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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7일 00시 47분 등록

<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 류해옥 옮김, 문예출판사

 

1.   저자에 대하여

 

나오미 레이첼 레멘

 

레이첼 나오미 레멘 박사는 마음과 몸의 조화를 이루는 건강법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지닌 사람들을 치유하는 심리적인 접근 방식을 계발하고 의사들에게 그 필요성을 교육하는 일에 투신하는 선두주자로, 20년 동안 암 등 중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도한 빌 모이어가 진행하는 PBS 방송의 특집 치유와 정신에서 소개된 바 있는 암환자 복리 증진 프로그램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하며 의과 분야 책임자다. 현재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임상 교수이다.

 

저자에 대한 개인적 평가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 및 목차

 

이 책은 무척 짧은 58개의 콩트로 이루어져 있는 에세이다. 문장이 쉽다. 절반은 대화체다. 대부분의 꼭지글은 사건 사례로 불쑥 들어간다. 그 사례들은 그녀가 실제로 겪은 일이어서 금방 읽힌다. 깊은 성찰과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 책을 쓰는 그녀는 평생이 걸린 셈이다. 독립적인 짧은(!) 콩트로 이루어지고, 그 콩트가 대화를 섞은 것이고 발견을 드러낸 것으로 나도 책을 쓰고 싶다.

 

5부로 구성된다. 1부는 할아버지와의 구체적인 추억을 다룬다. 2~5부는 장간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대신 종교적인 것은 중간 중간 한꼭지 씩 넣거나, 뒤에 배치했다. 이건 같은 종교적 배경을 갖지 않은 독자를 위한 배려리라. 그녀의 책이 재미있고 깊기 때문에 읽어가다보면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각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역자의 말

추천사 고도원

서문 할아버지의 축복

1 인생의 향기

2 눈높이를 낮출 수 있다면,

3 삶을 강하게 만드는 법,

4 영혼의 쉼터,

5 받아들임, 본래의 모습,

6 신비

 

 

2)   장점 및 보완점 평설

 

 

서강대 교목이었던 이가 번역한 책 <할아버지의 기도>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유대인 카빌라 랍비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거의 랍비 수준인 레이첼 나오미 레민이 쓴 책이다. 그녀는 소아과 의사였고 45년간 희귀난치성질환인 크론병을 앓았고 의사와 의료진, 심각한 병에 걸린 이들을 상담하는 이였다. 그녀는 섬김과 봉사를 말한다. 그 근저에는 카빌라의 신념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다.

 

아마 그의 모습은 성과’ ‘전문성을 강조했던 미국사회에 대한 균형 맞추기 대안일거다. 융심리학자였던 존슨은 문명과 그림자에 대해서 시소라는 이미지를 사용했다. 문명화된 부분, 자아와 그림자는 시소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사회가 행복하다. 개발 위주, 성과 위주의 미국사회가 놓치고 있고 재조명 해야 할 것, 시소의 오른쪽에 균형을 맞춰야 할 부분에 대해서 레이첼 나오미 레멘은 말하고 있다. 러시아계 미국인 이민자 였던 조상들은 3세대 전에는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희박해진 가치를 그녀는 재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는데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가 자란 집, 훈련 받는 대학의 교육과정에 대한 묘사는 현대의 우리 문명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전문적인 의사이면서도 마음의 따뜻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그녀의 작업은 미국 사회, 아니 문명 전체에서 중요할거다. 문명에 대한 성찰이니까. 유대교 카빌라 랍비였던 외할아버지의 신념과 삶은 우리가 간과했던 시소 오른편에 있는 것들 중 하나다. 기독교의 배경이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빅뱅으로 인해 우주가 만들어졌고 그때 빛은 작게 부서져 모든 피조물 안으로 들어갔다는 거다. 다른 이들의 을 알아보고 섬기면 자신의 빛은 발현된다. 이것이 축복, 봉사의 정의다. 본래의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커다란 섬김이다. ‘다른 이들 안의 잠재된 불꽃을 댕기는 쏘시개불꽃의 자신의 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구본형 사부님을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축복과 섬김에 대해 말하는 구절에서 유대교 카빌라와 불교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불성이 모든 이들에게 나눠져 있다는 부분과 카빌라의 빛이 모든 이들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부분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즐거운 숙제를 몇 개 받았다. 첫째, 요쉬선생처럼 나 역시 내 직업 관련해 우울증에 빠져 있다. 그녀가 그에게 권했던 일지를 나도 써보고 싶다. 지금은 휴직중이지만 오늘을 관찰하면 다시 일터로 복귀했을 때도 가능하리라. 둘째, 내가 하는 일의 상징을 하나 떠올리고 그걸 정리해 보고싶다. 나의 스승 구본형 사부님은 이걸 쏘시개불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책을 읽다가 이 책의 제목을 보았다. 그가 이 책의 추천자다.  

 

그녀는 보통의사와는 다르다. 영혼과 마음이 어떻게 치료와 관련이 있는 지를 무수한 실제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한다. 또 하나는 유태인 랍비였던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삶을 보는 자세다. 45년간 크론병을 앓았다. 35년 이상 의사였지만 의대교수, 무난한 소아과 의사 자리를 버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갔다. 그녀가 깊고 따스한 시선으로 나지막히 하는 이야기는 단순하고 깊어 힘이 있다. 특히 몇 가지 사례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첫째 이야기. 나이든 부모의 늦게 본 아이가 사경을 헤맨다. 부모는 장시간 수술에 들어가는 어린 딸을 위해 환자복에 성인의 메달을 단다. 그건 성지순례에서 샀고 종교적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그걸 딸이 지니고 있으면 부모는 마음이 놓였다. 알다시피 병원 환자복은 갈아입으면 한꺼번에 세탁된다. 당연히 메달을 잃어버렸다. 바쁜 레지던트일 뿐인 그녀는 자신의 선생인 소녀의 주치의에게 긴 쪽지를 썼다. 그 교수는 12명의 회진 부대를 이끌고 마지막 환자를 본 후 지하 세탁실에 내려가 아이의 메달을 찾도록 했다. 환자 부모의 마음을 돌보는 걸 가르쳤다.

 

둘째 이야기. 암전문의 요쉬 선생은 우울증에 걸렸다. 저자는 요쉬선생에게 매일 관찰일기를 쓰게 했다. 같은 걸 다르게 보는 훈련이었다. 처방은 매우 쉽다. 첫째, 놀라운 일, 둘째, 감동받거나 인상깊은 일, 셋째 영감을 주는 걸 일과를 마친 저녁에 15분 정도 내서 휘리릭 메모한다. 요쉬 선생은 흘려보냈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우울증에서 회복되어 갔다. 그는 암세포가 매일 몇 미리씩 자라는 걸 보고 놀라워했고, 암에 걸린 엄마가 4, 6살 아이들을 사랑으로 기르는 걸 발견하고 감탄했다.

