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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4일 10시 00분 등록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237p

 

1. 저자에 대하여

 

신화학자, 그룹투사 꿈작업가. 신화와 아카데미 원장

 

국내에서 고생물학 석사학위를 받고 환경단체에서 일하다 1995 미국에서 우주론을 비롯한 현대과학과 명상, 요가 같은 세계 전통의 지혜와 영성을 탐구하는 창조영성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ICCS. Institute of culture and creation spirituality, Oakland) 이어 신화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PGI : pacifica graduate institute, santabarbara) 상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풀어놓은 김부타스에 대해 깊게 공부하게 되었다. “김부타스는 인류 초창기에 신은 여신이었고 남신 등장은 인류 역사상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고 주장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신화학을 공부하면서 꿈과 신화에 대한 감성을 익히고, 지금은 국내에서 꿈워크숍을 통해 꿈 친구를 늘려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문화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서울에서 꿈과 신화 강의와 분석을 하고 있다. 관심주제는 꿈과 신화를 통한 내면 탐구와 여신 전통이다.  

 

저서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로 우리 옛이야기 안에 숨어 있는 여성성을 발굴하는 시도를 했고, 신화적 시각을 연마하는 책 <HE>,<SHE>,<WE>,<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를 번역, 소개했다.

 

l  자료출처 :

왼날개

한겨레 Esc 내가 살고 싶은 그림자 아래서 꿈을 읽는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설문대할망 신화의 주요상징 8가지를 제목으로 정해 관련된 세계의 신화를 살펴보고 상징적인 의미를 펼쳐 보인다. 장의 시작은 설문대시절에…’ 시작되는 설문대할망 설화의 단락으로 인트로한다. 이 책은 저자가 3개월간의 제주도 답사를 하면서 썼다. 구체적인 지명의 답사기록으로 장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할망의 등경대였던 성산 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고, 할망이 빠져죽었다는 데 가서 고요한 기운을 느끼고, 할망의 오줌으로 만들어졌다는 우도 앞바다를 가보고, 할망이 다리를 놓으려 했던 연을 가서 보고, 할망과 할루방이 남근과 음문으로 고기를 잡던 섭지코지에 가본다. 장 안의 소절들은 앞 장에서 질문의 형태로 예고된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장의 내용을 1페이지로 요약을 해 놓았다.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 성산 일출봉을 등경대로 삼아 길쌈을 하는 할망을 통해 등불, 물레질, 길쌈의 신화적 의미를 살핀다.

2장  : 속옷 100벌을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을 살펴보며 속옷의 상징을 풀어나간다.

3장  : 수수범벅을 먹고 설사를 해서 360개의 오름을 만들어내는 할망 이야기에서 세계 신화에 나타난 똥의 의미를 살핀다.

4장  : 오줌으로 바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세계 창조신화의 오줌바다의 창조를 다룬다.  

5장  : 다리가 셋 달린 솥덕으로 삼각형과 원형 등 상징과 불과 관련된 신화를 살펴본다.

6장  : 하루방의 남근으로 바다를 휘저어 몰아준 물고기를 선문대할망의 음문으로 잡는다는 데서 바다와 물고기의 상징, 남근석 상징에 대해 다룬다. 남근석 이야기에서는 특히 남성학의 시도를 한다.  

7장  : 할망의 죽음에서는 신이 죽었다고 함으로써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는 면에 대해 다룬다.

8장  : 잠자는 할망 부분에서는 잠 또한 창조의 일부라는 의미로 꿈분석가로서의 통찰을 제시한다. 몰타의 여신유적에서 온 잠자는 여신상이 대표적 이미지다.

 

추천사에서 원형과 참여관찰이라는 저술의 주요 개념을 설명해주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서문에서 다룰 내용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추천자가 저자의 작업의 의미를 알고 있는 스승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내용은 저러한데 실제 책에 실린 목차는 각 장의 제목 정도다. 너무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문대할망 신화는 물론 신화 자체에 대해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장의 제목 아래에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상징이나 관련 신화에 대한 소제목들을 나열하는 식이면 어떨까? 이건 저자의 번역본의 저자 존슨의 방식이다. 나는 그 방식이 더 좋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목차에다가 살을 붙였다. 어떤 저자가 본문에서 붙인 제목이고, 제목이 너무 함축적이라고 생각할 때는 내가 붙였다.

 

1장 우주의 질서를 짜는 할망

성산 일출봉 등경불, , 길쌈, 물레질의 신화적 의미, 신화 속 길쌈하는 여인과 여신들, 연오랑세오녀

2장 미완의 속옷과 완성되지 않은 다리

        한림, 조천, 모슬포의 할망다리, 인간의 수 99와 신의 수 100, 할망은 왜 속옷을 받고 싶어했을까? 여신에게 옷을 바치는 사람들, 가리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여신의 옷, 다리의 상징적 의미, 놓다만 다리 그러나

3장 똥구멍으로 출산한 황금빛 오름

수수범벅 설사로 창조한 360개 오름, 항문출산, 트릭스터의 폭발하는 탄생의 힘, 똥의 섬 보물의 땅, 똥의 상징과 힘, 360연발의 무시무시한 생명의 힘

4장 바다를 만든 오줌 홍수

할망의 오줌으로 만든 바다 우도, 오줌바다, 파괴와 창조가 맞물린 대역사, 세계의 창조신화 중 오줌바다 신화, 거대한 오줌발을 지닌 역사 속 여인들, 여성의 오줌발의 의미, 출산자세 비슷한 배뇨자세

5장 다리가 셋 달린 솥덕

애월 할망의 솥덕자리, 솥과 조왕과 금기, 신에게서 불을 훔치는 신화, 집안의 불을 관장하는 여신(할망이 다스리는 집안의 불), 불을 다룬 최초의 흔적, 조리 : 할망의 연금술, 불을 보듬은 삼발 : 최초의 추상, , 삼각, 창조주의 진리 : 조왕할망의 마법

6장 자궁으로 낚은 고기

섭지코지, 고기잡는(낚시하는) 사람들, 하루방의 거대한 남근, 태초의 신은 할망인가 하루방인가/ 자궁 속의 물고기, 낚아올린 신세계

7장 할망의 죽음

한라산 물장오리 화구호, 거인 할망과 신화 속 거인들, 거인의 상징적인 의미, 한국의 거인 신화, 창조여신의 죽음, 왜 여신은 죽는가?

8장 잠자는 할망

섭섬, 몰타 잠자는 여신상, 빛 숭배 : 어두움에 대한 저주 그리고 불면문화, 어두움과 함께 펼쳐지는 영의 세계, 빛과 이성의 그림자: 불안과 우울, 밤의 비전: 심리학적 시각, 영혼의 관점

 

 

더불어 여기에다가 이미지를 삽입하면 좋겠다. 이미지는 저자가 본문에서 다룬 중에서 가지를 가지고 와도 좋을 같다. 목차에도 이미지가 제공되면 좋겠다. 목차에 대해서 소제목들을 포함하고, 이미지를 넣는 것의 목적은 가지다. 신화, 상징의 의미를 다룬다고 하면 어렵고 복잡하고 두루뭉수리하게 느끼는 선입견에 대해 도전하기 위해서다. 내가 신화에 대한 책을 정말로 쓰게 된다면 점을 명심하고 싶다.

 

또한 앞에는 설문대시절에…’ 마다 나누어 놓았던 신화의 내용과 출처를 앞에 밝혀두면 좋겠다. 책은 논문처럼 인용 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뒷편에 참고문헌이 나오고 글의 중간중간에 인용출처가 밝혀져 있어 신뢰감을 준다. 그건 저자가 신화학 박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내 책에 적용한다면

 

고혜경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같은 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키워드 신화, 여성, 통과의례,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런데 신화학 박사인 그녀가 쓸 수 있는 책과 일반인인 내가 쓸 수 있는 책은 분명 다를 거다. 그녀가 모든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책을 학자의 입장에서 쓸 수 있다면 나는 일종의 현장연구 같은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교사로서 현장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다. ‘연구하는 교사는 내 꿈이다. 전문 연구자와 교사의 연구는 매우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교사는 현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가설을 세우고 적용을 해서 과학적, 합리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결론을 낸다.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 현장연구논문이다. 전문학자의 연구결과를 공부해서 그것을 적용하는 역할을 현장연구교사는 수행한다.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방식은 사례연구다. 나는 신화의 여러 부분 중 특히 통과의례부분에 관심이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결혼의 통과의례, 남녀가 부모가 되는 통과의례, 죽음의 통과의례가 매우 부족하고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인류의 깊은 무의식에 기반하고, 다듬어진 신화는 좋은 텍스트가 되어줄 것 같았다.

 

신화와 관련되어서도 나에게는 현장이 있다. 나는 결혼한 지 2년차인 새댁이고, 아이를 기다리기 위해 시험관을 해 가고 있다. 실제로 나는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변화에 대해 통과의례를 셀프 진행하고 있다. 결혼식을 하긴 했지만 현대의 결혼식이 이전의 신화시대처럼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나는 중요한 통과의례의 하나인 출산, 탄생의 현장에 있다. 나는 적극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기다린다. 결혼 안에서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제대로 통과하고, 임신과 출산 안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 여건을 나는 가지고 있다. 이건 충분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책은 결혼, 신화, 여성 이런 키워드를 가진 에세이다. 8기 연구원 마지막 수업에 초대되어 오신 김학원대표님은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이 신화가 아니라 여성쪽 책일 거라고 이야기를 하셨지. 그 말이 맞다.  신화로 분류된 서가에 꽂히는 학문적 책이 아니라, ‘여성으로 분류되는 에세이면서, 오늘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의 내 경험과 이야기가 많이 포함된 책이리라. 개인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고혜경선생님의 책은 나라는 구체적인 사례의 현실과 일상을 들여다보는 좋은 분석틀이 될 것이다. 

 

고혜경선생님의 저자 약력에는 신화학 박사에 꿈작업 전문가, 저서와 역서가 명기되어 있다. 나의 저자 약력은 무엇일까? ‘어릴 때 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이야기의 힘을 경험했던 것, 두번째 스무살이라는 중년기 위기를 겪으며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모닝페이지를 시작해 6년 썼다는 것, 20년 불교수행자라는 것, 사범대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특수학교() 선생을 16년 했다는 거, 마흔 넘어 결혼을 해서 아이를 기다리기 위해 휴직중이라는 것이 적히리라. 내가 생활인이라는 증거들이다. 자신의 삶, 자신의 현장에 든든히 발 딛고 서 있다는 증거들이다. 가정과 직장 안에서 고군분투 했던 삶 자체가 현장연구/사례연구라고 하면 모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녀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사랑은 내 모험의 출발점이었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마와 분리된 채 아버지의 딸로 자라났다. 내 여성성은 약하다. 고혜경선생님은 힘들었던 이유가 여자로 살아가는 본, 이미지를 알지 못하고 준남성처럼 생존했던 걸 이야기한다. 외국에서 유학해서 8년을 보내며 어둠을 통과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가부장제 안에서 사는 모든 여성에게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여성성 회복을 통해 여성이 여성다워지며, 또한 남성이 자기 안의 여성성에 대해 더 잘 알게 됨으로써 양성 모두고 조화롭게 자기다와지고 희망한다. 그녀가 옛 이야기 속에서 여성성을 발굴하는 과제를 발굴해 다루고, 한국판 창조여신 설문대할망 신화를 재조명 하는 이유다.

 

나는 결혼에다 촛점을 맞춰서 늦깍이 새댁의 생활밀착형 신화 읽기라는 부제의 기획안을 올해 2014년 초에 작성했다. 문요한 선배님은 고혜경선생님의 추천을 받으라 했고, 신화보다 생활밀착에 더 방점을 두어서 살펴보라 했고 한명석선 배님은 너무 많은 내용을 한 권에 다루려 한다며, 기획안을 메일로 보내라 하셨다. 그 이후로 기획안을 덮었다.

 

그걸 다시 펴보는 계기를 이 책이 주었다.  고혜경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이 분과 나의 관심사가 같다, 차이점, 그러니까 내가 유리한 자리, 나만이 할 수 있는 틈새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자체가 의미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쓰는 훈련이 학교로 돌아가 학교 배경의 현장연구논문을 쓰는 데도 적용이 될 거라 낙관한다.

 

 

 

2) 장점 및 보완점 평설

 

우연히 달 그림자 아래서 꿈을 읽는 집을 읽었다. 인터넷 한겨레 ESC ‘살고 싶은집에서 고혜경박사의 인터뷰 기사였다. 신화학박사, 꿈분석가, 꿈 아카데미 원장인 그녀가 살고 있는 부암동 집에 대한 기사다. 나는 집이 사람을 드러낸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그 기사를 밑줄 그어가면 유심히 읽고 상상했다.  

 

2006년부터 산 그녀의 집은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였던 전 집주인이 까다롭게 매수자를 정했다. 집을 아낄 수 있고, 이웃, 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지를 살펴 합격했다. 아버지는 딸이 깃든 집을 와보고 유배지가 따로 없다고 했단다. 침실, 서재, 거실로 된 25평의 빌라 2층이다. 서재의 정면에는 산의 사계를 볼 수 있는 통창이 있다. 한 벽은 신화, 상징, 꿈에 대한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 있다. 그녀가 번역중인 <여신의 언어> 마리쟈 김부스타, 비교신화학작 조셉 캠벨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대학원 시절에 스승과 학생으로 만나 친구가 된 꿈스승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의 사진은 책상 위에 있다. 마리쟈 김부타스는 인류 초기의 신들은 여신이었으며 그 사회는 평화롭고 평등했음을 유적을 토대로 밝혔다. 두 개의 여신상 기원전 3500년 경의 뷜렌도르프 여신상, 몰타 잠자는 여신상이 있고 그 위에는 우리 동화를 텍스트로 한국인의 무의식을 소재로 작업해온 화가 <월영>이 걸려 있다. 침실에는 깔리여신, 아프로디테, 나바호족 창조여신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세 여신 모두 창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꿈노트가 있다.

 

나는 그녀의 집에 대해 읽으면서 그녀가 스스로 썼을 왼날개 저자 소개에 관심주제는 꿈과 신화를 통한 내면 탐구, 여성성 회복이라고 적었던 걸 이해했다. 그리고 창조영성, 신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으며 침잠했던 8년간의 유학시절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적었다는 그녀의 전작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에서 드러나는 여신에 대한 관심이 드디어 두번째 책인 이 책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가 제주 고씨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제주 사람의 절반이 고씨다. 이 책의 저술에는 3개월간의 제주도 답사와 취재를 포함한다. 그녀가 우도 들어가는 배 위에서 인류공통의 위대한 여신 원형이 드러나는 한국의 설문대할망 신화가 재조명되는 걸 축하하는 듯한 돌고래를 볼 때, 한라산 물잠오리 화구호에 앉아 고요한 기운을 느낄 때, 성산 일출봉 앞에서 동트는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일출봉을 등경대 삼아 길쌈을 하던 할망의 창조를 생각할 때 나도 거기 있는 듯 싶고, 한 건 그 시간대에 거기 머물러 발로 느껴보고 싶어진다.

 

그녀는 설문대 할망이라는 제주 창조신화 속 거녀의 이야기를 발굴한다. 이것은 원형이 자기를 드러내는 것 중 하나란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이 추천사에 잘 나와 있다.  

 

5 - 원형(archetype)이라는 단어는 심리학자 칼 융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차용해온 말입니다. 그리스어 어근을 살펴보면 일정한 형태로, 그리고 되풀이해서 충격, 자극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형은 결과와 결론 뿐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개념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원형의 의미는 더 분명하고 명쾌해집니다. 원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사례나 산물을 만들어내고 이것들로 인해 점차 더 명료하고 확실해집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유럽에서 금속활자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구텐베르크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에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가 발명된 곳이 한국입니다. [참고로 활자(type)란 단어는 원형(archetype)과 같은 그리스어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인류에 이런 엄청난 혁신적 기술이 서로 다른 시기, 동떨어진 지역에서 똑같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발명과 기술의 진화라는 원형적인 패턴이 지구상에 드러나는 좋은 예입니다. 사람들이 직접 교류를 하든 안 하든, 어떤 시점에 이르렀을 때 세계 곳곳에 떨어져있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은 높습니다.

