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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6일 11시 52분 등록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2014.10.6 이동희

 

1. 지은이에 대하여 : 윌리엄 브리지스 (1933 ~ 2013)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10인 중 1명으로 선정된 저자는 전직 영문학 교수로 하버드, 콜롬비아, 브라운 대학교에서 재직했다. 1970년대 중반, ‘전환 관리’ 분야로 활동영역을 옮기고 윌리엄 브리지스 & 어소시에이트를 창립해 워크숍과 강연을 통해 개인과 조직에게 전환기를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성 심리학협회이 대표를 지냈고, 베스트셀러 <전환> <전환 관리>를 포함해 10권의 책을 저술했다.

 

2.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되는데 변화된 환경에서 삶을 전환시켜서 새로운 삶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자신의 인생 역정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중간지대라는 이전에도 속하지 않고 앞으로 올 새로운 인생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을 인정했으며 이 시간이 창조성으로 보나 여러 가지 유용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시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그 중간지대를 직시하고 마음을 쫓아가다 보면 자기다운 삶을 사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책의 서술 방식은 대체로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전하는 방식을 띄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아내의 죽음과 교수직을 중단하고 공동체를 이끌게 된 일이 책 후반부로 갈 수록 식상해지는 면이 있어서 이야기의 힘을 떨어뜨리는 면이 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전환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를 살펴보면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에 빠지고 어떤 곳에서는 자기 계발서처럼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전달이 다소 불편한 면을 준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노인의 입장에서 글을 쓴 것으로 보일 만큼 나이 든 것에 대해 여러 지면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노인임을 부정하면서 청춘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하는 면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문제점은 번역된 글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말하듯이 번역해내지 못하고 문장을 한글로 옮기는데 애를 쓴 것 같아 조사와 말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윌리엄 브리지스 할아버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내와 살았다. 그의 아내는 암으로 죽고 홀로 되었다. 이때 인생의 중간지대로 인식하고 이전 아내와의 좋지 않았던 결혼 생활의 많은 마음의 퇴적물을 간병과 장례를 통해 버렸다. 그리고 중간지대라는 인식하에 마음의 흐름을 따라 새로이 수잔을 만나 18살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재혼에 성공하였다. 이를 토대로 윌리엄 브리지스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중간지대에서는 마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고 이를 자신의 자서전 형식을 빌어 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재혼 성공담을 이전의 자신의 저서와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재혼을 떳떳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보인다. 결국 재혼한 수잔에게 바치는 자신의 자서전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11

생각이 구체화되자 경험을 충분히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방향 상실은, 이를 만들어낸 비동일화나 각성처럼 최종 단계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곡과 같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내의 죽음은 나에게 마음의 바닥을 비워 새로운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반을 제공했다. 전환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전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아내는 내 마음의 바닥이다. 그리고 그 위에 나는 늘 걸레질을 한다. 가끔은 누워 쉬기도 하고 책도 보고 놀이도 한다. 아내는 내 마음 저 바닥에 일렁이는 파도다. 늘 평온하다가도 폭풍이 칠 때면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버린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 고요해진다. 그 풍랑을 다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가끔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바다에 배를 띄웠다. 오직 별하나 바라보고 돛도 없이 이리 저리 그녀의 마음을 떠돈다. 오늘도 난 와이프 로드의 한 가운데 있다.

 

P11.

윌리엄 워즈워스는 “예술이란 평정 속에서 샘솟는 열정”이라고 했다.

 

예술은 뭐고, 평정은 뭐고, 열정은 뭔가? 열정 속에 찾은 평정이 예술은 아닌지? 고요함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인간은 예술이란 것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자 했다. 자기 피 속에 있는 다양한 색깔을 자기 피부 껍질 아래 감춰진 본성을. 곤두선 신경이 안테나가 되어 예술적 소재를 찾아 헤맨다. 그건 무엇일까? 자기 탐구? 자기 발견? 예술은 슬픈 상실자들의 향연이다. 그렇게 슬프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울 수가 있을까? 그들의 작품은 모두 눈물이었고 그래서 나는 운다. 열정은 유리창에서 쑥 나와 내 멱살을 잡아채어 어딘 가로 내동댕이치는 마음 깊은 곳의 연민이다. 나를 사랑해 달라는 슬픔. 그래서 열정은 슬프다. 그래서 아름답다. 모든 예술이 슬프고 아름답다. 그것은 열정이었기 때문이다.

 

P15.

왜 저항하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며, 익숙하지 않은 영토를 탐험하기보다는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현재에 집착하게 된다’고 대답한다.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딛는다. 걸었다. 눈을 감고 걸었다. 다시 다른 한 발을 앞으로 내민다. 걸었다. 다시 다른 한 발을 앞으로 내민다. 하지만 이제는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려 놓는 동작이 나뉜다. 앞으로 그리고 아래로 마지막으로 의심이 든다. 이제 기억도 없다. 앞선 두 발은 사실 눈을 감은 것이 아니다. 이미 눈에 들어온 기억으로 확신하고 있는 환상이다. 그 사이 무엇이 변했는지 모른 채 자기 환상에 안도하여 발을 디뎠을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발걸음은 두려움의 극복이다. 모르는 것은 두려움이 맞다. 어떻게 편하게 갈 것인가?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을 떴다 감는 찰나의 순간도 세상 만물은 이미 다른 것이 되어 있다. 단지 나의 환상이 나를 지탱했고 운이 좋았을 뿐이다. 환상과 확신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제 네 번째 발걸음을 앞으로 내민다. 발을 내려 놓을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가 선택이다.