 

셋째 이야기, 유방암 때문에 한쪽 유방 절제 수술을 받고 하고서 남에게 몸을 보여주지 못하던 여자가 5년 생존 시한을 넘겼다. 사랑하는 이를 만났다. 그는 화가였다. 그녀는 그가 그려준 꽃문신이 가득한 가슴을 레이첼에게 보여준다. 유방재건수술 비용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신혼여행으로 쓴다.  

 

나는 재생불량성빈혈 골수이식 비용을 모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돈을 모은다는 건 골수이식을 전제한 거다. 그렇게 미래를 만들어가면 정말로 몸이 나빠져서 수술할 인연을 스스로 짖는 거다. 그러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 그리고 보시를 많이 해라.’ 나는 그 말대로 하려고 노력했고 정말로 건강이 좋아졌다.

 

넷째 이야기, 응급실로 안고 온 아이의 몸의 멍, 체중 감소 때문에 미혼모였던 어린 엄마는 유아학대 혐의를 받았다. 저자가 아이의 대사이상을 밝힘으로써 혐의를 벗겨주었다. 몇 년 간 그 모자와 소아과 선생님과 환자로 지낸다. 저자가 기득권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려고 할 때 애기엄마는 자기 목의 금십자가를 벗어준다.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이들이 선생님에게 힘을 줄 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와 보호자들과 소통한다. 나는 어떤 교사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가 성경을 재해석한 것도 와 닿는다. 그 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도 성경 속의 이야기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삼아 누구나 읽어서 이해할 만하게 현실의 여러 일들에 적용하고 있다.

 

야곱의 씨름에서 천사가 허벅지를 친 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를 기억하게 위해서라고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외할아버지는 말했다. 가장 힘든 경우에도 건질 게 있다. 그러니 그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삶에도 축복해야 한다. 유대인의 건배사 레치얌삶의 위하여라는 뜻인데 기쁜 일과 함께 고통도 있는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축복한다는 의미다. 이 사례를 읽으며 나는 내가 떠나온 어딘가를 떠올렸다. 유령취급당하고, 치이던 시절. 문 벌컥 열고 들어와 내게 뿜어대던 검은 화염방사기. 관리자에게 불신당하고 상담을 받아야했던 시기, 가끔 꿈에 다시 돌아가는 곳. 그 때가 내게도 저런 의미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군대고참 ,시험방의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는 사람처럼 나는 그곳 배경의 꿈을 악몽으로 분류한다. 신기한 건 가장 외롭고 힘들던 그 때의 수확물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지금의 남편과 변경연을 만났다.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다시는 누군가에게 사람을 소개하지 않겠다 생각한다. 그녀는 하나님의 마지막 선물을 받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두 딸과 아들을 위한 선물 말입니다. ‘우리 엄마는 무능한 남자를 버린다는 그 깊은 무의식을 치유하는 것이거든요. 그럼으로써 딸은 남자를 버리지 않고 아들은 여자를 불신하지 않게 될 겁니다. 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읽다가 그 얘기를 듣고 그녀를 생각했습니다. AS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세의 출애굽에서 자유를 말한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 왜 저항이 많은 지를 특유의 시각으로 서늘하면서도 환하게 말한다. 불타는 배의 갑판에서 뛰어내릴 때의 선택은 죽느냐, 미지의 곳으로 가느냐였다. 그것과 비슷하게 다가온다. 그 구절을 옮겨적어 본다.  

P322 “노예냐 자유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란다. 우리는 노예생활과 알 수 없는 미지의 삶이냐를 놓고 선택하는 거란다.”

p. 321 “그들은 고통에 대해서는 알고 있단다. 오랫동안 겪었거든. 거기에 익숙해져서 어떻게 자유를 누려야 하는 지를 전혀 알지 못했던 거야.”

p323 “자유를 향한 투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손수 함께 하신다. 오직 자유

지닌 사람만이 그들 안의 선에 따라 살 수 있고, 참으로 신을 섬기고 세상을 원래 모습으로 회

시킬 수 있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조산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손녀를 축복하는 것, 3살까지 말을 못하는 손녀에게 말을 가르친다. 4살짜리에게 매일 소꿉놀이 컵으로 물을 주게 해서 싹을 틔우게 한 후 생명을 키우는 건 성실함이란 걸 알게 했다. 노아의 방주에 탔던 동물 색칠하기 그림책, 매주 금요일마다 손녀를 만나 흰 촛대를 밝히고 신과 대화한 후 손녀에게도 축복을 빌어주고 일주일 간 있었던 일을 기도해주었다. 그런 할아버지나 인연이 있다면 아이들이 잘 자랄 것 같다. 할머니를 사랑했던 것도 인상깊었다. 향이든 상자로 14일간의 정화기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그들 부부의 방식, 25녀간 혼자 산 뒤에는 그 상자를 묻어달라 했다. 평생을 두고, 죽음을 넘어 깊이 사랑한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저자는 지혜롭게도 자신이 본 할아버지의 모습이 연륜과 세월이 가르치고 연마한 것임을 알고 있다. 젊었을 때의 할아버지는 지나치게 곧았다. 미국 이민국에서 이상하게 인터뷰했다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내와 아이들을 놓아두고 나가버렸고, 선물받은 인형을 우상이라며 없애버려 어린 딸들을 울렸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매일 초를 밝히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딸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 다만 할아버지처럼 그걸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그녀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인상깊었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유대인 랍비의 아내였던 외할머니는 사모로써 힘들 이들을 돌아보았다. 큰 딸이 어머니를 동행하게 했다. 가정간호사였던 어머니 역시 딸에게 왕진가방을 들게 했다. 그 시간이 모녀의 독점적인 시간이었다. 3살짜리가 계란을 정리하고 싶어하면 깨트리더라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14살이 되면 잘 할거니까. 나도 이렇게 아이를 기르고 싶다. 그런데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러 갔던 랍비 아내로서의 현장, 가정간호사로서 일했던 환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갈 나의 삶의 현장에 대해 생각한다. 역시나 목사님 사모인 손지연 샘처럼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내가 근무하는 특수학교에 왔는데 엄마가 그 일에 신념, 사명을 갖고 일하는 모습이 아니라 직업의 하나로 지쳐서 억지로 하는 모습은 아니길 바란다. 남편과 자녀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그녀는 미혼이었을까?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험을 가졌다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조망이 그 부분에도 주어졌을 텐데 관련 구절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죽음과 중병이 삶의 지혜, 실체를 만나게 하는 예들이 좋다. 나는 엘리자베쓰 퀴블러 로스를 좋아해서 한국에 번역된 그녀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녀는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의사였다. 죽음 앞에서 삶은 명징해진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분명하다. 그녀와 비슷한 얘길 레이첼 나오미 레벤이 한다.

 

그녀가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깊다. 일종의 통합의학일거다. 호스피스 병동의 관련인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상징물을 하나씩 올려놓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식이다. 전화교환원은 다리를 갖고 왔고, 사회복지사는 촛불을 옮겨붙였고, 간호자는 자신의 역할이 초에 불을 켜는 거라고 했다. 행정가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처럼 안정감을 주는 역할이었고요. 

