등록

■칼럼17■

미스 김 라일락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밑 그 향기 더하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떠나는 듯 그대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 이문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53759474


 은근한 추위를 가지고 이 노래를 듣는다. 노래는 들을수록 가을을 연상시킨다. 바바리코트를 입고서 깃을 세우고선 은행잎이나 단풍이 내려앉은 길을 사부작 사부작 걸어가는 모습이 자꾸 그려진다. 더구나 찬비가 흩날리기까지 하는 가을 아니겠는가. 여위어 가는 가로수 밑, 나는 끊임없이 낙엽이 떨어진 가로수를 걸으며 휑한 바람과 그보다 더 휑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떠올린다. 그러다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노래가사와 내 느낌의 괴리를 발견한다.

 라일락은 4~5월에 핀다. 4월, 5월에 꽃이 피니 라일락 향을 맡으려면 봄이어야 한다. 찬비 흩날린 가을에 가로수 길을 걸으며 라일락 향을 생각할 수 없지는 않다. 하지만 라일락꽃향기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들으며 눈부신 햇살이 창가로 내리쬐는 따스한 봄을 어찌 느끼지 못하는가. 문제는 이 노래의 느낌과 이미지에 갇혀 당연하게 라일락마저도 가을에 피는 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노래 속에서 나는 단연코 봄을 기억하지도 그리지도 못했다. 꽃피워 만발한 가로수를 생각할 수 있음에도 왜 그렇게 가을의 가로수만을 생각했을까. 아마도 여위어 가는 가로수의 이미지를 더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라일락은 그 생생함이 전혀 부여되지 않은 낯선 단어가 되어 있었다. 만약 내가 라일락을 생생한 향기로 기억하고 느끼고 있다면, 이 노래는 ‘가을’이란 단어가 가득해도 봄을 더 생생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이 노래가사를 되뇌이며, 나는 내가 지극히 감상적인지 이성적인지를 혼란스러워 했다. 기껏해야 ‘가을’이란 단어에 매몰되고 마는 나의 사고와 그 사고에 따른 나의 느낌에 나름의 배반을 당한 기분이다. 나는 얼마나 갇힌 사고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긴 라일락이 4~5월에 피는지 안 피는지 사실 모르겠다. 그저 봄에 피었다는 것만 안다. 하물며 이제는 라일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에 가물하다. 그저 식물도감에서 4~5월에 핀다고 하니 그런가부다라고 할 뿐이다. 분명 한번쯤 본 꽃이려니 싶기도 하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일락 꽃에 대한 기억과 향이 내 맘에 자리잡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쩜 라일락이 활짝 피어 있을 때 “아, 이게 라일락 꽃이구나”, “아휴, 라일락 향이 이렇게 좋았어?” 해 본 적은 없더라도 지나가면서 무수히 그 향을 맡고 그 향내에 취했을지 모른다. 다만, 한번도 그 향을 따라 멈춰 본 일이 없을 테지. 그래서인지 라일락꽃은, 그 이미지는, 여전히 식물도감용이다. 봄이 되면 어떡하든 라일락을 찾아보고 향기를 몸에 저장시켜야겠다.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우리나라 꽃이 아닌가도 했더니 우리나라에서도 피는 꽃이다. 우리나라 이름은 수수꽃다리라 한다. 확실히 라일락보다 수수꽃다리라가 훨씬 예쁘게 들린다. 친숙하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수수꽃다리 역시 ‘아 이게 수수꽃다리야’라며 본 적이 없고 그저 ‘꽃이야’하며 지나쳤을 터이니 수수꽃다리라고 다를 리 없다. 내 기억과 이미지 속에서 모르는 꽃이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차라리 라일락이 더 자주 들어 본 꽃이름이다.

 수수꽃다리는 ‘미스 김’나무라 불린다 한다. 미스김 라일락. 미국인이 금강산에서 수집한 수수꽃다리를 미국으로 가져가 붙인 개량종의 이름이다. 이런 전환의 과정을 거쳐 수수꽃다리는 이름도 원산지도 다른 꽃이 되어 역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있다고 하니 제 고유한 향을 멀리 드높이 나누어진 수수꽃다리에게 감사함을 표할까. 제 이름도 지키지 못한 수수꽃다리에게 안쓰러움을 표할까.


미스김 라일락.jpg


  라일락은 미국에서 조경용으로 정원수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역수입된 라일락은 우리나라에서도 곳곳 정원에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미스김만큼이나 미국에서도 흔하다는 것인데, 은은한 향이 그렇게 가슴을 아린다나. 거기에 청춘과 젊은 날의 회상, 사랑이란 꽃말이 더해지면 그 아련함의 깊이는 더 해 질듯하다. 연한 보라색 꽃이 활짝 필 때마다 색이 달라진다는 라일락은 그 향도 은은하니 온통 지천에서 오월의 밤을 수놓겠지.

 인생의 어느 한때를 돌아보면, 혹은 돌아보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상념에 젖게 되는 것은 그것과 함께 한 매개물을 만났을 때다. 그로 인해 조건 반사된 기억은 또 다른 자극을 만나 전환되지 않으면 늘 같은 기억을 불러들이는 상황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감정도 생각도 결국 고정화시켜 놓은 것은 추억을 일으키는 그 모든 사물들. 이제 기억에서 벗어버려야 할 그 무엇이 있다면 ‘새로움’을 씌울 전환적 경험이 강조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사물을,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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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20:25:03 *.113.77.122

사물을 통해서 에움의 새로운 변화가 예감되는 것은 왜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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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09:23:02 *.50.21.20

사랑이 한 가지 맛이면 좋겠는데, 사실은 그러기 어려운가봐.

라일락도, 가로수 그늘도 시간이 가면서 변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변화를 전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건 무척 어렵지만, 못할 건 없지. 

나와 특별한 관계의 세계를 또 하나 만나는 거니까.

또 그래서 불쑥 튀어나온 어떤 곳에서 추억의 달콤쌈싸름함을 맛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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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10:24:11 *.7.48.97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살어있는 사람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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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22:50:33 *.222.10.47

저는 라일락이 피면 한송이 따다 아내에게 주곤 한답니다.

그 향이 좋아서도 그렇고 스무살 아내에게 장난친 것이 기억나서 입니다.

"선화야 사랑점 쳐줄께, 이 라일락 입을 어금니로 꽉 물었다 줘봐"

"그럼 입에 난 모양을 보고 현재 사랑을 알 수 있단다."

그러고는 나는 라일락 잎을 접어서 건냈었죠.

아내는 뭐가 좋았는지 덥썩 어금니로 물고는 이내 악악 거렸죠.

라일락 향은 달콤하고 향기롭지만 잎은 매우 쓰답니다.

그래서 일까요? 아내의 사랑은 달콤했는데 결혼생활은 쓴가 봅니다.

라일락 꽃은 연보라색으로 꽃몽우리가 여러개 같이 올라와서 확 핍니다.

참 사랑스러운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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