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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4일 11시 53분 등록

나의 인터뷰 수업 과제 + 후기

2014 10 11

 

 

 

  • 당신 인생의 사랑이 있었나요? 그게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러셀: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 허황하게 들릴 지 모르나, 오늘의 나는 이 야심한 열정이 만들어낸 사람이니까. 이들은 나의 인생을 제 맘대로 이끌어서 끝없는 고뇌와 절망에 빠트렸고, 동시에 어떠한 시련 앞에서도 멈추지 않게 나를 움직인 동인들이기도 해요.  때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이 열정들을 버리고 싶기도 하였으나 결국 이들이 내 일생의 사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오.  


박지원: 나는 그러니까, 사람을 사랑했나 보오. 누구나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세상을 꿈꿨다오. 내가 살아가야 했던 조선의 현실은 나로선 이해할 수도, 끼어들 수도 없는 뒤틀린 세상이었소. 이미 가진 자들이 제 마음대로 법과 재물을 틀어쥐고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들을 수탈하고 착취하였으니. 나는 그 썩은 주류에 편입되지 않고,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로 적으나마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기여하고 싶었소. 그것이 벽돌 한 장을 굽는 기술이든, 똥으로 퇴비를 만드는 방법이든, 뭐든 좋았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소. 내 일생의 사랑은 그러니까, 사람이었다오.


종종: …… 그걸 알면 지금 이렇게 헤메진 않을 것 같은데요…. 아마도 한 4-5년 전이었다면 저는 제 일생의 열정이 communication이라 답했을 겁니다. 그것은 제 일의 타이틀이기도 했고, 제 일의 본질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제 열정의 핵심에 그것이 있기는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니고, 전과 같이 직업적인 타이틀로 그것을 충족했다 말도 할 수 없군요. 나는 이제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미궁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

러셀: 행복! 그게 또 제 전문분야 아니겠습니까. 제 전문분야가 좀 다양하긴 하오만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자신만의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 그것이 또 얼마나 엄청난 개인적 비극이자 사회적 낭비인지 아시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불행에 빠지는 이유와 행복을 이해하는 법에 대해 책을 쓴 적도 있답니다. 그것은 제가 경험과 탐구를 통해 알고 있거나, 혹은 무의식 중에 몸으로 터득하고 있던 진리에 빛을 비추는 작업이었고, 저 또한 그 작업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행복이란 건 아주 심플한 것이죠. 행복한 사람이란, 자유로운 애정과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거요. 여기서 객관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 한 가지 팁! 남에게 신경 쓰지도 말고, 휘둘리지도 마세요. 남들은 당신의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 인생 살기가 훨씬 더 수월하다니까.

 

박지원: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돌이켜보오. 그것은 마지막 과거 시험에서 백지 답안을 내고, 연암 골짜기에 들어가 일생의 교우들과 선비의 학문과 백성의 삶을 연결한 실학의 길에 뛰어들었을 때라오. 또한 저 머나먼 열하로의 여정 또한 잊을 수 없소이다.  그때 알았지.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배우는 기쁨, 그것이야말로 내 지난했던 인생을 버텨준 한줄기 빛이자, 행복이었소.

 

종종: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 하면 이것 저것 많은데 말이죠. 그 모든 순간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 성질로 정리하라면 당최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장 빈번했던 행복의 순간들을 돌이켜 본다면, 뭔가, 통하였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에게 나의 진심이 전해지거나,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나, 책을 만났을 때도. 통할 때, 그러니까 어떤 매개 또는 계기를 통해 갑자기 생각도 못한 타인과 내가 연결되는 순간에 저는 행복합니다.

 

  • 결혼에 대해 말해주세요

캠벨: 감히 말합니다만, 결혼으로 맺은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요, 결혼은 관계이지요.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 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러셀: 저는 일생 동안 사랑을 갈망했지요. 살면서 여러 여성을 사랑했고 결혼도 여러 번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인정된 제도로 보호받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고, 또 효과적인 삶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요. 실은 결혼은 상당히 엄격한 환경과, 엄청난 노력 하에 가치를 발휘하는 대단히 까다로운 장치이기도 해요. 특히, 결혼을 통해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엄청난 헌신을 요구받는 여성들은 남편이나 자식들이 동일한 헌신으로 보답받기는 커녕, 오히려 성가신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결혼이라는 폐쇄된 구조의 심각한 문제점이자 부작용이라 생각됩니다.     

인습에서 벗어난, 진정한 동반자적 의미의 결혼, 사랑의 지속적인 발현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결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더니흠흠.