 

6 설문대할망의 신화-의례 또한 전 인류에 되풀이되어 등장하는 위대한 여신(great Mother)'이라는 원형의 예입니다. 이 원형은 신의 여성적인 측면 즉 여신 원형으로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고 지역과 지구 생태계 생명의 도래와 소멸, 그리고 모든 유기체의 위대한 그물망이 조화롭도록 과장하는 어머니이신 자연(Mother Nature)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설문대할망은 한국의 고유한 여신이지만 더 크게 보아 위대한 여신이라는 원형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저자 서문에서 밝힌다. “역사시대 전, 인류 초창기의 오랜 시기 지구상에 존재했던 온전한 여신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 고대의 여신전통을 접한 후 내 삶의 화두였다.

할망의 이미지를 되살려 다시 집단의 기억으로 불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다. 고대신화를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재번역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화는 과거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를 다루기에 고대의 정신 유산을 탐색하여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또 미래를 열 전망을 읽어내려 한다. 이것이 신화를 공부하는 자의 임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한국적 토양에서 설문대할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낸 위대한 여신이 자신의 천의 얼굴 중 한국적인 얼굴을 스스로 드러낼 때가 되었고, 그 할망이 스스로 고혜경박사라는 이야기꾼을 선택했을까?

 

그녀는 등불을 든 길잡이가 되어 창조여신 설문대할망의 신화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것을 열쇠삼아 엄청나게 풍부한 상징의 방 문을 열어젖힌다. 각각의 부분과 상응하는 세계신화를 수두룩하게 가져다 놓는다. 이 풍성한 증거들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나의 무의식이 이런 위대한 여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이 자랑스러워진다.

 

설문대시절, 설문대 할망은 성상 일출봉을 등경대로 삼아 길쌈을 한다. 길쌈과 물레질은 많은 신화에서 성스러운 작업이었고 여신이나 왕녀들의 작업이었다. 길쌈은 바로 운명을 짜는 것이고, 

제주의 자연을 창조하는 행위였다. 할망은 설사로 360개의 오름을 창조한다. 똥은 세계신화에서 부와 연결된다. 엄청난 생명력과 창조력을 나타낸다. 똥을 누어서, 뒤로 창조해낸 세계 여러 지역, 여러 민족의 신화가 소개된다. 할망은 오줌을 누어 우도 앞 바다를 만든다. 이런 오줌홍수신화 역시 세계적으로 조명된다. 역사적으로 여인의 오줌발을 여인의 생명력의 증거로 본 예가 나온다. 삼국유사 지철로왕, 오줌으로 도시가 잠기는 꿈을 사서 새 나라의 왕후가 된 문희와 고려 왕건 작제건의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할망은 속옷을 지어지면 육지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한다. 신에게 옷을 지어바치는 예가 많다. 속옷은 사회적 위치,역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 내밀함, 친밀함을 상징한다. 99벌 밖에 마련하지 못했다는 건 인간의 헌신의 부족함을 말한다. 할망은 세 개의 돌을 놓아 솥덕을 걸어 밥을 한다. 여기서 원과 삼각형의 상징, 그리고 불을 훔치는 신화, 고래부터 부엌과 불에 관련된 신은 여신이었음을 드러낸다. 제주 최고의 어장 섭지코지에서는 하루방이 남근으로 몬 고기를 할망의 음문으로 잡아들이는 신화를 해석한다. 할망은 물깊이를 재느라 밑이 터져있는 물장오리에 들어갔다가 빠져죽는다. ‘신이 죽었다고 신화에 드러내는 건 죽음 자체를 삶의 자연스런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저자의 말이 타당하게 들린다. 마지막 부분은 할망이 잠잔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저자가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그녀는 꿈분석가답게 밤의 가치를 설파하고, 미지의 영역으로서의 잠과 꿈의 가치를 말한다.

 

그녀가 이 책을 쓰는 방식이 참여관찰이라고 한다. 이게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장점으로서 첫째, 설문대 할망 신화에 나온 부분에 다양한 세계 신화가 두루 인용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이것이 정말로 창조신화라는 것에 나는 기꺼이 설득당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각 신화에는 신뢰로운 인용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그건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점 두 번째 쉽다. 이 책은 논문 같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로 학위논문처럼 딱딱하게 씌어졌다면 정작 읽을 필요가 있는 일반인들에게 가 닿기가 쉽지 않으리라. 그건 저자 특유의 이야기에 대한 선호, 슬쩍 옛날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처럼 하다가 빠져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특유의 스토리텔링의 힘인 듯 하다. 전문가가 읽어도 손색이 없으면서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게 비교적 어려운 분야로 알려진 분야에 다시 독자의 관심을 불러들이는 저자들의 특징인 듯 하다. 정민교수도 한시를 그렇게 다룬다.

 

신화 설화가 어떻게 다른 지 모르겠다. ‘설문대할망 시절에…’로 인용된 부분의 출처가 궁금했다. 뒷 부분의 참고문헌에 보면 설문대할망 설화논문이 있던데 이것이 그것인가 궁금했다. 나라면 설문대할망 신화의 출처 원문을 누구의 것을 채택했고, 이유는 무엇이고, 설화를 신화로 표현하는 이유는 뭐고, 어떻 식으로 창조적으로 다시 썼다는 걸 밝혀둘 것 같다. 

 

고전, 책을 읽는 이유는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해 보는 데 있다고배웠다. 설문대할망의 신화는 제주도민의 신화가 아니다. 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고혜경의 작업은 매우 한국적이고, 개인적이면서 세계적이다. 세계인에게 적용되는 원형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기독교적, 또는 남신의 창조신화의 대표적인 인트로다. 여신의 창조는 남신의 창조와 매우 다르다. 남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추상적으로 하지만 여신은 유에서 유를 창조하고, 구체적이고 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 , 일상의 작업이 중요하다. 여신은 길쌈을 하고, 속옷을 해달라고 요구하며 소통하고, 설사로 오름을, 오줌으로 바다를 만든다. 하루방과 섹스하고 죽고 잠을 잔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의 여성과 남성이 하고 있는 자연스런 일상이다. 몸으로 하는 일상이 신비로운 창조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건 무척 새로운 관점이다. 이런 창조여신의 이미지를 나바호족 인디언, 캘틱신화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지명과 정서가 반영된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로 알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거인이었던 설문대할망으로 인해 내 안의 거인과 조우하게 된다. ()의 힘과 지혜를 물레질 하고 길쌈해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

  

나도 꿈을 관찰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하다보니 꿈을 채록할 때가 많았다. 나의 꿈에는 수많은 할머니들, 재봉틀, 똥누고 오줌 누는 일, 밥하고 떡을 만들고 약을 고는 요리하기가 자주 나온다.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고 고혜경선생님이 동시통역을 하던 웍샾에서 나는 꿈에서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이 요리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요리사가 천직이라는 말입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제레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창조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어쩌면 개인적인 삶에서도 이미 할망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누군지 몰랐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 지 몰랐다. 신화학자이자 꿈분석가인 고혜경박사의 등불 덕분에 설문대할망신화를 빌어 그 의미와 방향을 일상에서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3) 감동적인 장절

 

 

원형에 대한 좋은 설명과 예

 

5 원형(archetype)이라는 단어는 심리학자 칼 융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차용해온 말입니다. 그리스어 어근을 살펴보면 일정한 형태로, 그리고 되풀이해서 충격, 자극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형은 결과와 결론 뿐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개념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원형의 의미는 더 분명하고 명쾌해집니다. 원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사례나 산물을 만들어내고 이것들로 인해 점차 더 명료하고 확실해집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유럽에서 금속활자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구텐베르크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에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가 발명된 곳이 한국입니다. [참고로 활자(type)란 단어는 원형(archetype)과 같은 그리스어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인류에 이런 엄청난 혁신적 기술이 서로 다른 시기, 동떨어진 지역에서 똑같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발명과 기술의 진화라는 원형적인 패턴이 지구상에 드러나는 좋은 예입니다. 사람들이 직접 교류를 하든 안 하든, 어떤 시점에 이르렀을 때 세계 곳곳에 떨어져있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은 높습니다.

추천자가 책의 핵심을 짚어서 소개한다. 만약 추천자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저자가 해야 했어야 작업.

 

6 설문대할망의 신화-의례 또한 전 인류에 되풀이되어 등장하는 위대한 여신(great Mother)'이라는 원형의 예입니다. 이 원형은 신의 여성적인 측면 즉 여신 원형으로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고 지역과 지구 생태계 생명의 도래와 소멸, 그리고 모든 유기체의 위대한 그물망이 조화롭도록 과장하는 어머니이신 자연(Mother Nature)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설문대할망은 한국의 고유한 여신이지만 더 크게 보아 위대한 여신이라는 원형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원형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이것이 이해가 쉽다.

 

7 세계의 다양한 신화-의례는 전 지구를 아우르는 단일 신화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조셉 캠벨이 전 세계의 신화를 하나의 신화(mono myth)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 문화, 영성 안에 숨겨져 있는 신화는 우리가 한 세계에 살고 있고 또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말했던 이유

 

7 이제 제주도 설문대할망을 위해 만들어졌던 신화-의례가 재미난 이야기꾼이자 친절한 해설자인 고혜경 박사를 찾아냈습니다. 저자의 연구 덕에 할망은 세계의 다른 여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본래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10 미실은 남신시대에 살아남은, 몸과 힘은 없고 선함과 자비심만 있는 반쪽짜리 여신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의 어마어마한 여신(Great Goddess) 이미지와 참으로 닮았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준비가 되었기에 드라마에서 이런 여성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10 역사시대 전, 인류 초창기의 오랜 시기 지구상에 존재했던 온전한 여신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 고대의 여신전통을 접한 후 내 삶의 화두였다. 그리고 그 토대를 만들어준 사람은 고고신화학자 마리야 김부타스 (Marija gimvutas)였다. 그는 인류가 종교적인 감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신들은 여신이었다는 이론/가설을 제시하면서, 인류 초창기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전쟁과 위계가 없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였다고 주장한다.

 

11 이렇게 힘 있는 창조여신이 이 땅에 살아 있었구나.

 

12 할망의 이미지를 되살려 다시 집단의 기억으로 불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다.

 

20 신화적 상상력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정신분석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는 <창조신화>라는 책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히 해준다. 신화와 민담들을 살펴보면 원시사회에서는 어떤 기예도 인간이 먼저 발명한 적은 없다고 한다. 기술이나 공예는 신이 계시하는 데 신이 가지고 있는 원천지식을 드러내 보일 때 인간이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21 , 길쌈, 도예, 쇠붙이 다루기 등 인류 진화사에 큰 획이 되는 기예들은 태초에 신들의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23 창조주 할망의 빛은 선조들에겐 곧 의식의 빛이다.

 

27 시빌레 버크하우저(silbylle birkhauser)는 물레질을 정신의 활동과 연관지으면서 창조의 과정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살 잣는 모양새는 짱구를 굴리고 두뇌를 회전시키고 생각을 풀어내 무의식에서 뭔가를 탄생시키는 작업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27 물레질로 길고 고운 실이 자아지면 고유한 문양을 짜게 되는데, 이 과정이 길쌈이다. 심리학적으로 길쌈은 다른 두 요소의 분화 혹은 구분을 뜻한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전환도 이 분화에서 시작된다. 분석심리학자 아니엘라 야페(aniela jaffe)는 하나의 사실을 둘 혹은 그 이상의 측면으로 구분해내거나, 내포된 의미의 대극을 찾는 것이 의식적인 깨달음의 선결과제라 설명했다. 심리학보다 신화적 표현이 훨신 단순명쾌하다. 대부분의 창조신화에는 칼, 화살, 도끼 등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나누고 분화하고 구분하고 구별하는 분할과 분류의 상징이다.

길잽이로 검투사를 두어 다행, 감사

 

40 길쌈은 폰 프란쯔가 지적하듯이 주로 창조신화와 관련이 있다.

 

49 속옷은 상징적으로 겉옷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겉옷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라 본래의 자신과 사회의 요구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한다. 외부세계에 드러내고자 하는 면모를 옷으로 표현하므로 겉옷은 개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 속옷은 드러나는 매무새 안에 감춰진 훨씬 내밀한 것이다. 알몸에 직접 닿아 체온을 유지하거나 땀을 흡수하는 등 위생적인 면도 두드러진다. 속옷은 한 마디로 살갑다. 따뜻함, 친밀함과 내밀함이 할망이 요구하는 속옷에서 연상된다.

 

60 할망에게 바쳐야 할 미완의 속옷이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업일지도 모르겠다. 다리가 놓이려면 겉옷이 아니라 속옷을 지어야 한다. 건설이나 영토의 확장이라는 가시적인 세계의 변화보다는 각자 내면의 세게로 다리를 놓으라는 뜻이 아닐까?

 

66 수수범벅을 먹은 할망이 힘차게 난사하는 360발 설사탄으로 한꺼번에 해결한다. 원시적이고 파괴적이고 강력하다. 여신과 남신의 창조에 큰 차이가 있다면, 남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반면 여신은 유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예로 빛이 있으라가은 말씀, 혹은 추상적인 아이디어로 창조하는 것이 남신의 방식이라면, 여신의 창조는 물질로부터 물질이 탄생한다. 설문대할망의 창조과정 역시 이 주장에 무게를 더한다.

 

83 설사는 똥의 홍수다. 이 이미지는 빗발치듯 퍼부어대는 창조의 힘과 무시무시한 무의식의 파괴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창조와 파괴는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할망의 설사탄이 강변해주는 듯 하다.

 

88 세계의 창조신화에는 바다의 기원을 오줌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89 오줌으로 바다가 태어나는 이미지는 홍수신화로 보아야 할까? 창조신화로 보아야 할까? 이 질문에는 이미 창조와 파괴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

93 할망의 오줌 홍수신화에서 창조와 파괴는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여기서는 창조자가 동시에 파괴적이다.

 

103 다산과 풍요로운 결실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던 시절에는 여성의 비옥함이 그 자체로 존중되었으나, 이 풍요로운 힘이 도덕이란 이름으로 조악하게 변질되어 가는 동안 여성의 몸 뿐 아니라 땅과 자연에 대한 가치도 함께 왜곡되었다. 하지만 남신 사회, 편향된 남성 중심사회에서 왜곡된 본래의 인간의 모습이나 힘에 대한 흔적을 고래의 신화와 꿈을 통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105 선사시대 자료를 보면 출산하던 자세가 여인들이 오줌을 누는 자세와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도 섬도 할망의 오줌바다도 이 원형적인 자세로 태어난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할망처럼 여인들도 아이도 누고 오줌도 낳게 된 모양이다.

엄마는 4아이를 모두 집에서 출산했다. 산부인과 한 번 가본적 없다. 쪼그리고 앉는 자세로 아이를 낳았단다. 이건 엄마, 고모, 증조할머니가 알고 있는 출산법이었다. 누워서 아이를 낳는 일은 없었다.

 

121 지금까지 알려진 화덕을 지키는 신은 모두 여신이다. 

 

121 할망이 다스리는 집안의 불

-       중국 소수민족 나씨족. 태양 여신이 여인들을 위하여 화당 옆에 두는 부뚜막 받침돌을 신산에서 직접 썰어 등에 매고 가져다줬다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 여성신화>)

-       고대 몽골 화덕 툴룩. 몽골에서 화덕은 가정의 중심이자 생명의 중심이다. 화덕을 지키는 불의 여신을 걸럼트 에흐, 불 어머니라 부르는데, 집안에 불이 있으면 자손과 가축이 번성하고 번영과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금기가 많다. 칼로 불을 찔러선 안되고 장작을 패서 불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도 안되고, 함부러 말하거나 더러운 것을 태워서는 안된다. 신발이나 속옷을 불 가까이 두면 안된다. 화로의 왼쪽으로 도는 걸 금한다. (이안나,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       슬라브의 불의 여신 베레기니아, 리투아니아 가비야, 폴란드의 마트카 가비아,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프리그. 각 나라의 조왕들이다.

