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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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경력을 정할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이 결정해 버릴 것이다. 남이 다 결정해 주었으니 편할까? 아니다. 알게 모르게 당신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게 된다. 또한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껴져 자포자기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재능에 대하여 스스로 주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리처드 N. 볼스,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 p.58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를 활용한 자기 직업 찾기에 도전해보았다. 이 책은 사람이 타고난 기술이 있으며 이것을 활용해 직업과 연관지어야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전용적 소질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찾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살면서 얻었던 힌트들을 총동원해서 내가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지를 되짚어 찾아내는 것이다.
그 활동들 중 책은 나에게 즐거웠던 경험 일곱가지를 꼼꼼하게 적어보라고 했다. 각각의 경험을 적을 때 가장 위에 써야 하는 항목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적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하나 쓰는데도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건 어딘가 초라하고, 누가 바람을 넣어서 했던 건 어딘가 내 것 같지가 않다. 이게 내 인생 맞나?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한참을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팔아넘긴 자를 색출하는데 골몰하다가 그래봤자 변하는 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여인이 죽어 신 앞에 섰더니, 신이 누구냐고 물었단다. 이름 말고, 누구의 딸 말고, 어느 학교의 학생 말고, 어느 회사의 직원 말고. 넌 누구냐고 물어대는 통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때는 여인이 가엾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내가 딱 그 짝이다.
자포자기하다가 약간 발끈해서 책에 적힌 워크북을 계속 해보았다. 바로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일단 지금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래,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고, 나도 그럼 뭔가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게 뭘까? 읽다보니 내가 찾아낸 것은...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나였다. 나는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였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나를 매우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최소한 그랬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일상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연결시켜야 할지에서 계속 막혀있는 상태였다. 내가 가진 소질들은 차가운 일들을 완수해내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약간 떨어져서 지켜보려고 노력했던 것도있었다.
나는 나를 알고 있으면서도 몰랐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나는 나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나에 대한 갈증이 밀려왔다. 내가 누구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다시 만난 소감을 말해보자면, 무척 반가웠다. 비로소 나에게 맞는 것들을 찾은 기분이었다. 너무 과장되지도 않고, 너무 쭈그러들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 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두근거리며 흥분되는 일인지. 이 세상에는 나를 구성하는 세포만큼의 내가 있다. 내 무게만큼만 나는 존재한다. 오히려 이 피부 바깥으로 나가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왜 나자신을 이렇게 찾아다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인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아마 그 이유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의 모든 에너지는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귀결되는 듯 하다. 만약 내가 아주 유명한 철학자로 죽게 된다면 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나의 철학을 한마디로 '내가 지금 여기 이 세상에 있다!'고 외치는 철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주 유명한 무용수로 죽게 된다면 비평가들은 나의 춤을 '나라는 감각이 폭발하는 춤'이라고 소개할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누굴 원망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다. 지금까지는 일종의 연습게임 같은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의 룰과 메뉴를 소개해주고 점수를 많이 얻는 팁 등을 알려주는 튜토리얼 말이다. 그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제 튜토리얼은 그만하고 나가서 본 게임을 뛰어봐야겠다. 일상에 적응해보려고 열심히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영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철저하게 바꾸어야 한다. 그건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나다움'에 대한 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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