 

P16

변화란 상황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날씨가 변하는 것도 변화이고 온도가 변하는 것도 변화이다. 그러니 거기에 맞게 나를 바꾸는 것도 변화이다. 하지만 그 변화에 맞게 자연스럽게 변화하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가끔은 비를 맞을 때가 있고, 추위에 떨거나 더워서 옷을 벗으니 말이다. 변화는 인지하지 못하면 변화가 아니다. 그러니 잠자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 꿈에 빠져 있는 사람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오직 그 꿈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도 세상도 모두 변한다. 변하지 않는 다고 믿는 것은 자신이고 그것은 환상이고 확신이다. 난 그렇게 변화를 본다.

 

P16.

전환이란 원래 있었던 일들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리고 다시 잡게 되는 그 중간에 이전의 방식도, 그리고 새로운 방식도 통하지 않는 창조의 '중간지대'가 있다. 이전 것의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시작, 이 세 가지 과정이 전환이다.

 

전환은 영어로 transition이다. 전환의 특징은 존재에서 존재로 이어진다. 실체가 없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transition은 항상 그 중간 변이점이 있다. 그 지점은 대부분 대단히 짧은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이 transition은 그 존재의 물성이나 특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 본질의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전압이 높아졌다 낮아지듯 전기는 존재하고 그 높낮이가 변하였을 뿐이다. 그럼 사람에게 이 transition은 무엇인가? 애초에 자기로 태어나서 남이 되었다가 다시 자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갓 태어난 아기는 누가 봐도 자기답게 하루를 보낸다. 모든 것이 자기답게 돌아간다. 하지만 커가면서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처신을 배우고 결국 꼭두각시 인형처럼 문화라는 겉옷을 입고 뒤뚱거리게 된다. 하지만 이 짓도 못해먹을 짓이라 차차 다리에 힘을 주고 팔에 힘을 주고 허리에 힘을 주어 마지막으로 머리를 들게 되면 비로서 자신의 옷을 찾아 입던 옷을 벗어 던지게 된다. 하지만 그 힘을 얻을 곳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사람의 몸의 힘은 힘줄에 있고 그 힘줄은 근육과 같이 더 큰 힘을 만들어 낸다. 그 근육은 피가 돌아야 영향분과 산소를 공급받고 힘을 발휘하여 몸을 지탱시킨다. 결국은 피가 돌아야 한다. 나의 몸에 나의 정신에 나의 마음에 피가 돌아야 한다. 짜여진 틀에 맞춰져 있는 이 틀에 피를 돌게 해야 한다. ! 그 피의 실체는 무엇일까? 꼭두각시가 된 이상 나에게는 남은 피는 없다. 다만 그 끝을 놓아버리는 수 밖에 없다. 이전의 삶을 놓아 버림 즉 종결이다. 그래야만 홀로 설 수 있는 연습을 하 수 있다. 종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젠가 그 끈이 다시 나를 당길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다시 어중간한 지대를 남기고 원래의 자리로 나를 돌려 놓을 뿐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 끈을 빨리 잘라야 한다. 가장 먼저 그 끈부터 잘라야 한다.

 

P18

전환은 현재의 상태를 제거하면서 오래된 상처를 건드릴 뿐 아니라, 현재가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빨대로 물을 빨아 먹다 보면 빨대 속에 물이 빨려오다가 힘을 풀면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환도 마찬가지로 전환의 전과 후만이 있을 뿐이다. 중간지대는 존재하나 안정상태가 아니므로 늘 이전 상태로 복귀하려고 한다. 하지만 빨대로 들어온 입안의 물은 더 이상 물병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안정된 입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입술에 닿았던 물은 이내 물병 속으로 다시 떨어지고 만다. 전환은 이룬 사람은 물을 이고 높은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 물은 계속해서 아래로 흐르니 자칫 기울이기라도 하면 쏟아져 버린다. 그러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즉 매 순간 평정을 찾기 위해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잘 지켜보고 조절해야만 이 물을 이고 꼭대기로 갈 수가 있다. 이는 중간지대가 얼마나 민감한 시점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양동이에 담을 수 없다. 기껏 담음 물을 모두 쏟아 버리면 다시 원래의 아래로 내려가더라도 다시 물을 양동이에 담는 일부터 해야 한다. 이는 지치는 일이고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전환의 중간지대에서는 예민한 고양이 수염처럼 우리의 온 신경을 나에게 집중해야만 한다. 오직 기회는 한번 뿐이다.

 

P19.

발전적인 전환이란 외적인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깃든 자연적이고 내재적인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청소년기에 겪는 전환은 발전적인 전환이다. 중년의 전환도 그렇고,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는 심오한 변화도 역시 발전적인 전환이다.

 

자연적이고 내재적이라면 내 안에 전환의 능력이 이미 있다는 것이다. , 전환의 능력은 발견의 문제이지 생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발견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상황을 변화시켜 전환을 촉발 시킬 수도 있고 스스로 발심하여 전환을 꾀할 수도 있다. 후자는 주로 가르침에 의해 새로운 전환의 존재와 필요를 알게 된 것이지만 전자는 일면 떠밀려서 전환에 몰리는 경우라 하겠다. 전환의 능력은 내 뼈와 근육과 피와 살에 베여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나의 머리이고 나의 가슴속 마음이다.  

 

P23

통과의례라는 제목의 이 책은 태어나고, 성년이 되고, 결혼하고, 아이를 얻고, 노인이 되고, 죽음의 대열에 들어서는 등 인생의 전환점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에 관한 책이었다.

 

우리는 통과의례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통과한 것이 없어서 이전의 삶을 질질 끌고 다닌다. 갓난 아기 때부터 달고 살던 것에서 부터 최근에 재미를 붙인 것들까지 말이다. 통과의례는 사회적으로 가족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기념식도 필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의미는 과거와의 단절이고 돌아갈 수 없음의 선언이다. 그러니 더 이상 과거로 가는 포탈을 열 길을 찾지 말고 앞으로 나 있는 새로운 길을 용감히 걸어갈 뿐이다. 인생은 이전의 삶의 죽음과 새로운 삶의 받아들임으로 이루어 진다.

