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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22시 15분 등록

자전거로인생전환_구달칼럼#26

 

오병곤 작가의 30/50 터닝포인트 프로그램이 나왔다. <회사를 떠나기 3년 전>이란 그의 최근작이 실전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 책이 이렇게 진화를 거듭하는구나! 감탄했다. 오래 전부터 인생의 터닝포인트, 즉 인생전환이란 나의 화두였다. 태풍이 한 번씩 바다 밑을 뒤집어 엎어 주어야 벌교 꼬막이 씨알이 굵어지듯이 내 인생도 한 번은 갈아엎어야 할 필요성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40년을 산 솔개가 제 손으로 무디어진 부리와 발톱과 깃털을 뽑고 새로운 몸으로 소생하듯이 나도 50년 묵은 고루한 생각과 길들여진 생활방식을 버리고 완전 새로워진 나로 거듭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이 일은 실제로 자신을 한 번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신고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솔개의 죽음을 무릎선 거듭나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오는 겨울에 모종의 나만의 의식을 행할 작정이다.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다.

 

퇴직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어느덧 친숙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때가 되면 직업전선에서 물러나 다른 삶을 살라는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어느 나라에서는 나이 쉰이 되면 하던 일을 접고 승려가 되어 구도의 길을 떠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알고 가자는 참으로 지혜로운 풍습이다.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삶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동기회에 갔다. 많은 친구들이 이제는 돌아와 자연인이 되어 있었다. 삶의 깊은 가을에 들어선 나의 친구들 베이비부머의 현실은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직 대학을 다니는 아이들과 결혼을 앞둔 과년한 자식, 부양할 노부모를 둔 가장이 경제적 부양 책임 이행 불가를 선언할 때 그 가족이 받는 충격은 오죽했을까? 그들은 국민수득 50불 시대에 시작하여 2만 불이 되도록 조국의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헌신해 왔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조국은 이제 그만 떠나라 한다. 한국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은 그들이지만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인생과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실패한 대가로 벗은 몸으로 북풍한설 속으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30년을 일만 하다가 제대로 놀아 보지도, 취미 하나 개발하지도 못한 채 가족과 자기 자신 조차로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살았던 그들이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직장 일 뿐인데 그토록 사랑했던 직장이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경제적 자립과 아울러 절박한 정신적 홀로서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30여 년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벌써 홀로 사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가족생계와 일상생활을 책임졌지만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던 아내는 인생과 존재의 의미에 관한 한 나보다 한 수 위다.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죄다 아내를 찾는 전화다. 기타연주 동아리, 각종 학부모 모임, 교회 모임 등 인간관계망도 잘 구축되어 있다. 그래서 일주일 스케줄이 나보다 더 빡빡하다. 이런 아내에게 나는 알게 모르게 정서적으로 의존해 온 듯 하다. 저녁 산책을 할 때면 아내는 의례 이야기를 들려주는 축이고 나는 아이처럼 들을 뿐이다. 이야기의 소재도 풍부하고 재미있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친구가 아내뿐이지만 아내는 친구가 나 말고도 여럿 있다. 내가 퇴직 후 여행하며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나의 여행길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들이 대학 갈 때까지라고 말했지만 내심 나 없어도 얼마든지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아내는 이미 나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니 나도 아내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정신적 홀로서기가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홀로서기의 첫 의식으로 단식을 생각했다. 지리산에 들어가 한 달쯤 포도단식을 해 볼 참이다. 다음은 강원도 산중의 통나무집에서 백 일간 홀로 칩거할 생각이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백 일을 견뎌내 여자가 되었듯이 나도 그렇게 고독과 친구되는 연습을 해 볼 것이다. 이제 숙명적으로 껴안을 고독을 친구로 만들지 못하면 나의 홀로서기는 요원해 진다이런 통과의례가 끝날 즈음이면 봄이 올 것이다. 봄이 오면 자전거를 타고 여행 길에 오르리라.

