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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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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8일 05시 33분 등록

 

 

 

가족세우기로 하는 우리집 기초공사

 

 

 

가을 볕이 좋던 어제 선물을 2개 받았어요. 부부 찻잔과 캘리그라피 작품. 결혼선물이라고 했어요. 1년 반 만에 준다며 미안해 하는 두 사람. 고향 동네 감나무집 배꼽친구는 부부 찻잔을 주었어요. 생강차를 우려 마시면 좋겠어요. 햇 생강을 저며, 시어머님이 몸이 따뜻해진다고 주신 꿀에 재웠어요. 6년 전에 모닝페이지를 시작하도록 도와준 도반이 캘리그라피 작가예요. 글씨도 그림이더군요. 한자 집 가() 자 옆에 행복한, 다정한, 즐거운이라고 적혀 있어요. 내가 쓴 글을 뒤져 읽고 그 형용사들을 찾아냈다는군요. 우리 부부의 이름과 결혼한 날을 새겼어요. 우리집 현관 왼쪽 벽에 걸었어요. 당호 현판이나 그림을 걸겠다 마음먹은 자리예요. 당호란 집이름이 아닙니까? 옛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을 당호에 담았어요. 다산의 당호는 여유당이었고, 강진에 귀양가 산 집 이름은 사의재였어요. 마흔의 나이부터 시작했던 18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다섯 수레의 책을 실어오며 마감했던 사내 다산 정약용에게는 과골삼천의 용맹정진이 있었어요. 책상에 앉느라 복숭아뼈가 3번이나 뚫어졌다는 겁니다. 여유당은 노자의 <도덕경>의 한 대목 여함이여, 겨울 시냇물을 건널 때처럼 경계하라에서 앞 글자를 따서 겨울 냇물 건널 여사방을 두려워할 유를 붙여서 스스로 근신하고 경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사의재(四宜齎)에는 네 가지 마땅함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어요.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 무거운 몸가짐이 그것입니다. 절 살림이 어려워도 재 바라지를 받지 않는 경북 영천시 비구니스님 절 백흥암의 참선방 이름은 심검당(尋劍堂) 입니다. ‘이라는 말은 별, , , , , , , , , 소처럼 아름답습니다. ‘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 글쓰기를 하는 이유를 표명합니다. 나는 사람이 살만한 집으로 가꾸고 싶어요. 먼저 나를 가꾸고, 우리 가정을 가꾸고 싶어요. 당호는 천천히 생각해 볼랍니다.  

 

결혼 2년차인 올해 부지런히 집을 돌보고 있어요. 휴직을 하고 시험관시술, 아이를 기다리면서 내가 하는 작업의 주제입니다. 평수를 넓혀 이사를 간 건 아니예요. 물리적으로는 베란다 정원을 가꾸고 서재를 정비했어요. 마음의 작업이 8할입니다. 우리집의 기초공사로 다루어야 할 건 크게 두 가지, 부모에게 독립하기, 부부관계 강화하기입니다. 어떻게 부모와 심리적으로 독립할까의 도전은 뿌리와 잘 연결되는 일입니다. 사랑의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고 내 자리에서 편안히 서는 겁니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4분이 되었습니다. 둘째, 내 결혼을, 남녀관계를 안착시키는 거예요. 이건 든든한 둥치와 가지를 뻗어올리는 일입니다. 잎을 보든, 꽃을 달든, 열매를 기르든 나무는 이 바탕에서 소출을 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걸 가족세우기를 통해 접근하고 있어요.

 

가족세우기란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되는가?

 

가족세우기는 독일 사람 버트 헬링거가 만들었어요. 독일 가정의 절반이 경험해보았다는군요. 정신분석, 게슈탈트 이론, 교류 분석과 가족 치료를 통합한 심리 치료 기법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어요. 가족 문제뿐만 아니라 학교나 회사 등 다양한 형태의 집단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버트 헬링거는 1925년 독일에서 태어나 철학, 신학, 교육학을 공부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일했어요. 1970년대 초에 수도회를 떠나 심리치료 분야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처음에는 심리분석 훈련을 받았고, 프라이멀 요법, 그룹 다이나믹, 게슈탈트 치료법, NLP, 밀튼 에릭슨의 기법, 홀딩요법, 최면요법 등을 통해 독특한 자신의 기법을 발전시켰어요.  