 

수의사가 되려다 소아과 의사를 지망한 레지던트가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켰다. 그를 상담하면서 그녀는 적극적 명상을 시도했고 화가 나 있는 그 레지던트의 내면에서 성 프란체스코를 알아냈다. 그래서 그가 앞으로는 성 프란체스코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도 아시시에 가고 싶다. 여행기를 읽으며 부릉부릉 하다가 언젠가는 이륙하고 싶다. 파리와 프로방스, 모네의 지베르니도 거기 포함된다. 

 

 

3)   감동적인 장절

 

17 외할아버지는 헤브라이 신비 철학의 전통을 이어오는 카발라 학자였다. 카발라에 의하면 태초의 어느 시점에 거룩한 존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꽃으로 나뉘어 우주에 흩어졌다고 한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 안에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신의 불꽃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신의 현존을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 카발라는 우주 안에 숨어 있는 거룩한 존재가 매순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고 가르친다. 세상이 우리의 귀에 속삭이고 우리 안에 계시는 신의 불꽃이 우리 마음에 속삭인다. 외할아버지는 그것을 어떻게 듣는지 가르쳐 주었다.

거룩한 존재와 예기치 않는 만남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축복을 빌어주는 일이다. 세상 안에는 거룩함을 일깨우는 축복들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순간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누가나 삶 속에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거기 특별한 축복이 있을 것이다.

불성을 표현하는 말과 비슷

 

 

60 부처 안에서 은신처를 구한다는 말은 밖에서 부처를 찾는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 안에서 부처를 만난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부처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가능성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은신처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통으로부터의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부처의 씨앗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닌 지혜를 발견하는 능력이리라. 지혜는 우리가 얻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혜란 우리 자신이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란 우리 자신이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의 기본적인 인간성 안에 있는 그것을 향해 나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연민의 마음을 지닌 것, 즉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고 나누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 안에 있는 부처의 씨앗에 물을 준다.

동심원, the garden to cultivate compassionate wisdom

 

267 누군가의 삶을 축복해준다는 것은 그가 지닌 고유함을 존중하는 것이다.

 

20 외할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외할아버지에게서 터득한 삶의 성찰을 의사로서 내 일에 연관을 짓게 된 것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외할아버지는 삶의 축복을 터득하신 분이었고, 그분의 자녀들은 봉사의 삶을 살려고 했다. 그것이 결국 같은 것임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일치될까? 나는 궁금하다.

나의 영성에 대한 관심, 기도, 수행이 나의 직업이나 일상과 어떻게 일치시킬 지는 중요한 과제다.

 

21 봉사나 섬김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 속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어떤 지식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존재로서 봉사하고 섬길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봉사하고 섬기기도 한다.

 

22 우리가 다른 사람 안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그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축복할 때 우리는 그들 안에 내재한 선의 불씨를 타오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불씨를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축복이 필요하다. 외할아버지는 거룩한 분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다고 믿으셨다. “네쉬메레야, 그분이 사람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몫이란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축복이 필요하단다.”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할 때 물을 먹은 새싹이 자라듯 우리의 삶 역시 성장하게 된다.

 

삶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가 병들거나 늙는다고 해서 축복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 때 축복해줄 수 있는 힘이 더 생긴다. 삶의 연륜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들고 긴 여정을 걸어왔다. 그들의 체험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깃든 축복을 준다.

카발라의 빛에 대한 것, 이 문장이 통한다.

 

25 우리가 연민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와 가치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 문화는 지배와 통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자기 충족과 능력과 독립성을 계발하도록 부추긴다. 이 가치들의 이면에는 인간이 본래 지닌 부드러움과 인간성을 거부하는 측면이 있다.

 

25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는 서로의 선 안에 있다. 고도의 기술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자신 안의 선함을 잊고 기술이나 전문직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세상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의 전문 기술이 아니다. 미래는 전문적인 기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얼마나 충실한가, 그리고 그 삶을 얼마나 축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26 나는 의사로서 37년 동안 일해왔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 삶의 어떤 요소도 봉사와 남을 섬기는데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쁨과 실패, 그리고 상실의 체험, 심지어는 병도 봉사하고 섬기는데 쓸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데 이것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블로그에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에 대해 쓰는 것도 봉사섬김에 쓸 수 있다는 건가?

 

26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 누군가가 우리를 축복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 불신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축복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45 네쉬메레야, 할아버지는 상처를 낫게 하려고 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천사는 야곱에게 상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어루만져 주었단다. 야곱은 남은 생애 동안 늘 그 상처를 지나고 살았지. 천사를 만난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잊지 못할 상처였어.

 

69 진정성 안에는 그 자체로 치유의 능력이 있다.

 

84 깊이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슬픔을 표현했을 때 우리는 치유받는다.

 

143 우리 가족들에게는 생존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은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안전을 확보하고 유지해야 했다. 반면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위험 요소가 있지만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힘들 일, 상처받을 일이 있더라도 시험관을 하는 걸 지지한다. 이 문장이

 

156 나는 의사가 된 지 35년이 지난 후에야 전문자로 살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6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침묵일 것이다. 드러내지 못한 비판과 불평으로 가득 찬 침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처가 되고 영혼의 쉼터가 되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침묵이다.

 

진정한 성장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침묵 속에서 성장을 이루게 되면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험에서 구조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지니게 된다.

 

178 안식처나 영혼의 쉼터란 우리가 부닥친 삶에서 도망쳐 갈 도피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힘을 얻는 장소다.

 

193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는 여성이 자기 스트레스 수치의 변화를 알고 무척 놀라게 되었다고 내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처음으로 제 자신의 별을 바라보며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저는 그동안 제 별이 아닌 다른 별들을 따라 항해를 하고 있었지요. 다른 사람에게 키의 손잡이를 내어주고 방향을 조종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제 자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해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제 배가 어디로 향해야 할 지 길을 찾았습니다. 지금부터는 거기에 충실하려고 해요. 이것은 제 배이며 제 별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무슨 연유로 제가 전보다 더 평화로워졌는 지 알고 싶어하셨지요? 글쎄요. 아마 제가 더는 갈팡질팡하지 않고 저의 별을 따라 항해를 하기 때문일 거에요.”

 

우리는 각자 그와 같은 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른다.

 

209 근본적으로 섬긴다는 것은 삶을 인간적으로 보고 삶이 당신을 어루만지도록 내어주는 자세다.

 

210 우리가 남을 돕는 데는 진정한 섬김이 없다. 당신이 누군가를 도와준다면 그를 당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다.

 

211 섬김은 동등한 관계다.

 

211 많은 경우에 나의 약함이나 결점이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바탕이 된다.

 

211 외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외로움을 볼 수 있다.

 

211 내가 가장 잘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어렵게 배운 의학 지식 덕분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에게 배운 삶에 대한 어떤 것이 나를 겸손으로 이끌었다.