-       로마 베스타. 베스타는 헤스티아와 비중이나 특질에 차이가 있다. 불의 신, 화로의 신, 가장의 신. 로마의 배꼽이라는 시내 정중앙에 베스타의 불이 연중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해마다 3 1일에 묵은 불을 새 불로 교체. 신전이 따로 있지 않고 땅에 둥근 원이 있고 그 안에 신성한 불을 보관한다. 베스타신전이 로마의 중심이듯 화로가 그 집의 중심이었다. 현대 가족 문제 역시 구심력 부족이 원인인데, 각 가정마다 베스타 여신이 거주하는 자리가 있는 지 그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우리집에는 있나? 해바라기 그림. 그 위에 모형 화로, 선반을 두고 그 위에다가 초를 두고 싶구나. 상징은 집의 화로이다. 우리 가족의 구심점은 헤스티아를 가진 내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불은 그냥 안온히 타오를 뿐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124 불 할망은 집의 중심이다. . 온기와 정담으로 피로를 녹이고 음식으로 살찌우고 생명으로 충전하는 자리. 영혼의 자궁처럼 온기와 밥이 있는 자리. 가슴에 품는 그리움의 표상, 어머니의 품 같은 화덕은 본질적으로 여신의 자리일 수 밖에 없다.

 

130 할망이 솥덕을 놓았던 것처럼 제주민들도 부엌 안쪽에 솥덕을 마련하였다. 이 솥덕은 집이라는 소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이 자리에서 날것의 음식뿐 아니라 사람도 익혀져 성장하고 죽고 거듭나는 변형이 이루어진다.

요즘은 제주민들도 아파트, 빌라에 산다. 솥덕은 없다. 가스렌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전통을 어떻게 현대의 주택에 살릴 수 있을까?

 

135 솥덕 위에 앉아 있는 둥그런 솥은 자궁을 연상시킨다.

136 조리란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출산과정이다.

136 밥을 짓고 먹는 것이 평범한 일상 같지만 태초의 창조행위 즉 창조주 할망과 직접 계보가 닿아 있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신성한 과업, 즉 신의 예술에 동참하는 성스러운 일이다.

 

148 무형이든 유형이든 무의식 속에 있던 부를 세상 혹은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의식과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심리적인 의미의 고기잡이인 듯 하다.

 

149 한국 남근신앙을 가부장적 남아선호사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남근숭배는 성차별이나 남아선호, 혹은 가부장적인 문화 그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17,000년 경, 구석기 동굴 라스코. 동굴 가장 안쪽에 남근의 이미지 (캠벨, <동물적 힘의 길>) 세계의 암각화, 인류 초창기 신앙의 흔적에서 남근 이미지는 비일비재.

 

150 아이러니 같지만 가부장적인 현대사회에서 남근은 오히려 억압된 상징이다. 그리스도교 영향권, 유교문화권에서 남근이 공개적으로 신의 이미지로 숭배 받거나 남근 자체를 수용하는 열린 자리는 없다. 성과 신성함이 공존할 수 없는 종교 문화권에서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의 성 이미지도 존중되지 않는다.

 

150 현대의 남성들은 남근, 즉 진정한 남자다움에 대한 통과의례가 없어서 과장된 노출이나 과잉 방어를 하려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다움에 대한 확인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가 현대라고 주장한다.

과잉방어 부분에서 아들타령이 떠오른다. 지나친 보수주의의 원인일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150 가부장제 사회에 드러나는 조악하고 왜곡된 남성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남성성 본래의 힘과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남근숭배의 전통을 돌아보는 행위가 실마리를 찾는 자그마한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북미에서 남성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꾀하는 남성운동은 여성운동보다 20~30년 늦게 시작되었다. 미래는 건강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롭게 발달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여성성 만큼이나 건강한 남성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52 남근은 초월적인 힘을 상징한다.

153 남근은 리비도를 의미한다.

 

158 마리아 김부타스 <여신의 언어>

위대한 석학들인 그러하듯 김부타스는 분명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 하나를 열어주었다. ‘인류 초창기 신들은 여신이었다가 심리학적 차원에서 사실이듯이, 김부타스가 제시한 자료들은 역사적으로도 이 명제가 사실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설문대 하루방의 등장 역시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할망에게서 하루방이 말 그대로 태어났다거나 아니면 하루방이 할망의 일부라는 해석도 무방하지 않을까?

 

164 물고기가 남근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그 모양만큼이나 노골적이다. 하루방의 거대한 남근과 하문으로 들어온 물고기 이미지는 거대한 창조주 둘이 바다라는 장소에서 벌이는 태초의 섹스 장면 같다.

 

164 물고기의 다른 특질 하나는 다산성이다. 설문대할망의 비옥한 하문은 돌진해오는 물고기들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하나둘도 아닌 엄청난 생명을 수태하는 것이다.

 

179 본질적으로 거인은 순수한 감정적 리비도를 체현하는 인물이다.

180 거인으로 체현되는 순수 리비도는 분명 위협적이다. 그렇지만 이 힘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경우, 그 힘은 기적을 가능케 한다. 예전에 성인이나 현자들이 거인을 부려 천길 낭떠러지 끝에 매달린 사원을 지었다고 하고, 인간이 들어올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석문화의 유산에도 옛날 옛적 거인들의 작품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뒤따른다.

 

191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신의 이미지를 반추하고 또 모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이 창조주의 이미지에 포함되면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불편가도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191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신의 이미지를 반추하고 또 모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이 창조주의 이미지에 포함되면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불편가도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223 신화공부는 감정적 진실을 담아내는 이미지를 찾는 것이 그 핵심이다.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추천사 : 위대한 여신, 설문대할망 - 제레미 테일러

 

5 저는 고혜경박사가 대학원생이던 시절 처음 만나,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로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왔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펴내는 책을 소개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이런 사제관계 참으로 특별하다. 고혜경선생님은 제레미 테일러씨를 스승, 부부의 모델로서 존경한다. 이런 사제관계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집에는 조셉캠벨, 마리아 김부타스의 사진과 함께 제레미 테일러의 사진이 있다. 그의 사진은 책상에 놓여있다. 학문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여신의 여러 상과 그림이 있다. 꿈분석가의 침실에서 창조적인 잠을 자기 원하는 그녀는 아프로디테와 깔리여신, 나바호족 창조여신의 그림이, 서재에는 기원전 3500 경의 뷜렌도르프의 여신상, 몰타의 잠자는 여신상이 있다. 여신상들 위에는 화가의 그림 월영이 걸려 있다. 북한산의 사계를 있도록 창이 숲을 향해 뚤려있다. 벽은 신화, 상징, 분석에 대한 책으로 가득하다. 암자와 같은 . (출처 : 한겨레 esc ‘내가 살고 싶은 ’) 

 

원형에 대한 좋은 설명과 예

 

5 원형(archetype)이라는 단어는 심리학자 칼 융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차용해온 말입니다. 그리스어 어근을 살펴보면 일정한 형태로, 그리고 되풀이해서 충격, 자극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형은 결과와 결론 뿐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개념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원형의 의미는 더 분명하고 명쾌해집니다. 원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사례나 산물을 만들어내고 이것들로 인해 점차 더 명료하고 확실해집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유럽에서 금속활자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구텐베르크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에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가 발명된 곳이 한국입니다. [참고로 활자(type)란 단어는 원형(archetype)과 같은 그리스어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인류에 이런 엄청난 혁신적 기술이 서로 다른 시기, 동떨어진 지역에서 똑같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발명과 기술의 진화라는 원형적인 패턴이 지구상에 드러나는 좋은 예입니다. 사람들이 직접 교류를 하든 안 하든, 어떤 시점에 이르렀을 때 세계 곳곳에 떨어져있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은 높습니다.

추천자가 책의 핵심을 짚어서 소개한다. 만약 추천자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저자가 해야 했어야 작업.

 

6 설문대할망의 신화-의례 또한 전 인류에 되풀이되어 등장하는 위대한 여신(great Mother)'이라는 원형의 예입니다. 이 원형은 신의 여성적인 측면 즉 여신 원형으로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고 지역과 지구 생태계 생명의 도래와 소멸, 그리고 모든 유기체의 위대한 그물망이 조화롭도록 과장하는 어머니이신 자연(Mother Nature)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설문대할망은 한국의 고유한 여신이지만 더 크게 보아 위대한 여신이라는 원형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원형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이것이 이해가 쉽다.

 

7 세계의 다양한 신화-의례는 전 지구를 아우르는 단일 신화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조셉 캠벨이 전 세계의 신화를 하나의 신화(mono myth)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 문화, 영성 안에 숨겨져 있는 신화는 우리가 한 세계에 살고 있고 또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말했던 이유

 

7 이제 제주도 설문대할망을 위해 만들어졌던 신화-의례가 재미난 이야기꾼이자 친절한 해설자인 고혜경 박사를 찾아냈습니다. 저자의 연구 덕에 할망은 세계의 다른 여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본래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 여신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람뿐 아니라 돌과 바람과 구름과 별 같은 뭇 생명에게 기꺼이 자신의 생명의 기운을 나누어줍니다. 그래서 개인의 일생 동안만이 아니라 집단의 생명과 변형이라는 확대된 생명 주기에도 영적으로 참여하게 해줍니다.

그 신화가 이야기꾼을 찾아냈다는 말 역시 그가 말하는 원형의 설명에 따른다.

 

서문 - 여신,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신화를 꿈꾸며

 

9 꿈에 배우 고현정이 선덕여왕이더라.

 

9 TV드라마의 묘사된 미실이라는 인물은 한국인의 집단의식에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상이다. 힘과 지혜를 두루 겸비하면서 섹시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온전한 여인/여신 이미지는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에는 없었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준비가 되었기에 드라마에서 이런 여성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델을 하나 갖고 싶다.

힘을 가진 여신 세크메트, 깔리여신

지혜를 가진 여신 헤스티아, 헤카테, 메티스, 소피아 

섹시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 (페르세포네)

자비로운 여신 관음, 데메테르

 

10 미실은 남신시대에 살아남은, 몸과 힘은 없고 선함과 자비심만 있는 반쪽짜리 여신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의 어마어마한 여신(Great Goddess) 이미지와 참으로 닮았다.

 

10 역사시대 전, 인류 초창기의 오랜 시기 지구상에 존재했던 온전한 여신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 고대의 여신전통을 접한 후 내 삶의 화두였다. 그리고 그 토대를 만들어준 사람은 고고신화학자 마리야 김부타스 (Marija gimvutas)였다. 그는 인류가 종교적인 감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신들은 여신이었다는 이론/가설을 제시하면서, 인류 초창기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전쟁과 위계가 없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였다고 주장한다.

 

10 지구를 중심에 두고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감정의 결을 연마하여 자비심을 기르고 뭇 생명의 그물망을 보호하는 땅의 영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 생명에 대한 감성과 신성함에 대한 감각이 시급히 깨어나야 할 때이다.

 

11 무의식이 미실이란 여왕/여신/할망을 인식하는 집단의 현상은 희망의 징표로 다가온다. 여신의 이미지를 발굴하고 고대 여신전통의 가치관을 탐색하는 일이 시대적 가치에 부응한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한다. 아울러 여신과 함께 도래할 새로운 신화의 탄생을 간절히 고대한다.

 

11 이렇게 힘 있는 창조여신이 이 땅에 살아 있었구나.

 

12 할망의 이미지를 되살려 다시 집단의 기억으로 불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다. 고대신화를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재번역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화는 과거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를 다루기에 고대의 정신 유산을 탐색하여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또 미래를 열 전망을 읽어내려 한다. 이것이 신화를 공부하는 자의 임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3 제주는 평등과 평화가 깊이 뿌리내린 땅이다. 18,000여 신이 있어 신들의 고향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500곳의 당과 300개의 신화가 남아 있다.

 

13 제주의 바위, , , 나무, 바다는 저마다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제주민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데, 나무 한 그루라고 자신의 이야기가 있으면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 존재이다.

블로그에서 오정산농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과수원집 이야기, 사과 팔면서.

 

13 제주가 독특한 평등주의, 통합적인 삶의 방식, 여성 중심의 사회 체제, 신화적 세계관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고대 여신전통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땅이라 단정 짓기를 이를 것이다.

 

14 제주의 선조들은 고향을 태산땅이라 한다. 태를 묻은 땅이란 뜻인데 살다가 병이 나면 거듭거듭 태산땅으로 돌아가 치유의 양약을 구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남신시대 신화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도처에 널려 있다. 이 시점 제주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현대인을 위한 태산땅, 오래된 미래의 땅이고 꿈을 잉태한 인류의 고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뜬금없는 자유연상. 70세가 되면 나라야마에 가야한다, 나라야마에서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동화가 있는 일본판 고려장. 근데 그 산이 너무 수려해서 태산에 떠올렸다.

 

20 신화적 상상력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정신분석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는 <창조신화>라는 책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히 해준다. 신화와 민담들을 살펴보면 원시사회에서는 어떤 기예도 인간이 먼저 발명한 적은 없다고 한다. 기술이나 공예는 신이 계시하는 데 신이 가지고 있는 원천지식을 드러내 보일 때 인간이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21 , 길쌈, 도예, 쇠붙이 다루기 등 인류 진화사에 큰 획이 되는 기예들은 태초에 신들의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23 이미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현대인에게도 일출이 이토록 강렬한 설렘을 다가오는데 선조들에겐 얼마나 황홀하고 두려운 신비경이었을까?

 

23 빛의 도래란 말 그대로 신새벽이 밝아온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은유적이다. 자연에서 맞딱드린 창조주 할망의 빛은 선조들에겐 곧 의식의 빛이다.

 

24 빛에 대한 갈망이 곧 의식에 대한 갈망 여명이 이다지도 경이롭고 특별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바로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가장 근원적인 영혼의 갈망을 자극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걸 매일 볼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동쪽으로 난 창에서 아침해가 떠오르는 게 보이는. 나는 새벽푸른빛 속에서 새벽일정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25 인류 최초의 공예는 길쌈이다. 선사시대 여신상들의 흔적을 보면 길쌈의 역사는 도자기의 탄생, 농업의 시작, 가금의 사육 그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바버, <선사시대의 옷감>)

 

26 원시인은 현대인들보다 덜 지적이거나 덜 세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생활했다. (레비 스트로스, <신화와 의미>)

 

26 동물의 털이나 머리카락 혹은 천연섬유처럼 자연에서 채취한 원상태로는 길이가 짧아서 길쌈이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길쌈을 하자면 먼저 물레질이 필요하다.

 

27 시빌레 버크하우저(silbylle birkhauser)는 물레질을 정신의 활동과 연관지으면서 창조의 과정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살 잣는 모양새는 짱구를 굴리고 두뇌를 회전시키고 생각을 풀어내 무의식에서 뭔가를 탄생시키는 작업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27 물레질로 길고 고운 실이 자아지면 고유한 문양을 짜게 되는데, 이 과정이 길쌈이다. 심리학적으로 길쌈은 다른 두 요소의 분화 혹은 구분을 뜻한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전환도 이 분화에서 시작된다. 분석심리학자 아니엘라 야페(aniela jaffe)는 하나의 사실을 둘 혹은 그 이상의 측면으로 구분해내거나, 내포된 의미의 대극을 찾는 것이 의식적인 깨달음의 선결과제라 설명했다. 심리학보다 신화적 표현이 훨신 단순명쾌하다. 대부분의 창조신화에는 칼, 화살, 도끼 등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나누고 분화하고 구분하고 구별하는 분할과 분류의 상징이다.

길잽이로 검투사를 두어 다행, 감사

 

27 개인의 삶에서도 애매모호하게 뒤엉켜 있는 혼돈의 감정 뭉치를 가르기 위해서는 혼돈을 꿰뚫는 화살이나 칼날같은 이성이 요구된다. 영어권에서 최고의 이성을 면도날에 비유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28 새벽이 열리는 동쪽 첫 자락에서 시간이 탄생하기 전부터 쉼없이 물레를 돌린 거대한 할망의 모습을 떠올린다. 할망은 태초의 혼돈으로부터 실을 자아내어 밤과 낮, 어두움과 밝음, 물과 불, 바다와 뭍, 밀물과 썰물, 달과 해, 잠과 깨아남, 죽음과 탄생, 소리와 빛, 자연과 문명의 씨실과 날실로 생명의 그물망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29 우주를 길쌈하는 일은 신들의 영역에 속했다. 자연히 길쌈은 신의 예술이고 신성한 행위이다. 세계의 신화엣 물레질 하는 여인과 베를 짜는 여신은 수없이 등장한다.