 

웍샾 구체적인 진행 방식은 이래요. 해결하고 싶은 문제나 질문을 가진 의뢰인, 또는 내담자가 참여합니다. 치유사는 내담자가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걸 2~3 문장으로 듣습니다. “남녀관계가 어려워요.” “중독 문제가 있어요.” “재혼한 아이와의 관계가 어려워요”, “분노가 많이 있어요”, “공황장애가 있어요입니다. 치유사는 많은 스토리와 개인적인 상황을 질문하지 않습니다. 버트 헬링거는 단 3문장만을 허용했다는군요. 내담자는 정신과나 상담실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의 배경을 말하지 않아요. 기본적인 팩트만을 확인합니다. 결혼을 했는지, 형제나 자녀는 몇 명인지, 원가족과 현가족에서 중요한 사건 정도입니다. 대리인을 세웁니다. 대리인은 치유사가 선택할 때도 있고 내담자가 선택하기도 합니다. 의뢰인은 손을 잡고 자신의 몸과 직관적인 느낌에 따라 그들의 자리를 찾은 후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가족체적 역동에 의해 장이 형성됩니다. 융이 말했던 동시성의 원리에 의해 대리인들은 특정한 자세와 거리를 보여줍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가족 안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선택된 대리인은 내담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이므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치유사는 대리인들을 대상으로 해결책을 시도하고 치유문장을 말하게 합니다. 필요한 경우 의뢰인의 대리인을 들어가게 하고 의뢰인이 직접 들어갈 때가 있어요. 세션은 일종의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1회성으로 다룹니다. 가족세우기는 현재를 드러내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이해가 목적이지 엄밀한 의미에서는 문제의 해결을 목적하지 않습니다.      

 

누가 가족체계에 포함될까요? 부모와 살아 있는 아이들, 일찍 죽거나 사산된 아이들, 조부모, 숙모, 이모, 삼촌, 외삼촌은 포함되고 그들의 자녀인 사촌은 포함되지 않아요. 경우에 따라 증조, 고조 나 친척이 아닌 사람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들 가족과 강하게 유대와 연결이 있는 이들, 가족을 학대하거나 죽인 가해자, 부모의 옛 애인, 가족 중 한 사람에게 고통과 학대를 받은 사람, 피살자, 부도를 낸 동업자 등입니다. 가족체 안에서 소속, 질서, 균형의 원리에서 잘못된 경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어요. 이것을 삶의 얽힘이라고 표현합니다. 얽힘이 풀어진다는 것은 가족체적 양심에 맞도록, 제외된 이들을 회복시켜 본래의 자리에서 기억하며, 자신의 것이 아닌 짐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균형을 잡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질병을 제외된 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시도라는 관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방해받은 어머니를 향한 움직임역시 개인적인 어려움의 원인으로 다루어요. 이건 생애 초기에 일어나는 아이와 부모간 분리를 다룹니다. 가족체적인 트라우마라기 보담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볼 수 있겠네요.

 

나는 지인을 통해 5년 전부터 가족세우기 웍샾에 참여했어요. 휴직을 한 올해는 매달 참여했어요. 올해 참석하는 나의 일관된 물음은 아이가 오는 길에 있는 장애물을 치우고 싶어요.” 였어요. 그 질문 안에는 많은 작은 질문이 있었고, 어떨 때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던 걸 먼저 다루었어요. 웍샾에 다녀오면 아침 기도시간에 108배를 하면서 그 때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 그 순간을 복습합니다. 마음을 길들이는 저만의 의례입니다. 그게 내가 품어온 씨앗을 싹틔워 무의식 속에서 자라게 하는 방식이고 무의식의 지도를 변형시키는 작업입니다. 가족세우기 웍샾은 나한테 변화를 위한 시작점이었어요. 

 

기초공사 첫 공정- 부모에게 독립하기

 

부모님의 짐은 부모님에게 돌려드리기

 

부모님한테 독립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사춘기적 나의 독립, 또는 쟤는 사춘기야의 특정행동은 밤에 불을 안 끄더라도 전기세 땜에 엄마가 맘대로 불끄는 거에 난리를 치는 거였어요. 결국 형광등에 긴 줄을 매달아 누운 채 끄기로 했어요. 안 끄고 잔 날이 많았지만요 엄마는 딸에게 물려 살을 뜯길까봐 전기세를 포기했지요. 또 하나는 내가 정리를 안하더라도 엄마가 내 방을 치우는 거에 강력 대응하는 거하고요. 대학 때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학비와 생활비를 매달 1일에 송금받는 걸 부끄러워하는 느낌이었어요. 돈만 벌면 부모님한테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질적인 독립은 38살에 이루어졌어요. 대차게 내어쫒기면서 시작되었어요. 그동안 나는 부모님 집에서 남동생들과 살았어요. 연애를 하는 대신 20대와 30대에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이미 성인인 남동생들을 돌보는데 있었어요. 부모님에 대해서는 편안하게 떠나는 게 아니라 화를 내면서 외면하는 편이었어요. 부모님은 결혼식으로 인해 나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이 끝났다고 종지부를 찍었어요. 나는 결혼한 이후에 진정으로 어른으로 대접을 받았어요. 집안 행사에 부조금을 독립적으로 낸다거나 이제 니 인생이니 우린 상관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묶여 있었어요.