 

P24

'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는 말은 죽음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전환점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환의 시점에서 종결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정말 절망적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다니 정말 절망적이다. 큰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만들어 타고 건넜다. 건넌 후에 배는 어찌 해야 할까? 다시 먼 길을 가야 하는데 배를 어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못할 사람은 없다.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배를 짊어지고 간다.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면서 그 배를 버리질 못한다. 그러니 인생이 힘든 것이다. 전환이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은 더 이상 소용이 없는 것을 과감히 버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고 실질적인 조언이다. 중단 후에 버릴 것은 명백해 진다. 꼭두각시의 끈이 떨어진 후 인형사는 더 이상 필요 없듯이 말이다.

 

P25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잘못된 지식은 무엇일까? 우리를 허상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틀의 역할을 하는 것들일까? 허상의 세계는 어떻게 구별될까? 무엇으로 잘못된 지식을 알아채고 버릴까? 누가 가르쳐주기나 할까? 잘못된 이란 구별법은 어떤 기준에서 말해야 할까? 삶이 말하기 전에 알게 되면 더 좋겠다.

 

P29

, 시든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나의 죽은 생각들도 내게서 떨어져 나가기를,

 

죽은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기를,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

 

P30

여전히 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인지 알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환이 내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 또는 변하는 것에 대한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를 겪는 것에 대한 죄의식까지 느끼고 있었다.

 

죄의식을 느끼게 한다. 모든 중단은 죄의식을 수반한다. 그것은 놓음이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죄의식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절벽에 매달려 있고 나의 손은 과거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손을 놓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어디로도 갈 수 없고 그 과거에 매달린 채 허우적거리며 과거만을 쳐다보고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비참한가? 이제 놓을 시간이다. 그래야 꿈에서 깰 것이고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놓아 보면 사실 세상은 다시 거꾸로 뒤집히고 나는 굳건히 새로운 땅 위에 서있을 것이다.

 

P33

가장 큰 전환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저 현상을 재건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해도 이별의 시간은 다가온다.

 

,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해도 이별의 사간은 다가왔습니다. 그러니 안녕이라고 말해야지. 이별은 해야 하니까. 다음은 나도 어디로 갈지 몰라. 그렇다고 슬퍼하지마. 어느 길 끝에서 또 만남은 이루어질 테니까.

 

P34

내용과는 상관없이 외적인 손실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내적인 포기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이해이다. 놓아버려야 할 것은 직업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희망, 두려움, 꿈과 믿음 같은 것이다.

 

젊은 사람에게는 이 희망, 두려움, , 믿음이 생명수이다. 이 것들만 붙들고 살기도 버겁다. 하물며 이것들을 놓으면 무엇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집착이란 단어이다. 계속 변화하는 것들 꿈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희망도 변하고 믿음도 변한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변화들을 받아들이는 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것들이 변하면 변한대로 봐야 할 것이다. 과거의 희망과 두려움 꿈과 믿음을 유지하고 집착하면 전환은 불가능하다. 단지 환경만 변하였을 뿐 여전히 과거의 나일 뿐이다.

 

P35

외부의 상황을 완전히 끝내지 않고도 내적으로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37

전환이란 이전의 생활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거나 그 소중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생활을 놓아버리는 것뿐이다.

 

P37

끝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누었던 ‘삶’을 끝내는 것이다.

 

P38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항상 전환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전환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중독 증세와 마찬가지로, 살면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문젯거리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변화에 빠져 있다는 말은 무엇일까? 계속 변화의 과정만을 쫓아 사는 것일까? 이것은 동물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전화하면 결국 결과만 남는다. 변화 자체에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변화에 빠져 있다는 것은 정작 실질적인 전환이 조금도 일어 나지 않았으나 그 방향으로 마음을 쓰지만 이전과 결별하지도 중단하지도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일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네. 이런 것일까? 가면을 쓰듯 연극을 하듯 변화라는 것이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 계속 변화의 소용돌이에 자신을 잃어 가는 것일까? 나도 그런 부류는 아닌가? 변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진정한 전환은 이루어 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P38

놓아버리기 가장 힘든 것은 내적인 진실이다.

 

내적인 진실은 영원히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진실이니까 말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모든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따라서 진실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므로 진실은 선택된 것이므로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진실이 있다. 선택에 따라 진실은 그 모습을 달리 한다. 나는 진실로 무엇을 진실이라고 하는 걸까?

 

P38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놓아버리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진실'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이것을 '견해' 또는 '가정' 또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효소들이다.

 

편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편하다는 것은 무뎌진다는 것으로 나는 느껴진다. 무뎌진다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변화에 대해 몰라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신경이 곧 편함이다. 알아채지 않음이든 못함이든 결국 모름이다. 편함은 모른 것이다. 편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요즘 편하게 지내십니까? 하는 말은 요즘 원숭이처럼 사십니까?란 질문과 같은 것이다. 그저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삶을 추구한다는 결론이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진실이 아니다. 아니 나의 진실이 아니다. 편하다는 것이 주는 오해는 사람간에도 있다. 편하다는 것은 서로 잘 알아서 서로 잘 맞춰주는 매우 민감한 편함이 있고 서로 별 상관을 하지 않고 지내니 편할 수도 있다. 이는 무심한 편함이다. 변화는 지속되고 전환을 강요 받지만 불편을 감수할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편함이 곧 죽음의 길일지라도 말이다. 무지는 결국 사람을 죽게 하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마약에 취하면 세상에 알고 싶은 것도 아는 것도 없는 텅빈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P39

행운이 따른다면 전환이 뒤이어 찾아와 깨울 것이고, 불행하다면 나머지 삶의 시간을 잠자는 것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행운은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니다. 기다린 사람만이 행운이 온다. 오늘도 전환을 기다리며 때를 쫓아 나아가고 들어간다. 전환을 이룰 때는 행운같이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행운은 지나가는 사람처럼 무심히 그것도 극히 무심히 지나갈 것이다.