 

바바야가 (러시아), 집이 물렛가락 위에 놓여 있어서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감

거미여신 (미국 인디언 호피족), 집은 땅에서 실같이 고운 연기가 피어 오름

변화의 여신 (나바호족), 만다라같이 둥글게 돌아가는 춤을 끝없이 춤. 창조여신

아테나 (그리스), 공예의 여신, 문명을 전해줌. 아라크네의 도전을 용서하지 않음

페넬로페 (오디세이아) 베틀에 앉아 천을 짜고 푸르기를 반복함

키르케, 칼립소(오디세이아), 물레에 앉아 실을 잣는다.

헬렌 (일리아드), 베틀에서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사를 짠다.

부른힐트 (니벨룽의 노래), 지그프리트의 모험을 짜다

마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탑에서 물레를 돌리고 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 (일본) 길쌈하는 여인. 베틀에 앉아 천을 짜고 있을 때 하야스사노오노미고토가 집의 용마루에 구멍을 내고 얼룩말의 가죽을 거꾸로 벗겨 떨어뜨리자 놀라서 베틀 북에 음부를 찔린다.

 

31 누에나방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평생 탈바꿈하는데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뱀과 나비와 더불어 대표적인 변형의 상징이다. 누에와 남성성기가 이미지가 겹치기도 한다.

 

32 동북아신화에서는 잠신 혹은 길쌈하는 여인들과 하늘의 연관성이 부각된다.

직녀-천상의 선녀, 왕모의 외손녀?

경남 고성 상족암 전설

 

33 역사적 기록에서도 길쌈과 관련된 여신들 혹은 여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혁거세와 알영의 어머니 선도산 성모

주몽신화 유화부인, 어린 주몽 - 활과 화살, 물레에 앉은 파리를 쏘아 맞추었다.

새 나라를 건국한 이들의 어머니들이 길쌈이나 물레질을 했다고 그걸 꼭 창조라고 해야하나? 그냥 그시대 여자들이 많이 하는 일이 그거 아니고?

 

33 선도산 성모와 유화부인을 길쌈과 연결시켜보면 길쌈과 새 왕조 건국의 관련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동쪽 끝 바닷가에 새날 새 세상을 여는 설문대할망의 길쌈으로도 이어진다. 길쌈은 분명 새로운 판을 짜고 새 시작을 예고하고, 새 세상을 여는 행위와 연관성이 있다.

 

34 삼국의 등장이 고대 여신 전통에서 여신의 아들로 힘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라거나 이 역사적 전화의 흔적을 <삼국유사>에 기록한 것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

 

34 신성한 어머니들에 대한 기록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34 길쌈의 결과물인 베도 신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베의 신성한 힘에 대한 고대인의 믿음은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에서 환히 드러난다.

 

연오, 세오의 오는 까마귀 오 인데 견우직녀 이야기에서 연인이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바로 그 새이다. 태양에는 까마귀가 산다는 동북아에 편재된 믿음을 고려하면 이 이야기에서 까마귀는 해로 이어진다.

아폴론의 신조도 까마귀다. 아폴론 신전의 무녀 퓌티아는 삼각대에 앉는다.  

 

세오가 짠 비단을 가져와 제사지낸 곳을 영일(迎日)이라 하고

 

세오의 길쌈은 결국 일출과 연결된다. 일출-길쌈-여신 이 세오녀 신화에서 해맞이-비단-세오라는 신화소로 병립한 것이다. 세오는 지아비를 찾아 땅끝까지 쫒아간 순애보를 간직한 여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해와 달과 관련된 여신이었거나 여신적인 힘을 지닌 여인, 또는 천문을 관장하는 여사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35 운명의 실로 미궁 같은 역사의 판을 짜는 일이 길쌈이라면 말할 필요없이 가장 신성한 예술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신성한 예술을 의례로 재현함으로써 혼돈에서 조화로, 비가시적인 것에서 가시적인 것으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태초의 탄생이 이루어지던 순간의 폭발적인 창조력을 회복하려 했을 것이고 또 처음 계획했던 우주의 리듬대로 세상을 짜려 했을 것이다.

 

35 세오가 짜놓은 비단은 신라 우주의 생명의 그물망 혹은 우주 운행의 리듬 지도였을 것이다.

 

36 연오랑 세오녀 설화 기록에 등장하는 일본이라는 표현은 해의 원천이나 천신 숭배의 근원과 같은 궁극의 장소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36 삼국사기 신라본기 3개 유리이사금 조에 왕이 6부를 두 편으로 갈라 왕녀 두 사람에게 각각 부내 여인들을 거느리고 길쌈을 하게 했다고 전한다. 716일부터 815일까지 아침부터 밤늦도록 행해졌다. 신라에서 길쌈은 왕명으로 행해진 국가 행사였고, 여신같은 존재인 왕녀들이 관장했다. 당시 신라는 617관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세 가문에 김씨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여러 씨족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나라 신라는 나라를 하나로 아우르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다.

 

38 다른 문화권에서도 길쌈은 화합 혹은 연합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6개 작은 도시국가로 나위어 있던 고대 그리스는 매4년 마다 길쌈의례를 행했다. 평화의 제전일 올림픽 게임의 기원이기도 한 이 의례는 각 도시국가에서 한 명씩 선출된 여성들이 올림피아에 모여 여신 헤라를 위한 치마를 짜서 바치는 자리였다. 16개의 도시국가들은 서로 대립하고 반목할 수도 있었으나 대표적인 모여 오직 하나의 염원으로 길쌈을 한 것이다.

 

38 신화에 등장하는 길쌈이나 직조의 또 다른 의미는 운명을 짜는 것이다. 헬렌이 트로이의 전쟁사를 브룬힐트가 지크프리트의 모험사를 짠 것처럼 말이다.

 

39 중국 소수민족 신화 (2차원적 평면에 짜내려간 꿈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실의 운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신화와 민담에는 길쌈을 하는 여인이 미래를 예언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이 동화를 읽은 적 있다. 미래에의 회고에 대한 이미지다. 내가 글로 써두었지만 그것이 예언이 되어 실현되리라.

 

40 길쌈은 폰 프란쯔가 지적하듯이 주로 창조신화와 관련이 있다.

 

40길쌈은 일반적으로 자연의 여신들이 행하던 예술이었다. 창조여신 설문대할망은 제주의 자연을 길쌈한다.

 

40 제한된 정보로 할망의 이미지를 조합해보는 것은 인류의 오랜 망각으로부터 물레를 돌려 가녀린 기억을 실을 뽑아 길쌈하는 과정 같다.

 

43 제주의 자연에서 붙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 먼 곳을 향해 뻗어 나가다 바다로 가라앉아버린 라는 신비로운 형상을 본 태초의 선조들은 호기심과 함께 의문이 일어났을 것이다.

 

44 할망의 다리 신화는 세 곳에서 발견된다. 한림, 조천, 모슬포 세 지역은 각각 제주의 북서, 북동, 남서쪽에 위치하는데 이곳들은 전통적으로 제주의 주요 항구였다. (문영미, <설문대 할망 설화 연구>)

 

44 신화에 등장하는 다리라는 표현은 상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리를 놓아주는 대가로 할망이 제주민에게 요구하는 속옷 또한 상징적 표현이다.

 

44 한라산이 무릎 밑에 온다는 거대한 여신이 인간과 협상을 하다니 징벌과 피괴와 위압감으로 다가오는 신의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설기만 하다. 그렇다고 할망이 힘이 약한 신은 아니다. 뽀족한 한라산 꼭대기를 한 손으로 쳐날려 날아간 흙더미가 산이 되고, 거대한 오줌발로 땅을 깎아 해협을 만드는 가공할 힘을 지닌 여신이다. 그런 할망에게 속옷을 한 벌 만들어주면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식의 협상은 인간과 벌이는 놀이같다. 이런 친근함은 할망의 한 특질로 보인다.

 

45 감당할 수 없는 없는 수준의 요구를 하는 신의 이미지는 제주 외의 다른 곳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가장 값진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를 여러 종교의 경전이나 신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 아가멤논에게 이피게네이아

  

약간 흠이 있는 것이 인간적이라는 사례, <할아버지의 기도>에도 나왔다.

 

46 인간이 저지르는 최악의 죄는 신에 대한 도전임을 세계의 신화는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테나에게 도전한 아라크네, 아프로디테에게 도전한 프시케, 디오니수스 무시한 펜테우스, 바벨탑

이외에도 아폴론에게 도전했던 마르시아스

 

인간의 수 99, 신의 수 100. 인간은 완전에는 가까이 가되 결코 완전이라는 신의 언어에는 도전해서는 안된다. 북미 인디언 중 프레블로나 나바호 부족은 카펫을 잘 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결함을 일부러 남겨 완전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한다. 전통 카펫을 짜는 무슬림들에게도 동일한 원칙이 지켜지며, 도공들이 그릇을 만들 때도 의도적으로 완벽한 원은 피한다고 한다. ‘화룡점정의 설화도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벽에 네 마리 용을 그린 화공이 의도적으로 눈은 그리지 않은 채 남겨뒀다는 이야기인데, 눈을 그려 넣는 순간 용이 살아나 하늘로 날아가 버릴 걸 염려했다는 것이다.

 

47 창조주 할망이 언제나 인간들에게 불굴의 헌신을 요구한다는 설명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47 속옷을 해달라는 요구는 여신적이다.

 

49 속옷은 상징적으로 겉옷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겉옷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라 본래의 자신과 사회의 요구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한다. 외부세계에 드러내고자 하는 면모를 옷으로 표현하므로 겉옷은 개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 속옷은 드러나는 매무새 안에 감춰진 훨씬 내밀한 것이다. 알몸에 직접 닿아 체온을 유지하거나 땀을 흡수하는 등 위생적인 면도 두드러진다. 속옷은 한 마디로 살갑다. 따뜻함, 친밀함과 내밀함이 할망이 요구하는 속옷에서 연상된다.

 

51 여신의 옷이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프로디테의 유명한 거들(혹은 허리띠)이다. 이 거들은 신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그 앞에 서면 누구도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본래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었다. 그리스의 뭇 여신 중에 자녀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51 신에게 옷을 바치는 이들은 바람이 불어 천이 휘날릴 때마다 염원이 우주에 전달된다고 믿었다.

티벳의 룽다처럼? 선생님은 나에게 나의 골상이 티벳 사람과 비슷하다고 했다. 거기 가면 남들이 원래 그 나라 사람이라고 믿을 거라고, 섞어놓으면 모를 거라고. 특파원으로 파견되는 이들도 다 자기 인연있는, 닮은 나라로 간다며. 티벳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티벳과 부탄. 라오스, 캄보디아.

 

52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은 가야국에 도착하자마자 입었던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분명한 것은 황후의 바지가 산신령에게 바칠 만큼 소중한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53 구석기에서 청동기로 이어지는 고대의 여신상에서 보이는 끈치마들에서는 옷은 가리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덧붙여 눈길을 모으는 곳은 특별히 여성의 성과 관련된 부위임을 지적한다. 여기서 성이란 섹스를 중심으로 한 제한된 개념이 아니라 땅적인 비옥함과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근원적 생명의 에너지에 가깝다.

야한 옷도 괜찮네. 여신적인 풍요와 생명에너지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나도 이런 옷 입고 싶다. 지금 입고 다니는 중성적이고 편의 위주의 옷 말고, 나의 가치를 높이고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옷.

 

55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관계의 다리. 무당이 놓는 명다리는 명이 짧은 아이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삼신제석이나 칠성신에게 놓는 다리이다. 원수끼리 만나는 외나무다리는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의 다리이다.

 

55 다리는 통과의 자리이다주몽의 다리는 부여라는 옛 왕조를 마감하고 고구려라는 새로운 왕조를 다리다. 이런 다리는 한 번 건너면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 다리는 단절의 자리이기도 하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즉 정신적 혁명이 일어난 순간이다. 농업의 혁명,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산업혁명, 정보의 혁명,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작금의 혁명..

 

56 다리는 화합과 연결의 장이다. 오작교. 굿을 할 때 수직의 다리는 지상과 천상이라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다. 교황은 어원적으로 인간과 시선을 연결하는 다리놓는 자라는 뜻이다. (폰 프란츠 <원형의 패턴>) 교회 역시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자리다.

 

57 다리를 건너는 데는 위험이 수반된다. 높은 곳에 놓인 다리는 추락의 두려움도 걸려 있다. 다리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무의식의 물, 즉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57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원효의 문천교. 다리를 지나다 떨어진다. 다리는 원효가 극복해야할 욕망의 다리로, 한 의식에서 다른 의식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암시하는 것 같다. 또 사람다리로 교합을 은유한다.

 

59 다리를 놓는 이들은 자라, 거북이, 까마귀, 귀신(비형랑)으로 옛 사람들이 신령하게 여겼던 대상이다.

 

59 다리를 통해 인간은 의식적인 면이든 존재양식에 있어서든 다른 차원으로 진일보한다.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초인적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신은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59 할망의 다리 건설은 중단되었다. 인간의 정성이 할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신화는 설명한다.

 

60 인간의 우뇌와 좌뇌도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60 다리는 통과의례의 자리이자 동시에 시련의 자리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는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리이다.

 

60 할망에게 바쳐야 할 미완의 속옷이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업일지도 모르겠다. 다리가 놓이려면 겉옷이 아니라 속옷을 지어야 한다. 건설이나 영토의 확장이라는 가시적인 세계의 변화보다는 각자 내면의 세게로 다리를 놓으라는 뜻이 아닐까?

 

66 수수범벅을 먹은 할망이 힘차게 난사하는 360발 설사탄으로 한꺼번에 해결한다. 원시적이고 파괴적이고 강력하다.

여신과 남신의 창조에 큰 차이가 있다면, 남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반면 여신은 유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예로 빛이 있으라가은 말씀, 혹은 추상적인 아이디어로 창조하는 것이 남신의 방식이라면, 여신의 창조는 물질로부터 물질이 탄생한다. 설문대할망의 창조과정 역시 이 주장에 무게를 더한다.

 

67 인간이 세상에 나서 몸 밖으로 뭔가를 탄생시키는 일은 항문에서 시작한다. 똥을 누면서 세상에 뭔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아심리가 아닐까?

 

67 태초에 여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방식과 한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방식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68 똥으로 창조한다는 표현은 세계 신화에서 비일비재하다. 신화 태동기 선조들의 사고방식이 유아기적 사고와 닮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68 똥을 누어 생산하는 방식을 학자들은 항문출산이라고 부른다. 신화에서는 항문출산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       파푸아뉴기니 섬 세람 하이누벨레 신화 : 코코넛 나무즙과 사람의 피가 섞여 탄생한 하이누벨레는 매일 똥으로 귀중품을 낳았다. 중국 도자기, 징 같은 귀중품을 똥으로 생산해서 아버지를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캠벨 <신의 가면>)

-       페루 북서부 지바로 아추아 인디언 창조신화 : 하늘과 땅 사이에 간극이 점점 멀어지고 낮고 밤이 구분되는 창세의 시점에 한 여인이 등장한다. 놀란 여인은 여기저기 똥을 누기 시작하는데 여인의 똥 무더기가 도자기 굽는 흙으로 변한다. (레비 스트로스 <질투하는 도공>)

-       일본 : 아자나미가 똥을 누어 태어난 신의 이름이 하니야스비코노카미, 하니야스비메노카미다. 하니는 토기의 원료인 진흙을 뜻하고, ‘야스는 만져서 부드럽게 만든다는 의미다.

-       라틴아메리카 ; 유성이나 운석을 별오줌(psss of star)’이라고 한다.

 

70 ‘는 뒤든 엉덩이든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을 본다는 의미다. 그리스에서는 뒤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듀칼리온, 아내 피라가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생존. ‘어머니의 뼈를 뒤로 던저라여신 테미스 신탁에서 들었다. 둘은 어머니를 가이아여신으로 이해하고 가이아의 뼈를 돌로 해석한다. 어깨너머로 돌을 던지자 듀칼리온이 던진 돌에서 남자가, 피라가 던진 돌에서 여자가 탄생한다.