 

나의 원가족을 세웠어요. 어머니의 대리인은 땅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어요. 그것은 그녀가 죽은 이를 보고 있다는 의미였어요. 아버지 대리인은 어머니 대리인 쪽을 보지만 거리가 멀고 약간 비껴있었어요. 그건 아내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첫째딸인 나,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의 대리인은 은 엄마와 아버지 대리인을 지키며 동동대고 있었어요. 넷째 아들은 가족과 멀리에 떨어져 있었어요. 거의 장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는데 아버지 대리인의 자세와 방향과 일치했어요. 아버지 대리인과 막내 대리인은 모두 하늘을 보고 있었어요. 이 또한 현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걸 나타냅니다. 치유사는 그 장을 읽었어요. “아버지는 가려고 하고 있어요. 막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가려고 합니다. 먼저 갈 겁니다.” “세 자녀는 모두 부모가 가지 못하도록 문을 차단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치유사는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약한 막내들이 부모의 짐을 많이 진다고 했습니다. 이 세션은 여기서 마감이 되어버렸어요. 너무 놀랬어요. 그런데 이게 내가 살아온 방식과 딴 판은 아닌 듯 했어요.        

 

가족세우기에서 부모, 자녀의 관계는 평등한 사랑이 아니라 수직적인 사랑이라고 봅니다. “부모님은 크시고 저는 작습니다.” “부모님은 주시고 저는 받습니다는 것이 주요한 표현이구요. 원리에 맞게 독립을 하는 건 사랑의 물줄기가 잘 흘러갈 수 있는 자리에, 모두가 편안한 자리에 나를 두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나의 눈먼 사랑으로 인해 내가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눈 먼 사랑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전체를 보는 관점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소속감을 확보하기 위해서 부모의 짐을 대신 지거나, 따라가거나, 죄책감을 속죄하려는 식으로 한다는 겁니다. 고통을 배가시키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랑입니다. 부모를 구하려는 이런 시도는 고통을 가진 이를 두 사람으로 만들 뿐입니다. 나는 부모를 구하려 하는 나의 성향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지키려 합니다. 내가 공부를 했던 유일한 목적은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열망이었어요.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나 나의 행복이 아니었어요. 나는 많은 부분 눈 먼 사랑을 한 듯 했어요. 혐의를 벗을 수가 없더군요.    

 

돌아온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시부모님의 역사를 공부했어요.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어요. 내 부모님의 특징 중 하나는 조실부모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6.25 전쟁 유복자로 태어나면서 뱃속에서 아버지를 잃은 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더 큰 상처 또는 관심사는 아버지의 어머니, 할머니가 조실부모한 것임을 나는 알았어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과 연합되어 있어 아직 묻혀있었어요. 할머니는 7살 때 엄마를 잃고 작은 집에 맡겨져 자라다 14세에 혼인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 상실은 할머니에게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주었겠지요. 내 아버지의 그리움은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어요. 아버지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여자다운 여자를 요구했어요. 그는 아내에게서 어머니를 보고 있었어요. 엄마는 아버지에 의하면 부족함이 많고 부적격일 때가 많았나 봅니다. 나는 엄마가 왜 저렇게 밖에 못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엄마보다는 아버지 가슴에 매달려 성장했던 아버지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겐 틈이 없었고 화를 많이 내니까 무서웠거든요.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나는 아버지 가슴에 있는 사랑, 이 가족에서 제외된 할머니의 존재를 느끼고 관심있어 했어요. 서른 살 즈음이 되자 집안 사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할머니를 찾아 갔으니까요.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내 아버지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갖고 있었어요. 그건 부모의 부모 노릇을 자식이 하는 것이고, 자식의 자리에 있지 않고 엄마에게 여성적인 힘을 받지 못한 채 준남성처럼 지내는 원인이었을 겁니다. 엄마 역시 외할머니를 십대에 잃은 아픔에 묶여있었어요. 엄마는 자식이나 남편보다는 할머니를 보고 있었어요.

 

내 부모님은 매우 성실하고 워커홀릭이라 할 만큼 일을 열심히 합니다. 자수성가형의 시골 중농이지요. 나는 부모님 두 분 모두 조실부모의 상처를 가진 분임을 알았어요. 어릴 때 잃은 자신의 부모를 따라가는 성향, 가슴이 원가족에 묶여있는 성향에 대해 이해했어요. 성장기간 동안, 어른이 되어서도 왜 그토록 엄마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는 지를 이해했어요. 나는 문지기가 되었겠죠. 엄마 아버지가 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막으려는 성향 말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관심이었어요. 나와 동생들 모두가 그렇겠죠. 성장하는 동안 나는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목적은 단 한 가지였어요. 엄마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 분들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어요.