 

P43

10년 동안 융 분석가가 될 것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해.

 

10년의 노력이라면 대단한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이제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면 속상한 정도일까? 이 것도 전환인가? 10년의 노력을 그냥 버려야 한다.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 암 앞에 10년의 융 분석가가 될 목표는 의미를 잃어 버린다. 죽음 앞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P45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과 예상했던 삶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전의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놓이게 된다. 변화 이전의 자신을 놓아버리고 중간지대에서의 경험을 존중하게 된다면 좀 더 풍부하고 놀라운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동이를 이고 산을 오른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물을 엎어지고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다시 아래에서 물을 길어오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니 중간지대인 산을 오르는 시간에는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비록 산을 오르고 돌을 피하고 미끄러질 지라도 말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편하게 걷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는 계속 걸어가는 일만 남았다.

 

P45

전환은 확대된 모든 단계에서 도형과 숫자들이 반복되는 혼란 속의 프랙털처럼 부분은 전체와 같고 전체는 각각의 부분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루가 인생이고 인생은 하루로 채워진다. 그러니 인생은 하루를 닮고 하루는 인생을 구현한다. 내 인생인 소중하다 여기면 하루를 그리 소중하게 살 것이다.

 

P60

내 옆에 죽음과 삶을 두고 그 둘을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몰라. 나의 남편과 나의 친구들, 나의 직장 동료들, 나의 친척들, 나의 강아지, 나의 집에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이 편안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받아 들이고 난 후에 가능한 것이다. 내 앞의 그 존재를 모두 온전히 받아들일 때 나는 미소 지을 수 있다. 한치의 거리낌이 없을 때 나는 미소 지을 수 있다. 편안하게 말이다. 결국 미소는 내 앞의 사람이던 대상물이던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기는 마음이다. 미소 짓는 마음은 즐기는 마음이다.

 

P61

끔찍한 고통과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견뎌내며 이 중간지대로 밀려왔어. 이 세상에 머물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주 유혹적이었어.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지. 이제 나에게 일어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점이 아주 기쁘고 그래서 평화롭게 쉴 수 있게 되었어. 창밖을 바라보며 비 내리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는 것이 좋아.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아.

 

그저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일까?

 

P68

전환의 경험을 한다는 것, 특히 전환의 단계 중에서 중간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은 깊은 창조적 에너지와 추진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물동이를 지고 산을 오르는데 온갖 장애물을 창조적으로 뛰어넘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추진력이 있어야 하겠다.

 

P69

중간지대는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준다. 새로운 방향 제시, 개인 성장, 자기확신과 창조성. 이 네 가지 요소들은 모두 우리가 일을 수행했던 방식과 그 동안의 경험들을 버리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잠시 방황하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통찰력과 추진력의 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때 기회의 양식들과 주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이 전해진다. 쓸모 없던 것들이 쓸모가 생기고 이를 알아보게 된다. 의미를 찾는 다는 것. 그것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P70

개인의 성장은 주변의 세계와 새롭고 적절한 관계를 맺는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과 관계가 있다.

 

성장했다는 것은 기대와 응대의 관계를 적절히 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했다는 것은 이를 알고 조율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이란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이다. 기대와 응대에서 생산이 일어나고 그 결과를 나누는 것이 성장의 열매이다.

 

P71

이런 접근 방법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점으로 넘어가는 영적인 출입문과 같다.

 

P73

전환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현실이 무너지면서 삶의 형식 속에 갇혀 있던 에너지를 방출하게 하여 순수한 본래의 상태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P75

새롭게 하는 것은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전환은 항상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진 만큼 놓아버리게 한다.

 

치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를 다른 하나가 대신하게 되므로 이전의 것은 의미를 잃고 힘을 잃는다. 산 아래 있던 물을 산 위로 옮기게 되면 무엇이 생기고 무엇이 없어졌나? 아래가 없어지고 위가 생긴 것이다. 즉 물의 위치가 전환되었다. 높은 위치에 의해 낮은 위치는 없어진 이전의 존재 방식이 되는 것이다.

 

P76

그것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든 급진적으로 이루어지든,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오래된 일상에서 만족을 얻거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게 된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오래된 삶과 의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다.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그러면 놓게 된다. 미치지 않기 위해? 결국 의미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잡을 것도 없게 된다.

 

P78

전환의 중심에 자리한 신비함과 마주쳤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환 속에 있을 때 삶이 우리에게 잡고 있던 것을 놓을 때가 되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간지대에 들어서서 '혼돈'이라고 부르는 순수한 에너지의 상태에서 나오는 시간,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존재방식을 창조하거나 발견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산을 오를 때 곧게 뻗은 신작로는 없다. 산은 많은 능선과 계곡을 갖고 있다. 산을 비유로 삼은 것은 산 위의 삶이 산 아래의 삶보다 고귀하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다. 노력을 해도 더 해야 오를 수 있는 것이 산 위이다. 아래보다는 더 신경 쓸 일도 많다. 그러니 그 산 길을 오를 때 어찌 혼돈이 없겠는가? 길을 잘못 들면 낭떠러지가 나오고 작은 돌에 채여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하늘을 보고 주위를 보고 방향을 잡는다. 올라야 하므로 다시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위해 새로운 존재방식을 얻기 위해 말이다.

 

P80

변화를 겪고 있을 때 아무도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해도, 상실감은 전환의 당연한 결과이다.

