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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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려 찾아왔던 거친 비와 찬바람이 지나갔습니다. 햇살은 더욱 찬란하고 가을빛은 더욱 고와졌습니다. 때이른 서리와 함께 노오란 산국도 다투어 만개하는 중입니다. 이즈음 나는 어김없이 그 작고 늦된 꽃, 산국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반 시간 가까이 물끄러미 그 꽃에 취해 있었습니다. 벌과 꽃등에와 파리와 나비는 물론이고 무당벌레까지, 손으로도 머리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곤충들이 날아들고 떠나가며 그 향기와 꽃가루를 탐하고 있었습니다.
비오기 전날의 숲은 그 햇살과 바람과 빛이 예술이었습니다. 예의 앞 마당의 산국 곁에 머물고 있는데 문득 스승님이 사무치게 보고싶어 졌습니다. 저 찬연한 가을 햇살 아래서 각자 끌리는 종류의 술을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기며 물들어가는 숲의 한낮 풍경을 말없이 누릴 수 있다면... 더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여쭙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저 저 깊은 산국의 향을 몸으로 느끼듯 스승님의 향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품고 숲으로 떠나와 깊은 겨울을 보내던 어느날 나는 스승님께 문자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살고 싶었던 삶에 대한 확신이 그보다 더 무겁고 큰 두려움 앞에 떨고 있던 그 겨울 늦은밤,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스승님, 제 꽃 피는 날 있을까요? 정말 있을까요?"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두려움에 밤을 뒤척이다가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는데,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휴대전화가 짧게 부르르 두어 번 몸을 떨었습니다. 스승님의 짧은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집으로 오르는 길에 겨울 목련을 보았다. 가지끝에 꽃망울이 달려 있더구나. 털 가죽 꽃망울 안에 그 고운 꽃 곱게 담겨 있겠지."
그 전 언젠가 비슷한 두려움이 나를 장악하고 놓아주지 않을 때도 나는 문자를 통해 여쭌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더러 두려운 날 있으십니까?" 여백을 두지 않고 이런 대답이 날라왔습니다. "나는 매일 두렵다. 눈을 뜨는 하루하루 그렇지 않은 날 없다."
어느새 이제는 더러 다른 이들이 내게 비슷한 질문을 던져오고 있습니다. 나는 스승님과 나눈 그 짧은 이야기를 대신 들려줍니다.
삶의 변곡점마다에서 마주한 그 두려움들을 온 몸으로 관통하는 방법을 알게 된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두려움에 대하여 여쭙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가을 비록 당신과 함께 저 산국향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지만, 또한 함께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움만은 어쩌지 못하는 가을입니다. 이번 주말 이 숲으로 모이는 꿈벗들과 저마다 품고 있는 그 그리움 짙게 나누어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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