 

그런데 나는 왜 하필 자전거를 타고 떠나려 하는 걸까? 자전거는 과연 내게 무엇일까? 내게 자전거는 한갓 쇳덩어리로 된 탈것이 아니라 나와 다름없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생명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저만치 애완견을 포대기에 싸서 얘기처럼 안고 가는 여자가 지나간다. 문득 강아지 한 번 키워봐라. 자식보다 훨씬 낫다.”라고 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의 애완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개를 자식으로 만들었다. 자전거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생물을 생물로 만들었으니 그의 애완견 사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면 내 심장과 허벅지의 힘이 자전거의 페달과 체인을 거쳐 자전거 뒷바퀴를 밀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때 나는 자전거 바퀴가 땅을 만지는 촉감을 다시 페달에 연결된 발과 다리를 거쳐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달릴 때 내 몸과 자전거는 일심동체가 된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후 한 5년인가 지난 어느 봄날인가 보다. 남한강 강변을 달리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몸에 착 달라붙어 감겨 들더니 내 몸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  봄바람은 부드럽게 내 몸을 애무하고 주홍빛 낙조가 제 그림자를 강물에 길게 늘이며 하늘과 강이 온통 노을 빛 속으로 잠겨 드는 때였다. 이 때 누군가 내 모습을 보았다면 구름에 달 가듯이 노을 속을 자전거로 달리는 저 사람이 사람인가 신선인가 했을 법도 하다. 그만큼 내가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졌다는 말이다. 그때 나는 벼락같이 깨우쳤다. , 나란 인간은 자전거를 타고 살 팔자인가 보다고.

 

자전거는 사람이 두 발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갈 수 있다. 지극히 인간친화적이어서 논둑길 밭둑길은 물론이고 비포장 산길이건 자갈이 깔린 냇물이건 마다하지 않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자신의 속도와 힘으로 갈 수 있는 이 생물을 어떻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따위의 매연덩어리 기계와 견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문명의 이름으로 왔으나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켰다.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굉음과 속도로 우리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도로의 무법자다이에 반해 자전거는 양같이 순하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소음이나 매연도 없다. 오로지 우리의 허벅지를 태운 힘만으로 나아가며 자연을 우리 가슴으로 데려온다. 바퀴를 통해 대지의 고동을 직접 느끼게 한다. 나와 세계 사이의 간격이 일시에 사라진다. 그 사이의 어떤 모호함, 관념, 추상 같은 알 수 없는 기호의 흔적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오직 명징한 실체만이 가슴으로 와 닿는다. 몸이 먼저 알아챈다. 삶의 진실을, 온 땅에 넘친 이 생명의 약동과 환희를.

 

그래서 나는 온 몸으로 외친다. “전환기에 선 자여 자전거를 탈 지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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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12:15:22 *.255.24.171

오늘 칼럼 너무 좋은대요. 글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듯 해요.

구달님한테 분 태풍이 모든 것을 풍요롭게 바꾸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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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14:59:08 *.196.54.42

그대 발길이 참 빠르군요^^

매일 모닝페이지를 정착시키는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게 잘 안되네..그대는 어떠신가?


글도 훈련인데.. 하염없이 앉아서 시간만 축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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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19:23:50 *.255.24.171

선배님의 애정어린 모닝콜과 동료의 합세로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어요.

진작 이 방법을 써 볼걸 그랬어요. 혼자하는 것보다 훨씬 좋네요. 든든하고, 같이 하는 책임감도 느껴지고.

오래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침에 일어나시는 것은 잘하시니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뭘 같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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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0:40:50 *.196.54.42

이렇게 댓글로 서로를 응원하는 것 이상 있을까? 항상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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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09:32:29 *.85.20.115

자전거 이야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시고 나서 정말로 글이 깊어진 거 같아요.

이래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쓰고 싶은 걸 써야 하나 봐요...

일찍일어느는 그대, 모닝페이지 화이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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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0:45:43 *.196.54.42

오~ 에움께서 뜨셨네^^

인생의 가을이 깊어지니 나도 별수없이 돌덩이 맨 머구리처럼 침잠하나 보오 ㅎㅎ

에움은 요즘 어찌 지내시나요? 내년에 잔차 끌고 상주 한번 쳐들어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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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0:02:07 *.223.14.85
자전거, 이런 깊은 뜻이 있군요.
그럼,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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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0:53:15 *.196.54.42

거암 선생님 납시셨네요, 황공무지로소이다^^

님도 잔차와 함께 청춘을 만끽하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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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1:20:29 *.124.78.132

저도 점점 구달님 글 너무 좋다는 생각 ^^* 앞으로의 칼럼들도, 자전거 책도 정말 기대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자전거 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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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3:14:59 *.196.54.42

향기를 휘날리며 레몬처럼~  오셨네요^^

날씬한 몸매와 맑은 정신를 원하신다면 자전거를 타소서, 유에스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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