 

72 할망이 360개 오름을 순식간에 출산한 힘은 화산 폭발의 무시무시한 분출력과 같은 것이다. 속옷을 해주면 다리를 놓아주겠다며 인간과 협상하는 순화되고 다정다감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72 화산 폭발은 가이아 여신의 몸 안에서 터져나오는 출산이다.

 

트릭스트 이야기 2개 타이핑해두기. 이 다음에 이야기 만들 때 필요할 지도 모른다.

 

75 할망이 뒤로 떨어뜨려 제주 전역에 작열해놓은 똥-오름 이미지에서는 트릭스터가 지닌 엄청난 생식의 힘과 통제불능의 창조력이 느껴진다.  

 

제주도 말 방목

똥돼지

  

78 제주는 본래 똥값을 아는 곳이다. 이렇게 똥에 대한 가치가 형성된 데는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할망의 설사 이미지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79 이탈리아 기원전 6세기 중엽의 에트루리아 부족 무덤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는데 그중 지오콜리에리의 무덤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이 무덤에는 한 남자가 관목 뒤에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는 장면 벽화가 있다. (슈타인그라버 <시대의 보물>)

 

79 선사시대 상징 전문가인 크리스티나 버그렌은 선사시대 예술에는 의미없이 찍은 점이나 선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그렸기 때문에 획 하나도 낭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덤 속에 똥을 누는 이미지를 그려넣은 의도는 무엇인가?

 

79 신화적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무덤은 곧 자궁이다. 무덤 안의 삶이란 큰 어머니, 즉 궁극의 집안 어머니의 자궁으로 회귀한다. 이 자리가 삶의 종착지는 아니다. 태어남과 자람과 죽음과 거듭남이라는 생명의 주기에서 거치는 하나의 단계이다. 이 단계, 즉 어머니 몸 속으로의 여정을 신화학자들은 네키야(nekiya)’’ 라고 하는데 세계의 신화들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힘겨운 시련으로 묘사한다. 죽음의 고통이 따르는 험난한 여정이지만 새롭게 태어나길 꿈꾸는 영웅이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대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찾게 되는 믿음은 바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머니 자궁 속에 다시 잉태되어 태어나길 꿈꾸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80 똥은 풍요를 의미한다.

 

80 똥과 금이 연결된 옛이야기가 많다.

-       그림형제 <잭과 콩나무> 바보 잭이 젖소와 바꾼 콩 알에서 자란 콩나무가 하늘에 닿아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가져온다.

-       <황금알을 낳는 거위>

-       꿈에 똥을 보면 재수가 좋다. 길을 걷다 똥을 보면 재수가 좋다. 속담

-       꿈에 똥을 지고 집으로 들어오건, 남에게서 똥을 받거나, 똥통에 빠지는 꿈도 좋다. (김광언, <동아시아의 뒷간>) 이건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진 미음이다. 그림형제 민담 일 년 내내 집안에 돈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설날에 렌즈콩을 먹어야 한다.’

 

81 보편적으로 편재해 있는 똥과 금의 연관성은 분명 색깔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우리말에 누렇다는 단어는 똥을 묘사할 때도 쓰지만 금을 묘사할 때도 쓴다. 최상의 가치와 최하의 가치는 서로 연결된다.

 

81 지철로왕의 왕비간택기<삼국유사>

거대한 장신으로 알려진 신라 22대 지철로왕의 거시기는 한 자 다섯 치나 되어, 배필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왕은 사자들을 전국으로 급파하여 왕비를 찾으라 명한다. 왕명을 받든 사자가 모량부 동노수에 이르자 개 두 마리가 북 만한 똥덩어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똥 임자를 물어 집으로 찾아가니 키가 칠 척 다섯 촌이나 되는 여인이 집에서 나오는데 왕이 수레를 보내어 이 여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왕과 왕비의 거대한 생식력은 곧 나라의 부와 태평성대를 의미했을 것이다. 비옥한 밭의 척도로 거대한 똥을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은 똥과 금의 동맹을 이해하고 있던 선조들의 현명한 처사 같다. 지철로왕은 우경을 시작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켰다. 지철로왕 시대에 농업 생산성이 엄청나게 증대되었다. 그 원인을 나랏님쌍의 거대한 생식력에 직결시킨 신라인들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83 설사는 똥의 홍수다. 이 이미지는 빗발치듯 퍼부어대는 창조의 힘과 무시무시한 무의식의 파괴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창조와 파괴는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할망의 설사탄이 강변해주는 듯 하다.

 

84 할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360발 신성한 똥 역시 원시 난장을 연출한다. 힘찬 생명의 축제이기도 하다. 작열하는 할망의 똥 세례로 제주는 사방 황금빛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 무지막지한 은총이다.

 

설문대할망이 오줌을 누기 시작하는데 오줌발이 세서 땅이 떠밀려나가 우도가 만들어졌다. 제주와 우도 사이에 만들어진 깊은 골에는 할망의 오줌이 가득 찼는데, 아주 깊어서 고래도 물개도 살 수 있었다.

 

88 오줌발이 땅을 잘라내어 떨어져나간 땅덩어리가 섬이 되고 패인 골짜기엔 해협이 만들어진다. 이 골을 오줌이 채워 마침내 오줌 바다가 탄생하는데, 그야말로 대역사의 현장이고 막강한 창조의 위업이다.

 

88 세계의 창조신화에는 바다의 기원을 오줌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89 오줌으로 바다가 태어나는 이미지는 홍수신화로 보아야 할까? 창조신화로 보아야 할까? 이 질문에는 이미 창조와 파괴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

 

89 엄밀히 말해서 오줌으로 창조되는 바다 이미지는 한처음에 이루어지는 창세는 아니다. 기존에 이미 땅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89 우리가 알고 있는 대홍수 신화는 신이 분노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 특히 전 인류를 근절시키는 징벌과 파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홍수신화를 근절시키는 징벌과 파괴에 초점이 맍추어져 있어서 홍수신화를 새 세상의 창조 이미지와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는 홍수로 정화된 세상에 새로운 세계가 건설되는 것이지만, 홍수 자체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다.

 

90 홍수신화

-       바빌론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의 홍수신화. 기원전 2000년에 문자로 정착. 유프라테스 강 유역. 세상은 비옥하고 인간들이 번성하였다. 그런데 엔릴(enlil)은 인간이 내는 소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시끄러워 잠을 설친다고 신에게 불평을 하자, 신은 인간을 근절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 방법이 홍수다. 한 사람만 살려둔다. 이 사람의 꿈에 여신 에아(ea)가 나타나서 방주를 만들어 홍수를 대비하라고 일러준다.

 

-       그리스 신화. 제우스가 인간에게 진노하여 홍수로 멸망시킴. 듀칼리온. 피라만 배를 만들어 홍수를 피하게 한다. 살아남은 두 사람이 신탁에 따라 등 뒤쪽으로 돌을 던지자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다.

 

-       마야인들의 창조신화 <포폴부> 신이 인공낙태를 하듯 홍수를 일으켜 자신이 잘못 만든 불완전한 피조물을 제거한다.  이 신화에서는 신이 땅과 산과 강과 나무와 풀을 만들어서 세상의 침묵을 깨기 위하여 인간과 동물을 창조한다. 그러나 이 피조물은 소리만 지를 뿐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신과의 소통도 불가하다.

 

91 홍수는 거대한 물로 만든 지우개. 신의 징벌이든, 더 나은 창조를 위한 불가피한 절차든 대혼수는 기존 세계의 파괴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라는 대파국과 대창조가 동시에 맞물린 우주적 드라마이다.

쓰나미 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파괴와 창조가 함께 일어나는 것.

 

 

91 할망의 오줌 신화에서는 바빌론, 유대, 그리스 등 서양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죄로 인한 신의 징벌이라는 도덕적 관념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태동하기 전에 형성된 신화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도덕관에 지나친 비중을 두지 않은 신화권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계에 혁명처럼 발생하는 파괴나 변혁의 순간에 인간의 윤리의식을 개입시켜 자연현상을 인간 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은 지 의문이다. 서양의 세계관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기 때문에 신화에서도 자연현상을 인간의 죄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리도 덧붙여 창조와 파괴를 분리된 현상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도 재고해볼 일이다.

 

92 포폴부나 선문대할망 신화같이 윤리를 주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신화를 통해서 우리들의 인간 중심 도덕관과 이분법적 세계간을 재고해보면 어떨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저 그렇다라는 시각으로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93 할망의 오줌 홍수신화에서 창조와 파괴는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여기서는 창조자가 동시에 파괴적이다.

 

93 뭇 생명을 탄생시킨 바다라는 양수가 창조주 할망의 몸에서 나온 물과 같은 성분이라는 점에서 할망이 뭇 생명의 모태이자 원천이라는 사실로 되돌아가게 된다.

 

93 오줌 홍수로 이루어진 바다 이야기

-       호주 원주민 티위 부족, 몸집이 거대하고 검은 창조여신 이뭉가.  이뭉가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거북의 형태로 땅을 거닐기 시작하는데 여신의 뒤로 만물이 태어나기 시작한다. 여신이 뒤를 보아 창조한 결과로 강과 하천과 섬이 탄생한다. 검은 머리 황새가 나타나 거북 형태의 여신을 쪼아 죽여버린다. 이때 여신의 몸에서 오줌이 나와 바닷물을 짜게 말들었다. (lassc, <세계의 기호학>)

-       에스키모의 창조주 갈가마귀 한쌍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오줌을 누는데 이것이 바다가 된다.

-       북미 인디언 코디악 부족의 창조주 역시 갈가마귀다. 태초의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낸다. 여자가 침을 뱉자 그 침이 육지의 물이 되고, 오줌을 누자 바다가 탄생한다. 여기서는 조물주의 오줌이 아니라 조물주가 창조한 여인이 눈 오줌이 바다를 만든다.

-       북미 남서부 대평원의 인디언 유마 부족의 바다 창조 또한 오줌으로 이루어지며, 루이시노 인디언의 경우도 땅의 여신이 오줌을 누자 바다가 만들어진다.

-       대평원 후아니노 부족에게도 바다의 기원은 오줌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오빠가 땅의 누이와 혼인을 해서 여러 자녀를 두게 된다. 어떤 이유에선지 자녀들의 몸에 독이 퍼지는데 해족을 위해서 지렁이 오줌으로 탕약을 만들어 조개 속에 담아둔다. 이 때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디언의 대표적인 트릭스터인 코요테가 사고를 친다. 실수로 탕약을 엎질러 걷어차 엎질러진 지렁이 오줌이 바다가 되고, 탕약의 건더기인 지렁이는 물고기로 변한다.

-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알려진 필리핀의 일로카노. 등장인물이 거대하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기 전에 태초의 인물 앙갈로, 아란 이 존재한다. 앙갈로의 머리는 하늘에 닿고 마닐라에서 한 발짝을 떼면 비간에 닿는다. 앙갈로와 아란이 태초에 평평했던 땅을 손가락으로 후벼파자 산과 언덕이 생겨나고 깊이 파여진 구덩이에 오줌을 누자 바다가 탄생한다. 

 

96 거대한 오줌발을 지닌 역사적 여인들

-       삼국유사 김유신의 누이. 언니 보희가 동생 문희에게 간밤에 꾼 꿈이야기를 한다.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자 서라벌 장안에 가득 찼다.” 이 꿈을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꿈 값으로 지불하고 옷깃을 벌려 언니 꿈을 샀다. 꿈을 샀던 문희는 김춘추와 혼인하여 왕비가 된다. <삼국유사> 1 기이1 대태종 춘추공

-       고려 왕건 할아버지 작제건 출산 관련 꿈. 꿈을 꾼 이는 작제건의 외할아버지 보육이다. ‘곡령에 올라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자 산천에 넘쳐흘러 은바다로 변한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형 이제건이 자기 딸과 보육의 혼인을 주선한다. 혼인을 하고 나서 이들 사이에 딸이 둘 태어나는데 그중 큰 딸도 아버지와 유사한 오줌 꿈을 꾼다. ‘오관산 꼭데기에 올라 오줌을 누는데 오줌이 천하에 넘쳐흐른다.’ 김유신의 누이들처럼 동생 진의가 비단 치마를 주고 이 꿈을 사고, 후에 진의는 혼인을 하여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이 바로 작제건이고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할아버지다.

-       <고려사> 5대 경종의 넷째 부인 헌정황후의 꿈. ‘곡령에 올라 오줌을 누자 오줌이 나라 안에 흘러넘쳐 은바다가 되다.’ 점쟁이가 이 꿈을 듣고,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될거라고 말해주는데 후에 그의 말대로 태어난 아이가 왕이 되니 현종이다.

-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 <역사>. 메디안의 왕 아이스티아게스의 딸 만다나의 꿈. 메디안의 왕 아스티아게스가 리디아를 침입해 5년간 전투를 벌인 끝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협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아스티아게스 왕은 리디아 왕의 누이와 혼인하는데, 후에 이 둘 사이에서 딸 만다나가 태어난다. 공주가 태어나고 왕이 꾼 꿈. 딸이 오줌을 누기 시작하는데 그 양이 엄청나서 아시아 전역에 홍수가 났다. 왕이 현자에게 이 꿈을 묻자 만다나 공주가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면 왕위를 찬탈하고 대제국을 세우게 될 것을 예언하는 꿈이라 했다. 아스티아게스 왕은 딸이 능력있는 아들을 낳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손자를 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 손자는 살아남아 키로스 2세가 되었다.

 

96 꿈을 판 사람이 행운을 놓친다는 속설은 꿈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말라는 조상들의 교훈적 메시지처럼 들린다.

 

96 특별한 꿈을 산 탓에 왕비가 되었다는 단순한 묘사는 문희가 그 꿈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여인이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98 꿈으로 작업하는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새 왕조의 건국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유사한 꿈을 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99 어디서든 엄청난 오줌 꿈은 대혁명이나 큰 변혁을 예고하고, 또 어마어마한 오줌의 양이 변혁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듯 하다. 물론 오줌이 점유하는 땅은 꿈의 주인공이 관할하는 영역이 이토록 거대하다는 힘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 이미지는 혹시 동물이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99 꿈과 신화의 공통문법. 집단의 꿈이라고 일컫는 신화에서 대홍수는 기존 세상의 파국과 새로운 세상의 탄생, 구 질서의 몰락과 재 질서의 도래, 묵시와 창세의 우주적 드라마가 재현됨을 이미 살펴보았다.     

 

101 오줌발

-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략한 홍타시의  탄생 일화. 중국의 장수였던 누르하치가 어느 날 무덤 평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나. 가까이 가보니 오줌이 묘를 뚫었고 파인 땅이 아주 깊어 말채찍이 들어갈 지경이었다. 누르하치는 즉시 이 여인을 데려다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홍타시라는 것이다. (김광언, <동아시아의 뒷간>) 오줌발이 센 여인이 위대한 인물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엿보인ㄷ.

-       요강에서 울리는 처녀 오줌발 소리를 듣고 아내나 며느리 삼는다.”

-       제주 무가 <자청비>에서 자청비가 문도령과 오줌발 멀리 보내기 시합을 한다.

-       <봉래사 고기> 어떤 도사가 도를 닦고 있는데 할망이 찾아왔다. 도를 닦는 중이라 하여 만나 주지 않자 할망은 바위 위로 올라가 도사가 나오나 살핀다. 기다려도 도사가 얼씬도 하지 않자 화가 난 할망이 오줌을 누기 시작한다. 오줌줄기로 인해 아래 있는 바위가 깨어지고 결국 할망은 그 속에 빠져 죽었다. 자기 오줌에 빠져죽었다는 말을 믿기보담 도 닦는답시고 세상과 금줄 친 남자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바위를 깰 수 있는 오줌발을 소유한 여성이었다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할 것이다. 두렵다고 인정하기보다 유혹이 되는 할망을 제 오줌에 익시시켜버리는 게 사내의 자존심이었는지 모르겠다. 도 닦는 이의 번뇌에 대한 보복이 밉지 않다.