 

P84

단지 각 변화가 숙고되고 이해되었을 때, 깊이 간직된 개인의 '발전적인 임무'를 드러내는 것이다. 오직 그때가 되어야만 우리는 개인적인 행로에서 전환점의 중요성을 입증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환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인생에서 놓아버려야 할 시기가 언제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무엇을? 놓아버려야 할 시기인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나를 좌지 우지 하는 것들을? 어떤 것을 놓아버려야 할까? 아직도 이런 것들은 나의 굳건한 현실적 진실이다. 그러니 어떻게 의문을 촉발 시킬 수 있을까?

 

P86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나는 생활비의 필요성과 작지만 무난한 봉급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내 안의 악마와 계속해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싸움은 강력한 수양이 되었을 뿐 아니라 직업 없이 일하는 것에 관한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책에서 이것을 '직업의 전환'이라고 지칭했다.

 

P96

당신은 간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남자를 고르거나 직업 또는 이웃을 고르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것은 남자나 직업, 이웃이 아닌 당신의 인생이다.

 

P97.

항상 내 고객들에게 외적인 것, 즉 사람이나 관계 그 자체만을 놓아버리고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내적인 결합 등은 그대로 놓아둔다면, 결국은 다른 사람이나 관계를 찾아 똑같은 희망과 공포, ,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변화를 겪는 것이지 전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서 끝맺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전환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P98

아내는 천성적으로 세상에 '무심하게' 태어났기 때문에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많은 부분을 아내와 감정적으로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우리 주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감정적 공유는 나도 마찬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매 순간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지금도 역시 한시도 빠짐없이. 나는 몰랐다. 감정의 공유가 없기 때문인지? 결국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감정의 물결이 벽에 부딪히고 결과 파동을 만들어 그 경계를 흔드는 것이다. 그러니 부서질 것 같이 긴장감이 맴도는 것이다. 감정의 침범을 허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감정의 왕래가 원활하지 않으며 한 순간 폭발하여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린다. 이 것은 파도가 아니라 츠나미라고 하는 거대한 해일과 같다.

 

P100

아내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좀 더 완전한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해주었다.

 

P101

우리가 잃은 것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되어야 했던 이유이다.

 

지금의 내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모습은 어떨까? 그리고 그 이유는? ? 이렇게 사나? 이유는? 알고는 있나? 정당한 이유인가? 꼭 그 이유를 인정해야 하는가? 이유가 중요한가?

 

P101

과거에 충실한 우리의 마음은 내일의 즐거움이 오로지 오늘 무엇을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거부한다. 파도의 아름다운 물결선은 앞서간 파도가 물러나 사라질 때 드러난다.

 

P103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배신이라는 문제와 부딪치게 될 것 같군요. 부인의 죽음 후에 겪을 수 있는 새롭고 의미심장한 일로 인해 당신은 혹시라도 아내를 배신하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P104

그 후 3개월간 나는 눈 속의 표범 발자국을 추적하듯이 배신의 감정을 관찰해 보았고 그 결과 새롭거나 흥미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아내에 대해 배신하는 것 같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P105

과거의 상실에 대해 애도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그 상실감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 또한 그렇다. 매장하는 것보다 애도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P109

이것은 애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눈물겨운 애도는 아니었다. 대신에 길고 어렵고 형식적인 애도였다.

 

저자는 죽은 아내와 정말 안 좋은 결혼 생활을 했다. 아내는 외도를 했고 늘 남편에게 신경질 적이었으며, 남편의 일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준에서 필요한 남편과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남편간의 화해가 필요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결국 아내는 죽기 전 자신이 필요한 남편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현재 있는 남편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곁에 있는 남편과 아내와 같이 잘 사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상대를 바꾼다고 해도 변화를 즐길 뿐 전환은 이루지 못한다. 결국 새로운 관계도 이전의 관계와 같이 위상이 떨어지고 곧 새로운 변화를 꿈꿀지도 모른다. 변화에 취하면 마약과 같아서 더 큰 자극만을 원하게 된다. 변화가 더 큰 변화를 낳고 그 변화가 감당할 수 없는 변화를 낳게 되면 결국 파멸하고 마는 것이다.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안정되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오직 과거를 단절하고 애도할 때만이 새로운 삶으로의 통로를 열어줄 것이다.  

 

P111

나는 마치 내 자신이 잘못된 지도를 들고 서 있는 여행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오래된 지도에 없는 장소에서 헤매고 있는 여행자 같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반자가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연대감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외로움이었고, 동반자가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혼란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헨리 밀러 Henry Miller-

 

P115

하지만 비관주의든 낙관주의든, 이것은 모두 현재를 부정하고 도피하는 행동이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심하게 상처를 입었을 때 필요한 의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P116

1997년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했던 대상에게 이별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것은 끝을 맺는 능력이고 때로는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죽음은 인생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경험이다. 엘리엇의 비명에 써 있는 것처럼 죽음은 때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죽음이 의미하는 끝은, 오래된 것을 마감하고 인생의 새로운 한 장을 시작하게 한다.

 

P120

그 학생들은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던 시기를 삶의 터닝 포인트로 거듭 묘사했다. 변화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둘의 차이를 알게 된 때였다. 변화는 지리적인 이동이나 고등학교 졸업 또는 부모의 이혼 등을 가리킨다. 전환은 학생들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돌아보면, 그들은 변화를 전환을 유발하고 표시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P122

나는 학생들에게 그것은 그들이 살아온 모습을 말해 주는 전환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환은 그들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고, 삶의 원동력 그 자체였다.

 

P122

삶은 여행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전환은 여행지이고 잠시 머무는, 체류지라고 할 수 있다.

 

P123

사물은 성숙기를 넘으면 스스로 부패한다.

 

부패의 나쁜 점은 스스로의 존재를 무너트리는 것이나 좋은 점은 남을 위해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부패는 새로운 잉태의 시발이다.