 

나는 부모님의 짐은 부모님한테 돌려주려고 날마다 절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동의합니다.” “저의 운명에도 동의합니다.” 말합니다. 부모님을 구하려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익숙치 않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하기

 

방해 받은 도달의 움직임부분에서 나는 아버지와 작업했습니다. 단독 세션이었어요. 아버지의 대리인과 나의 대리인이 세워졌어요. 아버지 대리인 앞에 세워진 나의 대리인은 아버지를 향해 비명을 지르고 두려움에 차서 뒷걸음질을 쳤어요.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에서 아버지에게 화가 난 여자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 했습니다. 분노나 두려움을 가진 채 부모에게서 독립할 수는 없다고요.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아버지를 더 마음으로 가까이 느끼고, ‘아버지의 딸이었다고 자부했는데 왜 그럴까? 그 때 아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만 부모가 싸우는 장면을 봤나 봐요. 아이의 마음은 오로지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엄마를 아버지가 죽이려 한다고 감지했을 수 있다더군요. 첫 장면은 각인되어 아버지에 대한 틀이 되어 버렸을테구요. 나는 지르지 못한 비명을 지른 뒤 도달하지 못한 움직임을 완료했어요. 아빠 다리에 매달려 어린 양을 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회복했어요. 아버지 대리인은 딸을 향해 끊임없는 사랑을 보내며 두 팔을 벌리고 있었어요. 자신을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대리인을 보면서 울고, 어쩌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했어요. 대리인이 들어가고 내가 들어가 작업했어요. 이건 또 한편 잠시였지만 대단한 성취였어요. 치유사는 이제 드디어 내가 남자를 진심으로 좋아할 준비가 되었다고 했어요. 아마도 딸의 인생에서 최초의 남성인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 나의 남녀관계, 남편과의 관계에 중요하다는 의미 같았어요. 아버지와의 안전거리가 얼만큼일 때 내가 편안히 느끼는 지를 감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그게 나의 숙제였어요.    

 

가족세우기에 의하면 방해된 다가가는움직임은 아이가 어머니나 아버지를 대할 때 감정적으로 위축되게 만듭니다. 보통 임신 중이거나 출산 중 또는 출산 직후처럼 생애 초기에 일어나는 이 사건은 아이에게 매우 고통스러운데 부모 양쪽에 대해 일어날 수가 있어요. 아마도 가장 큰 손상을 주는 외상은 어머니와 아이를 일찍 떼어놓는 것일 겁니다. 어머니가 출산 중에 사망하거나,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서 장시간 치료를 받거나, 혹은 어머니가 심한 병에 걸리는 등 여러 이유로 장기간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특히 생후 18개월 이전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되는데 방치된 아이가 어떻게 되는 지는 아동발달에 대한 연구에 잘 나와있습니다. 처음에 아이는 분노와 절망감으로 우는데 침묵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울고 또 웁니다. 이 때의 침묵은 평화로운 침묵이 아닙니다. 포기하고 어머니 관심을 끌려는 시도를 버리고, 자신 안으로 들어가서 위축된 아이의 침묵입니다. 위축된 아이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다가가기를 멈추고, 자신의 생명 유지 본능에 다라 어머니에게서 필요한 것을 받는 능력도 상실합니다. 설사 어머니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전형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어른이 된 뒤에도 사랑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면서 어느 선까지만 접근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애정을 원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대신, 두려워하면서 멈추어 한 걸음 물러서거나 또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거리를 둡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거부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번 세션에서 이 작업이 잘 되었는지를 점검했어요. 이번에는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의 대리인이 세워졌어요. 맨 처음의 나의 대리인은 엄마와 아버지를 향한 엄청난 분노를 지닌 모습이었어요. 양 손 주먹을 움켜 쥐고 있었어요. 눈을 흘기고요. 부모님은 끊임없이 나를 다정히 보면서 양팔을 벌려 나를 부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딸은 부모 양쪽에다가 분노를 쏘았어요.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 바닥에 쓰러졌어요. 부모님은 분노에 찬 딸을 두려워하고 불편해 했어요. 치유사는 내 것이 아닌 분노를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라 했습니다. 손바닥을 펴서 그것을 쓸어내었어요. 이윽고 나의 대리인은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손을 폈어요. 이윽고 그녀는 일어나 엉덩이 걸음으로 두 분 다리에 매달린 어린 아이로 돌아갔어요. 팔을 올려 두 분을 잡았어요. 앉은 채로 두 분을 올려다 보았어요. 그리고 두 분 다리에 얼굴을 기댔어요. 내가 외면했을 뿐 엄마와 아버지는 언제나 두 팔을 벌리고 나를 향해 사랑을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가지 않았다는 걸 보았어요. 진보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엄마 이해하기