 

102 여성의 엄청난 오줌발은 곧 음기의 표식으로 간주되었다. 음기가 강한 여성, 즉 풍요와 다산의 기운이 넘치는 여인이 영웅도 낳고 임금도 낳고 새 나라도 낳는 것이 아닐까? 문희, 진의 헌정왕후..이 여인들의 원형적 인물이 바로 설문대할망이고 창세의 순간, 우주 창조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던 때 여신이 창조한 오줌 홍수가 이 막강한 오줌발들의 원조였을 것이다.

 

103 오줌을 모아 따로 거름으로 쓸 때, 안뒷간의 오줌이 바깥뒷간의 오줌보다 효과가 높아서 안오줌 한 장군을 사랑오줌 세 장군과 맞바꾸었다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깨, 수수, 조 등 알곡이 주렁주렁 열리는 작물은 특별히 아이를 많이 낳은 여인이 씨를 뿌리고 이들의 오줌을 뿌려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103 다산과 풍요로운 결실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던 시절에는 여성의 비옥함이 그 자체로 존중되었으나, 이 풍요로운 힘이 도덕이란 이름으로 조악하게 변질되어 가는 동안 여성의 몸 뿐 아니라 땅과 자연에 대한 가치도 함께 왜곡되었다. 하지만 남신 사회, 편향된 남성 중심사회에서 왜곡된 본래의 인간의 모습이나 힘에 대한 흔적을 고래의 신화와 꿈을 통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104 걸어오다 멈춘 산

 

-       어디어디에 산이 걸어 내려가다가, 임신한 여인이나 서답 빨래를 하던 여인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산이 걸어내려온다고 말하자 멈춰선다는 이아기. 이 이야기군에서는 여인이 말을 하는 대신 오줌을 누기도 하는데, 산이 걸어오다가 여인이 오줌을 누자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       일본 후지산의 기원. 산이 매일 높아지고 있었는데 임산부가 서서 오줌을 누다가 매일 저렇게 높아지면 어떻하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       떠내려오다 멈춘 섬

 

104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려면 상황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말로 표현되기 전에는 머릿 속 생각들일 뿐이다. 입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나오는 탄생 과정에 대한 은유일 수 있다 .

 

105 선사시대 자료를 보면 출산하던 자세가 여인들이 오줌을 누는 자세와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도 섬도 할망의 오줌바다도 이 원형적인 자세로 태어난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할망처럼 여인들도 아이도 누고 오줌도 낳게 된 모양이다.

엄마는 4아이를 모두 집에서 출산했다. 산부인과 한 번 가본적 없다. 쪼그리고 앉는 자세로 아이를 낳았단다. 이건 엄마, 고모, 증조할머니가 알고 있는 출산법이었다. 누워서 아이를 낳는 일은 없었다.

 

105 제주 사람의 꿈 이야기. 신혼 때 꿈에 시할머니가 나타나 신혼방의 청홍 이불 위로 오줌을 갈기셨다는데, 이 꿈을 꾸고 나서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할망이 청홍으로 장식된 새 음양의 터전에 비옥한 오줌발로 음기를 축하하는 세례를 해주었거나 탄생의 전조인 양수를 쏟아내 곧 생명이 태어날거야예고해 준 듯 하다.

 

106 아기든, 바다든 출산과 탄생의 계보는 태초부터 중단없이 여인의 몸과 몸기억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 신화와 꿈은 이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도록 거듭거듭 상기시켜주고, 우리가 이를 기억하는 한 온 당에 그리고 온 마음에 풍요로운 생명의 축제는 계속되리라.

나이든 내가 출산을 하고 싶어한다. 남신이 아니라 여신,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그래야 비옥한 자궁이 될 수 있다는 뜬금없는 확신. 그럼 어떻게 여성성을 강화할 건지가 나의 숙제다. 어머니와의 관련을 회복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이번 달 웍샾의 주제다.

 

110 신화는 이 자리에서 할망이 바다의 물을 떠서 밥을 했다고 묘사한다. 세 토막 바위조각이 바로 할망이 솥을 앉혀 밥을 하던 솥덕이라는 것이다.

 

111 불을 인류가 다룰 수 있게 되자 주거지 안으로 들여놓아 필요할 때 되살리고 보존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류가 마침내 불을 다스린 진화사의 놀라운 순간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화덕의 흔적이다.

 

112 제주 전통 가옥의 부엌난방과 취사가 분리된 제주라 화덕을 벽에 부착할 필요가 없고 바닥에 돌을 세 개씩 세워놓았다. 그 모양새가 천상 할망의 삼발 솥덕이다.

 

112 제주 화덕 사용하는 돌을 가끈돌이라 부른다. 깨끗한 돌을 신중하게 골라서 사용. 가끈돌 위에 부엌의 신 조왕이 산다고 믿었기 때문. (진성기 <제주의 전통문화>)

 

112 제주에는 신들의 교체기가 있어서 해마다 한 번씩 제주 일만 팔천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다. 공백기를 신구간이라 부른다. 제주에서는 이 기간에만 이사를 하는데 특별하게 다루는 물품에 솥, 화로, 요강, , 푸는 체 이다. 이 물품들을 옮기고 나면 이사를 다 한 것이나 다름 없다. <진성기 이들을 잘못 다루면 동티가 난다. 동티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표현하면 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물건은 함부로 취급하면 안된다는 믿음이고 결론적으로 이 물품들은 신성하다는 것이다.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

 

113 제주민들은 제삿날이면 어김없이 부엌 한 구석에 쌀을 한 대접씩 떠놓는데, 연유도 모르고 선조들의 습관을 따라 하는 것이지만 예전에 조왕을 섬기던 흔적이라고 지역 민속학자가 설명해 주었다.

 

114 조왕과 칙신은 사이가 좋지 않아 정지의 물건을 변소로 가져가거나 역으로 변소의 물건을 정지로 가져가면 동티가 난다. 위생 차원에도 이런 공간분할은 타당해보인다.

 

114 문전 본풀이  문전신과 두 아내인 조왕할망과 측도부인의 기원을 풀어내는 신화

주방(부엌)과 화장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니. 재미나다. 그리스로마 신화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런 일상적이 이야기도 읽고 싶다. 거기만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네.

 

문전신은 남선비고 문전어멈은 예산국인데 이 둘이 혼인을 하여 일곱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미역을 따러 배를 타고 나간  남선비가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 예산국이 남편을 찾아 떠난다. 

남선비를 찾고보니 노일제대 귀일의 딸과 배에서 살림을 차렸다. 노일제대 귀일의 딸은 찾아온 예산국을 유인해서 물에 빠뜨려 죽인 다음, 예산국으로 가장하고 남선비와 함께 일곱 아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곧 이 일곱 아들을 죽이려는 묘안을 짜는데, 배가 심하게 아프다고 꾀병을 하여 병이 나으려면 일곱 아들의 간을 먹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다. 아내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남선비는 칼을 갈아놓고 아들들을 기다리나 막내아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노일제대 귀일의 딸에게 형들의 간 대신 산돼지 간을 먹이고, 결국 이 악한 여인뿐 아니라 여인과 한통속인 아버지를 물리친다. 마지막에 남선비는 도막을 치다 막대기에 목이 걸려 죽어서 주목지신이 되고, 노일제대 귀일의 딸은 변소로 도망쳐 목을 매 변소의 신인 측도부인이 된다. 그리고 일곱아들은 도환생꽃을 먿어 물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살려낸 후 그동안 물 속에서 추위에 떨었으니 조왕할망이 되어 하루 세 번 더운 불을 쬐면서 살아가라 한다. (장주근,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 역락>)

나도 주방에 아침마다 물을 떠놓는 그릇이 있다. 쌀 그릇도 있다. 바로 가스렌지 옆이다. 우리집에서 본 적 없는데 저절로 하게되었다. 조왕을 기리던 이런 심성이 내 안에 있어왔나보다. 기리지 않은 시간보다 기린 시간이 훨씬 길거다. 내가 태어나 자란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주방일을 할 때, 가스렌지를 켤 때, 새벽에 누군가에게 올리는 찬 물 한 그릇을 올릴 때 기억해보리라. 이 이야기가 나에게 말을 걸리라.

 

116 신들의 불을 훔치는 신화

-       그리스, 프로메테우스.

그는 신들의 거주지 올림포스 산에 있는 신의 화덕에서 불을 훔쳐내 깔때기에 감추어 인간에게 전해준다. 이 대가로 프로메테우스는 절벽에 묶인 채 독수리한테 간을 쪼아 먹히고 다음 날은 먹힌 간이 재생하는 끔찍한 형벌을 삼천 년간 받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불을 전달하려는 선한 도둑이다.

-       그리스 헤르메스,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는 늘 그러하듯 반 장난으로 우연히 불을 발명하고, 헤파이스토스는 불을 이용해 갖은 공예품을 만드는 풀무의 신으로 등장한다. 

-       벌새

원주민의 신화에서는 죄와 벌 같은 윤리 개념은 약한데 불을 훔치는 도둑의 역할을 주로 동물이 맡기 때문이다. 주로 새, 가장 가볍고 조그맣게 빛나는 벌새가 불을 훔친다. 지바로 인디언 신화. 이 종족에게 나무를 비벼서 맨 처음 불을 생산한 인물이 있는데 이름이 타키아다. 뭇 새들이 불을 훔치려 시도했지만 불가엔 언제나 타키아가 지키고 있다가 새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구워먹어버린다. 어느날 타키아의 아내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자신의 주변을 윙윙 맴도는 벌새를 만난다. 아내는 새가 너무 추워서 그러는 줄 알고 따뜻한 집 안에 들여놓는다. 그가 눈길을 다른 데 돌리는 사이 벌새는 꽁지에 불을 붙여 달아난다. 벌새는 꽁지에 붙인 불을 마른 나무 둥치에 옮겨 붙이고 이 불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가진다.

-       황새. 독일 동부의 밴드 족의 신화에서는 황새가 했다. 태초에 사람들이 태양에서 불을 가져다 달라고 청하자 황새는 불이 있는 남쪽 나라까지 날아가 불을 물고 온다. 황새 주둥이가 붉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제비, 몽골에서는 온 몸이 까만 제비가 이 역할을 하고, 남미 인디언 신화에서는 머리에 붉은 장식이 있는 딱다구리가 이 역할을 한다.

-       북미 인디언 신화에서는 코요테, 남미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표범이 불도둑이다. 이들 역시 민첩하고 간교하고 장난스러운 트릭스터들이다.

-       비버. 아이다호 부근의 인디언 네즈 퍼스. 이 신화에서는 소나무만 불을 가지고 있었다. 혹한이 닥쳐 다른 생명들은 다 얼어죽는데 소나무는 절대 불의 비밀을 나누지 않고 불주위에 파수꾼을 배치하여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방어한다. 어느날 소나무들이 큰 회합을 개최하고 이 회합을 위해 커다란 불을 피울 계획을 세운다. 이 소식을 알게된 비버가 묘안을 짠다. 불 주위에 파수꾼을 배치하기 전에 미리 둑 아래에 몸을 숨기고 기다리는 거다. 소나무들이 큰 불을 지키자 불타는 나뭇조각 중 하나가 비버 근처로 굴러왔고, 비버는 이 나무토막을 가슴에 품고 줄행랑을 친다. 모든 소나무들이 비버를 쫒아오지만 비버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고, 반대편 둑에 이르자 거기 서 있는 버드나무에게 불을 나누어준다. 달음박질은 계속된다. 자작나무를 만나면 자작나무에게 불을 주고, 나무들을 만날 때마다 나누어준다. 마침내 비버가 강을 건너자 소나무들이 포기하고 강둑에 멈춰 선다. 이 지역 강둑의 소나무숲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 때 불을 얻은 나무들은 각자 몸 속에 불을 품고 있어서 인간이 나무를 마찰하면 언제든 불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어도스. <북미 인디언의 신화와 전설>)

-       아이누 불 신화에서는 인간이 불을 만들 수 있도록 신이 도와준다. 백양나무에 불이 잘 안나 당드룹나무를 신이 준다. 아이누 족은 이렇게 만든 불을 카무이 후치라 부르는데 이 말은 할망신이란 뜻이다. 최고의 신으로 숭배하며 다른 신에게 기원할 것이 있어도 불 할망을 통해서 기원했다. 조왕처럼 이 할망은 불 자체뿐 아니라 불을 보듬는 화덕의 신이자 집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       우리 무가의 창세신화. 한국은 나무 대신 돌과 쇠로 불을 만든다. 창조주 미륵님이 쥐한테 불이 태초에 DEJG게 나게 되었는 지 근본을 묻자 금성산 들어가서 한 짝은 차돌이요, 한 짝은 시우쇠요, 툭툭 치니 불이 났고라고 대답한다. 이본에는 천태산 내막에 들어가 차돌을 놓고 수리 침을 떼놓고 나옵니다.” 말한다.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121 지금까지 알려진 화덕을 지키는 신은 모두 여신이다. 

 

121 할망이 다스리는 집안의 불

-       중국 소수민족 나씨족. 태양 여신이 여인들을 위하여 화당 옆에 두는 부뚜막 받침돌을 신산에서 직접 썰어 등에 매고 가져다줬다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 여성신화>)

-       고대 몽골 화덕 툴룩. 몽골에서 화덕은 가정의 중심이자 생명의 중심이다. 화덕을 지키는 불의 여신을 걸럼트 에흐, 불 어머니라 부르는데, 집안에 불이 있으면 자손과 가축이 번성하고 번영과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금기가 많다. 칼로 불을 찔러선 안되고 장작을 패서 불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도 안되고, 함부러 말하거나 더러운 것을 태워서는 안된다. 신발이나 속옷을 불 가까이 두면 안된다. 화로의 왼쪽으로 도는 걸 금한다. (이안나,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       슬라브의 불의 여신 베레기니아, 리투아니아 가비야, 폴란드의 마트카 가비아,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프리그. 각 나라의 조왕들이다.

-       로마 베스타. 베스타는 헤스티아와 비중이나 특질에 차이가 있다. 불의 신, 화로의 신, 가장의 신. 로마의 배꼽이라는 시내 정중앙에 베스타의 불이 연중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해마다 3 1일에 묵은 불을 새 불로 교체. 신전이 따로 있지 않고 땅에 둥근 원이 있고 그 안에 신성한 불을 보관한다. 베스타신전이 로마의 중심이듯 화로가 그 집의 중심이었다. 현대 가족 문제 역시 구심력 부족이 원인인데, 각 가정마다 베스타 여신이 거주하는 자리가 있는 지 그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우리집에는 있나? 해바라기 그림. 그 위에 모형 화로, 선반을 두고 그 위에다가 초를 두고 싶구나. 상징은 집의 화로이다. 우리 가족의 구심점은 헤스티아를 가진 내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불은 그냥 안온히 타오를 뿐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124 불 할망은 집의 중심이다. . 온기와 정담으로 피로를 녹이고 음식으로 살찌우고 생명으로 충전하는 자리. 영혼의 자궁처럼 온기와 밥이 있는 자리. 가슴에 품는 그리움의 표상, 어머니의 품 같은 화덕은 본질적으로 여신의 자리일 수 밖에 없다.

 

125 불을 다룬 최초의 흔적, 불땐 자리

-       중국 베이징 근처 저우커우텐 동굴 자리. 30~40만년 전.

-       남아프리카의 슈바르트크랑스 동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유적. 100~15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와의 혼돈.

-       이스라엘, 베노트 야코브 유적. 79만년 전.

 

126 화덕이 등장한 79만년 전 인류의 삶은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삶의 양식, 문화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진화에도 불은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불은 변형의 상징이다. 그리고 야성의 불을 인류가 길들이기 시작한 것 자체가 혁명이다. 

 

127 불로 음식을 익혀 먹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인간의 뇌는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처드 랭험) 지구 척추동물은 섭최하는 열량의 2%만 뇌가 사용하는데 인간은 20~25퍼센트의 열량을 사용한다. 조리한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두뇌가 사용할 수 있는 열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인지능력을 향상시켰다.

 

128 불을 이용한 첫 조리법은 굽는 것이었다. 그 다음은 끓이기. 거북 등껍질이나 오목한 돌 같은 자연용기에 날것을 넣고 물을 부어 불에 올렸을 것.