 

P124

현실을 재정의하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P125

현실의 연속성이 공식적으로 사라진다고 해서, 사람이 나이를 들면서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환의 순간이 찾아와 '세상'이 바뀔 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더 이상 없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난관을 뚫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좋은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

 

속수무책 나이듬은 그저 받아들임이다. 그러니 아이와 같이 된다.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가 되는 것이다. 그토록 저항하고 걷어내려 했던 것들을 이제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즐길 수 밖에 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좋은 노인이 되면 얼굴에 항상 미소가 머무는 것이다.

 

P127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위기에 처했을 때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그곳까지 데려온 이전의 자신으로 물러났고,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데 실패했다. 위기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삶이 가져다 준 선물이고 신호였다. 결국 그의 배는 파괴되었다.

 

P128

오래된 세계를 놓아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일이 교대로 일어나는 것은 삶의 근본적이고 규칙적인 양상이다.

 

P131

전환은 오래된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과정이다. 끝과 시작의 사이에는 중간지대의 틈이 있어서 새로운 삶으로부터 오는 모든 혼돈이 흘러간다. 중간지대가 없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없다.

 

P132

발전의 길은 이전의 우리를 놓아버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것을 찾았을 때 따르는 피시테일링 코스이다. 제시간에 놓아 버려야만 새로운 것이 된다. 이것이 전환의 방법이고 인생의 길 또는 방법이며, 구체화되고 해방되고 축소하고 감소하는 흐름의 교류이다.

 

P134

삶의 길은 구불구불한 길을 가는 여행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멋진 곳을 오르려면 구불구불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P135

우리는 습관적으로 삶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들로 자신을 규정한다. 그리고 처해 있는 범위와 관련해서 우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이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만일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소개를 해본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대부분 항상 변하는 사물에 싫증이 났고 자신의 삶이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힘차고 활기차다.

 

P139

당신이 걸어온 길

- 큰일에 직면하거나 중요한 선택을 했던 교차점들

- 매혹적이었지만 하지 않았던 일들

-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생각되는 일들

- 길의 유실, 우회, 길 앞에 놓인 장애물들

- 가파른 곳, 또는 브레이크를 극복해야 했던 곳

 

P157

당신이 무슨 수로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비판에서 벗어나 있어. 당신은 자신을 거기서 벗어나게 한 거지.

 

나도 마찬가지인가?  

 

P163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아내는 동의하지 않았다. 10년간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말할 방법을 찾았다.

 

정말 힘들게 살았을 것 같다. 나도 비슷한 지경이다. 대화는 하지만 공감이 안 간다. 이야기는 듣지만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무적일 것이고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면 관계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계약이 된다. 어기면 벌금 아니면 형벌이 내려진다. 그러니 긴장할 수 밖에. 이런 관계에서는 더 이상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니 변해야 할 밖에 다시 나를 보고 아내를 보고 깨달아야 할 것을 바닥에 놓인 진실을 다시 봐야 한다. 실체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P166

한 인간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모든 임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최후의 시험이자

증거인 것으로, 다른 일들을 위한 준비이다.

 

P167

나는 묶여 있던 마법에서 깨어났다.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을 진실로 바라보았고, 그녀의 아픔과 자기거부 그리고 그녀가 갈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사랑은 그 사람의 실체를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내에게 느끼는 사랑이 아니다. 확신한다.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같은 사랑이다. 그러니 아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연민한 것이고 이는 종교적일 수도 있다. 그간의 일들을 볼 때 그는 아내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아내는 아내가 아니라 죽어가는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사랑으로 품은 것이다. 연인이 아니다.

 

P171

남자에 관해 꿈을 꾸는 여자는 자신의 남성적 부분에 관한 꿈을 꾸는 것이며, 칼 융은 그것을 ‘아니무스’라고 불렀다. 개에 관한 꿈을 꾸는 남자는 장난 잘하고 직관적인 개와 같은 자신의 특성에 관한 꿈을 꾸는 것이다.

 

P175

도전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혜는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들이 지혜로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혜가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P180

당신은 구두 뒤축으로 탕탕탕 세 번 굴렸다. 그러자 획 날아가 버렸다. 이 모든 모험이 끝난 후 당신 안에 그 힘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마법사가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작 당신이었다. 당신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해답은 발뒤꿈치에 있었던 것이다.

 

P183

하나의 삶의 양상과 그 다음 양상 사이에서 짐까지 들고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을 구한다는 환상이 바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P186

일을 진행하면서 그들은, 사기와 자기만족은 새롭게 수리한 건물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세계를 벗어나서 낯설고 고귀한 경험을 통해 그전의 오래된 세계, 하지만 지금은 변화한 그 세계로 돌아오면서 얻어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P187

전환의 방법과 삶의 여행 기술이 별개의 것이라면, 그래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모방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방은 언제나 죽은 것을 창조해 낸다. 모방은 본래의 뜻을 단순화시키고 실제로 중간지대에 놓인 바로 그 사람들이 진짜 창조성을 보여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P193

인생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한 논리적인 방법으로 재연할 수 없는, 부패한 꿈과 무익한 노력의 거름으로부터 자라고 있다.

 

P194

돌이켜 보면 길을 시작하는 데 이정표 없는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은 소위 학위 취득이라는 확실한 징표가 있어서,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고 선생님이 되는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P198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판단하는 직업이 계획 없는 여행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P198

경력 개발이라는 방법으로서의 길을 가는 대신 '인생행로라는 의미의 길'을 통해 내가 필요로 하는 일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되었다.

 

P207

"당신이 나가서 그런 신교육을 받는 것이 좋아"라고 한 여자의 남편이 강좌 후 늦게 귀가하는 부인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아내 역할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야."

