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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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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0일 10시 11분 등록
오늘도 저녁 7시에 405호에서 모입니다.’ 띠리릭 문자가 도착한다. 지쳐있던 나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펴지면서 반가움과 또 고마운 마음이 한 가득 느껴진다. 고등학교 이래로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나는,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더더욱 내가 숫자와는 인연이 없구나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대학을 다니던 4년 내내 숫자가 들어가는 경영학의 모든 과목을 되도록이면 최소화해서 수강했고, 경제학을 복수전공 하려다가 경제통계라는 수업을 듣고 도저히 안 되겠다며 결국은 포기해버린 전력까지 있었다. 하지만 왠걸, 학교에서 수업 들을 때와 달리, 내가 하는 일인 마케팅은 숫자 감각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툭 치면 그에 알 맞는 숫자들을 대답해야 했고, 수많은 숫자가 쓰여있는 파일에서 트렌드를 빠르게 읽을 줄도 알아야 했다. 나는 늘 업무를 하면서 숫자로 분석하는 일들이 등장하면 초긴장 상태가 되곤 했었고 간신히 혹은 근근히 숫자들과의 동행을 했었던 것이다. 공부할 기회가 생기자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숫자와 친해지기로 마음 먹었고, 내가 어려워하고 또 하기 싫어하던 과목들을 모두 섭렵해보기로 했던 차였다. 한 학기를 마치고 여전히 나는 숫자 쪽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확고해 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담 쌓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익히면서 자그마하지만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다,

 

그런데 2번째 학기가 되어 수업 시간 마다 긍정의 힘을 잃게 만드는 과목이 하나 생겨버렸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니 자꾸 한숨만 쉬게 되고, 심지어 숙제를 하는 데 있어서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끼면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기존에 관련 내용을 조금은 습득한 바 있었던 동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는 것만이라도 제발 가르쳐달라는 많은 친구들의 요청에 응답해준 것이다. 본인이 푼 것이 정답일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문제를 풀어보자고 용기를 내어주었다. 처음에는 그 동기도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일에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의실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모여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 눈을 하고 앉아 있자니 왠지 더욱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계속되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이후로 숙제가 있을 때 마다 모였고, 시험을 앞두고도 모여 함께 문제를 풀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야간 학당이라고 부르면서 학당에 가는 시간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도 우리는 학당에 가서 다시 이해할 수 있었고, 누가 바보라고 부를까 봐 차마 질문하지 못했던 내용도 학당에서는 과감 없이 질문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였더라면 나는 나머지 공부를 하러 다니는 기분이 들어 창피해하거나 스스로 바보같다며 괴로워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것이,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오히려 학당에 다니는 내가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머지 공부라도 분명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인증샷을 남겼고 미국 과자를 먹었고 또 중간중간 수다를 떠는 꿀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아마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마 정규 수업 보다는 이러한 학당에 대한 기억이 더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결국 대망의 시험도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었다. 여전히 내가 쓴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다. 기말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에 막막해진 마음은 1학기 때와 똑같았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나는 몇몇 멤버들과 빈 강의실에 들어가 때로는 칠판에 써가면서, 때로는 걸어 다니며, 때로는 소파에 누워, 안 외워지는 내용들을 억지로 머리에 집어 넣었다. 서로 외우는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웃음 짓기도 했다. 혼자서 죽어도 이해가 안 되던 내용들이 설명을 들으면서 머리 속에 쏙쏙 들어왔고, 아주 가끔은 내가 설명을 해주면서 다시 완벽한 이해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공부하기도 바쁠 시간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써머리 파일을 공유하고 노하우를 알려주는 친구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또 무한히 고맙기도 했다. 다른이들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혹은 베풀었다가 상처를 받은 마음 때문에 그간 꼭 닫혀 있었던 나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 보면 회사에 있던 시간, 혼자서 프로젝트를 많이 맡아야 했던 점이 아마 힘들었던 것 같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혼자 뛰어다니면서 나는 더 외롭고 또 이기적으로 변모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라도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어서 다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결과에 상관없이 그저 그 일을 즐겨보기로 마음먹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도 참 다행이다.


문득 이 모든 것이 아마 연구원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학습된 결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글을 쓰기 전에는 온갖 걱정이 꼬리를 물었고 오프수업도 두려웠지만, 나는 그저 즐겨보라는 데카상스들의 조언에 힘입어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결국은 즐겁게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이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고 늘 든든했다. 우리가 같이 간다는 느낌, 그리고 매사를 즐기는 법을 이렇게 나는 점점 더 체득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언젠가는 녕이 학당을 열어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우리 모두 오늘도 함께 즐겨보자!

IP *.124.78.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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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11:58:06 *.255.24.171

매일 힘들다고 징징? 거리더니 이렇게 잼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구만.

'녕이 학당' 이름 멋지다. 꼭 이루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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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09:28:06 *.85.20.115

녕이가 수포자였다고? 반갑당..ㅎㅎ

우리도 나머지 공부하자..가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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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13:32:47 *.196.54.42

"우리가 같이 간다는 느낌, 그리고 매사를 즐기는 법을 이렇게 나는 점점 더 체득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언젠가는 녕이 학당을 열어..."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네요, 레몬처럼, 녕이처럼~ 즐겨라! 스페인을 즐기듯 이왕의 공부도 그렇게 즐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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