 


후기


한달 반의 면죄부를 부여 받고, 동기들의 수업 과정과 동떨어진 작업에 몰두하다 참석한 수업. 지난 며칠 간 콩국수와 팥칼국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머리를 싸매다가 갑자기 다시 철학과 신화와 역사의 거장들을 소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말 부분만 남겨두고 진전을 멈춘 마지막 두 원고를 내팽개치고, 과제를 펼치다 경악했다. 그 동안 만난 위대하고 고마운 인물들이 불과 한달 반여 만에 모조리 내 머리 속에서 실종된 것이다! 정말 누구 하나 생각나지 않아서, 일단 그간 쓴 북리뷰라도 다시 읽어보자고 시작한 파일 읽기에만 시간을 다 써버렸다. 이런. 답안을 생각하고 쓸 시간이아니 시간이 있더라도 다시 머리 속으로 그들을 모셔와 답을 해달라 요구할 상태가 아니었다.

 

질문을 먼저 만들고, 그나마 가장 동질감을 느꼈던 (또는 그랬다고 기억하는) 두세 명을 그냥 억지로 붙들어 앉혔다. 러셀, 캠벨, 박지원. 그들을 돌이키는 데는 시간도 필요했지만, 그들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배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누덕누덕 간신히 답을 끼워 맞췄다. , 이 과제시간에 쫓겨서 이렇게 대충 할 게 아닌데. 통렬한 반성과 함께 진행된 수업은 진지했고 깊었다. 내가 설익은 원고들을 들고 씨름하던 두 달 동안, 동기들은 그간 함께 만난 스승들과, 또 나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스승들과 더 깊고 맑은 샘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들 본인에게 의미 있고, 어울리는 스승을 골라, 본인의 현재를 갈무리하는 질문을 던졌고, 스승과 자신이 같이 정리한 답안을 공유해줬다.

 

수업이 끝나고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지금 내 삶의 단계는, 아직 어떤 답을 할 것이냐가 아닌 어떤 질문을 해야 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질문은, 지금 나의 상황에 과연 유효했던가. 어찌되었든 나는 일요일 한 나절의 이 귀한 시간 동안 동기들의 과제를 듣고, 질문하고, 다시 그 따위 질문을 한 나의 스스로 파악되지 않았던 심중을 헤아리고, 점심을 함께 먹고, 꼬라비로 나의 질문과 답변을 던졌다. 헐거운 질문에 헐거운 답변을 늘어놓으며 부끄러웠다. 또다시 충실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초라한 마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수업에서 꽤나 중요한 것을 받아왔다. 이번 인터뷰 과제는 내게 박지원의 생애와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해주었다. 그것은 아직,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지만 중요하다.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건진 것은 첫 책의 초고를 간신히 탈고하고 이제 그 결과물을 마주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또 다시 솟구치는 나의 회피욕망에 대한 몇 가지 의미심장한 상징과 기억이다. 원고를 쓰는 내내 출몰하던 질문과 추궁은 그랬다, 그러니까 국수 따위가 대체 내 커리어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이며, 내가 거기에 할 말이 있을 전문가도 아니지 않느냐는.  나는 또 자꾸, 그러니까 책에 대해 기대하지마. 책이 나오면 잊고, 얼른 다른 일, 다음 프로젝트로 도망가라는 회피본능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추억과, 내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의 미래에 대한 첫 글에서 공동코드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제 증인이 존재하는 진짜 ‘모태면식인이었고, 초딩 시절 글짓기 시간에 작가가 되고 싶다며, 집안 서재에 꽂혀있던 한국수필선집에서 본 문체를 흉내내어 제출한 내 인생 최초의 에세이의 제목은 면식성인의 신탁처럼 다가왔다.


평소에 딱히 날 이뻐하진 않았던 선생님이 처음 날 칭찬하며 반 아이들 앞에서 전문을 읽어준 그 글짓기의 제목은 이랬다. ‘나의 라면 아줌마.’ 


할렐루야, 한없이 신비로운 면식의 은총이여!  

 




IP *.103.1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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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2:21:34 *.113.77.122

국수와의 만남은 운명이고, 결국에 그 운명에 맞닥드리게 된것을 축하! 

연락이 온것도 운명적 시간이 되었기에 이루어진것이 아닌가 싶은데 좋은 만남이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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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23:56:58 *.103.151.38

의미심장하다 못해 어이 없게도, 또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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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2:56:50 *.201.146.69

중간지대는 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질문하는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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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23:57:52 *.103.151.38

저야 팔랑귀에 불안장애이다 보니... 질문만 잔뜩...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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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6:30:11 *.223.25.228
종종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드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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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00:00:26 *.103.151.38

이상한 우연, 이상한 시절이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마법같은 시간이라 생각하려고. 참치에게도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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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0:32:54 *.255.24.171

나에게도 숙제같은 것이 있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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