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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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서시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들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과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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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백미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고 했던가? 나는 벌써부터 설레고 있다. 약간의 염려도 되지만 신나고 기대된다. 적적할 것 같지만 그럴 틈도 없을듯하다. 내 속에 무수히 많은 내가 기어나와 말을 걸 테니까. 또한 내 안에 나만 있는 게 아니어서 곳곳마다 불쑥불쑥 동행하려 들테니까.
이번 여행의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매번 들고 다녔지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산 속 돌부처에도 물어보고 바람과 노송, 노을에게도 물어보고 나란히 계신 엄마,아버지께도 여쭤볼 작정이다. 여명을 보며 새벽에게도 물어보고 싶으나 그것은 둘만의 여행을 제안 받았으니 그때로 미뤄두자. 여행의 묘미, 동시성이 만들어내는 우연은 일어날까? 우연이든 필연이든 영화 ‘로마의 휴일’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앤공주와 같은 24시간이 나에게도 주어졌으니 즐겁고 의미있는 여행이 되도록 연금술사의 주문을 외자. 마쿠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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