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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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고 싶은 어떤 삶의 모습이 있습니까? 혹은 꿈꾸는 어떤 지경이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그 모습, 그 지경,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요? 책을 읽어 연구해보기도 하고,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그런 경지를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세간에 ‘롤 모델’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 혹은 그를 내 마음 속의 영웅으로 삼고 있다는 표현…. 역사 속의 인물이든 현존하는 인물이든 부쩍 그렇게 소위 타인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입니다. ‘롤 모델’은 저마다 품은 욕망과 장르에 따라 다양합니다. 운동선수에게는 전설적인 운동선수가 있고, 지식인에게는 먼저 살아낸 어떤 지식인이 있고, 부자를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잘 알려진 부자 누군가가 수련을 견디게 하는 영웅으로 자리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소위 ‘먹물’이면서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영웅을 품고 떠나온 사람들을 봅니다. 억대 연봉의 농부를 영웅으로 삼고 떠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나 니어링 부부의 책 같은 것을 읽고 그들이 이루어낸 것과 같은 삶을 살아보겠다며 떠나온 사람들도 여럿 보았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장르에서 현존하거나 이미 선행했던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거나 ‘마음 속의 영웅’으로 품고 그들의 삶과 경험, 가치와 철학, 습관과 행동 따위를 배워보려는 노력은 충분히 되고자 하는 지경으로 다가서도록 나를 자극하고 수련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미약한 나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은 내가 원하는 지경을 향해 나가다 좌절의 웅덩이를 마주했을 때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제가 있습니다. 내가 그 여정의 당당한 주인일 때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움켜쥔 고삐를 놓치지 않아야 스스로 삼은 ‘롤 모델’도 ‘마음 속의 영웅’도 제대로 역할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점에서 차라리 ‘롤 모델’이니 ‘마음 속 영웅’이니 하는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여정을 함께 하는 길벗’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어느 누구도 그가 삼은 모델이나 영웅의 경로를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들의 길과 내가 걷는 길은 도저히 셈을 할 수 없는 정도의 다른 변수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더 심하게 말하면 ‘누군가를 마음속 영웅’으로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제 삶의 주인으로서 고삐를 움켜잡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확대하면, 내가 정치적 영웅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경향의 사람이라면 그것도 이미 당당한 주권을 세우지 못한 국민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봅니다. 영웅을 길 위에 묻을 수 있어야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정치적 영웅을 죽일 수 있고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어야 나라도 더 굳건해 질 수 있습니다.
숲을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그곳에는 누구도 영웅이 아닙니다. 하지만 또한 누구도 영웅 아닌 존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푸르고 깊고 향기롭고 다채로울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영웅을 죽일 수 있어야 비로소 내가 주인이 됩니다. 모든 영웅이 죽고 스스로가 주인인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되어야 정말 살만한 세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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