 

221 사람들이 고통이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보여주고 나눌 수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

 

245 삶에 완전히 통달한 스승은 없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삶에 대해 배워 나간다. 누구나 인생으로서 미완성이다. 그런 아주 깊이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삶의 세밀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잇는 사람들이 있다. 스승이 있다면 삶에 깊이 귀를 기울여 드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스승은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알아내야 한다. 스승을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스승이 가리켜 주는 길을 따라 스스로 걸어감으로써 알아내야 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듣는 비법을 배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삶의 비법을 배울 수는 없다. 스스로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66 고대의 지혜를 지닌 문화에서는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것에 가치를 두었다. 일본에서 선() 정원사는 정교한 균형미를 이룬 정원의 한쪽 구석에 민들레를 몇 송이 심는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섬세하게 짠 카펫에 의도적으로 흠을 하나 남겨놓는다고 한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부른다. 청교도들이 누비 이불을 만들 때 누비 이불의 대가는 그가 만든 누비 이불마다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넣는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렀다. 영혼을 지닌 것은 어던 존재도 완벽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천에 영혼의 구슬과 같은 올이 하나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이 꿈꾸었던 삶의 천보다 더 멋진 천을 만들어 낼수 있을 것이다.  

 

279 “위험부담이 있는데 두렵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겁이 났단다. 그러나 더욱 두려웠던 것은 너의 꿈이 좌절되는 거였어. 꿈이 좌절되면 네가 병을 이겨나갈 힘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단다. “

 

322 “왜 하느님이 손수 가셨어요? 할아버지

, 그것은 말이다. 네쉬메레야. 많은 사람들이 던진 물음이지. 많은 다른 견해들이 있단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렇단다. 자유를 향한 투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었단다. 오직 자유를 지닌 사람만이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세상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어떤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그들 안에 있는 선을 따라 살수 있단다.”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글을 옮기며

 

5 저는 번역을 하면서 저자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마음의 깊이에 경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추천사 고도원

 

7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것은 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눈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눈 없이 햇빛을 본다면 눈부심보다 먼저 따뜻함을 느낄 것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움보다 먼저 향기를 느낄 것이고, 얼굴을 보면 인상보다 먼저 마음을 느낄 겁니다.

 

8 저자는 의사가 된 지 35년이 지난 후에야 전문가로 살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뒷날개 추천사 장영희

 

요즈음처럼 컴퓨터가 의학까지도 지배하는 시대에 이렇게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냥 책이 아니고 삶을 보는 새로운 눈, 아니 새로운 삶이다. 내게는 레이첼 나오니 레멘이라는 작가와 이 책을 발견한 것 자체가 큰 축복이다.

  

서문

 

14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내게 줄 선물을 가져오시곤 했다.

첫 문장. 사건으로 한 발 쑥 다짜고짜. 그리고 그 장면을 묘사한다.

 

17 어느 날 내게 작은 종이컵을 선물로 주셨다. 내가 가지고 노는 소꿉놀이 장난감 속에서 작은 찻잔을 집으셨다. “네쉬메레야. 날마다 이 잔으로 물을 줄 수 있겠니?” 네 살배기인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17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란다. 이것이 내가 배운 섬김에 대한 첫번째 가르침이다. 할아버지는 섬김이나 봉사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 우리 주변과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축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진심으로 생명을 축복할 수 있어야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17 외할아버지는 헤브라이 신비 철학의 전통을 이어오는 카발라 학자였다. 카발라에 의하면 태초의 어느 시점에 거룩한 존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꽃으로 나뉘어 우주에 흩어졌다고 한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 안에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신의 불꽃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신의 현존을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 카발라는 우주 안에 숨어 있는 거룩한 존재가 매순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고 가르친다. 세상이 우리의 귀에 속삭이고 우리 안에 계시는 신의 불꽃이 우리 마음에 속삭인다. 외할아버지는 그것을 어떻게 듣는지 가르쳐 주었다.

거룩한 존재와 예기치 않는 만남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축복을 빌어주는 일이다. 세상 안에는 거룩함을 일깨우는 축복들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순간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누가나 삶 속에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거기 특별한 축복이 있을 것이다.

불성을 표현하는 말과 비슷

 

18 나는 종교자체를 인민의 아편 정도로 여기는 사회주의자의 딸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집에서 그런 축복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외할아버지 덕분에 내 영혼 깊숙이 축복의 말을 간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두 개의 상반된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였다. 세상에 깃든 거룩함을 느끼며 삶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와 삼촌과 숙모들, 사촌들이 추구하는 높은 교육열과 지적인 성취를 이루는 세계였다. 외할아버지의 자녀들은 대부분 의사나 간호사들이었고 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 세계는 미국사회, 현대문명의 모습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가 추구하던 세계는 그림자에 묻힌 부분이다. 오로지 성취와 계발 등의 가치만 추구되었다.

 

20 외할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외할아버지에게서 터득한 삶의 성찰을 의사로서 내 일에 연관을 짓게 된 것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외할아버지는 삶의 축복을 터득하신 분이었고, 그분의 자녀들은 봉사의 삶을 살려고 했다. 그것이 결국 같은 것임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일치될까? 나는 궁금하다.

나의 영성에 대한 관심, 기도, 수행이 나의 직업이나 일상과 어떻게 일치시킬 지는 중요한 과제다.

 

21 봉사나 섬김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 속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어떤 지식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존재로서 봉사하고 섬길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봉사하고 섬기기도 한다.

 

22 우리가 다른 사람 안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그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축복할 때 우리는 그들 안에 내재한 선의 불씨를 타오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불씨를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축복이 필요하다. 외할아버지는 거룩한 분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다고 믿으셨다. “네쉬메레야, 그분이 사람들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몫이란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축복이 필요하단다.”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할 때 물을 먹은 새싹이 자라듯 우리의 삶 역시 성장하게 된다.

 

삶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가 병들거나 늙는다고 해서 축복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 때 축복해줄 수 있는 힘이 더 생긴다. 삶의 연륜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들고 긴 여정을 걸어왔다. 그들의 체험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깃든 축복을 준다.

카발라의 빛에 대한 것, 이 문장이 통한다.

 

23 삶을 축복하고 서로를 섬기는 사람들은 서로가 깊은 유대 속에서 힘을 얻는다. 권태와 공허뿐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외로움을 극복하고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23 우리가 타인을 위해 봉사하거나 섬겨서 그들의 나약함을 채춰주고 고장난 부분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는 것은 하나의 전체로서 우리 안에 있는 존재 그 자체다. 돕거나 고쳐주거나 구해주는 것과 섬김은 다르다. 그것은 서로 인연을 맺는 것이다. 봉사하고 섬기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우정을 통해, 또는 좋은 부모가 되어주거나 일을 통해서도 섬길 수 있다. 친절과 연민, 관대함과 수용을 통해서도 섬길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 섬기든지 우리의 섬김은 그 자체로 우리를 축복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면서 축복을 보낼 때 세상과 우리 주변과 우리 안의 빛은 더욱 밝아진다. 카발라는 공동체로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키문 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유지하고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25 우리가 연민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와 가치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 문화는 지배와 통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자기 충족과 능력과 독립성을 계발하도록 부추긴다. 이 가치들의 이면에는 인간이 본래 지닌 부드러움과 인간성을 거부하는 측면이 있다.