 

아내가 스쿠버다이빙을 계속 해서 강사가 되었다.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아침에 매일 수영을 하러 나갔기에 아침에 엄마의 부재로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부재인 그녀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와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이해의 차이였다. 나도 결국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P215

일의 변화는 그들이 알고 있었던 조건과 규칙을 버려야 하고 중간지대로 곤두박질치게 해 사람들을 불안케 하는 매우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P218

중간지대는 과거의 인생이 사라진 후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고 적응하기까지의 중간 시간이다.

 

P219

중간지대는 인생에 있어 아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시간과 같다. 중간지대는 더러운 것을 지우개로 지우고 나서 남게 되는 회색의 희미한 자국처럼 인생에 넓게 펼쳐진 무색의 공한 때와 같은 것이다.

 

P220

중간지대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발산되는 혼란스런 신호를 받는 시기다. 때로는 신호가 소음과 뒤섞여 있고, 어느 때는 신호가 상쇄되어 없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음침한 적막뿐이다.

 

P222

노심초사란 게임은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것’이다.

 

P228

소극적 수용력이란 원인과 사실에 민감해하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구심’등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P232

‘팔팔한 노인이 여행이나 문화 행사에 같이 다니면서 새로운 관계를 가질 사람을 찾고 있다.

 

P233

나이가 든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느꼈던 것보다 더 많이 늙었다는 것을 느꼈다.

 

P239

나중에 그녀가 말하길 그날 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관계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P241

세상은 그 어느 것보다도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경험은

너무나 많은 오랜 경험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각은 그 어떤 오래된 생각과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은 진짜 새로운 경험과는 함께 할 수 없다.

 

P243

나는 그녀의 유머감각, 지적인 능력, 아름다움, 사랑스러움에 사로잡혔다.

 

P246

결정은 증거와 논리의 기초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선택은 언제나 의지의 결과이다. 중요한 활동은 결정의 기초 위에서 더 잘 나아가지만, 인생 자체는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정은 결정자가 이해의 득실을 따져서 행동 계획을 세우려는 노력에 기초해 외부 정보와 함께 시작된다. 누구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결정은 비슷한 결정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특별하고 독특하다. 선택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우리가 누구인가로 선택은 시작된다. 결정은 많은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선택은 단지‘예’또는 ‘아니오’두 개뿐이었다.

 

P247

결정을 한 후, 결정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택의 경우 선택 자체가 시작이다. 결정은 우리를 주변인으로 만든다. 선택은 선택한 이를 그림의 중심에 둔다. ,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적으로 실행한다.

 

P251

미래는 현재의 일부라는 것을 발견했다. 해야 할 일은 서두르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하고 주의 깊게 기다리는 것이다.

 

P258

전환은 개인적,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전환이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게발하여 존경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젋은이들에게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P261

더하기의 오류란 우리가 가진 것에 계속 보태기를 하다 보면 결국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게 되고, 그러면 종결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P261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종결만이 아니다. 흔히 중간지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종결만큼이나 두려움을 주는데, 이는 중간지대가 어린 시절 홀로 버려졌을 때 느꼈던 공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P262

대부분은 진정한 변화는 과거의 방식을 조심스럽게 청산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거청산보다 지극히 미심쩍은 새로운 시작에 대해 칭찬하고 보상하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P262

개인은 과거에 성공과 만족을 주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접근법을 포기하는 대신 관계 자체를 포기한. 그리고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관계를 개선하는 길이 맞다는 것이가?

 

P263

개인은 의미 없는 과거 삶의 방식을 내면에서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집과 도시로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진정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할 깊이 있는 전환은 하지 못한 채 변화를 모색한다.

 

P266

마음에서 나쁜 생각, 무서운 생각, 비도덕적인 생각, 당황스러운 생각을 지워내려 노력할 때마다 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증폭되는 현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일단 삶의 원천의 흐름과 접근에 대한 건강한 연결고리를 놓치면, 사람들은 잠을 잔다. , 계발을 멈춘 상태가 되는 것이다.

 

P267

문제, 결점, 열등함은 온전히 나쁜 것만이 아니다. 이것이 없이는 개발과 성숙에 이를 수 없으므로 사람을 구해 주는 힘이 있는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혜로운 이야기를 살펴 보면, 눈에 띄지 않고 무시당하던 어린아이가 마침내 승리하거나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P272

나는 서서히 그녀의 이중 잣대와 연민의 부족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그녀를 동정하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를 파멸까지 몰아갈 기회를 제공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나를 지도해 주는 스승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스승이 되었다.

 

P274

나는 아내의 카리스마에 이끌려 그녀 곁에 머물렀다. 논리적으로는 서로의 차이 때문에 고통스러워졌을 때 헤어져야 했다. 그때 헤어졌다면 그녀를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다.

 

P276

인간의 계발이 인간의 어두운 면과 구불구불하면서도 유일한 특성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시대의 인생관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2000년 전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너희는 완전해야 한다." '완전한' 으로 해석되는 그리스 형용사 '텔레이오스'인데, 지정된 목표에 도착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우리가 온전하게 계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계발은 끝은 특별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융이 개인화되는 과정이 말한 것이다. '죄 없이' 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성숙함과 매우 유사한 의미이다.

 

P278

출장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업종에 종사하든 모든 여행은 또한 출장이다. 그리고 모든 여행은 궁극적으로 귀향이다. 이타카는 우리가 없어도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 황제나 이집트로부터 도망가듯 과거 삶에서 멀어져 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찾아 항해한다.

어디에서 여행을 시작했든지, 어디가 종착지이든지 여행의 진짜 방향은 깊이 있는 현실을 향한다.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방향은 혼란스러워진다. 모든 각성은 작은 각성이었고, 베일 너머를 잠시 넘겨다본 것뿐이고, 갑자기 투명해진 세계를 잠시 경험한 것이다.

 

P279

자연적인 진행은 하나가 죽음으로써 새로운 삶이 진행되는 과정이다라는 말로 전환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좋겠다.