 

내 것이 아닌 분노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세요란 말은 어떤 뜻일까요? 나는 내 주먹을 움켜쥐게 한 그 엄청난 분노가 어디서,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가 궁금했어요. 내 안에 분노의 매장량이 거대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거든요. 소혹성에 살던 어린왕자가 아침마다 바오밥 나무를 자르고 화산을 청소하잖아요? 내게도 어린왕자와 같은 바오밥나무와 화산이 있거든요.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내 별을 폭파시켜버릴거예요. 시스템을 종종 다운시키고요. 그 낭패를 관리하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우울증으로 표현되거나 막다른 골목의 벽을 만나면 온 몸을 던져 뼈가 부서지가 피를 내는 부적응이 나의 분노 때문인 걸 알고 있었어요. 많은 심리상담을 받았고, 심리학 책을 읽어댔고, 사이버 대학교 심리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했어요.

 

여름에 트라우마 힐링 웍샾에 갔어요. 이 웍샾은 3세 이전의 기억을 호흡과 몸의 감각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다이내믹 명상을 하고 있었어요. 다이내믹 명상은 오쇼가 만든 것인데, 충전, 감정 방출, 정지, 명상, 축하의 단계로 진행됩니다. 그 사람 안에 든 감정을 표현하고 발산하게 합니다. 나는 양 손을 여전히 굳게 주먹 쥐고 있었어요. 어느 날 오른 손의 주먹이 펴졌어요. 한 장면에 들어가 울고 난 뒤였어요. 내가 간 장면은 자궁 쪽 배를 움켜쥐고 죽은 이가 누워있다고 추정되는 바닥를 돌며 통곡하는 여자가 있는 장면이었어요. 상상이나 명상을 했냐구요? 아니요.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아랫배를 싸쥔 채 울어댔어요. 나는 알았어요. 내가 지금 보도연맹 사건 할아버지가 죽어 있는 자리에 간 할머니, 또는 할머니 뱃 속의 아버지의 경험으로 들어간 것을요. 오른손의 것은 아버지의 분노였어요. 뱃 속에 있을 때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슬픔이었어요.

 

왼손의 것은 엄마의 것이었어요. 다음 날에도 나는 통곡을 울었어요. 엄마엄마엄마를 부르며 땅바닥에 드러누워 발길질을 해대는 울음이었어요. 바닥을 쳐대는 손은 만약에 땅 바닥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다면 그 사람의 다리와 정강이, 허벅다리, 배까지 밖에 못 올라갔어요. 그러니까 얼굴은 본 적인 없다는 거죠. 미처 못다 운 울음이었어요. 그 울음 후에 왼 손이 펴졌어요. 울어대는 나와, 우는 게 누구인지를 알아채는 나와, 우는 이를 연민하는 나가 공존했어요. 그 경험은 따스하고 깊었어요. 엄마는 17살에 외할머니를 잃었어요. 외할머니의 임종 자리에 있던 엄마, 외삼촌, 이모는 형제 중 3명만 당뇨를 앓아요. 채 애도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수도 있구나 짐작했어요. 사지를 휘두르며 하늘을 향해 화를 내는 걸 경험했는데요, 아이들은 상실감을 분노로 표현한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 아버지가 너무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아이들은 나를 버렸다고 인지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고아도 아니면서 왜 고아의식을 느꼈던 걸까 한 순간에 이해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가 왜 마음에 고통이 많았는지, 엄마가 왜 그렇게 화를 많이 냈고, 가슴이 닫혀 있었는지를 알았어요. 부모님, 특히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한 순간에 녹았어요. 엄마의 고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걸, 그 큰 고통을 가진 채 최선을 다하셨다는 걸 알았죠. 깊은 연민과 감사, 사랑이 차 올랐어요.

 

 

가족체적 트라우마 통찰하기

 