 

25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는 서로의 선 안에 있다. 고도의 기술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자신 안의 선함을 잊고 기술이나 전문직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세상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의 전문 기술이 아니다. 미래는 전문적인 기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얼마나 충실한가, 그리고 그 삶을 얼마나 축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26 나는 의사로서 37년 동안 일해왔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 삶의 어떤 요소도 봉사와 남을 섬기는데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쁨과 실패, 그리고 상실의 체험, 심지어는 병도 봉사하고 섬기는데 쓸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데 이것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블로그에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에 대해 쓰는 것도 봉사섬김에 쓸 수 있다는 건가?

 

26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 누군가가 우리를 축복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 불신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축복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27 늘 너를 지켜보마, 그리고 네게 축복해주는 사람들을 축복해 줄거란다.

역시 서문의 글이 가장 심오하고 압축적이구나. 서문에서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확실한 사례를 하나 사용했다. 매일 물을 줌으로써 식물을 기른 4살짜리 어린아이. 그리고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섬김과 봉사의 정의를 하고 있다. ‘유대 카발라에 의하면이라는 단서가 달렸지만 태초에 불꽃이 있었고, 그것이 모든 존재의 안으로 쪼개져 흩어졌다. 그 빛을 믿고 알아보고 존중하고 축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그 빛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모든 것으로 섬기고 봉사할 수 있다. 전문직과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하고 있다. 축복이라는 단어가 좀 튀는데 이건 아마도 상대의 가능성을 보고 믿어주는건가?  

 

, 앞으로 책을 읽을 때 서문을 좀 더 공들여 읽어야겠구나. 책 전체를 읽은 후에 그걸 어떤 식으로 서문에서 녹여내고 있는 지를 보도록 하자.

 

40 외할아버지께서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가 끝나면 나를 향해 몸을 돌리시고 이리 와라 네쉬메레야하고 부르셨다. 외할아버지는 두 손을 내 머리에 가볍게 얹으시고 축복의 기도를 해 주셨다. 나와, 당신이 나의 외할아버지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셨다. 특별히 지난 한 주 동안 내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그런 후에 나에게 축복을 주시고 성서에 나오는 사라, 레베카, 레아 등의 여인들에게 나를 보호해주기를 청하셨다. 매주 돌아오는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 완전한 평화와 유식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나의 부모님은 항상 내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잘하기를 바라셨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그런 칭찬은 아예 없었다.

나도 이런 할머니가 될까? 근데 이런 시간을 아이가 반길까?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데, 성직자, 교사 가정의 아이들이 밖으로 드러난 경건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를 감당하곤 하는데.

 

41 나는 외할아버지를 통하지 않고 하느님께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분의 눈을 통해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음을 깨우쳤다.

외할아버지가 손녀의 스승이었네.

 

45 네쉬메레야, 할아버지는 상처를 낫게 하려고 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천사는 야곱에게 상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어루만져 주었단다. 야곱은 남은 생애 동안 늘 그 상처를 지나고 살았지. 천사를 만난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잊지 못할 상처였어.

 

51 이 세상은 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다. 하느님은 우리가 일도 해야 하지만 삶을 즐기기를 원하셨단다. 춤추고 먹고 마시고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겪는 체험 안에 모든 즐거움이 있단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서로의 몸을 통해 나누는 특별한 즐거움도 있단다.

 

52 어른들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서로를 안는단다. 그러면 그들의 영혼이 만나게 되는 것이지. 그 즐거움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가장 좋은 축복의 하나란다.

 

54 할아버지께서 그 상자와 함께 묻어주길 원하셨지. 안타깝게도 25년 동안이나 외할아버지에게 작은 상자만을 남기셨다.

 

60 부처 안에서 은신처를 구한다는 말은 밖에서 부처를 찾는다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 안에서 부처를 만난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부처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가능성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은신처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통으로부터의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부처의 씨앗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닌 지혜를 발견하는 능력이리라. 지혜는 우리가 얻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혜란 우리 자신이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란 우리 자신이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의 기본적인 인간성 안에 있는 그것을 향해 나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연민의 마음을 지닌 것, 즉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고 나누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 안에 있는 부처의 씨앗에 물을 준다.

동심원, the garden to cultivate compassionate wisdom

 

69 진정성 안에는 그 자체로 치유의 능력이 있다.

 

74 그녀는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블라우스의 단추를 열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왼쪽 가슴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듯한 모습이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오른쪽 가슴에는 수술 자국 대신 꽃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 꽃들은 진짜 꼿과 똑같이 보였다. 연한 빛깔의 화려한 꽃들은 오른쪽 어깨까지 가득 피어 있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내게 등을 보여주었다. 꽃들은 등 뒤까지 피어 있었다. 마치 미풍에 흩날리는 듯 자연스러운 꽃문신이었다. 그녀의 몸은 감동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그녀 등의 움푹 파인 곳에 피어 있었고, 그 바로 밑에 작은 글씨로 p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충격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일종의 질투와도 같은 감정이 일 정도였다. 그녀의 존재는 무어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어떤 남자든 그런 여자를 꿈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옷을 입었고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피터가 그려주었어요. 이것 때문에 우리는 암스테르담까지 갔어요. 유방 재건 수술을 위해 모아두었던 돈은 신혼 여행에 썼어요. 선생님.”

그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날 그녀가 내게 한 말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피터는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주었어요. 그에게는 한 쪽 가슴이 없다는 것이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어요.” 

이 책의 멋진 점은 이런 묘사에 있다. 대화체로 진행된다. 쉽게 읽힌다. 게다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 또는 새롭게 통찰한 것이 짧게 정리된다.

 

78 레치얌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삶은 거룩한 것이며 서로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미란다.

 

83 그를 기억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세요.

남편을 잃은 후 2년 간 우울증에 걸려 삶에서 자신을 차단해온 여자에게 남편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한 뒤 한 말. 남편은 자신에게 사랑을 줌

 

84 깊이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슬픔을 표현했을 때 우리는 치유받는다.

 

101 나는 그 선물들이 개봉되는 순간을 보지는 못했다. 우편으로 보냈거나 아니면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놓아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개봉되는 순간이나 선물을 받고 감사해하는 말을 듣는 그런 순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축복 그 자체라는 것이다.

 

102 내게 면담을 신청한 여자는 자기 아이들이 너무나 이기적이라 실망스럽다고 했다. 모범을 보였는데 어째서 아이들이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주었는데요?“

늘 관대하게 그들을 보살펴주었지요

베풀어주는 것만으로는 누군가를 관대한 사람이 되도록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베푸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일에 직접 관여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가정 간호사였지만 공공 기관에 일하러 가시기도 했다. 하루에 많은 시간을 일하셨기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어머니를 만나기 힘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뉴욕 슬럼가에 있는 가난한 가정들을 방문할 때 나를 데리고 다니셨던 일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내게 왕진 가방을 들게 하셨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다니신 것은 단순히 왕진가방을 드는 것 보다는 더 깊은 이유가 있었으리라.