 

P82

나는 미래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미래가 내 삶이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과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P282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할 사람만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고, 새로운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수잔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이때부터 외향적으로 변했고 진심으로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앞으로 나아가 미래를 창조하고, 과거에서 미래로 움직이는 나의 길은 누구도 건너보지 못한 삶의 연장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P283

자신을 위한 정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의 티켓은 편도용이었고, 다른 사람의 티켓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P285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지혜는 삶 그 자체에서 얻어졌다.

 

P286

, 뒤이어 좋은 생각이 다시 떠오르거나 다른 좋은 생각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믿고 기존의 좋은 생각을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감정이 무덤덤해지고 무미건조해지는 것과 새로운 흥분과 관심이 발동하는 전주곡이자 앞서의 흥분과 관심이 끝나는 피날레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86

이처럼 관심이 내용에서 과정으로 옮겨가게 된 변화는 시간을 붙잡아두려 하던 젊은 시절에는 없었던 것이며, 나이가 들고 나서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286

나이가 들면서 받은 선물 중 하나는 그 순간에 집중하는 능력이었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 35년간 노력해 왔지만, 그저 마음이 자연적으로 느려지고 현재의 순간이 그 자체로 충분함을 발견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P288

마음에 따라 행동했고 결과도 좋았다. 나의 인생이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 궁금해하면서도, 내가 들어간 세상을 사랑했다.

 

P289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독자들은 삶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는 걱정을 멈추고 그저 행동에 옮기라는 뜻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마음을 따르라’는 것이 ‘생각을 멈춰라’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는 매우 다르다. 마음을 멈추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이를 갈구한다는 것이다. 해답은 행동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찾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갈 길을 발견하는 데에서 온다. 마지막 기회의 순간에 방향을 찾는 메커니즘을 켜두면 전환점을 놓치게 된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시간이 없다. 그 대신 앞서 종결의 시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P290

나는 왜 그렇게 비교적 빠르게 전환을 겪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1년 반 만에 재혼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아내가 죽음을 맞았을 때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2년 전 진찰 결과를 알게 된 후 “안녕”이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전환은 시작되었다. 미해결로 남아 있던 온갖 일도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그녀와 의사간의 불륜으로 인한 갈등도 뒤에 남겨졌다. 그녀의 병을 발견하기 오래 전부터 우리는 무서운 종결을 맞고 있었다.

 

준비된 재혼이다. 오래 준비한 재혼. 내가 볼 때 이 분은 이 책을 나 재혼 잘했다. 재혼을 잘 하기 위해 마음을 이렇게 다스렸다. 전 아내를 잘 보내주어서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는데 마음의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니 전환할 때는 잘 보내주고 잘 맞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은 것 같다. 18살 연하의 아내를 맞이하려면 이정도 뻔뻔함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ㅋㅋㅋ 아무튼 박수를 보낸다.

 

P295

미래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움직임의 형태로, 또는 우리가 곁눈질로 볼 수 있는 양상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미래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또 예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삶에서 우리를 이 지점까지 데리고 온 오랜 방식을 놓아버려야 한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을 초조하게 찾아 헤매기 전까지 그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P296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것은 환상적이다. 아침이 되면 빛은 꿈과 과장된 이미지의 밤이 지난 후 진짜 모습을 전달하는 배달부가 된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것은 반대가 된다. 낮의 현실은 편편해져서 평범함 속으로 들어간다.

 

P297

나는 표류했고, 수잔은 흔들렸다. 나는 낮과 현실을 놓아버리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의 밤은 작은 전환이었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놓아버리는 연습을 했다. 또 다른 이미지가 과거를 떠돌아다닌다. 어둠은 중간지대를 기름지게 한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원천이다. 나는 그 안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잘자요. 잘 자요. 안녕히...놓아버리고, 그리고 세월의 흐름을 타고...

 

P298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즉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진리임을 믿는 것, 그것이 천재성이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확신을 말하라. 그것이 우주의 감각이 될 것이다.

 

P300

게다가 이 책을 시작하기 전까지 글쓰기를 통해 내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게 될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사랑이나 예술에 있어서 대기만성형이었다. 나는 평생 이 두 가지를 통해 마음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재혼해서 사랑을 이뤘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오랜 간병을 통해 아내와 사별하고 사랑을 이루었다는 건지? 약간 헷갈리지만 좋게 봐주기로.

 

P300

, 글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때 필요한 창조적인 위험으로 나를 좌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이런 점들 때문에 나의 저술 활동이 의심스러웠고 그것을 방종이라고 보게 되었다. 특히 내가 출판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쓸 때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아직도 그 글에 매달려 있는 거예요?" 이 질문 속에는 가족의 행복과 안녕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미가 들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아내도 나의 이 글쓰기 활동이 의심스러웠고 그것을 방종이라고 보고 있다. 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P302

나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게 형태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해서 뒤에 있는 차들이 공회전을 하고 경적을 울리는 그 짧은 시간에 메모를 하기도 했던 사실들을 잊고 있었다.

 

P303

삶은 상상 속의 골대를 향해 가면서 상대편에 대항해 땅을 차지하려는 풋볼 경기가 아니다.

 

P304

삶이라는 나무의 구부러진 가지 등 예술은 다 돌지 못한 순환선을 가는 우리의 삶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삶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굽이쳐 도는 길과 같다.

 

P307

우리가 일생을 통해 이루는 것은 서로 부딪치면서 ‘세상’이라고 알고 있는 또 다른 안전한 존재를 상실하는 것, 그러면서 새로운 시작에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삶이 상실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내 자신이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를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원래 있었던 곳은 어디 일까? 안전한 곳? 나다운 곳? 아마도 나다우면 아름답고 나다우면 편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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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08:02:34 *.50.21.20

갈피갈피에서 웨버라면 재미있게 요리할 수 있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ㅎㅎ 

조금 더 생각을 발전시켜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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