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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4일 21시 24분 등록


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 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어오는 세상의 바람 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

나는 대쪽 같다 말한 적 없다고 할까, 늘 푸르러 멋없다 생각했다 할까, 스치는 바람에도 요란한 잎사귀소리 스산해서 무서웠다고 할까. 생각지 못했던 고백, 난감하다. 대쪽 같다는 생각보다 마디가 있어 불안했고 어릴 적 각인된 전설의고향 귀신 등장을 알리는 쉬이익 바람소리, 그게 너였다. 난 아니라고, 난 널보고 꿈꾼 적 없다고 손 내젓고 싶다. 이것은 미안함의 발로인가. 내 옹졸함의 변명인가.


대나무의 고백에도 도망치려는 나인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고 따뜻이 보듬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십자가에 누워본 적 있으나 구원이란 말은 언감생심! 그대 한마음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다행일진대.


그래도 넌 좋겠다. 생의 마지막에 꽃이라도 있어 견디고 서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내 생의 끄트머리엔 무엇이 있어 견디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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