외할머니는 랍비의 아내였다. 그 분은 회당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프면 일일이 방문했다.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러이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는 자주 외할머니와 함께 가서 일을 도와드렸다. 몸이 아프거나 나이 드신 분들의 식사 시중을 들고 목욕을 시켜드리거나 집 안 청소를 해 주었다. 어머니는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도왔다. 이런 시간들이 어머니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는 여섯 형제 중 하나였고 외할머니는 언제나 바빴기 때문에 어머니와 개인적으로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함께한 시간이 특권을 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랑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헌신적인 유형이 빠질 수 있는 함정. 내가 특수교사를 계속 한다면 아이들에게, 가족들에게 어떤 나의 현장을 보여줄건가?

 

114 그녀가 말을 이었다.

외할머니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실지 아는 것이 이제 조금도 어렵지 않아. 외할머니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게 보시고 긍정적으로 보시지. 그리고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시는 거야.”

이제 그녀는 팔찌를 지니고 있을 때보다 더 외할머니를 가깝게 느낀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팔목이 아니라 내 마음에 계시거든.”

……미치 엘봄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죽음은 이 세상 삶의 끝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맺었던 관계의 끝은 아니다.”

 

118 지난 9년동안 나는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의사들을 위한 평생 의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 프로그램에 오는 의사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갈 힘을 얻으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바로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가 죽을 때 개인적인 반응을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받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의사로서 적절한 반응이 아니라고 교육받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 지 잘 모른다. 많은 의사들은 상실의 고통을 억압한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점점 무감각해진다.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다.

 

123 가족 중 한 사람이 로마에 성지 순례를 가서 그 메달을 샀다. 그리고 그곳 사제에게 축복을 받은 후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 있는 치유의 물에 담갔다가 가져온 특별한 것이라고 했다.

아이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이 성물이 아이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어요.”…세탁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지하의 세탁실에서 엑스 선생은 젊은 외과 의사들에게 환자의 심장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28 잠들 기 전에 15분 정도 시간을 내 그날 하루를 성찰한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노트에 답을 적는다.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나에게 놀라운 일이 있었는가?’

오늘 나에게 감동을 준 일이나 마음에 와 닿았던 일이 있었는가?’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일이 있었는가?’

많은 것을 노트에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해준다.

저자도 이런 일기를 계속 써왔음에 틀림없다. 이 책에는 감동받았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 대화체 서술은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라면 매일 매일의 기록을 토대로 하였으리라. 나도 그날 그날 대화체를 포함하고, 그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는 식의 저런 일기를 써보면 좋겠다. 지금은 휴직중이지만 내가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런 일기를 일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135 아이는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필리핀인 3세였다. 그녀는 한시도 아이의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잠도 의자에 앉아 침대에 엎드린 채 잤다. 리카르도를 진찰하러 가면 그녀는 늘 아이의 담요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때로 그녀는 졸음을 참느라 눈을 반쯤 감고 있기도 하였다.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아이의 발을 잡고 있는 것은 생명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기도하고 계셨어요?”

아니에요. 아이의 미래 모습을 생각했어요. 제 마음 속에서 아이는 매일매일 조금씩 자랐어요.”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는 상상을 했다. 아이가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친구들과 공놀이 하는 모습도 보고 첫 영성체 때 성당에 예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는 날 아이가 아름다운 신부와 춤추는 모습을 상상했다. 결혼을 한 아들이 아이를 갖게 되어 자기가 할머니가 되는 상상도 했다. 끝없이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그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이의 발에서 손을 떼지 않았던 게 도움이 되었는지도 몰라요. 제 상상이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리카르도의 엄마가 했듯 미래에 대해 상상을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손을 놓지 않으면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다.

칼럼 하나 썼다. ‘아이가 있는 생의 오후 풍경

 

143 우리 가족들에게는 생존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은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안전을 확보하고 유지해야 했다. 반면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위험 요소가 있지만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힘들 일, 상처받을 일이 있더라도 시험관을 하는 걸 지지한다. 이 문장이

 

146 의과대학에서 유전학에 대한 강의를 할 때였다. 나는 뇌의 성장에 문제가 있는 두 아이를 가진 엄마를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검사로 엄마에게 유전 인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내가 부탁을 하자 그녀는 학생들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그녀가 느끼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어떻게 고통을 감당하고 차분히 앉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지 놀라웠다. 마음 속으로 그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나간 후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은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어떤 것에 대한 경의였다. 안타깝게도 침묵은 금방 사라지고 학생들은 병의 실체에 대한 토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조금 전 그 젊은 엄마에게서 목격한 고통의 무게는 토론하는 젊은 학생들의 삶의 체험을 능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고통이 어떤 것인지, 고통을 대면하거나 참아내는 지혜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 지 가르쳐 줄 수 없다. …다만 과학에서 고통의 피난처를 찾으려고 할 뿐이다과학은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과학은 고통에서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는 피난처의 역할은 하지만 점점 더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고 갈 뿐이다.

 

147 진정으로 삶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겪는 고통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연민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고통의 상처에서 얻은 지혜만이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151 데이비드는 순간 부처가 커지는 것은 가슴에 꽂힌 비수때문임을 깨달았다. 부처상은 계속 커졌고 얼굴은 여전히 자비로웠다. 비수가 부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점차 비수는 웃음을 띤 부처의 가슴에서 아주 작고 검은 점으로 바뀌었다. 이것을 바라보는 동안 데이비드는 말할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비수가 꽂혔을 때 그를 엄습했던 절망과 분노, 삶이 왜 이모양이지? 라고 던져썬 그 물음은 자신이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그녀는 꿈을 가지고 작업한다. 무의식과 교류하는 비이성적인, 우뇌적인 방법을 여러 가지 쓴다. 이게 맘에 든다.

 

156 나는 의사가 된 지 35년이 지난 후에야 전문자로 살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56 의과대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음을 버리는 것이 환자를 위해 더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이라고 교육받았다. 결국 나는 더 좋은 봉사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인간성을 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제대로 봉사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탈진시키고 냉소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교육은 우리 자신의 본성을 병들게 했다. 우리는 반드시 치유될 필요가 있다. 나는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고 인간적인 의사가 되는 것이 전문가로 뒤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데 많은 세월이 걸렸다.

 

160 “왜 비밀로 하려고 했어요?”

저는 이렇게 된 것이 전문가로 타격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어요. 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상으로 보여야 전문가로서 더 잘해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이제는 저 자신이 될 거예요. 그리고 지금부터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돌볼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사람들 말입니다. 뇌졸중이나 중풍으로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도요. 다시는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들이 온전히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대화체가 좋다. 나는 글에서 거의 대화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176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침묵일 것이다. 드러내지 못한 비판과 불평으로 가득 찬 침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처가 되고 영혼의 쉼터가 되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침묵이다.