 

128 사냥하는 원시종족의 식품에 대한 자세. 사냥감이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이 보내주는 것만 사냥이 가능한데, 사냥감은 인간에게 자발적인 희생을 하고 인간은 이 거룩한 희생을 영예롭게 받아들인다. 자연히 먹는 행위는 성스럽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하나 되는 근원적인 성찬이고 의례이므로, 이 성찬을 마련하는 조리도 신성한 예식이었을 것이다.

켐밸이 그렇게 말했다. 감사는 여기서 오는 것 같다.

  

130 날것이 익힌 것으로, 자연이 문명으로, 설익은 존재가 사회화된 존재로 변형이 일어나는 자리가 화덕, 화로, 솥덕이다. 신비한 연금술은 야생의 불을 안전한 화덕으로 가져올 수 있기에 가능했다. 불을 이용해 굽고 끓이는 것은 변형을 일으키는 마술이며,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신비 자체인 조리는 본래 신의 예술이었다. 밥하는 설문대할망은 신의 예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것이다.

 

130 할망이 솥덕을 놓았던 것처럼 ㅈ제주민들도 부엌 안쪽에 솥덕을 마련하였다. 이 솥덕은 집이라는 소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이 자리에서 날것의 음식뿐 아니라 사람도 익혀져 성장하고 죽고 거듭나는 변형이 이루어진다.

요즘은 제주민들도 아파트, 빌라에 산다. 솥덕은 없다. 가스렌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전통을 어떻게 현대의 주택에 살릴 수 있을까?

 

130 불로 인한 변형이 일어나는 솥덕, 화로, 화덕에 우연이라기엔 너무 자자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패턴이 있다.

 

132 불을 다루는 도구에는 기하학적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세 다리로 땅을 딛고 그 위에 둥근 원이 놓여 있다. 위에서 보면 원 안에 삼각형이 있고 그 정중앙에 불이 위치한다.

 

132 인류 초기에 발굴된 불땐 자리들은 보편적으로 이중 동심원 패턴을 보인다. ..베스타 여신의 원시 신전에도 불을 보호하던 자리에는 만다라 같은 원이 있고 그 중심이 불이 위치한다.

 

132 원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상징이다. , , 안구, 하늘, 과일, 동물과 새의 알이 원형이다.

 

132 원과 중심은 우리 무의식에 깊이 닻을 내리고 있어 정신적으로 극심한 우울이나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 둥근 만다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원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말은 중심을 잡는다는 뜻이고 분리된 것을 모르고 통합한다는 뜻이다.

 

133 버클리대학의 수학자 에이브러햄 시든버그는 밤하늘 별자리들의 춤처럼 원은 인류에게 등장한 첫번째 도형이고, 다음에는 삼각형과 사각형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원을 반으로 나누면 2가 탄생하고 다시 수직으로 반을 나누면 4가 탄생하고 그 모서리를 연결하면 네 개의 삼각형이 탄생한한다. (시든버그, <정밀과학사에 관한 고기록>)

 

133 숫자란 뭔가를 헤아리기 위한 인간의식의 발명품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탄생하는 원형적 이미지다. (폰 프란츠 <예견>)

 

134 우리 신화에는 유독 3이 많이 등장한다. 단군신화의 천부인 3개와 무리 3, 인간 세상의 360가지 일, 호라이와 곰이 동굴에 칩거하는 기간도 삼칠일, 선덕여왕의 예견 3가지, 제주 심방의 무구 세 개여서 삼명두, 제주 본풀이는 3이 기본 패턴처럼 반복된다. 대왕별 소왕별의 수수께끼가 3이고, 아버지 천지왕이 어머니에게 준 박씨도 3이고, 무조는 삼형제고 죽은 자를 살리는 축수도 3번 하고, 삼공본풀이의 주인공 감장 아기는 셋째딸이고, 혼인하는 신선비도 셋째 마퉁이다.

 

135 솥덕 위에 앉아 있는 둥그런 솥은 자궁을 연상시킨다.

 

136 조리란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출산과정이다.

 

136 밥을 짓고 먹는 것이 평범한 일상 같지만 태초의 창조행위 즉 창조주 할망과 직접 계보가 닿아 있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신성한 과업, 즉 신의 예술에 동참하는 성스러운 일이다.

 

설문대시절에..하루는 배가 고픈 설문대하루방이 설문대할망에게 낚시를 가자고 제안한다. 하루방은 섭지코지에 도달해 바지를 벗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성기로 바다를 휘휘 젓기 시작한다. 그러자 고기들이 놀라 반대쪽으로 도망을 가는데 그곳에서 할망이 다리를 벌리고 있다가 하문으로 모두 빨아올린다.

 

140 이 이야기가 특별히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뻔뻔하고 힘이 있는 성묘사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141 민속학자 고광민 선생은 섭지코지가 제주에서 가장 풍요로운 어장이라고 했다. 남방에서 올라와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해류가 거쳐 가는 길목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143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전기에서는 탈해왕이 고기를 잡아 어머니를 공양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는 탈해가 알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상자에 담겨 바다에 버려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바다를 떠다니던 이 상자를 발견한 이는 노파 아진의선이다. 바닷가에 서 있던 아진의선은 까치가 바다 위를 까맣게 덮은 것을 보고 섬이라 생각했다가 섬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가까이 다가가 아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건져올린다. 이때 노파의 행위는 바다에서 고개 대신 아기를 건져 올렸을 뿐 낚시와 동일하다. 또 기록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아진의선이 혁거세 왕을 위해 고기를 잡던 노파라는 것이다.

 

143 노파를 묘사하던 단어 해척(海尺)은 사전적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척이라는 말은 접미사, 천한 일 혹은 존중받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통상적으로 붙여왔다. 말 그대로 한다면 바다를 측량한다는 말이다. 측량할 길 없는 바다의 깊이를 측량하려 드는 자라면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거나 현자일 것이다. 해척이란 단어는 불교에서 그런 뜻으로 사용되었다.

 

144 시조모와 같은 존재, 아진포에서 어업과 바다를 관장하던 여사제 혹은 여신이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해본다.

 

144 탈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바다라는 양수에서 태어난 우주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신화

 

145 캘틱 신화. 탈리에신.

구이트노 왕에게 엘핀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왕자가 연어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지자 연어 대신 가죽 바구니 하나가 건져올려진다. 천재적인 마법의 지혜 소유자 구이온이 속임수를 써서 태초의 여신 세리돈의 몸 속으로 들어가 임신을 시키는데 아이가 태어나자 가죽 바구니에 담아 바다에 버린 것이다. 엘핀은 바구니 속의 아이를 보고 감탄해서 탈리에신이라 외치는데 켈틱어로 빛나는 아름다운 이마라는 뜻이다. 탈리에신은 태어나자 마자 두 번 태어난 자신의 운명과 지혜에 대해 읊조린다. 그는 수많은 트릭스터들이 그러하듯 날 때부터 온전한 지혜의 소유자다.

 

신라에 나타난 탈해는 먼저 토함산에 올라 쓸만한 집을 하나 찾는다 반월 모양의 호공의 집이다. 탈해는 집마당에 숫돌과 숯을 묻어두고 자기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이라 주장하여 호공의 집을 빼앗는다. 이 대목에서 탈해가 대장장이거나 대장장이 계열의 자손임이 분명하다.

 

146 탈해의 어머니일 수도 있는 고기잡는 여인, 야장의 왕 탈해. 이 두 직업은 신화를 크게 농경/채취와 사냥/수렵으로 이분해볼 때, 주로 사냥계열 신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47 제주에서 어부들이 섬기는 서낭신은 도깨비신이다. 도깨비는 풀무의 신, 야장의 신이며, 주요 상징은 불이다. 이에 반해 농경계 신들의 주요 상징은 물이다. 불로 대별되는 도깨비 신은 가변적이고 변화무쌍하고 놀이를 좋아하는 반면, 물로 대별되는 농경계 신들은 일관되고 성실하다.

나는 성품이 농경계인 듯 하네. 상업, 사냥족 후예들에 대한 눌림, 적대가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바로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147 낚시를 통해 건져올리는 것은 다양한다. 강태공은 지혜를, 아진의선은 탈해를, 탈해는 왕권을

건져올렸다.

 

148 무형이든 유형이든 무의식 속에 있던 부를 세상 혹은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의식과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심리적인 의미의 고기잡이인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기란 새로운 시작, 새 아이디어, 새 왕조 등의 씨앗이 되고 이는 기존 세상, 익숙한 의식의 세계가 아닌 무의식에서 길어 올려야 마땅한 듯 하다.

 

149 설문대 하루방의 이미지는 바다를 휘젓는 거대한 남근에 집중되어 있다. 남근은 인류 초창기부터 인간의 근원적인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특별한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어 일찍부터 보편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149 한국 남근신앙을 가부장적 남아선호사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남근숭배는 성차별이나 남아선호, 혹은 가부장적인 문화 그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기원전 17,000년 경, 구석기 동굴 라스코. 동굴 가장 안쪽에 남근의 이미지 (캠벨, <동물적 힘의 길>) 세계의 암각화, 인류 초창기 신앙의 흔적에서 남근 이미지는 비일비재.

 

150 아이러니 같지만 가부장적인 현대사회에서 남근은 오히려 억압된 상징이다. 그리스도교 영향권, 유교문화권에서 남근이 공개적으로 신의 이미지로 숭배 받거나 남근 자체를 수용하는 열린 자리는 없다. 성과 신성함이 공존할 수 없는 종교 문화권에서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의 성 이미지도 존중되지 않는다.

 

150 현대의 남성들은 남근, 즉 진정한 남자다움에 대한 통과의례가 없어서 과장된 노출이나 과잉 방어를 하려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다움에 대한 확인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가 현대라고 주장한다.

과잉방어 부분에서 아들타령이 떠오른다. 지나친 보수주의의 원인일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150 가부장제 사회에 드러나는 조악하고 왜곡된 남성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남성성 본래의 힘과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남근숭배의 전통을 돌아보는 행위가 실마리를 찾는 자그마한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북미에서 남성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꾀하는 남성운동은 여성운동보다 20~30년 늦게 시작되었다. 미래는 건강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롭게 발달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여성성 만큼이나 건강한 남성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51 올림포스 산의 12신 중 남근으로 대표할 만한 신들이 있는데 바로 헤르메스와 디오니소스다. 헤르메스의 남근은 각 마을의 초입에 서서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면서 디오니숙스 축제에서는 남근을 노골적으로 과시한다.

 

151 남근숭배가 고등종교로 분화 발전하여 현재까지 보존된 경우도 있다. 힌두 시바 신 숭배. 시바를 모신 사원이면 어디든 시바 신의 남근, 즉 시바 링감이 있다.

 

151 남근숭배 전통에서 드러나는 명백한 것은 남근이 발기한 남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남근은 자치권을 지닌 기관이다. 자아나 초자아 등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루거나 통제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152 무의식은 강인하고 속도감 있고 직시하고 관통하는 생명력을 지니는데 무의식이 지닌 창조적 원리가 가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남근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남성적인 모드의 힘을 대변한다.

 

152 남근은 초월적인 힘을 상징한다. 남근은 모든 다른 위대한 종교의 상징들처럼 신비한 신의 실체를 나타내는데 이는 남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 (조지 엘더) 시바 숭배자들은 시바 링감 자체를 곧 시바 신의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153 남근은 리비도를 의미한다. 아무리 명백하게 드러난다 할지라도 남근은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리비도의 상징이다. ( <리비도의 변형과 상징>

 

153 어디서나 남근이 떠오른다는 여인이 있다. 억압된 여인의 상황을 나타내는 이미지, 즉 내면의 성적 갈망을 뜻하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남근의 한 측면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 가지 의미만을 지니는 경우는 없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있거나, 자기 내면의 남근적 에너지가 절실히 요청되는 경우 또한 이 환상의 주요 이유로 고려해 볼 수 있다.  

 

153 신화에서 하루방이 불러 일으켜 바다를 온통 뒤집어놓은 리비도, 즉 생명의 에너지가 귀결되는 곳은 할망의 하문읻. 바다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마주하고 있는 하루방과 할망의 특징은 그 모습 그대로 자연의 두 대극적인 특질을 묘사하고 있다.

 

154 힌두 시바 링감과 두르가 여신의 일화

어느날 시바 진이 진노하여 신의 남근인 시바 링감이 마구 치고 박고 날뛰기 시작했다. 산도 무너지고 계곡도 파괴되고 바위고 깨어지고 통제불능으로 날고 뛰고 부딪치는 시바 링감은 우주 삼라만상을 모조리 파괴할 기세이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힌두의 많은 신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한다. 그렇지만 시바 신의 기세를 감당할 신도 없고 사태를 진정시킬 뽀족한 수도 나오지 않는다. 그때 여신 두르가가 앞으로 나와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두르가 여신은 하문을 크게 벌려 날아오는 시바 링감ㅇ르 가랑이 사이로 잡아버린다. 이로써 날뛰던 시바 링감은 고요해지고 분노도 가라앉고 세상은 다시 평화스러워지낟.

 

155 명상수련을 많이 한 수녀님의 꿈인데 개인적인 차원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저 먼 곳에서 불꽃들이 날아온다. 45도 각도로 날아드는데 가까워지자 그게 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나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그 뱀을 잡아버린다.

 

설문대 할망이나 두르가 여신처럼 두 다리 사이로 난 입이 아니라 얼굴에 있는 입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원형적 드라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재현되는 느낌이다.

 

 

157 프레이저, 프로이트, 융 모두 개인의 발달 패턴은 종의 발달 패턴을 되풀이 한다는 데 동의했다.

 

157 갓 태어난 아기가 경험하는 세상 전부는 어머니다. 유아에게 어머니는 생명의 원천이자 근원적인 밥이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존재이다. 어머니란 전지전능하다. 또 사랑 자체이다. 여기서 이 렌즈를 대입하면 인류 초기의 모든 것은 인류의 어머니 즉 여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최소한 심리학적으로는 태초에 신들은 여성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158 바호펜은 로마법을 전공한 학자로 법의 토대가 된 관습이 가부장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158 마리아 김부타스 <여신의 언어>

위대한 석학들인 그러하듯 김부타스는 분명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 하나를 열어주었다. ‘인류 초창기 신들은 여신이었다가 심리학적 차원에서 사실이듯이, 김부타스가 제시한 자료들은 역사적으로도 이 명제가 사실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설문대 하루방의 등장 역시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할망에게서 하루방이 말 그대로 태어났다거나 아니면 하루방이 할망의 일부라는 해석도 무방하지 않을까?

 

160 온전한 신이 양성이듯 설문대할망도 본질적으로 할망/하루방 신이다. 이 양성인 할망이 분화를 하면 할망과 하루방이 나타나고 이 둘은 다시 할망의 몸으로 합쳐지는 듯 하다. 할망과 하루방이 통합된 몸은 하루방이 아니라 할망이다.

 

160 제주에는 300여 곳의 마을당이 보존되어 있는데 당에 갈 때 제주민들은 할망한테 간다고 한다. 분명 마을당신에 여신들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제주에서는 신이라는 중성적 표현을 당연히 여성명사로 의식하는 듯 하다.

 

161 보이오티아 항아리

여신의 양다리 사이 정중앙에 커다란 물고기가 한 마리 들어 있다. 하반신 전체가 항아리 모양인데 물고기가 곧게 서 있고, 물고기의 머리가 자궁의 윗부분에 가 닿는 듯 하다. 김부타스는 물고기와 자궁이 함께 연상되는 이런 자료들에서 공통적으로 그물망의 패턴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고, 상호 연관성이 있는 교집합으로 물고기 그물망-물의 조합을 읽어낸다. 여기서 이 시기엔 물고기의 물과 자궁 속의 물이 상응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62 김부타스는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에서 불굴된 초기 구석기 자료에서 자궁, 음순, 그물망, 지그재그, 나선형, 그리고 새싹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구석기 인류의 선조들이 물고기--새로운 시작이라는 개념의 동질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163 오늘날 현대인이 꾸는 꿈에 등장하는 물고기에도 이러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대개의 경우, 새로운 만남이나 새로운 여정 혹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시점에 꿈에 물고기가 등장한다.

 

그리스어 delphis의 뜻은 돌고래이고 유사한 단어 delphys의 뜻은 자궁이다. 자궁과 태아 그리고 물고기의 연관성은 다른 언어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64 물고기가 남근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그 모양만큼이나 노골적이다. 하루방의 거대한 남근과 하문으로 들어온 물고기 이미지는 거대한 창조주 둘이 바다라는 장소에서 벌이는 태초의 섹스 장면 같다.