보도연맹 사건을 다루었어요. 이건 가족체적 트라우마에서 기인합니다. 살해당한 할아버지, 가해자, 아버지의 자리를 찾았어요. 3명의 대리인이 뽑혀나왔어요. 나는 숨을 고르며 각각의 대리인의 손을 잡고 자리를 찾았어요. 가해자를 원의 중심에 놓고 있었어요. 그는 어깨 가득 분노를 장전한 채 움츠리고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대리인은 원의 거의 가장자리에 밖을 보도록 배치했어요. 그는 힘이 없고 휘청거렸어요. 아버지의 대리인은 할아버지와 가해자 대리인의 반대쪽 가장자리에 서 있었어요. 아버지 대리인은 장을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치유사가 장을 읽었어요. 움츠린 채 하늘을 보는 가해자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회피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 가족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아버지 대리인은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보다 할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서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고 했어요. 그들이 이런저런 역동을 거쳐 모두 땅 바닥에 누웠어요. 내가 세워졌어요. 나는 아버지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가까이에 있었고, 피해자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관심이 있는 후손인 거지요. 아버지 대신 내가 그들과 더 가까이 있고, 끌려 하고 보고 있었어요. 치유사는 나와 아버지 대리인의 자리를 바꾸었어요. 아버지가 그걸 보려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나에게 절을 시켰어요. 가해자, 피해자, 아버지 모두를 함께 보면서 각각의 운명을 향해 절을 드렸어요. 이런 치유문장을 주었어요. “저는 당신들의 운명에 동의합니다.” 그리곤 뒤돌아 서라 했어요. 뒤돌아서니까 아주 편안했어요. 무거운 짐은 아버지와 그 일이 일어난 당사자에게 남겨놓고 나의 길을 가라는 거였어요..  

 

우리집안은 한국전쟁에서 할아버지 2분이 학살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어요. 연좌제 때문에 쉬쉬했고,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에서 드러나는 건 공황장애나 개인의 도를 넘는 분노입니다. 이것은 살해 사건이므로 피해자와 가해자는 강하게 묶여 있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각자의 가정에 소속됩니다. 중대한 남녀관계도 포함이 되구요.  할아버지와 함께 그를 향해 총을 쏘았던 가해자도 제외되었습니다. 만약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숨기려 든다면, 중요한 가족 구성원이 제 자리에서 소속되길 바라는 가족체적 양심의 작용에 의해서 후세대 중에서 할아버지나 가해자를 동일시 하는 후손이 생긴다는 게 가족세우기의 입장입니다. 만약 가해자를 동일시한다면 마치 유태인 학살 피해자의 후손 중에서 유태인에 대해 우월감을 가진 나치장교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할 거고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한 질병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동일시 한다면 양극성과 관련된 질병, 공황장애 등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나는 이런 것들을 대를 물리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염치없지만 43살에 아이를 갖길 원하거든요. 장애물들을 하나씩 격파해 가길 원합니다. 언젠가 소설이나 동화를 쓰고픈 꿈이 있어요. 가해자든 피해자든 한 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있었던 있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내적인 힘과 역사를 두루 하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일상에서 다루기

 

지금까지 내가 얻어낸 것은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자녀는 부모님에 대해 감사와 사랑의 절을 드리며 부모님은 크시고 자녀는 작고, 부모님은 주고 자녀는 받는 질서에 맞게 자기 자리와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구하려는 자녀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건 자신이 부모보다 크다는 오만이니까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한 후에는 당신의 운명과 선택에 동의합니다.” 합니다. 두 분의 남녀관계에 간섭하지 않는 것 또한 포함해서요. 그래야 내 운명에도 동의를 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이 역할이 낯설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에 대해 엄마인 척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엄마의 남녀관계에 대해 판단하는 재판관이었으며 그 사이에 끼어들려는 이상한 딸이었습니다. 나는 그분들의 남녀관계를 포함해 오로지 그분들만이 지고 갈 수 있는 운명의 짐은 그분들에게 남겨둔 채 단지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며 내 자리에 서 있는 훈련을 합니다. 마음의 훈련은 명상에서 적용됩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필요한 때에 해도를 하실 것이고,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었던 부모님의 무덤을 바라보는 그 분들의 모습을 그대로 동의하고 존중하고 싶습니다. 시부모님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를 취하려 합니다. 만약 내가 내 부모님에 대해 저런 자세를 견지할 수 있다면 시부모님을 향해서도 일반화하기가 훨씬 쉬울 겁니다.

 

부모님을 대하는 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동의합니다입니다. 나는 마다 108배를 할 때 정면의 부모님 사진을 향해 절을 드립니다. 엄마 아버지가 제주도 여행에서 다정히 찍은 사진과 내 결혼식 때 친정 식구들과 찍은 가족사진을 나란히 신부인 내 옆에 두었어요. 나의 훈련은 부모님의 부부관계에 끼어들어 아버지를 향하는 눈이 아니라 부모님을 한 세트로 보는 겁니다. 드디어 나는 엄마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더 나은 여자, 아버지가 선택한 여자임을 오체투지를 하며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시선으로 엄마를 보고, 부모님의 남녀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동의합니다고 할 때 나는 부모님이 서로를 신랑과 각시로 선택했고, 죽을 때까지 평생 함께 하기로 결정했음을 느낍니다. 다툴 때도 있는데 그건 그분들의 사랑의 방식이고요,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부모님은 크시고 저는 작습니다. 부모님은 주시고 저는 받습니다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선택이 있다고들 합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부모님임에 동의합니다. 나의 동의는 날마다 한 방울씩 입니다. 동생들에 대해서도 엄마나 부모님 아래의 내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이전에 나는 엄마를 제끼고 나설 때가 많았습니다.