 

진정한 성장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침묵 속에서 성장을 이루게 되면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험에서 구조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지니게 된다.

 

177 대신 할머니는 루시아를 꼭 껴안아주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를 상기시켜주었다.

루시아야, 그때 할머니도 할아버지를 돌려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느님은 들어주시 않으셨단다

할머니는 루시아에게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루시아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실컷 울었다. 그리고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을 때 할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비록 할머니가 물음에 답해줄 수는 없었지만 루시아는 상실감과 외로움이 엷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양이를 잃은 손녀와 할머니. 루시아는 유능한 에이즈 전문 의사다. 그녀에게 상실감을 다루는 건 매우 중요하다. 아이에게도 죽음에 대한 바른 방식이 필요하다.

 

178 안식처나 영혼의 쉼터란 우리가 부닥친 삶에서 도망쳐 갈 도피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힘을 얻는 장소다.

 

180 “삶을 사시는 동안 세상에 공헌하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었어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지요.

물론 너란다. 얘야.”

저는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아버지께 칭찬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 그 말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180 놀랍게도 우리는 죽음에서 지성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여기서 지성소란 우리 문화나 우리 안에서 참된 것이 아닌 모든 것에서 벗어난 진정한 안식처를 말한다.

 

180 죽음은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 죽음의 순간 인간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비로소 깨우치며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찾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죽음을 통한 아름다운 치유를 수없이 보아왔다. 죽음은 일종의 헌신이며 섬김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맞는 순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진실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191 “네쉬메레야. 너는 태어날 때 아주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너의 영혼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처음부터 느꼈을 거다.”

나는 출생예정일보다 훨씬 앞당겨 태어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영혼은 아직 삶을 택할 준비가 안 되었을 거고 많이 놀랐을 거라고 설명하셨다. 나의 영혼은 내가 인큐베이터에 머무는 동안 내 속에 머물러야 할 지 떠나야 할 지 망설였다. 그 후에 세상에 나와서도 내 영혼은 작은 새처럼 두려워했고 조심했다. 외할아버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 영혼이 의지할 수 있는 말을 해주기 위해 내가 말도 배우기 훨씬 전에 쉐마를 가르쳤다고 말씀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 영혼이 그것을 발견하면 힘이 생길 것이라도 믿었다.     

네쉬메레 : 사랑스런 작은 영혼이란 뜻의 애칭

조산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

 

192 스트레스란 단순히 시간에 쫒기거나 일이 많거나 하는 문제라기 보다 내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193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는 여성이 자기 스트레스 수치의 변화를 알고 무척 놀라게 되었다고 내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처음으로 제 자신의 별을 바라보며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저는 그동안 제 별이 아닌 다른 별들을 따라 항해를 하고 있었지요. 다른 사람에게 키의 손잡이를 내어주고 방향을 조종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제 자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해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제 배가 어디로 향해야 할 지 길을 찾았습니다. 지금부터는 거기에 충실하려고 해요. 이것은 제 배이며 제 별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무슨 연유로 제가 전보다 더 평화로워졌는 지 알고 싶어하셨지요? 글쎄요. 아마 제가 더는 갈팡질팡하지 않고 저의 별을 따라 항해를 하기 때문일 거에요.”

 

우리는 각자 그와 같은 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른다.

 

206 “아주 작은 새가 왔어요. 그의 손에 앉아 있어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해요.”

그 이미지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임에 틀림없었다.

머리가 아주 길고 수염을 기른 흰 옷을 남자. 그를 향해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이 책은 적극적 명상을 시도한다.

 

206 우리는 그의 과거를 탐험하는 여행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함께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브라더 문, 시스터 선>비디오도 여러 번 보았다. 우리는 다른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항상 동물들을 사랑했다. 어렸을 때는 상처 입은 동물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돌봐주곤 했다. 그는 수의사가 되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의과대학에 가도록 권유해 진로가 바뀌었다.

당신이 본 이미지는 소아과 의사인 당신에게 진실하고 적합한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성 프란치스코에게 말해봐요.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209 근본적으로 섬긴다는 것은 삶을 인간적으로 보고 삶이 당신을 어루만지도록 내어주는 자세다.

 

210 우리가 남을 돕는 데는 진정한 섬김이 없다. 당신이 누군가를 도와준다면 그를 당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다.

 

211 우리는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 섬기지 않는다. 그냥 우리 자신으로 섬긴다. 우리의 체험으로 섬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섬기는 것을 체험했다. 나 자신을 당황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나의 한 부분을 통해 부족함 없이 섬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211 섬김은 동등한 관계다.

 

211 많은 경우에 나의 약함이나 결점이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바탕이 된다.

 

211 외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외로움을 볼 수 있다.

 

211 내가 가장 잘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어렵게 배운 의학 지식 덕분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에게 배운 삶에 대한 어떤 것이 나를 겸손으로 이끌었다.

 

거의 한 꼭지의 절반을 타이핑했다. 인용문 타이핑이지만 필사의 개념도 있으니 다행.

 

216 현대의 문화는 병든 사람들과 노인과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현대는 독립과 능력을 추구한다. 개척자 정신이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인간의 약함과 고통에 대해 관대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끊임없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감수성을 부인하면 진정한 연민의 마음을 지닐 수가 없다.

의대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나는 진정한 연민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남에게 봉사를 하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는 교육만을 받았다.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에 대한 부인이 그 교육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내가 지닌 크론병은 특별히 이런 생각을 더욱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턴시절 나는 몇 년 동안 날마다 상당량의 스테로이즈제를 복용했다. 크론병의 증세에 따라 복용하는 약의 양은 계속 바뀌었고 그 결과 외모도 급격하게 변했다. 얼굴은 수시로 부어올랐고 심하게 여드름이 돋기도 했다. 몸무게도 들쭉날쭉 했기 때문에 사이즈가 8에서 16까지 다양한 옷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또 자주 심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이 시기 동안 나는 매일 12명의 의사들과 동료 의사들과 함께 일했다. 그 중 누구도 내게 그런 증상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다량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뼈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회진 이 끝나려면 한 시간 가량 더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내 몸 안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오른쪽 다리가 주저앉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간신히 왼쪽 다리에 몸을 의지하고 서류 선반에 기대어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회진이 끝났을 때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나는 병동의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곧 응급실로 실려 갔고 한 쪽 다리가 골절 되었음을 알았다. 다음 날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 병동을 돌아다녔지만 한 마디라도 이 일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전날 나 대신 야근을 한 레지던트였다. 그도 내 상태가 어떤 지 물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 자기 대신 야근을 할 지 물었을 뿐이었다. 이 모든 일이 전문직에 대한 긍지의 작용 때문임을 안다. 당시 의사 중 몇 명 되지 않는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에서 버티기 위해 그들과 동등해지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의사로서 우리는 개인적인 필요를 능가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훈련을 받았고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 서로를 존중해 주었다.