 

164 물고기의 다른 특질 하나는 다산성이다. 설문대할망의 비옥한 하문은 돌지해오는 물고기들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하나둘도 아닌 엄청난 생명을 수태하는 것이다.

 

165 역석적이게도 시작은 언제나 끝과 한처음은 언제나 마지막과 연결된다. 서양의 열두 별자리에서 맨 마지막이 물고기자리이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마지막에 거대한 물고기 리바이어던을 잡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바다는 탄생의 상징이다. 동시에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166 낚시는 무의식의 물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낚아 올리는 풍요로운 의식화 작업. 할망의 몸에서 태어난 하루방은 그 자체가 낚시의 산물.

 

할망의 죽음

설문대시절에

설문대할만은 키가 큰 것이 자랑거리였다. 할망은 제주도 안에 있는 깊은 물들이 자기의 키보다 깊은 것이 있는가를 시험해보려 했다. 용담동에 있는 요소가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보니 물이 발등에 닿았고, 서귀읍 서흥리에 있는 홀리물이 깊다 해서 들어서보니 무릎까지 닿았다. 이렇게 물마다 깊이를 시험하며 돌아다녔는ㄷ 마지막에 한라산에 잇는 물장오리에 들어셨다가 그만 풍덩 빠져 죽어버렸다. 물자오리가 밑이 터져 한정 없이 깊은 물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171 키 자랑을 하다 밑이 바다와 통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빠져 죽어버리는 어리석음도 너무 엄숙하거나 심각하지 않아 할망답다.

 

171 할망이 보여주는 키자랑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잘하는 놀이다.

 

172 할망은 한라산이 무릎 밑에 오는 거인이다.

 

173 오즈의 마법사, 걸리버 여행기 같은 판타지는 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원시 모드의 추상이라고 한다. 두드러지게 과장된 인물이나 중요한 특질을 가진 대상을 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터나 <의례의 인류학>)

 

174 거인들

-       스칸디나비아 반도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들은 특질이 잘 분화되어 있다. 태초의 거인 이미르. 전쟁의 신 오딘도 거인신이고 그의 아내 린다, 아들 토르, 보르 모두 거인이ㅏ. 돼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풍요와 다신의 여신 프레야도 거인신이다. 바우기, 앙그리보다.

-       캘틱 신화에서 고대 아일랜드는 거인들이 다스리는 땅. 포모리안. 우두머리는 발로르. 아름다운 그 자체인 베빈 도 거인이다. 고대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아일랜드를 묘사할 때 거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했다. 신비의 땅, 미개의 나라라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

-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 트리스탄을 다치게 한 거인. 마법사인 아일랜드 여왕의 동생이고, 천하무적이라고 알려진 몰홀트.

-       그리스. 가이아 여신에게서 태어난 타이탄들. 이들이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로. 하늘을 양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괴물과 싸움을 벌인다.

-       성서. 외경 에녹서. 여인을 탐하는 거인. 여인과의 사이에 반인간 반거인의 자식들이 태어나 지구를 파괴한다. 거인은 서양 신화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 같다.

-       중국 창조신 반고. 이미르나 티아멧처럼 반고의 조각난 몸 한토막으로부터 세상이 태어난다.

 

176 신화에 거인이 등장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초창기에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세계의 신화들에 소개되는 이런 거인과 거인국의 존재는 원시 심성에서 대단히 중요한 1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중 어떤 거인들은 설문대할망처럼 신이자 창조주이고 어떤 거인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한다.

 

176 인류 초창기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성찰을 촉구했던 거인들이 과학과 합리의 시대라는 오늘날에도 꿈이나 판타지 등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런 원시 심성들이 여전히 우리 의식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77 고대의 신화들은 초기 영성을 이미지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들은 긴 머리털, 뻣뻣한 수염, 건장한 두 다리는 뱀의 몸통으로 되어 있다. 힘은 천하무적이고 몸집 거대. 야성, 땅의 영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미지이다.

 

178 물질과 무의식의 조합이다. 분화나 질서가 태어나지 않은 창조의 중간단계에 등장하는 피조물 같다. 이러한 힘과 공포와 비정형의 이미지가 시사하는 바는 생명의 가능성과 엄청난 잠재력으로 뭉쳐진 태초의 혼돈, 즉 심리학적으로 본능의 에너지와 야성의 힘 자체다. 의식 개입이 이루어지기 전 처녀적인 자연 자체를 체현하는 존재가 거인인 것이다. 그래서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기 전에 거인을 먼저 창조하는 경우가 있다.

골리앗과 다윗. 골리앗 제압한 다윗의 의미. 다윗상과 섹스하는 꿈.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오디세우스가 눈을 찌름

 

179 신화권마다 거인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지만 이들이 보이는 공통된 특질은 태초의 존재라는 점 외에 몸 크기에 걸맞은 엄청난 식욕, 어마어마한 배석, 그리고 통제 불능의 탐욕이다.

 

179 본질적으로 거인은 순수한 감정적 리비도를 체현하는 인물이다.

 

180 이들은 선과 학 혹은 질서나 파괴라는 개념이 태어나기 전의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도덕관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인 단견일 뿐이다.

 

180 거인으로 체현되는 순수 리비도는 분명 위협적이다. 그렇지만 이 힘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경우, 그 힘은 기적을 가능케 한다. 예전에 성인이나 현자들이 거인을 부려 천길 낭떠러지 끝에 매달린 사원을 지었다고 하고, 인간이 들어올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석문화의 유산에도 옛날 옛적 거인들의 작품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뒤따른다.

 

181 어마어마하게 큰 배가 전 인류에게 나누어줄 물건을 가득 싣고 항구로 들어온다. 이 선박이 항구에 정박해 배에 있는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이 거대한 선박을 끌어당기기 위해 우아하고 섬세한 하얀 아랍 말이 항구에 매여 있다. 말이 배를 끌어 당겨 정박을 시켜야 하는데 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 그때 군중을 헤치고 빨간 머리의 거대한 붉은 거인이 나타난다. 거인은 단숨에 도끼를 내려쳐 흰 말을 죽여버리고 자신이 밧줄을 끌어당겨 선박을 항구에 정박시킨다.

이 꿈을 꾸고 융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어마어마한 열정으로 한 달음에 책을 써나갔다고 한다.

 

181 거인이 지닌 순수 리비도는 인간과 협력할 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는다.

 

182 북유럽에서는 거인들이 천상에서 공굴리기를 할 때 지상에 천둥번개가 친다고 한다.

 

182 설문대할망 신화에도 할망이 빨래를 하는 조각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자리가 각기 관탈섬과 우도이다. 할망은 이 섬들을 빵돌로 놓고 바닷물에 빨래를 했다는데 바다 위에 걸터앉은 거인 할망이 빵돌에 빨래를 올려두고 두드리는 장면에서 천둥번개와 비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른다.

 

185 한국의 거인신화

-       무가 김쌍돌이 본으로 알려진 [창세가]에 미륵님이라 칭하는 조물주 등장하는데 거인신이다. 미륵님은 서로 붙어 있던 하늘과 땅을 떼어놓고 사이에 구리기둥을 끼워 서로 들러붙는 걸 막는다. 하늘에 해가 둘, 달이 둘 있었다. 해 하나 달 하나를 손으로 쥐고 잘게 뜯어서 온 하늘로 흩뿌린다.

-       무가 고창학본 [초감제] 에 도수문장. 창조주. 한 손으로 하늘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땅을 짓눌러 분리.

-       마고할미. 할미가 손이 크고 힘이 좋아서 평평한 땅에다 죽을 죽죽 그으면 산이 되고 골이 된다. 할미가 똥을 눈 것은 쌓여 탑이 되고 섬이 태어난다. 천태산에 사는 마구할미는 치마를 해 입고 가다가 넓은 냇물을 만나자 돌을 치마에 싸서 옮겨 다리를 놓아 건넜다. 또 잃어버린 가락지를 찾으려고 땅을 마구 뒤적인 결과 산과 골과 내가 되어 울퉁불퉁한 현재의 산천지형이 만들어졌다. 금강산 만불암같이 기묘한 산천도 마고할미가 치마에 싸가지고 가다 던져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건 제주의 산방산이 만들어진 이미지와 대동소이하다. 북한 대성산에 있는 100개의 봉우리들에도 어김없이 할미의 자취가 묻어있다. 대성산이 평양, 즉 수도가 되지 못한 이유는 할미가 대성산 봉우리 하나를 가려 봉우리가 100이 아니라 99인 줄 알고 도성이 들어서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곳곳에 노고할미가 살던 바위와 담뱃대를 놓던 자리가 발견되고, 할미의 손자국이 찍힌 흔적이며 빨래줄을 매었다는 촛대바위도 있고, 매고 가던 쌀자루를 놓은 골짜기도 있다. 내외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할미가 치마에 산을 싸서 가지고 가다가 옷끈이 풀어져서 던져버리니 땅미산이 되고 영감이 산을 지고 가다 산이 부려져버린 것이 건지산이 되었다고 한다.

-       백두산 거인 장길손(장길산) 나뭇잎으로 음부만 가리며 산다. 왕이 옷을 해주자 옷이 햇빛르 가려 주변 곡식이 잊지 않아 만주로 쫒겨난다. 흙을 먹고 설사를 한 거이 백두산이 되고, 소변을 본 것이 압록강을 비롯한 강이 되었다 한다.

-       거녀신 제석할미.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인 것이 금강산. 세월이 흘러 사라질까봐 구멍을 뚫어 하늘로 올리려고 했다. 금강산 혈망봉.

-       창조할망들의 설화군에 속하는 이야기에서는 이미 태어난 산이나 섬이 제 자리르를 잡지 못하고 부유하거나 솟아오르다가 여인들의 개입으로 정착하게 된다. 

-       탈해왕이 담긴 궤 길이 20(6미터), 너비가 13(4미터)

-       남근이 한 자 다섯 치(45센치)라 배필을 구할 수 없었던 지철로왕도 거구.

-       <삼국유사> 2권 문호왕 때 사자수 남쪽에 떠내려온 여인 시체. 73(22미터), 발길이가 6. 음문이 3.

191 우리나라에도 거인신의 비중이 상당히 컸고, 후대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191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신의 이미지를 반추하고 또 모방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이 창조주의 이미지에 포함되면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불편가도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192 성장이 빠른 어린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꿈세계에서 죽음은 가자 대표적인 변형, 즉 탈바꿈의 상징이다. 기존의 존재가 죽어야 새로운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급격한 성장이나 변화의 순간에 죽음이 등장한다.

 

193 설문대할망 신화는 제주민 집단의 꿈이다. 할망의 죽음은 제주민의 커다란 성장, 즉 진화를 의미한다.

 

193 성장하는 동안 어린이는 거듭거듭 부모가 죽는 꿈을 꾸고 현실 속에서는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점차 독립적인 성인으로 탈바꿈해간다.

 

195 심리학에서도 리비도는 정체되지 않는다.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 끝없이 탈바꿈을 할 뿐이다. 할망의 몸을 분해하는 죽음의 물은 곧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할망이 물에 빠져 죽는다는 아이러니한 사건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탈바꿈의 과정이다.

 

잠자는 할망

 

 

설문대시절에

설문대할망이 잠을잔다. 머리는 제주도의  최북단에 닿고 발은 최남단에 닿는다.

 

200 몰타 잠자는 여신상.

여신상은 돌굴 모양의 방들 중 중앙에 위치한 방에 보존되어 있었다. 방의 벽면은 온통 붉은 생명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 붉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여신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201 여신의 자태가 제주 지형. 할망은 제주 우주의 창조자일뿐만 아니라 할망의 몸이 곧 제주였다.

 

202 조물주 할망이 한처음에 행한 잠 역시 창조행위이다. 자연히 신을 달은 인간이 밤마다 잠을 자는 행위는 이 자체로 신성하다. 잠자는 신의 이미지에 이토록 특별한 으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할망의 잠이 창조행위를 멈추고 쉬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는 것 자체가 창조행위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잠뿐 만 아니라 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혁명적인 이미지다.

 

203 밤과 잠과 어두움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할망 신화의 마지막 이미지로 의식적인 탐구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밤과 잠이라는 주제가 주어졌다.

저자가 그룹투사 꿈작업가라서 할 수 있는 말. 통찰  

 

207 주류의 문화는 시대착오적. 잠을 자지 않는 도시는 문화적 강박을 집약하는 표현

 

207 한국인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후진국형 수면 패턴. 개인적으로 한국인이 겪고 있는 정서불안과 시경증, 그리고 심각성 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높은 자살률은 수면 부족이나 수면장애와 절대적인 연관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잠자지 않는 도시를 자랑거리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잠의 양과 질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7 현대인의 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그리스도 교의 신의 이미지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 야훼 하느님은 신구약을 통해서 단 한 번도 잠을 주무시는 법이 없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하기를 촉구하는 모습이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208 낮은 가시적인 존재들이 활동하는 시기, 밤은 비가시적인 존재들이 활발해지는 시기.

 

216 현대인이면 누구나 겪는 불안과 근심에 대해 키르케고르는 이성과 명료함이 발달하면서 초래된 결과라 해석했다. 불안이 현대의 빛 숭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말인데 신화학자 지네트 파리스는 불안과 우울을 현대의 상징이라 진단하면서 이미지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220 진정한 희생이란 자신의 꿈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나 사회의 준거에도 아니오라고 말할 참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세상의 요구보다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면 분명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20 신과 귀신이 많은 제주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한다면 비가시적인 존재들이 잘 분화되어 발달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220 두려움이 불안보다 훨씬 낫다.

 

221 사실적인 그림이나 의도된 시각적 묘사가 아니라 감정적인 진실을 담아내는 이미지는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체험을 수반한다.

 

223 할머니 시인 마야 엔젤루는 제발 3000명이 죽었다, 5000명이 죽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숫자는 사건을 추상화시켜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냥 단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내 부모이고 내 형제고 내 자식이라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깊이 공감하는 체험이다. 신화를 공부하던 내내 제임스 힐먼 교수가 이미지를 찾아라고 날을 세우던 이유도 이해하게 되었다. 신화공부는 감정적 진실을 담아내는 이미지를 찾는 것이 그 핵심이다.

 

 230 달라이 라마

영혼은 깊고 그늘진 골짜기에 거주한다. 어두움 속에서 태어난 무겁게 늘어진 꽃들이 거기서 자란다. 강물이 끈적끈적한 시럽처럼 흐르고 이 강들은 거대한 영혼의 바라로 흘러들어간다. 반면 영은 눈 덮인 산꼭대기나 보석처럼 반짝이는 호수 그리고 빛으로 현란한 꽃들이 있는 높은 곳에 거주한다. 생명은 드물고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곳이다. 영은 고즈넉한 황량함에 대해서는 곱씹지 않는데 음울처럼 절대적 고립감에도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높이에서 영과 영혼은 멀리 떨어져 있다. 산에 오를 필요가 잇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적인 신성이 영과 결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33 오래 잠을 자던 여신이 현대인의 의식으로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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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12:14:16 *.131.89.46

이 책 여성신화에 관심있는 콩두님이 꼭 봤으면 했는데, 리뷰하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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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5 08:43:29 *.175.14.49

정화님도 읽으셨군요.^^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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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12:36:17 *.110.68.199

태초의 할망에 제주이야기, 세계신화까지 어우러진 리뷰,  재미있네.^^

티벳에 어울리는 콩두 만나보고 싶어. 이 가을 다 가지전에 시간내어 주면 고맙겠어. 신화이야기도 더 깊이 있게 듣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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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5 08:44:46 *.175.14.49

언니도 역시 저런 신화 이야기 재밌어하시는군요.^^ 제주에 근거지를 둔 분이라 저보다 더 느낌이 많으실 듯 해요. 네^^ 언니 만나요. 만나서 놀아요. 이번 주말은 어렵고 다음 주에 갈께요. 고마워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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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 09:01:29 *.131.8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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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화를 다룬 그림책을 봤습니다. 

'거인이 사는 섬' 할망의 도움으로 거인이 사는 섬에서 사람들은 탈출한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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