 

 

기초공사 두 번째, 결혼 안착 시키기

 

 

기초 공사 2장은 남편과 나의 남녀관계를 안착시키는 것입니다. 남녀관계를 안착시키려면 반드시 부모와 나와의 관계를 먼저 다루어야 합니다. 나는 처음 가족세우기에 간 건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의 걸림돌을 치우려는 목적에서였어요. 작업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남편의 이전 남녀관계, 가족에서의 짐 존중하기

 

혼인한 지 한 달 되었을 때입니다. 나와 남편의 관계를 다루었지요. 나와 남편의 대리인이 세워졌어요. 아내의 대리인은 남편 대리인과 그가 보고 있는 걸 끊임없이 신경을 쓰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어요. 남편의 어머니 대리인이 세워졌어요. 어머니는 기침을 하고 배를 쥐고 고통스러워 했어요. 땅 바닥에 그녀의 엄마와 남동생이 눕혀졌어요. 남편 대리인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남편은 어머니의 고통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나는 남편 대리인과 손을 잡고 그가 보여주는 시댁과 그의 가슴 속에 든 장면들을 전송 받았어요. 시댁의 역사에 대해 유심히 듣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6.25 전쟁으로 어린 동생과 엄마를 잃은 9살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족세우기에 의하면 성숙한 관계란 나는 당신이 원가족에서 가져온 것들을 알고 있으며 그것들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을 변화시키거나 구제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위한다는 이유로 상황을 바꾸려 하지도 않겠습니다.’ 라고 배우자에게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배우자에게 자신에 관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나의 가족에게서 가져온 것이고,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때문입니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이 짐을 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남편이 지고 있는 짐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 했습니다. 그가 지고 있는 짐을 지고 가도록 존중해야 합니다.  내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종종 그를 마마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가족과의 연결이 너무 강하게 느껴셔서 입니다. 그런데 가족세우기에서는 아내는 남편이 지고 있는 짐에 동의하라고 합니다. 남녀관계의 첫 번째는 부모와의 관계라구요. 나의 첫 번째 남자는 아버지이고, 그의 첫 번째 여자는 어머니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딸이었고, 그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아들이며 어머니의 전사였습니다. 나는 노력할 뿐입니다.

 

또 하나 나는 그의 이전 이성관계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역시 그보다 먼저 있었던 나의 이성관계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건 웍샾에서는 다루질 못했어요. 나는 이것을 위해 이전의 남녀관계에 대해 물었어요. 분란이 있었어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듯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로 나는 생난리를 한동안 피워댔습니다. 나는 그에게 분명히 말했어요. “나를 만나기 전 당신의 이전 모습을 존중할께요. 그러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사랑보다 신뢰를 저는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당신은 내가 개지랄을 했지만 신뢰를 주었어요. 앞으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할께요.” 진심입니다.

 

 

혼인의 두 번째 단계 : 네 분의 부모님 포함시키기

 

남편이 웍샾에 참가했어요. 전날 야근을 하고 아침 9시에 퇴근해서 곧바로 거기로 온 거였어요. 그 즈음 우리는 1주년을 보냈고, 시험관 첫 번째 채취와 이식, 실패를 겪고 있었지요. 냉동수정란 이식을 앞두었구요. 그는 내가 여러 번 이야기를 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어렵게 주말 이틀을 내어서 참석했어요. 나는 그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았어요. 그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다루었어요.

 

먼저 아내와 남편의 대리인이 세웠졌어요. 남편은 아내에게 다가가려하지만 아내는 멀찍이 떨어져 딴청을 피우고 있었어요. 치유사가 장을 읽었어요. 아내는 지금 실망한 상태다. 대리인들에게 가서 느낌을 물었습니다. 아내 대리인은 남편이 독립을 못할 것 같다고 했어요. 남편 대리인은 아내에게는 10% 정도의 관심이 간다고 했습니다. 치유사는 남편의 관심 90%를 차지하는 남편의 어머니를 세우겠다고 했어요. 남편의 어머니 대리인이 들어오자 남편은 어머니를 공전했어요.  치유사가 지금 어머니와 아내가 이 남편을 통제하려고 한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직접 보면서 통제하고 아내는 삐침으로써 통제한다고요.