 

그러나 지혜는 상당히 다른 어떤 것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의과대학의 정교슈 중에 의자 의사가 한 분 계셨다. 중년의 내과의사였다그분과 이야기를 제대로 나눈 적은 없었지만 그분을 존경했고 내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은 미혼이었고 일에 대한 열정과 공헌도는 하나의 전설이었다. 연구업적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환자도 잘 보고 가르치는 데에도 특별한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젊은 의사들과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나를 돌보도록 맡겨야 할 차례로군 

 

그녀의 말이 내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말은 내 심장을 관통했다. ..깁스를 하고 있는 6주 동안 나는 단 한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것이 전문직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의 긍지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나는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깊은 연민을 받을 만큼 열려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강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솟아 올랐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은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울기 시작했다. 그녀와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221 의과대학은 내게 고통을 고치라고 가르쳤을 뿐 고통을 나누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교육의 기초단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고통이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보여주고 나눌 수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236 “레이첼 선생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들은 모두 정말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 왔어요.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3시간이나 걸렸어요. 스테파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저는 내내 울었지요. 마지막으로 스테파니가 저에게 다가와서 말했어요. 이것이 전부 당신에 관한 이야기에요. 우리는 당신이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저는 알게 되었어요.”

“1년에 그 장치를 몇 개나 만들지요?”

거의 만개 정도 만들어요. 저는 몇 개를 만드는 지 숫자만 알았지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는 정말 몰랐어요.”

 

239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들려주는 우화가 있다팔꿈치를 부목을 대어 마음대로 팔목을 쓰지 못해 그들은 음식을 자기의 입까지 가져갈 수 없다.그래서 그 많은 음식을 눈 앞에 두고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궁극적으로 천당과 지옥의 차이는 천당에는 서로를 축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지옥에는 서로를 축복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245 삶에 완전히 통달한 스승은 없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삶에 대해 배워 나간다. 누구나 인생으로서 미완성이다. 그런 아주 깊이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삶의 세밀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잇는 사람들이 있다. 스승이 있다면 삶에 깊이 귀를 기울여 드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스승은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알아내야 한다. 스승을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스승이 가리켜 주는 길을 따라 스스로 걸어감으로써 알아내야 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듣는 비법을 배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삶의 비법을 배울 수는 없다. 스스로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54 그날따라 비교적 응급실이 무척 조용했다. 10시경이었다.

인트로 굿! 사건의 장면으로 직행한다.

 

262 단 지 몇 마리를 바다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적어도 이 한마리에게는 차이가 있지.”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삶을 어루만지는 일인 것 같아요. 미숙아들을 어루만져줌으로써 적어도 그 한 아기에게만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요.

 

263 섬김의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여러가지 한계에 부닥칠 때 우리는 마음을 다친다. 그 문제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고 우리가 하는 일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위대하거나 보잘 것 없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한 번에 한사람의 삶을 축복할 수 있다.

 

266 고대의 지혜를 지닌 문화에서는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것에 가치를 두었다. 일본에서 선() 정원사는 정교한 균형미를 이룬 정원의 한쪽 구석에 민들레를 몇 송이 심는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섬세하게 짠 카펫에 의도적으로 흠을 하나 남겨놓는다고 한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부른다. 청교도들이 누비 이불을 만들 때 누비 이불의 대가는 그가 만든 누비 이불마다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넣는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렀다. 영혼을 지닌 것은 어던 존재도 완벽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천에 영혼의 구슬과 같은 올이 하나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이 꿈꾸었던 삶의 천보다 더 멋진 천을 만들어 낼수 있을 것이다.  

 

266 에이스는 완벽함도 재산도 심지어는 자존심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267 누군가의 삶을 축복해준다는 것은 그가 지닌 고유함을 존중하는 것이다.

 

279 내가 코마상태에서 깨어난다고 해도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의기소침해지셨다.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40세 까지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외동딸로 태어나 어느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란 나는 한 번 마음을 먹으면 그것을 꼭 해야만 했다. 나는 반드시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내가 학비를 대주겠어요.”…

어머니는 잘 훈련된 가정 간호사셨다. 어머니는 병원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 서류에 서명을 하셨다. 나를 퇴원시켜 대학으로 데리고 가셨고 6개월 동안 대학의 기숙사에 머무르시며 나와 함께 생활하셨다. 나를 교실까지 데려다주거나 내가 걸을 수 없을 때는 휠체어를 밀어주셨다. 6개월이 지나 어느 정도 내가 혼자 생활 할 수 있게 되자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다내가 먹은 독한 약들 때문에 외모도 급격히 변했다. 대로 나는 삶의 벼랑에 몰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내가 가지고 있다고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힘을 발견했고 새로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그 당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화를 걸어주셨다. ..

위험부담이 있는데 두렵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겁이 났단다. 그러나 더욱 두려웠던 것은 너의 꿈이 좌절되는 거였어. 꿈이 좌절되면 네가 병을 이겨나갈 힘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단다. “

실패하더라도 너는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을 거야.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찾았을 거야.”

 

294 암환자를 대하는 의사로서 나는 그들이 다다른 삶의 끝자리인 바닷가를 함께 걸으면서 지혜라는 조개들을 줍곤 한다.

 

295 단순함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신념이나 가치 체계보다 휠씬 더 깊은 진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이야말로 불 속에서 단련되는 듯한 아픔을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295 죽음을 경계선을 넘어갔다 되돌아온 사람들은 특별한 통찰력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그런 체험을 통해 그들은 삶 안에서 단 하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방법이 있지만 모든 삶은 지혜에 이르는 하나의 영적인 여정이다. 그것을 안다면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달라진다.

 

296 다른 우주론이 그러하듯이 이 창조신화도 밑바탕에는 섬김의 정신이 깔려 있다. 인간 본래의 목적은 빛의 섬광을 벗겨내고 본질적인 거룩함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거룩함을 품은 진주를 숨긴 조개와 같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 모든 존재 안에 감추어진 거룩함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310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잘 사는 비법은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삶에서 일어나는 물음들을 나누는 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312 당신이나 상담가와 이야기를 하세요. 나는 하느님과 이야기를 하겠어요.

 

312 성모 마리아님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아들을 내맡길 수 있었습니까? 아들이 죽은 후에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아들을 잃고서 석고처럼 되어서 2년간 화를 내던 어머니

 

316 여자 10명이 모여도 하느님이 계신다고 생각할래요.

 

317 너는 너 혼자로도 10명을 다 채우는 민얀이다. 네쉬메레야.

 

322 노예냐, 자유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란다. 우리는 항상 노예 생활이냐, 알 수 없는 미지의 삶이냐를 놓고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란다.

 

322 많은 의심을 지닌 가운데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하느님이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지. 그 때서야 그들은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단다.

 

322 “왜 하느님이 손수 가셨어요? 할아버지

, 그것은 말이다. 네쉬메레야. 많은 사람들이 던진 물음이지. 많은 다른 견해들이 있단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렇단다. 자유를 향한 투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었단다. 오직 자유를 지닌 사람만이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세상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어떤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그들 안에 있는 선을 따라 살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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