 

니 아버지 꼴 나려고 그래?” 라며 자식을 통제하는 어머니를 향해 아들이 나는 내가 아버지와 똑 같은 게 기뻐요.” 선언하게 했어요. 그 말을 했을 때 그는 깊은 숨을 내 쉬었어요. 아들이 아버지처럼 안 살려고 노력하는 게 얼마나 마음의 짐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의 특징 중 힘들었던 부분을 안 닮으려 노력했던 아들의 고단함과 손해를 알 수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정체성 중 중요한 것들을 부인해야 했어요. 고생했던 어머니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마음이 여리고 술을 좋아하고 가정경제를 다 책임지지 못했던 것 때문에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어요. 아들은 그 순간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에게로 갔어요. 원래 가까이 있던 부자는 깊은 포옹을 나누었어요.

 

그는 어머니를 향해 나는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소주를 마십니다고 선언했어요. 그 말을 하고 활짝 웃었어요.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옆에 손을 얹고 서 있었어요. 부자는 다정히 웃음을 주고 받았어요. 시어머니와 나는 그의 술에 대해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있었어요. 아토피가 있는데도 그는 이부자리에 뻘건 핏자국을 남기도록 긁어대면서도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 즈음 나는 불만스럽다 못해 화가 나 있었어요. 도무지 남편이 원가족에서 독립할 생각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나의 지분이 너무 작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우리가 부부로 공유한 부분이 단 10%이고 남편의 마음의 90%를 차지하는 건 엄마에 대한 염려라는 걸 나는 알았어요. 시어머님에 대해 경쟁하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알았구요. 대리인 대신에 남편과 내가 투입되었어요. 그는 나에게 선언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결혼할 때 내 아버지와도 결혼했어요”, “당신이 나와 결혼할 때 나의 소주와도 결혼을 했소”, “내 부모님을 당신의 부모님처럼 존경해주세요.”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뒤 엄마와 아버지를 등에 업은 채 그의 곁으로 갔어요. 각각 자기 부모와,  특히 동성의 부모와 깊이 연결되고, 부모님이 등 뒤에 서 있는 남자와 여자는 안정감이 있고, 매력적이라는 걸 경험했어요.

 

두 사람을 이어주던 호르몬 이상에 기반한 사랑이 신비스럽게 남녀를 묶고 결혼에 이르게 한 뒤에는 반드시 결혼의 두 번째 단계로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건 네 분의 부모님을 배우자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거라고 했어요. 결혼을 위해 할 첫 번째 일은 여자는 아버지와 남자는 어머니와 회복하는 것이라 했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딸, 아버지의 아들로 자신의 여성성과 남성성의 동성의 부모에게서 잘 교통하구요. 여자든 자신의 부모와 연결될 때 한 여자와 한 남자로 잘 설 수 있는 듯 합니다.

 

 

빈 집은 얼마나 리모델링 되고 있나?

 

기초공사는 얼마나 진행이 되었을까요? 나는 내 집을 얼마나 가꾸고 있을까요? 과연 내 집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가정은 잘 지어지고 있을까요?

 

빈 집 2

 

지붕 위로 기어오르는 넝쿨을 심고 녹이 슨 호미는 닦아서 걸어두겠습니다 육십 촉 알 전구일랑 바꾸어 끼우고 부질없을 망정 불을 기다리렵니다 흙손으로 무너진 곳 때워보겠습니다 고리 빠진 문도 고쳐보겠습니다

 

옹이 같았던 사랑은 날 좋은 대패로 밀고 문지방에 백반을 놓아 뱀 넘나들지 않게 또 깨끗한 달려 그 방 가득 걸어도 좋겠습니다       

 문태준 <수런거리는 뒤란> 6

 

 

연구원 공부를 하던 중간에 사부님께 드리는 카드에 썼던 시입니다. 호박넝쿨을 올리고 미장만 손보면 될 줄 알았더니 내 집은 허술하여 기초 공부사부터 챙겨 보아야 했어요. 아이를 기다리는 게 집 수리의 주요한 계기, 동기유발이 되었어요. 커다란 욕망이 거기 있어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생명의 도구가 되는 일, 통로로 쓰임 받는 일에 나는 참예하고 싶습니다. 만약 아이가 오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의 운명일겁니다. 그래도 그와 내가 서로의 지붕이 되고 비를 맞지 않게 하고 마음이 담기는 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제 겨우 우리집 기초공사를 했어요. 그 일이 나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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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9:26:01 *.104.9.218

콩두선배는 집을 짖는 일을 하시면 잘 하실 것 같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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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20:00:05 *.175.14.49

이 집을 잘 짓고 싶어요. ㅎㅎ

집 짓는 사람은 다음 생에 한 번 해볼께요. ㅎ

감사합니다. 피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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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6 09:49:43 *.211.91.127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있었군요.   언젠가 인사동 길목에서 콩두님을 만났을때 대추차 한 잔, 함께 못 한 것이  내내 아쉬웠습니다.  또 그런날이 오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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